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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화

作者: 잔돈부자
그 뒤 내가 지나치게 조용하다는 걸 눈치채기라도 했는지, 임진우는 힐끗거리며 내게 말을 걸어왔다. 하지만 나는 그저 덤덤하게 대꾸할 뿐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임진우의 핸드폰이 요란하게 울렸다.

메시지를 확인할 때 내 시선을 피하는 기색이 역력했지만, 나는 차창 유리에 비친 반사광으로 대화 내용을 고스란히 읽을 수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화면에는 진연아의 토끼 프로필 사진이 띄워져 있었다.

[진우야, 집에 수도관이 터지는 바람에 온몸이 다 젖었어. 좀 와줄 수 있어?]

메시지를 다 읽은 임진우의 목젖이 초조하게 위아래로 움직였다.

하지만 내가 곁에 있다는 걸 의식한 듯 황급히 핸드폰 화면을 꺼 버렸다.

그러고는 나를 향해 가식적인 억지 미소를 지어 보였다.

눈동자 한쪽에 스치듯 번지는 죄책감을 감추려는 듯이.

그 뒤 임진우는 눈에 띄게 주의가 산만해졌다.

몇 번이나 신호등을 무시하고 전속력으로 달릴 뻔하기까지 했다.

한참을 불안하게 내달리던 중, 임진우가 갑자기 브레이크를 밟았다. 그리고 미안함이 가득한 얼굴로 나를 돌아보았다.

“여보, 회사에 또 급한 일이 생겨서 가봐야 할 것 같아.”

“그냥 먼저 택시 타고 집에 갈래? 일 끝내고 바로 돌아올게. 응?”

내게 묻는 것 같았지만, 애초에 다른 선택지 따윈 없었다.

내가 대답하기도 전에 임진우는 이미 차 문의 잠금장치를 해제하고 있었으니까.

나를 차가운 길가에 쫓아내듯 내려놓은 뒤, 급하게 유턴한 차는 굉음을 내며 멀어졌다.

멀어져 가는 차량의 붉은 꽁무니만 물끄러미 바라보면서, 이게 도무지 어떤 기분인지 말로 표현할 수조차 없었다.

아마 임진우는 까맣게 잊었을 것이다. 이곳이 인적 드문 외딴 교외라는 걸.

게다가 눈까지 세차게 내리고 있어서 택시를 잡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말이다.

한때는 임진우가 나의 유일한 구원이라고 철석같이 믿었던 때가 있었다.

나를 위해 싸우다 갈비뼈 세 개가 부러진 적도 있었고, 술자리에서 나 대신 술을 마시다 위출혈로 쓰러진 적도 있었다.

내 생리 주기까지 달달 외웠고, SNS는 온통 내 사진과 사랑 고백으로 도배되어 있었다.

임진우의 친구들조차 그를 두고 ‘소연 바라기’라며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

하지만 나를 나락에서 건져 올린 구원자도 임진우였고, 나를 다시 지옥으로 밀어낸 도살자 역시 임진우였다.

물에 빠졌던 그날, 모든 건 진연아가 꾸민 일이었다.

내 손을 잡고 물속으로 끌어당긴 진연아는, 물 밖으로 나오자마자 내가 자신을 밀쳤다며 모함했다.

나는 물속에서 죽을 듯이 허우적거리며, 억울함에 눈물을 흘렸다. 하지만 돌아온 건 나를 향한 임진우의 차디찬 눈빛뿐이었다.

그리고 진연아를 향해 망설임 없이 헤엄쳐 가는 그 매정한 뒷모습뿐이었다.

임진우의 배신은 소꿉친구 임혁수의 냉담한 거절보다도 더 깊은 실망과 잔인한 아픔을 내 가슴에 새겼다.

결국 택시를 잡지 못한 나는, 매서운 눈보라를 온몸으로 맞으며 한 걸음씩 집까지 걸어서 돌아왔다.

...

집에 도착하자마자 기다렸다는 듯 진연아에게서 메시지가 날아왔다.

사진 속에는 진연아의 침대에서 깊이 잠든 임진우의 얼굴이 찍혀 있었고, 둘이 연인처럼 다정하게 찍은 사진도 수두룩했다.

[강소연, 네가 예뻐 봤자 뭐해? 대체품은 결국 대체품일 뿐이야. 너는 내가 버린 쓰레기나 주워 담는 게 딱 어울려!]

처음부터 끝까지 악의적인 도발로 가득 차 있었다.

마음의 준비는 하고 있었지만, 정작 이 추악한 진실들을 두 눈으로 마주하자 눈시울이 뜨겁게 달아올랐다.

억울함과 서러움이 순식간에 온몸을 휘감았다.

나는 마음을 다스리고 진연아가 보낸 모든 메시지를 끝까지 읽어 내렸다.

그리고 쓰라린 눈가를 문지르며 핸드폰 화면을 꺼버렸다.

그리고 돌아서서 방으로 들어간 뒤 짐을 챙기기 시작했다.

방 안 가득 찬 물건이 어찌나 많던지, 정리하는 데만 꼬박 두 시간이 걸렸다.

하지만 나는 고작 갈아입을 옷 몇 벌만 골라 캐리어에 넣었을 뿐, 나머지는 전부 타오르는 벽난로 속으로 던져 넣었다.

그 가운데에는 임진우가 손수 써 준 99통의 연애편지도 있었다.

서툰 글씨체 속에 사랑이 가득 배어 있던 종잇장들이 시커먼 불길에 타올랐다.

나를 위해 주문 제작했다던 왕관도 있었다.

공주처럼 떠받들어 주겠다던 가증스러운 약속이 담긴 물건이었다.

경매장에서 거액을 들여 낙찰 받았다던 진주도 그 안에 있었다.

그걸 주면서 검은 머리가 파뿌리가 될 때까지 내 곁을 지키겠다던 거짓 맹세를 하기도 했다.

...

나는 불을 붙여 모든 것을 흔적도 없이 깨끗하게 태워 버렸다.

위장 사망으로 임진우의 곁을 완전히 떠날 거라면, 이곳에 남아 있는 내 흔적 역시 단 하나도 남겨둬선 안 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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