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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기다리지 않으려 했는데

Author: 에이르
last update publish date: 2026-09-07 18:59:15

금요일이 됐다.

송유지는 아침부터 괜히 시간이 신경 쓰였다.

오늘 저녁에는 강현민과 두 번째 약속이 있었다.

그리고 채도하는 말했다.

늦으면 연락하라고.

데리러 가겠다고.

유지는 그 말을 생각하지 않으려 했다.

소개팅이 끝나는 시간까지 왜 신경 쓰는지.

왜 다른 약속까지 비워두는지.

그 이유를 자꾸 생각하면 안 될 것 같았다.

그래서 오히려 더 평범하게 준비했다.

평소보다 조금 단정한 원피스.

과하지 않은 화장.

딱 소개팅을 위한 모습.

거울 앞에 선 유지는 한참 자신을 바라봤다.

오늘만큼은 채도하를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정말로.

현민은 약속 시간보다 먼저 와 있었다.

“오늘도 예쁘시네요.”

유지는 어색하게 웃었다.

“감사해요.”

“지난번보다 덜 긴장하신 것 같아요.”

“그래 보여요?”

“네. 조금 더 편해 보여요.”

유지는 고개를 끄덕였다.

실제로 첫 만남보다는 편했다.

현민은 여전히 좋은 사람이었다.

말도 잘 통했고, 유지의 이야기를 잘 들어줬다.

식사를 하면서도 대화는 끊기지 않았다.

“요즘 일 많이 바쁘세요?”

“조금요.”

“그래도 지난번보다 얼굴이 좋아 보여요.”

“그런가요?”

“좋은 일 있으세요?”

유지는 순간 멈칫했다.

좋은 일.

있었나.

머릿속에 채도하의 얼굴이 스쳤다.

유지는 바로 물을 마셨다.

“그냥 요즘 잠을 좀 잘 자서 그런가 봐요.”

거짓말이었다.

오히려 요즘 잠은 더 늦게 들었다.

누군가를 자꾸 생각해서.

현민은 더 묻지 않았다.

식사가 끝나갈 무렵 그가 말했다.

“다음에는 영화 볼까요?”

유지는 대답을 조금 늦게 했다.

“네.”

또다시 다음 약속이 잡혔다.

싫지 않았다.

그런데 이상하게 기쁘지도 않았다.

현민이 좋은 사람일수록 마음이 더 복잡했다.

이 사람을 계속 만나면.

정말 괜찮아질까.

채도하를 덜 생각하게 될까.

유지는 자신도 모르게 휴대전화를 확인했다.

아무 연락도 없었다.

그걸 본 순간 괜히 마음이 내려앉았다.

“기다리는 연락 있어요?”

현민이 물었다.

유지는 바로 화면을 껐다.

“아니요.”

“아까부터 몇 번 보는 것 같아서.”

“습관이에요.”

현민은 웃었다.

“그럼 다행이네요.”

다행.

그 말이 이상하게 마음에 걸렸다.

식당을 나온 시간은 밤 아홉 시 반이었다.

현민이 말했다.

“집까지 데려다드릴게요.”

“괜찮아요.”

“지난번에도 거절하셨잖아요.”

“진짜 괜찮아요.”

현민은 잠시 고민하다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택시 잡힐 때까지만 같이 있어요.”

둘은 건물 앞에 섰다.

유지는 앱을 켰다.

대기 시간 십오 분.

그 순간 휴대전화 화면 위로 메시지가 떴다.

채도하.

—끝났어?

유지의 손끝이 멈췄다.

정확한 시간이었다.

마치 기다리고 있었던 사람처럼.

유지는 메시지를 읽고도 바로 답하지 않았다.

현민이 물었다.

“택시 잡혔어요?”

“아직이요.”

“그럼 좀 기다려야겠네요.”

유지는 잠시 망설이다 답장을 보냈다.

—네.

읽음 표시가 바로 떴다.

잠시 뒤.

—어디야?

유지는 입술을 깨물었다.

—회사 근처요.

이번에는 답장이 오지 않았다.

유지는 괜히 화면을 한 번 더 봤다.

아무것도 없었다.

이게 뭐라고.

왜 이렇게 신경 쓰이는지 몰랐다.

현민이 무언가 말했지만 유지의 집중은 이미 흐트러져 있었다.

몇 분 뒤.

익숙한 검은 차 한 대가 천천히 도로 옆에 멈췄다.

유지의 심장이 순간 내려앉았다.

설마.

운전석 문이 열렸다.

채도하였다.

그가 차에서 내렸다.

현민이 물었다.

“아는 분이에요?”

유지는 잠시 대답하지 못했다.

도하가 두 사람 쪽으로 걸어왔다.

평소와 다르지 않은 표정이었다.

무표정에 가까웠다.

“늦었네.”

도하는 유지에게만 말했다.

유지는 괜히 긴장했다.

“연락도 안 했는데 어떻게 왔어요?”

“근처였어.”

유지는 피식 웃을 뻔했다.

또 근처.

정말 믿어야 하는지 이제는 모르겠다.

현민이 먼저 손을 내밀었다.

“안녕하세요. 강현민입니다.”

도하의 시선이 잠시 현민에게 향했다.

“채도하입니다.”

둘은 짧게 악수했다.

현민이 물었다.

“유지 씨 가족분이세요?”

순간 공기가 아주 미세하게 달라졌다.

유지는 입을 열려다 멈췄다.

뭐라고 설명해야 하지.

한때 형부였던 사람.

죽은 언니의 남편.

지금도 가족이라고 해야 하는 사람.

그런데 도하가 먼저 말했다.

“가족입니다.”

짧고 단정한 대답.

유지의 가슴이 묘하게 내려앉았다.

맞는 말이었다.

틀린 것도 없었다.

그런데 왜 조금 서운한지 알 수 없었다.

현민이 웃었다.

“아, 그러시구나. 저는 오늘 유지 씨랑 저녁 먹었습니다.”

“알고 있습니다.”

도하의 대답에 유지가 고개를 들었다.

현민도 잠깐 놀란 듯했다.

“알고 계셨어요?”

도하는 시선을 유지에게 옮겼다.

“들었어요.”

그게 전부였다.

표정도 그대로였다.

질투도.

불편함도.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유지는 오히려 그게 더 신경 쓰였다.

현민이 말했다.

“그럼 제가 집까지 모셔다드리려고 했는데.”

도하가 아주 잠깐 멈췄다.

“제가 데려다줄게요.”

말투는 정중했다.

현민이 유지에게 물었다.

“괜찮으세요?”

유지는 두 사람을 번갈아 봤다.

그리고 고개를 끄덕였다.

“네.”

현민은 아쉬운 표정 없이 웃었다.

“그럼 오늘은 여기까지 하죠.”

“조심히 들어가세요.”

“유지 씨도요. 다음에 연락할게요.”

다음.

그 말을 듣는 순간 도하의 시선이 아주 잠깐 현민에게 머물렀다.

정말 잠깐이었다.

유지는 그걸 놓치지 않았다.

하지만 의미를 붙이기엔 너무 짧았다.

차 안은 이상할 만큼 조용했다.

유지는 안전벨트를 매고 창밖만 바라봤다.

도하는 평소처럼 운전했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몇 분쯤 지나자 유지가 먼저 입을 열었다.

“왜 아무 말 안 해요?”

“무슨 말?”

“그냥.”

유지는 일부러 따라 했다.

도하가 아주 작게 웃었다.

“너도 이제 그냥이라고 하네.”

“도하 씨한테 배웠죠.”

다시 침묵.

유지는 참다 못해 물었다.

“현민 씨 어땠어요?”

도하의 손이 아주 미세하게 멈췄다.

“뭐가?”

“그냥 첫인상.”

“괜찮아 보이던데.”

대답은 담담했다.

유지의 기분이 묘하게 가라앉았다.

“그렇죠?”

“응.”

“좋은 사람이에요.”

도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보여.”

너무 아무렇지 않았다.

유지는 괜히 창밖을 봤다.

“다음에 또 보기로 했어요.”

잠시 침묵.

“영화 보려고요.”

도하는 여전히 앞만 봤다.

“그래.”

그 한마디.

유지는 입술을 깨물었다.

정말 아무렇지도 않은 걸까.

자신만 이상한 걸까.

차가 신호에 멈췄다.

유지는 결국 물었다.

“도하 씨.”

“응.”

“왜 오늘 왔어요?”

“늦었잖아.”

“그게 다예요?”

도하는 유지 쪽을 봤다.

“뭐가 더 있어야 해?”

유지는 대답하지 못했다.

또 그 말이었다.

항상 한 발 물러날 수 있는 대답.

유지는 괜히 웃었다.

“아니요.”

신호가 바뀌었다.

차가 다시 움직였다.

몇 분 뒤 도하가 낮게 말했다.

“그 사람.”

유지가 바로 고개를 돌렸다.

“현민 씨요?”

“응.”

“왜요?”

도하는 잠시 말을 고르듯 입을 다물었다.

“괜찮은 사람 같긴 한데.”

유지는 숨을 멈췄다.

“근데요?”

“너 너무 빨리 결정하지는 마.”

유지의 눈이 조금 커졌다.

“뭘요?”

“사람.”

도하는 여전히 앞을 보고 있었다.

“두 번 봤다고 다 아는 건 아니니까.”

유지는 그를 바라봤다.

“그건 걱정이에요?”

“응.”

“왜요?”

도하의 표정이 아주 잠깐 굳었다.

“네가 상처받을까 봐.”

가족이라면 할 수 있는 말이었다.

충분히.

그런데 유지의 심장은 이상하게 빨라졌다.

“언니가 부탁했어요?”

질문이 튀어나왔다.

도하가 바로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

“뭘?”

“저 잘 챙겨달라고.”

이번에는 침묵이 조금 길었다.

유지는 괜히 긴장했다.

도하가 마침내 말했다.

“아니.”

짧은 대답이었다.

유지의 손끝이 굳었다.

“그럼 왜요?”

도하는 대답하지 않았다.

유지는 그의 옆얼굴을 바라봤다.

아무 표정도 읽을 수 없었다.

차는 계속 달렸다.

몇 초 뒤.

도하가 전혀 다른 말을 했다.

“다음에는 택시 안 잡히면 바로 연락해.”

유지는 헛웃음을 흘렸다.

“또 피하네.”

“뭘?”

“질문.”

도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 침묵 자체가 대답처럼 느껴질 뻔했다.

하지만 유지는 의미를 붙이지 않았다.

붙이면 안 될 것 같았다.

집 앞에 도착했다.

유지는 안전벨트를 풀었다.

“오늘 고마워요.”

“응.”

문을 열려다 멈췄다.

“도하 씨.”

“왜?”

“오늘 저 데리러 온 거.”

유지는 잠시 망설였다.

“진짜 그냥 늦어서 그런 거죠?”

도하가 유지를 바라봤다.

몇 초 동안 시선이 마주쳤다.

유지는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그가 뭔가 말할 것 같았다.

하지만 도하는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응.”

짧은 한마디.

유지는 웃었다.

“알겠어요.”

차에서 내렸다.

아파트 현관 앞까지 걸어갔다.

들어가기 직전 뒤를 돌아봤다.

도하의 차는 아직 그대로였다.

유지가 건물 안으로 들어간 뒤에야 차가 천천히 출발했다.

도하는 집으로 바로 가지 않았다.

차를 한 블록 정도 운전하다가 도로 한쪽에 잠시 세웠다.

시동은 켜둔 채였다.

그는 한동안 앞만 바라봤다.

잠시 후 휴대전화를 들었다.

오늘 저녁 비워둔 일정이 그대로 화면에 있었다.

아무것도 적혀 있지 않은 금요일 밤.

도하는 화면을 끄려다 멈췄다.

조금 전 현민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다음에 연락할게요.

별것 아닌 말이었다.

그런데 이상하게 오래 남았다.

도하는 한 손으로 핸들을 쥐었다.

왜 자신이 유지의 소개팅이 끝나는 시간을 기다렸는지.

왜 직접 데리러 갔는지.

왜 모르는 남자의 인상이 마음에 걸리는지.

굳이 답을 내리지 않았다.

아직은.

그저.

송유지가 생각보다 더 신경 쓰이는 사람이 되어가고 있다는 것만은 부정하기 어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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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음 날 아침.송유지는 평소보다 늦게 눈을 떴다.옆에서 채도하는 이미 휴대전화를 보고 있었다.유지가 눈을 반쯤 뜬 채 물었다.“몇 시예요.”“9시 조금 넘었어.”“오늘 출근 안 해요?”“일요일.”“아.”유지는 다시 베개에 얼굴을 묻었다.도하가 웃었다.“어제 기다리느라 늦게 잤지.”“안 기다렸다니까.”“11시 넘어서까지 책 읽고 있었잖아.”“읽고 싶어서 읽은 거예요.”“응.”“진짜.”“알겠어.”그 대답이 더 얄미웠다.유지는 결국 몸을 일으켰다.“회식에서 제 얘기 더 했죠?”도하가 잠깐 멈췄다.“조금.”“봐.”“왜.”“어제 다 말 안 했네.”거실로 나온 뒤.유지는 커피를 내리는 도하 뒤를 따라다녔다.“뭐라고 했어요.”“별거 없어.”“구체적으로.”“한 사람이 물어봤어.”“뭘.”도하는 컵을 하나 유지 앞으로 밀었다.“너도 회사 다니냐고.”“그래서.”“일한다고 했고.”“또.”“해외 프로젝트 다녀왔다고.”유지가 고개를 끄덕였다.“그다음?”“이번에 원격 자문도 시작한다고.”유지가 눈을 크게 떴다.“그것까지?”“왜.”“제 이력 소개했어요?”도하가 웃었다.“물어보길래.”“여보 원래 이런 사람 아니었는데.”“어떤 사람.”“회사에서 아내 자랑하는 사람.”도하가 잠깐 유지 얼굴을 봤다.“자랑 맞는데.”유지 손이 그대로 멈췄다.“아.”도하는 아무렇지 않게 자기 커피를 마셨다.“왜.”“아침부터 왜 이래.”유지는 괜히 빵을 뜯었다.“그래서 사람들이 뭐래요.”“대단하다고.”“진짜?”“응.”“여보는 뭐라고 했는데.”도하는 잠깐 생각했다.“일 많이 한다고.”유지가 바로 쳐다봤다.“좋은 얘기 하다가 왜.”“사실이잖아.”“또.”“근데 요즘은 좀 덜 한다고.”유지는 입을 다물었다.도하가 이어 말했다.“쉬는 법 배웠다고.”유지가 웃음을 터뜨렸다.“그것까지 말했어요?”“응.”“저 없는 데서 제 성장 보고를 다 했네.”“틀린 거 있어?”“없어서 더 뭐라 못 하겠

  • 죽은 언니의 남편을 사랑하게 됐다   305화: 회식이 끝난 밤, 기다렸지만 멈추지는 않았다

    채도하가 회식에 간 뒤.송유지는 정말 혼자 남았다.처음 30분은 책을 읽었다.그다음에는 냉장고를 열어봤다.배가 별로 고프지 않았다.“좀 있다 먹지 뭐.”다시 소파로 돌아왔다.휴대전화는 테이블 위에 뒀다.일부러 손에 들고 있지 않았다.오늘은 도하가 새 팀 사람들과 처음 제대로 섞이는 날이었다.연락이 늦어도 이상할 게 없었다.그걸 알면서도.8시 12분.한 번.8시 46분.또 한 번.유지는 시간을 확인했다.그리고 혼자 웃었다.“그래도 보긴 보네.”9시쯤.메시지가 하나 왔다.—잘 먹고 있어.유지 입꼬리가 올라갔다.—재밌어요?잠시 뒤.—응.그 뒤로는 아무것도 보내지 않았다.누구랑 있는지.몇 명인지.언제 끝나는지.묻지 않았다.대신 냉장고에서 간단한 걸 꺼내 저녁을 먹었다.책도 조금 더 읽고.샤워까지 했다.10시 30분쯤 되자.도하에게서 또 메시지가 왔다.—조금 늦을 것 같아.유지는 바로 답했다.—얼마나?—11시 반 전에는 갈게.유지는 잠깐 생각하다가.—응. 천천히 와요.전송했다.그리고 침실로 들어가지는 않았다.거실 조명만 낮춰두고 소파에 앉았다.기다리는 건 맞았다.하지만 초조하게 현관만 보고 있지는 않았다.11시 17분.비밀번호 누르는 소리가 들렸다.유지는 책에서 눈을 들었다.문이 열리고.도하가 들어왔다.“왔어요?”“응.”유지는 시계를 한번 봤다.“벌점 없음.”도하가 웃었다.“11시 반 전.”“약속 지켰네.”도하는 신발을 벗고 안으로 들어왔다.유지가 가까이 가서 얼굴을 봤다.“술 마셨어요?”“조금.”“많이?”“두 잔.”유지가 눈을 가늘게 떴다.“진짜?”“응.”“확인해볼까.”도하가 웃었다.“어떻게.”유지는 가까이 갔다가 멈췄다.그리고 피식 웃었다.“냄새 별로 안 나네.”“검사 끝?”“응.”도하는 재킷을 벗어 의자에 걸었다.유지가 물었다.“재밌었어요?”“응.”“사람들은?”“괜찮더라.”“누구랑 제일 많이 얘기했어요?”“기획 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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