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가진 건 낡은 기타와 몇 장의 악보뿐. 노래 하나로 세상에 서고 싶다는 꿈을 안고 옥탑방에 올라온 수정은 어느 날, 먼지 쌓인 기타 속에서 기이한 존재와 마주한다. 200년 전, 미완의 노래를 남긴 채 세상에서 사라진 청년 김한. 그는 기타에 깃든 채로 수정 앞에 나타나고, 두 사람은 함께 노래하며 서로의 상처를 어루만진다. 하지만 무대 위에서 수정의 노래가 커질수록, 김한의 존재는 점점 희미해진다. 빛나는 스포트라이트와 가슴 저릿한 사랑 사이에서, 그녀는 꿈과 사랑 중 하나를 잃어야만 하는 갈림길에 선다. “나의 마지막 무대를, 끝까지 들어줘요.” “네가 노래하는 순간, 나는 자유로워져.” 음악으로 이어진 인연, 시간조차 가두지 못한 사랑. 사라져 가는 멜로디 속에서, 수정은 과연 무엇을 붙잡을 것인가.
View More서울의 밤은 설탕을 살짝 탄 아이스커피 같았다.
달동네 계단을 오를 때마다 숨은 먼저 달리고,
다리는 항상 한 박자 늦었다. 빨래 비누 냄새,
고등어 굽는 냄새, 베란다에서 말리는 장갑들,
그리고 드라마 웃음소리.
들쑥날쑥한 소음들이 묘하게 어울려 리듬이 됐다.
문을 열면 손바닥만 한 방.
접이식 테이블 하나, 전기포트 하나,
바닥에 폭신하지 않은 요 하나.
창은 작지만 도시의 불빛이 와르르 쏟아져 들어왔다.
나는 테이블에 수첩을 펴고 지출을 적었다.
보증금 200
월세 35
중개 30
수도·전기 가불 8
컵라면, 계란, 대파, 참기름 1.1
기타줄 교체(보류)
“후…”
한숨이 나가고, 검지가 톡톡 테이블을 두드렸다.
버릇이었다. 리듬이 생기면 호흡이 가벼워지고, 그 사이로 멜로디가 보였다.
낡은 기타를 꺼내 A마이너, C, G… 손가락이 아는 길을 갔지만, 길 끝은 불 꺼진 골목 같았다.
“잠깐. 숨 고르고.”
창문을 열자 바람이 들어와 커튼을 찔렀다.
커튼 끝이 기타 헤드에 스쳐 팅~작은 소리가 났다.
이상하리만큼 정확한 음이었다.
며칠 동안 낮엔 카페, 밤엔 편의점. 손끝에 물기를 달고 살았다.
돌아와서는 옥상 난간에 기대 도시를 한 숟갈씩 떠먹듯 바라보다
방에 들어와 기타를 만졌다. 어떤 날은 멜로디가 네온사인처럼 번쩍였고,
대부분은 스위치가 고장 난 듯 깜깜했다.
그래도 계속 켰다. 언젠가 불이 들어올 거라 믿으면서.
그날은 수도에서 미지근한 물이 끝없이 쏟아졌다.
보일러실 문을 열자 먼지 냄새와 철 냄새가 쏟아졌다.
구석에 검은 가방 하나. 손잡이가 해져 있었다.
“이건… 뭐지?”
집주인은 “전세입자 짐인가 본데 버려”라고 했지만,
버리기엔 이상했다. 가방은 괜히 묵직했고,
손가락으로 먼지를 쓸자 얇은 반짝임이 스쳤다.
착각이라 치부했다.
그날 밤, 끊긴 버스 대신 계단을 끝없이 올라왔다.
문을 열고 그대로 바닥에 앉았다. 낡은 기타가 눈에 들어왔다.
나무결은 벗겨져 피곤해 보였다. 문득, 보일러실의 그 가방이 떠올랐다.
혹시 거기에 더 나은 소리가 잠들어 있을까.
가방을 방 한가운데 끌어다 놓고 지퍼를 당겼다.
지~르르. 소리가 정적을 가르자 공기가 얇아졌다.
마치 방 안에 비닐을 한 겹 씌운 듯.
뚜껑을 열자, 어둠보다 밝은 빛이 새어 나왔다.
눈꺼풀을 닫아도 들어오는 하얀 빛.
영수증이 들썩이고 커튼이 바람도 없이 흔들렸다.
빛이 잦아들었을 때 내 방에는 내가 데려온 적 없는 남자가 서 있었다.
나는 놀라거나 무서울 때마다 하는 말이 있다.
“누구세요…? 사람이에요…?”
오늘도 역시였다.
그는 똑바로 나를 보더니 느리게 고개를 끄덕였다.
옷차림은 시대를 놓친 듯했지만, 표정만큼은 기묘하게 또렷했다.
그는 말 대신 가방 안쪽을 가리켰다.
안에는 낡았지만 은은하게 빛나는 기타가 들어 있었다.
내 것과는 달랐다. 표면은 오래된 도자기처럼 빛나고,
프렛은 정갈해서 손톱만 대도 음이 흘러나올 것 같았다.
“…진짜 누구세요?”
그는 한 박자 늦게 대답했다.
“나… 한.”
“한…?”
“성은, 김. 김… 한.”
발음은 고풍스럽고, 표정은 수줍었다.
그때 꼬르륵. 방 안에 울릴 만큼 크게 났다.
나는 웃음을 삼키며 전기포트에 물을 올렸다.
“라면 드실래요?”
“라… 면. 세상의 뜨겁고 짭짤한… 면발?”
“세상은 빼고, 면발 맞아요.”
물이 끓자 그는 포트를 들여다보며 감탄했다.
“불 없이 끓는 작은 항아리… 마법 같군.”
“전기요. 그냥 전기.”
“전… 기. 좋은 친구네.”
그는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였고, 나는 피식 웃었다.
젓가락을 쥔 그의 손이 잠깐 서툴다가 금세 능숙해졌다.
첫 면발을 입에 넣은 순간 그는 눈을 크게 떴다.
“뜨거워요!” 내가 외쳤다.
그는 황급히 후후 불었다가 다시 입에 넣고 눈을 감았다.
“…따뜻해. 세상보다.”
나는 웃음이 터졌다.
“말을 꼭 그렇게 해요?”
“아… 요즘은… 그냥, 따뜻하다. 맞나?”
“…맞아요.”
우리는 국물 소리와 젓가락 부딪히는 소리로 대화했다.
그가 내는 엉뚱한 말과 어색한 웃음이, 낯선 밤을 묘하게 환하게 만들었다.
그릇을 치우고 담요를 두 장 꺼냈다.
“오늘 밤만, 여기 있어요. 구석에. 한 발자국 이상 가까이 오면… 소리 지를 거예요.”
그는 성실히 고개를 끄덕였다.
“소리… 지르지 않게 하겠어. 아니, 하겠어 → 하지 않겠어. 약속.”
나는 작게 웃었다.
전등을 끄자 방은 도시 불빛의 그림자로 채워졌다.
나는 옆으로 누워 눈을 감았다. 낯섦이 수면 위를 얇게 흔들었다.
오늘 밤만. 그렇게 끝낼 생각이었다.
하지만 눈을 감는 순간, 기타줄이 팅 하고 울렸다.
바람이 스친 건지, 누군가 건드린 건지 알 수 없는 소리.
그 소리에 묻혀, 잠이 왔다.
마지막으로 떠오른 생각은 오늘 밤만.
그런데 내 인생의 첫 소절은, 언제나 이렇게 평범한 밤에 시작되곤 했다.
공연장은 밝은 조명과 관객들의 환호로 가득했다.무대 위에 서자, 수십 개의 카메라와 수백 개의 눈이 나를 향했다.내 이름을 외치는 목소리가 웅성거림처럼 몰려왔다.가슴이 벅차올라야 했지만, 심장은 오히려 무겁게 내려앉았다.첫 소절을 부르려 기타를 잡는 순간 펑! 스피커에서 불꽃이 튀었다.순간, 귀를 찢는 잡음이 공연장을 울렸다.관객석에서 놀란 비명이 터졌고, 스태프들이 우왕좌왕 뛰어다녔다.손끝이 얼어붙은 채 기타를 내려다봤다.아무 이상 없는 줄줄이 케이블이, 누군가 고의적으로 잘라놓은 듯 흠집이 나 있었다.관객들의 웅성거림이 점점 커졌다.“장비가 터진 거야?”“신인이라서 준비가 덜 된 거 아니야?”카메라의 빨간 불빛이 여전히 켜져 있었다.이 장면이 고스란히 생중계되고 있다는 사실이 머리를 하얗게 만들었다.무대 뒤쪽, 관객들 눈에는 보이지 않는 어둠 속에서 이란이 미소 짓고 있었다.그녀의 입술이 소리 없이 움직였다.-봐요, 이게 세상의 무대예요. 당신의 진심은 이런 한 번의 사고에 무너지는 거죠.나는 숨을 고르려 했지만, 목이 꽉 막혀 아무 소리도 나오지 않았다.손끝이 떨려 기타 줄 위에 놓을 수조차 없었다.그때, 허밍이 들려왔다.짧지만 은빛 같은 음이, 내 귀를 파고들었다.“수정아.”창가가 아닌 무대 위, 바로 내 곁에서 김한의 목소리가 울렸다.오늘의 그는 거의 빛에 녹아 사라질 듯했지만,분명히 내 앞에서 허밍을 흘리며 내 손을 감싸는 시늉을 하고 있었다.“괜찮아. 네 목소리만 있으면 돼.기타가 아니어도, 장비가 아니어도, 네 노래는 나올 수 있어.”눈물이 왈칵 차올랐다.나는 손을 떨며 마이크를 잡았다.마이크는 여전히 불안정했지만, 깊게 숨을 들이마시고 노래를 시작했다.“창문 틈 바람 사이 오늘이 나를 부르면”처음에는 떨리던 목소리가 점점 안정됐다.관객석의 웅성거림이 멈추고, 대신 정적이 흘렀다.모두가 숨을 죽이며 내 노래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김한의 허밍이 짧게, 그러나 선명하게 내 뒤를 받쳐주었
무대 날, 대기실 공기는 유난히 차가웠다.스태프들이 분주히 움직이며 마이크와 장비를 점검하고 있었지만, 내 귀에는 그 모든 소리가 멀리서 메아리처럼 울렸다.손에 쥔 기타는 익숙하면서도 오늘따라 낯설게 무거웠다.분장사가 내 얼굴에 파우더를 바르며 속삭였다.“수정 씨, 기사 또 보셨어요?”나는 움찔하며 거울 속 시선을 피했다.“네?”“아침부터 또 떴더라고요. ‘남수정, 쇼케이스 무대 눈물도 연출?’ 뭐 이런 거…”피부 위로 스펀지가 스치는 순간, 가슴이 쿵 내려앉았다.나는 급히 휴대폰을 열어 확인했다.“남수정, 첫 무대 눈물 진심일까? 업계 관계자 ‘프로듀서가 짠 각본’ 주장”기사 밑에는 이미 수백 개의 댓글이 달려 있었다.“연기였네” “이래서 못 믿는다” “또 한 명의 가짜 진정성 가수”손끝이 차갑게 굳어 갔다.몇 주 전까지만 해도 ‘진심이 묻어난다’며 나를 칭찬하던 사람들, 그들이 이제는 같은 눈물조차 의심하고 있었다.리허설이 시작됐다.무대에 올라 마이크를 잡자, 낯선 불안이 목을 조여왔다.첫 코드를 튕겼는데퍽! 순간, 스피커에서 터지는 듯한 소음이 울렸다.귀를 찢는 잡음이 공연장을 가득 메웠다.관객석에 있던 관계자들이 놀라 웅성거렸고, 카메라맨이 급히 장비를 내렸다.“마이크 이상인가?”“앰프가 터진 것 같은데요?”스태프들이 우왕좌왕 뛰어다녔다.나는 얼어붙은 채 기타를 내려다봤다.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 마치 무대가 나를 거부하는 것 같았다.그때, 무대 뒤쪽 어둠 속에서 희미한 그림자가 보였다.김한이었다.“겁먹지 마.”그의 목소리는 낮고 간신히 이어졌다.“이건 장비가 고장 난 거지, 네 목소리가 잘못된 게 아니야.”나는 눈을 꼭 감았다.그가 곁에 있다는 사실이 간신히 나를 붙들었다.하지만 동시에, 그의 몸이 거의 투명하게 빛 속에 녹아들고 있다는 걸 눈으로 보고 있었다.리허설을 겨우 끝내고 분장실로 돌아왔을 때, 재운이 들어왔다.그의 얼굴은 굳어 있었지만 눈빛만큼은 매서웠다.“이건 단순한
다음 무대를 앞두고 분장실에 앉아 있는데, 문이 조용히 열렸다.매니저도 아니고, 스태프도 아닌 낯선 그림자가 스르륵 들어왔다.“여기 있었군요.”서이란이었다. 검은 수트에 은빛 장신구를 걸친 그녀는 마치 이 공간이 자기 소유인 것처럼 느긋하게 들어왔다.문을 닫는 소리조차 묘하게 매끄럽고 차가웠다.“무슨 일이시죠?”나는 조심스레 물었지만, 그녀는 대답 대신 내 앞에 놓인 기타를 흘긋 내려다봤다.“저 기타… 참 묘하네요. 오래돼 보이는데도, 빛이 남아 있는 것 같아.”그녀는 입꼬리를 살짝 올리며 의자에 앉았다.“남수정 씨. 기자들이 떠들어대는 거, 신경 쓰이지 않아요?”나는 손을 꼬옥 쥐었다.“전 그냥 제 노래로 증명할 거예요.”“하하.” 그녀가 짧게 웃었다.“순진하네요. 노래만으로는 못 버팁니다.대중은 쉽게 사랑하고, 더 쉽게 버려요.오늘 무대에서도 조금만 삐끗하면, 당신은 ‘반짝 스타’로 끝일 겁니다.”그녀의 목소리는 차갑지만 달콤하게 스며들었다.나는 목이 바싹 말라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그때, 분장실 문이 다시 열리며 재운이 들어왔다.그의 표정이 굳어졌다.“여기서 뭐 하십니까, 서 프로듀서.”이란은 고개를 돌려 무심한 듯 미소 지었다.“아, 서재운 프로듀서. 이렇게 안에서 마주치니 반갑네요.당신이 만든 스타가 잘 버티고 있나 보려고요.”“이건 제 아티스트의 공간입니다. 함부로 들어오지 마세요.”재운의 목소리는 낮지만 단호했다.이란은 그를 흘긋 훑어보더니 다시 내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그래요, 지켜줄 수 있으면 지켜보시죠. 하지만… 당신 눈길이 닿지 않는 곳에서, 더 많은 손길이 기다리고 있다는 걸 잊지 마세요.”그녀는 마지막으로 기타를 바라보다가 천천히 일어섰다.“오늘 무대, 기대할게요. 진심이 얼마나 버틸 수 있는지.”그 말과 함께, 그녀는 문을 닫고 나갔다.공기에는 묘한 서늘함이 남아 있었다.나는 숨을 몰아쉬며 기타를 끌어안았다.“저 사람… 분명 뭔가 알고 있는 것 같아요.”재운은
새벽, 휴대폰 알림이 쉴 새 없이 울렸다.눈을 비비며 화면을 켜자, 낯선 기사 제목이 눈에 들어왔다.“신예 가수 남수정, 데뷔 전부터 후원자 있었다?”“순수 이미지, 알고 보니 금수저? 업계 관계자 의혹 제기”손끝이 얼어붙은 듯 굳었다.기사에는 ‘업계 관계자의 증언’이라는 모호한 문구와 함께,내 사진이 쇼케이스 무대에서 눈물 흘리던 모습으로 크게 실려 있었다.순간, 숨이 막혔다.회사에 도착하자 분위기는 이미 술렁이고 있었다.스태프들은 각자 전화를 붙잡고 기자와 통화하며 진화를 시도하고 있었다.재운은 차갑게 인상을 찌푸린 채 노트북 화면을 보고 있었다.“누가 이런 걸 흘렸는지 모르겠지만, 분명 의도적입니다.”그는 단호하게 말했다.“수정 씨, 오늘 무대는 예정대로 진행합니다.인터뷰에서 루머에 대해 절대 부정적인 표정 보이지 마세요.‘신경 쓰지 않는다, 나는 노래로 증명하겠다’ 이 톤으로만 가세요.”나는 고개를 끄덕였지만, 속은 이미 무너지고 있었다.사람들이 나를 믿어줄까?순수한 목소리라며 칭찬하던 이들이 이제는 의심의 눈초리를 보낼까 두려웠다.리허설 시간이 다가왔다.무대 위에 오르자, 수십 개의 카메라 렌즈가 나를 겨눴다.손에 잡힌 기타가 유난히 무겁게 느껴졌다.조명을 맞으며 코드를 잡는 순간 스피커에서 날카로운 잡음이 터졌다.끼익! 귀를 찌르는 소리에 객석의 관계자들이 웅성거렸다.내 심장은 그대로 내려앉았다.스태프들이 우왕좌왕하며 장비를 점검했지만, 몇 번을 다시 해도 같은 소음이 반복됐다.“이상하네, 어제까진 멀쩡했는데…”“케이블이 문제인가?”현장 스태프들의 목소리가 불안하게 흘러나왔다.나는 손끝이 얼어붙은 채 기타를 내려놓았다.마치 무대 자체가 나를 거부하는 것 같았다.그 순간, 허밍이 스쳤다.짧고 낮은 음이었지만, 분명 김한의 것이었다.무대 뒤쪽 어둠 속에 그가 서 있었다.오늘의 그는 거의 빛에 묻혀 보이지 않을 만큼 희미했다.“겁먹지 마. 기계가 고장 난 거지, 네 목소리는 괜찮아.”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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