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만둬.”배수정 곁에 있던 한 노승이 급히 말렸다.유지수는 불순한 의도를 품고 배수정을 노리고 있을 가능성이 컸다.지금 지현민 주지도 자리에 없는데 만약 배수정에게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누구도 그 책임을 질 수 없었다.“괜찮아요. 단순한 시합일 뿐이니까요.”배수정은 평온하게 말을 이었다.“유 시주님이 너무 거칠게 하진 않을 거라고 믿어요.”진서준과 유지수 사이의 과거 이야기는 배수정도 들어본 적이 있었다.지금 유지수가 배수정을 직접 지명해 링에 올라오라고 한 건 그 목적이 분명했다.유지수는 그 말에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물론이죠.”“하지만...”유지수의 말이 끝나지 않았다.“칼날은 눈이 없으니 평온 씨도 조심하는 게 좋을걸요.”그 말이 떨어지자 주변은 순간 술렁였다.“이 여자가 평온 스님과 무슨 원한이라도 있나?”“평온 스님은 불교에 입문하기 전에 유명 여배우였다던데, 아마 둘 사이에 무슨 악연이 있는 모양이야.”“여긴 소림이잖아. 지현민 주지님도 지금 계시는데 저 여자가 정말 평온 스님을 죽이려고 하진 않을 거야.”아래에 있던 사람들이 목소리를 낮춰 수군거렸다.진서준은 눈살을 찌푸리며 유지수가 도대체 무슨 꿍꿍이를 꾸미는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설마 이렇게 많은 사람들 앞에서 배수정을 대놓고 죽이려는 걸까?그런 조짐이 보인다면 진서준은 절대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다.배수정은 천천히 무대에 올라 유지수 맞은편에 섰다.둘 사이의 거리는 3미터도 채 되지 않았다.“배수정, 진서준이 바로 아래서 보고 있잖아. 내가 널 죽이려고 한다면 진서준이 과연 어떤 반응을 보일까?”유지수는 오직 그들 둘만이 들을 수 있는 목소리로 소곤거렸다.“날 혹시 알아요?”배수정은 유지수의 갑작스러운 말에 의아해했다.“진서준 곁에 있는 모든 여자는 난 다 알고 있어.”유지수가 가볍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허사연은 이미 복수했으니 두 번째 복수 대상은 바로 너야.”복수라고?배수정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유 시주님, 큰 오해를 하셨
유지수는 이를 보고 느긋하게 날카로운 손톱을 휘둘렀다.찰랑!수박을 자르듯, 금색 빛은 순간 산산조각 났다.유지수는 종아리에 힘을 주더니 순식간에 속도를 내며 배수정을 향해 돌진했다.벼락이 내리치듯 두 사람이 빠르게 교전한 후, 배수정의 팔에서 피가 주르륵 흘러내렸다.배수정은 순간 뒤로 물러났고 시뻘건 피가 바닥을 흥건히 적셨다.“어머나, 평온 스님이 다쳤잖아!”이 광경을 본 사람들은 충격에 빠졌다.평온 스님이 지현민 주지의 직계 제자라는 사실을 모두가 인지하고 있었다.평온의 실력은 동년배 무인들보다 훨씬 뛰어났다.그런데 지금 이름도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 신농 제자에게 상처를 입었다.진서준은 마음이 조여들며 근육이 팽팽해졌다.진서준의 상태가 심상치 않음을 눈치챈 주자청이 물었다.“김평안 씨, 혹시 평온 스님과 아는 사이인가요?”“친구입니다.”진서준은 냉랭하게 한마디 던졌다.“저 여자가 아까부터 살인을 목적으로 공격하는 걸 보니 평온 스님 생명이 위험할 수도 있겠어요.”주자청이 진서준에게 귀띔했다.“네? 저 유지수라는 여자가 평온 씨를 죽이려고 한다고요? 왜요? 둘 사이에 무슨 원한이 있나요?”조슬기는 이 상황을 이해할 수 없었다.“여긴 소림이잖아요. 저 여자가 진짜 평온 씨를 죽인다면 자기도 살아남기 어려울 건데요.”신수란 역시 이해할 수 없는 상황에 눈살을 찌푸렸다.주최 측의 사람을 죽이고 도망치려 한다는 건 거의 불가능한 일이라고 볼 수 있었다.“저 여자가 진짜 마음먹고 평온 스님을 죽이려고 한다면요?”주자청은 진서준이 과연 어떤 반응을 보일지 궁금해 슬쩍 떠보았다.“그럼 내가 평온을 구할 겁니다.”진서준은 침착하게 대답했다.진서준은 절대 유지수가 배수정을 죽이는 걸 눈 뜨고 지켜볼 수 없었다.지난번 유지수가 허사연을 고문할 때, 진서준은 현장에 없었다.이번에는 절대 그런 비극이 반복되게 두지 않을 것이다.“배수정, 아직도 전력을 다하지 않을 거야? 전력을 다하지 않으면 정말 죽을 거야.”유지수는 눈을
“김평안, 너 설마 경기 규칙을 깨려는 거야?”용전이 벌떡 일어나서 곧장 진서준을 가리켰다.다른 사람들도 전부 경악이 가득한 표정으로 진서준을 바라보았다.“저자가 감히 링에 올라가 경기를 방해하다니, 다른 종문들의 분노를 사는 게 두렵지도 않은 건가?”“보아하니 저 김평안이 평온 스님과 뭔가 숨겨진 과거가 있는 것 같아.”“영웅이 미녀를 구하는 건 좋은 일이긴 한데 다만 안타깝게도 평온 스님은 이미 불문에 귀의했지.”은청준이 미간을 찌푸리며 불만을 털어놨다.“저 자식, 자기가 뭘 하는지도 모르는 건가? 저렇게 경기를 방해하면 이후의 경기는 어떻게 진행하라는 거지?”만약 모두가 진서준처럼 갑자기 난입해서 경기를 막아선다면 남은 대회는 아예 진행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하지만 진서준은 주변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고 싸늘한 눈빛으로 유지수를 바라보았다.“더 이상 무례하게 굴면 널 저세상에 보내 주마.”“뭐야, 네 소중한 애인이 걱정돼서 그러는 거야?”유지수가 실실 웃으며 비꼬았다.“진서준, 넌 참 한결같구나. 네 최대 약점은 너무 착하다는 거야. 지금 넌 그 여자를 구했지만 이후의 경기는 어떻게 할 건지 생각이나 해 봤어? 우승하지 못하면 천년병제련을 얻을 수 없고 자연스레 진서라도 살릴 수 없어. 근데 진서라와 이 여자 사이에서 넌 이 여자를 선택했어.”이 말에 배수정의 표정이 미묘하게 변했다.진서준이 천년병제련을 얻기 위해 이 대회에 참석한 줄은 몰랐기 때문이다.그 약초는 지금 장경각에 보관되어 있다.검은 옷의 침입자가 들이닥쳤던 그날 밤, 주지가 직접 확인했을 때도 천년병제련은 여전히 그곳에 있었다.“내가 남겨진 선택지가 단 두 개뿐이라고 생각해?”진서준의 목소리는 싸늘했다.“웃기고 있네, 설마 네가 다른 곳에서 천년병제련을 구했단 말이야?”유지수는 여전히 비웃으며 말을 이었다.“진서라의 독은 내가 직접 놓은 거야. 천년병제련은 필수적인 약재지. 그게 없으면 진서라를 구할 방법은 없어.”“서라는 내가 반드시 구할 거야.
“진서준이 누구지?”은청준 일행은 멍한 표정을 지었다.“설마 김평안이라는 신분이 가짜였던 말이야?”“잘 들어, 진서준. 네 주변의 여자들, 내가 하나씩 다 죽여버릴 거야. 오늘 날 죽이지 않으면 넌 평생 후회하게 될 거야.”유지수의 눈빛은 광기에 휩싸였고 그녀의 미친 듯한 모습에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몸을 움츠렸다.소인은 건드려도 여자는 건드리지 말라는 옛말이 틀린 것 같지 않았다.“좋아, 그럼 네 바람대로 해주지.”진서준이 담담하게 받아쳤다.“네 마음대로 날뛰게 놔둘 것 같아? 네가 지수를 죽이면 바로 네 정체를 폭로할 거야. 그땐 너도 목숨을 부지하기 힘들 거야.”용전이 이를 갈며 위협했다.“굳이 네가 폭로할 필요도 없어. 난 이미 이 신분이 지겨워졌으니까.”진서준은 태연하게 손을 뻗어 얼굴에 쓴 인피면구를 벗어던졌다.“대박, 진짜 진 마스터잖아.”“진 마스터랑 김평안이 같은 사람이었다고?.”“이게 말이 돼? 한 사람이 검도, 횡련, 무도, 술법 네 가지를 다 정통했다고> 그럼 우리 같은 재능 없는 놈들은 대체 뭐 먹고 살라는 거야?”진서준의 젊은 얼굴이 드러나자 경기장은 폭발적인 반응을 보였다.세 종문의 장로들은 진서준을 바라보며 의미심장한 표정을 지었다.이 진서준이라는 청년은 아무리 봐도 20년 전 그 사람을 너무 닮아 있었다.혹시 이 진서준이 그 사람의 후손인 건가?“맞다, 이분이 바로 국경에서 나랑 수란 언니를 구해주셨던 그 은인이잖아.”조슬기가 눈을 반짝이며 단번에 진서준을 알아봤다.“맞네요. 이 사람이 그 사람이었네요.”신수란도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진서준과 김평안이 동일 인물이었다는 걸 신수란이 예상할 리 없었다.“김평안이 진서준이었네. 그러니 배수정이 저렇게 신경 쓰고 있었던 거군.”양지천의 표정이 일그러졌다.진서준이 주동적으로 인피면구를 벗는 모습을 본 용전은 그 자리에 굳어버렸다.이 녀석이 오늘 진짜 죽을 각오를 한 건가?자기를 노리는 종문 사람이 수두룩하다는 걸 모른단 말인가?“꺼져.
이번엔 유지수가 진짜 당황해했다.유지수가 진서준의 눈에서 강렬한 살의를 읽었기 때문이었다.진서준은 지금 진짜 유지수를 죽이려 하고 있었다.“진서준, 정신 차려! 내가 죽으면 구지범은 절대 네 아버지를 풀어주지 않을 거야!”유지수는 필사적으로 저항하려 했지만 체내의 강기가 전혀 말을 듣지 않았다.그 느낌은 마치 누군가 일부러 방해하고 있는 것 같았다.“구지범의 목적은 이미 알고 있어. 그놈은 단지 우리 아버지에게서 장청결을 얻으려는 것뿐이야.”진서준은 쌀쌀하게 말을 이었다.“널 풀어준 건 우리 아버지 흔적을 찾는 시간을 지연시키려는 술수에 불과했어. 유지수, 넌 내가 일부러 널 살려줬다고 착각했어?”진서준이 말하는 동안, 용전이 구경꾼들을 향해 소리쳤다.“다들 우리 신농을 위해 이 배신자를 잡아. 선뜻 나서는 자에게는 우리 신농이 큰 빚을 지는 거야.”그 말을 듣자 사람들이 서로 눈치를 보며 슬금슬금 움직이기 시작했다.대한민국 최상급 종문 신농이 큰 빚을 진다면 이후 대한민국에서 거의 법을 무시하며 제멋대로 살아갈 수 있었다.“당신은 신농의 한낱 제자일 뿐인데 어떻게 감히 신농을 대표해 그런 약속을 할 수 있죠?”조슬기가 단칼에 반박했다.진서준에게 두 번이나 목숨을 구원받은 조슬기는 진서준이 다수에게 포위되는 걸 가만히 보고 있을 수 없었다.용전의 얼굴이 시퍼렇게 굳어졌다.조슬기가 자기 계획을 방해할 줄은 예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조슬기 씨 말이 맞아. 신농 제자 따위가 감히 신농을 대표할 자격이 있겠나?”“그냥 우린 지켜보자고. 무엇보다 저 용존 실력이 너무 강해.”“신농 제자들을 한 방에 처리했는데 우리가 어떻게 상대할 수 있겠어?”사람들은 다시 자리에 앉아 상황을 지켜보기로 했다.용전은 분통이 터졌다.용전은 이제라도 사실을 밝힐지 고민하고 있었다.진서준에게 선법이 있다는 사실이 드러난다면 용전이 굳이 부추기지 않아도 이들이 알아서 덤벼들 것이다.하지만 그 순간이 오면 용전은 선법을 차지하지 못할 수도 있었다.
승려는 진서준 앞에 다다르기도 전에 그 기운에 짓눌려 한 걸음 내딛는 것도 힘들어졌고 결국 진서준의 손바닥에 맞아 날아가듯 튕겨 나갔다.“감히 우리 승려를 공격해?”다른 소림 승려들도 일제히 자리에서 일어나 진서준을 겹겹이 둘러쌌다.“진 시주님, 이만 물러나세요.”황금 가사를 두른 승려가 앞으로 나서며 설득했다.이 승려는 소림 열여덟 금강 중 한 명이었는데 천의방에 오를 정도로 실력이 강력한 인물이었다.“주 장로님, 어서 진서준 오빠를 구해주세요.”진서준이 승려들에게 포위당하자 조슬기가 초조한 마음으로 도움을 청했다.“저 녀석이 우릴 전부 속였잖아. 애초에 수상쩍었는데 왜 굳이 구해줘야 해?”“그러게 말이야. 이렇게 많은 사람들 앞에서 여자를 학대하는데, 저런 놈을 왜 우리가 도와야 하지?”“슬기 후배, 너도 정신 좀 차려. 저런 미친놈은 여기서 죽는 게 좋은 일이야.”곤륜 제자들이 일제히 진서준을 도와줄 필요가 없다며 소림 승려가 죽이는 게 정당하다고 여겼다.“조슬기 아가씨, 저는 변경에서 저 녀석을 만났을 때부터 뭔가 수상쩍다고 생각했어요.”신수란이 혀를 차며 말을 이었다.“여자를 이렇게까지 학대하는데 남자로서, 아니, 사람으로서 할 수 있는 일이 맞나요?”모두가 진서준을 비난했지만 아무도 진서준이 왜 이러는지 알려고 하지 않았다.“여러분, 정말 해도 해도 너무하네요.”조슬기가 분노를 터뜨렸다.“진서준 오빠가 당신들에게 해를 끼친 것도 아닌데 도대체 왜 그렇게까지 적대하는 거죠?”“조슬기 아가씨, 그럼 저 녀석이 여자를 죽도록 패는 게 적절하다고 생각하는 거예요?”“진서준 오빠가 저러는 건 꼭 그럴 만한 이유가 있을 거예요.”“아무리 이유가 있다고 해도 이건 너무한 게 아닌가요?”신수란은 여전히 진서준에 대한 편견을 버리지 않고 고집을 부렸다.“얼씨구, 소림이 작정하고 오늘 끝까지 남의 일에 간섭하려 한다는 거지?”진서준이 금강을 노려보며 물었다.“시주님, 살생을 멈추세요.”“살생을 멈추라고? 말은 참 쉽군.”
인력은 결국 한계가 있다.설령 지선이라 해도 신화 속 신선들처럼 산을 옮기고 바다를 뒤엎으며 별 불로 하늘을 태울 수는 없다.오직 한 부류의 사람이 이 정도로 엄청난 일을 할 수 있는데 그건 바로 선인이었다.먼 옛날부터 이 세상에는 선인이 출현했다는 많은 증거가 있었다.그 선인들은 사실 처음에는 평범한 사람과 다를 바 없었다.단지 그들이 수선지법을 갖고 있었기에 평범한 사람과 달라진 것이다.용전의 말이 떨어지자 사람들은 그제야 왜 스무 살 남짓한 진서준이 이렇게 무시무시한 실력을 자랑하는지 어느 정도 이해한 듯 보였다.이유는 사실 간단했다.진서준이 절세의 전승을 받았기 때문이었다.그 절세의 전승이 과연 무엇일지, 다들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었다.바로 진서준이 수선지법을 손에 쥐고 있기 때문이었다.순식간에 사람들이 진서준을 바라보는 눈빛이 뜨겁게 달아올랐다.“여러분, 그거 아나요? 20여 년 전, 대한민국이 대재앙을 겪을 때 대한민국을 깜짝 놀라게 했던 그 진요한이라는 남자가 바로 이놈의 아버지입니다. 그동안 진요한은 우리 신농의 금지 구역에 가두어두고 수선지법을 얻어 모든 이와 나누기 위해 애썼습니다. 하지만...”용전은 실망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말을 이었다.“진요한은 고집이 세서 이 좋은 것을 다른 사람과 나누기를 거부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부득이하게 진요한의 아들을 잡으러 온 거죠.”용전은 자기가 도덕적 고지에 올라선 듯한 태도를 보이며 말했다.지금까지 한 모든 일이 결국 선법을 얻어 모두와 나누기 위한 것인 듯 모두를 속이고 있었다.이 해명을 들은 사람들은 모든 죄를 진서준에게 돌리기 시작했다.“이 자식이 갑자기 무도계에 튀어나온 이유가 있었군. 수선지법을 가지고 있으니 당연했던 거였어.”“그렇게 대단한 걸 가지고 있으면서 우리와 나누지 않는다니, 진짜 이기적이네.”“그렇다면 이제 우리는 더 이상 가만히 있을 수 없지.”천천히 지켜보려던 사람들도 전부 일어섰다.선법은 최고 수준의 전승이었다.진서준이 스무 살 남짓
그러자 소림의 사람들은 즉시 자리를 비켜주었다.“장로님, 우리도 얼른 올라갑시다. 조금만 늦으면 저놈 선법을 다른 사람이 빼앗을 겁니다.”도권우도 급한 마음에 문추원을 재촉했다.“급해할 거 없어. 이 녀석 실력이 약하지 않으니 저 미련한 놈들에게 당할 수 없어. 일단 인해 작전에 지치게 놔두자.”문추원도 바보는 아니었다.진서준처럼 선법을 가진 사람과는 절대 정면으로 맞붙으면 안 된다.이런 사람을 죽이는 게 아니라 생포해야 목적을 이룰 수 있다.생포하는 것과 죽이는 건 차이가 엄청난 완전히 다른 일이었다.상대보다 훨씬 뛰어난 실력이 있지 않는 이상 생포할 수는 없을 것이다.장백 쪽에서도 미적지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4대 종문의 제자들은 수련을 통해 무엇을 얻고자 했던가? 바로 선인의 길을 추구하는 것, 영생을 얻기 위해서였다.이제 선법을 얻을 기회가 생겼으니 당연히 놓칠 수 없었다.하지만 그들은 문추원과 마찬가지로 무모하게 움직이지 않고 적절한 기회를 기다리고 있었다.“다들 멈추세요! 진서준 오빠를 공격하지 마세요!”조슬기가 사람들 사이를 지나쳐 진서준 앞에 서며 말했다.“조슬기 씨, 이 일은 우리와 이놈의 개인적인 일이니 끼어들지 않는 게 좋을 겁니다.”황의 노인이 조슬기를 설득했다.“진서준 오빠는 제 목숨을 구해주신 분이에요. 이 일은 저와도 당연히 상관있는 일이에요.”조슬기의 태도는 단호했다.“게다가 이 선법은 진서준 오빠의 가보인데 왜 당신들한테 줘야 하죠? 진서준 오빠에게 사이좋게 나누자고 하기 전에 당신들이 가난한 사람들에게 도움을 준 적이 있는지나 한번 생각해 보세요.”황의 노인은 자기가 논리적으로 밀리는 것을 깨닫고 더 이상 조슬기와 언쟁을 벌이려 하지 않았다.“조슬기 씨, 오늘 이 선법을 손에 넣을 사람은 저 혼자가 아닙니다. 우리 백 명이 넘는 사람이 함께할 겁니다. 그런데도 조슬기 씨가 길을 비키지 않겠다고 고집을 부리면 눈이 달리지 않은 주먹과 발이 조슬기 씨를 스칠 수 있다는 걸 명심하세요.”황의 노
그리고 오후 2시가 되자 진서준은 허사연을 데리고 조호가 말한 천국찻집으로 향했다.겉모습만 보면 이 찻집은 진짜 전통찻집 같았고 규모도 꽤 컸다.하지만 막상 안에 들어가 보니 전혀 다른 세상이 펼쳐져 있었다.1층과 2층까지는 정말 평범한 찻집처럼 꾸며져 있었고 누가 봐도 이상한 점을 찾기 어려울 정도였다.하지만 3층으로 올라가려면 회원권이 있어야 하거나 사장이 직접 허락한 사람만 출입할 수 있었다.“손님, 아가씨, 이쪽으로 안내해 드리겠습니다.”진서준과 허사연이 차를 마시러 온 줄 안 종업원이 빠르게 달려와 안내하려 했다.“그럴 필요 없어. 난 하경범을 찾으러 왔거든.”진서준이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네?”종업원이 순간 얼어붙었다.“혹시 하씨 가문의 하 도련님을 말씀하시는 겁니까?”“맞아.”진서준이 고개를 끄덕였다.“손님은 누구신지...”종업원이 신중하게 물었다.진서준은 잠시 생각하다가 말했다.“그냥 복수하러 왔다고 전해.”그놈 아버지라고 하는 건 자기를 모욕하는 것과 같았고 친구라고 하기도 기분이 더러웠다.그 말에 종업원의 얼굴색이 확 변했다.“손님, 여기서 장난치지 마세요.”하경범은 르벨에서 유명한 재벌 2세였다.이 찻집의 사장과도 막역한 사이였고 여기서 일하는 직원이라면 그 사실을 모를 리 없었다.“왜? 못 믿겠어?”진서준이 피식 웃으며 되물었다.“손님, 하 도련님에게 복수하려던 사람은 단 하루도 살아남지 못했습니다.”종업원이 경고하듯 말했다.“그런 농담은 함부로 하는 게 아닙니다.”그 말을 듣자 진서준은 담담하게 말했다.“그럼 이렇게 전해. 그 하경범이 두들겨 맞고 나자빠지게 했던 진서준이 왔으니 당장 기어 나오라고 말이야.”진서준의 뻔뻔한 태도에 종업원은 어이가 없었다.“좋습니다. 손님이 그렇게 죽고 싶다면 제가 기꺼이 도와드리죠.”종업원은 바로 무전기를 꺼내 들었다.“문제 발생했습니다. 난동자가 있습니다.”쿵! 쿵!급한 발소리가 들리더니 곧이어 건장한 남자 스무 명이 들이닥쳤다.전부 검은
진서준과 허사연은 차를 타고 조호의 회사로 향했다.이 회사는 그냥 겉치레일 뿐, 진짜 돈이 들어오는 곳은 유흥업소들이었다.유흥업소를 얕잡아보면 안 된다.운 좋게 돈 많은 도련님들이라도 걸리면 하룻밤에 수억 원이 순식간에 손에 들어오게 될 것이다.“진서준 씨!”진서준이 들어서자 조호는 황급히 자리에서 일어나 공손한 태도를 보였다.조호는 진서준 옆에 있는 허사연을 힐끗 쳐다본 뒤 고개를 숙이고 감히 더 볼 엄두도 내지 못했다.“잡담은 그만하고 하경범을 잡아가는 제일 좋은 타이밍만 말해.”진서준이 직설적으로 물었다.이 말에 조호는 속으로 크게 놀랐다.“매일 오후마다 하경범은 천국찻집이라는 곳에 갑니다.”조호는 재빨리 대답했다.“보통은 경호원 몇 명만 데리고 가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얼씨구? 저런 인간이 매일 차나 마시러 간다고?”진서준은 의외라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그게... 진서준 씨, 사실 그곳은 이름만 찻집이지 실제로는...”조호는 옆에 여성이 있다는 걸 의식해서 말을 흐렸지만 진서준은 그 뜻을 단번에 알아챘다.“알겠어.”진서준이 고개를 끄덕였다.차를 마시는 곳이 아니라 그냥 인기 많은 인터넷 셀럽이 가득한 고급 유흥업소일 것이다.“진서준 씨, 듣자 하니 그 찻집의 주인은 성씨 가문의 사람이라고 합니다. 진짜로 움직이실 거라면 하경범이 이동 중일 때를 노리는 게 좋을 겁니다.”조호가 조심스럽게 조언했다.“응? 성씨 가문이 이런 사업도 해?”진서준은 흥미롭다는 듯 눈썹을 꿈틀거렸다.진서준은 오영수에게서 성미영에 대한 정보를 들은 적이 있었다.정의로운 성격의 성미영이 자기 가문에서 이런 유흥업소를 운영하고 있다는 걸 알게 되면 절대 가만히 있지 않을 터였다.“네, 듣기로는 성씨 가문의 한 직계 후손이 운영한다고 합니다. 여자에 미쳐 있는 놈이라 르벨의 돈 많은 도련님들과 꽤 친분이 깊다고 하더군요.”조호는 본인이 아는 정보를 전부 쏟아냈다.“좋아, 대충 알겠어.”진서준이 고개를 끄덕였다.조호의 회사를 나온
진서준이 허사연의 캐리어를 들어주며 옆방으로 걸어갔다.그 뒷모습을 보며 도지아는 부러움이 가득한 눈빛을 보냈다.인간은 원래 모여서 사는 걸 선호하는 동물이다.사회를 벗어나서 혼자 살아가는 건 생각보다 훨씬 힘든 일이었다.가족도 친구도 없이 너무 오래 지내다 보면 결국 감정 없는 시체나 다름없는 존재가 되어버린다.그렇게 되면 사람과 짐승의 차이가 없어질 것이다.“어제 전화할 때 그랬었지? 이번에 너 자기 출신을 찾으러 온 거라고.”호텔 방으로 돌아온 후, 허사연이 호기심 가득한 얼굴로 물었다.“너 원래 경성 진씨 가문 사람이잖아?”“나도 그렇게 알고 있었어. 그런데 할아버지가 예전에 말해주셨어. 사실 우리 아버지는 어릴 때 길에서 주워 온 아이였다고.”진서준은 허사연에게 숨길 생각이 없었다.허사연은 진서준이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었다.허사연이라면 이 비밀을 절대 밖으로 흘리지 않으리란 확신이 있었다.“뭐라고? 아버님이 주워 온 아이라고?”허사연이 깜짝 놀랐다.“그래. 하지만 이 사실을 아는 건 나뿐이야. 가족 중에서도 할아버지가 나한테만 알려주셨지.”진서준이 고개를 끄덕였다.“얼마 전, 오영수가 내 등에 있는 용을 보고는 내가 용맥의 일족이라고 했어. 그래서 오영수를 따라 여기 와서 오영수 셋째 삼촌에게 내 출신에 관해 알아보려 했던 거야.”“네 등에 용이 있다고? 난 한 번도 본 적 없는데?”허사연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그동안 둘이 알몸으로 함께한 시간도 적지 않은데 허사연은 한 번도 본 기억이 없었다.“내가 체내 혈기를 모을 때만 그 용이 나타나거든.”진서준이 설명을 이어갔다.“그런데 오영수 삼촌이 아직 돌아오질 않아서 일단은 여기서 며칠 기다려야 해.”“아니, 그럼 오씨 가문에서 널 안 재워줬어?”허사연이 의아해했다.명문대가인 오씨 가문에 빈방이 없을 리가 없었다.“그날 오영수를 찾아갔는데 마침 오영수 할아버지가 위중했어. 그리고 그 집안엔 그 어르신을 그냥 보내고 싶어 하는 사람이 있었지.”진서준이 담담하게
“진짜 예쁜 새색시 숨겨놓고 있었네?”허사연이 의미심장한 표정을 지었다.누구라도 자기 남자 방에 예쁘고 몸매가 완벽한 여자 하나가 같이 있는 걸 보면 의심 안 할 수가 없었다.게다가 지금은 아침이었다.설마 이 여자가 아침에 막 찾아온 건 아니겠지?“사연아, 오해야. 내가 제대로 설명할게.”진서준은 머리가 띵해졌고 뇌가 지진이라도 난 것 같았다.“아가씨, 오해하지 마세요. 어제 저랑 진서준이 같은 방에서 잔 건 맞지만 진짜 아무 일도 없었어요. 저 밤새 한숨도 못 잤다니까요?”도지아가 황급히 해명에 나섰다.“네? 밤새 안 자고도 아무 일 없었다고요?”허사연이 눈썹을 꿈틀거리며 되물었다.“설마 밤새 불태우느라 못 잔 건 아니겠죠?”허사연의 농담과 진담이 뒤섞인 말에 진서준은 헛웃음만 나왔다.“사연아, 이쪽은 도지아야. 우리 진짜 그냥 친구야. 일단 들어와. 천천히 설명할게.”허사연이 방에 들어오자 진서준은 서로에게 소개했다.그러고는 이 방에서 일어난 상황을 설명했다.“도지아는 황예은이 소개해 준 환자야. 다리 치료를 부탁받았거든. 종아리를 봐봐. 이틀 전에 내가 직접 발라준 연고가 있어.”허사연이 내려다보자 확실히 연고가 발라져 있었다.“그리고 도지아가 밤새 안 잔 건 원기를 수련하느라 그랬던 거야. 너도 예전에 수련한다고 며칠씩 안 잔 적 있잖아?”허사연은 오해가 풀리자 그제야 빙그레 웃었다.“내가 뭐 어쨌다고 그렇게 호들갑이야?”“혹시라도 오해할까 봐 그러는 거잖아.”진서준이 빠르게 대답했다.“뭐야? 내가 그렇게 의심 많고 질투 많은 여자로 보여?”허사연이 눈을 가늘게 떴다.“아, 아니지. 우리 사연은 누구보다 속이 넓은 부드러운 여자지.”진서준이 급히 정정했다.“됐어, 너 겁먹은 거 너무 귀엽다.”허사연이 피식 웃었다.“넌 여기 좀 쉬고 있어. 내가 방 하나 잡고 올게.”진서준은 더 머뭇거릴 틈도 없이 벌떡 일어나 나가 버렸다.진서준의 뒷모습을 보며 허사연은 그제야 웃음을 터뜨렸다.“도지아 씨, 진서준이
“내가 가면 안 돼?”사실 진서준은 거절하려 했었다.르벨은 안개가 짙게 깔린 늪지대 같은 곳이라 진서준조차도 어디에 함정이 있을지 가늠하기 어려웠다.그러니 허사연이 온다면 다칠 가능성이 컸다.하지만 거절하면 허사연이 상처받을 게 뻔했다.“당연히 되지. 지금 위치 보낼게.”진서준은 단호하게 말하며 위치를 보냈다.자기 여자를 지킬 자신도 없으면서 강자들을 상대한다는 건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자기야, 잘 자.”허사연이 애정 가득한 목소리로 말했다.“너도 일찍 자.”진서준이 다정하게 답했다.전화를 끊고 나니 진서준의 졸음이 싹 가셨다.진서준은 창가로 다가가 이 화려한 도시를 내려다봤다.“오씨 가문, 안씨 가문, 하씨 가문... 너희가 무슨 꿍꿍이를 꾸미든 난 전부 박살 낼 거야. 이번엔 반드시 나와 아버지의 정체를 밝혀내고 말겠어.”진서준의 눈빛이 날카롭게 빛났다.그렇게 별다른 사건 없이 밤이 지나갔다.다음 날 아침.진서준이 막 눈을 뜨자마자 도지아의 흥분한 외침이 들려왔다.“진서준, 됐어. 나 생겼어!”도지아는 눈 밑이 시커멓게 변해 있었는데 밤새 잠을 자지 않은 게 분명했다.진서준이 눈썹을 꿈틀거리며 물었다.“너 아직 처녀 아니었어? 대체 어떻게 임신한 거야?”“미친놈아, 임신은 개뿔, 무슨 헛소리야?”도지아는 얼굴이 빨개지며 진서준을 노려봤다.“그럼 왜 아침부터 난리야?”진서준이 되물었다.보통 사람이라면 이렇게 아침부터 흥분해 날뛰지 않을 것이다.“어제 네가 준 수련법 기억나지? 나 벌써 원기를 형성할 수 있게 됐어.”자기가 대단하다고 여긴 도지아는 자랑스럽게 선언했다.고작 하룻밤 만에 원기를 형성한 건 확실히 대단한 일이었다.“뭐? 그렇게 빠르다고? 너 타고난 천재 맞네?”진서준이 다소 의아한 표정을 보였다.보통 무인은 원기를 익히는 데만 최소 1년이 걸리는데 그것도 매일 꾸준히 수련할 경우에만 발생하는 일이었다.심지어 재능 있는 자들도 한두 달은 족히 걸린다.그런데 도지아는 단 하룻밤에 이 어려
“스위트룸은 따로 갈라져 있으니까 오해하지 마.”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며 도지아가 설명했다.“오해 안 해. 네가 그런 사람 아니라는 거 알아.”진서준이 무심하게 답했다.사실 둘은 황예은의 소개로 알게 되었을 뿐, 알고 지낸 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진서준은 본인이 그 정도로 매력적인 남자라고 생각하지 않았다.스위트룸에 들어가자 도지아는 안쪽 방을 골랐다.“네 다리에 바른 연고에 아직 물 닿으면 안 돼. 되도록 샤워는 참아.”진서준이 슬쩍 주의를 줬다.“알았어.”도지아가 고개를 끄덕이며 수건을 적셔 상반신만 가볍게 닦았다.그리고 거울에 비친 자기 몸매를 보자 진서준이 했던 말을 떠올리며 이상한 감정이 들었다.‘내 몸매가 별론가? 아니면 내 얼굴이 부족한 건가? 예은과 비교하면 차이가 없다고 할 순 없네.’솔직히 외모만 놓고 보면 황예은을 이길 여자는 없었고 심지어 허사연조차도 약간 밀릴 정도였다.10분 후, 도지아는 가운을 입고 방에서 나왔다.진서준도 샤워를 마치고 깨끗한 옷으로 갈아입은 상태였다.“아까 얘기했던 거 계속할게. 내공 수련을 하려면 타고난 재능이 엄청 중요해.”진서준이 진지한 얼굴로 말을 이었다.“재능 앞에서는 노력은 아무짝에도 쓸모없어. 만약 네가 타고난 천재라면 빠르게 입문할 거고 아니라면 그냥 시간 낭비야.”감옥에 있을 때, 창욱 어르신이 진서준을 슬쩍 만져보더니 바로 천재라고 단언하며 무조건 제자로 삼겠다고 했었다.지금 돌이켜보면 그 말이 맞긴 했다.진서준이 연마하는 선법을 다른 사람이 똑같이 배운다고 해도 그 사람이 이 속도로 성장하는 건 불가능할 터였다.“알겠어.”도지아가 고개를 끄덕였다.“그럼 내 재능부터 한번 확인해 줘.”“손 내밀어.”도지아는 조용히 손을 내밀었다.“잠시 후, 내가 너한테 원기 조금 밀어 넣을 거야. 그걸 느낄 수 있다면 넌 무도계에 발을 들일 자격이 있는 거고 못 느끼면 그냥 포기하는 게 나아.”진서준은 그렇게 말하며 도지아의 손목을 잡고 천천히 경락을 따라 원기를
“이게 무슨 천벌 받을 일이야, 기가 막히는구나.”아버지는 가슴을 쥐어뜯으며 한탄했다.“그래도 그렇지. 마약에 손댔다고 해서 어떻게 너를 팔아넘길 생각을 해? 그게 사람이야? 넌 민수 친누나잖아.”이게 바로 도지아 아버지가 가장 받아들이기 힘든 부분이었다.마약을 한 건 차라리 괜찮았다.그냥 도민수를 끌고 가서 반년 동안 재활센터에 처박아 두면 된다.하지만 도민수는 마약 때문에 도지아를 팔아넘겼다.이건 이미 인간이 할 짓이 아니라 짐승만도 못한 놈이었다.“이제 어떻게 할 생각이에요?”도지아는 부모님을 바라보며 물었다.“경찰에 신고해야지. 이 자식이 저지른 짓에 대한 대가를 치르게 해야 해.”도지아 아버지는 분노로 얼굴이 새빨개졌다.“당신 미쳤어요? 쟤 우리 친아들이라고요. 아들 인생 망칠 일이 있어요?”도지아 어머니는 깜짝 놀라며 황급히 휴대폰을 빼앗았다.“이놈은 더 이상 내 아들이 아니야. 그냥 짐승이야.”도지아 아버지는 분노의 고함을 질렀다.“우리 딸이 이놈 때문에 잘못될 뻔했잖아.”“지아가 없었으면 우리가 납치당했겠어요? 우리가 납치 안 당했으면 민수가 강제로 마약을 했겠어요? 그럼 이후의 일들이 벌어졌겠냐고요?”도지아 어머니는 여전히 아들을 감싸며 말했다.“당신 진짜 노망났어? 그러니까 지아를 그 개자식한테 넘기는 게 당연한 일이라고?”도지아 아버지는 아내를 믿을 수 없다는 듯 쳐다봤다.“둘 다 제 자식이에요. 아무튼 경찰 신고는 절대 안 돼요.”도지아 어머니는 도지아에게 애원했다.“지아야, 엄마가 부탁할게. 제발 신고하지 마, 응? 엄마가 약속할게. 다시는 민수가 이런 짓 못 하게 말이야.”솔직히 도지아는 어머니가 이런 반응을 보일 거라고 예상했기에 미리 결론을 내려두었다.“그럼 재활센터로 보내요. 난 집에서 나가서 살 거예요. 민수랑 다시는 마주치지 않을 거예요.”“안 돼, 지아야. 나가야 할 놈은 저 개자식이야. 넌 우리와 함께 있어야 해.”도지아 아버지가 간절하게 설득했다.“아빠, 엄마, 지금까지 키
조호는 동부 구역 귀도파의 두목이었다.그 지위는 노랑머리 청년의 상급 보스와 맞먹었다.그런 조호가 지금 한 청년 앞에서 이렇게 공손하게 행동하고 있었다.이것만 봐도 상대의 정체가 평범하지 않다는 걸 알 수 있었다.노랑머리 청년은 완전히 얼이 빠졌다.“진서준 씨, 이놈 어떻게 처리할까요?”조호가 고개를 숙이며 공손하게 물었다.“그냥 죽여. 이런 쓰레기는 살아 있어 봤자 사람들에게 해만 끼쳐.”진서준이 무심하게 대답했다.“뭐라고요? 호랑이님, 제발 살려주십시오. 이분도 제발 한 번만 기회를 주십시오.”노랑머리 청년은 그 말을 듣자마자 기겁하며 무릎을 꿇고 연신 머리를 조아렸다.하지만 진서준은 들은 척도 하지 않고 도지아 쪽으로 걸어갔다.“호랑이님. 저 삼생파 소속입니다. 우리 두목의 체면 봐서라도 한 번만 살려주세요.”노랑머리 청년은 무릎으로 기어가 조호 앞에 매달렸다.“나도 널 살려주고 싶어. 하지만 이건 진서준 씨 명령이야. 따를 수밖에 없어.”조호가 부하들에게 손짓하자 부하 두 명이 즉시 다가왔다.한 명은 검은 두건을 꺼내 노랑머리 청년의 얼굴을 뒤집어씌웠고 다른 한 명은 단단히 밧줄을 감아 그의 목을 조였다.노랑머리 청년은 공중에서 팔다리를 마구 휘저으며 필사적으로 저항했지만 30초 후 완전히 조용해졌다.“네 동생을 어떻게 할 생각이야?”진서준이 질문을 던졌다.“나도 몰라.”도지아는 초점 없는 눈으로 대답했다.친동생이 그깟 마약 한 봉지를 위해서 자기를 배신할 줄은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도지아는 이제야 도민수의 눈에 자기가 마약 한 봉지보다도 가치 없는 존재였다는 걸 깨달았다.“이런 일이 없었던 걸로 하고 계속 모르는 척하는 것도 여러 방법의 하나야.”진서준이 제안했다.“하지만 한 번이 있으면 두 번도 있는 법이야. 다음에 또 이런 일이 생길 때, 난 아마 이곳에 없을 거야. 그때는 네가 스스로 보호할 줄 알아야 해.”진서준이 솔직하게 말했다.어떤 일이든 한 번 일어나면 두 번도 일어나기 마련이다.도민수는
다음 순간, 도민수의 시선은 흐릿해지고 완전히 환각의 세계로 빠져들었다.“자, 그럼 내가 먼저 할게. 이따가 너희도 실컷 즐겨.”노랑머리 청년은 눈에 불을 켜고 도지아에게 달려들 준비를 했다.그러나 바로 그때, 요란한 소리와 함께 누군가 별장 대문을 거칠게 걷어찼다.그와 동시에 천장의 전등이 박살 나며 순식간에 실내가 암흑으로 뒤덮였다.그리고 문 쪽에서 서늘한 한기가 흘러들어왔다.“누구야? 여기가 어딘 줄 알고 감히 여길 쳐들어와? 죽고 싶어?”노랑머리 청년은 분노에 이를 갈았다.딱 한 걸음만 더 가면 이 여자를 즐길 수 있었는데 누군가가 이 좋은 노릇을 방해한 것이다.그때, 별장 대문에서 어떤 남자의 실루엣이 나타났다.어둠 속에서 달빛을 받아 노랑머리 청년 일행은 그의 모습을 똑똑히 확인했다.“야, 너 뭐야? 여긴 네가 끼어들 자리가 아니야. 당장 꺼져.”노랑머리 청년은 버럭 화를 내며 소리쳤다.하지만 진서준은 표정 하나 변하지 않은 채 조용히 안으로 걸어왔다.그리고 바닥에 널브러져 환상에 빠진 도민수를 내려다보며 씁쓸하고 실망이 가득한 표정을 지었다.“도박꾼, 술주정뱅이, 약쟁이... 이 세 부류의 말은 절대 믿어선 안 돼.”진서준이 나지막한 소리로 중얼거렸다.다행히 진서준은 이런 상황을 대비해 도지아에게 위치추적기를 달아두었다.“야, 내 말 들리지 않아? 뭘 멍때리고 있어?”노랑머리 청년은 씩씩거리며 다가오더니 진서준의 뺨을 갈기려 손을 치켜들었다.철썩!따귀 소리가 방 안에 울렸다.노랑머리 청년의 몸이 팽이처럼 제자리에서 열 바퀴 가까이 빙글빙글 돌았고 진서준이 힘껏 걷어차자 새우처럼 접힌 채 바닥에 처박혔다.“웩!”노랑머리 청년은 쓰러진 채 입을 벌리더니 그 자리에서 어제 먹은 밥까지 모두 토해냈다.“형님, 괜찮으세요?”건달 하나가 달려와 노랑머리 청년을 부축했다.“저 개자식이... 다들 저놈 죽여버려!”노랑머리 청년은 분노에 차 똘마니들에게 명령했다.삼생파 두목인 노랑머리 청년은 정말 오랜만에 누군가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