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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화

Author: 이한나
윤혜인은 마음이 너무 착잡했다. 그녀는 거울속에 비친 수려한 이준혁의 외모와 익숙한 향기에 마음이 자꾸 설렜다.

이준혁의 다정함은 그녀에게 더할 나위 없는 고통이었다. 그녀는 나중에 자신이 욕심이 생겨서 이준혁을 놓아주지 못할까 봐 덜컥 겁이 났기 때문이다.

머리를 말린 뒤, 윤혜인은 거울 속의 이준혁에게 낮은 목소리로 고맙다고 중얼거렸고 그녀 가까이에 서있던 이준혁은 화장대에 손을 걸치더니 여유로운 모습으로 입꼬리를 살짝 올리며 물었다.

“감사 표시는 어떻게 할 건데?”

그의 말에 윤혜인은 하마터면 사레에 걸릴 뻔했다. 그녀는 말똥말똥한 눈으로 어이없다는 듯이 이준혁을 쳐다보았다.

예전에 그녀는 항상 몸으로 감사 표시는 했는데 이제는 더 이상 그럴 수 없다.

두 사람은 곧 이혼할 거니까!

거울속의 윤혜인은 발그레한 표정으로 멍하니 이준혁을 쳐다보았고 그 모습에 이준혁은 괜히 마음이 싱숭생숭했다. 그는 갑자기 윤혜인의 턱을 살짝 잡더니 고개를 돌리고 사나운 얼굴로 경고를 했다.

“앞으로 그런 표정으로 다른 사람을 쳐다보지 마.”

그의 말뜻을 이해하지 못한 윤혜인은 흠칫 놀란 얼굴로 그를 빤히 쳐다보았고 이준혁은 낮게 깔린 목소리로 말을 이어갔다.

“모든 남자가 나처럼 신사적인건 아니야.”

윤혜인은 그녀의 이 모습이 얼마나 유혹적인지, 남자들에게 얼마나 치명적인지 모를 것이다. 이준혁의 얼굴이 점점 가까워지자 당황한 윤혜인은 고개를 돌려서 피하려고 했지만 이준혁이 그녀의 어깨를 살짝 잡더니 귓가에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움직이지 마.”

그렇게 두 사람은 콧등이 닿을 정도로 가까워졌다. 윤혜인은 이준혁이 그녀에게 입을 맞추려는 줄 알고 눈꺼풀까지 살짝 떨리고 있었다.

하지만 아니었다. 이준혁은 가볍게 그녀의 이마에 입을 맞추더니 빨갛게 달아오른 그녀의 볼을 살짝 꼬집으며 말했다.

“이건 벌이야.”

이게 대체 무슨 말도 안 되는 헛소리란 말인가?

윤혜인은 화가 나면서도 자신이 너무 바보 같았다. 이준혁의 다정한 모습에 이렇게 쉽게 넘어가다니.

이때, 이준혁의 핸드폰이 갑자기 울렸고 윤혜인은 순식간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녀는 재빨리 자리를 피했고 이준혁은 핸드폰을 들고 베란다로 향했다.

몇 분 지난 뒤, 전화를 끊은 이준혁이 다시 방으로 돌아왔다. 윤혜인은 침대에 누워 이불속에 몸을 숨겼다.

그녀는 그가 떠날 것이라는 걸 잘 알고 있지만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러다가 이준혁이 말을 꺼내기도 전에 윤혜인이 먼저 말을 걸었다.

“갈 때 문 좀 닫아줘요.”

“일찍 자.”

이준혁은 말 한마디 남긴 채 정장 외투를 챙겨 방을 나서다가 고개를 돌려 윤혜인을 힐끔 쳐다본 뒤, 다시 걸음을 재촉했다.

문이 완전히 닫히자 윤혜인은 눈물을 글썽이면서 이불속에서 머리를 내밀었다. 심장은 누군가에게 베인 듯 그 안에서는 서러움 같은 무언가가 계속 흘러나오고 있었다.

임세희는 이준혁이 유일하게 사랑했던 여자라는 걸 모든 사람들이 다 알고 있는데 윤혜인은 과연 무엇으로 그녀와 경쟁할 수 있단 말인가?

태어나기 전부터 환영받지 못하는 뱃속의 이 아이로 경쟁이나 가능할까?

윤혜인은 서랍에 숨겨둔 임신 보고서를 꺼내 갈기갈기 찢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이준혁에게 이 아이의 존재를 알리지 않은 게 너무 다행이었다. 하마터면 괜히 창피를 당할 뻔했다.

한편, 한 개인 병원에서.

이준혁이 창가에 멍하니 서있었다. 달빛에 비춰진 그의 얼굴은 오늘 따라 유난히 잘생겨 보였다.

“준혁 오빠.”

병실 침대에 누워있던 임세희가 허약한 목소리로 이준혁을 불렀다.

병원복 안에 보라색 원피스를 입은 임세희의 모습은 더욱 온화하고 여성스러워 보였다.

그녀의 부름에 그제야 정신을 차린 이준혁이 임세희에게 다가가 다정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깼어?”

“응, 또 오빠한테 신세를 졌네. 임씨 아줌마도 참, 큰 문제도 아닌데 호들갑을 떨어서 괜히 이 저녁에 오빠를 병원까지 불렀어.”

임세희가 미안한 표정으로 말했다. 말을 하는 그녀는 크게 감동을 받은 얼굴이었으며 이와 동시에 그녀는 이준혁에게 특별한 존재라는 걸 끊임없이 이준혁에게 세뇌를 시키고 있었다.

“괜찮아. 뭐 좀 먹을래? 주훈한테 사오라고 할게.”

차가운 이준혁의 얼굴에는 별다른 표정이 없었고 임세희가 애교 섞인 목소리로 그를 조심스럽게 떠보았다.

“오늘밤에 어디 있었어? 내가 오빠한테 해를 끼친 건 아니지?”

“아니야. 시간이 많이 늦었으니까 얼른 쉬어.”

평온한 표정으로 대답한 이준혁은 손목을 들어 시간을 확인했다.

“준혁 오빠, 나 무서워.”

임세희가 갑자기 손을 뻗어 뒤에서 이준혁의 허리를 끌어안았으며 울먹이는 목소리로 말했다.

“오늘밤 안 가면 안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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