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진은 하민규와 함께 놀고 있는 재벌 2세들이 그저 술친구로 보였다.하민규가 술친구 한명을 위해 자신과 맞서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게다가 지금 여기 마그레라는 김성진의 가게였기에 양시후가 하민규를 때린다 해도 그는 어쩔 수 없을 것이다.이렇게 생각한 양시후는 경멸에 찬 웃음을 지으며 하민규에게 말했다.“이렇게 의리 있으니, 그러면 하민규 씨가 그 친구를 대신해 스스로 팔을 부러뜨려요.”스스로 팔을 부러뜨리라고 하니 하민규는 승낙할 리가 없었다.“김성진 씨, 충고하는데 당장 사람을 데리고 떠나세요. 양시후 팔을 부러뜨린 사람은 당신이 건드릴 수 있는 사람이 아니에요!”“웃기는 소리! 서울시 그 몇몇 늙은이 외에, 나는 당신과 같은 애송이들을 전혀 안중에 두지도 않았는데요.”김성진은 차갑게 웃으며 말을 이어갔다.“하민규 씨, 저는 지금 당신의 체면을 세워주는 거예요. 정신 차리세요.”김성진은 말하며 갑자기 손을 뻗어 하민규의 멱살을 잡고 자기 앞으로 끌어당겼다.이 상황을 본 다른 사람들은 하민규를 도와주고 싶었으나, 김성진의 신분을 생각하니 겁에 질려 침묵을 지켰다.이때 황은비가 이마를 찌푸리며 다가왔다.“김성진 씨, 지금 자신이 뭐 하는지 아세요?”이쁘게 생긴 황은비를 보자 양시후의 눈에 빛이 반짝거렸다.김성진은 황은비를 보고 그녀가 황씨 집안의 사람이라는 것을 알았다.하지만 그는 황씨 집안이 두렵지 않았다.“은비 씨, 똑똑한 사람이라면 당장 물러가세요. 그렇지 않으면 제 부하들이 은비 씨에게 무슨 짓을 할지 몰라요...”노골적인 협박에 황은비의 안색은 어두워질 대로 어두워졌다.뒤에 서있던 허윤진도 당황한 얼굴로 진서준을 바라보았다.그녀는 김성진이 하민규와 황은비의 체면도 세워주지 않을 줄은 몰랐다.“서준 씨, 지금 어떡해요? 빨리 방법 좀 생각해 보세요.”“움직이지 마세요.”진서준이 말을 마치고 허윤진의 어깨를 가볍게 툭툭 치더니 김성진에게로 걸어갔다.허윤진의 두 손은 옷자락을 힘껏 움켜쥐었고 얼굴에는 걱정이 가
강성철이 마그레라 가게를 보살펴 주고 있었다.그리고 강성철은 진서준의 부하였으니, 김성진은 당연히 지금 진서준과 맞서지 않았다.복수를 하려면 올해 생사결단 시합이 열릴 때까지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룸 안에 있던 다른 사람들은 놀란 표정으로 진서준을 바라보며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마그레라의 회장은 하민규의 체면도 봐주지 않았는데 진서준의 전화 한 통에 모든 일이 해결되었다.‘설마 이 진서준의 세력이 하민규보다도 더 대단한 걸까?’“허윤진, 네 보디가드는 도대체 무슨 사람이야?”“전화 한 통에 저 사람들을 물리치다니, 말도 안 돼!”“우리가 아까 그렇게 놀렸는데 화내지 않겠지?”허윤진은 팔짱을 끼고 자랑스럽게 말했다.“내 보디가드일 뿐이야. 그렇게 대단한 인물도 아니야.”이때 진서준이 고개를 돌려 허윤진 등 사람에게 말했다.“여기 계속 있을 거예요?”사람들은 진서준이 말하자 즉시 룸을 떠나면서 존경스러운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았다.진서준 일행이 전부 떠나자 양시후는 참지 못하고 김성진에게 화를 내며 소리쳤다.“김성진, X발 무슨 뜻이야? 저 새끼가 내 손을 부러뜨렸다고. 찍소리 못하고 저 새끼들을 보내? 네 친형 김춘근은 그렇게 용감하고 당당하더구먼, 너는 왜 이리 겁쟁이야!”찰싹하는 소리와 함께 김성진은 양시후의 뺨을 때렸다.그러자 그는 머리가 어지러웠고 겁에 질린 표정으로 김성진을 바라보았다.“내가 오늘 그 청년을 건드리면 우리 모두 오늘 여기서 죽었을 거예요.”김성진은 양시후를 향해 욕설을 퍼부었다.요즘 사회에서 살아남으려면 용감해야 할 뿐만 아니라 똑똑해야 한다.강성철과 도진수도 진서준의 앞에서 쩔쩔매는데, 김성진은 더더욱 그를 건드려서는 안 되었다.게다가 방금 진서준이 보여준 실력도 김성진을 두렵게 했다.만약에 아까 정말 싸움이 일어났다면, 자신의 10여 명의 부하들도 그의 적수가 될 수 없었다.“그 자식을 뒤에서 받쳐주는 사람이라도 있어요?”양시후는 아직도 마음이 내려가지 않은 듯 말했다.그러자 김
고민 끝에 백은수는 손승호에게 전화를 걸어 이 잔혹한 사실을 그에게 알리기로 했다.병원 병실에서 자고 있던 손승호는 핸드폰이 울리자, 짜증을 내며 전화를 받았다.“누구야! 이 늦은 밤에.”백은수는 차갑게 웃으며 말했다.“승호야, 지금 잠이 오니?”백은수의 목소리를 듣자 손승호는 갑자기 잠이 깼다. 그는 분명히 외눈박이 형제가 성공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손승호는 웃으며 물었다.“은수 형님, 혹시 좋은 소식이라도 있으세요?”“좋은 소식도 있고 나쁜 소식도 있지, 어느 것을 먼저 듣고 싶어?”백은수가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손승호는 나쁜 소식이 있으리라고는 생각도 못 했기에 약간 어리둥절했다.‘설마 상대방이 내가 준 돈이 너무 적어서 가격을 더 올리려는 걸까?’이번에 외눈박이 형제를 청하기 위해 손승호는 무려 20억 원이나 되는 전 재산을 전부 걸었다.20억 원으로 진서준의 목숨을 사기에는 너무 아까웠다.만약에 지금 손승호에게 돈을 더 달라고 하면 그는 다른 사람한테 돈을 빌릴 수밖에 없었다.“은수 형님, 상대방이 돈을 더 달라고 하는 건 아니겠지요?”손승호가 묻자 백은수는 차갑게 웃으며 대답했다.“사람도 다 죽었는데 어디 가서 돈을 더 달라고 하겠어?”손승호는 그대로 침대에서 일어나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물었다.“외눈박이 형제가 죽었다고요? 말도 안 돼.”손승호는 이 형제가 실력이 뛰어나고 무섭기로 소문났다고 들었다.그는 진서준의 실력으로 절대로 외눈박이 형제의 적수가 될 수 없다고 생각했다.“내가 지금 널 속이는 거 같아?”백은수는 화가 나서 큰 소리로 말했다.일단 킬러가 죽으면 제일 큰 손해를 입는 건 플랫폼이었다.20억 원을 전부 돌려주어야 하는 것은 물론이고, 외눈박이 형제마저 잃었다.외눈박이 형제 덕분에 그는 많은 돈을 벌어들였다.손승호는 한참 침묵하다가 물었다.“은수 형님, 좋은 소식은요?”“좋은 소식은 권해철 마스터가 4일 후면 남주성에서 서울시로 온대. 권 마스터와 비기면 외눈박이 형제는 아무것도
전화가 통하자 진서준은 재빨리 물었다.“사연 씨, 무슨 일이 있어요?”그러자 허사연은 기분이 안 좋은 듯 말했다.“일이 없으면 전화 못 해요? 연인 사이인데.”그녀가 화를 내자 진서준은 서둘러 사과했다.“미안해요, 사연 씨. 요즘 머릿속에는 온통 수련 생각뿐이에요. 내일이면 권해철과 승부를 겨루는 날이니 제가 좀 예민한가 봐요. 이번에 꼭 그를 이겨야해서...”이번 권해철과의 승부는 진서준이 꼭 이겨야만 하는 이유가 있었다. 그것은 바로 조희선의 두 다리를 꼭 치료해 주고 싶었기 때문이다.진서준의 말을 듣자 허사연은 서러움이 사라졌다.입장을 바꿔서 생각하면 당연히 그럴 수 있었다.“서준 씨가 오늘 저녁에 시간 되는지 전화했어요. 아버지께서 집에서 음식을 대접하고 싶다고 해서.”진서준은 미래 장인어른의 초대를 당연히 거절하지 않았고 그도 오늘 밤 푹 쉬고 싶었다.“당연히 시간 되죠. 언제 가면 될까요?”진서준이 묻자 그녀가 대답했다.“지금 데리러 갈게요.”진서준은 거절하려고 했지만 허사연이 차를 몰고 오면 그녀와 잠시 단둘이 있을 수 있었기에 알겠다고 했다.“좋아요. 그럼 우리 집 앞에서 기다릴게요.”전화를 끊은 후 진서준은 즉시 별장으로 돌아가서 샤워하고 깨끗한 새 옷으로 갈아입었다.“오빠, 데이트하러 나가는 거예요?”진서라는 진서준이 이렇게 깔끔하게 차려입는 것을 보고 웃으며 물었다.진서라에게 들키자 그는 얼굴을 붉히며 말했다.“응. 저녁은 밖에서 먹고 돌아올게.”“서준아, 누구랑 데이트하러 가는 거야? 유정이?”티비를 보고 있던 조희선도 데이트라는 말에 티비를 끄고 열심히 자기 아들을 쳐다보고 있었다.지금 조희선이 가장 큰 관심사는 바로 진서준의 결혼이었다.예전에 진서준이 집에 있을 때, 조희선은 그를 보기만 하면 유정과 많이 친해지라고 말했다.요즘에도 유정은 틈만 나면 진서준의 집에 와서 집안일을 도왔다.조희선은 그녀를 매우 만족스럽게 생각하고 있었다.부지런히 일도 잘하고 게다가 예쁘게 생겼다.진서준이 유
신호등 골목에서 허사연은 스포츠카를 세웠다.“왜 자꾸 저를 쳐다봐요?”허사연은 수줍은 듯 진서준을 쳐다보더니 이내 시선을 돌렸다.“사연 씨, 오늘 너무 예뻐요.”진서준은 그녀에 대한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여자들은 모두 자기 남자가 자기를 칭찬하는 것을 듣기 좋아한다. 허사연도 마찬가지였다.허사연은 기쁨을 감추지 못했고 얼굴은 더 붉어졌다.“왜 갑자기 그런 말을 해요?”허사연이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진서준은 허사연의 손을 잡고 가볍게 쓰다듬었다.“줄곧 말하고 싶었지만 기회가 없었어요.”진서준이 그녀의 손을 쓰다듬자 그녀는 살짝 간지러운 느낌이 들었다.“이... 이러지 말아요. 아직 운전 중인데.”그렇게 말하면서 허사연은 아무런 저항도 하지 않고 일부러 차창 밖으로 고개를 돌리며 진서준이 제멋대로 행동하도록 내버려두었다.그러자 진서준의 손놀림도 점점 대담해졌다. 손에서 허리, 마지막에는 그녀의 허벅지에 닿았다!날씬한 다리에 검은색 스타킹까지, 누구나 한 번쯤 더 쳐다볼 법한 여자였다.하지만 허사연의 남자 친구로서 그냥 보기만 할 진서준이 아니었다.진서준의 과감한 행동에 그녀의 예쁜 얼굴이 뜨거워졌다.“안... 안 돼요. 더 이상. 운전 못하겠어요.”허사연은 진서준의 손을 아래로 누르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그러자 진서준은 허허 웃더니 손동작을 멈췄지만, 여전히 그녀의 허벅지에서 손을 떼지 않았다.시동이 다시 걸리자 허사연은 얼굴을 붉히며 말했다.“오늘 저녁 식사에는 아버지뿐 아니라 황보식 어르신도 오기로 했어요.”진서준이 듣자 놀라운 듯 물었다.“황보식? 그 어르신이 왜요?”“서준 씨를 찾을 일이 있다고 하던데요.”허씨 별장.이때 황보식은 허성태와 차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예전 같으면 허성태의 신분으로 황보식 같은 큰 인물을 만나기는 매우 어려운 일이었다.하지만 지금 허성태는 신분이 남달랐다. 그는 진 마스터의 미래 장인어른이었으니 많은 명문 집안이 부러워했다.“성태 씨, 정말 부럽네요. 훌륭한 따님
황보식이 도움이 필요하다고 하자 진서준은 담담하게 웃었다.“우리 사이에 그런 예의를 갖출 필요는 없어요.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지 말하세요.”진서준이 서울시에서 빨리 자리를 잡을 수 있었던 건 황보식의 공헌이 컸다.진서준이 흔쾌히 승낙하자 황보식은 매우 기뻤다.그전에 진서준이 검으로 원혼을 죽이는 것을 보았을 때 황보식은 이미 그의 신선 같은 술법에 완전히 굴복했다.“서준 씨, 무도를 수련하는 친구가 있는데 일찍이 다른 사람들과 싸우다가 경맥을 다쳤어요. 얼마 전 종사경을 돌파할 때 이를 발견했어요...”진서준은 술법 마스터일 뿐만 아니라 무도 종사급이었고 또 신의였다.그는 진서준이 끊어진 경맥을 쉽게 치료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알겠어요. 별로 큰 문제는 아닐 겁니다.”진서준이 담담하게 웃으며 말했다.“지금 바로 그 친구를 서울로 오라고 할게요.”황보식은 흥분에 찬 어조로 말했다.“어르신의 친구분께서 여기 계시지 않아요?”진서준이 이마를 찌푸리며 묻자, 황보식은 고개를 끄덕였다.“네. 그 친구는 지금 인천에 있어요. 지금 바로 출발하면 빨리 올 수 있을 거예요.”인천은 서울 바로 옆에 있고 빠르면 3시간이면 도착할 수 있었다.“아니면 내일 아침에 내가 가서 그 친구분을 치료해 줄까요? 오늘 밤에 저는 좀 일찍 자고 싶어요.”“내일 아침에 만월호로 가시지 않으세요?”그러자 진서준이 담담하게 웃으며 말했다.“괜찮아요. 끊어진 경맥을 치료하는 건 금방이면 돼요. 하지만 오늘 밤에 약재를 미리 준비해야 해요. 조금 있다가 제가 어르신께 약재들을 적어드릴게요.”“정말 고마워요! 서준 씨.”황보식은 연신 고맙다고 인사했다.“이젠 밥 좀 먹죠. 음식이 다 식어요...”허윤진은 말하며 젓가락으로 큰 닭다리 하나를 집었다.“이 계집애야. 넌 그냥 먹기만 해.”허성태는 어이가 없다는 듯 허윤진을 쳐다보았다.‘윤진이가 사연이처럼 예절 밝고 철이 들었으면 얼마나 좋을까.’밥을 먹은 후, 허사연은 차키를 꺼냈다.“언니, 술 마셨으니
이튿날 아침 6시.진서준은 일어나서 장청결을 한번 수련하고 시원하게 샤워했다. 그리고 황보식에게 전화를 걸어 자신을 데리러 오라고 했다.10여 분 후, 조철용은 벤틀리를 몰고 진서준의 별장 입구에 도착했다.“서준 씨, 차에 타십시오. 어르신 일행이 이미 오랫동안 기다리고 있어요.”“알겠어요.”진서준이 차에 타자 물었다.“약재는 이미 다 준비되었어요?”“네!”조철용이 고개를 끄덕였다.어젯밤 황보식은 집으로 돌아온 후에 모든 사람을 동원하여 진서준이 사용할 약재를 찾으러 갔다. 끊어진 경맥을 치료하는 데는 그리 희귀한 약재가 필요 없었다....황보식의 별장 정원 안.두 어르신은 큰 나무 아래에서 바둑을 두고 있었다. 이 두 사람은 바로 황보식과 그의 오랜 친구인 오윤산이었다.오윤산의 뒤에는 늘씬한 몸매의 예쁜 여자가 서 있었다.어젯밤, 오윤산은 황보식의 전화를 받고 즉시 그의 집으로 달려왔다.원래 세 시간 정도의 거리였는데 오윤산은 두 시간 반 만에 도착했다.경맥이 끊어진 일은 오랜 시간 동안 그를 괴롭혔다. 경맥이 끊기지 않았더라면 그는 벌써 종사급이었을 것이다.끊어진 경맥을 치료할 수 있다고 하자 그는 당연히 매우 흥분했다.한밤중에 오윤산은 심지어 황보식을 보고 당장 자신을 데리고 신의님께 가달라고 했다.황보식은 한참 동안 그를 설득해서 먼저 하룻밤 자게 했다.“식아, 네가 말한 그 신의님은 아직도 안 왔어?”“그만 좀 물어봐, 철용이가 이미 가서 모셔 오는 중이야, 조금 있으면 도착할 거야!”오윤산이 재촉하면서 계속 이것저것 물으니, 황보식은 짜증이 난 듯한 말투로 말했다.하지만 황보식은 오윤산의 마음을 충분히 이해했다.“어르신, 그 사람이 정말 그렇게 대단해요?”오윤산 뒤에 서 있던 늘씬한 미녀가 물었다.“그럼 당연하지. 그 사람도 네 할아버지의 경맥을 치료하지 못한다면, 이 세상에 아무도 치료할 수 없을 거야!”황보식은 말하며 허허 웃었다.“세정아, 물 한 잔 따라줘.”오윤산이 말했다.“네.”그러자
오세정은 두 어르신이 모두 서 있는 것을 보자 자기도 모르게 궁금해서 물었다.“할아버지, 혹시 그 신의님이 오셨어요?”그러자 정신이 돌아온 오윤산은 고개를 끄덕였다.“맞아. 그 신의님이 나를 위해 지금 주방에서 한약을 달이는 중이야.”신의님이 약을 달이고 있다고 하자 오세정은 눈이 반짝거렸다.“제가 가볼게요.”“안돼. 가지 마. 신의님이 아무도 그를 방해해서는 안 된다고 했어!”황보식이 급히 말했다.지금 황보식은 진서준의 말이라 하면 무조건 복종했다.진서준이 방해하지 말라고 했으니 절대 다른 사람이 들어가면 안 되었다.“알겠어요.”오세정은 어깨를 으쓱하더니 다시 오윤산의 곁으로 돌아갔다.주방 안.진서준은 황보식이 준비한 약재를 자기 앞에 놓았다.이어서 진서준은 체내의 장청결을 운행했다.지난번에 가마솥으로 단약을 만들 때와 마찬가지로 진서준은 장청결로 약재를 허공에 띄웠다. 그리고 그의 주문에 따라 약재들이 도자기 그릇에 떨어졌다.그러자 원래 있던 반 그릇 정도의 맑은 물이 약재 때문에 금세 청색으로 변했다.진서준은 모든 약재를 정제한 후, 한약 한 그릇을 들고 정원으로 나왔다.정원에서 서성거리고 있던 오윤산은 진서준이 이렇게 빨리 나타난 것을 보고 어리둥절했다.“서준 씨, 뭘 좀 도와드릴까요?”시간이 겨우 10분이 지나서 황보식은 진서준이 아직 한약을 전부 달이지 못했다고 생각했다.그러자 진서준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자. 이걸 드세요. 이 한약을 드신 후에 제가 직접 술법으로 이 약효를 흡수시켜 드리겠어요. 그러면 어르신 병이 다 나을 것입니다.”오윤산뿐만 아니라 황보식도 어리둥절했다.‘겨우 얼마나 지났는데 한약을 다 달였단 말인가? 단약을 만드는 고수들도 이렇게 쉽지는 않을 텐데?’오윤산은 한약을 받아 들고 의미심장한 얼굴로 그 약을 쳐다보았다.진서준이 그 모습을 보자 웃으며 말했다.“혹시 저를 못 믿으세요?”“못 믿는 게 아니에요. 서준 씨의 솜씨가 너무 놀라운 것뿐이에요.”오윤산은 쓴웃음을 지었다.
“뭐라고? 불법적인 일이 우리 가게에서 일어난다고? 말도 안 돼.”성현도가 헛웃음을 지으며 말을 이었다.“넌 전신전 소속이잖아. 그런데 네 오빠인 내가 어떻게 법률을 어기는 일을 하겠어?”“그럼 이 사람들은 왜 부른 거야? 집단 폭력도 불법이거든.”성미영은 차가운 시선을 보이며 성현도와 따졌다.“미영아, 이건 내가 싸우려던 게 아니야. 저 녀석이 일부러 시비 걸러 온 거라고.”성현도는 진서준을 손가락질하며 말했다.“이놈이 일부러 우리 찻집에 난입해 행패를 부리고 상철을 두들겨 패서 머리에 혹이 다 나버렸어. 난 단순히 정당방위를 위해 부른 거라고.”성미영이 등장하자 성현도는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솔직히 실력만 놓고 보면 성현도는 성미영보다 한참 부족했다.게다가 성미영은 전신전 소속인지라 저 남녀가 군부 조직인 전신전을 적으로 돌릴 리 없었다.군대를 건드리는 순간, 무조건 좋은 결과는 있을 수 없었다.“진서준, 도대체 무슨 일이야?”성미영이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어라? 너희 둘이 아는 사이야?”성현도가 눈을 휘둥그레 뜨며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을 지었다.방금 내려놨던 마음이 다시 불안해지기 시작했다.“난 사람을 찾으러 왔어. 하씨 가문 하경범이 이 위층에 있다고 들었는데 진짜인지 가짜인지 모르겠어.”진서준이 손가락으로 위를 가리켰다.“그리고 또 하나, 저 위에서 불법적인 일이 벌어지고 있다고도 하더군. 그게 사실인지 아닌지도 모르겠어.”이 말에 성현도의 표정이 단숨에 험악해졌고 즉시 반박에 나섰다.“헛소리 마. 우리 가게는 단순한 찻집이야. 불법적인 일 따윈 없어. 근거없는 소문을 왜 털어놓고 난리야?”“미영아, 저 녀석한테 속지 마. 난 네 사촌 오빠야. 내가 그런 불법적인 짓을 할 사람이겠어?”성미영이 곧바로 진서준에게 물었다.“진서준, 너 증거 있어?”“직접 올라가 보면 다 알게 될 거잖아?”진서준이 가볍게 말했다.“오빠, 위층으로 가자.”성미영이 단호하게 말했다.“그, 그건 좀 곤란해. 위층엔 귀
순간, 장내는 숨소리조차 들릴 정도로 조용해졌다.모든 시선이 진서준에게 쏠렸고 사람들은 할 말을 잃어버렸다.다들 진서준을 그냥 얼굴만 반반한 남자라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진짜 고수였다.성현도의 부하 중 최고 실력자조차 상대가 되지 않았다.성현도의 얼굴은 시퍼렇게 질렸고 상철을 향해서 욕설을 날렸다.“쓰레기 자식, 이런 애송이 하나도 못 이겨?”부하가 지면 망신당하는 건 결국 성현도 자신이었다.이대로 체면을 구긴 채 끝낼 수는 없었다.이대로 넘어가면 앞으로 르벨 재벌 2세들 사이에서 조롱거리가 될 게 뻔했다.“이봐, 네 실력이 괜찮은 건 인정할게.”성현도가 싸늘한 얼굴로 말을 이었다.“근데 너 혼자서 백 명을 상대할 수 있어? 천 명은? 잘 들어. 내 부하는 수도 없이 많아. 너 같은 놈 하나 처리하는 데 전화 한 통이면 충분해.”진서준은 눈썹을 꿈틀거리며 여전히 같은 말을 반복했다.“다시 말하지만 난 그냥 하경범을 찾으러 온 거야. 그 녀석만 넘기면 오늘 일은 없던 걸로 해주지.”“없던 걸로 한다고?”성현도가 그 말에 어이없어 헛웃음이 나왔다.“너 지금 누굴 상대로 협상하려 드는 거야? 난 성씨 가문의 직계야. 날 건드리면 상대해야 할 건 나 하나가 아니라 우리 가문 전체라고.”그때, 밖에서 다급한 발소리가 들려오더니 곧이어 검은색 전투복을 입은 남자들이 우르르 몰려왔다.이 남자들은 전부 성씨 가문의 경호원이었고 실력도 만만하지 않았다.그것도 한둘이 아니라 무려 50명 이상이었다.한순간에 텅 비어 있던 로비가 사람들로 꽉 찼다.“저 자식 끝났네. 이 정도 성씨 가문 인원이라면 아무리 강해도 버틸 수가 없지.”“그러게 말이야. 이런 상황에서 살아남을 수 없잖아.”“왜 쓸데없이 성현도를 건드린 거지? 스스로 무덤을 판 거잖아.”구경꾼들은 이 광경에 각자 다른 감정을 보였다.누군가는 동정을, 누군가는 아쉬움을, 또 누군가는 짙은 흥미를 보였다.“사연아, 넌 좀 쉬어. 이놈들은 내가 처리할게.”진서준이 앞으로 나섰다.
얼마 지나지 않아 키가 거의 2미터에 달하는 거구의 사내가 찻집 안으로 들어왔다.남자는 그냥 서 있기만 해도 엄청난 위압감이 느껴졌다.“상철아, 저놈 다리 하나 부러뜨려서 내던져.”성현도가 진서준을 가리키며 명령했다.“알겠습니다.”상철은 간단하게 대답하고는 진서준에게 성큼성큼 다가갔다.“서준아, 내가 할게.”허사연의 눈에는 불꽃 같은 전투욕이 타올랐다.“조심해. 저 녀석은 횡련 종사야. 그렇게 만만한 상대가 아니야.”진서준이 조용히 귀띔했다.“알았어. 설령 못 이긴다고 해도 어차피 네가 있잖아?”허사연이 장난스럽게 웃었다.진서준이 곁에 있는 한, 허사연은 아무것도 두렵지 않았다.“이봐, 사내자식이 여자 뒤에 숨는 게 말이 돼?”상철이 눈썹을 추켜세우며 불쾌한 표정을 지었다.“이봐, 껑충이. 여자를 얕보지 마. 일단 이기고 나서 말해.”허사연이 상철을 도발했다.“아가씨, 그런 기생오라비 말고 날 따르지 그래? 밤마다 널 천국으로 보내줄 수 있는데?”상철이 음흉하게 웃었다.“죽고 싶어 환장했구나.”얼굴이 싸늘해진 허사연이 주먹을 날렸다.강렬한 펀치가 공기를 가르며 폭발음을 일으켰고 그 위력은 철판도 뚫을 수 있을 정도였다.하지만 상철은 비웃듯 입꼬리를 올렸다.“내가 가만히 서 있어도 넌 날 어쩔 수 없어.”“닥쳐!”허사연이 분노에 차 주먹을 그대로 상철의 얼굴로 내리꽂았다.상철은 일부러 머리를 숙이며 대머리 정수리로 받아냈다.쿵!둔탁한 충돌음이 울려 퍼졌다.주먹이 상철의 머리를 강타했으나 대머리는 꿈쩍도 하지 않았고 오히려 허사연이 몇 걸음 물러섰다.순간 손에 뜨거운 통증이 밀려왔고 뼈가 부서질 것 같았다.손을 확인하자 하얀 피부였던 손등이 새빨갛게 부어올랐다.상철은 자기 머리를 한번 쓸어내리더니 빙그레 웃었다.“아가씨, 이제 내 실력을 알겠지?”그 모습에 허사연의 승부욕이 다시 불타올랐고 콧방귀를 뀌며 다시 달려들었다.이번에는 다리를 높이 들어 올려 상철의 머리를 내려찍었다.‘머리가 단단하다고 자랑하
이렇게 예쁘고 섹시한 여자가 싸움 실력이 이렇게 대단할 줄은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다.완전 여성판 이소룡이었다.“너, 너희들 정말 너무 대담한 거 아니야? 여기가 어디인지 알기나 해? 어디서 대놓고 싸움질이야?”종업원은 순간 놀란 뒤 분노에 찬 얼굴로 진서준와 허사연을 가리켰다.찻집이 문을 연 이후로 이렇게 난동을 부리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고 진서준과 허사연이 첫 사례였다.주변의 구경꾼들도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싸움 좀 하면 뭐해? 여긴 성씨 가문의 구역이야. 성씨 가문에서 한마디만 하면 저 남녀는 오늘 밤중으로 사라지겠지.”“어휴, 저 여자 너무 아까워. 저렇게 예쁜데 왜 죽지 못해서 안달이지?”“여자는 살 수도 있겠지만 남자는 무조건 죽을걸.”사람들은 저마다 수군거리며 이미 진서준과 허사연의 결말을 예상하는 듯했다.“그럼 네 말대로라면 내가 널 때린다 해도 얌전히 맞고 있어야 한다는 거야?”허사연은 눈썹을 꿈틀거리며 종업원에게 다가갔다.“오지 마!”종업원은 겁에 질려 연신 뒷걸음질 쳤다.“어떤 미친놈이 내 구역에서 소란을 피우는 거야?”그 순간, 2층에서 한 사람이 내려왔다.모두가 일제히 시선을 돌려 그 사람을 확인하자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성현도가 오늘 여기 있었네?”누군가 그 청년을 알아보았다.“저 둘 끝장났네. 성현도는 악명 높은 냉혈한이야.”그 청년은 바로 찻집의 사장인 성현도였다.성현도는 르벨 재벌 2세 사이에서 유명한 인물이었다.친구에게는 무조건 의리를 지키지만 적에게는 무자비했다.성현도의 고문 방법은 수도 없이 많았고 게다가 무인으로서 무공 실력도 상당했다.“사장님, 저 남녀가 와서 난동을 부렸어요.”종업원은 성현도를 보자마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사장이 나온 걸 확인한 허사연은 주먹 한 방에 종업원을 기절시켜 버렸다.“뭐야?”성현도의 눈이 가늘어졌고 표정이 험악해졌다.자기 앞에서 대놓고 부하를 때리다니, 이건 너무나도 명백한 도발이었다.“아가씨, 우리 처음 보는 사이 맞지? 우리
그리고 오후 2시가 되자 진서준은 허사연을 데리고 조호가 말한 천국찻집으로 향했다.겉모습만 보면 이 찻집은 진짜 전통찻집 같았고 규모도 꽤 컸다.하지만 막상 안에 들어가 보니 전혀 다른 세상이 펼쳐져 있었다.1층과 2층까지는 정말 평범한 찻집처럼 꾸며져 있었고 누가 봐도 이상한 점을 찾기 어려울 정도였다.하지만 3층으로 올라가려면 회원권이 있어야 하거나 사장이 직접 허락한 사람만 출입할 수 있었다.“손님, 아가씨, 이쪽으로 안내해 드리겠습니다.”진서준과 허사연이 차를 마시러 온 줄 안 종업원이 빠르게 달려와 안내하려 했다.“그럴 필요 없어. 난 하경범을 찾으러 왔거든.”진서준이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네?”종업원이 순간 얼어붙었다.“혹시 하씨 가문의 하 도련님을 말씀하시는 겁니까?”“맞아.”진서준이 고개를 끄덕였다.“손님은 누구신지...”종업원이 신중하게 물었다.진서준은 잠시 생각하다가 말했다.“그냥 복수하러 왔다고 전해.”그놈 아버지라고 하는 건 자기를 모욕하는 것과 같았고 친구라고 하기도 기분이 더러웠다.그 말에 종업원의 얼굴색이 확 변했다.“손님, 여기서 장난치지 마세요.”하경범은 르벨에서 유명한 재벌 2세였다.이 찻집의 사장과도 막역한 사이였고 여기서 일하는 직원이라면 그 사실을 모를 리 없었다.“왜? 못 믿겠어?”진서준이 피식 웃으며 되물었다.“손님, 하 도련님에게 복수하려던 사람은 단 하루도 살아남지 못했습니다.”종업원이 경고하듯 말했다.“그런 농담은 함부로 하는 게 아닙니다.”그 말을 듣자 진서준은 담담하게 말했다.“그럼 이렇게 전해. 그 하경범이 두들겨 맞고 나자빠지게 했던 진서준이 왔으니 당장 기어 나오라고 말이야.”진서준의 뻔뻔한 태도에 종업원은 어이가 없었다.“좋습니다. 손님이 그렇게 죽고 싶다면 제가 기꺼이 도와드리죠.”종업원은 바로 무전기를 꺼내 들었다.“문제 발생했습니다. 난동자가 있습니다.”쿵! 쿵!급한 발소리가 들리더니 곧이어 건장한 남자 스무 명이 들이닥쳤다.전부 검은
진서준과 허사연은 차를 타고 조호의 회사로 향했다.이 회사는 그냥 겉치레일 뿐, 진짜 돈이 들어오는 곳은 유흥업소들이었다.유흥업소를 얕잡아보면 안 된다.운 좋게 돈 많은 도련님들이라도 걸리면 하룻밤에 수억 원이 순식간에 손에 들어오게 될 것이다.“진서준 씨!”진서준이 들어서자 조호는 황급히 자리에서 일어나 공손한 태도를 보였다.조호는 진서준 옆에 있는 허사연을 힐끗 쳐다본 뒤 고개를 숙이고 감히 더 볼 엄두도 내지 못했다.“잡담은 그만하고 하경범을 잡아가는 제일 좋은 타이밍만 말해.”진서준이 직설적으로 물었다.이 말에 조호는 속으로 크게 놀랐다.“매일 오후마다 하경범은 천국찻집이라는 곳에 갑니다.”조호는 재빨리 대답했다.“보통은 경호원 몇 명만 데리고 가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얼씨구? 저런 인간이 매일 차나 마시러 간다고?”진서준은 의외라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그게... 진서준 씨, 사실 그곳은 이름만 찻집이지 실제로는...”조호는 옆에 여성이 있다는 걸 의식해서 말을 흐렸지만 진서준은 그 뜻을 단번에 알아챘다.“알겠어.”진서준이 고개를 끄덕였다.차를 마시는 곳이 아니라 그냥 인기 많은 인터넷 셀럽이 가득한 고급 유흥업소일 것이다.“진서준 씨, 듣자 하니 그 찻집의 주인은 성씨 가문의 사람이라고 합니다. 진짜로 움직이실 거라면 하경범이 이동 중일 때를 노리는 게 좋을 겁니다.”조호가 조심스럽게 조언했다.“응? 성씨 가문이 이런 사업도 해?”진서준은 흥미롭다는 듯 눈썹을 꿈틀거렸다.진서준은 오영수에게서 성미영에 대한 정보를 들은 적이 있었다.정의로운 성격의 성미영이 자기 가문에서 이런 유흥업소를 운영하고 있다는 걸 알게 되면 절대 가만히 있지 않을 터였다.“네, 듣기로는 성씨 가문의 한 직계 후손이 운영한다고 합니다. 여자에 미쳐 있는 놈이라 르벨의 돈 많은 도련님들과 꽤 친분이 깊다고 하더군요.”조호는 본인이 아는 정보를 전부 쏟아냈다.“좋아, 대충 알겠어.”진서준이 고개를 끄덕였다.조호의 회사를 나온
진서준이 허사연의 캐리어를 들어주며 옆방으로 걸어갔다.그 뒷모습을 보며 도지아는 부러움이 가득한 눈빛을 보냈다.인간은 원래 모여서 사는 걸 선호하는 동물이다.사회를 벗어나서 혼자 살아가는 건 생각보다 훨씬 힘든 일이었다.가족도 친구도 없이 너무 오래 지내다 보면 결국 감정 없는 시체나 다름없는 존재가 되어버린다.그렇게 되면 사람과 짐승의 차이가 없어질 것이다.“어제 전화할 때 그랬었지? 이번에 너 자기 출신을 찾으러 온 거라고.”호텔 방으로 돌아온 후, 허사연이 호기심 가득한 얼굴로 물었다.“너 원래 경성 진씨 가문 사람이잖아?”“나도 그렇게 알고 있었어. 그런데 할아버지가 예전에 말해주셨어. 사실 우리 아버지는 어릴 때 길에서 주워 온 아이였다고.”진서준은 허사연에게 숨길 생각이 없었다.허사연은 진서준이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었다.허사연이라면 이 비밀을 절대 밖으로 흘리지 않으리란 확신이 있었다.“뭐라고? 아버님이 주워 온 아이라고?”허사연이 깜짝 놀랐다.“그래. 하지만 이 사실을 아는 건 나뿐이야. 가족 중에서도 할아버지가 나한테만 알려주셨지.”진서준이 고개를 끄덕였다.“얼마 전, 오영수가 내 등에 있는 용을 보고는 내가 용맥의 일족이라고 했어. 그래서 오영수를 따라 여기 와서 오영수 셋째 삼촌에게 내 출신에 관해 알아보려 했던 거야.”“네 등에 용이 있다고? 난 한 번도 본 적 없는데?”허사연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그동안 둘이 알몸으로 함께한 시간도 적지 않은데 허사연은 한 번도 본 기억이 없었다.“내가 체내 혈기를 모을 때만 그 용이 나타나거든.”진서준이 설명을 이어갔다.“그런데 오영수 삼촌이 아직 돌아오질 않아서 일단은 여기서 며칠 기다려야 해.”“아니, 그럼 오씨 가문에서 널 안 재워줬어?”허사연이 의아해했다.명문대가인 오씨 가문에 빈방이 없을 리가 없었다.“그날 오영수를 찾아갔는데 마침 오영수 할아버지가 위중했어. 그리고 그 집안엔 그 어르신을 그냥 보내고 싶어 하는 사람이 있었지.”진서준이 담담하게
“진짜 예쁜 새색시 숨겨놓고 있었네?”허사연이 의미심장한 표정을 지었다.누구라도 자기 남자 방에 예쁘고 몸매가 완벽한 여자 하나가 같이 있는 걸 보면 의심 안 할 수가 없었다.게다가 지금은 아침이었다.설마 이 여자가 아침에 막 찾아온 건 아니겠지?“사연아, 오해야. 내가 제대로 설명할게.”진서준은 머리가 띵해졌고 뇌가 지진이라도 난 것 같았다.“아가씨, 오해하지 마세요. 어제 저랑 진서준이 같은 방에서 잔 건 맞지만 진짜 아무 일도 없었어요. 저 밤새 한숨도 못 잤다니까요?”도지아가 황급히 해명에 나섰다.“네? 밤새 안 자고도 아무 일 없었다고요?”허사연이 눈썹을 꿈틀거리며 되물었다.“설마 밤새 불태우느라 못 잔 건 아니겠죠?”허사연의 농담과 진담이 뒤섞인 말에 진서준은 헛웃음만 나왔다.“사연아, 이쪽은 도지아야. 우리 진짜 그냥 친구야. 일단 들어와. 천천히 설명할게.”허사연이 방에 들어오자 진서준은 서로에게 소개했다.그러고는 이 방에서 일어난 상황을 설명했다.“도지아는 황예은이 소개해 준 환자야. 다리 치료를 부탁받았거든. 종아리를 봐봐. 이틀 전에 내가 직접 발라준 연고가 있어.”허사연이 내려다보자 확실히 연고가 발라져 있었다.“그리고 도지아가 밤새 안 잔 건 원기를 수련하느라 그랬던 거야. 너도 예전에 수련한다고 며칠씩 안 잔 적 있잖아?”허사연은 오해가 풀리자 그제야 빙그레 웃었다.“내가 뭐 어쨌다고 그렇게 호들갑이야?”“혹시라도 오해할까 봐 그러는 거잖아.”진서준이 빠르게 대답했다.“뭐야? 내가 그렇게 의심 많고 질투 많은 여자로 보여?”허사연이 눈을 가늘게 떴다.“아, 아니지. 우리 사연은 누구보다 속이 넓은 부드러운 여자지.”진서준이 급히 정정했다.“됐어, 너 겁먹은 거 너무 귀엽다.”허사연이 피식 웃었다.“넌 여기 좀 쉬고 있어. 내가 방 하나 잡고 올게.”진서준은 더 머뭇거릴 틈도 없이 벌떡 일어나 나가 버렸다.진서준의 뒷모습을 보며 허사연은 그제야 웃음을 터뜨렸다.“도지아 씨, 진서준이
“내가 가면 안 돼?”사실 진서준은 거절하려 했었다.르벨은 안개가 짙게 깔린 늪지대 같은 곳이라 진서준조차도 어디에 함정이 있을지 가늠하기 어려웠다.그러니 허사연이 온다면 다칠 가능성이 컸다.하지만 거절하면 허사연이 상처받을 게 뻔했다.“당연히 되지. 지금 위치 보낼게.”진서준은 단호하게 말하며 위치를 보냈다.자기 여자를 지킬 자신도 없으면서 강자들을 상대한다는 건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자기야, 잘 자.”허사연이 애정 가득한 목소리로 말했다.“너도 일찍 자.”진서준이 다정하게 답했다.전화를 끊고 나니 진서준의 졸음이 싹 가셨다.진서준은 창가로 다가가 이 화려한 도시를 내려다봤다.“오씨 가문, 안씨 가문, 하씨 가문... 너희가 무슨 꿍꿍이를 꾸미든 난 전부 박살 낼 거야. 이번엔 반드시 나와 아버지의 정체를 밝혀내고 말겠어.”진서준의 눈빛이 날카롭게 빛났다.그렇게 별다른 사건 없이 밤이 지나갔다.다음 날 아침.진서준이 막 눈을 뜨자마자 도지아의 흥분한 외침이 들려왔다.“진서준, 됐어. 나 생겼어!”도지아는 눈 밑이 시커멓게 변해 있었는데 밤새 잠을 자지 않은 게 분명했다.진서준이 눈썹을 꿈틀거리며 물었다.“너 아직 처녀 아니었어? 대체 어떻게 임신한 거야?”“미친놈아, 임신은 개뿔, 무슨 헛소리야?”도지아는 얼굴이 빨개지며 진서준을 노려봤다.“그럼 왜 아침부터 난리야?”진서준이 되물었다.보통 사람이라면 이렇게 아침부터 흥분해 날뛰지 않을 것이다.“어제 네가 준 수련법 기억나지? 나 벌써 원기를 형성할 수 있게 됐어.”자기가 대단하다고 여긴 도지아는 자랑스럽게 선언했다.고작 하룻밤 만에 원기를 형성한 건 확실히 대단한 일이었다.“뭐? 그렇게 빠르다고? 너 타고난 천재 맞네?”진서준이 다소 의아한 표정을 보였다.보통 무인은 원기를 익히는 데만 최소 1년이 걸리는데 그것도 매일 꾸준히 수련할 경우에만 발생하는 일이었다.심지어 재능 있는 자들도 한두 달은 족히 걸린다.그런데 도지아는 단 하룻밤에 이 어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