เข้าสู่ระบบ다음 날 아침.
송유지는 눈을 뜨자마자 전날 밤 통화를 떠올렸다.
채도하의 마지막 질문.
—그 사람, 마음에 들어?
별것 아닌 질문일 수도 있었다.
처제에게 소개팅 상대가 어떤 사람인지 묻는 것.
가족처럼 지냈던 사이니까 충분히 할 수 있는 말이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한마디가 밤새 머릿속에 남았다.
유지는 휴대전화를 집어 들었다.
채도하에게서 온 메시지는 없었다.
괜히 실망한 자신이 싫어서 바로 화면을 껐다.
“진짜 그만 생각해야겠다.”
그렇게 마음먹었는데.
출근 준비를 하면서도, 지하철을 타고 가면서도, 회사에 도착해서도 자꾸 생각났다.
왜 물었을까.
정말 그냥 궁금했던 걸까.
아니면 조금이라도 신경이 쓰였던 걸까.
유지는 그 생각이 들 때마다 일부러 다른 일에 집중했다.
그런데 점심시간이 조금 지나자 휴대전화가 울렸다.
강현민이었다.
—어제 즐거웠어요. 다음 주보다 조금 빨리 볼 수 있을까요?
유지는 메시지를 바라봤다.
나쁜 기분은 아니었다.
현민은 좋은 사람이었다.
확실했다.
말도 잘 통했고, 부담스럽지도 않았다.
그래서 더 만나보는 게 맞다고 생각했다.
채도하를 잊으려면 더더욱.
—이번 주 금요일은 괜찮아요.
답장을 보내자 금방 메시지가 왔다.
—좋아요. 제가 맛있는 데 찾아볼게요.
유지는 휴대전화를 내려놓았다.
이게 정상적인 관계였다.
좋아할 수 있는 사람과 만나고.
마음이 맞는지 천천히 알아가는 것.
그런데 마음 한쪽이 이상하게 무거웠다.
*
그날 저녁.
유지는 야근을 하지 않고 평소보다 일찍 퇴근했다.
회사 건물을 나서는데 익숙한 검은 차가 눈에 들어왔다.
처음에는 착각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운전석 문이 열렸다.
채도하였다.
유지의 걸음이 멈췄다.
“도하 씨?”
도하가 차 문을 닫고 다가왔다.
“퇴근했네.”
“여기 왜 왔어요?”
“근처에 볼일 있어서.”
유지는 바로 웃었다.
“또 근처예요?”
도하가 아주 잠깐 시선을 피했다.
“왜 웃어?”
“도하 씨 회사는 여기서 반대 방향이라니까.”
“외근 나왔어.”
“진짜요?”
“응.”
유지는 여전히 의심스러운 얼굴로 바라봤다.
도하가 한숨처럼 웃었다.
“못 믿겠으면 회사에 전화해보든가.”
“그럴 정도는 아니고요.”
도하는 유지의 얼굴을 잠시 바라봤다.
“저녁은?”
“오늘은 먹을 거예요.”
“누구랑?”
질문이 너무 자연스럽게 나왔다.
유지가 멈칫했다.
도하도 자신이 조금 빠르게 물었다는 걸 알아차린 듯했다.
“아니.”
그가 바로 말을 바꿨다.
“집에서 먹을 거냐고.”
유지는 그를 가만히 바라봤다.
“집에서 먹을 건데요.”
“그래.”
도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게 전부였다.
유지는 괜히 아쉬웠다.
자신이 왜 그런 감정을 느끼는지도 싫었다.
“도하 씨.”
“응.”
“어제 왜 물어봤어요?”
도하의 표정이 아주 조금 굳었다.
“뭘?”
“현민 씨 마음에 드냐고.”
도하는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유지는 그 침묵을 놓치지 않았다.
“그냥 궁금해서 물어본 거예요?”
“응.”
“왜 궁금했는데요?”
“너 소개팅했다며.”
“그래서요?”
도하가 유지의 얼굴을 바라봤다.
잠깐.
길지도 짧지도 않은 시간.
그러다 시선을 옆으로 돌렸다.
“좋은 사람인지 알아야 하잖아.”
유지는 순간 웃음이 났다.
“왜 도하 씨가 알아야 해요?”
도하의 눈썹이 미세하게 움직였다.
“어머니도 걱정하실 거고.”
“엄마가 아니라 도하 씨가 물었잖아요.”
유지는 한 걸음 가까이 섰다.
“도하 씨가 궁금해서.”
둘 사이의 거리가 조금 가까워졌다.
도하는 유지의 얼굴을 바라보다 천천히 말했다.
“그냥 네가 이상한 사람 만날까 봐.”
유지는 순간 말을 잃었다.
그 말은 충분히 가족이 할 수 있는 말이었다.
그런데 왜 이렇게 들리는지 알 수 없었다.
“제가 애예요?”
“그런 뜻 아니야.”
“그럼요?”
도하는 잠시 입을 다물었다.
“네가 사람 보는 눈이 그렇게 좋은 편은 아니잖아.”
유지가 어이없다는 듯 웃었다.
“그건 또 어떻게 알아요?”
“예전에 이상한 남자 만났잖아.”
유지의 눈이 커졌다.
“그걸 기억해요?”
“유리가 걱정 많이 했으니까.”
또 언니였다.
유지는 괜히 마음이 가라앉았다.
역시.
채도하가 자신을 신경 쓰는 이유는 언제나 송유리와 연결되어 있었다.
“그렇구나.”
유지가 한 걸음 물러났다.
도하가 그 표정 변화를 눈치챈 듯했다.
“왜?”
“아무것도 아니에요.”
“표정이 그런데.”
“도하 씨는 진짜 별걸 다 보네요.”
“보이니까.”
또 그 말이었다.
유지는 도하를 바라봤다.
“저 그렇게 많이 봐요?”
질문이 나간 순간 둘 다 조용해졌다.
도하의 눈빛이 아주 잠깐 흔들렸다.
유지는 그걸 봤다.
분명히.
그런데 도하는 곧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말했다.
“자주 보니까.”
“언제요?”
“예전부터.”
유지의 심장이 빨라졌다.
“언니랑 있을 때부터?”
“응.”
도하는 아무렇지 않게 대답했다.
하지만 유지는 그 말이 이상하게 신경 쓰였다.
자신은 도하가 자신을 보고 있었다는 기억이 거의 없었다.
언니 옆에 있는 남자라고만 생각했으니까.
그런데 도하는.
자신의 커피 취향도.
밥을 자주 거르는 습관도.
상처를 그냥 두는 버릇도.
사람 보는 눈이 별로라는 것까지 기억하고 있었다.
“왜 그렇게 봐?”
도하가 물었다.
유지가 급하게 고개를 저었다.
“아니에요.”
“또.”
“뭐가 또요?”
“보고 있다가 안 봤다고 하잖아.”
유지의 얼굴이 뜨거워졌다.
“진짜 아니거든요.”
도하는 아주 작게 웃었다.
그 웃음 때문에 유지의 심장이 더 빨라졌다.
잠시 뒤 도하가 말했다.
“타.”
“왜요?”
“데려다줄게.”
“괜찮아요.”
“집 가는 길이야.”
유지가 눈을 가늘게 떴다.
“진짜로?”
“이번엔 진짜.”
“이번에는?”
도하가 잠시 말을 멈췄다.
유지는 웃었다.
“봐요. 지난번에는 아니었죠?”
“말꼬리 잡지 마.”
“수상한데.”
도하는 대답 대신 조수석 문을 열었다.
“탈 거야, 말 거야?”
결국 유지는 웃으며 차에 탔다.
차 안은 조용했다.
도하는 평소처럼 운전했고, 유지는 창밖을 바라봤다.
몇 분쯤 지났을 때 도하가 물었다.
“금요일에도 약속 있어?”
유지가 바로 그를 바라봤다.
“네.”
도하는 시선을 도로에 둔 채 물었다.
“그 남자?”
“현민 씨요?”
“응.”
“또 만나기로 했어요.”
도하의 손이 핸들을 조금 더 단단히 잡았다.
아주 미세한 변화였다.
유지는 그걸 봤다.
“왜요?”
“뭐가.”
“또 궁금해요?”
도하는 잠시 대답하지 않았다.
“그냥.”
유지가 피식 웃었다.
“또 그냥.”
“싫으면 안 물어볼게.”
“싫다고 안 했어요.”
유지는 일부러 그렇게 말했다.
도하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몇 초 뒤.
그가 아주 담담하게 물었다.
“그 사람이 그렇게 괜찮아?”
유지의 심장이 조금 빨라졌다.
“왜요?”
도하는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유지는 그의 옆얼굴을 바라봤다.
표정은 평소와 같았다.
질투하는 사람처럼 보이지도 않았다.
화가 난 것도 아니었다.
그런데 이상하게.
목소리가 조금 낮았다.
“그냥 궁금해서.”
“잘 모르겠어요.”
유지가 말했다.
“아직 한 번밖에 안 만났으니까.”
도하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리고 더 이상 묻지 않았다.
집 앞에 도착했다.
유지는 안전벨트를 풀었다.
“고마워요.”
“응.”
문을 열려는데 도하가 말했다.
“유지야.”
유지가 돌아봤다.
“네?”
도하는 잠시 입을 열지 않았다.
유지는 기다렸다.
“금요일.”
“네.”
“늦으면 연락해.”
유지의 눈이 조금 커졌다.
“왜요?”
도하는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데리러 갈게.”
유지는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소개팅 끝나고요?”
“응.”
“왜요?”
이번에는 도하가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몇 초.
유지는 숨까지 죽인 채 기다렸다.
그러다 도하가 시선을 앞으로 돌렸다.
“늦으면 위험하니까.”
유지는 그 말을 듣고도 바로 차에서 내리지 못했다.
너무 평범한 이유였다.
충분히 할 수 있는 걱정이었다.
그런데 이상했다.
왜 하필.
소개팅이 끝나는 시간까지 신경 쓰는 걸까.
“알겠어요.”
유지는 차에서 내렸다.
몇 걸음 걷다가 뒤를 돌아봤다.
도하의 차는 그대로였다.
유지가 건물 안으로 들어갈 때까지.
그는 출발하지 않았다.
*
집으로 돌아온 도하는 소파에 앉아 넥타이를 느슨하게 풀었다.
휴대전화 화면을 켰다.
송유지와의 채팅창.
마지막 메시지는 며칠 전이었다.
그는 한참 화면을 바라보다가 휴대전화를 내려놓았다.
금요일.
소개팅 상대와 다시 만난다.
그 사실이 이상하게 계속 머리에 남았다.
도하는 스스로에게 물었다.
왜 굳이 데리러 간다고 했을까.
늦으면 위험해서.
그게 이유였다.
충분한 이유였다.
그런데 몇 초 뒤.
도하는 다시 휴대전화를 들었다.
달력을 열었다.
금요일 저녁에 잡혀 있던 약속 하나를 바라봤다.
그리고 잠시 망설이다.
일정을 삭제했다.
화면에는 아무 일정도 남지 않았다.
도하는 한동안 그 빈칸을 바라봤다.
왜 비워둔 건지.
자신도 아직 정확히 설명할 수 없었다.
다만.
금요일 밤만큼은.
다른 약속을 잡고 싶지 않았다.
토요일 오후. 송유지는 엄마와 약속한 카페로 향하면서도 전날 밤 일을 계속 떠올렸다. 아파트 앞에서 한 시간 넘게 앉아 있던 채도하. 기다린 게 아니라고 끝까지 우기던 사람. 그리고 자신이 말했다. 누군가 자꾸 신경 쓰인다고. 좋아하는 건지 아직 모르겠다고. 도하는 그 말을 듣고도 누구냐고 묻지 않았다. 혹시 자신이냐고도. 그저. —잘 모르겠으면 급하게 결정하지 마. 그 말뿐이었다. 유지는 카페 문을 열며 작게 한숨을 쉬었다. “내가 대체 뭘 기대하는 거야.” 엄마는 이미 창가 자리에 앉아 있었다. “여기.” 유지는 맞은편에 앉았다. “일찍 왔네.” “근처에 볼일 있어서.” 주문한 음료가 나오고 한동안 별것 아닌 이야기가 이어졌다. 그러다 엄마가 휴대전화를 만지며 말했다. “아, 맞다.” “뭐?” “도하 소개해주려고 했던 사람.” 유지의 손이 멈췄다. 또 그 이야기였다. “왜?” “사진 보여줄까?” “나한테 왜 보여줘.” 대답은 빨랐다. 엄마가 눈썹을 올렸다. “왜 그렇게 정색해?” “정색 안 했어.” “궁금하지도 않아?” “안 궁금해.” 거짓말이었다. 엄마는 대수롭지 않게 화면을 몇 번 넘겼다. “도하한테도 보냈는데.” 유지의 시선이 저도 모르게 휴대전화로 향했다. “봤대?” “응. 사진은 봤대.” 21화에서 도하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사진만 보고 뭘 알아. 그때는 별 관심 없는 것처럼 말했었다. 엄마가 휴대전화를 유지 쪽으로 돌렸다. “괜찮지?” 보지 않으려고 했다. 정말 그럴 생각이었다. 그런데 결국 시선이 화면에 닿았다. 사진 속 여자는 단정한 인상이었다. 긴 머리. 차분한 미소. 잘 꾸민 사람. 그리고. 도하 옆에 있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것 같은 여자였다. 유지는 바로 시선을 거뒀다. “괜찮네.” 말은 아무렇지 않게 했다. 하지만 가슴 한쪽이 묘하게 답답했다. “그렇지?” 엄마는 만족스러운 얼굴이었다. “성격도 좋대. 직장도 괜찮고.
금요일. 송유지는 퇴근 준비를 하면서도 이상하게 휴대전화가 신경 쓰였다. 오늘은 강현민을 만나기로 한 날이었다. 그리고 채도하는 말했다. 늦어지면 연락하라고. 현민이 데려다줄 수도 있다고 했는데도. 그래도 연락은 하라고. 유지는 그 말을 떠올리다 스스로 웃었다. “왜 내가 신경 쓰고 있어.” 채도하가 자신을 챙기는 건 이제 익숙했다. 문제는 그 익숙함이었다. 전에는 아무렇지 않았던 짧은 메시지 하나에도 요즘은 이유를 찾게 됐다. 도하도 알고 있다고 했다. 자신의 행동이 유지에게 신경 쓰이게 한다는 걸. 그런데도 멈추지 않았다. 왜일까. 유지는 그 질문을 애써 밀어냈다. 오늘은 현민을 만나는 날이었다. 다른 생각은 하지 않기로 했다. 강현민은 오늘도 먼저 와 있었다. “오늘은 안 피곤해 보여요.” 유지가 웃었다. “지난번에 제가 그렇게 피곤해 보였어요?” “조금요.” “미안해요.” “왜 미안해요.” 현민은 자연스럽게 의자를 빼줬다. “오늘 즐거우면 됐죠.” 좋은 사람이었다. 유지는 다시 한번 그렇게 생각했다. 현민은 자신을 헷갈리게 하지 않았다. 좋으면 좋다고 말했고. 만나고 싶으면 약속을 잡았다. 무엇을 궁금해하는지도 분명했다. 채도하와는 달랐다. 둘은 저녁을 먹고 근처를 조금 걸었다. 현민이 말했다. “요즘 유지 씨한테 궁금한 게 하나 있어요.” “뭔데요?” “혹시 마음에 둔 사람 있어요?” 유지의 걸음이 아주 잠깐 느려졌다. “왜 그렇게 생각해요?” “가끔.” 현민은 웃었다. “저랑 있는데 다른 사람 생각하는 얼굴을 해서.” 유지의 심장이 내려앉았다. “제가요?” “제가 틀렸으면 좋겠는데.” 현민의 말투는 부드러웠다. 책망하는 느낌도 없었다. 오히려 그래서 더 미안했다. 유지는 바로 부정하지 못했다. 현민도 그걸 알아차린 듯 더 묻지 않았다. “괜찮아요.” “현민 씨.” “아직 제가 물어볼 단계도 아니잖아요.” 유지는 입술을 깨물었다. “미안해요.”
월요일 오전. 송유지는 출근하자마자 바빴다. 주말 동안 쌓인 메일을 확인하고, 회의 자료를 정리하고, 팀장에게 수정안을 넘겼다. 정신없이 오전을 보내다 보니 점심시간이 다 되어서야 휴대전화를 제대로 확인했다. 채도하에게서 메시지가 와 있었다. —점심 먹어. 유지는 화면을 보고 피식 웃었다. 이제 놀랍지도 않았다. 도하는 여전히 이런 식이었다. 다정하게 묻기보다 짧게 말하고. 챙겨놓고도 아무렇지 않은 척하는 사람. 유지는 답장을 보냈다. —먹을 거예요. 몇 초 뒤 읽음 표시가 떴다. —진짜? 유지는 웃었다. —네. —사진 보내. 유지는 눈썹을 올렸다. —왜요? —안 믿겨서. 유지는 점심으로 받은 샐러드와 샌드위치 사진을 찍어 보냈다. 잠시 후 답장이 왔다. —이건 밥 아니잖아. —샌드위치인데요. —저녁 제대로 먹어. —또 잔소리. —응. 유지는 휴대전화를 내려놓았다. 그런데 이상하게 기분이 좋았다. 도하와 이렇게 사소한 이야기를 주고받는 게 너무 자연스러워지고 있었다. 그게 가장 문제였다. 오후 세 시쯤. 강현민에게 메시지가 왔다. —이번 주 금요일 저녁 시간 괜찮으세요? 유지는 한참 화면을 바라봤다. 현민과는 이미 몇 번 만났다. 좋은 사람이었다. 부담스럽지 않았고, 대화도 편했다. 그런데 이상하게 다음 약속을 잡을 때마다 마음이 먼저 움직이지 않았다. 좋아서 만나고 싶은 게 아니라. 만나도 되니까 만나는 느낌. 유지는 잠시 고민하다 답했다. —네. 괜찮아요. 곧바로 답장이 왔다. —좋아요. 이번엔 제가 장소 정할게요. 유지는 짧게 웃었다. 그 순간 책상 위 휴대전화가 다시 울렸다. 이번에는 채도하였다. —금요일 약속 있어? 유지는 그대로 멈췄다. 시간이 묘했다. 방금 현민과 약속을 잡은 직후였다. 물론 우연이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유지는 일부러 답장을 늦게 보냈다. —왜요? 읽음. 잠시 뒤. —그냥 물어봤어. 유지는 미간을 찌푸렸다. 또 그냥
일요일 저녁.송유지가 부모님 집에 도착했을 때, 채도하는 이미 와 있었다.거실 소파에 앉아 아버지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고, 테이블 한쪽에는 그가 가져온 과일 상자가 놓여 있었다.유지는 현관에서 신발을 벗다가 잠깐 멈췄다.예상은 했지만 막상 얼굴을 보니 마음이 조금 달라졌다.도하와 마지막으로 제대로 마주한 뒤 며칠이 지났다.연락은 했다.하지만 전처럼 자주 하지는 않았다.유지도 일부러 먼저 연락하지 않았고, 도하 역시 별다른 이유 없이 메시지를 보내지는 않았다.그래서 괜찮아진 줄 알았다.막상 마주 보니 아니었다.도하가 먼저 고개를 들었다.“왔네.”“네.”짧은 인사.너무 평범해서 오히려 신경 쓰였다.“유지 왔니? 손 씻고 앉아.”주방에서 엄마 목소리가 들렸다.유지는 가방을 내려놓고 식탁 쪽으로 갔다.잠시 뒤 가족들이 자리에 앉았다.도하는 유지 맞은편이었다.엄마는 아무것도 모르는 얼굴로 반찬을 더 꺼냈다.“도하 너 좋아하는 갈비 해놨어.”“많이 안 하셔도 되는데.”“뭘. 너 요즘 제대로 먹고 다니긴 해?”유지는 저도 모르게 고개를 들었다.도하와 눈이 마주쳤다.그가 아주 미세하게 입꼬리를 올렸다.유지는 곧바로 시선을 피했다.자신에게는 그렇게 밥을 먹으라고 잔소리하면서.정작 본인도 똑같았다.식사는 평범하게 시작됐다.회사 이야기.날씨 이야기.아버지가 요즘 시작한 운동 이야기.유지는 의도적으로 도하를 보지 않았다.그런데 신경을 안 쓰려고 할수록 맞은편에 앉은 사람이 더 잘 느껴졌다.컵을 드는 손.엄마 말에 가끔 고개를 끄덕이는 모습.그리고 자신이 좋아하는 잡채 접시가 비어갈 때쯤 아무 말 없이 접시를 유지 쪽으로 밀어놓는 행동까지.유지가 젓가락을 멈췄다.도하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국을 먹고 있었다.“이거 왜 이쪽으로 줘요?”“좋아하잖아.”“도하 씨도 먹어요.”“난 됐어.”엄마가 그 모습을 보고 웃었다.“도하는 예전부터 유지 먹는 건 잘 알더라.”유지의 손이 굳었다.도하도 잠깐 멈췄다
일요일 오전. 송유지는 평소보다 늦게 눈을 떴다. 햇빛이 커튼 틈으로 길게 들어와 있었다. 휴대전화를 확인하자 알림은 몇 개 있었지만, 채도하에게서 온 메시지는 없었다. 유지는 화면을 한참 바라보다가 이불을 걷어냈다. 어젯밤 통화가 계속 머릿속에 남아 있었다. —신경 쓰지 않으려고 했는데. —잘 안 되네. 그리고. —내가 그러면 안 될 것 같으니까. 그 말이 가장 신경 쓰였다. 그러면 안 된다는 게 뭘까. 자신에게 신경 쓰는 것? 현민을 신경 쓰는 것? 아니면. 그보다 더한 어떤 감정. 유지는 세면대 앞에 서서 찬물로 얼굴을 씻었다. “생각하지 말자.” 말은 그렇게 했지만 이미 늦었다. 도하가 하지 않은 말까지 자꾸 상상하게 됐다. 점심 무렵. 어머니에게 연락이 왔다. —오늘 저녁에 시간 되니? 도하도 온대. 유지는 메시지를 보고 한참 멈춰 있었다. 도하도 온다. 별것 아닌 문장이 심장을 괜히 빠르게 만들었다. —응. 갈게. 답장을 보내고 나서 유지는 옷장을 열었다. 평소 같으면 아무 옷이나 골랐을 텐데, 오늘은 괜히 몇 벌을 꺼냈다 다시 넣었다. 그러다 스스로 어이가 없어졌다. “엄마 집 가는데 뭘.” 결국 가장 평범한 니트를 골랐다. 평소처럼. 아무렇지 않게. 저녁 여섯 시. 유지가 집에 들어갔을 때 도하는 이미 와 있었다. 거실에서 어머니와 이야기를 나누던 도하가 현관 쪽을 바라봤다. 눈이 마주쳤다. “왔어?” 평소와 같은 목소리였다. 유지도 평소처럼 대답했다. “네.” 끝. 그런데 이상하게 어젯밤 통화 때문에 모든 게 다르게 느껴졌다. 도하가 물을 마시는 것도. 소매를 한 번 접어 올리는 것도. 자신을 잠깐 바라보는 것도. 전부 의미가 있는 것처럼 보였다. “유지야.” 어머니 목소리에 정신이 들었다. “응?” “접시 좀 가져다줄래?” “아, 응.” 유지는 부엌으로 들어갔다. 그릇을 꺼내는데 뒤에서 발소리가 들렸다. 도하였다. “뭐 찾으세요?” “물.
토요일 오후.송유지는 거울 앞에 서서 귀걸이를 한 번 만졌다.평소보다 조금 신경 쓴 옷차림이었다.너무 꾸민 것처럼 보이지 않으면서도, 그렇다고 아무 생각 없이 나온 사람처럼 보이지 않는 정도.현민을 만나는 날이었다.유지는 가방을 들다가 휴대전화를 확인했다.아무 연락도 없었다.채도하에게서도.당연했다.어제 자신이 말했다.헷갈리니까 그런 말 하지 말라고.도하는 더 이상 붙잡지 않았다.잘 만나고 오라고까지 했으니까.유지는 휴대전화를 가방 안에 넣었다.“오늘은 진짜 신경 쓰지 말자.”누구에게 하는 말인지 자신도 알 수 없었다.약속 장소에는 강현민이 먼저 와 있었다.유지를 발견한 현민이 웃었다.“오늘은 제가 먼저 왔네요.”“많이 기다렸어요?”“아니요. 한 오 분?”“그럼 다행이고요.”현민은 자연스럽게 레스토랑 문을 열어줬다.유지는 안으로 들어가며 가볍게 웃었다.편했다.현민과 있으면 어렵지 않았다.무슨 말을 해야 할지 오래 고민하지 않아도 됐고, 상대의 표정을 하나하나 읽으려고 애쓸 필요도 없었다.그게 좋은 점이었다.“지난번에 파스타 좋아한다고 했죠?”“기억했어요?”“그 정도는 기억하죠.”유지는 순간 멈칫했다.기억.별것 아닌 단어인데 또 다른 사람이 떠올랐다.—오늘은 약속 없다고 했잖아.—그걸 기억해요?—기억나니까.유지는 바로 생각을 끊었다.“유지 씨?”“네?”“뭐 드실래요?”“아, 저는 이거요.”유지는 메뉴판을 가리켰다.현민은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식사는 편안하게 이어졌다.현민은 회사 이야기를 했고, 유지는 적당히 웃었다.가끔 유리 얘기가 떠오를 때도 있었지만, 굳이 꺼내지 않았다.오늘만큼은 다른 생각을 하고 싶었다.“요즘 좀 괜찮아 보여요.”현민이 말했다.“제가요?”“처음 봤을 때는 계속 어딘가 신경 쓰는 얼굴이었거든요.”유지가 웃음을 멈췄다.“그랬어요?”“네.”현민이 물잔을 내려놓았다.“누구 기다리는 사람처럼.”유지의 손끝이 미세하게 굳었다.똑같은 말을 나현에게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