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준아, 저 사람들 설마 네가 부른 건 아니겠지?”모두의 시선이 단숨에 진서준에게 쏠렸다.“맞아요, 제가 부른 겁니다.”진서준이 고개를 끄덕였다.“저 사람들은 누구지? 어디서 본 것 같은데... 저건 혹시 8대 특전대 깃발인가?”유기명이 미간을 찌푸리며 확인하느라 애썼다.거리가 멀어서 윤곽만 희미하게 보일 뿐, 저 사람들이 정확히 누구인지는 가까이 가야 확인할 수 있었다.“가까이 가보면 알 겁니다.”진서준이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말을 아꼈다.호기심이 가득한 유기명 일행은 진서준을 따라 군중 쪽으로 향했다.가까이 다가가자 유기명 일행은 그대로 얼어붙었다.“8대 특전대가 전부 다 왔잖아!”강한 바람에 휘날리는 깃발들은 전부 대한민국 군부 최정예를 상징하는 8대 특전대 것들이었다.“그리고... 전설의 전 도사님, 한 상경님까지 어쩌다가 여길... 저 사람은 설마... 샛터 소하비 왕자인가?”그야말로 전설 속 인물들이 눈앞에 한꺼번에 나타나자 서남 지역 최고의 가문을 자처하던 유기명조차 멍하니 굳어버릴 수밖에 없었다.서남 지역 대종사 일인자로 불리는 서산객 역시 입을 다물지 못했다.너무 말도 안 되는 상황이 펼쳐지고 있었다.설마 진서준이 이 정도의 인맥을 가지고 있을 줄은 누구도 미처 예상하지 못했다.“먼 길 오느라 고생 많았습니다. 저 진서준이 진심으로 여러분께 감사의 인사 전합니다.”진서준은 사람들을 향해 허리를 숙이며 감사를 표했다.“진 교관님, 그런 말씀 하지 마세요. 우리가 지금 8대 특전대에서 새로 태어난 것도 다 진 교관님 덕분입니다.”“맞습니다, 용존님. 보해 전투에서 우리가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도 다 용존님 덕분 아닙니까?”“그래도 감사해할 줄은 아네요.”소하비가 시큰둥한 척했지만 다른 사람들은 감격 그 자체였다.진서준에게 감사의 인사를 받는다는 건 부담스러울 정도로 큰 일이었다.“진 교관님, 어젯밤 저희 군부에 위성을 요청해서 위치를 확인했습니다. 진 교관님 여동생을 납치한 놈들은 지금 서쪽 지역
30분 후.“내가 먼저 올라가서 구할 겁니다.”진서준이 모두에게 선언했다.“진 교관님, 저희도 함께 가겠습니다.”소정태가 앞으로 나서서 뜻을 밝혔다.“필요 없어요. 인질 구출은 나 혼자로 충분합니다.”진서준은 혼자 발걸음을 옮겨 폐기된 타이어 공장으로 향했다.2만 명의 부하들이 매서운 눈빛으로 진서준을 주시하며 혹여나 이상한 짓이라도 할까 봐 경계를 늦추지 않았다.어제 이 사람들은 이 청년의 실력을 직접 경험했고 이 청년은 하늘에서 내려온 신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다.그런 괴물이 혼자서 걸어오는 모습을 보니 마음 한구석에 두려움이 스며들었다.사람들이 알아서 길을 비켜줬고 진서준은 조용히 폐기된 타이어 공장 안으로 들어갔다.“유기명이 널 보낸 거야?”진서준을 본 장정범 부자는 순간 멍해졌다.그들이 알던 진서준은 언제나 김평안의 가면을 쓰고 있었기 때문이다.그런데 지금 가면 없이 나타나자 그 모습이 왠지 낯설게 느껴졌다.“유정은 어디 있지?”진서준이 냉정하게 물었다.“끌어내!”장우림이 명령하자 두 손이 묶인 유정이 끌려 나왔다.“오빠!”유정은 진서준을 보자마자 감정을 억누를 수 없었다.“유정아, 괜찮아?”진서준이 물었다.“저는 괜찮아요, 오빠. 국색천향 처방전을 절대 넘겨주면 안 돼요.”유정이 다급하게 외쳤다.“닥쳐, 이년아!”장우림이 유정을 노려보며 욕설을 퍼부었다.순간, 진서준의 눈빛이 차갑게 얼어붙었다.“유씨 가문이 약 처방전도 넘기고 국색천향도 전부 우리에게 넘긴 후, 앞으로 국색천향 연구도 절대 금지한다, 알았어?”장정범이 조건을 내걸자 진서준은 통쾌하게 수락했다.“좋아.”진서준이 통쾌하게 승낙하자 장정범은 별다른 의심이 들지 않았다.왜냐하면 진서준이 지금 이 상황에서 거절할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다진서준이 처방전을 던지자 장정범은 얼른 받아 들고 이리저리 살펴보다가 갑자기 입을 열었다.“아직은 인질을 풀 수 없어. 국색천향이 정식으로 우리 손에 들어온 것도 아니고 이 처방전이 진짜인지도 확
쓰러진 주석철은 여전히 충격에 빠져 있었다.주석철은는 검을 든 채 서 있는 진서준의 모습을 믿을 수 없다는 듯이 쳐다봤다.방금 그 일격은 주석철이 전력을 다하지 않았지만 이렇게 쉽게 패할 리는 없었다.그런데 뜻밖에도 단 한 번의 정면충돌에 진서준은 주석철의 팔 하나를 부러뜨려버렸다.주석철은 난생처음 이렇게 무시무시한 사람을 마주하는 것 같아 말 못 할 두려움에 휩싸였다.이 청년은 도대체 누구란 말인가?“거기 누구 없어! 다들 들어와!”장정범이 바로 고래고래 소리치자 곧 외부에서 부하들이 달려 들어왔다.“이 남자 머리통 잘라서 죽여. 여자는 건드리지 마. 누가 이 남자 목을 가져오면 2억을 주겠어!”사람은 돈에 죽고 새는 먹이를 쫓아 죽는다는 진리를 장정범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2억이라는 거액의 보상을 내걸자 바로 이 깡패들의 잔인한 본능이 폭발했다.어마어마한 금액에 깡패들이 눈이 빨갛게 충혈되며 미친개처럼 진서준에게 달려들었다.하지만 이 깡패들을 보며 진서준은 표정 하나 변하지 않았다.“서준 오빠...”유정은 살짝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진서준의 이름을 외쳤다.깡패는 실력이 약하긴 하지만 숫자가 너무 많아서 무리의 끝이 보이지 않았다.“걱정 마, 내가 있는 한 누구도 널 감히 다치게 하지 못할 거야.”진서준은 유정의 등을 톡톡 치며 안심시켰다.진서준의 품에 꼭 안긴 유정은 그 말을 듣자 하늘이 무너져도 두렵지 않을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유정은 부드러운 팔로 진서준의 허리를 더 꽉 감았다.진서준은 참선검을 손에 쥐고 자기에게 달려드는 깡패들을 덤덤하게 바라보았다.“어제 너희들에게 살아갈 기회를 줬지만 너희가 그 기회를 소중히 여기지 않는구나. 그러니 오늘은 너희를 지옥으로 보내줄 거야.”말이 떨어지자 진서준은 참선검을 휘둘렀고 무시무시한 검기가 놀라운 속도로 앞으로 돌진했다.검기에 스친 깡패들은 반응할 새도 없이 순식간에 반으로 갈라졌고 시체가 널브러지며 바닥은 시뻘건 피가 흥건해졌다.유정은 그 광경을 보고 소름이
“얼른 저 사람들이 오기 전에 이 녀석 죽여버려!”하지만 방금 진서준이 휘두른 그 일격에 현장에 있던 사람들은 모두 두려움에 떨고 있었다.2억은 유혹적인 금액이지만 단 하나뿐인 목숨과 비교하면 보잘것없는 물건이었다.사람이 죽으면 아무리 많은 돈이 있어도 무슨 소용인가?이 사람들은 전부 극악무도한 깡패라서 가족에 대한 애정과 미련 따윈 버린 지 오래된 사람들이었다.그런 사람들이 가족을 위해서 큰돈을 남겨주려고 할 리가 없었다.말을 마친 진서준은 다시 검을 들어 주석철을 향해 내리쳤다.“이 자식이 끝까지 고집을 부리네. 말이 안 통하면 어쩔 수 없지.”주석철은 이를 악물고 어쩔 수 없이 검기를 정면으로 받아내려고 했다.주먹과 검기가 충돌하자 주석철의 강기가 순식간에 검기의 충격으로 깨졌고 잇따라 참선검이 그의 목을 가로질렀다.피가 검날을 따라 한 방울, 두 방울 떨어졌고 주석철은 분노와 불만이 가득한 눈으로 진서준을 쏘아보며 그대로 바닥에 쓰러졌다.“주, 주 어르신이 죽은 거야?”장우림은 눈을 휘둥그레 뜨며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주석철은 서남 지역에서 명성이 자자한 대종사인데 이 청년과 몇 번 정식으로 교전하지도 않고 허무하게 죽어버렸다.이 녀석이 인간이 맞는지 의심이 들 수밖에 없었다.“우림아, 빨리 도망쳐!”장정범은 정신을 차리고 급히 장우림을 밀쳐 도망가려 했다.“도망치려고? 어림도 없어.”진서준은 몸을 돌려 차가운 시선으로 장정범 부자를 쳐다보았다.그 순간, 진서준은 이들 눈에 누구든 찢어버릴 수 있는 거침없는 악마처럼 보였다.공장 밖에서는 8대 특전대 병사들과 국안부 고수들이 가을바람에 떨어진 낙엽을 쓸어버리듯 깡패들을 전면적으로 청소하고 있었다.이 깡패들은 그들에게 전혀 상대가 되지 않았다.천 명도 안 되는 병력을 상대로 이들 2만 명은 제대로 싸워보지도 못하고 연신 후퇴하고 있었다.이건 정면 싸움이 아니라 일방적인 도살이 분명했다.대다수 깡패는 상황이 심상치 않자 뿔뿔이 이리저리 흩어지며 달아났다.
“요 며칠 사이에 시간 내서 가볼게요. 사령관님과 대원들은 금도에서 아무 데도 가지 말고 절 기다리세요.”진서준의 말에 소정태는 감격에 찬 표정으로 경례했다.“네, 감사합니다, 진 교관님!”“감사합니다, 진 교관님!”“감사합니다, 진 교관님!”8대 특전대 전원이 우렁찬 목소리로 진서준에게 경례하며 감사의 뜻을 표했다.“진 교관님, 그럼 우리는 먼저 금도 군구로 가서 진 교관님을 기다리겠습니다.”소정태는 즉시 8대 특전대 모든 병사를 이끌고 현장을 떠났다.“한 어르신, 이렇게 번거롭게 해드려서 죄송합니다.”진서준은 한창순 등 대종사들을 향해 다시 감사의 뜻을 표했다.“아닙니다, 마땅히 해야 할 일입니다.”한창순은 깜짝 놀라며 급히 말했는데 그 모습은 이전 명주에서 보인 모습과 완전히 달랐다.“진 상경님은 우리 국안부를 위해 큰 공로를 세웠습니다. 진 상경님이 도움이 필요하다면 우리는 당연히 주저 없이 달려올 겁니다.”한창순이 진심을 보인 후, 진서준과 몇 마디 얘기를 더 나누고 한창순 일행도 자리를 떠났다.이제 현장에는 소하비의 친위대만 남았다.“소하비 왕자는 어디 있나요?”진서준이 물었다.“아래에서 기다리고 있습니다.”친위대 대장이 공손하게 대답했다.“절 거기로 안내해 주세요.”“유정아, 너 스스로 걸을 수 있겠어?”진서준이 유정을 바라보며 물었다.“네.”진서준 품에 꼭 안겨 있던 유정은 순간 얼굴이 확 붉어졌다.유정은 누군가에게 보호받는 느낌이 참 좋았다.하지만 유정은 자기와 진서준과의 관계를 잘 알고 있었다.진서준은 유정을 단지 가족으로만 여길 뿐이었다.하지만 유정은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만족스러웠다.“진서준 씨, 난 당신이 여기서 죽은 줄 알았습니다.”소하비는 진서준이 나온 걸 보자 바로 다가갔다.“오빠, 왜 그렇게 저주하는 말을 해?”예린이 불쾌한 표정을 지었다.“그냥 농담한 거잖아. 봐, 진서준 씨는 확실히 아무렇지도 않잖아.”소하비는 머리를 긁적이며 속으로 한숨을 쉬었다.여자는 정말 감정이
허윤진의 부러진 팔은 아직 완전히 회복되지 않았기에 그녀가 이렇게 여기저기 돌아다니면 상처에 영향을 줄 수 있을지도 모른다.“맞아요, 윤진 언니, 앉아서 좀 쉬어요.”진서라가 허윤진을 앉히며 말했다.바로 그때, 집사가 달려왔다.“진서준 씨와 저희 아가씨가 돌아오셨습니다.”그 말을 듣자 허윤진은 벌떡 일어나며 허사연의 휠체어를 밀고 밖으로 달려갔다.“서준아! 유정아! 괜찮아?”“우린 괜찮아, 이분들을 소개해 줄게.”진서준은 손으로 가리키며 말했다.“이 분은 샛터 소하비 왕자님이고 이 분은 샛터 예린 공주님이야.”허윤진은 이 두 사람을 본 적이 있었지만 다른 사람들은 오늘이 초면이었다.샛터 왕실이라는 말에 진서라와 허사연은 깜짝 놀랐다.진서준이 이렇게 대단한 인물들을 이 자리에 초대할 수 있을 줄은 몰랐기 때문이다.간단한 인사를 나눈 후, 진서준 일행은 응접실로 향했다.“진서준 씨, 사업 얘기한다고 하지 않았습니까?”소하비가 바로 본론을 꺼냈다.“유정아, 국색천향 몇 알 가져와.”진서준의 말에 유정이 바로 사람을 보냈다.잠시 후, 하인들이 국색천향을 들고 다가왔다.그 약을 보자 소하비는 호기심 가득한 얼굴로 물었다.“이건 무슨 약이죠? 어떤 효능이 있죠?”진서준이 느긋하게 설명했다.“국색천향이라고 불리는 이 약은 피부를 보호하고 미용에도 좋으며 수명을 연장하는 효능까지 있습니다.”“뭐라고요? 수명 연장이요? 정말인가요?”소하비가 믿기지 않는 표정으로 다시 확인하려고 했다.“믿기지 않으면 일단 하나 먹어봐요.”진서준이 담담하게 웃으며 약을 건넸다.“좋아요.”소하비는 약이 독약이 아닐지 걱정할 새도 없이 바로 한 알 삼켰다.약은 소하비 입안에서 바로 사르르 녹았다.소하비가 제대로 맛보기도 전에 차가운 기운이 그의 온몸을 타고 흘렀다.그 편안한 느낌에 소하비의 표정은 계속 바뀌었다.“이거, 이거 너무 신기하네요.”소하비는 감탄을 연발했다.소하비는 밤새 비행기를 타고 와 지금 굉장히 피곤한 상태였지만 국색천향을
송산은 소림의 발원지, 불교 선종의 조종, 천하제일의 명찰이기도 했다.20여 년 전, 대한민국이 대재앙을 겪을 때, 소림의 주지가 열여덟 나한을 이끌고 국경으로 달려가 해외 강자들과 목숨을 걸고 싸웠다.그 전투에서 주지가 입적했고 열여덟 나한 중 상당수가 목숨을 잃었다.소림은 그 전투 이후 급속도로 몰락했고 한때의 자자한 명성을 잃어버렸다.옛날의 소림은 다섯 번째 은세 종문이 될 수 있을 정도의 기세를 보였지만 대한민국 대재앙으로 소림은 큰 피해를 보고 말았다.국안부는 그 은혜를 늘 마음에 새기고 있었다.최근 서북 전투에서 부주지 지현진도 거기서 사망하자 소림의 상황은 더더욱 급격하게 악화했다.배수정은 서북에서 돌아온 후 주지 지현민에게 정식 제자로 받아들였다.그 후, 배수정은 매일 방 안에서 경을 외우고 도를 닦았다.송산 소림은 이번 4대 종문 대회의 개최 장소로 지정된 후 그 어떤 방심도 할 수 없어 한 달 전부터 이미 대외적으로 문을 닫고 손님을 받지 않았다.그 후로 더 이상 어떤 관광객도 숭산에 오를 수 없게 되었다.절은 한 점 먼지 없이 깨끗하게 청소되었다.소림이 모집한 제자들 대부분은 휴가를 얻어 집으로 돌아갔고 무도 세계를 잘 아는 제자들만 남아 있었다.며칠 전, 장백에서 사람들이 왔다.곤륜처럼 장백도 장로 한 명이 젊은 제자들을 이끌고 왔었다.하지만 그중 한 명은 장백의 제자가 아니었다.그 사람은 예전에 배수정의 사랑을 얻으려고 애썼던 양지천이었다.양지천은 배수정이 송산 불문에 입문했다는 소식을 듣고 이번에 그 진위를 확인하려고 왔다.응접실에 장백 일행이 앉아 있었다.삼장로 백운성이 먼저 잔잔한 미소를 지은 채 입을 열었다.“지현민 지주님, 오랜만에 뵙습니다. 풍채가 여전하군요.”백운성과 지현민은 나이가 비슷했는데 두 사람 모두 100세에 가까웠다.젊었을 때는 한 번 승부를 겨뤘던 사이로 두 사람 사이는 그리 나쁘지 않았다.“저는 나이가 들 대로 들었으니 장백의 삼장로인 백 장로님처럼 될 수는 없지요.”
배수정이라는 이름을 들은 양지천은 입술이 살짝 떨렸다.옛날 양지천이 구애하려고 애썼던 여자가 이제는 지선의 자질을 가졌다니, 놀랍기도 하고 황당하기도 했다.“양지천, 넌 지현민 지주님의 그 제자랑 아는 사이인 거야?”백운성의 질문에 양지천이 솔직하게 대답했다.“네, 배수정이 불문에 입문하기 전 우리는 친구 사이였습니다.”“지현민 지주님, 그 제자는 지금 어디에 있나요?”“평온은 아직 수련 중입니다.”지현민이 차분하게 대답했다.“그 제자의 지금 실력은 어떤가요?”백운성이 궁금해하며 다시 물었다.“평온의 천부적인 재능은 저보다 훨씬 뛰어납니다.”이 말에 백운성을 비롯한 사람들은 전부 할 말을 잃었다.현재 소림 지주인 지현민보다도 더 뛰어난 재능이라니, 도무지 상상할 수 없었다.불법은 너무나 깊고 어려워 대다수 사람은 불법의 의미조차 이해하기 힘들었다.그런데 지현민이 말하는 20대의 여자가 불법에 대한 깨달음이 자기보다 뛰어나다니, 이건 단순하게 자기 제자를 칭찬하려는 의도가 아닐까?“승려는 거짓말을 하지 않습니다.”지현민이 한마디 덧붙였다.백운성은 그 말에 심호흡을 크게 하며 말했다.“그렇다면 그 제자가 정말 궁금하군요.”“평안은 불문에 입문했으니 평온에 대한 다른 생각은 접어두세요.”지현민이 직설적으로 말했다.자기가 살짝 드러낸 작은 욕심을 이내 지현민이 눈치채자 백운성은 살짝 당황했다.각 종문은 천재를 놓치지 않고 앞다투어 모셔 가는 게 당연한 일이었다.이 젊은 천재들이 바로 종문 미래의 희망이기 때문이었다.배수정이 불법에 이렇게 뛰어난 능력을 보인다면 무도도 틀림없이 강할 것이다.두 사람이 대화를 나누는 중, 갑자기 문밖에서 한 사람이 나타났다.“스승님, 평온이 스승님께 인사드리고자 합니다.”그 말을 들은 모두가 급히 고개를 돌리자 한 아름다운 여인이 천천히 걸어 들어오는 걸 확인했다.여자의 두 눈은 깊은 호수처럼 아무런 감정도 없었고 표정도 차분했다.여자의 시선은 오직 앉아 있는 지현민에게만 향해 있었고
“뭐라고? 불법적인 일이 우리 가게에서 일어난다고? 말도 안 돼.”성현도가 헛웃음을 지으며 말을 이었다.“넌 전신전 소속이잖아. 그런데 네 오빠인 내가 어떻게 법률을 어기는 일을 하겠어?”“그럼 이 사람들은 왜 부른 거야? 집단 폭력도 불법이거든.”성미영은 차가운 시선을 보이며 성현도와 따졌다.“미영아, 이건 내가 싸우려던 게 아니야. 저 녀석이 일부러 시비 걸러 온 거라고.”성현도는 진서준을 손가락질하며 말했다.“이놈이 일부러 우리 찻집에 난입해 행패를 부리고 상철을 두들겨 패서 머리에 혹이 다 나버렸어. 난 단순히 정당방위를 위해 부른 거라고.”성미영이 등장하자 성현도는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솔직히 실력만 놓고 보면 성현도는 성미영보다 한참 부족했다.게다가 성미영은 전신전 소속인지라 저 남녀가 군부 조직인 전신전을 적으로 돌릴 리 없었다.군대를 건드리는 순간, 무조건 좋은 결과는 있을 수 없었다.“진서준, 도대체 무슨 일이야?”성미영이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어라? 너희 둘이 아는 사이야?”성현도가 눈을 휘둥그레 뜨며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을 지었다.방금 내려놨던 마음이 다시 불안해지기 시작했다.“난 사람을 찾으러 왔어. 하씨 가문 하경범이 이 위층에 있다고 들었는데 진짜인지 가짜인지 모르겠어.”진서준이 손가락으로 위를 가리켰다.“그리고 또 하나, 저 위에서 불법적인 일이 벌어지고 있다고도 하더군. 그게 사실인지 아닌지도 모르겠어.”이 말에 성현도의 표정이 단숨에 험악해졌고 즉시 반박에 나섰다.“헛소리 마. 우리 가게는 단순한 찻집이야. 불법적인 일 따윈 없어. 근거없는 소문을 왜 털어놓고 난리야?”“미영아, 저 녀석한테 속지 마. 난 네 사촌 오빠야. 내가 그런 불법적인 짓을 할 사람이겠어?”성미영이 곧바로 진서준에게 물었다.“진서준, 너 증거 있어?”“직접 올라가 보면 다 알게 될 거잖아?”진서준이 가볍게 말했다.“오빠, 위층으로 가자.”성미영이 단호하게 말했다.“그, 그건 좀 곤란해. 위층엔 귀
순간, 장내는 숨소리조차 들릴 정도로 조용해졌다.모든 시선이 진서준에게 쏠렸고 사람들은 할 말을 잃어버렸다.다들 진서준을 그냥 얼굴만 반반한 남자라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진짜 고수였다.성현도의 부하 중 최고 실력자조차 상대가 되지 않았다.성현도의 얼굴은 시퍼렇게 질렸고 상철을 향해서 욕설을 날렸다.“쓰레기 자식, 이런 애송이 하나도 못 이겨?”부하가 지면 망신당하는 건 결국 성현도 자신이었다.이대로 체면을 구긴 채 끝낼 수는 없었다.이대로 넘어가면 앞으로 르벨 재벌 2세들 사이에서 조롱거리가 될 게 뻔했다.“이봐, 네 실력이 괜찮은 건 인정할게.”성현도가 싸늘한 얼굴로 말을 이었다.“근데 너 혼자서 백 명을 상대할 수 있어? 천 명은? 잘 들어. 내 부하는 수도 없이 많아. 너 같은 놈 하나 처리하는 데 전화 한 통이면 충분해.”진서준은 눈썹을 꿈틀거리며 여전히 같은 말을 반복했다.“다시 말하지만 난 그냥 하경범을 찾으러 온 거야. 그 녀석만 넘기면 오늘 일은 없던 걸로 해주지.”“없던 걸로 한다고?”성현도가 그 말에 어이없어 헛웃음이 나왔다.“너 지금 누굴 상대로 협상하려 드는 거야? 난 성씨 가문의 직계야. 날 건드리면 상대해야 할 건 나 하나가 아니라 우리 가문 전체라고.”그때, 밖에서 다급한 발소리가 들려오더니 곧이어 검은색 전투복을 입은 남자들이 우르르 몰려왔다.이 남자들은 전부 성씨 가문의 경호원이었고 실력도 만만하지 않았다.그것도 한둘이 아니라 무려 50명 이상이었다.한순간에 텅 비어 있던 로비가 사람들로 꽉 찼다.“저 자식 끝났네. 이 정도 성씨 가문 인원이라면 아무리 강해도 버틸 수가 없지.”“그러게 말이야. 이런 상황에서 살아남을 수 없잖아.”“왜 쓸데없이 성현도를 건드린 거지? 스스로 무덤을 판 거잖아.”구경꾼들은 이 광경에 각자 다른 감정을 보였다.누군가는 동정을, 누군가는 아쉬움을, 또 누군가는 짙은 흥미를 보였다.“사연아, 넌 좀 쉬어. 이놈들은 내가 처리할게.”진서준이 앞으로 나섰다.
얼마 지나지 않아 키가 거의 2미터에 달하는 거구의 사내가 찻집 안으로 들어왔다.남자는 그냥 서 있기만 해도 엄청난 위압감이 느껴졌다.“상철아, 저놈 다리 하나 부러뜨려서 내던져.”성현도가 진서준을 가리키며 명령했다.“알겠습니다.”상철은 간단하게 대답하고는 진서준에게 성큼성큼 다가갔다.“서준아, 내가 할게.”허사연의 눈에는 불꽃 같은 전투욕이 타올랐다.“조심해. 저 녀석은 횡련 종사야. 그렇게 만만한 상대가 아니야.”진서준이 조용히 귀띔했다.“알았어. 설령 못 이긴다고 해도 어차피 네가 있잖아?”허사연이 장난스럽게 웃었다.진서준이 곁에 있는 한, 허사연은 아무것도 두렵지 않았다.“이봐, 사내자식이 여자 뒤에 숨는 게 말이 돼?”상철이 눈썹을 추켜세우며 불쾌한 표정을 지었다.“이봐, 껑충이. 여자를 얕보지 마. 일단 이기고 나서 말해.”허사연이 상철을 도발했다.“아가씨, 그런 기생오라비 말고 날 따르지 그래? 밤마다 널 천국으로 보내줄 수 있는데?”상철이 음흉하게 웃었다.“죽고 싶어 환장했구나.”얼굴이 싸늘해진 허사연이 주먹을 날렸다.강렬한 펀치가 공기를 가르며 폭발음을 일으켰고 그 위력은 철판도 뚫을 수 있을 정도였다.하지만 상철은 비웃듯 입꼬리를 올렸다.“내가 가만히 서 있어도 넌 날 어쩔 수 없어.”“닥쳐!”허사연이 분노에 차 주먹을 그대로 상철의 얼굴로 내리꽂았다.상철은 일부러 머리를 숙이며 대머리 정수리로 받아냈다.쿵!둔탁한 충돌음이 울려 퍼졌다.주먹이 상철의 머리를 강타했으나 대머리는 꿈쩍도 하지 않았고 오히려 허사연이 몇 걸음 물러섰다.순간 손에 뜨거운 통증이 밀려왔고 뼈가 부서질 것 같았다.손을 확인하자 하얀 피부였던 손등이 새빨갛게 부어올랐다.상철은 자기 머리를 한번 쓸어내리더니 빙그레 웃었다.“아가씨, 이제 내 실력을 알겠지?”그 모습에 허사연의 승부욕이 다시 불타올랐고 콧방귀를 뀌며 다시 달려들었다.이번에는 다리를 높이 들어 올려 상철의 머리를 내려찍었다.‘머리가 단단하다고 자랑하
이렇게 예쁘고 섹시한 여자가 싸움 실력이 이렇게 대단할 줄은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다.완전 여성판 이소룡이었다.“너, 너희들 정말 너무 대담한 거 아니야? 여기가 어디인지 알기나 해? 어디서 대놓고 싸움질이야?”종업원은 순간 놀란 뒤 분노에 찬 얼굴로 진서준와 허사연을 가리켰다.찻집이 문을 연 이후로 이렇게 난동을 부리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고 진서준과 허사연이 첫 사례였다.주변의 구경꾼들도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싸움 좀 하면 뭐해? 여긴 성씨 가문의 구역이야. 성씨 가문에서 한마디만 하면 저 남녀는 오늘 밤중으로 사라지겠지.”“어휴, 저 여자 너무 아까워. 저렇게 예쁜데 왜 죽지 못해서 안달이지?”“여자는 살 수도 있겠지만 남자는 무조건 죽을걸.”사람들은 저마다 수군거리며 이미 진서준과 허사연의 결말을 예상하는 듯했다.“그럼 네 말대로라면 내가 널 때린다 해도 얌전히 맞고 있어야 한다는 거야?”허사연은 눈썹을 꿈틀거리며 종업원에게 다가갔다.“오지 마!”종업원은 겁에 질려 연신 뒷걸음질 쳤다.“어떤 미친놈이 내 구역에서 소란을 피우는 거야?”그 순간, 2층에서 한 사람이 내려왔다.모두가 일제히 시선을 돌려 그 사람을 확인하자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성현도가 오늘 여기 있었네?”누군가 그 청년을 알아보았다.“저 둘 끝장났네. 성현도는 악명 높은 냉혈한이야.”그 청년은 바로 찻집의 사장인 성현도였다.성현도는 르벨 재벌 2세 사이에서 유명한 인물이었다.친구에게는 무조건 의리를 지키지만 적에게는 무자비했다.성현도의 고문 방법은 수도 없이 많았고 게다가 무인으로서 무공 실력도 상당했다.“사장님, 저 남녀가 와서 난동을 부렸어요.”종업원은 성현도를 보자마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사장이 나온 걸 확인한 허사연은 주먹 한 방에 종업원을 기절시켜 버렸다.“뭐야?”성현도의 눈이 가늘어졌고 표정이 험악해졌다.자기 앞에서 대놓고 부하를 때리다니, 이건 너무나도 명백한 도발이었다.“아가씨, 우리 처음 보는 사이 맞지? 우리
그리고 오후 2시가 되자 진서준은 허사연을 데리고 조호가 말한 천국찻집으로 향했다.겉모습만 보면 이 찻집은 진짜 전통찻집 같았고 규모도 꽤 컸다.하지만 막상 안에 들어가 보니 전혀 다른 세상이 펼쳐져 있었다.1층과 2층까지는 정말 평범한 찻집처럼 꾸며져 있었고 누가 봐도 이상한 점을 찾기 어려울 정도였다.하지만 3층으로 올라가려면 회원권이 있어야 하거나 사장이 직접 허락한 사람만 출입할 수 있었다.“손님, 아가씨, 이쪽으로 안내해 드리겠습니다.”진서준과 허사연이 차를 마시러 온 줄 안 종업원이 빠르게 달려와 안내하려 했다.“그럴 필요 없어. 난 하경범을 찾으러 왔거든.”진서준이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네?”종업원이 순간 얼어붙었다.“혹시 하씨 가문의 하 도련님을 말씀하시는 겁니까?”“맞아.”진서준이 고개를 끄덕였다.“손님은 누구신지...”종업원이 신중하게 물었다.진서준은 잠시 생각하다가 말했다.“그냥 복수하러 왔다고 전해.”그놈 아버지라고 하는 건 자기를 모욕하는 것과 같았고 친구라고 하기도 기분이 더러웠다.그 말에 종업원의 얼굴색이 확 변했다.“손님, 여기서 장난치지 마세요.”하경범은 르벨에서 유명한 재벌 2세였다.이 찻집의 사장과도 막역한 사이였고 여기서 일하는 직원이라면 그 사실을 모를 리 없었다.“왜? 못 믿겠어?”진서준이 피식 웃으며 되물었다.“손님, 하 도련님에게 복수하려던 사람은 단 하루도 살아남지 못했습니다.”종업원이 경고하듯 말했다.“그런 농담은 함부로 하는 게 아닙니다.”그 말을 듣자 진서준은 담담하게 말했다.“그럼 이렇게 전해. 그 하경범이 두들겨 맞고 나자빠지게 했던 진서준이 왔으니 당장 기어 나오라고 말이야.”진서준의 뻔뻔한 태도에 종업원은 어이가 없었다.“좋습니다. 손님이 그렇게 죽고 싶다면 제가 기꺼이 도와드리죠.”종업원은 바로 무전기를 꺼내 들었다.“문제 발생했습니다. 난동자가 있습니다.”쿵! 쿵!급한 발소리가 들리더니 곧이어 건장한 남자 스무 명이 들이닥쳤다.전부 검은
진서준과 허사연은 차를 타고 조호의 회사로 향했다.이 회사는 그냥 겉치레일 뿐, 진짜 돈이 들어오는 곳은 유흥업소들이었다.유흥업소를 얕잡아보면 안 된다.운 좋게 돈 많은 도련님들이라도 걸리면 하룻밤에 수억 원이 순식간에 손에 들어오게 될 것이다.“진서준 씨!”진서준이 들어서자 조호는 황급히 자리에서 일어나 공손한 태도를 보였다.조호는 진서준 옆에 있는 허사연을 힐끗 쳐다본 뒤 고개를 숙이고 감히 더 볼 엄두도 내지 못했다.“잡담은 그만하고 하경범을 잡아가는 제일 좋은 타이밍만 말해.”진서준이 직설적으로 물었다.이 말에 조호는 속으로 크게 놀랐다.“매일 오후마다 하경범은 천국찻집이라는 곳에 갑니다.”조호는 재빨리 대답했다.“보통은 경호원 몇 명만 데리고 가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얼씨구? 저런 인간이 매일 차나 마시러 간다고?”진서준은 의외라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그게... 진서준 씨, 사실 그곳은 이름만 찻집이지 실제로는...”조호는 옆에 여성이 있다는 걸 의식해서 말을 흐렸지만 진서준은 그 뜻을 단번에 알아챘다.“알겠어.”진서준이 고개를 끄덕였다.차를 마시는 곳이 아니라 그냥 인기 많은 인터넷 셀럽이 가득한 고급 유흥업소일 것이다.“진서준 씨, 듣자 하니 그 찻집의 주인은 성씨 가문의 사람이라고 합니다. 진짜로 움직이실 거라면 하경범이 이동 중일 때를 노리는 게 좋을 겁니다.”조호가 조심스럽게 조언했다.“응? 성씨 가문이 이런 사업도 해?”진서준은 흥미롭다는 듯 눈썹을 꿈틀거렸다.진서준은 오영수에게서 성미영에 대한 정보를 들은 적이 있었다.정의로운 성격의 성미영이 자기 가문에서 이런 유흥업소를 운영하고 있다는 걸 알게 되면 절대 가만히 있지 않을 터였다.“네, 듣기로는 성씨 가문의 한 직계 후손이 운영한다고 합니다. 여자에 미쳐 있는 놈이라 르벨의 돈 많은 도련님들과 꽤 친분이 깊다고 하더군요.”조호는 본인이 아는 정보를 전부 쏟아냈다.“좋아, 대충 알겠어.”진서준이 고개를 끄덕였다.조호의 회사를 나온
진서준이 허사연의 캐리어를 들어주며 옆방으로 걸어갔다.그 뒷모습을 보며 도지아는 부러움이 가득한 눈빛을 보냈다.인간은 원래 모여서 사는 걸 선호하는 동물이다.사회를 벗어나서 혼자 살아가는 건 생각보다 훨씬 힘든 일이었다.가족도 친구도 없이 너무 오래 지내다 보면 결국 감정 없는 시체나 다름없는 존재가 되어버린다.그렇게 되면 사람과 짐승의 차이가 없어질 것이다.“어제 전화할 때 그랬었지? 이번에 너 자기 출신을 찾으러 온 거라고.”호텔 방으로 돌아온 후, 허사연이 호기심 가득한 얼굴로 물었다.“너 원래 경성 진씨 가문 사람이잖아?”“나도 그렇게 알고 있었어. 그런데 할아버지가 예전에 말해주셨어. 사실 우리 아버지는 어릴 때 길에서 주워 온 아이였다고.”진서준은 허사연에게 숨길 생각이 없었다.허사연은 진서준이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었다.허사연이라면 이 비밀을 절대 밖으로 흘리지 않으리란 확신이 있었다.“뭐라고? 아버님이 주워 온 아이라고?”허사연이 깜짝 놀랐다.“그래. 하지만 이 사실을 아는 건 나뿐이야. 가족 중에서도 할아버지가 나한테만 알려주셨지.”진서준이 고개를 끄덕였다.“얼마 전, 오영수가 내 등에 있는 용을 보고는 내가 용맥의 일족이라고 했어. 그래서 오영수를 따라 여기 와서 오영수 셋째 삼촌에게 내 출신에 관해 알아보려 했던 거야.”“네 등에 용이 있다고? 난 한 번도 본 적 없는데?”허사연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그동안 둘이 알몸으로 함께한 시간도 적지 않은데 허사연은 한 번도 본 기억이 없었다.“내가 체내 혈기를 모을 때만 그 용이 나타나거든.”진서준이 설명을 이어갔다.“그런데 오영수 삼촌이 아직 돌아오질 않아서 일단은 여기서 며칠 기다려야 해.”“아니, 그럼 오씨 가문에서 널 안 재워줬어?”허사연이 의아해했다.명문대가인 오씨 가문에 빈방이 없을 리가 없었다.“그날 오영수를 찾아갔는데 마침 오영수 할아버지가 위중했어. 그리고 그 집안엔 그 어르신을 그냥 보내고 싶어 하는 사람이 있었지.”진서준이 담담하게
“진짜 예쁜 새색시 숨겨놓고 있었네?”허사연이 의미심장한 표정을 지었다.누구라도 자기 남자 방에 예쁘고 몸매가 완벽한 여자 하나가 같이 있는 걸 보면 의심 안 할 수가 없었다.게다가 지금은 아침이었다.설마 이 여자가 아침에 막 찾아온 건 아니겠지?“사연아, 오해야. 내가 제대로 설명할게.”진서준은 머리가 띵해졌고 뇌가 지진이라도 난 것 같았다.“아가씨, 오해하지 마세요. 어제 저랑 진서준이 같은 방에서 잔 건 맞지만 진짜 아무 일도 없었어요. 저 밤새 한숨도 못 잤다니까요?”도지아가 황급히 해명에 나섰다.“네? 밤새 안 자고도 아무 일 없었다고요?”허사연이 눈썹을 꿈틀거리며 되물었다.“설마 밤새 불태우느라 못 잔 건 아니겠죠?”허사연의 농담과 진담이 뒤섞인 말에 진서준은 헛웃음만 나왔다.“사연아, 이쪽은 도지아야. 우리 진짜 그냥 친구야. 일단 들어와. 천천히 설명할게.”허사연이 방에 들어오자 진서준은 서로에게 소개했다.그러고는 이 방에서 일어난 상황을 설명했다.“도지아는 황예은이 소개해 준 환자야. 다리 치료를 부탁받았거든. 종아리를 봐봐. 이틀 전에 내가 직접 발라준 연고가 있어.”허사연이 내려다보자 확실히 연고가 발라져 있었다.“그리고 도지아가 밤새 안 잔 건 원기를 수련하느라 그랬던 거야. 너도 예전에 수련한다고 며칠씩 안 잔 적 있잖아?”허사연은 오해가 풀리자 그제야 빙그레 웃었다.“내가 뭐 어쨌다고 그렇게 호들갑이야?”“혹시라도 오해할까 봐 그러는 거잖아.”진서준이 빠르게 대답했다.“뭐야? 내가 그렇게 의심 많고 질투 많은 여자로 보여?”허사연이 눈을 가늘게 떴다.“아, 아니지. 우리 사연은 누구보다 속이 넓은 부드러운 여자지.”진서준이 급히 정정했다.“됐어, 너 겁먹은 거 너무 귀엽다.”허사연이 피식 웃었다.“넌 여기 좀 쉬고 있어. 내가 방 하나 잡고 올게.”진서준은 더 머뭇거릴 틈도 없이 벌떡 일어나 나가 버렸다.진서준의 뒷모습을 보며 허사연은 그제야 웃음을 터뜨렸다.“도지아 씨, 진서준이
“내가 가면 안 돼?”사실 진서준은 거절하려 했었다.르벨은 안개가 짙게 깔린 늪지대 같은 곳이라 진서준조차도 어디에 함정이 있을지 가늠하기 어려웠다.그러니 허사연이 온다면 다칠 가능성이 컸다.하지만 거절하면 허사연이 상처받을 게 뻔했다.“당연히 되지. 지금 위치 보낼게.”진서준은 단호하게 말하며 위치를 보냈다.자기 여자를 지킬 자신도 없으면서 강자들을 상대한다는 건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자기야, 잘 자.”허사연이 애정 가득한 목소리로 말했다.“너도 일찍 자.”진서준이 다정하게 답했다.전화를 끊고 나니 진서준의 졸음이 싹 가셨다.진서준은 창가로 다가가 이 화려한 도시를 내려다봤다.“오씨 가문, 안씨 가문, 하씨 가문... 너희가 무슨 꿍꿍이를 꾸미든 난 전부 박살 낼 거야. 이번엔 반드시 나와 아버지의 정체를 밝혀내고 말겠어.”진서준의 눈빛이 날카롭게 빛났다.그렇게 별다른 사건 없이 밤이 지나갔다.다음 날 아침.진서준이 막 눈을 뜨자마자 도지아의 흥분한 외침이 들려왔다.“진서준, 됐어. 나 생겼어!”도지아는 눈 밑이 시커멓게 변해 있었는데 밤새 잠을 자지 않은 게 분명했다.진서준이 눈썹을 꿈틀거리며 물었다.“너 아직 처녀 아니었어? 대체 어떻게 임신한 거야?”“미친놈아, 임신은 개뿔, 무슨 헛소리야?”도지아는 얼굴이 빨개지며 진서준을 노려봤다.“그럼 왜 아침부터 난리야?”진서준이 되물었다.보통 사람이라면 이렇게 아침부터 흥분해 날뛰지 않을 것이다.“어제 네가 준 수련법 기억나지? 나 벌써 원기를 형성할 수 있게 됐어.”자기가 대단하다고 여긴 도지아는 자랑스럽게 선언했다.고작 하룻밤 만에 원기를 형성한 건 확실히 대단한 일이었다.“뭐? 그렇게 빠르다고? 너 타고난 천재 맞네?”진서준이 다소 의아한 표정을 보였다.보통 무인은 원기를 익히는 데만 최소 1년이 걸리는데 그것도 매일 꾸준히 수련할 경우에만 발생하는 일이었다.심지어 재능 있는 자들도 한두 달은 족히 걸린다.그런데 도지아는 단 하룻밤에 이 어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