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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화 넘치는 며느리 사랑

본가로 향하는 차 안에는 어색한 공기로 매워쌌다.

차가 번화가를 벗어나 한 호화 주택가로 들어선 다음에야 그는 긴 한숨을 내리며 차에서 내렸다.

그는 뒤에 내린 신연지에게 싸늘한 목소리로 물었다.

“내가 가슴 크고 백치미 있는 여자를 좋아한다고 했어?”

신연지는 떨떠름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아까는 그냥 그의 이미지에 생채기라도 낼 생각에 홧김에 한 말이었는데 그걸 기억하고 있었을 줄이야!

고개를 돌리자 박태준의 시선이 고의인지 아닌지 그녀의 가슴께로 향해 있는 것이 보였다.

그의 눈빛에서 잔잔한 비웃음이 느껴졌다.

“남자들 좋아하는 여자 이상형은 거의 다 비슷하지 않아?”

박태준이 인상을 쓰며 대꾸했다.

“난 아니거든?”

신연지가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그녀는 길거리에 나서면 모두의 시선을 받을 만큼 화려한 이목구비의 소유자였다. 하지만 박태준이 그녀를 바라보는 시선은 담담하고 아무런 온도도 느껴지지 않았다.

“당신 취향은 내 알 바 아니지만 난 활기차고 밤일 잘하는 남자를 좋아해. 그게 이혼하려는 이유이기도 하고.”

박태준의 얼굴이 순식간에 싸하게 굳었다.

옆에서 대기하던 강태산의 이마에서도 식은땀이 흘렀다.

“도련님, 작은 사모님, 이제 들어가시죠. 바람이 찹니다.”

신연지는 곧장 현관으로 향했다. 강혜정이 만면에 미소를 지으며 문을 열고 나오더니 그녀의 손을 잡고 안으로 이끌었다.

“내가 아줌마 시켜서 삼계탕 끓였어. 안에 피부 미용에 좋은 약재도 넣었으니까 이따가 먹어봐.”

그녀는 뒤따라오는 아들에게는 시선도 주지 않았다.

거실로 들어온 강혜정이 작은 소리로 며느리에게 물었다.

“태준이 녀석 요즘은 얌전하지?”

어제 뉴스를 보고 혹시나 신연지가 상처받았을까 봐 본가로 부른 게 분명했다!

“어머님, 저희는….”

그녀가 이혼 얘기를 조심스럽게 꺼내려는데 강혜정이 그녀의 말을 잘랐다.

“태준이 녀석 너 속상하게 하면 나한테 말해. 내가 대신 혼내줄 테니까! 녀석이 하는 대로 내버려두지만 말고 이따가 리스트 따로 적어줄 테니까 그것만 끼니 때 챙겨줘. 그거 다 태준이가 싫어하는 음식들이거든. 이따가 내가 진 비서한테도 따로 음식 못 챙겨주게 연락해 놓을게.”

시어머니는 일부러 전예은 얘기를 피하는 것 같았다. 아마도 그녀가 속상해할까 봐 배려해 주시는 듯했다.

가정부가 다가와서 강혜정의 어깨에 가디건을 걸쳐주셨다.

“열이 나신다는 분이 이렇게 얇게 입고 나오시면 어떡해요? 작은 사모님도 좀 말려주세요. 사모님은 다 좋은데 본인 몸에 너무 신경을 안 써요.”

그렇게 신연지는 이혼 얘기를 꺼낼 타이밍을 놓쳐버렸다.

“어머니, 어디가 불편하세요? 의사 부를까요?”

강혜전은 고개만 저었다.

“어차피 의사 불러도 똑같아. 좀 쉬면 괜찮아질 거야. 그리고 밤중에 시내도 아닌 교외까지 의사를 오게 하는 건 실례잖아.”

강혜정은 신연지와 함께 삼계탕을 맛있게 먹고 주문제작한 팬던트를 그녀의 목에 걸어준 뒤에야 방으로 돌아갔다.

방문을 열고 들어가기 전, 그녀는 박태준을 따로 불러 단단히 경고했다.

“너 오늘 안에 연지 기분 꼭 풀어줘. 안 그러면 엄마한테 혼날 줄 알아!”

박태준은 황당한 표정으로 엄마의 뒷모습을 바라볼 뿐이었다.

박태준과 신연지의 방은 2층에 있었다. 그들이 온다는 소식을 듣고 아줌마가 시트까지 다 새로 갈아놓은 뒤였다.

신연지는 갈아입을 옷을 챙기러 옷장을 열었다. 그런데 웬걸, 있어야 할 면 잠옷은 없고 가슴이 다 드러나는 원피스 잠옷들만 덩그러니 남아 있었다.

강혜정이 줄곧 손주를 기다린다는 건 이 저택 고용인들마저 다 아는 사실이었다. 그들이 결혼식을 올리자마자 아기 방까지 따로 준비하고 그 안에 각종 장난감을 채워 넣으셨을 정도였다.

아마도 이 옷장에 있는 잠옷들도 시어머니의 입김이 닿은 것이 틀림없었다.

신연지는 괜히 시어머니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두 사람 사이에 잠자리가 한 번도 없었다는 걸 알면 어떤 표정을 지으실까?

그녀는 고개를 돌려 박태준을 바라보았다. 박태준 역시 옷장에 있는 옷들을 보고 똥 씹은 표정을 하고 있었다.

“이런 건 당신이랑 안 어울려.”

그가 말했다.

신연지는 말없이 옷장에서 그나마 정상적인 옷을 찾아 손을 뻗었다. 박태준이 다가오더니 그녀의 손에 자신의 셔츠를 던져주었다.

“이거 입어.”

박태준은 키가 컸기에 그의 셔츠는 그녀의 무릎까지 왔다. 확실히 이런 이상한 잠옷보다는 훨씬 나았기에 그녀는 두말 없이 셔츠를 들고 욕실로 들어갔다.

신연지가 목욕을 마치고 머리까지 말리고 나왔을 때, 박태준은 베란다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뽀얀 담배 연기가 그의 얼굴을 가려서 날카로운 이목구비가 조금은 부드러워 보였다.

착각인지는 모르나, 그녀를 바라보는 박태준의 시선이 조금 묘했다. 하지만 그런 느낌은 순식간에 사라져 버렸다.

남자는 담배를 비벼 끄고 안으로 들어오더니 말없이 그녀를 지나쳐 욕실로 들어갔다.

어차피 냉대에 적응했기에 신연지는 덤덤하게 침대로 가서 앉았다.

잠시 후, 노크 소리가 들리고 아줌마가 한약을 들고 들어왔다.

“작은 사모님, 이건 사모님께서 도련님 드시라고 직접 달인 한약인데, 이따가 도련님 나오시면 드시라고 하세요. 이거 달인다고 사모님 손에 화상까지 입었어요. 말은 그렇게 해도 사실 사모님이 도련님 많이 아끼시는 거 알죠?”

“알았어요. 이따가 전해줄게요.”

신연지는 덤덤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 후 밖으로 나온 남자는 테이블에 놓인 한약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어머니가 직접 달였대. 따뜻할 때 마셔.”

박태준은 힐끗 보기만 할 뿐, 움직일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신연지는 아줌마가 했던 말을 떠올리자 갑자기 짜증이 치밀었다.

“박태준, 어머니가 당신 기력 보충해준다고 이거 끓이시다가 손까지 다치셨대. 성의를 봐서라도 마셔야 하는게 예의 아니야?”

그는 뜻 모를 미소를 지으며 그녀에게 물었다.

“내가 정말 이걸 마셨으면 좋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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