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준서가 대한민국의 성약당을 언급하자 허사연이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들어본 적 있어, 왜?”허사연이 들어본 적이 있다고 하자 허준서는 그제야 속으로 안도했다.허사연이 들어본 적이 없다면 허준서는 이 사람들 앞에서 자기 고귀한 신분을 자랑할 방법이 없었을 것 같았다.허준서의 집안은 허성태 집안과 친척 관계였다.오랜 세월 동안 두 집안은 서로 왕래가 없었지만 허준서는 허성태가 이 지역에서 으뜸가는 부호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반면 허준서의 집안은 그곳에서 비교적 평범하고 재력도 그다지 강하지 않아 허성태 집안과는 비교할 수도 없었다.허성태 집안이 부럽지 않다고 한다면 그건 거짓말이다.하지만 허준서의 가족은 체면을 중요하게 생각하기 때문에 한 번도 허성태에게 돈을 빌리러 가지 않았다.언젠가는 자기 집안 사람이 출세해서 허성태 앞에서 실컷 잘난 척하고 싶었다.이번에 허준서가 온 것도 자기가 앞으로 갖게 될 신분을 자랑하려는 것이었다.“성약당이 얼마 전 대규모로 제자를 모집했어.”허준서는 보이차를 한 모금 마시며 빙그레 웃으며 설명했다.그 전에 진서준이 성약당의 몇몇 장로들을 처치했기 때문에 많은 성약당 제자들이 겁에 질려 자발적으로 탈퇴했다.성약당은 대한민국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기 때문에 절대 망할 수 없었다.이후 성약당의 옛 당주 변지산은 국안부의 한 호국장군에게 도움을 요청했다.변지산은 그 호국장군에게 메시지를 전달해 대한민국에서 덕망 있고 재능 있는 사람들을 모집해 달라고 부탁했다.재능이 충분한 사람은 심지어 변지산의 제자가 될 수도 있었다.허준서는 운 좋게 선정되어 얼마 후 성약당에서 수련하게 되었다.“내 능력은 그렇게 강하지 않지만 운 좋게 성약당에서 수련하게 되었어. 게다가 성약당의 옛 당주가 능력 있는 사람을 직접 선발한다고 들었어. 운 좋게 당주의 제자가 되면 너희 집안도 우리 집안 덕분에 대박 날 거야.”허준서는 자랑스러운 얼굴로 침을 튕겨가며 자랑을 늘어놓았다.진서준은 그 말을 듣고 나서 무슨 상황인지 이
허준서는 차분하게 생각한 후 천천히 눈을 뜨고 매우 고통스러운 표정을 지었다.“준서야, 내 몸 상태가 어떻게 된 거야?”허준서의 심각한 표정을 보고 허성태가 급히 물었다.“삼촌, 삼촌 몸에 큰 문제가 있네요.”허준서는 마음이 아파 고통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허준서는 허성태의 상태를 더 심각하게 말할 작정이었다.어차피 이 자리에 있는 사람 중에 의술을 아는 건 허준서뿐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허준서는 진서준이 의술을 안다는 헛소리는 믿지 않았다.“뭐? 무슨 큰 문제가 있다는 거야?”허성태가 미간을 찌푸리며 심각한 표정으로 또 물었다.허준서가 허성태의 친척이 아니었다면 허성태는 이미 사람을 불러 허준서를 별장에서 쫓아냈을 것이다.지금 허성태의 몸은 어느 때보다 더 건강한 상태였다.심지어 허성태는 대다수 젊은이보다도 건강 상태가 더 좋았다.“자세하게 설명하기엔 너무 많은 의학 용어가 포함돼서 제가 말해도 잘 이해하지 못할 거예요. 하지만 말씀드릴 수 있는 건, 빨리 치료를 받지 않으면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거예요.”허준서의 말에 진실을 모르는 허사연 자매는 깜짝 놀랐다.“서준아, 아빠를 얼른 봐줘.”허사연이 진서준을 잡아당기며 말했다.하지만 진서준은 덤덤하게 웃으며 허사연의 손을 톡톡 쳤다.“아버님 몸은 괜찮아. 저 사람은 단지 겁을 주는 거야.”이 말을 듣자 허준서의 얼굴은 굳어졌고 이내 차가운 표정으로 물었다.“난 강남 명의당 수련생이고 곧 성약당에 들어갈 사람이야. 이래도 내가 한 말이 거짓말이라고 생각해?”조금 전까지 긴장해 어쩔 바를 모르던 허사연도 그제야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허사연은 허준서보다는 진서준의 말을 더 믿기 때문이었다.이 세상에서 진서준의 말을 가장 신뢰하는 사람은 허사연일 것이다.“내가 거짓말인지 아닌지 어차피 믿지 않을 테니까 내가 다른 사람을 찾아보는 게 낫겠죠?”진서준은 휴대폰을 꺼냈다.“뭘 하려고요? 설마 여기 시내 의사를 부를 생각인가요?”허준서는 진서준의 말이 우스꽝스러웠
허준서 같은 사람이 성약당에 들어간다는 소식을 듣자 변희영은 순간 멈칫하며 자기 귀를 의심했다.“네가 성약당에 들어간다고?”변희영은 분명 자기가 잘못 들었다고 생각하며 다시 물었다.“물론이지, 너도 성약당에 대해 들어본 적이 있어?”허준서는 변희영을 바라보며 미간을 찌푸렸다.허준서는 눈앞의 여자가 어디서 본 사람 같다는 느낌이 자꾸 들었다.진서준은 눈앞의 광경이 우습기만 했다.성약당의 옛 당주 손녀조차 알아보지 못하는 사람이 어떻게 성약당에 들어갈 수 있다는 건지, 그야말로 기가 막힌 노릇이었다.“너 뭐가 그렇게 웃겨?”허준서는 진서준을 노려보며 화난 목소리로 물었다.“너 자신이 우물 안 개구리라는 걸 모르고 자꾸 고개를 쳐 세우니 너무 웃겨서 그래.”진서준은 담담하게 말했다.허준서는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벌떡 일어나 진서준을 분노에 찬 눈빛으로 쳐다봤다.“이 자식이 지금 누구를 우물 안 개구리라고 하는 거야? 난 곧 대한민국 의학계 정점에 설 남자야. 너 같은 쓰레기가 감히 날 우물 안 개구리라고 해? 너야말로 바깥세상을 모르는 두꺼비 같은 놈이야.”허준서가 진서준을 거친 말로 모욕하자 허사연 일행은 더 이상 참지 못했다.하지만 진서준은 허사연에게 눈짓하며 일단 참으라고 암시했다.변희영은 휴대폰을 꺼내 허준서에게 물었다.“누가 널 성약당에 초대했어?”“왜 그걸 묻는 거야? 말해도 네가 알 수 없잖아.”허준서는 팔짱을 끼고 경멸이 가득한 표정으로 말했다.변희영이 예쁘게 생기지만 않았다면 허준서는 이런 사회 최하층 주민과 말을 섞으려고도 하지 않았을 것이다.“네가 말하지 않으면 네가 사기 치는 게 맞는지 아닌지 어떻게 알겠어?”변희영은 허준서를 자극하려고 일부러 허준서를 화나게 했다.그러자 변희영의 예상대로 허준서는 마침내 미끼를 덥석 물었다.허준서는 변희영을 차가운 눈으로 바라보며 말했다.“네 귀를 세우고 잘 들어, 날 초대한 사람은 성약당 새로운 장로 황운재야.”황운재는 변희영의 할아버지가 새로 발탁한 장로가 확
허준서는 웃으며 믿지 않았다.“너 정말 연기 잘한다. 황 장로가 어떤 사람인지 알기나 해? 너 같은 계집이 어떻게 그런 분 전화번호를 알 수 있겠어?”변희영은 허준서의 말을 신경 쓰지 않고 황운재에게 차가운 말투로 말했다.“황 장로도 들었죠?”“네... 들었습니다. 아가씨는 지금 어디 계시는가요? 제가 오늘 저녁에 바로 운전해서 그쪽으로 가겠습니다.”황운재는 화가 나서 머리카락이 곤두설 지경이었다.황운재는 현장에 도착해서 허준서를 죽도록 두들겨 패겠다고 속으로 다짐했다.“서울에 있어요. 도착하면 전화하세요.”변희영이 말을 마치고 전화를 끊자 허준서는 기회를 놓치지 않고 비웃었다.“계속해 봐, 왜 그만두는 거야? 네 기막힌 연기를 더 보고 싶어.”변희영은 냉랭하게 한마디 남겼다.“황운재가 내일 온대.”이때 허성태가 앞으로 나서며 중재하기 시작했다.“됐어, 더 이상 이런 재미없는 얘기 하지 말고 같이 식사나 하자.”미래의 장인어른이 이렇게 말하니 진서준도 더 이상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식탁에 앉자 아무도 허준서와 그의 여자친구에게 말을 건네지 않았다.모두가 두 사람이 불편했고 마음에 들지 않았다.이런 불편한 분위기기 계속되자 허준서는 진서준 일행이 자기를 질투하고 있다고 더욱 확신했다.저녁 식사를 끝낸 후, 진서준은 조희선과 다른 여자들을 데리고 함께 떠났고 허사연 자매는 집에 남았다.허사연 자매는 집에서 허성태와 함께 시간을 보내기로 했다.오랫동안 자매는 아버지와 이렇게 오붓한 시간을 보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반면 허준서와 이청아는 허씨 가문의 별장이 마음에 들지 않아 5성급 호텔에 가서 밤을 보내기로 했다.물론 두 사람이 머문 5성급 호텔도 사실 허씨 가문의 재산이라는 사실은 알 리가 없었다.“오빠, 그런 사람 때문에 화내지 마.”귀가하는 길에 진서라가 진서준을 위로했다.진서준은 그 말에 웃으며 답했다.“서라야, 네가 지나치게 걱정하는 거야. 내가 오늘 기분이 안 좋은 건 그 사람 때문이 아니야.”배수정의 일
아침 햇살이 창밖 나뭇잎을 뚫고 지나가며 산산이 부서져 진서준의 몸 위로 떨어졌다.“오빠, 밥 먹으러 나와!”진서라의 목소리가 문밖에서 들려왔다.여동생의 목소리에 진서준은 천천히 눈을 뜨고 깊게 숨을 내쉬었다.“알았어!”진서준은 자리에서 일어나 방을 나서며 진서라를 따라 1층 거실로 내려갔다. 조희선과 김연아는 이미 일찍 일어나 아침 식사를 준비해 두었다.아침 식사가 거의 끝나갈 무렵, 변희영의 전화가 울렸다.“위치를 보낼 테니 바로 그리로 오세요.”변희영은 전화를 끊고 진서준에게 휴대폰을 건네 허씨 가문 별장의 위치를 황운재에게 보내게 했다.“진짜 그 장로를 불렀어요?”진서준은 변희영의 행동에 살짝 놀랐다.어제는 변희영이 그냥 장난으로 하는 말인 줄 알았기 때문이다.“당연하죠, 우리 성약당은 이제 예전과 달라 허준서 같은 돌팔이는 절대 받아들일 수 없어요.”변희영은 진지한 표정으로 답했다.진서준은 그 말에 고개를 저으며 미소를 지었다.“사실 그 녀석이 돌팔이인지는 모르겠지만 분명 보통 사람을 깔보는 의사가 될 거예요. 그런 사람은 정말 당신들 성약당에 들어가면 안 되죠.”의사는 부모의 마음을 가져야 한다.만약 모든 의사가 허준서처럼 약삭빠른 사람이라면 성약당도 결국 다시 과거처럼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약삭빠른 사람이라고요? 그럼 더더욱 성약당에서 받아들일 수 없죠.”변희영은 쌀쌀한 표정으로 차갑게 말했다.“자, 얼른 식사나 하죠. 성약당 새 장로를 오래 기다리게 할 순 없잖아요.”아침 식사를 마친 후, 진서준은 변희영과 함께 허씨 가문으로 향했다.두 사람이 도착했을 때, 황운재는 이미 대문 앞에서 한참 동안 기다리고 있었다.황운재는 올해 예순이 넘은 백발의 노인이었다.황운재는 무인이 아니었지만 대신 뛰어난 의술과 높은 덕망을 가진 사람이었다.밤새 차를 타고 와서인지 황운재는 매우 피곤해 보였다.“아가씨, 진 선생님!”황운재는 진서준과 변희영을 보자마자 억지로 정신을 차리고 두 사람 앞에 공손히 다가갔다.황
이건 사실을 직접 허준서에게 알려주는 것보다 더 잔인한 방식이었다.이미 목적지에 다다른 허준서에게 발차기를 날려 출발 지점으로 되돌려버리는 방식은 중간에 허준서를 막아서는 것보다 훨씬 더 가혹했다.하지만 그 잔혹함을 잘 모르는 변희영은 살짝 분개하며 말했다.“그럼 황 장로는 헛걸음한 셈이잖아요?”황운재는 자기가 헛걸음이었다는 말을 감히 하지 못하고 급히 말을 돌렸다.“괜찮습니다, 아가씨. 여기 이제 제가 필요한 일은 없는 것 같으니 다시 강남으로 돌아가겠습니다.”황운재가 급히 돌아가려는 모습을 보자 변희영은 마음이 편치 않았다.“황 장로, 하루 쉬고 가세요.”“안 됩니다. 강남에는 이상한 병을 앓고 있는 환자가 한 명 있습니다. 시간을 지체할 순 없습니다.”황운재는 고개를 저으며 거절했다.강남에 황운재의 치료를 기다리는 환자가 있다는 말을 들은 변희영은 더욱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환자가 누구죠?”진서준이 참지 못하고 대화에 끼어들었다.비록 성약당이 새롭게 개편되었지만 일반인들은 여전히 성약당의 장로급 인물의 치료를 받을 수 없었다.황 장로를 부른 사람은 분명 강남에서 유명한 가문일 것이다.강남의 유명한 가문 중, 진씨 가문과 서씨 가문은 진서준도 알고 있었다.만약 진씨 가문이라면 진서준은 상관하지 않을 거지만 서씨 가문의 사람이면 진서준은 그냥 두고 볼 수 없었다.“서씨 가문 현 가주의 딸입니다.”황 장로가 진서준의 질문에 대답했다.“뭐라고요?”진서준의 눈동자가 확장되며 황 장로를 믿기지 않는 듯 쳐다보았다.진서준의 큰 반응에 황 장로는 깜짝 놀랐다.“진 선생님, 왜 그러십니까?”서씨 가문 현 가주의 딸이라면, 서지은이 아닌가?시지은이 병에 걸렸다니, 그야말로 금시초문이었다.진서준은 황운재의 손목을 잡고 다급하게 물었다.“환자가 서지은이 맞습니까?”“네, 진 선생님도 혹시 아시나요?”황 장로가 진서준이 환자를 알자 깜짝 놀랐다.진서준은 서지은이 병에 걸렸다는 사실을 듣고 마음이 다급해졌다.“무슨 병인가요?
허준서가 다시 나타나자 허사연 자매의 이마가 살짝 찌푸려졌다.어젯밤 허준서의 행동은 허씨 가문 모두에게 크나큰 불쾌감을 주었다.“성태 삼촌, 안녕하세요. 사연아, 안녕.”허준서는 오자마자 허사연 일행에게 차례로 인사했다.허성태는 미소를 지으며 허사연에게 말했다.“젊은이들끼리 얘기해. 이 영감은 끼지 않을게.”말이 끝나자 허성태는 낚시 도구를 챙기고 별장 옆 호수로 낚시하러 갔다.허성태가 그렇게 급히 나가는 모습을 보자 허준서는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지 못했다.어젯밤 허사연의 남자친구는 평범한 사람이 틀림없었다.물론 그 남자가 어젯밤 데려온 여자도 연기하고 있는 거였다.허성태도 두 사람이 망신을 당할 걸 알았기에 여기서 체면을 구길 수 없었던 것이다.속으로 이런 결론을 내린 허준서는 웃음이 나오지 않을 수 없었다.“사연아, 네 남자친구는 어디 있어? 그 여자랑 황 장로님도 같이 데려오라고 얼른 전해. 난 여기서 네 남자친구를 기다리고 있을게.”허준서는 별장이 자기 집인 것처럼 소파에 털썩 주저앉으며 말했다.“넌 한발 늦었어. 진서준 일행은 비행기를 타고 강남으로 갔어.”허윤진은 허준서와 그의 여자친구를 차갑게 쳐다보며 말했다.“뭐라고? 강남에 갔다고? 그럴 리가 없잖아.”허준서는 끝내 참지 못하고 폭소를 터뜨렸다.“그 사람이 강남에 간다고 해도 너희 허씨 가문 명성으로는 황 장로님을 청할 수 없어. 사연아, 내 말이 거칠게 들릴 수 있지만 잘 들어. 서울에선 너희 허씨 가문이 어느 정도 체면은 있어도 서울만 넘어가면 모든 걸 장담할 수 없어...”말을 마치며 허준서는 경멸의 미소를 지었다.물론 허준서가 말하고자 하는 뜻은 명확했다.“뭐라고?”허윤진은 이를 악물고 허준서를 노려보았다.지금 허윤진의 성격은 이전보다 많이 부드러워졌다.진서준을 만나기 전이라면 허준서가 이렇게 허씨 가문을 모욕했으면 허윤진은 이미 경호원을 불러 허준서를 처리하라고 했을 것이다.친척이라고 해서 봐줄 필요는 없었다. 맞아야 할 사람은 맞아야 제정
“너 뭐라고 지껄였어? 또 한 대 더 맞으려고 작정했어?”허윤진의 차가운 표정을 보자 허준서는 겁먹고 한발 물러났다.허준서의 얼굴은 여전히 화끈거리고 아파서 말을 잇지 못할 지경이었다.허준서는 씩씩거리며 이를 악물고 말했다.“좋아, 허윤진. 이 한 대는 내가 꼭 기억할게. 너희 자매 두고 보자.”“왜? 사람이라도 불러 내게 복수라도 하자고 그래?”허윤진은 냉소하며 대꾸했다.“좋아, 그럼 얼른 불러 봐. 난 여기서 기다리고 있을게.”허윤진의 거만한 태도를 보자 허준서는 치를 떨며 분노를 삭이지 못했다.허준서가 돌아서 별장을 떠나려 할 때, 눈앞에 누렁이가 한 마리 나타났다.허윤진을 실력으로 누를 수 없어도 허윤진이 기르는 개는 이길 수 있다는 생각이 떠오른 허준서는 몇 걸음 다가가 누렁이에게 발길질했다.산책을 마치고 돌아온 누렁이는 허준서가 갑자기 공격해 오자 커다란 입을 벌려 허준서에게 달려들었다.우두둑!뼈가 부러지는 소리가 거실에 울려 퍼졌다.허사연은 이 장면을 보고 이마에 손을 대고 미간을 찌푸렸다.허준서가 허윤진에게서 받은 화를 누렁이에게 풀 줄은 몰랐기 때문이다.누렁이는 사실 단순한 개가 아니라 전에 진서준에게 훈련받은 대형 사자였다.비록 허사연 자매의 실력은 지금 큰 변화가 있었지만 아직도 누렁이를 상대하기에는 둘이 힘을 합쳐도 역부족이었다.“아악!”발목이 물린 허준서는 극심한 통증에 울음을 터뜨리며 끔찍한 비명을 질렀다.“누렁이야, 그만 물어.”허사연은 인명 사고가 날까 걱정스러워 얼른 누렁이에게 명령했다.허사연의 명령에 누렁이는 그제야 발목을 물었던 입을 벌렸다.하지만 누렁이의 이빨에는 이미 피가 흥건하게 묻어 있었다.허준서는 바닥에 엎드려 고장 난 수도꼭지처럼 펑펑 울고 있었다.문 앞의 경호원들도 처절한 비명을 듣고 급히 달려와 상황을 살폈다.허준서가 물린 것을 보고 경호원들은 허사연을 바라보며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시선을 보냈다.“저분을 병원으로 데려다주세요.”허사연은 손을 내저으며 답답한
“뭐라고? 불법적인 일이 우리 가게에서 일어난다고? 말도 안 돼.”성현도가 헛웃음을 지으며 말을 이었다.“넌 전신전 소속이잖아. 그런데 네 오빠인 내가 어떻게 법률을 어기는 일을 하겠어?”“그럼 이 사람들은 왜 부른 거야? 집단 폭력도 불법이거든.”성미영은 차가운 시선을 보이며 성현도와 따졌다.“미영아, 이건 내가 싸우려던 게 아니야. 저 녀석이 일부러 시비 걸러 온 거라고.”성현도는 진서준을 손가락질하며 말했다.“이놈이 일부러 우리 찻집에 난입해 행패를 부리고 상철을 두들겨 패서 머리에 혹이 다 나버렸어. 난 단순히 정당방위를 위해 부른 거라고.”성미영이 등장하자 성현도는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솔직히 실력만 놓고 보면 성현도는 성미영보다 한참 부족했다.게다가 성미영은 전신전 소속인지라 저 남녀가 군부 조직인 전신전을 적으로 돌릴 리 없었다.군대를 건드리는 순간, 무조건 좋은 결과는 있을 수 없었다.“진서준, 도대체 무슨 일이야?”성미영이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어라? 너희 둘이 아는 사이야?”성현도가 눈을 휘둥그레 뜨며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을 지었다.방금 내려놨던 마음이 다시 불안해지기 시작했다.“난 사람을 찾으러 왔어. 하씨 가문 하경범이 이 위층에 있다고 들었는데 진짜인지 가짜인지 모르겠어.”진서준이 손가락으로 위를 가리켰다.“그리고 또 하나, 저 위에서 불법적인 일이 벌어지고 있다고도 하더군. 그게 사실인지 아닌지도 모르겠어.”이 말에 성현도의 표정이 단숨에 험악해졌고 즉시 반박에 나섰다.“헛소리 마. 우리 가게는 단순한 찻집이야. 불법적인 일 따윈 없어. 근거없는 소문을 왜 털어놓고 난리야?”“미영아, 저 녀석한테 속지 마. 난 네 사촌 오빠야. 내가 그런 불법적인 짓을 할 사람이겠어?”성미영이 곧바로 진서준에게 물었다.“진서준, 너 증거 있어?”“직접 올라가 보면 다 알게 될 거잖아?”진서준이 가볍게 말했다.“오빠, 위층으로 가자.”성미영이 단호하게 말했다.“그, 그건 좀 곤란해. 위층엔 귀
순간, 장내는 숨소리조차 들릴 정도로 조용해졌다.모든 시선이 진서준에게 쏠렸고 사람들은 할 말을 잃어버렸다.다들 진서준을 그냥 얼굴만 반반한 남자라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진짜 고수였다.성현도의 부하 중 최고 실력자조차 상대가 되지 않았다.성현도의 얼굴은 시퍼렇게 질렸고 상철을 향해서 욕설을 날렸다.“쓰레기 자식, 이런 애송이 하나도 못 이겨?”부하가 지면 망신당하는 건 결국 성현도 자신이었다.이대로 체면을 구긴 채 끝낼 수는 없었다.이대로 넘어가면 앞으로 르벨 재벌 2세들 사이에서 조롱거리가 될 게 뻔했다.“이봐, 네 실력이 괜찮은 건 인정할게.”성현도가 싸늘한 얼굴로 말을 이었다.“근데 너 혼자서 백 명을 상대할 수 있어? 천 명은? 잘 들어. 내 부하는 수도 없이 많아. 너 같은 놈 하나 처리하는 데 전화 한 통이면 충분해.”진서준은 눈썹을 꿈틀거리며 여전히 같은 말을 반복했다.“다시 말하지만 난 그냥 하경범을 찾으러 온 거야. 그 녀석만 넘기면 오늘 일은 없던 걸로 해주지.”“없던 걸로 한다고?”성현도가 그 말에 어이없어 헛웃음이 나왔다.“너 지금 누굴 상대로 협상하려 드는 거야? 난 성씨 가문의 직계야. 날 건드리면 상대해야 할 건 나 하나가 아니라 우리 가문 전체라고.”그때, 밖에서 다급한 발소리가 들려오더니 곧이어 검은색 전투복을 입은 남자들이 우르르 몰려왔다.이 남자들은 전부 성씨 가문의 경호원이었고 실력도 만만하지 않았다.그것도 한둘이 아니라 무려 50명 이상이었다.한순간에 텅 비어 있던 로비가 사람들로 꽉 찼다.“저 자식 끝났네. 이 정도 성씨 가문 인원이라면 아무리 강해도 버틸 수가 없지.”“그러게 말이야. 이런 상황에서 살아남을 수 없잖아.”“왜 쓸데없이 성현도를 건드린 거지? 스스로 무덤을 판 거잖아.”구경꾼들은 이 광경에 각자 다른 감정을 보였다.누군가는 동정을, 누군가는 아쉬움을, 또 누군가는 짙은 흥미를 보였다.“사연아, 넌 좀 쉬어. 이놈들은 내가 처리할게.”진서준이 앞으로 나섰다.
얼마 지나지 않아 키가 거의 2미터에 달하는 거구의 사내가 찻집 안으로 들어왔다.남자는 그냥 서 있기만 해도 엄청난 위압감이 느껴졌다.“상철아, 저놈 다리 하나 부러뜨려서 내던져.”성현도가 진서준을 가리키며 명령했다.“알겠습니다.”상철은 간단하게 대답하고는 진서준에게 성큼성큼 다가갔다.“서준아, 내가 할게.”허사연의 눈에는 불꽃 같은 전투욕이 타올랐다.“조심해. 저 녀석은 횡련 종사야. 그렇게 만만한 상대가 아니야.”진서준이 조용히 귀띔했다.“알았어. 설령 못 이긴다고 해도 어차피 네가 있잖아?”허사연이 장난스럽게 웃었다.진서준이 곁에 있는 한, 허사연은 아무것도 두렵지 않았다.“이봐, 사내자식이 여자 뒤에 숨는 게 말이 돼?”상철이 눈썹을 추켜세우며 불쾌한 표정을 지었다.“이봐, 껑충이. 여자를 얕보지 마. 일단 이기고 나서 말해.”허사연이 상철을 도발했다.“아가씨, 그런 기생오라비 말고 날 따르지 그래? 밤마다 널 천국으로 보내줄 수 있는데?”상철이 음흉하게 웃었다.“죽고 싶어 환장했구나.”얼굴이 싸늘해진 허사연이 주먹을 날렸다.강렬한 펀치가 공기를 가르며 폭발음을 일으켰고 그 위력은 철판도 뚫을 수 있을 정도였다.하지만 상철은 비웃듯 입꼬리를 올렸다.“내가 가만히 서 있어도 넌 날 어쩔 수 없어.”“닥쳐!”허사연이 분노에 차 주먹을 그대로 상철의 얼굴로 내리꽂았다.상철은 일부러 머리를 숙이며 대머리 정수리로 받아냈다.쿵!둔탁한 충돌음이 울려 퍼졌다.주먹이 상철의 머리를 강타했으나 대머리는 꿈쩍도 하지 않았고 오히려 허사연이 몇 걸음 물러섰다.순간 손에 뜨거운 통증이 밀려왔고 뼈가 부서질 것 같았다.손을 확인하자 하얀 피부였던 손등이 새빨갛게 부어올랐다.상철은 자기 머리를 한번 쓸어내리더니 빙그레 웃었다.“아가씨, 이제 내 실력을 알겠지?”그 모습에 허사연의 승부욕이 다시 불타올랐고 콧방귀를 뀌며 다시 달려들었다.이번에는 다리를 높이 들어 올려 상철의 머리를 내려찍었다.‘머리가 단단하다고 자랑하
이렇게 예쁘고 섹시한 여자가 싸움 실력이 이렇게 대단할 줄은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다.완전 여성판 이소룡이었다.“너, 너희들 정말 너무 대담한 거 아니야? 여기가 어디인지 알기나 해? 어디서 대놓고 싸움질이야?”종업원은 순간 놀란 뒤 분노에 찬 얼굴로 진서준와 허사연을 가리켰다.찻집이 문을 연 이후로 이렇게 난동을 부리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고 진서준과 허사연이 첫 사례였다.주변의 구경꾼들도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싸움 좀 하면 뭐해? 여긴 성씨 가문의 구역이야. 성씨 가문에서 한마디만 하면 저 남녀는 오늘 밤중으로 사라지겠지.”“어휴, 저 여자 너무 아까워. 저렇게 예쁜데 왜 죽지 못해서 안달이지?”“여자는 살 수도 있겠지만 남자는 무조건 죽을걸.”사람들은 저마다 수군거리며 이미 진서준과 허사연의 결말을 예상하는 듯했다.“그럼 네 말대로라면 내가 널 때린다 해도 얌전히 맞고 있어야 한다는 거야?”허사연은 눈썹을 꿈틀거리며 종업원에게 다가갔다.“오지 마!”종업원은 겁에 질려 연신 뒷걸음질 쳤다.“어떤 미친놈이 내 구역에서 소란을 피우는 거야?”그 순간, 2층에서 한 사람이 내려왔다.모두가 일제히 시선을 돌려 그 사람을 확인하자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성현도가 오늘 여기 있었네?”누군가 그 청년을 알아보았다.“저 둘 끝장났네. 성현도는 악명 높은 냉혈한이야.”그 청년은 바로 찻집의 사장인 성현도였다.성현도는 르벨 재벌 2세 사이에서 유명한 인물이었다.친구에게는 무조건 의리를 지키지만 적에게는 무자비했다.성현도의 고문 방법은 수도 없이 많았고 게다가 무인으로서 무공 실력도 상당했다.“사장님, 저 남녀가 와서 난동을 부렸어요.”종업원은 성현도를 보자마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사장이 나온 걸 확인한 허사연은 주먹 한 방에 종업원을 기절시켜 버렸다.“뭐야?”성현도의 눈이 가늘어졌고 표정이 험악해졌다.자기 앞에서 대놓고 부하를 때리다니, 이건 너무나도 명백한 도발이었다.“아가씨, 우리 처음 보는 사이 맞지? 우리
그리고 오후 2시가 되자 진서준은 허사연을 데리고 조호가 말한 천국찻집으로 향했다.겉모습만 보면 이 찻집은 진짜 전통찻집 같았고 규모도 꽤 컸다.하지만 막상 안에 들어가 보니 전혀 다른 세상이 펼쳐져 있었다.1층과 2층까지는 정말 평범한 찻집처럼 꾸며져 있었고 누가 봐도 이상한 점을 찾기 어려울 정도였다.하지만 3층으로 올라가려면 회원권이 있어야 하거나 사장이 직접 허락한 사람만 출입할 수 있었다.“손님, 아가씨, 이쪽으로 안내해 드리겠습니다.”진서준과 허사연이 차를 마시러 온 줄 안 종업원이 빠르게 달려와 안내하려 했다.“그럴 필요 없어. 난 하경범을 찾으러 왔거든.”진서준이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네?”종업원이 순간 얼어붙었다.“혹시 하씨 가문의 하 도련님을 말씀하시는 겁니까?”“맞아.”진서준이 고개를 끄덕였다.“손님은 누구신지...”종업원이 신중하게 물었다.진서준은 잠시 생각하다가 말했다.“그냥 복수하러 왔다고 전해.”그놈 아버지라고 하는 건 자기를 모욕하는 것과 같았고 친구라고 하기도 기분이 더러웠다.그 말에 종업원의 얼굴색이 확 변했다.“손님, 여기서 장난치지 마세요.”하경범은 르벨에서 유명한 재벌 2세였다.이 찻집의 사장과도 막역한 사이였고 여기서 일하는 직원이라면 그 사실을 모를 리 없었다.“왜? 못 믿겠어?”진서준이 피식 웃으며 되물었다.“손님, 하 도련님에게 복수하려던 사람은 단 하루도 살아남지 못했습니다.”종업원이 경고하듯 말했다.“그런 농담은 함부로 하는 게 아닙니다.”그 말을 듣자 진서준은 담담하게 말했다.“그럼 이렇게 전해. 그 하경범이 두들겨 맞고 나자빠지게 했던 진서준이 왔으니 당장 기어 나오라고 말이야.”진서준의 뻔뻔한 태도에 종업원은 어이가 없었다.“좋습니다. 손님이 그렇게 죽고 싶다면 제가 기꺼이 도와드리죠.”종업원은 바로 무전기를 꺼내 들었다.“문제 발생했습니다. 난동자가 있습니다.”쿵! 쿵!급한 발소리가 들리더니 곧이어 건장한 남자 스무 명이 들이닥쳤다.전부 검은
진서준과 허사연은 차를 타고 조호의 회사로 향했다.이 회사는 그냥 겉치레일 뿐, 진짜 돈이 들어오는 곳은 유흥업소들이었다.유흥업소를 얕잡아보면 안 된다.운 좋게 돈 많은 도련님들이라도 걸리면 하룻밤에 수억 원이 순식간에 손에 들어오게 될 것이다.“진서준 씨!”진서준이 들어서자 조호는 황급히 자리에서 일어나 공손한 태도를 보였다.조호는 진서준 옆에 있는 허사연을 힐끗 쳐다본 뒤 고개를 숙이고 감히 더 볼 엄두도 내지 못했다.“잡담은 그만하고 하경범을 잡아가는 제일 좋은 타이밍만 말해.”진서준이 직설적으로 물었다.이 말에 조호는 속으로 크게 놀랐다.“매일 오후마다 하경범은 천국찻집이라는 곳에 갑니다.”조호는 재빨리 대답했다.“보통은 경호원 몇 명만 데리고 가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얼씨구? 저런 인간이 매일 차나 마시러 간다고?”진서준은 의외라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그게... 진서준 씨, 사실 그곳은 이름만 찻집이지 실제로는...”조호는 옆에 여성이 있다는 걸 의식해서 말을 흐렸지만 진서준은 그 뜻을 단번에 알아챘다.“알겠어.”진서준이 고개를 끄덕였다.차를 마시는 곳이 아니라 그냥 인기 많은 인터넷 셀럽이 가득한 고급 유흥업소일 것이다.“진서준 씨, 듣자 하니 그 찻집의 주인은 성씨 가문의 사람이라고 합니다. 진짜로 움직이실 거라면 하경범이 이동 중일 때를 노리는 게 좋을 겁니다.”조호가 조심스럽게 조언했다.“응? 성씨 가문이 이런 사업도 해?”진서준은 흥미롭다는 듯 눈썹을 꿈틀거렸다.진서준은 오영수에게서 성미영에 대한 정보를 들은 적이 있었다.정의로운 성격의 성미영이 자기 가문에서 이런 유흥업소를 운영하고 있다는 걸 알게 되면 절대 가만히 있지 않을 터였다.“네, 듣기로는 성씨 가문의 한 직계 후손이 운영한다고 합니다. 여자에 미쳐 있는 놈이라 르벨의 돈 많은 도련님들과 꽤 친분이 깊다고 하더군요.”조호는 본인이 아는 정보를 전부 쏟아냈다.“좋아, 대충 알겠어.”진서준이 고개를 끄덕였다.조호의 회사를 나온
진서준이 허사연의 캐리어를 들어주며 옆방으로 걸어갔다.그 뒷모습을 보며 도지아는 부러움이 가득한 눈빛을 보냈다.인간은 원래 모여서 사는 걸 선호하는 동물이다.사회를 벗어나서 혼자 살아가는 건 생각보다 훨씬 힘든 일이었다.가족도 친구도 없이 너무 오래 지내다 보면 결국 감정 없는 시체나 다름없는 존재가 되어버린다.그렇게 되면 사람과 짐승의 차이가 없어질 것이다.“어제 전화할 때 그랬었지? 이번에 너 자기 출신을 찾으러 온 거라고.”호텔 방으로 돌아온 후, 허사연이 호기심 가득한 얼굴로 물었다.“너 원래 경성 진씨 가문 사람이잖아?”“나도 그렇게 알고 있었어. 그런데 할아버지가 예전에 말해주셨어. 사실 우리 아버지는 어릴 때 길에서 주워 온 아이였다고.”진서준은 허사연에게 숨길 생각이 없었다.허사연은 진서준이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었다.허사연이라면 이 비밀을 절대 밖으로 흘리지 않으리란 확신이 있었다.“뭐라고? 아버님이 주워 온 아이라고?”허사연이 깜짝 놀랐다.“그래. 하지만 이 사실을 아는 건 나뿐이야. 가족 중에서도 할아버지가 나한테만 알려주셨지.”진서준이 고개를 끄덕였다.“얼마 전, 오영수가 내 등에 있는 용을 보고는 내가 용맥의 일족이라고 했어. 그래서 오영수를 따라 여기 와서 오영수 셋째 삼촌에게 내 출신에 관해 알아보려 했던 거야.”“네 등에 용이 있다고? 난 한 번도 본 적 없는데?”허사연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그동안 둘이 알몸으로 함께한 시간도 적지 않은데 허사연은 한 번도 본 기억이 없었다.“내가 체내 혈기를 모을 때만 그 용이 나타나거든.”진서준이 설명을 이어갔다.“그런데 오영수 삼촌이 아직 돌아오질 않아서 일단은 여기서 며칠 기다려야 해.”“아니, 그럼 오씨 가문에서 널 안 재워줬어?”허사연이 의아해했다.명문대가인 오씨 가문에 빈방이 없을 리가 없었다.“그날 오영수를 찾아갔는데 마침 오영수 할아버지가 위중했어. 그리고 그 집안엔 그 어르신을 그냥 보내고 싶어 하는 사람이 있었지.”진서준이 담담하게
“진짜 예쁜 새색시 숨겨놓고 있었네?”허사연이 의미심장한 표정을 지었다.누구라도 자기 남자 방에 예쁘고 몸매가 완벽한 여자 하나가 같이 있는 걸 보면 의심 안 할 수가 없었다.게다가 지금은 아침이었다.설마 이 여자가 아침에 막 찾아온 건 아니겠지?“사연아, 오해야. 내가 제대로 설명할게.”진서준은 머리가 띵해졌고 뇌가 지진이라도 난 것 같았다.“아가씨, 오해하지 마세요. 어제 저랑 진서준이 같은 방에서 잔 건 맞지만 진짜 아무 일도 없었어요. 저 밤새 한숨도 못 잤다니까요?”도지아가 황급히 해명에 나섰다.“네? 밤새 안 자고도 아무 일 없었다고요?”허사연이 눈썹을 꿈틀거리며 되물었다.“설마 밤새 불태우느라 못 잔 건 아니겠죠?”허사연의 농담과 진담이 뒤섞인 말에 진서준은 헛웃음만 나왔다.“사연아, 이쪽은 도지아야. 우리 진짜 그냥 친구야. 일단 들어와. 천천히 설명할게.”허사연이 방에 들어오자 진서준은 서로에게 소개했다.그러고는 이 방에서 일어난 상황을 설명했다.“도지아는 황예은이 소개해 준 환자야. 다리 치료를 부탁받았거든. 종아리를 봐봐. 이틀 전에 내가 직접 발라준 연고가 있어.”허사연이 내려다보자 확실히 연고가 발라져 있었다.“그리고 도지아가 밤새 안 잔 건 원기를 수련하느라 그랬던 거야. 너도 예전에 수련한다고 며칠씩 안 잔 적 있잖아?”허사연은 오해가 풀리자 그제야 빙그레 웃었다.“내가 뭐 어쨌다고 그렇게 호들갑이야?”“혹시라도 오해할까 봐 그러는 거잖아.”진서준이 빠르게 대답했다.“뭐야? 내가 그렇게 의심 많고 질투 많은 여자로 보여?”허사연이 눈을 가늘게 떴다.“아, 아니지. 우리 사연은 누구보다 속이 넓은 부드러운 여자지.”진서준이 급히 정정했다.“됐어, 너 겁먹은 거 너무 귀엽다.”허사연이 피식 웃었다.“넌 여기 좀 쉬고 있어. 내가 방 하나 잡고 올게.”진서준은 더 머뭇거릴 틈도 없이 벌떡 일어나 나가 버렸다.진서준의 뒷모습을 보며 허사연은 그제야 웃음을 터뜨렸다.“도지아 씨, 진서준이
“내가 가면 안 돼?”사실 진서준은 거절하려 했었다.르벨은 안개가 짙게 깔린 늪지대 같은 곳이라 진서준조차도 어디에 함정이 있을지 가늠하기 어려웠다.그러니 허사연이 온다면 다칠 가능성이 컸다.하지만 거절하면 허사연이 상처받을 게 뻔했다.“당연히 되지. 지금 위치 보낼게.”진서준은 단호하게 말하며 위치를 보냈다.자기 여자를 지킬 자신도 없으면서 강자들을 상대한다는 건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자기야, 잘 자.”허사연이 애정 가득한 목소리로 말했다.“너도 일찍 자.”진서준이 다정하게 답했다.전화를 끊고 나니 진서준의 졸음이 싹 가셨다.진서준은 창가로 다가가 이 화려한 도시를 내려다봤다.“오씨 가문, 안씨 가문, 하씨 가문... 너희가 무슨 꿍꿍이를 꾸미든 난 전부 박살 낼 거야. 이번엔 반드시 나와 아버지의 정체를 밝혀내고 말겠어.”진서준의 눈빛이 날카롭게 빛났다.그렇게 별다른 사건 없이 밤이 지나갔다.다음 날 아침.진서준이 막 눈을 뜨자마자 도지아의 흥분한 외침이 들려왔다.“진서준, 됐어. 나 생겼어!”도지아는 눈 밑이 시커멓게 변해 있었는데 밤새 잠을 자지 않은 게 분명했다.진서준이 눈썹을 꿈틀거리며 물었다.“너 아직 처녀 아니었어? 대체 어떻게 임신한 거야?”“미친놈아, 임신은 개뿔, 무슨 헛소리야?”도지아는 얼굴이 빨개지며 진서준을 노려봤다.“그럼 왜 아침부터 난리야?”진서준이 되물었다.보통 사람이라면 이렇게 아침부터 흥분해 날뛰지 않을 것이다.“어제 네가 준 수련법 기억나지? 나 벌써 원기를 형성할 수 있게 됐어.”자기가 대단하다고 여긴 도지아는 자랑스럽게 선언했다.고작 하룻밤 만에 원기를 형성한 건 확실히 대단한 일이었다.“뭐? 그렇게 빠르다고? 너 타고난 천재 맞네?”진서준이 다소 의아한 표정을 보였다.보통 무인은 원기를 익히는 데만 최소 1년이 걸리는데 그것도 매일 꾸준히 수련할 경우에만 발생하는 일이었다.심지어 재능 있는 자들도 한두 달은 족히 걸린다.그런데 도지아는 단 하룻밤에 이 어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