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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데이트라고 부르지 않은 약속

Auteur: 에이르
last update Date de publication: 2026-09-16 16:26:01

토요일 오전.

송유지는 늦은 아침을 먹고 소파에 기대 있었다.

어젯밤 채도하와 나눈 통화가 자꾸 떠올랐다.

—네가 옆에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한 건, 없던 말로 할 생각 없어.

그리고 자신도 대답했다.

당장은 사라지지 않겠다고.

고백은 아니었다.

사귀자는 말도 아니었다.

그런데 이상하게 그 말을 주고받은 뒤부터 마음이 조금 달라졌다.

전에는 도하에게 연락하고 싶어도 이유부터 찾았다.

밥.

엄마.

언니 물건.

회사 근처.

무언가 핑계가 있어야 했다.

이제는 그 핑계가 조금씩 필요 없어지는 느낌이었다.

그때 휴대전화가 울렸다.

채도하였다.

—오늘 뭐 해?

유지는 화면을 보고 잠깐 웃었다.

—별일 없어요.

답장은 바로 왔다.

—그럼 나와.

유지의 손이 멈췄다.

평소 같으면 ‘밥 먹자’거나 ‘근처에 있다’는 말부터 했을 사람이다.

그런데 오늘은 그냥.

나오라고 했다.

—왜요?

잠시 뒤.

—갈 데 있어.

유지는 눈썹을 올렸다.

—어디요?

—나오면 알려줄게.

—수상한데.

—안 올 거야?

유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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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죽은 언니의 남편을 사랑하게 됐다   88.같이 장을 보는 날

    일요일 오후.송유지는 채도하와 마트에 들어섰다.원래는 필요한 것 몇 가지만 사기로 했다.우유.계란.커피.그리고 유지가 좋아하는 딸기잼.그런데 카트를 끌고 매장을 돌기 시작한 지 십 분도 안 돼 물건이 하나둘 늘어났다.유지가 과자 하나를 집어 들었다.“이거 맛있어요.”도하가 카트 안을 봤다.“또 단 거.”“싫으면 안 먹으면 되죠.”“네가 먹을 거잖아.”“그럼 됐네.”유지는 그대로 카트에 넣었다.도하는 아무 말 없이 카트를 밀었다.잠시 뒤.유지가 멈췄다.“근데 잠깐.”“왜.”“이거 다 도하 씨 집에 둘 건데.”도하가 고개를 끄덕였다.“응.”“제가 너무 제 것만 사는 거 아니에요?”도하는 카트 안을 한번 봤다.과자.요거트.딸기우유.작은 과일팩.대부분 유지 취향이었다.“괜찮은데.”“왜요?”“네가 먹으면 되니까.”유지가 웃었다.“이제 냉장고도 제 취향 되는 거 아니에요?”“상관없어.”대답이 너무 빠르자 유지가 도하를 빤히 봤다.“진짜요?”“응.”“나중에 도하 씨 먹을 게 없어도?”도하가 피식 웃었다.“그럼 네 거 먹지.”*채소 코너를 지나던 중.도하가 양파를 집었다.유지가 바로 옆에서 말했다.“그건 큰 걸로.”“왜.”“작은 건 금방 쓰잖아요.”도하는 아무 말 없이 큰 봉지로 바꿨다.조금 뒤에는 유지가 두부를 집었다.도하가 말했다.“그거 말고 옆에 거.”“왜요?”“그게 더 괜찮아.”유지는 바로 바꿨다.그렇게 몇 번 주고받다 보니.유지가 갑자기 웃었다.도하가 물었다.“왜.”“우리 되게 자연스럽다.”“뭐가.”“장보는 거.”유지는 카트 손잡이에 팔을 기대었다.“각자 필요한 거 고르는 것도 아니고.”잠깐.“같이 먹을 거 고르는 것 같잖아요.”도하는 별다른 반응 없이 말했다.“같이 먹을 거 맞잖아.”유지의 웃음이 조금 커졌다.“요즘은 이런 말도 아무렇지 않게 하네요.”“사실이니까.”*계산대 앞.유지는 카트 안을 보고 놀랐다.“왜 이렇게 많아요?

  • 죽은 언니의 남편을 사랑하게 됐다   87. 처음으로 같이 고른 것

    토요일 오후.송유지는 채도하와 생활용품점에 들어섰다.원래 목적은 간단했다.도하가 쓰던 수건이 오래돼 몇 장 바꾸겠다고 했고.유지는 그냥 따라온 것뿐이었다.그런데 매장 안으로 들어온 지 십 분도 지나지 않아.둘은 수건이 아니라 컵 앞에 서 있었다.유지가 연한 회색 머그를 집었다.“이거 예쁜데.”도하가 옆에 있는 짙은 회색 머그를 들었다.“이건?”유지가 두 개를 나란히 놓았다.“세트 같아요.”도하도 잠깐 내려다봤다.“그러네.”유지는 웃었다.“우리 집에 이미 컵 있잖아요.”말하고 나서 스스로 멈췄다.우리 집.자연스럽게 나온 말이었다.도하가 바로 봤다.유지가 급하게 고쳤다.“아니, 도하 씨 집.”도하의 입꼬리가 아주 조금 올라갔다.“방금 우리 집이라고 했는데.”“실수.”“굳이 고칠 필요 있나.”유지는 컵을 괜히 다시 진열대에 내려놓았다.“아직은.”도하가 그 컵 두 개를 다시 집었다.“그럼 이건 살까.”“왜요?”“나중에 익숙해지게.”유지가 웃었다.“진짜 슬쩍슬쩍 이러죠?”“뭘.”“아무것도 아니에요.”수건을 고르는 데도 시간이 꽤 걸렸다.유지는 부드러운 재질을 만져보다 말했다.“이게 나아요.”도하가 바로 카트에 넣었다.“그걸로 하자.”“색은요?”“네가 골라.”유지는 잠깐 생각하다 두 가지 색을 골랐다.도하는 그대로 넣었다.유지가 웃었다.“도하 씨 집 물건인데 제가 너무 결정하는 거 아니에요?”“네가 쓰기도 하잖아.”대답이 너무 자연스러웠다.유지의 손이 멈췄다.“수건도요?”“자고 가면 쓰잖아.”유지는 괜히 주변을 한번 봤다.“밖에서 그렇게 말하지 마요.”“뭘.”“자고 간다는 거.”도하가 낮게 웃었다.“사실인데.”“그래도요.”유지는 카트를 먼저 밀고 갔다.그런데 입꼬리는 내려가지 않았다.침구 코너를 지나던 중.도하가 갑자기 멈췄다.유지도 따라서 섰다.“왜요?”도하는 베개 두 개가 놓인 진열대를 보고 있었다.“베개.”“베개가 왜요?”“너 지난번에 내 거

  • 죽은 언니의 남편을 사랑하게 됐다   86.치우지 않은 사진

    금요일 저녁.송유지는 퇴근하고 채도하의 집으로 향했다.비밀번호를 누르고 들어가자 거실 불이 켜져 있었다.“왔어요.”주방 쪽에서 도하가 대답했다.“응.”유지는 가방을 내려놓다가 TV장 쪽을 봤다.지난번 사진이 그대로 있었다.두 사람의 그림자 사진.그리고.자신이 도하의 뺨에 입을 맞추던 사진.정말 치우지 않았다.유지는 괜히 웃었다.“그거 아직 있네요.”도하가 주방에서 나왔다.“치우지 않는다 했잖아.”“엄마 아빠 안 왔어요?”“오늘 오신대.”유지의 움직임이 멈췄다.“오늘?”“응.”“지금?”“한 시간쯤 뒤.”유지는 바로 사진을 봤다.“도하 씨.”“응.”“그럼 저거.”도하는 아무렇지도 않았다.“왜.”“진짜 안 치울 거예요?”“응.”유지는 조금 당황했다.부모님은 이미 둘이 사귄다는 걸 알고 있었다.그래도 사진으로 직접 보는 건 다르지 않을까.특히 저 마지막 사진은.“저 조금 민망한데.”도하가 웃었다.“네가 먼저 했잖아.”“그건 사진 부스였으니까.”“그래서?”“엄마 보여주려고 한 건 아니잖아요.”도하는 잠깐 사진을 봤다.“숨길 건 아니니까.”유지는 결국 입을 다물었다.한 시간 뒤.초인종이 울렸다.유지는 괜히 자세를 고쳐 앉았다.도하가 문을 열었다.엄마와 아버지가 들어왔다.엄마는 유지가 먼저 와 있는 걸 보고 잠깐 멈췄다.“너도 있었네.”“응.”예전 같으면 그 한마디에도 긴장했을 텐데.오늘은 조금 덜했다.엄마는 가져온 반찬통을 주방에 놓았다.그리고 거실로 돌아오다.걸음을 멈췄다.유지는 바로 알아차렸다.사진을 본 것이다.엄마의 시선이 TV장 위에 오래 머물렀다.먼저 그림자 사진.그리고 옆의 사진.유지는 손끝을 괜히 만지작거렸다.도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잠시 후.엄마가 물었다.“이건 언제 찍었어?”유지가 작게 대답했다.“지난주.”엄마의 시선이 사진에서 떨어지지 않았다.“둘이?”“응.”아버지도 가까이 와서 봤다.그리고 짧게 말했다.“잘 나왔네

  • 죽은 언니의 남편을 사랑하게 됐다   85.먼저 보여준 사람

    월요일 점심시간.송유지는 카페에 앉아 휴대전화를 뒤집어 놓았다.투명 케이스 안쪽으로 채도하와 찍은 사진이 그대로 보였다.며칠 전까지만 해도 조금 신경 쓰였는데.이제는 일부러 숨기지 않았다.맞은편에 앉은 직장 동료가 사진을 힐끗 보더니 물었다.“남자친구예요?”유지는 잠깐 멈췄다가 고개를 끄덕였다.“네.”“전에 말했던 그분?”“응.”동료가 사진을 조금 자세히 보려다 웃었다.“둘이 잘 어울리는데요?”유지는 괜히 커피를 마셨다.예전 같으면 이런 말 하나에도 긴장했을 것이다.누가 알아보지는 않을까.언니와 도하를 알고 있는 사람은 아닐까.하지만 오늘은 이상하게 마음이 편했다.“고마워요.”그게 끝이었다.동료는 더 묻지 않았다.유지도 설명하지 않았다.그 짧은 대화가 오히려 좋았다.누군가에게는.그냥 평범한 남자친구였다.퇴근 후.도하에게서 메시지가 왔다.—오늘 볼래?유지는 바로 답했다.—네.잠시 뒤.—우리 집?유지는 웃었다.—또요?—싫어?—아니요.이제 ‘우리 집’이라는 말도 자연스럽게 읽혔다.물론 도하의 집이었다.하지만 자신에게도 익숙해지고 있는 곳.유지는 퇴근하자마자 그쪽으로 향했다.현관 비밀번호를 누르고 들어가자.도하는 아직 오지 않은 상태였다.유지는 신발을 벗고 거실로 들어갔다.TV장 위의 액자가 눈에 들어왔다.둘의 그림자 사진.그리고 바로 옆.처음 보는 작은 액자가 하나 더 놓여 있었다.유지는 걸음을 멈췄다.가까이 가서 확인했다.사진 부스에서 찍은 사진이었다.자신이 도하의 뺨에 입 맞추던 마지막 컷.유지의 눈이 조금 커졌다.“이걸 여기에?”그때 현관문이 열렸다.도하가 들어왔다.유지는 액자를 가리켰다.“도하 씨.”“응.”“이거 뭐예요?”도하는 너무 당연하다는 듯 말했다.“사진.”“그건 아는데.”유지는 사진을 다시 봤다.“왜 여기 뒀어요?”“두고 싶어서.”“제 얼굴 나오잖아요.”“알아.”유지는 웃음이 나왔다.“아까는 그림자만 두더니.”“그때랑 지금은

  • 죽은 언니의 남편을 사랑하게 됐다   84. 얼굴이 나온 사진

    토요일 오후.송유지는 채도하와 쇼핑몰을 걷다가 걸음을 멈췄다.“도하 씨.”“응.”유지가 손가락으로 한쪽을 가리켰다.사진 부스였다.커튼으로 가려진 작은 공간 앞에 커플들이 줄을 서 있었다.도하는 그쪽을 한번 보고 유지에게 시선을 돌렸다.“찍고 싶어?”“조금.”“가자.”대답이 너무 빨랐다.유지가 웃었다.“이런 거 안 좋아할 줄 알았는데.”“네가 하고 싶다며.”“억지로 하는 거면 안 해도 돼요.”도하는 이미 줄 끝에 섰다.“싫다고 안 했어.”유지는 결국 그의 옆에 섰다.차례가 되어 안으로 들어가자 생각보다 공간이 좁았다.유지와 도하의 어깨가 자연스럽게 붙었다.화면에 두 사람 얼굴이 함께 잡혔다.유지가 순간 조용해졌다.그동안 함께 찍은 사진은 있었다.바다.맞잡은 손.그림자.하지만 두 사람의 얼굴이 나란히 담긴 사진은 없었다.“도하 씨.”“응.”“우리 같이 찍은 사진 처음인 것 같아요.”도하도 화면을 잠깐 바라봤다.“그러네.”카운트다운이 시작됐다.첫 번째 사진은 둘 다 어색했다.유지가 화면을 보고 바로 웃었다.“이게 뭐야.”“왜.”“도하 씨 증명사진 찍어요?”“그럼 어떻게 해야 하는데.”“좀 웃어요.”두 번째 카운트다운.이번에는 유지가 먼저 도하의 팔에 손을 걸었다.도하가 유지 쪽을 내려다보는 순간 사진이 찍혔다.화면에 결과가 떴다.유지는 웃고 있었고.도하는 카메라가 아니라 유지를 보고 있었다.유지의 손이 멈췄다.“이거.”“왜.”“카메라 봐야죠.”도하가 태연하게 말했다.“봤는데.”“저 봤잖아요.”“그러네.”유지가 피식 웃었다.“다시 제대로 해요.”마지막 사진.유지는 카메라를 보다가 갑자기 도하 쪽으로 얼굴을 돌렸다.그리고 그의 뺨에 짧게 입을 맞췄다.찰칵.도하의 눈이 조금 커진 순간이 그대로 찍혔다.유지는 웃음을 터뜨렸다.“잘 나왔다.”도하가 화면을 보다가 유지 쪽을 봤다.“일부러 했지.”“네.”“말도 안 하고.”“사진은 자연스러워야죠.”도하가

  • 죽은 언니의 남편을 사랑하게 됐다   83. 먼저 와 있는 사람

    수요일 저녁.송유지는 퇴근하자마자 채도하에게 메시지를 보냈다.—저 오늘 조금 일찍 끝났어요.답장은 몇 분 뒤에 왔다.—나는 늦을 것 같아.—얼마나?—한 시간 정도.유지는 잠깐 화면을 봤다.그리고 자연스럽게 물었다.—그럼 먼저 가 있어도 돼요?보내고 나서야 조금 웃음이 났다.예전 같으면 절대 하지 못했을 질문이었다.잠시 뒤.—응. 들어가 있어.유지는 바로 방향을 바꿨다.도하의 집 앞.이번에는 비밀번호를 누르는 손이 전혀 떨리지 않았다.여섯 자리 숫자.철컥.문이 열렸다.유지는 신발을 벗으며 말했다.“다녀왔습니다.”말이 나오고 나서 스스로 멈췄다.아무도 없는 집이었다.그런데 이상하게 그 말이 너무 자연스러웠다.유지는 혼자 웃었다.“뭐야.”가방을 내려놓고 냉장고를 열었다.도하가 올 때까지 기다릴 생각이었는데, 안을 보니 재료가 꽤 있었다.계란.채소.고기.유지는 잠깐 고민하다 소매를 걷었다.“맨날 얻어먹었으니까.”오늘은 자신이 해주고 싶었다.한 시간 뒤.현관문이 열렸다.도하는 집 안으로 들어오자마자 멈췄다.주방에서 음식 냄새가 났다.그리고 유지가 앞치마를 두른 채 뒤를 돌아봤다.“왔어요?”도하는 몇 초 말이 없었다.유지가 웃었다.“왜 그렇게 봐요.”“진짜 먼저 와 있었네.”“들어가 있으라면서요.”“응.”도하는 천천히 주방 쪽으로 왔다.“뭐 했어?”“볶음밥.”“갑자기?”“배고플 것 같아서.”도하가 식탁 위에 놓인 접시를 바라봤다.유지는 괜히 자신 없어졌다.“맛없어도 먹어야 돼요.”“먹어보지도 않았는데.”“표정이.”“아직 아무 표정도 안 했어.”도하는 숟가락을 들었다.한입 먹고.조용히 또 한입 먹었다.유지가 눈을 가늘게 떴다.“말이 없는데.”“맛있어.”“진짜?”“응.”그제야 유지가 웃었다.“다행이다.”도하는 잠깐 그녀를 바라보다 말했다.“이상하네.”유지의 손이 멈췄다.“뭐가요?”“퇴근하고 왔는데.”그가 거실과 주방을 한번 둘러봤다.“네가 먼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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