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경신은 여기까지 말하다가 말을 뚝 그쳤다.임문한이 몸을 돌려 힐끗 보자, 그 차가운 눈빛에 곽경신은 순간 가슴을 조이면서 식은땀을 흘렸다.앞서 곽경신이 했던 말은 무의식 중에 한 말이다.튤립펀드의 투자부문은 줄곧 자본을 동원해서 엠퍼러 등 국산 브랜드를 압박해 왔다.비록 모호한 방식을 취했지만, 왕왕 NS홀딩스와 같은 대리인을 지원하는 방식을 통해서 간접적으로 진행하기도 했다.그러나 하겠다고 마음먹은 사람에게는 전혀 비밀이 아니었다.심지어 H국 산업계를 타격하고 H국 브랜드를 말살하는 이런 일은 그동안 줄곧 진행되어 왔고, 엠퍼러만 겨냥했던 것도 아니다.막후의 배후도 튤립펀드가 아니다.수많은 세력이 밀고 당기면서 참여하는 거대한 전략이다.어쨌든 배경은 대단히 복잡했다.‘그러나 지금 튤립재단의 책임자가 직접 전화를 걸어서 엠퍼러에 투자하겠다고 한 게, 엠퍼러를 지원하려는 게 아닌 건 분명해.’‘기껏해야 자산을 현금화한 뒤 회수해서 떠날 거고, 심지어 가기 전에 한바탕 마구 조작해서 엠퍼러를 완전히 죽게 만들겠지.’‘늑대의 야심을 백일하에 드러낸 거야!’임문한도 Y국 사람들의 계획을 잘 알고 있는 게 분명했다.그렇지 않으면 곽경신이 방금 얘기를 꺼냈을 때, 곧바로 알아차리지 못했을 것이다.눈길을 돌린 임문한이 사람들을 등진 채 담담하게 말했다.“NS홀딩스가 동맹을 맺었고 자본도 풍부한 이상 이번 투자는 NS홀딩스에게 줘야겠어.”“약육강식에 적자생존의 세상이야. 엠퍼러가 죽어도 누구를 탓할 수도 없어.”임문한의 목소리는 차갑고 무정했다.엠퍼러의 사활은 전혀 개의치 않았다.Y국은 X시에서 비길 데 없는 영향력을 가지고 있다. X시 4대 가문을 포함해서 많은 가문들은, 발전 초기에 모두 HS뱅크, SC뱅크 등 Y국 자본의 지원을 받았다.이제는 이 가문들도 Y국과 얽히고설킨 상태였다.튤립펀드는 Y국의 대표적인 자본이기도 하다.튤립펀드와 우호적인 관계를 맺는 것이, 어떤 민족 브랜드를 지원하는 것보다도 더 현실적이다.곽경신은
H시상공회의소에서 최근에 발생했던 몇 차례의 위기들을 동혁은 모두 순조롭게 해결했다.그래서 회원들의 마음속에 동혁은 여전히 강력한 카리스마를 가지고 있었다.세화가 동혁의 말을 전하자, H시상공회의소의 상황은 잠시 진정 모드로 돌입했다.밤새 별다른 얘기가 없이 지나갔다.이튿날, 세화가 막 출근하려고 할 때 동혁이 붙잡았다.“여보, 오전에 휴가 좀 내. 이따가 나하고 어디 좀 같이 가게.”“당신, 또 나를 데리고 가서 무슨 말썽을 일으키려는 거야?”워크홀릭인 세화는 휴가를 내고 싶지 않았다.게다가 H시상공회의소에 또 이런 일까지 생긴 마당이기에!사람들이 자신을 의심할수록, 세화는 자신을 위해 더욱 열심히 노력하려고 했다!“여보, 내가 당신 마음속에 그런 이미지야?” 동혁의 표정이 어두워지면서 어쩔 수 없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하지만 당신 말도 틀리진 않았어. 오늘 당신을 데리고 가서 말썽을 일으키려는 거야.”동혁이 손을 꼭 붙잡고 있어서 세화는 벗어날 수가 없었다.세화도 동혁이 무슨 말썽을 부릴지 좀 궁금해졌다.“알았어, 그럼 같이 보러 가.”세화는 자신이 점점 더 동혁을 멋대로 놓아주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는 동혁이 무슨 말썽을 일으키는지 따가 가서 볼 정도까지 되었으니...예전 같으면, 이건 근본적으로 불가능한 일이었다.차에 탄 후, 동혁은 곧바로 차를 몰고 집을 나섰다.얼마 지나지 않아서, 차는 H시 컨벤션 센터 주차장으로 들어갔다.“엠퍼러 투자 경매?”컨벤션 센터에 걸린 거대한 현수막을 보자 세화는 엠퍼러의 경매가 바로 오늘 이곳에서 열린다는 걸 알게 되었다.세화는 좀 걱정이 되었다.“동혁 씨, 나를 데리고 와서 깽판을 치려는 건 아니겠지?”엠퍼러의 투자 경매 뉴스는 어제 이미 온 세상을 뒤덮을 정도로 널리 알려졌기에, 세화도 당연히 이번 경매가 얼마나 중요한지 잘 알고 있다.‘전국 각지의 투자계 거물들이 한자리에 모였겠지.’‘더군다나 지금 엠퍼러의 전국적 인기도 폭발할 정도로 좋으니까.’‘동혁
[이동혁 그 인간은 H시가 마치 자기 구역인 양 법도 우습게 여기면서 날뛰지요.][또 암흑가의 세력과 결탁해서 정상적으로 경쟁에 참여하려는 투자자를 압박했습니다!][심지어 우리 임홍장 사장님 같은 어른도 악의적인 보복을 당해서 병원에 입원했어요!][이동혁 그 인간의 인품은 정말 비열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우리 엠퍼러는 양심적인 민족브랜드 기업입니다. 이동혁의 원화투자회사하고 엠퍼러는 영원히 합작하지 않을 겁니다.][그리고 이동혁 같은 비열하고 파렴치한 소인배와 철저히 선을 긋기 위해서, 우리 엠퍼러는 지금부터 이동혁의 아내가 회장을 맡고 있는 H시상공회의소를 탈퇴할 겁니다.] [상공회의소 회장이 바뀌지 않는 한 말이지요!]카메라 앞에서 곽경신은 엄숙한 표정으로 위엄 있게 말했다.무표정하게 핸드폰을 보고 있는 동혁의 눈빛은 싸늘했다.현재 엠퍼러가 인터넷에서 인기몰이를 하고 있는 상황에서, 곽경신이 인터뷰에서 공개적으로 이렇게 말함으로써 원화투자회사의 엠퍼러에 대한 투자 가능성을 완전히 차단한 셈이다.설사 앞으로 상황이 반전되어 원화투자회사가 엠퍼러에 투자하게 되더라도, 여전히 온갖 추측과 의문이 난무하게 될 것이다.그렇게 되면, 원화투자회사가 엠퍼러를 증시에 상장한다 해도 주가 상승도 제한적일 것이다.‘이게 바로 곽경신 등이 원하는 효과겠지.’‘이런 식으로 원화투자회사가 투자할 길을 철저히 막겠다는 거야.’곧이어 안색을 누그러뜨린 곽경신이 웃으면서 말했다.[아 참, 재미있는 얘기를 하나 해 드리지요. 앞서 이동혁 씨가 제게 전화를 해서 자기한테 부탁하러 오지 말라고 위협하더군요.] [하지만 지금 이 기회를 빌어서, 저도 한 마디 하고 싶습니다.]고개를 젖힌 곽경신이 카메라를 정면으로 바라보면서 말했다.[이동혁 씨, 당신이 직접 내 앞에 와서 당신이 한 말에 대해서 사과하기를 바랍니다. 그럼 용서를 고려해 보겠습니다!”비웃는 듯한 표정으로, 싸늘하게 카메라를 응시하며 곽경신이 말했다.이어서 화면이 바뀌자, 동혁도 더이상 보고
저녁 무렵.오늘 모처럼 집에서 쉬게 된 동혁과 세화는 가족들과 함께 저녁을 먹었다.저녁을 먹은 뒤, 어린 녀석들은 각자 놀러 갔고, 류혜진도 진창하를 데리고 산책을 하러 나갔다.세화와 함께 설거지를 하던 동혁은 장가연의 전화를 받았다.[이 사장님, 뉴스 보셨어요?]장가연의 분노가 목소리에 그대로 전해졌다.동혁은 접시를 닦으면서 말했다.“또 무슨 일이 생겼어요?”[엠퍼러가 갑자기 공개 경매 방식으로 투자 유치를 진행하겠다고 발표했어요. 수십 명의 투자자들이 초청을 받았는데, 유독 우리 원화투자회사만 제외되었어요!][지금 엠퍼러에서 일을 너무 극단적으로 벌였어요... 됐어요, 제가 지금 뉴스 동영상을 보냈어요.]딩동!곧이어 장가연이 보낸 동영상이 도착했다.“여보, 무슨 일 있어? 나머지는 내가 씻을게.”세화는 동혁의 앞치마를 풀어주면서 주방에서 내보냈다.동혁이 동영상을 재생하자, 화면에는 엠퍼러의 신임 부사장 곽경신의 취재 장면이 담겨 있었다.[곽 부사장님, 엠퍼러처럼 이번에 공개 경매 방식으로 하는 투자 유치는 아직 드문데요. 투자자들의 이견이 없을까요?”정장 차림의 곽경신은 카메라 앞에 서서 의기양양하게 말했다.[당연히 이견이 없을 겁니다. 앵커께서도 보신 것처럼, 우리 엠퍼러는 지금 투자 시장에서 각광을 받고 있습니다.] [투자 방안을 제출한 투자자들이 정말 너무 많아서 어쩔 수가 없었습니다. 모두 성의를 보여 주셔서 저희가 선택하기가 어려웠어요.] [이렇게 마냥 미루는 것도 방법이 아니라서 이런 방식을 사용한 겁니다. 사실 저희가 여러 투자자들에게 초청장을 보내자, 투자자들도 인정해 주셨습니다.]동영상이 방영되는 짧은 시간 동안 동혁의 핸드폰에는 엠퍼러와 관련된 알림이 여러 통 도착했다.모두 이번 투자와 관련된 뉴스였다.동혁은 바로 알게 되었다.‘엠퍼러가 이번에 천용훈 사건으로 전국적 인기를 얻었지만, 결국 나쁜 영향도 가져왔어.’‘원래 사장이던 임홍성이 자리에서 밀려난 뒤, 새로운 고위층은 이미 방향성을 잃어버렸
온몸이 굳어진 도이강이 갑자기 눈을 뜨면서 놀란 표정으로 울부짖었다.“이, 이 선생님, 제게 한번만 기회를 주세요. 제가 잘못했어요. 앞으로는 당신의 충견이 되겠습니다...”도이강의 말이 다 끝내기도 전에, 동혁은 이미 발을 들었다.“아악!”처절한 비명이 연이어 터지면서, 도이강은 고통스럽게 바닥에서 뒹굴었다.“들어와서 마무리해.”핸드폰을 꺼낸 동혁은 최진우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리고 손을 닦은 휴지를 도이강에게 던진 뒤 주차장을 나섰다.모두 동혁의 뒷모습을 묵묵히 지켜보았다.동혁의 모습이 엘리베이터 안으로 완전히 사라지자, 사람들은 비로소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하늘의 저택.집에 돌아온 동혁은 아름다운 두 여자가 기다리고 있는 모습을 보았다.눈과 마음이 정말 절로 즐거워지는 그림처럼 아름다운 장면!동혁은 무의식적으로 발걸음을 멈춘 채 감상했다.“여보, 돌아왔네. 괜찮아?”달려온 세화가 동혁을 위아래로 찬찬히 뜯어보았다. 동혁이 멀쩡한 걸 보고 나서야, 세화는 비로소 한숨을 돌렸다.“도이강 일당은 어떻게 된 거야?”궁금해진 세화가 물었다.동혁이 자신에게 집에 돌아가 있으라고 하자, 세화는 도이강 패거리가 그냥 넘어가지 않을 것이기에 동혁이 그 일을 처리하러 가야 한다는 걸 알 수 있었다.다만 동혁에게 부담을 주고 싶지 않아서, 순순히 집으로 돌아와서 소식을 기다렸다.동혁은 사실대로 말했다.“그 사람들이 도 상공업국의 3인자를 불러서 나를 귀찮게 하길래, 내가 곽원산 도지사에게 전화를 걸어서 일을 해결했지.” “도이강은 앞으로 다시는 우리를 귀찮게 하지 못할 거야.”“곽 도지사에게 당신이 전화를 할 수 있다고?”세화는 처음에는 놀랐지만, 나중에는 곧 이해할 수 있었다.지난 번에 하동해가 하세량의 시장 자리를 빼앗았을 때, 선물을 보내지 않아서 문제를 일으켰기 때문이다.‘동혁 씨가 대담하게 곽원산에게 선물을 보냈고, 격노한 곽원산이 하동해를 해임하면서 H시 시청 고위 인사들이 모두 자리에서 물러나게 되었지.’‘그 후
동혁의 뒤에 선 채, 냉담하게 방관하던 정가영의 눈빛에도 충격이 드러났다.‘전화 한 통으로 강인산을 해임되게 만들고 가씨 가문의 기업을 빼앗았어.’‘이런 수단이라니! 사정태는 고사하고 사씨 가문 전체가 달라붙어도 이렇게 가볍게 얻을 수는 없어!주변의 시선도 아랑곳하지 않은 채, 고개를 든 강인산이 입술을 떨면서 말했다.“이, 이 선생님, 제발 용서해 주세요!”“이제 와서 제발 용서해 달라고?”동혁은 눈살을 찌푸렸다.“똑바로 무릎을 꿇어.”강인산이 무의식적으로 허리를 곧게 펴자, 동혁은 따귀를 때리려고 손을 들었다. 하지만 번들번들한 강인산의 얼굴을 보자, 눈살을 찌푸리면서 손을 대지 않았다.그리고는 휴지를 강인산에게 던졌다.놀란 사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동혁의 뜻을 깨달은 강인산은 휴지를 주워서 얼굴을 깨끗이 닦았다.짝!동혁은 더 이상 사양하지 않고 손을 들어 뺨을 때렸다.“지금 때리는 건, 시비도 가리지 않고 알지도 못한 채 무조건 아들을 두둔했기 때문이야!”짝!“이건 권세를 믿고 남을 업신여긴 데다가, 공적인 권력을 사적으로 사용했기 때문이고!”짝!“이건 부패하고 타락해서 권세가에게 아부했기 때문이지!”...마치 쇠 채찍을 휘두르듯이, 동혁은 잇달아 사정없이 강인산의 뚱뚱한 뺨을 갈겼다.맞아서 휘청거리는 강인산의 두 눈에는 곧바로 반항할 것처럼 분노가 가득했다.강인산이 원한을 품었지만, 억지로 참고 있다는 걸 누구나 알 수 있었다.그러나 방금 그 전화 때문에, 강인산은 결국 주먹을 꽉 쥔 채 묵묵히 맞고만 있었다.십여 차례 뺨을 맞은 뒤, 강인산의 입가에는 이미 피가 배어 있었다.자기 아버지가 이렇게 큰 모욕을 당하자, 아들인 강설송의 두 눈에는 새빨갛게 핏발이 섰다.동혁을 갈기갈기 찢지 못해 안타까울 뿐!그러나 강설성도 바보가 아니다. ‘아버지가 이렇게 이를 악문 채 온갖 치욕을 당하는 데에는 틀림없이 이유가 있어.’‘만약 내가 일시적인 충동으로 행동하면, 강씨 가문에 멸망의 재앙을 가져올 가능성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