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표 특전대와 가장 가까운 도시에 있는 공항은 군인들로 완전히 포위되어 있었다.그리고 멀지 않은 곳에 검은색 군용 허머가 도로 옆에 줄지어 서 있었다.허머에 앉아 있는 사람들의 표정은 심각하기 그지없었다.자세히 보면 그 사람들이 바로 설표 특전대 백여 명의 장병이란 걸 확인할 수 있었다.어젯밤 먹고 마시며 한껏 즐기던 모습과는 완전히 딴판이었고 각자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기세가 너무나도 무시무시했다.다들 그저 앉아 있기만 해도 사람을 숨 막히게 하는 압박감이 전해졌다.“교관님이 30분 후에 도착하신다. 전원 하차! 주변을 경계하고 불법침입자는 절대 허용하지 마라.”그 지시가 떨어지자 홍수가 터지듯 장병 백 명이 한순간 흩어져 모든 교통 요지를 지켰다.소정태는 군복을 정리하고 엄숙한 표정을 유지한 채 공항 홀 입구로 향했다.수천 명이 드나드는 공항이지만 지금은 고요함만이 감돌아 침 떨어지는 소리까지 들릴 정도였다.한편, 진서준 일행이 탑승한 비행기 안.진서준 일행 네 명은 조용히 가기 위해 비즈니스석을 예약했다.하지만 원치 않는 일은 늘 찾아오기 마련이다.허윤진 옆자리 쪽에 말쑥한 정장 차림에 롤렉스 시계를 찬 채 자리에 앉아 있는 남자가 있었다.이 남자는 누가 봐도 성공한 사람처럼 보였다.남자는 비행기에 탑승한 순간부터 지금까지 줄곧 허윤진을 쳐다보고 있었다.비행 도착까지 약 30분만 남았는데 이대로라면 두 사람 사이의 인연도 여기서 끝날 터였다.결국 정장남은 참지 못하고 자리에서 일어나 허윤진 쪽으로 다가갔다.“아가씨, 안녕하세요.”갑작스러운 인사에 졸음을 참던 허윤진이 고개를 들었다.“무슨 일이죠?”허윤진은 살짝 짜증 섞인 목소리로 물었다.“저는 성이 주라고 합니다. 파레 패션 소속 디자이너인데 아가씨 기품을 보고 우리 회사에서 모델로 활동해 보시는 게 어떨까 해서요. 연봉은 이 정도로 시작합니다.”정장남은 손가락 다섯 개를 펼쳐 보였다.조금 떨어진 곳에 앉아 있던 젊은 여성이 갑자기 소리를 질렀다.“어머나, 혹
“이게 네가 계급을 뛰어넘을 수 있는 절호의 찬스라는 걸 몰라? 파레 패션에 들어가서 모델이 되기만 하면 전 세계 부자를 만날 수 있어.”그렇게 말하면서 여자는 부러움이 가득한 표정을 지었다.정상적인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 부자와 인맥을 쌓고 싶고 누워서 돈 벌고 싶어 할 것이다“관심 없어.”허윤진은 냉랭하게 네 글자로 답하고는 바로 눈을 감고 휴식을 취했다.“안목도 없고, 기회를 잡을 줄도 모르니 당연히 가난하게 사는 거지.”여자는 허윤진을 매섭게 노려보며 비아냥거렸다.그러더니 표정을 싹 바꾸며 아부가 가득한 미소를 지었다.“주 디자이너, 저라면 가능할까요?”주성광은 그 여자를 위아래로 훑어보았다.외모는 허윤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차이가 컸고 얼굴은 성형 티가 팍팍 났지만 몸매는 그나마 볼만했다.'어쩔 수 없지, 차선책으로 가자.'“물론 가능하죠.”주성광은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정말요? 제가 진짜 파레 패션에 들어갈 수 있는 거예요?”여자는 감격에 겨워 눈물을 글썽였다.“제가 아가씨를 속일 필요가 있을까요?”주성광은 여전히 미소를 지으며 되물었다.“조금만 사고할 줄 아는 사람이라면 이게 사기라는 걸 눈치챌 거야.”진서준이 갑자기 입을 열었다.“한낱 디자이너가 무슨 권한으로 회사에 사람을 들일 수 있겠어?”주성광의 얼굴이 굳어졌다.그는 진서준의 말대로 확실히 그런 권한이 없었다.사실 아까 찝쩍댄 것도 허윤진의 얼굴과 몸매에 반해서였을 뿐이다.“닥쳐. 네가 뭘 안다고 떠드는데? 디자이너는 패션 회사에서 얼마나 높은 지위에 있는지 몰라? 디자이너 심기를 건드려 패션을 설계하지 않으면 회사가 망하는 건 시간문제야!”여자는 냉랭하게 웃으며 진서준을 비웃었다.그 말을 들은 진서준은 이 여자의 머릿속이 얼마나 단순한지 바로 알 수 있었다.진서준은 더 이상 대화에 끼어들지 않았다. 굳이 이렇게 미련한 사람과 말을 섞이고 싶지 않았다.진서준이 침묵을 지키자 여자는 자기가 반박하자 할 말을 잃었다고 생각하며 더욱 의기양
주성광의 머릿속은 온통 의문투성이였다.방금 한 바퀴 둘러봤지만 이곳에 대단한 인물이 있을 만한 흔적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사람들이 이곳의 진짜 대단한 인물이 누구인지 추측하는 가운데, 소정태는 이미 진서준 앞까지 걸어가고 있었다.“진 교관님! 저희 설표 특전대 전원이 특별히 교관님을 맞이하러 왔습니다.”정확하고 위엄 있는 군례를 본 사람들은 충격에 눈이 휘둥그레졌다.특히 조금 전 비즈니스석에 있던 몇몇 승객들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진서준을 바라봤다.이 청년이 이렇게 엄청난 배경을 숨기고 있었다니, 도저히 상상도 못 한 일이었다.얼마나 대단한 신분이면 특전대 대원들이 직접 나와 맞이하는 거지?“진 교관님, 환영합니다!”“진 교관님, 환영합니다!”공항에 있던 설표 특전대의 백여 명 전사들도 전부 경례하며 존경 어린 눈빛으로 진서준을 바라봤다.“수고했어요. 근데 다음엔 이렇게 거창하게 하지 않아도 돼요. 사실 이럴 필요 없거든요.”진서준이 평온한 어조로 말하자 소정태는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네, 다음엔 절대 그러지 않겠습니다.”사실 소정태도 진서준에게 최대한의 예의를 표하고 싶었을 뿐이었다.그 후, 사람들의 시선 속에서 진서준은 설표 특전대와 함께 공항을 떠났다.“맙소사, 방금 저 청년이 특전대 고위 인물이었다니, 정말 소름 돋는 일이야.”“저 청년이 이렇게 대단한 사람일 줄은 상상도 못 했어.”“쯧쯧, 역시 대단한 사람일수록 더 겸손한 태도를 보이는 법이지. 어떤 사람처럼 쥐꼬리만 한 명성을 얻었다고 온 세상에 자랑하려 드는 이들과는 다르게 말이야.”누군가 주성광을 빗대어 냉랭하게 말했다.주성광의 얼굴은 파랗게 질렸고 속에서 화가 치밀어 올랐지만 꾹 참고 있었다.“저기, 아가씨, 우리 어디로...”주성광이 말을 다 끝내기도 전에 방금까지 자기에게 붙어있던 그 성형 미인은 황급히 뒤로 물러섰다.“아, 갑자기 생각난 일이 있어요.”“젠장. 이게 뭔 망신이야!”주성광은 속으로 울부짖었다.이 자그마한 소동은
차량 행렬은 한 시간 이상을 달려 드디어 설표 특전대 기지에 도착했다.설표 특전대가 돌아왔다는 소식을 들은 기타 7대 특전대의 모든 병사가 나와 구경했다.차 문이 열리자 수백 쌍의 눈이 일제히 차를 향해 집중됐다.모든 사람의 시선 속에서 진서준은 무심한 표정으로 차에서 내렸다.“설마 저 자식이 설표 특전대 교관이란 말인가?”“아니, 절대 그럴 리가 없어. 설표 특전대가 미쳤다면 모르겠지만 어떻게 저런 애를 교관으로 세울 수 있겠어?”“불가능한 건 없어, 설표 특전대가 그런 짓을 할 가능성도 충분히 있어.”고인권이 냉랭하게 말을 마치자마자 소정태가 차에서 내려왔다.다들 설표 특전대 총사령관을 보자 충격에 눈이 튀어나올 뻔했다.“세상에, 저 애송이가 정말 설표 특전대 교관이라고?”“그게 말이 돼? 저 애송이는 심지어 자기 여자도 데려왔는데? 뭐 여기로 휴가 온 줄 알겠지?”“설표 특전대가 이 정도로 미쳐 있을 줄은 몰랐어. 심지어 총사령관도 미친 것 같아.”기타 특전대 대원들은 전부 혀를 끌끌 찼다.설표 특전대의 교관은 아무리 봐도 평범한 애송이였고 그들 특전대 대원와 비교해도 비슷한 나이대인 것 같았다.심지어 일부 대원은 진서준보다도 나이가 더 많아 보였다.그런데 저렇게 이마에 피도 마르지 않은 애송이를 교관으로 세우다니, 정말 어처구니없는 일이었다.“우리 대한민국에선 젊은 청년이 교관이 된 선례가 있긴 해. 근데 그 청년은 그 후에 전신전의 전주가 됐어. 이 자식이 뭐 설마 전신전 전주급 사람이겠어? 전혀 들어본 적도 없는 사람인데?”누구도 소정태가 왜 그런 결정을 내렸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오히려 고인권과 진서준을 본 적 있는 몇몇 흑기린 군인이 멍한 표정으로 진서준을 바라보고 있었다.“저 자식이 설표 특전대 교관이었어?”“왜 그래? 너희는 저 사람을 본 적 있어?”누군가 궁금해서 질문을 던졌다.“알지, 며칠 전 서울에서 임무를 수행할 때, 저 자식과 마주친 적이 있어.”고인권이 눈썹을 추켜세우며 말했다.“그래서 저
모두가 설표 특전대를 대놓고 깔봤다.다들 이번 8대 특전대 대회에서 설표 특전대가 꼴찌 자리를 차지할 거라고 확신하는 분위기였다.병사 하나가 어리석으면 그뿐이지만 사령관이 어리석으면 그 특전대는 미래가 보이지 않는 법이다.설표 특전대가 데려온 교관만 봐도 결말은 이미 예고된 거나 다름없었다.진서준은 살짝 의아한 표정으로 소정태를 바라보며 물었다.“저 사람들이 말하는 게 사실입니까?”“우리 식구는 반달 넘게 고생하면서 훈련했습니다. 그래서 전투가 가까워지니까 제가 다들 그동안 고생한 대가로 조금 휴식하게 한 겁니다.”소정태는 조심스레 설명하면서도 혹시나 진서준이 자기 해명을 듣고 화낼까 봐 조마조마했다.“사람이라면 다 그런 법이죠. 저도 예전에 중요한 시험 전에 푹 휴식하곤 했어요.”허윤진이 소정태를 거들었다.설표 특전대 대원들은 뭔가 큰 실수를 저지른 학생이 선생님을 대하는 모습으로 하나같이 긴장한 얼굴로 서 있었다.다들 소정태와 같은 생각이었다. 진서준이 혹시나 그들을 꾸짖을까 봐 조마조마한 마음을 안고 있었다.다들 긴장한 모습을 보이자 기타 특전대 사람들은 더욱 놀라 말문이 막혔다.이건 설표 특전대 대원이 아니라 전투 부서에 막 입대한 신병 같았다.하지만 예상외로 진서준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그랬네요. 반달 동안 놀고먹기만 한 줄 알았네요.”“교관님, 반달 동안 우리는 정말 열심히 훈련했습니다. 내일은 그 결과를 보여드릴 시간입니다.”장서안이 진지하게 말하자 진서준은 웃으며 답했다.“좋아, 내일 너희들의 멋진 모습을 기대할게.”사실 진서준은 지금 설표 특전대의 모습이 반달 전과 비교해 엄청나게 달라진 걸 눈치챌 수 있었다.대원들의 실력이 최소 두 배는 상승한 게 확실해 보였다.이제 그들이 다른 특전대를 상대할 때, 더 이상 꼴찌 자리에 있을 일은 없을 것이다.도대체 어떤 성적을 따낼지, 진서준은 진심으로 기대하고 있었다.흑기린을 지나갈 때, 고인권이 앞으로 나서서 진서준 일행의 길을 막자 소정태가 급히 물었다.
“그럼 내일 과연 너희 뜻대로 될지 두고 보자.진서준은 더 이상 길게 해명하려고 하지 않았다.구구절절 해명해 봐야 입만 아플 뿐, 어차피 이 사람들은 믿지 않을 것이다.내일 대회에서 설표 특전대가 엄청난 실력으로 이들 모두에게 따끔한 교훈을 줄 것이다.“설표 특전대 교관, 내가 네게 도전하겠어.”그때, 나이대가 진서준과 비슷한 흑기린 전투복을 입은 청년이 앞으로 나섰다.강자가 많기로 유명한 흑기린에서도 이 사람의 기세는 다른 사람과 눈에 띌 정도로 차이 났다.“저 청년은 흑기린 최고 천재 한어준이잖아.”“한어준은 이미 종사 정점에 오른 강자야. 대종사와 맞먹는 실력을 갖췄다고 들었어.”“예전에 데이터를 보니까 한어준이 참여한 임무는 실패한 적이 없었어.”사람들은 단번에 이 흑기린 최고의 천재를 알아봤다.한어준은 긴장된 표정으로 진서준을 빤히 노려보며 말했다.“네가 설표 특전대 교관이 될 수 있다는 건 네 실력이 약하지 않다는 뜻이지. 그래서 내가 네 실력이 도대체 어떤 수준인지 알아보려고 도전하는 거야.”“내게 도전한다고? 확실해?”진서준은 돌발 상황에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동년배 중에서 정점 실력의 종사는 확실히 자랑할 만한 일이지만 진서준에게는 너무 하찮은 일이었다.“왜? 겁나서 도전을 못 받아들이겠어?”한어준은 눈을 가늘게 뜨며 말을 이었다.“겁나면 여기서 얼른 나가. 설표 특전대 명예에 먹칠이나 하지 말고.”“널 상대하는데 왜 우리 교관님이 나서야 해? 나 혼자서도 널 제압할 수 있어.”장서안이 바로 앞으로 나서서 한치의 두려움도 없이 한어준을 똑바로 바라보았다.예전의 장서안이라면 이럴 용기가 없었지만 지금은 진짜 흑기린 천재 한어준을 상대하는 게 버겁다고 생각하지 않았다.장서안도 설표 특전대 천재인지라 자부심이 넘쳐났다.“작년에 날 이기지도 못한 녀석이 무슨 용기로 이렇게 나대는 거야?”한어준은 장서안의 태도가 우스웠다.“그때는 내가 널 이기지 못했지만 이제는 승패가 과연 어떻게 날지 누구도 장담할 수 없
군대에서 약자가 강자를 동경하는 건 흔한 일이었다.고인권을 비롯한 군인이 진서준을 무시하는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일반적인 상식을 따지면 군대에서 별다른 명성도 없는 20대 초반 청년이 강자일 리 없기 때문이었다.진서준도 고인권 일행이 설표 특전대를 진심으로 걱정하는 마음을 느낄 수 있었다.항상 꼴찌만 하던 설표 특전대가 이제 이런 청년을 데려와서 교관으로 임명하다니, 외부인의 눈에는 설표 특전대가 자포자기하는 거나 다름없었다.항상 시험에서 꼴찌를 하는 학생이 수능을 한 달 앞두고 일곱 살짜리 초등학생을 개인 교사로 초빙하는 것과 같은 도리였다.모든 사람이 그 학생은 수능을 망칠 거라고 굳게 믿을 것이다.지금 설표 특전대가 딱 그런 상황이었다.아무도 설표 특전대를 믿지 않았고 그 누구도 진서준을 제대로 평가하지 않았다.“진 교관님, 오늘 휴식할 방을 안내해 드릴게요.”소정태가 진서준을 데리고 휴게실로 갔다.진서준과 허윤진은 각각 하나씩 방이 있었다.“진 교관님, 필요하신 게 있으면 언제든지 제게 전화 주세요. 제가 할 수 있는 거라면 꼭 해결해 드릴게요.”소정태의 말에 진서준이 입을 열었다.“좋아요, 그럼 약재 리스트를 적을 테니 그 약재를 구해주세요.”“알겠습니다!”곧 진서준은 펜을 날려 처방전을 작성했다.“바로 사람을 보내서 구입하겠습니다.”“수고해요.”소정태가 떠난 뒤, 허윤진이 호기심에 물었다.“방금 작성한 건 무슨 처방전이야? 저 전사들에게 줄 거야?”“아니야, 그 처방전은 내가 쓸 거야.”진서준이 고개를 저으며 부인했다.“네가 쓴다고? 병이라도 난 거야?”허윤진은 곧바로 진서준의 몸 상태가 걱정되었다.“아니, 최근에 내 몸의 체력이 한계에 다다랐다고 느껴서 좀 더 강해져야 할 것 같아 약을 구한 거야.진서준의 설명에 허윤진은 반쯤 이해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허윤진은 진서준이 어떤 방식으로 수련하는지 잘 이해하지 못했다.허윤진과 허사연은 수련할 때 체내의 영기만 수련했지만 진서준은 영기 외에 몸도
“진서준이 설표 특전대 교관이 된 것도 진씨 가문 어르신이 힘을 쓴 덕분입니다.”부사령관의 설명을 듣자 다들 그제야 상황을 이해하고는 얼굴에 경멸이 가득한 표정을 떠올렸다.“역시 집안 배경을 믿고 들어온 거였구나.”“진씨 가문은 대한민국 4대 가문 중 하나잖아. 게다가 진씨 가문 어르신 입김이 닿으니 특전대가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인 거지.”“쯧쯧, 상부에서 설표 특전대를 없애려는 의도가 아니었나 싶어. 그 자식이 온 이유가 바로 그거야.”“맞아, 그렇지 않으면 우리한테 배치해서 체면이라도 세워줬을 텐데. 소문이 퍼지면 적어도 창피하지 않잖아.”일곱 명이 진서준의 입대에 관해 이런저런 추측을 널어놓았다.고인권은 냉랭하게 웃으며 결론을 내렸다.“어쨌든 내일은 설표 특전대를 철저히 무너뜨려야 해. 설표 특전대 대원들에게 약자는 특전대에 있을 수 없다는 걸 확실히 알려줘야 해.”모두가 고인권의 결론을 따라 내일 설표 특전대가 군부에 계속 남을 자격이 없게 무자비하게 공격해야 한다는 결정을 내렸다.다들 내일 대회를 무척 기대했고 당장이라도 대회에서 실력을 과시하고 싶었다.물론 자기를 증명할 기회를 간절히 바라는 설표 특전대 대원들도 손꼽아 내일 대회를 기다렸다.가장 중요한 건 진서준에게 인정받는 것이었고 그건 설표 특전대 대원들의 궁극적인 목표이기도 했다.밤이 되자 진서준이 필요했던 약재가 모두 도착했다.설표 특전대 주변은 산으로 둘러싸여 있었고 진서준은 설표 특전대 사람들에게 약재를 근처 산 중턱으로 옮기게 했고 약재와 함께 큰 나무통도 함께 옮겼다.“자, 이제 다들 내려가. 오늘은 아무도 산에 오지 않게 해줘.”진서준이 지시를 내리자 장서안이 단호하게 말했다.“알겠습니다, 진 교관님, 걱정 마세요. 우리 설표 특전대는 이 산을 파리 한 마리라도 들어오지 못하게 제대로 지키겠습니다.”기세가 등등한 대원들을 보며 진서준은 미소 지으며 그들의 호의를 거절하지 않았다.진서준은 약재에 내포된 약력 약 100근을 영기로 눌러 나무통에 떨어뜨렸
“뭐라고? 불법적인 일이 우리 가게에서 일어난다고? 말도 안 돼.”성현도가 헛웃음을 지으며 말을 이었다.“넌 전신전 소속이잖아. 그런데 네 오빠인 내가 어떻게 법률을 어기는 일을 하겠어?”“그럼 이 사람들은 왜 부른 거야? 집단 폭력도 불법이거든.”성미영은 차가운 시선을 보이며 성현도와 따졌다.“미영아, 이건 내가 싸우려던 게 아니야. 저 녀석이 일부러 시비 걸러 온 거라고.”성현도는 진서준을 손가락질하며 말했다.“이놈이 일부러 우리 찻집에 난입해 행패를 부리고 상철을 두들겨 패서 머리에 혹이 다 나버렸어. 난 단순히 정당방위를 위해 부른 거라고.”성미영이 등장하자 성현도는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솔직히 실력만 놓고 보면 성현도는 성미영보다 한참 부족했다.게다가 성미영은 전신전 소속인지라 저 남녀가 군부 조직인 전신전을 적으로 돌릴 리 없었다.군대를 건드리는 순간, 무조건 좋은 결과는 있을 수 없었다.“진서준, 도대체 무슨 일이야?”성미영이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어라? 너희 둘이 아는 사이야?”성현도가 눈을 휘둥그레 뜨며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을 지었다.방금 내려놨던 마음이 다시 불안해지기 시작했다.“난 사람을 찾으러 왔어. 하씨 가문 하경범이 이 위층에 있다고 들었는데 진짜인지 가짜인지 모르겠어.”진서준이 손가락으로 위를 가리켰다.“그리고 또 하나, 저 위에서 불법적인 일이 벌어지고 있다고도 하더군. 그게 사실인지 아닌지도 모르겠어.”이 말에 성현도의 표정이 단숨에 험악해졌고 즉시 반박에 나섰다.“헛소리 마. 우리 가게는 단순한 찻집이야. 불법적인 일 따윈 없어. 근거없는 소문을 왜 털어놓고 난리야?”“미영아, 저 녀석한테 속지 마. 난 네 사촌 오빠야. 내가 그런 불법적인 짓을 할 사람이겠어?”성미영이 곧바로 진서준에게 물었다.“진서준, 너 증거 있어?”“직접 올라가 보면 다 알게 될 거잖아?”진서준이 가볍게 말했다.“오빠, 위층으로 가자.”성미영이 단호하게 말했다.“그, 그건 좀 곤란해. 위층엔 귀
순간, 장내는 숨소리조차 들릴 정도로 조용해졌다.모든 시선이 진서준에게 쏠렸고 사람들은 할 말을 잃어버렸다.다들 진서준을 그냥 얼굴만 반반한 남자라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진짜 고수였다.성현도의 부하 중 최고 실력자조차 상대가 되지 않았다.성현도의 얼굴은 시퍼렇게 질렸고 상철을 향해서 욕설을 날렸다.“쓰레기 자식, 이런 애송이 하나도 못 이겨?”부하가 지면 망신당하는 건 결국 성현도 자신이었다.이대로 체면을 구긴 채 끝낼 수는 없었다.이대로 넘어가면 앞으로 르벨 재벌 2세들 사이에서 조롱거리가 될 게 뻔했다.“이봐, 네 실력이 괜찮은 건 인정할게.”성현도가 싸늘한 얼굴로 말을 이었다.“근데 너 혼자서 백 명을 상대할 수 있어? 천 명은? 잘 들어. 내 부하는 수도 없이 많아. 너 같은 놈 하나 처리하는 데 전화 한 통이면 충분해.”진서준은 눈썹을 꿈틀거리며 여전히 같은 말을 반복했다.“다시 말하지만 난 그냥 하경범을 찾으러 온 거야. 그 녀석만 넘기면 오늘 일은 없던 걸로 해주지.”“없던 걸로 한다고?”성현도가 그 말에 어이없어 헛웃음이 나왔다.“너 지금 누굴 상대로 협상하려 드는 거야? 난 성씨 가문의 직계야. 날 건드리면 상대해야 할 건 나 하나가 아니라 우리 가문 전체라고.”그때, 밖에서 다급한 발소리가 들려오더니 곧이어 검은색 전투복을 입은 남자들이 우르르 몰려왔다.이 남자들은 전부 성씨 가문의 경호원이었고 실력도 만만하지 않았다.그것도 한둘이 아니라 무려 50명 이상이었다.한순간에 텅 비어 있던 로비가 사람들로 꽉 찼다.“저 자식 끝났네. 이 정도 성씨 가문 인원이라면 아무리 강해도 버틸 수가 없지.”“그러게 말이야. 이런 상황에서 살아남을 수 없잖아.”“왜 쓸데없이 성현도를 건드린 거지? 스스로 무덤을 판 거잖아.”구경꾼들은 이 광경에 각자 다른 감정을 보였다.누군가는 동정을, 누군가는 아쉬움을, 또 누군가는 짙은 흥미를 보였다.“사연아, 넌 좀 쉬어. 이놈들은 내가 처리할게.”진서준이 앞으로 나섰다.
얼마 지나지 않아 키가 거의 2미터에 달하는 거구의 사내가 찻집 안으로 들어왔다.남자는 그냥 서 있기만 해도 엄청난 위압감이 느껴졌다.“상철아, 저놈 다리 하나 부러뜨려서 내던져.”성현도가 진서준을 가리키며 명령했다.“알겠습니다.”상철은 간단하게 대답하고는 진서준에게 성큼성큼 다가갔다.“서준아, 내가 할게.”허사연의 눈에는 불꽃 같은 전투욕이 타올랐다.“조심해. 저 녀석은 횡련 종사야. 그렇게 만만한 상대가 아니야.”진서준이 조용히 귀띔했다.“알았어. 설령 못 이긴다고 해도 어차피 네가 있잖아?”허사연이 장난스럽게 웃었다.진서준이 곁에 있는 한, 허사연은 아무것도 두렵지 않았다.“이봐, 사내자식이 여자 뒤에 숨는 게 말이 돼?”상철이 눈썹을 추켜세우며 불쾌한 표정을 지었다.“이봐, 껑충이. 여자를 얕보지 마. 일단 이기고 나서 말해.”허사연이 상철을 도발했다.“아가씨, 그런 기생오라비 말고 날 따르지 그래? 밤마다 널 천국으로 보내줄 수 있는데?”상철이 음흉하게 웃었다.“죽고 싶어 환장했구나.”얼굴이 싸늘해진 허사연이 주먹을 날렸다.강렬한 펀치가 공기를 가르며 폭발음을 일으켰고 그 위력은 철판도 뚫을 수 있을 정도였다.하지만 상철은 비웃듯 입꼬리를 올렸다.“내가 가만히 서 있어도 넌 날 어쩔 수 없어.”“닥쳐!”허사연이 분노에 차 주먹을 그대로 상철의 얼굴로 내리꽂았다.상철은 일부러 머리를 숙이며 대머리 정수리로 받아냈다.쿵!둔탁한 충돌음이 울려 퍼졌다.주먹이 상철의 머리를 강타했으나 대머리는 꿈쩍도 하지 않았고 오히려 허사연이 몇 걸음 물러섰다.순간 손에 뜨거운 통증이 밀려왔고 뼈가 부서질 것 같았다.손을 확인하자 하얀 피부였던 손등이 새빨갛게 부어올랐다.상철은 자기 머리를 한번 쓸어내리더니 빙그레 웃었다.“아가씨, 이제 내 실력을 알겠지?”그 모습에 허사연의 승부욕이 다시 불타올랐고 콧방귀를 뀌며 다시 달려들었다.이번에는 다리를 높이 들어 올려 상철의 머리를 내려찍었다.‘머리가 단단하다고 자랑하
이렇게 예쁘고 섹시한 여자가 싸움 실력이 이렇게 대단할 줄은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다.완전 여성판 이소룡이었다.“너, 너희들 정말 너무 대담한 거 아니야? 여기가 어디인지 알기나 해? 어디서 대놓고 싸움질이야?”종업원은 순간 놀란 뒤 분노에 찬 얼굴로 진서준와 허사연을 가리켰다.찻집이 문을 연 이후로 이렇게 난동을 부리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고 진서준과 허사연이 첫 사례였다.주변의 구경꾼들도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싸움 좀 하면 뭐해? 여긴 성씨 가문의 구역이야. 성씨 가문에서 한마디만 하면 저 남녀는 오늘 밤중으로 사라지겠지.”“어휴, 저 여자 너무 아까워. 저렇게 예쁜데 왜 죽지 못해서 안달이지?”“여자는 살 수도 있겠지만 남자는 무조건 죽을걸.”사람들은 저마다 수군거리며 이미 진서준과 허사연의 결말을 예상하는 듯했다.“그럼 네 말대로라면 내가 널 때린다 해도 얌전히 맞고 있어야 한다는 거야?”허사연은 눈썹을 꿈틀거리며 종업원에게 다가갔다.“오지 마!”종업원은 겁에 질려 연신 뒷걸음질 쳤다.“어떤 미친놈이 내 구역에서 소란을 피우는 거야?”그 순간, 2층에서 한 사람이 내려왔다.모두가 일제히 시선을 돌려 그 사람을 확인하자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성현도가 오늘 여기 있었네?”누군가 그 청년을 알아보았다.“저 둘 끝장났네. 성현도는 악명 높은 냉혈한이야.”그 청년은 바로 찻집의 사장인 성현도였다.성현도는 르벨 재벌 2세 사이에서 유명한 인물이었다.친구에게는 무조건 의리를 지키지만 적에게는 무자비했다.성현도의 고문 방법은 수도 없이 많았고 게다가 무인으로서 무공 실력도 상당했다.“사장님, 저 남녀가 와서 난동을 부렸어요.”종업원은 성현도를 보자마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사장이 나온 걸 확인한 허사연은 주먹 한 방에 종업원을 기절시켜 버렸다.“뭐야?”성현도의 눈이 가늘어졌고 표정이 험악해졌다.자기 앞에서 대놓고 부하를 때리다니, 이건 너무나도 명백한 도발이었다.“아가씨, 우리 처음 보는 사이 맞지? 우리
그리고 오후 2시가 되자 진서준은 허사연을 데리고 조호가 말한 천국찻집으로 향했다.겉모습만 보면 이 찻집은 진짜 전통찻집 같았고 규모도 꽤 컸다.하지만 막상 안에 들어가 보니 전혀 다른 세상이 펼쳐져 있었다.1층과 2층까지는 정말 평범한 찻집처럼 꾸며져 있었고 누가 봐도 이상한 점을 찾기 어려울 정도였다.하지만 3층으로 올라가려면 회원권이 있어야 하거나 사장이 직접 허락한 사람만 출입할 수 있었다.“손님, 아가씨, 이쪽으로 안내해 드리겠습니다.”진서준과 허사연이 차를 마시러 온 줄 안 종업원이 빠르게 달려와 안내하려 했다.“그럴 필요 없어. 난 하경범을 찾으러 왔거든.”진서준이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네?”종업원이 순간 얼어붙었다.“혹시 하씨 가문의 하 도련님을 말씀하시는 겁니까?”“맞아.”진서준이 고개를 끄덕였다.“손님은 누구신지...”종업원이 신중하게 물었다.진서준은 잠시 생각하다가 말했다.“그냥 복수하러 왔다고 전해.”그놈 아버지라고 하는 건 자기를 모욕하는 것과 같았고 친구라고 하기도 기분이 더러웠다.그 말에 종업원의 얼굴색이 확 변했다.“손님, 여기서 장난치지 마세요.”하경범은 르벨에서 유명한 재벌 2세였다.이 찻집의 사장과도 막역한 사이였고 여기서 일하는 직원이라면 그 사실을 모를 리 없었다.“왜? 못 믿겠어?”진서준이 피식 웃으며 되물었다.“손님, 하 도련님에게 복수하려던 사람은 단 하루도 살아남지 못했습니다.”종업원이 경고하듯 말했다.“그런 농담은 함부로 하는 게 아닙니다.”그 말을 듣자 진서준은 담담하게 말했다.“그럼 이렇게 전해. 그 하경범이 두들겨 맞고 나자빠지게 했던 진서준이 왔으니 당장 기어 나오라고 말이야.”진서준의 뻔뻔한 태도에 종업원은 어이가 없었다.“좋습니다. 손님이 그렇게 죽고 싶다면 제가 기꺼이 도와드리죠.”종업원은 바로 무전기를 꺼내 들었다.“문제 발생했습니다. 난동자가 있습니다.”쿵! 쿵!급한 발소리가 들리더니 곧이어 건장한 남자 스무 명이 들이닥쳤다.전부 검은
진서준과 허사연은 차를 타고 조호의 회사로 향했다.이 회사는 그냥 겉치레일 뿐, 진짜 돈이 들어오는 곳은 유흥업소들이었다.유흥업소를 얕잡아보면 안 된다.운 좋게 돈 많은 도련님들이라도 걸리면 하룻밤에 수억 원이 순식간에 손에 들어오게 될 것이다.“진서준 씨!”진서준이 들어서자 조호는 황급히 자리에서 일어나 공손한 태도를 보였다.조호는 진서준 옆에 있는 허사연을 힐끗 쳐다본 뒤 고개를 숙이고 감히 더 볼 엄두도 내지 못했다.“잡담은 그만하고 하경범을 잡아가는 제일 좋은 타이밍만 말해.”진서준이 직설적으로 물었다.이 말에 조호는 속으로 크게 놀랐다.“매일 오후마다 하경범은 천국찻집이라는 곳에 갑니다.”조호는 재빨리 대답했다.“보통은 경호원 몇 명만 데리고 가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얼씨구? 저런 인간이 매일 차나 마시러 간다고?”진서준은 의외라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그게... 진서준 씨, 사실 그곳은 이름만 찻집이지 실제로는...”조호는 옆에 여성이 있다는 걸 의식해서 말을 흐렸지만 진서준은 그 뜻을 단번에 알아챘다.“알겠어.”진서준이 고개를 끄덕였다.차를 마시는 곳이 아니라 그냥 인기 많은 인터넷 셀럽이 가득한 고급 유흥업소일 것이다.“진서준 씨, 듣자 하니 그 찻집의 주인은 성씨 가문의 사람이라고 합니다. 진짜로 움직이실 거라면 하경범이 이동 중일 때를 노리는 게 좋을 겁니다.”조호가 조심스럽게 조언했다.“응? 성씨 가문이 이런 사업도 해?”진서준은 흥미롭다는 듯 눈썹을 꿈틀거렸다.진서준은 오영수에게서 성미영에 대한 정보를 들은 적이 있었다.정의로운 성격의 성미영이 자기 가문에서 이런 유흥업소를 운영하고 있다는 걸 알게 되면 절대 가만히 있지 않을 터였다.“네, 듣기로는 성씨 가문의 한 직계 후손이 운영한다고 합니다. 여자에 미쳐 있는 놈이라 르벨의 돈 많은 도련님들과 꽤 친분이 깊다고 하더군요.”조호는 본인이 아는 정보를 전부 쏟아냈다.“좋아, 대충 알겠어.”진서준이 고개를 끄덕였다.조호의 회사를 나온
진서준이 허사연의 캐리어를 들어주며 옆방으로 걸어갔다.그 뒷모습을 보며 도지아는 부러움이 가득한 눈빛을 보냈다.인간은 원래 모여서 사는 걸 선호하는 동물이다.사회를 벗어나서 혼자 살아가는 건 생각보다 훨씬 힘든 일이었다.가족도 친구도 없이 너무 오래 지내다 보면 결국 감정 없는 시체나 다름없는 존재가 되어버린다.그렇게 되면 사람과 짐승의 차이가 없어질 것이다.“어제 전화할 때 그랬었지? 이번에 너 자기 출신을 찾으러 온 거라고.”호텔 방으로 돌아온 후, 허사연이 호기심 가득한 얼굴로 물었다.“너 원래 경성 진씨 가문 사람이잖아?”“나도 그렇게 알고 있었어. 그런데 할아버지가 예전에 말해주셨어. 사실 우리 아버지는 어릴 때 길에서 주워 온 아이였다고.”진서준은 허사연에게 숨길 생각이 없었다.허사연은 진서준이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었다.허사연이라면 이 비밀을 절대 밖으로 흘리지 않으리란 확신이 있었다.“뭐라고? 아버님이 주워 온 아이라고?”허사연이 깜짝 놀랐다.“그래. 하지만 이 사실을 아는 건 나뿐이야. 가족 중에서도 할아버지가 나한테만 알려주셨지.”진서준이 고개를 끄덕였다.“얼마 전, 오영수가 내 등에 있는 용을 보고는 내가 용맥의 일족이라고 했어. 그래서 오영수를 따라 여기 와서 오영수 셋째 삼촌에게 내 출신에 관해 알아보려 했던 거야.”“네 등에 용이 있다고? 난 한 번도 본 적 없는데?”허사연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그동안 둘이 알몸으로 함께한 시간도 적지 않은데 허사연은 한 번도 본 기억이 없었다.“내가 체내 혈기를 모을 때만 그 용이 나타나거든.”진서준이 설명을 이어갔다.“그런데 오영수 삼촌이 아직 돌아오질 않아서 일단은 여기서 며칠 기다려야 해.”“아니, 그럼 오씨 가문에서 널 안 재워줬어?”허사연이 의아해했다.명문대가인 오씨 가문에 빈방이 없을 리가 없었다.“그날 오영수를 찾아갔는데 마침 오영수 할아버지가 위중했어. 그리고 그 집안엔 그 어르신을 그냥 보내고 싶어 하는 사람이 있었지.”진서준이 담담하게
“진짜 예쁜 새색시 숨겨놓고 있었네?”허사연이 의미심장한 표정을 지었다.누구라도 자기 남자 방에 예쁘고 몸매가 완벽한 여자 하나가 같이 있는 걸 보면 의심 안 할 수가 없었다.게다가 지금은 아침이었다.설마 이 여자가 아침에 막 찾아온 건 아니겠지?“사연아, 오해야. 내가 제대로 설명할게.”진서준은 머리가 띵해졌고 뇌가 지진이라도 난 것 같았다.“아가씨, 오해하지 마세요. 어제 저랑 진서준이 같은 방에서 잔 건 맞지만 진짜 아무 일도 없었어요. 저 밤새 한숨도 못 잤다니까요?”도지아가 황급히 해명에 나섰다.“네? 밤새 안 자고도 아무 일 없었다고요?”허사연이 눈썹을 꿈틀거리며 되물었다.“설마 밤새 불태우느라 못 잔 건 아니겠죠?”허사연의 농담과 진담이 뒤섞인 말에 진서준은 헛웃음만 나왔다.“사연아, 이쪽은 도지아야. 우리 진짜 그냥 친구야. 일단 들어와. 천천히 설명할게.”허사연이 방에 들어오자 진서준은 서로에게 소개했다.그러고는 이 방에서 일어난 상황을 설명했다.“도지아는 황예은이 소개해 준 환자야. 다리 치료를 부탁받았거든. 종아리를 봐봐. 이틀 전에 내가 직접 발라준 연고가 있어.”허사연이 내려다보자 확실히 연고가 발라져 있었다.“그리고 도지아가 밤새 안 잔 건 원기를 수련하느라 그랬던 거야. 너도 예전에 수련한다고 며칠씩 안 잔 적 있잖아?”허사연은 오해가 풀리자 그제야 빙그레 웃었다.“내가 뭐 어쨌다고 그렇게 호들갑이야?”“혹시라도 오해할까 봐 그러는 거잖아.”진서준이 빠르게 대답했다.“뭐야? 내가 그렇게 의심 많고 질투 많은 여자로 보여?”허사연이 눈을 가늘게 떴다.“아, 아니지. 우리 사연은 누구보다 속이 넓은 부드러운 여자지.”진서준이 급히 정정했다.“됐어, 너 겁먹은 거 너무 귀엽다.”허사연이 피식 웃었다.“넌 여기 좀 쉬고 있어. 내가 방 하나 잡고 올게.”진서준은 더 머뭇거릴 틈도 없이 벌떡 일어나 나가 버렸다.진서준의 뒷모습을 보며 허사연은 그제야 웃음을 터뜨렸다.“도지아 씨, 진서준이
“내가 가면 안 돼?”사실 진서준은 거절하려 했었다.르벨은 안개가 짙게 깔린 늪지대 같은 곳이라 진서준조차도 어디에 함정이 있을지 가늠하기 어려웠다.그러니 허사연이 온다면 다칠 가능성이 컸다.하지만 거절하면 허사연이 상처받을 게 뻔했다.“당연히 되지. 지금 위치 보낼게.”진서준은 단호하게 말하며 위치를 보냈다.자기 여자를 지킬 자신도 없으면서 강자들을 상대한다는 건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자기야, 잘 자.”허사연이 애정 가득한 목소리로 말했다.“너도 일찍 자.”진서준이 다정하게 답했다.전화를 끊고 나니 진서준의 졸음이 싹 가셨다.진서준은 창가로 다가가 이 화려한 도시를 내려다봤다.“오씨 가문, 안씨 가문, 하씨 가문... 너희가 무슨 꿍꿍이를 꾸미든 난 전부 박살 낼 거야. 이번엔 반드시 나와 아버지의 정체를 밝혀내고 말겠어.”진서준의 눈빛이 날카롭게 빛났다.그렇게 별다른 사건 없이 밤이 지나갔다.다음 날 아침.진서준이 막 눈을 뜨자마자 도지아의 흥분한 외침이 들려왔다.“진서준, 됐어. 나 생겼어!”도지아는 눈 밑이 시커멓게 변해 있었는데 밤새 잠을 자지 않은 게 분명했다.진서준이 눈썹을 꿈틀거리며 물었다.“너 아직 처녀 아니었어? 대체 어떻게 임신한 거야?”“미친놈아, 임신은 개뿔, 무슨 헛소리야?”도지아는 얼굴이 빨개지며 진서준을 노려봤다.“그럼 왜 아침부터 난리야?”진서준이 되물었다.보통 사람이라면 이렇게 아침부터 흥분해 날뛰지 않을 것이다.“어제 네가 준 수련법 기억나지? 나 벌써 원기를 형성할 수 있게 됐어.”자기가 대단하다고 여긴 도지아는 자랑스럽게 선언했다.고작 하룻밤 만에 원기를 형성한 건 확실히 대단한 일이었다.“뭐? 그렇게 빠르다고? 너 타고난 천재 맞네?”진서준이 다소 의아한 표정을 보였다.보통 무인은 원기를 익히는 데만 최소 1년이 걸리는데 그것도 매일 꾸준히 수련할 경우에만 발생하는 일이었다.심지어 재능 있는 자들도 한두 달은 족히 걸린다.그런데 도지아는 단 하룻밤에 이 어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