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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화

Author: 낭아감자
일말의 의문을 품고 있던 정민아 역시 이 순간 마음이 따뜻해졌다.

어제 정민아도 장미와 프라하의 심장 모두 박동훈이 보낸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있었다. 오늘 박동훈이 사실대로 인정하니 더욱 확실해졌다.

어제 오전에 했던 말인데 오후에 곧바로 프라하의 장미와 프라하의 심장을 준비하다니, 박동훈이 말한 대로 행동하는 사람일 줄은 몰랐다.

금방 찾을 수 있는 선물이 아닌데, 혹시나 오래 전부터 준비했던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내가 있는 남자이기에 정민아는 이 혼사에 응해서는 안 된다는 걸 스스로 인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 순간 감동이 몰려오면서도 부끄러워졌다.

“김예훈 표정 봤어? 아주 놀라 자빠진 것 같은데, 웃겨 죽겠네! 하하하!”

이때, 정지용이 자리에서 일어서며 김예훈이 있는 방향을 가리켰다.

많은 사람들이 또 다시 웅성이기 시작했다.

김예훈의 표정은 확실히 일그러져 있었다. 무엇보다도 박동훈의 뻔뻔한 거짓말 때문이었다. 누군가 폭로하지는 않을까 하는 노파심도 없는 거짓말이다.

“박 대표님, 우리 데릴사위 표정 좀 보세요. 대표님을 때리고 싶나 본데요?”

정지용은 계속 입을 놀렸다.

“그럴 수나 있겠어? 박 대표 머리카락도 못 만질 걸? 하하하!”

“몸에 있는 거 전부 합쳐도 박 대표님 머리카락 한 가닥 만도 못 하지. 건들기만 해 봐, 우리가 가만히 안 둬!”

“왜? 아무 말도 못 하겠어? 놀라서 벙쪘어?”

정지용은 ‘하하하’ 박장대소를 했다.

“김예훈, 더 머저리 같을 수는 없어? 오늘 당신 와이프 때문에 온 사람이 있는데, 아무 말도 못하고 있잖아. 데릴사위 꼴이 말이 아니네.”

“하하하!”

사방에서 신난 웃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정민아는 부끄러움이 극에 달했다. 아직 법적으로는 부부사이이기에 김예훈이 놀림 받는 만큼 스스로도 창피했다.

오늘 밤에 이런 일이 있는 줄 진작 알았더라면 그를 데려오지 않았을 것이다.

옆에 있던 임은숙이 김예훈을 노려보며 말했다.

“아직도 화가 나나? 말 한 마디라도 잘못 놀렸다가는 큰 코 다칠 줄 알게!”

“김예훈, 한 마디도 못 하네. 장모님이 그렇게 무서워? 자, 박 대표님이 민아에게 프러포즈하는데, 소감 좀 들어보자! 동의 하는 거야? 말 좀 해봐!”

정지용은 김예훈을 가만히 둘 생각이 없었다. 오히려 김예훈에게 모욕을 주는 게 재미있는지 신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그의 말에 김예훈은 정지용을 바라보며 느긋하게 말했다.

“그래요, 그렇게 원한다면 한 마디 하겠습니다. 다른 일은 제쳐두더라도, 민아가 차고 있는 프라하의 심장은 제가 선물한 겁니다. 자신이 준 것마냥 속이지 않았으면 좋겠네요.”

그 순간, 별장 전체에 무거운 적막이 흘렀다. 모두가 마치 귀신이라도 본 것처럼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김예훈을 바라봤다.

“하하하!”

잠시 후, 누군가가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뜨리자 곧이어 장내 전체가 웃음바다로 변했다.

“하하하, 정말 웃기는 친구야! 프라하의 심장을 샀다고? 저게 얼마인지는 아는 거야?”

“예전에 저 녀석 머리가 어떻게 됐다는 말을 안 믿었는데, 지금은 믿을 수 있겠다. 어디에 머리라도 쥐어박은 게 분명해!”

“퉤! 박 대표가 보낸 선물을 자신이 보낸 것이라고 말하기는, 뻔뻔하네!”

이 가운데, 눈가가 파르르 떨리는 사람은 박동훈뿐이었다. 그러나 그는 재빨리 우습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정지용은 테이블을 치며 박장대소하면서도 김예훈을 가리켰다.

“김예훈, 너무 허풍 떠네. 너무 충격 받아서 머리가 어떻게 된 거야? 누가 믿어줄 거라 생각하는 거 아니지? 좋아, 내가 믿어 줄게. 하지만 그 물건이 어디에서 났는지 말해야 할 거야.”

“다른 사람에게 사오라고 시켰어요.”

김예훈은 담담히 입을 열었다. YE 일가 사람에게 사서 보내라고 시킨 것이었다.

“다른 사람한테?”

정지용은 웃음을 꾹 참았다.

“그럼 얼마 썼는데?”

“저에게 부탁한 일 때문에 준 선물로 친 거라 돈은 들지 않았어요.”

김예훈이 말했다.

“다른 사람이 너에게 일을 부탁해? 너에게 선물을 해?”

어느정도 진정했던 정지용은 웃겨서 숨이 넘어갈 것만 같았다.

“하하하하!”

모두 로비가 떠나가라 웃었다.

김예훈이 너무 웃겼다.

그에게 부탁을 하고 선물을 보낸다고? 머저리 같은 김예훈에게 누가 부탁할 일이 있겠는가? 또 그런 부탁을 어떻게 들어줄 수 있겠는가!

“그럼 너에게 무슨 일을 맡겼는지 들어나 보자.”

정지용은 조소 가득한 표정으로 말했다.

“투자를 부탁했습니다.”

김예훈이 말했다.

“YE 투자 회사에 투자해달라고 부탁했죠.”

“풉—.”

정지용은 침까지 뿜어져 나왔다.

“김예훈, 네가 YE 투자 회사와 엮일 수 있을 거라 생각해? 잠이 덜 깼어?”

이 웃긴 장면을 구경만 하던 박동훈이 눈을 크게 뜨며 김예훈을 쳐다봤다. 하지만 얼굴에는 조소가 가득했다.

“우리 회사의 자금 사용을 결정할 수 있다는 뜻입니까? 밥도 마구잡이로 먹더니, 말도 마구잡이로 하네요. 당신 같은 쓸모 없는 데릴사위가 우리 YE 투자 회사의 이름을 함부로 입에 올렸을 때 닥칠 결과는 생각 안 하나 봐요?”

“결과? 박동훈 씨, 당신 같은 중간관리자가 YE 투자 회사라는 이름을 내걸고 여기서 사람들을 속였을 때 닥칠 결과는 생각 하지 않습니까?”

김예훈의 눈빛이 차갑게 식었다.

“보는 눈 하나도 없고, 머저리는 머저리네요. 회사에서 제가 어떤 위치인지 우물 안 개구리처럼 생각하는 당신이 알 수나 있겠어요? 전YE 투자 부서의 프로젝트 부장입니다. 1조원 투자 중에서 3분의 2가 내 손을 거쳐 간다고요.”

박동훈은 피식 웃으며 답했다.

“이게 무슨 뜻인 줄 압니까?”

박동훈의 표정이 매섭게 변했다.

“남해시에 있는 수많은 일가와 기업의 생사가 내 말 한 마디로 결정된다는 뜻입니다!”

정지용은 흠모하는 시선으로 박동훈을 쳐다보다 김예훈을 가리키며 욕을 내뱉었다.

“김예훈! 아무 것도 모르는 게 여기서 함부로 입을 놀려? 우리 정 씨 가문 망신은 다 시키네!”

“박 대표님은 YE 투자 회사 인재라고! 너 같은 데릴사위가 의심할 수 있는 사람인 줄 알아?”

“김예훈, 박 대표님에게 정중히 사과하는 게 좋아. 그렇지 않으면 사과로 끝내지 못할 거야!”

“박 대표님, 저런 놈이랑 말도 섞지 마세요. 대표님이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지 전혀 이해하지 못하네요!”

“박 대표님이 있으니 우리 정 씨 가문이 프로젝트 투자금을 쉽게 받을 수 있는 게 아니겠어?”

“…….”

잘 보이려 알랑거리는 사람들의 모습에 김예훈은 웃음이 터져 나왔다.

“이번 1조원 투자는 전부 새로운 대표 이사가 결정한다고 들었는데, 중간관리자 따위가 개입할 수 있겠습니까?”

박동훈은 전혀 개의치 않는 듯한 표정이었다.

“당신 같은 머저리가 우리 회사 내부 사정에 대해 뭘 안다고 허풍이죠? 내가 바로 새로운 대표이사의 직속 간부입니다. 그의 신임을 얻고 있고요!”

사실 박동훈은 새 대표이사의 얼굴도 본 적이 없다. 하지만 정 씨 일가 앞에서 유난 떠는 데는 문제가 없다. 그의 말을 의심할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김예훈은 콧방귀가 새어 나왔다.

“새 대표이사의 신임을 얻었다?” 당당하게 거짓말을 하는군요.”

박동훈은 당황했다. 정 씨 사람들은 의심조차 하지 않는데, 데릴사위라는 자가 무언가 알고 있는 것처럼 행동하니 말이다.

김예훈을 몇 번 훑었다. 자신의 새 대표이사를 알 턱이 없다고 확신한 박동훈은 냉정하게 답했다.

“우리 새 대표이사님을 아는 것처럼 말하네요? 어르신도 하지 못할 말을 어디서 나온 자신감으로 당신 같은 데릴사위가 하는 거죠?”

“박 대표, 저 데릴사위 놈이 하늘 높은 줄 모르고 떠들어대는 거야. 신경 쓰지 마.”

“저런 말을 바로 ‘개소리’라고 하죠. 말씨름할 필요 없어요.”

“쯧쯧, 저 녀석 표정 좀 보세요. 스스로 진짜 잘났다고 생각하나 봐요.”

“그만 해라!”

정동철이 이맛살을 구기며 김예훈에게 소리쳤다.

“김예훈, 여기서 네가 말할 자격은 없다. 네가 정말 뭐라도 되는 줄 아나? 구석으로 썩 꺼져라!”

“맞아. 구석으로 꺼져! 여기서 망신 주지 말고!”

“우리 정 씨 가문 체면은 저 데릴사위가 다 깎네!”

박동훈은 씩 웃었다. 그는 사람들에게 손사래를 치며 입을 열었다.

“이제 그만 괴롭히고 오늘 기회를 한 번 드리죠.”

“새 대표이사가 누구인지 맞춘다면 당신에게 사과할게요. 하지만 말 못하면 오늘 당장 정 씨 일가에서 쫓아낼 겁니다!”

박동훈은 이미 김예훈을 문밖으로 쫓아낸 장면을 보기라도 한 듯한 태도였다. 오늘 막 취임한 새 대표이사는 베일에 감춰진 인물이다. 자신도 모르는 대표이사가 누군지 데릴사위가 알 리 없다.

“박 대표님은 마음씨도 넓으시네요. 처가에 붙어 사는 것 말고 아무것도 할 줄 모르는 머저리에게 기회를 주다니, 우리 가문 체면까지 살려주시는군요!”

“김예훈, 적당히 하지 못해? 당장 박 대표님에게 무릎 꿇고 빌어!”

“네가 뭔데 입을 놀려!”

임은숙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김예훈을 향해 소리쳤다.

“누가 여기서 나서라 그랬어? 네가 뭐라도 되는 줄 아니? 여기서 입을 놀리고 말이야. 당장 나가!”

하하하!

주위에 있던 사람들 모두 웃음 참기 바빴다. 장모까지 편을 들어주지 않는데, 나가 죽는 게 낫겠다.

예전이라면 김예훈은 분명 조용히 사과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순간만큼은 김예훈의 입꼬리가 위로 올라갔다. 임은숙을 똑바로 바라보는 그의 눈빛이 서늘하게 느껴졌다.

정민아는 이상함을 감지했다. 결혼한 지 3년이 되었지만 약해 빠진 김예훈이 갑자기 낯설게 느껴질 줄은 몰랐다.

김예훈은 몸을 곧추세우며 장내 전체를 빙 둘러보았다. 비열하기 짝이 없는 정 씨 일가의 표정에 정말 참을 수가 없었다.

그는 숨을 깊게 들이마시며 입을 열었다.

“YE 투자 회사의 새 대표이사가 누군지 알고 싶은 거 아니에요?”

“좋아요. 제가 알려드리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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