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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화 시어머니의 호출

신연지가 건넨 카드는 박태준이 준 카드였다. 그녀는 개인돈을 숙박료로 전부 탕진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그가 준 카드를 썼다.

그녀는 진유라에게 전화를 걸어 간단히 상황을 설명하고 바로 택시를 잡았다.

강태산의 차가 뒤를 따르고 있었지만 신연지는 그냥 무시하기로 했다.

차에서 내려 캐리어를 챙기다가 모서리에 손등을 부딪혀 버렸다.

피부가 긁혀서 피가 났지만 그리 심각하지는 않아 보였다.

진유라는 17층에 살고 있었다. 미리 연락을 했기에 문은 열려 있엇다.

신연지가 캐리어를 끌고 나타나자 진유라는 살짝 놀란 반응을 보였다.

전화 상으로는 집을 나왔다는 얘기를 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진유라가 다급히 다가와서 그녀의 손에서 캐리어를 받았다.

“짐 있다고 얘기했으면 내가 내려갔지. 너 손은 왜 이래? 다쳤어?”

신연지는 다급히 의약품 상자를 찾으러 가는 친구의 손목을 잡으며 고개를 저었다.

“괜찮아. 내버려두면 알아서 나을 거야.”

“손으로 벌어먹고 살 사람이 손을 이렇게 막 대하면 어떡해?”

신연지는 과장된 친구의 표정을 보자 며칠간 쌓였던 피로가 다 사라지는 것을 느꼈다.

“이 정도 다쳤다고 영향이 있진 않아.”

잠시 고민하던 진유라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지난번에 내가 얘기했던 거 고민해 봤어?”

신연지는 그 말에 시선을 회피했다. 아직은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았다.

“허 원장님 나를 몇번이나 찾아오셨어. 그분이 운영하는 작업실은 국내 최고 골동품 복원사만 모였잖아. 그런 인물이 직접 너를 지명하셨다는 건 대단한 기회야! 네가 신분이 들통날까 봐 거절만 안 했어도 당장 네 연락처를 줬을 텐데!”

신연지는 뛰어난 골동품 복원 전문가였다.

그녀는 어릴 때부터 복원사인 엄마를 따라 기술을 배웠고 대학도 같은 과를 나왔다. 졸업하고 바로 박물관에 취직하기로 되어 있었는데 그 사고가 나면서 박태준과 결혼하고 잠적했다.

최근 몇 년 사이, 그녀는 친구인 진유라를 통해 일감을 받아 민간 복원사로 일하고 있었다.

하지만 현재는 상황이 달라졌으니 유명 작업실에 취직하는 것도 고려해 볼 수 있었다.

잠시 고민하던 신연지는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 알겠다고 전해줘.”

“그럼 하겠다는 거지?”

진유라의 눈이 반짝 빛났다. 전에는 말할 때마다 거절하더니 이렇게 쉽게 생각을 바꿀 줄은 몰랐다.

“일단 해보지 뭐. 출근은 언제든 괜찮아.”

“진짜?”

진유라의 눈이 휘둥그레 떠졌다.

“박태준 비서 일은 이제 그만둔 거야?”

“응, 나 퇴사했어.”

신연지는 대수롭지 않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진유라는 오늘 뉴스 일면에 올라왔던 기사를 떠올리고 고개를 끄덕였다.

“진작 이렇게 했어야 했어. 박태준 그 변태 같은 자식, 네가 주문해 준 건 먹지도 않으면서 매번 그런 잡일만 시켰잖아. 그런 가식적인 인간은 전예은 같은 여우랑 어울려. 당장 이혼해. 어차피 3개월밖에 안 남았잖아.”

신은지는 피곤한 기색으로 소파에 몸을 던졌다.

“이혼하자고 하는데 그 인간이 싫다고 하더라. 계약 기간이 안 끝났다면서.”

그 말을 들은 진유라는 황당하다는 듯이 웃음을 터뜨렸다.

“대단한 분 납셨네! 애초에 그 인간 프러포즈를 거절하고 출국한 건 전예은이니까 쉽게 너랑 이혼하고 그 여자한테 갈 것 같지는 않았어. 그건 자존심 상하잖아? 밀당을 좀 해야 전예은이 자기를 아껴줄 거라 생각한 거지.”

신연지는 여기까지는 생각하지 않았지만 진유라의 말을 듣고 보니 일리가 있었다.

그러니까 밀당하는데 들러리 서라는 얘기야?

“나라면 이혼 서류를 기자들한테 뿌렸을 거야. 그러면 정의로운 네티즌 용사님들이 나서서 너 대신 그 인간 같지도 않은 것들을 응징하겠지!”

신연지는 못 말린다는 듯이 고개를 저었다.

“그냥 둘이 서로 사랑하게 내버려 둘 거야. 일이 커지면 나도 불리해지니까. 나도 사랑을 찾아야지.”

그 말을 들은 진유라의 눈이 번쩍 떠졌다. 그녀는 반짝이는 눈으로 친구를 이리저리 훑어보았다.

‘계집애, 이번에는 진심인가 보네?’

진유라는 냉장고로 가서 맥주 두 캔을 꺼내 하나를 신연지에게 건네며 말했다.

“그 지옥에서 벗어난 걸 축하하는 의미로 한잔해!”

신연지가 손을 뻗는데 초인종이 울렸다.

“누구세요?”

진유라가 입을 잔뜩 내밀며 현관으로 다가갔다.

밖에는 강태산이 난감한 표정을 하고 서 있었다. 그는 고개를 갸웃하며 거실에 있는 신연지를 바라보며 말했다.

“사모님, 도련님이 아래층에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저랑 같이 내려가시죠.”

신연지는 고개도 돌리지 않고 짜증스럽게 대꾸했다.

“난 안 나가니까 알아서 하라고 하세요.”

말을 마친 그녀는 손에 든 맥주캔을 따서 그대로 꿀꺽꿀꺽 들이켰다.

물론 강태산은 그 말을 그대로 전달할 수는 없었다.

“노부인께서 연락이 오셨는데 많이 편찮으신 것 같아요.”

그 말이 끝나기도 전에 신연지의 핸드폰이 울렸다. 발신자는 박태준의 모친 강혜정 여사였다.

박태준을 무시할 수는 있어도 시어머니의 전화까지 무시할 수는 없었다.

아들보다 며느리를 더 아껴준 시어머니였고 좋은 게 있으면 먼저 며느리까지 챙겨주시던 분이었다. 박태준과 다툼이 있을 때면 앞장서서 아들을 나무라던, 신연지에게는 정말 좋은 분이었다.

“어머님….”

“연지야, 태준이한테 전화했는데 네가 옆에 없다고 해서 연락했어. 태준이 그 자식 또 집에 안 들어간거야?”

“아니에요, 어머님. 제가 오늘 친구 생일이라 밖에 나왔어요.”

신연지는 두 사람이 이혼 얘기가 오가고 있다는 얘기를 굳이 하지는 않았다.

강혜정은 박태준을 출산할 때 출혈이 심해서 중환자실에서 한 달을 입원해 있었다고 한다. 그 뒤로는 건강 상태가 줄곧 좋지 않았다.

옆에서 대화를 듣고 있던 진유라는 못 말린다는 듯이 친구를 흘겨보았다.

수화기 너머로 강혜정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럼 파티 끝나면 오늘은 본가에 와서 자. 태준이 아빠도 출장 가셔서 집이 텅 비었는데 오늘따라 몸이 좀 안 좋네.”

신연지가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어디가 불편하신데요? 의사는 불렀어요?”

“아니야, 그렇게 심각한 건 아니고. 지난번에 경매장에 갔다가 보석 하나를 마음에 들어서 샀는데 장인에게 부탁해서 팬던트로 만들었어. 너한테 잘 어울릴 것 같아서 왔던 김에 가져가라고.”

신연지는 잠시 침묵하다가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어요, 어머니.”

단순히 선물을 받아가라고 불렀다면 간곡히 거절했을 테지만 몸이 불편하다는데 안 갈 수는 없었다.

진유라는 허탈한 표정으로 친구를 배웅하며 작게 한마디 했다.

“딱 봐도 거짓말인데, 그걸 속냐.”

아래층으로 내려가니 차에 기대 담배를 피우고 있는 박태준을 발견했다. 그는 밖으로 나온 그녀를 보더니 싸늘한 표정으로 고개를 돌려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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