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전 사람들은 여전히 못 들은 것처럼 차가운 표정이었다.추하린은 본능적으로 동생을 보호하려고 몸을 날렸다.“그만해! 그만하라고!”쨕!추하린이 말을 끝내기도 전에 허성빈이 앞으로 다가와 추하린의 멱살을 잡더니 다른 한쪽 손으로 그녀의 뺨을 때렸다.“이년이. 무슨 자격으로 여기서 소리를 지르고 난리야. 어리석은 너때문에 우리 허씨 가문에서 본 손해가 2조 원을 넘는다고! 내 동생이 너랑 하룻밤 자겠다는데 그게 뭐 어때서. 감히 반항해? 죽고 싶어?”허성빈은 또 추하린의 뺨을 연속으로 때렸다. 추하린은 얼굴에 뺨자국이 나 있는 채로 아무 소리도 내지 못하고 가만히 있었다.“그만해!”김예훈도 허성빈이 용전에서 난동을 부릴 줄 몰랐는지 표정이 일그러지고 말았다.쨕!허성빈은 또 추하린의 뺨을 때리더니 냉랭하게 말했다.“김예훈, 이 둘 다음으로 네 차례야! 여기가 어떤 곳인지 알아? 진주·밀양 용전이라고. 간단히 말해서 이곳에서는 내 말이 곧 법이라고! 넌 그냥 가만히 지켜봐야 할 거야. 움직였다간 바로 죽여버릴 거라고!”허성빈의 손짓하나에 옆에 있던 일곱, 여덟 명의 보디가드들이 김예훈에게 총구를 겨누면서 협박했다.김예훈이 차가운 표정으로 말했다.“그만하라고 했을 텐데? 저 두사람을 한 번만 더 건드렸다간 병신으로 만들어 버릴거야!”“그만하라고? 그럴 자격이 있다고 생각해? 이곳이 어딘 줄 알고. 여긴 진주·밀양이란 말이야. 내 구역에서 무슨 자격으로 나한테 시비 거는데?”허성빈은 눈에 뵈는 것이 없었다.도박왕 허순재 앞에서만 얌전했지 지금은 아무도 막을 자가 없었다. 이때 또 발로 추하린의 머리를 걷어차는 것이다.“때렸는데 뭐 어쩔 건데? 용전에서 이방인 주제에 무슨 짓을 할수 있는지 한번 지켜봐야겠어. 함부로 움직였다간 바로 총으로 쏴버릴 거야. 얘들은 그저 허씨 가문의 종일 뿐이야. 천하디천한 목숨이라고. 너를 죽이고 알아서 자살해버리면 나를 탓할 사람이 없겠지?”허성빈은 또 한 번 옆에 있던 추문성을 발로 걷어찼다.추문성은 머리
퍽!김예훈은 아무 말 없이 허성빈의 멱살을 잡고는 그의 허리춤에 있던 총을 뺏었다.그러고는 바로 그의 왼쪽 다리를 향해 방아쇠를 당겼다.거대한 소리와 함께 총알은 허성빈의 허벅지를 관통하고 말았다.이 모습에 사람들은 넋이 나간 채로 믿기지 않는 듯한 표정으로 김예훈을 쳐다보았다.김청미마저도 이순간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이런 장소와 상황에서 앞뒤를 가라지 않고 방아쇠를 당긴다고? 미친 거야 아니면 정말 믿는 구석이 있어서 저러는 거야.’사람들은 김예훈이 정말 대단하다고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다른 사람들은 용전에 들어오면 벌벌 떨면서 무릎부터 꿇으려고 하는데 김예훈은 눈에 뵈는 것이 없이 기고만장했기 때문이다.추문성이 이때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진주와 밀양에서 김예훈을 막을 자가 없다는 사실을 진작에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추하린은 그대로 제자리에 굳어져 버러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이런 제기랄!”잠깐의 침묵 이후, 김병욱의 손짓하나에 한 무리의 보디가드들이 덮쳐왔다.이들은 김예훈에게 총구를 겨냥한 채 살기를 뿜어내면서 언제든지 방아쇠를 당기려고 했다.허성빈은 아파서 부들부들 떨다 일그러진 표정으로 냉랭한 미소를 지었다.“이런 젠장. 감히 나한테 총을 쏴? 넌 죽었어. 용전 같은 곳에서 다들 보는 눈앞에서 내 몸에 손을 대다니. 아무리 용문당 회장이라고 해도 소용없어. 우린 똑같이 널 죽여버릴 수 있다고.”허성빈은 용전 같은 곳에서 사람을 인질로 삼는 행위는 큰 죄를 지은 거나 다름없다고 생각했다.‘그런데 그것도 모자라 총을 쏴? 정말 죽고 싶어서 환장했네!’어떤 사람은 자기가 대단한 줄 알고 진주·밀양을 휩쓸려고 왔다가 결국 목숨을 잃는 일이 많았다.김예훈 역시 그들처럼 자기 주제도 모르는 그런 인간이라고 생각했다.“내 사람을 다치게 했으니 그 대가를 치러야지.”김예훈은 표정이 차갑기만 했다.“한 번만 더 내 사람들을 건드려 봐. 병신으로 만들어 버릴 거니까.”“김예훈, 총 내려놓고 도련님 풀어줘. 그러면 목숨
김예훈은 냉랭한 표정으로 총구를 허성빈의 머리에 갖다 댔다.지옥과 한층 더 가까워진 허성빈은 멈칫하고 말았다.김예훈은 이미 총을 장전한 상태였기 때문에 실수로 방아쇠를 당기든 의도적으로 당기든 모두 그의 목숨을 앗아갈 수 있었다.“잠깐만.”얼굴이 창백해진 허성빈은 본능적으로 그를 말렸다.비록 여전히 기세가 하늘을 찌르는 모습이었지만 죽는 것이 두려운 모양이었다.특히 막무가내인 김예훈과 같은 독한 사람 앞에서는 꼼짝도 하지 못했다.허성빈은 사실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다.기껏 해 김예훈과 함께 죽으면 그만이라고 생각해서 그를 굳이 말리려고 하지 않았다.그런데 총구가 머리에 닿인 순간, 사실 죽는 게 두려웠던 것이 아니라 그저 다른 사람의 목숨에 관심이 없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생사의 갈림길에 섰을 때, 그 누구보다도 죽는 것이 두려운 사람이었다.자존심이 허락하지 않는 허성빈은 변명이라도 하고 싶었지만 입도 뻥긋하지 못했다.김예훈은 그를 무시한 채 냉랭한 표정으로 사람들을 쳐다보면서 말했다.“길 비키세요.”용전 사람들은 움찔할 뿐 길을 비키는 대신 김예훈 일행에게 총을 겨눴다.이에 김예훈은 피식 웃고 말았다.“허성빈 다리에 있는 상처가 작은 상처도 아닌데 10분 내로 응급처치하지 않으면 출혈 과다로 죽을 수도 있어. 허성빈이 용전에서 어떤 역할을 맡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진주·밀양에서 내로라하는 사람들이 용전에서 큰 직책을 맡고 있겠지? 간단히 말해서 다 한편이겠지? 뭐, 허성빈이 죽든 말든 상관없다는데 나도 내 알 바가 아니야. 하루 종일 시간 낭비했는데 까짓거 더해보지, 뭐.”김예훈이 담담하게 한 말에 용전 사람들은 눈가를 파르르 떨었다.들키고 싶지 않은 비밀을 단번에 알아챈 것도 모자라 허성빈의 생사를 가지고 위협까지 하니 두렵기 그지없었다.김병욱의 안색은 말이 아니었다.허씨 가문은 진주·밀양에서 역할이 아주 중요했다. 그런데 그 가문의 후계자가 이곳에서 죽어버리면 어떤 대가를 치러야 할지 몰랐다.이때, 김병욱이 이를
김예훈이 담담하게 말했다.“그러면 끝까지 가보든가. 네가 먼저 나를 죽일 수 있을지, 아니면 내가 먼저 너희들을 죽여버릴지 지켜보자고.”“김예훈, 네가 지금 무슨 짓을 하고있는지 알기나 해?”김청미는 노파심에 거듭 충고를 보냈다.“허 도련님은 신분이 심상치 않은 분이야. 우리 진주·밀양 용전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시는 분이라고. 허 도련님을 죽였다간 참담한 대가를 치러야 할 거야. 그리고 네 주위에 있는 사람들도 너의 이 행동 때문에 따라서 대가를 치러야 할 것이고. 그래도 우리 용전에서 사람을 죽이겠다고? 정말 그랬다간 총알받이 신세가 될 거야. 그런데 발버둥 쳐봤자 무슨 의미가 있겠어. 밀양 국제공항에서 테러를 조직한 혐의를 벗어나지 못하면 네가 끔찍한 살인마라는 사실이 밝혀질 건데.”김청미는 한마디 한마디 내뱉으면서 김예훈을 설득하려고 했다.“너 자신은 아니더라도, 주위 사람을 생각해야지. 저 둘도 너랑 같이 죽고 싶겠어?”김예훈은 차가운 표정으로 김청미를 쳐다보고 있었다.“됐어. 쓸데없는 말 그만해. 네가 인정하든 안 하든 진주·밀양 용전은 이미 변질됐어. 사건을 조사할 자격이라도 있다고 생각해? 무슨 자격으로 다른 사람을 용의자라고 단정 짓는 건데. 그리고 지금 왜 이렇게 됐는지 몰라서 그래? 일부러 나를 자극하려고 이 사건과 아무런 연관도 없는 김병욱과 허성빈을 불러와서 문성이랑 하린 씨한테 손대게 한 거잖아. 내가 참지 못하고 너희한테 손대는 순간 용전에서 나를 처리할 핑계가 생기는 거겠지. 김씨 가문에 있을 때보다는 똑똑해졌어. 그런데 내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잊었어?”김청미는 표정 변화 하나 없었다.“김예훈, 그런 쓸데없는 말 해 봤자 의미 있다고 생각해? 그만하든가, 허 도련님을 죽이고 끝까지 가보든가. 그런데 우리한테는 증거도 있고 사람도 많은데 네가 어떻게 우리를 이길 수 있겠어. 그럴 자격이나 있다고 생각해?”김병욱도 말했다.“김예훈, 이렇게 된 이상 그만해. 그러면 내가 목숨 정도는 구제해 줄게.”허성빈은 눈에 뵈는
한 무리의 사람이 덮쳐오자, 김청미 등은 표정이 확 굳어버리고 말았다.김예훈이 아무 생각 없이 온 줄만 알았는데 말이다.손에 총 들고 허리춤에는 당도를 한 병사들이 하나둘씩 차에서 뛰어내리자 덜컥 겁이 났다.‘경기도 국방부? 왜 진주에 나타난 거지?’비록 진주와 밀양도 경기도 국방부 관할이었지만 평소에는 이 두 곳을 제외한 곳만 관리했었다.천군만마가 나타나 진주·밀양 용전을 쓸어버리는 장면은 정말 넋을 잃고 보게 되었다.김청미가 어리둥절해 있을 때, 제일 앞에 있는 차의 조수석 문이 열리더니 전신 무장한 경기도 국방부 당도 부대 수령인 박인철이 차에서 내렸다.박인철은 싸늘한 표정으로 오른손을 허리춤에 있는 당도에 올려놓은 채 살기가 가득한 기운을 뿜어냈다.김청미가 표정이 확 변하더니 말했다.“박인철, 지금 뭐하는 거야. 국방부가 우리 용전을 들이닥칠 자격이 있다고 생각해?”박인철은 여전히 담담한 표정이었다.“전체 경기도가 우리 관할구역인데 내가 못 올 곳은 아니지.”“박인철, 당도 부대 병사들을 끌고 와서 무슨 짓을 하려는 거야.”김청미가 진지하게 물었다.“역모라도 하겠다는 거야?”“역모?”박인철은 피식 웃고 말았다.“우리 당도 부대는 대한민국 전국 9대 군부대 중의 하나로써 유라시아 전쟁에서 5대 강국을 쓸어버리고 대한민국을 위해 헌신한 부대야. 그런데 우리가 역모를 꾸민다고? 지금 국방부를 어떻게 보는거야.”“그런데 왜 병사들을 이끌고 진주·밀양 용전을 찾아온 건데? 관할권을 따지고 봤을 때 국방부는 용전 구역을 침입하면 안 되는 거 몰라?’김청미의 표정은 말이 아니었다.“그것도 모자라 밀양 국제공항을 아수라장으로 만들어 버린 김예훈을 위해 함부로 병사를 빼돌려? 미친 거 아니야? 내 한마디면 너희들을 죽여버릴 수 있는 거 몰라? 그래도 경기도 국방부는 아무 말도 못 할 거야.”당도 부대 무신으로 이름을 날렸다고 해도 박인철은 결국엔 국방부 소속이었다.상사의 명령 없이는 함부로 병사를 빼돌려서는 안 되었다.간단히 말
간단히 말해서 박인철이 진주와 밀양에 있는 동안 모든 일은 그의 결정을 따라야 했다.진주·밀양 1인자가 와도 소용없을 정도로 말이다.김예훈은 어이가 없었다. 그저 국방부 대장관인 용상국에게 당도 부대를 며칠만 쓰자고 했는데 전시 상태로 들어가는 명령장을 가지고 올 줄 몰랐다.“박인철, 너무하는 거 아니야?”김청미의 표정은 차갑기 그지없었다.“전시 상태로 들어간다고 해도 우리 용전은 함부로 막 들어와도 되는 곳이 아니야. 용전을 함부로 쳐들어왔다간 경기도 국방부 부사령관인 원경훈이 와도 그 대가를 치러야 할 것이라고!”박인철이 담담하게 말했다.“명령장에 부 사령관님 사인이 있잖아. 부 사령관님 사인이 없이 내가 전체 당도 부대 병사를 끌어왔을 것 같아? 김청미, 네가 잊고 있을수 도 있겠지만 네가 명령장을 본 순간부터 이곳은 전시 상태로 들어간 거나 마찬가지야. 지금부터는 내 말을 들어야 한다고. 아무리 불만이 많고, 화가 나고, 고소하고 싶어도 전시 상태가 끝나야 가능한 일이야. 그러니까 김청미, 총 내려놔.”“박인철!”김청미는 눈을 부릅뜨고 있었다.“김예훈이랑 사이가 좋다는 거 알아. 그런데 고작 김예훈 하나 때문에 우리 용전도 모자라 진주·밀양 김씨 가문과 등을 돌리겠다고? 그럴 가치가 있다고 생각해? 아무리 국방부 무신이라고 해도 세상 모든 일을 무력으로 진압할 수 없다는 거 알아야지. 권력을 남용하면 당도 부대에서 어떤 대가를 치러야 하는지 알아? 생각 좀 하고 움직이면 안 되냐고.”박인철이 피식 웃었다.“대가? 그러면 용전에서 권력을 남용해서 억울한 사람한테 죄를 뒤집어씌우면 어떤 대가를 치러야 하는지는 알고? 진주·밀양 용전 책임자로서 내부 질서를 흩트려 놓고, 또 몇번이고 부산 용문당 회장을 암살하려고 했던 대가는 뭔지 아냐고. 김청미, 실력을 따져보면 널 죽이는 건 순식간의 일이야. 도리를 따진다고 해도 충분히 널 짓밟아 버릴 수 있는 거야.”박인철이 대놓고 김예훈의 편을 들자, 김청미 일행은 표정이 일그러지고 말았다.도
“너희 수장님?”박인철은 표정이 차갑기만 했다.“유라시아 전쟁에 나갔었고, 원경훈 부사령관님이랑 아는 사이라면 우리 김 세자님이 어떤 존재인지도 알고 있을 텐데? 어디 다시 전화해서 감히 우리 세자님을 건드릴 수 있는지 물어봐. 계속 실수하기 전에.”김청미는 김예훈의 진짜 신분이 짐작되는지 움찔하고 말았다. 경기도 김 세자, 용문당 회장, 그 어떤 신분을 내놔도 다른 사람들이 깜짝 놀랄 정도였다.그런데 김청미는 곧 평정심을 되찾고 냉랭하게 말하는 것이다.“박인철, 네가 무슨 말을 하고 싶어 하는지 알아. 그런데 여긴 부산이 아니라 경기도라고. 잊었어? 여긴 진주라고. 김 세자면 어떻고 또 용문당 회장이면 어떤데? 너 같은 병신만이 김예훈 때문에 용전이랑 맞서는 거지. 우리 앞에서는 그깟 두 가지 신분은 아무것도 아니야. 내가 말해주는데, 너 박인철 말고 원경훈 부사령관님이 부대를 끌고 온다고 해도 우리 용전 털끝 하나 건드리지 못해.”“그러면 어디 해보든가!”이때 박인철의 손짓하나에 당도 부대 병사들이 허리춤에 있는 당도를 만졌다.살기가 뿜어져 나오는 것이 소름 끼칠 정도였다.어차피 진퇴양난인 김청미는 믿는 구석이 있다고 박인철을 무시한 채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김예훈을 쳐다보았다.“김예훈, 1분만 더 줄게! 허 도련님을 놔줘! 아니면 바로 총으로 쏴버릴 거야. 당도 부대의 당도가 빠른지, 아니면 우리 용전의 총알이 빠른지 한번 해보자고!”김청미의 말이 끝나기 바쁘게 순식간에 온 마당에 제복을 입은 남녀들이 손에 총을 쥔채 살기가 가득한 모습으로 당도 부대 병사들 앞에 나타났다.비록 지금 전시 상태라고 해도 용전은 이럴만한 힘과 용기가 있었다.김예훈은 오른손으로 서서히 방아쇠를 당기기 시작했다.그의 성격을 잘 알고있는 김병욱은 표정이 확 변하더니 이대로 갔다간 허성빈이 죽어버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김청미 역시 일그러진 표정으로 진지하게 말했다.“김예훈, 시간이 많지 않아. 10, 9, 8...”바로 이때, 입구 쪽에서 자동차
두둥!청천벽력과도 같은 소식에 사람들은 정신마저 혼미해졌다.‘당주? 용문당 당주 용인주?’상대방의 신분이 확인되자마자 현장은 고요해지고 말았다. 경기도 국방부 제1 무신인 박인철마저도 용인주한테서 심상찮은 기운을 느꼈다.손가락 하나라도 움직이면 모든 것이 부서질 것만 같았다.박인철마저도 이런데 다른 사람들은 어떻겠는가.용인주의 눈빛은 날카롭다 못해 그와 시선을 마주칠 수 있는 사람이 없었다.“내가 나이를 먹어서 귀가 어두워졌나. 누가 총으로 김 회장님을 쏴 죽이겠다고 했다면서?”용인주는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김청미 일행을 쳐다보면서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재밌군. 내가 자리를 비운 사이 누가 우리 용문당 사람을 매수해서 우리 제36대 회장님을 죽여버리겠다고 했다니. 용전에서 나, 용인주를 무시하는 거야?”동네 아저씨가 넋두리하는 것 같아 보여도 하는 말마다 가시가 돋쳐있었다.김청미와 김병욱은 눈가를 파르르 떨더니 호흡마저 가빠졌다.말할 용기가 없는 건지, 아니면 용인주와 말할 자격이 없다는 걸 알고 있는 건지 몰랐다.특히 김청미는 심장이 쿵 내려앉는 느낌이었다.오늘 김예훈을 구속시켰던 건 믿는 구석이 있어서였다.얼마 전에 진주·밀양 안동 김씨 가문의 차기 수장인 김현민이 용전에서 떠오르는 무신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대한민국에서 가장 젊은 무신일 뿐만 아니라 자칭 실력이 가장 강한 무신이라고 했다.일간에는 김씨 가문의 한 젊은이가 대한민국 9대 국방부의 총사령관을 곧 맡게 된다는 소문도 있었다.그 사람은 바로 김현민이라고 믿었던 것이다.심지어 김현민이야말로 진정한 당도 부대 총사령관이라고 생각했고, 일전에 나타났던 총사령관이라는 사람은 김현민의 신분을 도용한 거라고 생각했다.김현민은 진중하고 마음이 넓은 사람이라 이런 것을 따지지 않았다.경기도에서 김예훈이 그의 신분을 도용했을 때도 가만히 있었는데 말이다.그런데 그렇다고해서 김현민을 짓밟아도 된다는 말은 아니었다.진주·밀양 안동 김씨 가문의 차기 수장, 용전 무신,
빅토리아 항구 사무실 안.김현민은 이제 막 자리에 앉은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갑자기 핸드폰이 울렸다.그는 전화를 받는 순간 표정이 변하더니 결국 일그러지고 말았다.“왜? 이번 계획도 실패한 거야?”옆에 있던 김서하가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김현민은 어두워진 표정으로 미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계획에 실패한 것도 모자라 거미파 킬러가 박연서한테 잡혔다고 하네요. 그런데 그 킬러가 현재 혼수상태에 빠져서 아직 뭘 알아낸 건 없나 봐요. 박연서가 이미 수장님께 전화해서 심층 심문할만한 사람을 보내라고 했대요. 시간만 충분하다면 무조건 저희를 찾아낼 수 있을 거예요. 비록 증거는 없지만 이 또한 골치 아픈 일이 아니겠어요? 이 일이 소문이라도 나면 제가 수장 자리에 앉지 못하게 될 수도 있어요.”김현민은 일이 이렇게 복잡해질 줄 몰랐는지 이마를 문질렀다.김예훈 암살에 실패한 것도 모자라 박연서 암살마저 실패했기 때문이다.이 순간 그는 자기 실력과 능력이 의심될 정도였다.김서하도 이 말을 듣고 소름이 끼쳤다가 잠시 후에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현민아, 어떻게든 그 킬러를 무조건 죽여야 해. 죽이진 못하더라도 우리가 잡아 와야 해. 아니면 정말 엄청난 골칫거리가 될 수도 있어.”“저도 알고 있어요.”김현민은 한숨을 내쉬면서 뒷짐을 쥐고 걸어가 금고를 열어 암호화된 핸드폰을 꺼냈다.비밀번호를 입력하고 지문인식과 홍채인식을 마치자 신속히 통화가 연결되었다.이때 전화기 너머에서 다소 차가운 목소리가 들려왔다.“무슨 일이야.”김현민이 냉랭하게 말했다.“방금 들은 소식인데 거미파 킬러가 안동 김씨 가문 안주인 암살에 실패했대. 거미파가 또 다른 음모를 꾸미고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그 킬러를 데려와야 해. 난 다른 사람이 이것을 내 약점으로 나를 모함하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어.”상대방은 잠시 침묵하다 담담하게 말했다.“김현민, 잘 기억해. 이번이 네가 마지막으로 안동 김씨 가문 차기 수장의 신분으로 나한테 명령한다는 거. 나도 최선을 다하겠
“김현민이요.”박연서는 이번에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었다.“전체 안동 김씨 가문에서 저한테 손댈만한 기회와 그럴만한 자격이 있는, 그리고 제가 눈치채지 못하게 할 수 있는 사람은 오직 김현민뿐이에요. 그런데 이렇게 저를 죽이지 못해 안달나 있을 줄은 몰랐네요. 제가 곧 호적상으로 엄마가 될 텐데 말이에요.”김예훈이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그러니까 제가 저번부터 김현민은 수장 자리에 앉을 자격이 없는 사람이라고 했잖아요.”박연서가 담담하게 말했다.“그렇게 단정 지을 수만은 없어요. 제가 십 년 전 사건을 다시 들추기로 한 이상 많은 이들의 이익을 건드릴 수밖에 없어요. 김현민은 물론 다른 사람들도 제가 죽기를 바랄 거예요.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들은 저를 죽이고 싶어도 제가 무서워서 차마 건드리지 못할 거예요. 그들이 원하든 원하지 않든 저는 어차피 아직은 안동 김씨 가문 수장의 아내이자 서열 2위니까요. 이 많은 사람 중에 저한테 손댈만한 사람은 얼마 없어요. 그리고 김현민은 그중에서 단언컨대 제일 겁 없는 사람이고요.”김예훈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그러면 이번 사건을 통해 십 년 전 사건을 주도한 사람이 김현민이라고 추정할 수 있는 거예요?”박연서는 미간을 찌푸리더니 한참을 머뭇거리다 말했다.“김현민은 그때 당시 겨우 열네 살에 불과했어요. 그 어린아이가 이런 사건을 도모할 수는 없잖아요. 김현민과 얽히긴 했겠지만 뒤에서 누군가가 부추긴 것이 틀림없어요. 예를 들어 큰아주버님인 김태훈 씨나 막내 아가씨 김서하 씨말이에요. 형제들이 연합해서 꾸민 일이라고 해도 불가능할 건 없죠.”김예훈은 한숨을 내쉬며 미간을 문질렀다.“비록 저한테는 그렇게 대수롭지 않은 일이지만 사모님한테는 사방이 적이네요.”박연서가 또 고개를 흔들며 말했다.“십 년 전 사건에 참여한 사람은 이번에 저를 다시 건드리지 못할 거예요. 함부로 움직여봤자 눈에 띌 수밖에 없거든요. 그래서 정말 움직일 수 있는 사람은 오직 단 한 명. 바로 김현민이겠죠.”박연서는 감탄하기
쨍그랑.김예훈이 찻잔을 던지는 순간, 여자 부하는 본능적으로 한쪽으로 몸을 피했다.이어 본능적인 행동 때문에 신분이 드러났음을 깨달은 그녀는 표정이 차가워지고 말았다.이 순간, 그녀는 앞뒤를 가리지 않고 은침 무더기를 김예훈이 있는 곳으로 던졌다.김예훈은 차가운 표정으로 냅킨으로 그 모든 은침을 받아냈다.그 틈을 타 여자 부하는 몸을 낮추더니 어느샌가 손에 칼을 들고 있었다.그녀는 굴러서 박연서 앞으로 다가오더니 그녀의 목에 칼을 대려고 했다.피융. 피융. 피융.하지만 칼을 드는 순간 겉보기에는 힘이 전혀 없어 보이는 박연서가 어느새 손에 총을 쥐고 있었다.박연서가 무심한 듯 총을 쏜 것 같아도 여섯 발 모두 그녀의 몸에 박혔다.여자 부하는 잠시 몸부림치다 열국 일그러진 표정으로 숨을 거두고 말았다.그녀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겉보기에는 힘없어 보이는 박연서가 도대체 어디서 총을 꺼냈는지 말이다.“조사해봐. 가족 모두 한 명도 빠짐없이.”한 무리의 안동 김씨 가문의 보디가드들이 달려들어 오는 가운데, 박연서는 휴지로 손가락을 닦으며 아무렇지 않게 명령했다.“오늘 접촉했던 사람 모두. 개 한 마리라도 절대 놓치지 말고 철저히 조사해. 과연 누구를 접촉했는지, 또 누가 명령을 내렸는지 알아야겠어. 안동 김씨 가문의 별장에 반년이나 잠복한 걸 보면 반년 전부터 누군가가 나를 죽이려 했던 모양이야.”박연서의 명령에 따라 한 무리의 보디가드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아마 진주·밀양에 곧 피바람이 불지 않을까 싶다.곧이어 시체는 치워졌고, 식탁도 말끔히 정리되었으며 공기 중에는 은은한 향기마저 감돌았다.직접 두 눈으로 보지 않았다면 누가 방금 이곳에 암살 사건이 벌어졌다고 믿을 수 있겠는가?김예훈은 박연서에게 한 수를 둔 것이 꽤 괜찮은 선택이었다는 생각에 그녀를 흥미롭게 쳐다보았다.적어도 상상을 초월했기 때문이다.자신만의 생각에 잠겨 보이차를 마시고 있던 김예훈이 웃으며 말했다.“사모님, 도대체 어떤 사람이 이런 중요한 순간에
김예훈이 그 모습을 보더니 또 피식 웃었다.“이번 일을 겪은 것도 사모님께는 좋은 일인가 봐요. 조심스러워졌네요.”박연서가 말했다.“한 번 실패를 겪고 나면 경험이 생기는 거죠. 지금도 예전처럼 살았다면 어떻게 죽게 될지도 몰랐을 거예요. 제가 십 년 전 사건을 밝히려고 했을 때부터 저를 죽이고 싶은 사람이 많아졌을 거예요.”이 말에 김예훈은 의미심장한 표정을 지었다.이는 십 년 전 그 사건에 연루된 사람이 많다는 뜻이었기 때문이다.심지어 진주·밀양 두 도시 전체가 얽히고설켜 있을지도 몰랐다.창밖 날씨가 어두운 것이 마치 곧 폭풍우가 몰아칠 것만 같았다.두 사람이 대화하는 사이, 용모가 아름답고 몸매도 날씬한 한 여자 부하가 카트를 밀며 들어왔다.그녀는 박연서를 향해 공손하게 인사하면서 말했다.“사모님, 조식이 준비되었어요.”“얼른 올려.”박연서의 손짓 하나에 주식이며 디저트며 과일까지 화려하게 차려졌다.이 밖에도 식탁 위에는 인삼차와 보이차도 놓여있었다.보이차는 호불호가 없는 김예훈을 위해 준비한 것이고, 인삼차는 박연서의 평소 취향에 맞게 준비된 것이다.여자 부하가 모든 음식을 올려서야 박연서는 그녀에게 나가보라고 했다.이어 박연서는 차를 후후 불면서 웃으며 말했다.“김 도련님께서 아침을 드시지 않은 것 같아 성의껏 준비해봤어요. 드시고 싶은 거 있으시면 얼마든지 말씀하세요. 저희 셰프님은 못하는 게 없거든요.”박연서가 인삼차를 마시려던 때, 김예훈은 갑자기 숨죽이더니 표정이 확 굳어졌다.“사모님, 잠깐만요!”김예훈은 예의 차릴 겨를도 없이 박연서 손에 있던 찻잔을 낚아채 냄새를 맡더니 뒤돌아 떠나가는 여자 부하를 쳐다보면서 말했다.“인삼이 좋은 물건이긴 하죠. 고려인삼이든 서양 인삼이든 기를 보충하고 혈액순환을 돕는 귀한 약재이긴 한데 이 세상에는 먹어서는 안 되는 귀면삼이라는 것도 있어요. 깊은 산속에 있는 무덤에서 시체의 음기를 흡수하면서 자라는 삼인데 모양새나 냄새는 일반 인삼과 거의 똑같다고 볼 수 있어요. 그
비록 외부에서는 박연서가 자식을 잃은 슬픔으로 제정신이 아니라고 했지만 신속하고 결단력 있는 분석을 들어봤을 때 다시 젊었을 때의 냉철함과 결단력을 되찾은 것 같았다. 말을 마친 박연서는 뒤돌아 김예훈을 바라보면서 뭔가 의견을 얻고 싶어 했다.김예훈이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사모님, 설마 자료들을 백업 안 했다고 하실 건 아니죠?”“당연히 백업했죠.”박연서는 둘만 들을 수 있는 목소리로 말했다.“절대 복사하면 안 되는 기밀문서도 포함해서 전부 다 복사하라고 했거든요.”박연서는 어쩔 수 없이 미간을 문지르며 말했다.“그런데 일이 좀 복잡해졌어요. 이 자료들을 바탕으로 계속 조사할 수는 있지만 모든 진실이 밝혀지는 순간에 아무런 증거를 내놓지 못할까 봐 걱정이에요. 복사본은 아무런 법적 효력이 없거든요.”김예훈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사모님, 너무 의기소침해진 거 아니에요? 증거가 사라진 건 맞지만 어떤 사람들은 일 처리할 때 증거만 보는 거 아니잖아요. 예를 들어 안동 김씨 가문의 수장님이라든지. 수장님이라고 해서 그동안 친자식이 왜 그렇게 일찍 죽었는지 알고 싶지 않았을까요? 그리고 어르신한테도 확실한 증거가 필요할까요? 이 모든 것이 진짜라고 해도 범인을 보호하려고 한다면 확실한 증거가 있어도 아무런 소용이 없을 거예요.”박연서는 멈칫하더니 곧 반응했다.‘내가 너무 확실한 증거만 집착했나? 가끔은 확실한 증거가 필요하지 않을 때도 있잖아.’이 점을 깨달은 박연서는 부하들에게 서재를 정리하라면서 김예훈에게 아침을 대접하고 싶어 했다.식탁 앞에 앉은 박연서는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김예훈을 보면서 갑자기 한숨을 내쉬었다.“가끔은 이런 생각을 하기도 해요. 제 아들이 아직 살아있었다면 과연 현민이처럼 변했을지. 아니면 김 도련님처럼 변했을지 말이예요.”김예훈이 덤덤하게 말했다.“김현민처럼 변했겠죠. 사실 잔인하고, 뻔뻔하고, 짐승보다도 못한 것을 빼면 딱히 다른 단점은 보이지 않잖아요.”박연서는 김예훈이 김현민에 대한 평가를 듣고 잠
김현민은 눈빛이 반짝이더니 두 사람만 들을 수 있는 목소리로 말했다.“호적상으로 엄마인 사람을 어떻게 하려면 더욱더 신중해야 할 거예요. 워낙 의심이 많은 사람이거든요. 게다가 넷째 삼촌도 특별히 아끼시고, 옆에 탑 장병급 실력자도 있는데 말이에요. 박연서를 한 번에 죽이지 못하면 저희가 난처해질 수밖에 없어요.”“그렇게 어렵진 않을 거야.”김서하는 피식 웃더니 핸드폰을 꺼내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었다.“이거 대한민국 랭킹 1위 킬러조직 거미파 연락처인데 마침 나한테 은혜를 갚아야 할 거 있거든.”...다음 날 아침. 시즌 호텔 스위트룸에서 깨어난 김예훈은 핸드폰에 몇 통의 문자가 도착해있는 것을 발견했다.하나는 양유선이 아마미네 토시로에 관해 보고한 내용이었다.무사히 도주한 아마미네 토시로를 제외하고는 모든 일본인이 남양파의 손에 넘어갔으니 좋은 결말을 맞이할 수가 없었다.또 다른 메시지는 총잡이에 관한 정보였는데 추하린은 지금 그를 진주·밀양 안동 김씨 가문에서 오래전부터 사라진 막내 도련님인 김태빈으로 추정하고 있었다.김태빈은 진주·밀양 안동 김씨 가문 셋째의 아들이었고, 수년간 중동전쟁에서 활동하면서 거의 돌아오지 않던 그가 최근에 돌아왔다는 소문도 있었다.마지막으로는 공진해가 보내온 메시지인데 김예훈 요구대로 오륜 사찰의 성녀인 혜선 스님을 조사해봤지만 아무리 전문적인 공진해라고 해도 혜선 스님이 오륜 승려가 입양한 버려진 아이인 것 빼고는 아무런 정보도 따내지 못했다.그녀의 과거는 말하자면 완전한 백지였다.그래서 오히려 더 신비롭고 매혹적으로 느껴졌을 수도 있었다.의미심장한 표정을 짓고 있던 김예훈은 또다시 이들에게 무언가 시키고는 일어나 씻었다.막 아침 식사를 하려는데 한 통의 전화가 걸려 왔다.발신자는 다름 아닌 박연서였고, 문제가 생겼는데 잠깐 와줬으면 했다.김예훈은 멈칫하다 말고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옷을 갈아입고 택시 타고 진주·밀양 안동 김씨 가문의 별장으로 향했다.하지만 교통체증으로 거의 두 시간 만에 도
“정말 그런 거라면 내가 사람을 잘못 봤어. 그동안 너를 너무 몰라본 거야.”김서하는 진지한 표정으로 김현민을 쳐다보고 있었다.그녀는 곧 진주·밀양 안동 김씨 가문 수장이 될 사람이 한 여자 때문에 이렇게 충동적으로 행동할 줄 몰랐다.“고모, 이것은 단순히 충동 때문에 하는 행동은 아니에요. 진주·밀양에서 오륜 사찰이 제 편이라는 것을 모르는 사람이 없잖아요.”김현민은 한 마디 한 마디 또박또박 내뱉었다.“혜선 스님과 김예훈의 만남이 우연일지라도 누군가 이 기회를 이용해서 유언비어를 퍼뜨린다면 오륜 사찰과의 동맹이 무너질 수도 있어요. 더욱이 저는 남자로서 자존심이 상하는 것을 절대 받아들일 수 없어요. 차라리 죽더라도 혜선 스님이 다른 남자와 얽히는 모습을 보고 싶지 않다고요.”김서하가 손을 내밀어 김현민의 잘생긴 얼굴을 어루만지면서 잠시 후에 말했다.“차라리 죽는 게 낫다고? 현민아, 이제 곧 수장이 될 사람이 할 말은 아니지. 지금이 얼마나 중요한 시기인데. 하는 말과 행동 모두 조심해야 한다고. 너만 아니었으면 나도 오늘 직접 나서지 않았어. 그런데 지금 와서 생각해 보니 내 행동도 다소 충동적이었던 것 같아. 지금 우리가 해야 할 가장 현명한 행동은 아마 잠시 숨죽이고 있는 것일지도 몰라. 우리가 가장 원하는 것을 따냈을 때 그 기세를 몰아붙여 김예훈 그놈을 죽일 수 있다고.”김서하는 김예훈이 미웠지만 잠깐 차에 앉아 있는 동안 차분해진 느낌이었다.그녀의 뺨을 때릴 수 있는걸 보면 정말 실력과 배짱을 가진 자임이 분명했다.김현민이 수장 자리에 오르기까지 이런 사람과 무모하게 싸워봤자 방해만 될 뿐 아무런 좋은 점도 없었다.그래서 지금 해야 할 일은 신중히 계획을 세우고 나서 행동하는 것이다.김예훈한테 뺨 맞은 김서하는 두렵기도, 화나기도 했지만 정신을 차린 것도 사실이었다.적어도 과거의 그녀는 용전 안주인으로서, 진주·밀양 안동 김씨 가문의 서열 5위로서 절대 참을 일이 없었다.김현민은 잠시 침묵을 지키더니 한참 뒤에 말했다.
토요타 알파드 문이 서서히 열리고, 김현민이 검은 우산을 들고 빗속을 뚫고 걸어왔다.그는 김서하더러 창문을 내리라고 하면서 문을 두드렸다.멍때리고 있던 김서하는 그제야 정신을 차렸고, 김현민의 환한 미소를 보는데 말로 형용할 수 없는 기분이 들었다.잠시 후, 그녀는 차에서 내려 그의 품에 기대어 나지막하게 말했다.“현민아, 나 실패했어. 설득도, 암살도 모두 실패했다고. 줄곧 다른 사람들한테 무능하고 한심하다고 했는데 김예훈 앞에서는 나도 그들과 다를 바가 없었어.”김서하는 씁쓸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김현민은 오른손을 내밀어 김서하의 등을 가볍게 두드리더니 잠시 후 담담하게 말했다.“제가 얻은 정보에 따라 그 녀석이 오륜 사찰 뒷산 금지구역에 들어가 혜선 스님을 만난 거 맞아요?”김서하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아마미네 토시로가 사실 오륜 사찰을 이용해서 김예훈을 죽이려 했어. 그런데 지금 보니 그 계획은 실패한 것 같아.”“어리석은 놈.”김현민은 두 주먹을 꽉 쥐었다.“김예훈을 못 죽인 것도 모자라 혜선 스님이랑 만나게 했다니. 정말 한심하기 그지없는 놈이네요.”김현민은 더 이상 차분함을 유지하지 못했다.김서하든, 선재 스님이든, 남윤지든, 그저 주위를 맴도는 사람 일뿐 진심으로 사랑하는 여자는 아니었다.이처럼 거대한 진주·밀양에서 김현민이 진심으로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오직 혜선 스님뿐이었다.하지만 아쉽게도 이 두 사람은 늘 애매모호한 거리를 유지해왔다.여자의 마음에 대해 잘 아는 김현민마저도 혜선 스님의 마음을 얻을 수 없었다.‘그런데 김예훈이 우연히 혜선 스님이랑 만났다고? 더군다나 혜선 스님 목욕탕에 뛰어들어서 알몸까지 봤다고?’김현민은 김예훈을 당장이라도 목 졸라 죽이고 싶었다.이건 그의 체면을 구겨놓은 것도 모자라 그의 자존심과 진심을 짓밟은 거나 다름없었다.터벅터벅.바로 이때, 김현민의 뒤에서 김병욱이 천천히 걸어왔다.빗속에서 서로 끌어안고 있는 두 남녀를 보고도 그는 표정 변화 하나 없었다
퍽.더 이상 선택지가 없는 아마미네 토시로는 검을 힘껏 내리쳤다.마침 양상철이 몸을 피한 덕분에 아마미네 토시로는 그의 필살기를 피할 수 있었다.하지만 그 여파로 상처에서 피가 스며 나왔다.몇 번 한숨을 내쉬어야 고통을 멈출 수 있었던 그의 얼굴에는 김예훈에 대한 증오가 더욱 짙어졌다.양상철은 표정이 일그러진 그를 보며 말했다.“내가 봤을 때 넌 미야다 신노스케보다도 못해. 신노스케는 그래도 김예훈 도련님이랑 공격을 주고받을 수 있었어. 그런데 넌 이미 겁에 질려서 김예훈 도련님의 공격을 피하지도 못했어. 사실 널 한 방에 죽일 수 있었는데 말이야.”아마미네 토시로는 콧방귀를 뀌면서 말했다.“김예훈은 그냥 피도 안 마른 놈이야. 내가 이번에 급하게 출관하는 바람에 원기가 손상되지만 않았다면 걔가 미쳐 날뛸 수나 있었을까? 내가 일본에 돌아가면 1년 반쯤 수련해서 김예훈 그놈한테 내 실력을 제대로 보여줄 거야.”양상철은 한숨을 내쉬고 말았다.“김예훈 도련님보다 못하다는 것을 인정했으면 너를 높이 평가했을 텐데 지금은 그냥 패배를 인정하지 못하는 비겁한 놈으로 보여. 아마미네 토시로, 넌 정말 일본 무신과 야마자키파 검신의 체면을 완전히 구겨버렸어. 너의 손발을 잘라내서 김예훈 도련님한테 선물로 드릴 거야. 그러면 너도 일본에 돌아갈 일이 없겠지.”양상철은 또 한 번 아마미네 토시로가 있는 곳으로 손을 뻗었다.아마미네 토시로는 표정이 일그러지면서 똑같이 손을 뻗으려고 했는데 저 멀리서 이상한 소리가 들려왔다.퍽.양상철이 미간을 찌푸린 채 몸을 약간 옆으로 트는 순간 총알이 그의 머리카락을 스치며 뒤에 있던 나무를 뚫고 지나갔다.양상철이 무표정으로 전방을 바라보았는데 산봉우리에 어떤 남자가 총을 들고 바위에 서 있는 것이다.그는 양상철을 향해 피식 웃으며 죽여버리겠다는 제스처를 하면서 또다시 총을 들었다.양상철은 바로 상대방이 평범한 사수가 아니라는 것을 감지할 수 있었다.이 모습에 아마미네 토시로는 멈칫도 잠시 땅을 구르더니 쏜살같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