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게 상처로 와닿지는 않았지만 모욕감은 극에 달했다.오영준의 분노가 순식간에 폭발했다.“이 자식이 감히 여기서 깝쳐? 여기가 어딘지 알기나 해?”오영준의 고함이 끝나기 무섭게 방 안으로 오씨 가문의 정예 무인 열댓 명이 들이닥쳤다.이들은 전부 무공을 익힌 무인이었다.무인들은 전부 혼자서 거뜬히 백 명을 상대로 싸울 수 있는 괴물이었다.“네가 우리 할아버지를 살려준 건 인정해. 하지만 우리 집에서 살아남고 싶으면 무릎 꿇고 사과해. 안 그러면 오늘 네놈이 이 집을 살아서 나갈 수 없을 거야.”오영준은 싸늘한 얼굴로 진서준을 노려봤다.하지만 진서준은 오영준을 무시한 채 오주화를 바라보았다.“자식이 개판인데 아버지는 상관하지 않나요? 설마 저 녀석이 당신 허락받고 나한테 이러는 건 아니겠죠?”“이봐, 어르신 말 들어. 너무 날뛰지 마. 40억도 적은 돈이 아니야. 평생 호화롭게 살 수 있는 돈이지. 그러니 이쯤에서 만족하고 가는 게 좋을 거야.”오주화 역시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이쯤 되면 이 부자는 이미 짜고 치는 고스톱을 하고 있다는 게 뻔했다.그야말로 교묘한 토사구팽이었다.“어이없네...”진서준이 싸늘하게 웃었다.“400억이라고 했으면 400억이야. 단 한 푼도 깎을 생각 하지 마.”“야, 네가 감히 어디서 개기는 거야? 네놈이 먼저 선을 넘은 거니까 날 원망하지 마. 다들 덮쳐서 이 자식 뼈를 부숴버려.”오영준이 손을 휘두르자 정예 무인들이 일제히 진서준을 향해 달려들었다.하지만 진서준은 도망치는 대신 오히려 앞으로 나아갔다.진서준의 몸이 사람들 사이를 휙휙 가르며 움직였고 상대가 눈앞에 오자 손바닥이 날아갔다.퍽!괴력을 담은 일격에 무인들이 하나둘씩 튕겨 나갔다.순식간에 정예 무인들이 벽으로 내던져졌고 바닥에 쓰러졌으며 방 안에는 신음이 가득 찼다.“뭐, 뭐야? 네놈이 무공도 할 줄 안다고?”예상을 뛰어넘는 상황에 오영준이 당황한 얼굴로 입을 떡 벌렸다.“얼씨구, 네놈이 좀 하는구나. 그럼 내가 직접 상대해 주
“그러죠.”일행은 주 신의를 따라 앞마당으로 향했다.그곳에서 두 눈이 새빨갛게 충혈된 오지웅 노인이 악마가 몸에 붙은 것처럼 날뛰며 사람들을 쫓아다니고 있었다.“죽여, 다 죽여버려!”“아버지, 대체 왜 이러십니까?”오주화가 다급하게 뛰어와 외쳤다.“모르겠어. 조금 전까지만 해도 멀쩡했는데, 갑자기 관 속에서 튀어나온 귀신처럼 벌떡 일어나더니 사람들을 마구 때려. 방금 하인 두 명이 거의 죽을 지경으로 맞았어.”오주풍이 인상을 잔뜩 쓰며 말했다.“이건 분명 저 자식 짓이야. 저놈이 일부러 할아버지를 해치려 한 거라고.”오영준이 재빨리 책임을 진서준에게 떠넘겼다.“헛소리 집어치워. 진서준 씨는 그럴 사람이 아니야.”오영수가 단호하게 진서준 편에 섰다.한편, 진서준은 오지웅을 유심히 바라보다가 곧바로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오지웅의 몸에 꽂혀 있던 은침이 하나 사라져 있었던 것이다.“누가 어르신 몸의 은침을 건드렸죠? 하나가 빠졌잖아요?”진서준의 얼굴이 살짝 굳어졌다.본래 은침 일곱 개가 노인의 몸에 흐르는 기운을 억제하고 있었고 그 사이 장청의 힘이 손상된 경맥을 치유하는 원리였다.그런데 은침 하나가 빠지면서 기운이 폭주해 사방으로 퍼졌고 결국 지금처럼 악마가 몸에 붙은 듯한 폭주 상태에 빠진 것이다.“정말 하나가 빠졌잖아.”오영수의 얼굴이 심각해졌다.누군가 일부러 할아버지를 죽이려 하고 있는데 그게 누군지 확인할 수 없었다.“그걸 논할 시간 없어. 지금은 아버지를 진정시키는 게 급선무야.”오주풍이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다.“어떻게 진정시켜? 지금 상태에서 할 수 있는 게 없잖아.”오주화가 의아한 표정으로 되물었다.“다들 어르신을 붙잡아 주세요. 제가 다시 은침을 꽂을 테니까요.”진서준이 덤덤하게 말했다.“농담이 지나치네. 우리 아버지가 집안에서 실력이 제일 강한데 누가 붙잡을 수 있겠어? 우리 다 덤벼도 상대가 안 된다고.”오주화가 냉랭하게 웃으며 반박했다.오지웅의 실력은 르벨에서도 손꼽힐 정도였기에 상대가 거의
이 광경을 본 오씨 가문 사람들은 눈이 휘둥그레졌다.애초에 모두가 진서준이 반드시 죽을 거라고 확신했고 설령 운 좋게 살아남더라도 평생 반신불수가 될 거라고 생각했다.그런데 진서준은 멀쩡할 뿐만 아니라 오히려 가뿐하게 오지웅의 주먹을 막아낸 것이었다.진서준은 이 틈을 타 은침을 꺼내 오지웅의 몸에 찔렀다.“푹 쉬세요.”이어서 손바닥으로 오지웅의 목덜미를 가볍게 치자 다음 순간, 오지웅은 그대로 정신을 잃고 쓰러졌다.“뭐, 뭐야? 이 자식 실력이 이렇게 강했던 거야? 우리 할아버지 공격을 막아냈다고?”오영준은 진서준의 실력에 소름이 돋아 저도 몰래 중얼거렸다.오영준은 할아버지도 당해 낼 수 없었는데 진서준에게 덤볐더라면 어떤 결과가 일어나지 불 보듯 뻔했다.아까 진서준에게 달려들지 않은 게 다행이었다.괜히 싸움을 걸었다간 아주 처참하게 당했을 터였다.“아냐, 지금 우리 아버지는 정신이 나간 상태라서 본래 실력의 반도 안 나왔어. 저놈이 막아낸 건 단순한 운이야.”오주화가 애써 부정했다.“아하, 그렇네요. 제가 보기에도 저 녀석 실력이 그 정도로 대단해 보이지 않아요.”오영준도 급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아버지의 의견에 동조했다.이 모습을 본 오영수는 입꼬리를 실룩거렸다.이 사람들이 조금 전까지 할아버지한테 쫓겨 다니던 거 벌써 까먹은 건가?이런 말도 안 되는 핑계를 대면서까지 자존심을 지키려 하다니, 정말 꼴불견이었다.“다들 얼른 와서 어르신을 방으로 옮겨.”오주풍이 정신을 차리고 하인들에게 지시했다.곧 하인들이 우왕좌왕하며 오지웅을 부축해 방으로 모셔갔다.“진서준 씨 덕분에 살았네요. 진서준 씨가 없었다면 아무도 아버지를 막지 못했을 겁니다.”오주풍이 고개를 숙이며 감사를 표했다.그러나 오영준은 여전히 불만스러운 표정이었다.“큰아버지, 저 녀석은 그냥 운이 좋았을 뿐입니다. 우리 할아버지가 정상적인 상태가 아니라서 실력이 많이 내려간 겁니다.”“그래? 그럼 넌 왜 아까 도망쳤어? 왜 네가 직접 할아버지를 막지 않았어?”
“명심하겠습니다, 진서준 씨. 저희가 24시간 내내 아버지를 지킬 겁니다.”오주풍이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진서준은 오영수와 함께 400억 수표를 받으러 갔다.수표를 손에 넣자마자 진서준은 본론을 꺼냈다.“대장님 셋째 삼촌은 언제 돌아오죠?”“아마 3일 정도 걸릴 겁니다.”오영수가 한 가지 제안을 꺼냈다.“진서준 씨, 그동안 우리 집에서 머무시는 게 어떨까요?”“그건 사양하겠습니다.”진서준은 단호하게 거절했다.“아까 그 부자가 저한테 하는 꼴 봤잖아요. 제가 여기서 지내면 분명히 저를 가만두지 않을 겁니다.”오주화와 오영준은 온갖 수를 써서 진서준을 괴롭히려 할 게 분명했다.그러다가 또다시 모함이라도 당하면 그땐 진서준이 아무리 결백을 주장해도 소용없을 거였다.“죄송해요, 진서준 씨. 넷째 삼촌이 그런 사람일 줄은 저도 몰랐습니다.”오영수가 자책이 가득한 얼굴로 말했다.“그럴 필요는 없습니다. 그 사람과 대장님은 같은 부류의 사람이 아니잖아요. 대장님이 그런 사람으로 변하지 않으면 되죠.”진서준이 손을 휘휘 내저었다.“대신 대장님 할아버지 안전은 각별히 신경 써야 할 겁니다.”진서준이 다시 귀띔했다.“은침을 누군가 일부러 뽑았습니다. 어르신을 죽이려는 의도가 분명합니다.”이건 사실 진서준이 말하지 않아도 오영수가 잘 아는 사실이었다.오영수의 표정이 순식간에 어두워졌다.“꼭 조심할게요. 사실 저는 이미 의심 가는 사람이 있습니다.”“그래요? 누구죠?”진서준이 흥미롭다는 듯 물었다.“혹시 오주화를 의심하는 건 아니죠?”“아까 넷째 삼촌 행동을 보면 의심하지 않을 수 없죠.”오영수가 씁쓸하게 말했다.오영준은 진서준이 건넨 약을 일부러 밟아 부쉈고 이후에도 계속 시비를 걸었다.보통 사람 같으면 벌써 떠났을 상황이었다.진서준은 오로지 오영수의 체면을 봐서 여기에 남아 있었을 뿐이었다.“의심 대상 1순위이긴 하죠.”진서준이 고개를 끄덕였다.“하지만 둘에게 범행 시간이 있었을까요?”“그렇지만 두 사람이 다른 사람
30분도 채 되지 않아 진서준은 도지아가 보낸 위치에 도착했다.오늘 입은 앵클 데님 팬츠가 도지아의 늘씬한 다리를 더욱 돋보이게 했고 지나가는 남자마다 슬쩍슬쩍 도지아의 기다란 다리를 훔쳐보고 있었다.“나한테 볼일이 뭐야?”차에서 내린 진서준이 도지아에게 다가갔다.“내 다리 흉터 치료해 주기로 한 거, 잊은 거 아냐?”도지아가 되물었다.“당연히 안 잊었지. 근데 연고가 다 떨어졌고 아직 만들 여유가 없었어.”진서준은 느긋하게 말을 이었다.“걱정 마, 르벨에서 며칠 머물 거니까 그동안 네 다리는 꼭 치료해 줄게.”“그럼 다행이야.”도지아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이 일 때문에 나 부른 거야?”진서준이 눈썹을 살짝 꿈틀거렸다.이 정도 일로 직접 오라고 한 거라면 진서준이 살짝 불쾌할 수도 있었다.“그것뿐만이 아니야. 하나 더 부탁할 게 있어.”도지아의 표정이 약간 난감해졌다.“뭗느 말해봐.”진서준은 애초에 간단한 일일 리 없다고 생각했다.“내 동생 말이야. 지난번 우리 가족이 하씨 가문 놈들한테 잡혀갔었잖아?”도지아가 차분하게 설명하기 시작했다.“다행히 풀려나긴 했지만 부모님은 별다른 반응이 없었어. 근데 내 동생은 완전 달라졌어. 집에도 거의 안 들어오고 뭘 하냐고 물어보면 대답도 안 해. 조금만 캐물어도 욕부터 해대.”도지아가 한숨을 푹 쉬었다.“전에는 안 그랬던 애인데 왜 이러는지 모르겠어...”“난 의사긴 한데 정신과 의사는 아니거든?”진서준이 어깨를 으쓱이며 어쩔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네 동생 정신 상태가 좀 문제 있는 것 같은데, 심리 상담을 받아보는 게 좋겠어.”“동생이 그런 상당을 받으려고 하지 않을 거야. 요즘 우리 가족이랑도 점점 멀어지고 있는데.”도지아는 죄책감 가득한 얼굴이었다.“다 나 때문이야. 내가 하경범을 잘못 건드린 대가로 우리 동생이 이렇게 변한 거야. 진서준, 나랑 같이 가서 한 번만 봐줄 수 있어?”도지아의 간절한 눈빛을 보자 진서준은 차마 거절할 수 없었다.“알았어,
“그만해!”도지아가 황급히 외치며 도민수의 앞을 막아섰다.“이봐요, 말로 해결합시다. 손찌검은 하지 말고요.”“너 여기서 뭐 하는 거야?”도민수가 눈살을 찌푸리며 누나를 전혀 반가워하지 않았다.“어이쿠, 여기 또 미녀 한 분이 오셨네? 이런 풍경은 흔치 않은데?”정장 남자가 도지아를 위아래로 훑어보며 음흉한 미소를 지었다.도지아는 속에서 울컥 올라오는 역겨움을 억누르며 말했다.“이봐요, 제 동생이 당신한테 어떤 짓을 했나요?”“이놈이 내 얼굴을 때렸거든. 이걸 어쩌면 좋을까?”양복남이 쌀쌀하게 웃으며 대답했다.“네가 내 친구 엉덩이를 만졌잖아. 한 대 맞은 걸 다행으로 생각해.”도민수가 분노에 찬 목소리로 반박했다.“내가 그년 엉덩이를 만진 건 영광인 줄 알아야지. 게다가 그년은 왜 그렇게 야하게 입고 다니는데? 남자 꼬시겠다는 거 아니야?”정장 남자가 억지 논리를 내세웠다.그 말을 듣자마자 도지아는 상황을 단번에 파악했다.이 인간이 도민수의 친구를 성추행했고 도민수가 그걸 못 참아 주먹을 날린 거였다.“이봐요, 당신이 먼저 잘못했으니까 제 동생이 참지 못한 거죠.”도지아가 차분하지만 단호하게 말했다.“웃기고 자빠졌네. 내가 뭘 잘못했는데?”양복남이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아가씨, 이놈 누나 맞지? 그럼 내가 화해할 방법을 알려 줄게. 오늘 밤 아가씨가 나랑 즐겁게 놀아주면 아가씨 동생이 날 때린 일은 없던 일로 해주지.”그 순간, 도민수의 눈에서 분노의 불꽃이 튀었다.“이 개자식이 뭐라고 지껄이는 거야? 너 그 입 다시 놀려 봐? 진짜 네 머리 터지고 싶어?”정장 남자의 선을 넘는 말에 도지아의 얼굴도 차갑게 식었다.“지금 당장 사과하지 않으면 경찰에 신고할 거야. 누가 옳고 그른지 경찰이 판단하게 하자.”“경찰? 여기가 누구 구역인지 알고 개소리하는 거야? 그놈들이 감히 날 잡아갈 수 있을 것 같아?”양복남은 코웃음을 치며 전혀 두려워하지 않았다.“내 일은 내가 해결해. 넌 빠져.”도민수가 도지아를 옆으로
“승현 오빠, 시원하게 잘 팼어요. 저 개자식 확실하게 밟아버리세요.”“우리 승현 오빠 앞에서 감히 까불어? 죽지 못해 안달이 났구나.”“흥, 승현 오빠는 우리 헬스팀 에이스야. 감히 이런 분을 건드려? 주제 파악이 안 돼?”도민수 일행은 정장 남자가 피범벅이 된 걸 보며 환호성을 질렀다.이 분위기에 엄승현도 한껏 고무되었다.“지금 당장 꺼져. 안 그럼 넌 오늘 병원 중환자실 예약이야.”엄승현이 또 술병을 들어 정장 남자를 협박했다.“너 독한 건 인정하지.”정장 남자는 상황이 불리해지자 이를 악물고 분을 삭일 수밖에 없었다.“말 똑바로 해. 그리고 우리 친구들한테 제대로 사과해.”엄승현은 말이 끝나기 무섭게 발차기를 날렸고 정장 남자는 그대로 바닥에 나뒹굴었다.“미안해.”정장 남자가 이를 갈며 억지로 사과했다.“성의가 없잖아, 다시 제대로 해.”엄승현이 또다시 발차기를 날렸다.“죄송합니다!”정장 남자가 억지로 분을 삭이며 다시 외쳤다.“그래, 그 정도는 돼야지.”엄승현이 코웃음을 치며 말을 이었다.“이제 꺼져. 다음에 또 마주치면 알아서 자리를 피해. 또 쓸데없이 까불다간 진짜 뼈를 바스러뜨릴 줄 알아.”정장 남자는 이를 악물고 일어나더니 떠나기 전 엄승현을 빤히 쏘아봤다.“승현 오빠 최고예요!”“승현 오빠는 저놈 사과를 받아낼 정도로 대단하네요.”“승현 오빠 아직 여자친구 없다면서요? 혹시 우리한테도 기회가 있는 거 아닌가요?”몇몇 여학생은 얼굴을 붉히며 설레는 마음으로 엄승현을 바라봤다.팽팽한 분위기가 풀리자 도지아가 다가와 도민수를 설득했다.“민수야, 이제 누나랑 같이 집에 가자.”“나 안 가. 갈 거면 누나 혼자 가. 나 귀찮게 하지 마.”도민수가 짜증 섞인 말투로 도지아를 밀쳐냈다.“야, 너 누나한테 그게 무슨 말버릇이야?”엄승현이 곧바로 다가와 얼굴을 굳히며 도민수를 꾸짖었다.그러곤 다시 다정한 눈빛으로 도지아를 바라보았다.“지아 누나, 괜찮아요?”“응, 난 괜찮아.”도지아가 예의 바르게
“나도 너 같은 외지인들 많이 봤거든. 기를 쓰고 우리 도시에 자리 잡으려 하는 놈들 말이야.”갑자기 김칫국을 마시기 시작하는 엄승현을 보며 진서준은 질린다는 듯이 눈을 부라렸다.‘이놈 정신 상태가 이상하네.'그때, 도민수가 나서서 말했다.“형, 우리 그냥 딴 데로 갈까요?”“왜 딴 데로 가려고 해?”조금 전 진서준에게 밀린 탓인지 엄승현의 말투가 사뭇 날카로웠다.“여긴 귀도파 구역인지라 싸움이 금지되어 있잖아요. 아까 그놈 패버렸는데 혹시 그놈이 귀도파에 일러바치면 우리도 곤란해질 수 있어요.”도민수가 나지막한 목소리로 귀띔했다.이 말을 들은 도민수 일행도 슬슬 불안한 표정을 지었다.르벨은 동서남북 네 구역으로 나뉘어 있었는데 그중 동부 지역을 장악한 최대 조직이 바로 귀도파였다.귀도파 조직원은 수천 명이었고 하나같이 잔혹한 놈뿐이라 감히 건드릴 자가 없었다.게다가 여기에 있는 사람은 대부분 대학생 신분인지라 괜히 귀도파를 건드렸다가 진짜 목숨이 날아갈 수도 있었다.하지만 엄승현은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걱정 마. 우리 아버지가 귀도파 두목 호랑이와 친구거든.”“대박, 승현 오빠 인맥이 대단하네요.”“역시 우리 학교를 대표하는 남자다워요. 귀도파 두목이랑 친분이 있을 줄은 몰랐어요.”“우리 다 함께 승현 오빠를 위해 한잔하자.”모두가 잔을 들며 엄승현에게 한 잔을 권하자 엄승현의 기분도 한결 나아졌다.엄승현은 이때다 싶어 슬쩍 도지아를 바라봤다.자기를 보고 감탄하는 줄 알았는데 도지아는 아무런 반응도 없이 조용히 차를 마시고 있을 뿐이었다.바로 이때, 누군가 문을 거칠게 걷어찼다.곧이어 아까 엄승현에게 얻어맞았던 정장 남자가 불같이 뛰어들었다.그리고 남자 뒤에는 칼을 든 건장한 사내들이 잔뜩 따라왔다.이 광경에 모두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고 순식간에 엄승현 뒤로 숨어들었다.“너 진짜 지원군 데려왔네?”엄승현은 미간을 찌푸렸지만 겁먹은 기색은 없었다.“군자는 복수를 하루라도 미루지 않는 법이야. 네가 아까 날 때린
성미영이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매년 혼자서만 집에 가다 보니 성미영에게 이성 친구가 있을 리 만무했다.성미영도 이제 3년만 지나면 서른이었기에 집에서는 성미영의 결혼 문제가 가장 뜨거운 감자였다.그런데 오늘 갑자기 이성 친구가 생겼다는 소식이 들리자 가족들이 당연히 남자친구라고 착각한 것이다.그래서 기어코 성미영에게 진서준을 집으로 데려오라고 난리였다.“그냥 사실대로 말하면 되잖아?”진서준이 태연하게 말했다.무슨 대단한 일이라도 난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이런 사소한 일이었다.“그게 통했으면 내가 지금 너한테 전화했겠어?”성미영이 짜증 난 목소리로 말했다.“그럼 뭘 어쩌라는 거야? 설마 내가 직접 가서 해명하라는 건 아니겠지?”진서준이 눈썹을 꿈틀거리며 되물었다.“꼭 와야 해. 안 그러면 부모님이 날 가만히 안 둘 거라고.”성미영이 명령조로 말했다.“이봐, 지금 부탁하는 입장인데 말투가 그게 뭐야? 장난해?”진서준이 한마디 귀띔했다.“야, 진서준. 너 적당히 해. 지금 무슨 상황인지 이해가 안 돼?”성미영이 당장이라도 터질 것처럼 소리쳤다.“오후에 내가 너 안 도와줬어? 지금은 네가 나 도울 차례라고. 아니야?”진서준은 그 말에 피식 웃었다.“정정하자면 너 없어도 난 하경범을 충분히 잡아 올 수 있었어. 오히려 너 배려해서 너희 성씨 가문 구역에서 난리 안 친 거라고.”“헛소리 작작 해!”성미영이 분노에 이를 갈았다.진서준의 말이 사실 틀린 말은 아닌데 왜 이렇게 재수 없게 들리는 건지 이해할 수 없었다.“그럼 끊는다?”진서준이 전화를 끊으려 했다.“끊지 마. 내가 지금 데리러 갈 거야. 오늘 밤에 확실히 설명하고 가. 안 그러면 부모님이 나 귀찮게 해 미칠 것 같다고.”성미영이 다급하게 말했다.“그럼 부탁해야지. 부탁할 땐 부탁하는 태도가 있는 법이거든.”진서준이 태연하게 말했다.사실 일부러 성미영을 약 올리는 건 아니었다.그냥 이 여자가 맨날 윗사람처럼 굴었고 매번 자기가 대단한 존재라도 되는 양, 가르
차 안.도지아는 직접 복수를 마친 뒤, 속이 어느 때보다 한결 더 시원했다.하지만 곧 걱정이 가득한 얼굴로 진서준에게 물었다.“나중에 하경범이 복수하면 어떻게 하지?”“그럼 그냥 지옥에 보내버리면 돼. 너무 걱정되면 지금이라도 돌아가서 죽여버릴까?”진서준이 태연하게 말했다.어차피 그런 쓰레기는 살아 있을 가치도 없었다.진서준이 하경범을 바로 죽이지 않은 이유는 단 하나, 바로 금단 현상이 올라올 때의 고통을 직접 맛보게 해주고 싶었기 때문이었다.죽여버리는 것보다 살아서 끔찍한 경험을 하게 하는 게 더 잔인한 법이었다.“아니야, 죽이는 게 오히려 그 녀석에게 자비를 베푸는 일이야.”도지아가 고개를 저었다.그 한마디로 도지아가 하경범을 얼마나 증오하는지 알 수 있었다.하경범은 도지아의 미래를 망가뜨렸고 행복했던 가족을 박살 내버렸다.이제 도지아는 과거로 돌아갈 수도 없었다.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도지아는 막막하기만 했다.호텔로 돌아오자 진서준이 물었다.“여기서 계속 있을 순 없잖아. 앞으로 어디로 갈 생각이야?”도지아는 잠시 고민하더니 대답했다.“예은에게 가볼까 해. 걔 집 넓잖아.”“그것도 괜찮네. 황예은은 돈이 넘치니까 황예은한테 붙어 있으면 먹고사는 걱정은 없겠네.”진서준이 장난스럽게 말했다.한편, 성현도가 빠르게 정보를 통제한 덕분에 하경범이 진서준에게 끌려갔다는 사실은 외부에 알려지지 않았다.하씨 가문 쪽에서도 하경범이 강제로 마약을 먹었다는 사실을 전혀 몰랐다.집으로 돌아간 하경범은 곧장 본인이 키운 삼생파의 두목 이시언에게 연락했다.“하 도련님, 무슨 일입니까?”전화를 받은 이시언은 조금 의아해했다.하경범이 직접 연락해 오는 경우는 드물었는데 마지막으로 연락했을 때도 사람을 납치하라고 시켰을 때였다.“당장 나한테 와.”하경범의 목소리가 얼음처럼 차가웠다.“네, 바로 가겠습니다.”이시언은 하경범의 상태가 심상치 않음을 느끼고 즉시 출발했다.30분 후, 이시언은 부하들을 데리고 하경범의 저택에 도착
“그럼 이제 나랑은 상관없는 일이잖아. 왜 굳이 날 물고 자빠지는 건데?”하경범은 슬슬 짜증 나기 시작했다.“너 아니었으면 우리 가족이 납치당할 일도 없었겠지. 그럼 내 동생도 마약과 접촉할 일도 없었을 거잖아. 네 더러운 욕망만 아니었어도 우리 가족이 이렇게 풍비박산 날 일이 있었겠어?”도지아의 분노는 점점 극에 달했다.“내가 겪은 이 모든 고통은 전부 다 네 탐욕과 욕망 때문이야. 오늘 넌 반드시 그 대가를 치러야 해.”하경범의 얼굴이 순식간에 창백해졌다.이제야 도지아가 진짜 죽을 각오로 덤비고 있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내가 방금 조상규 삼촌에게 연락했어. 곧 도착할 거야. 삼촌이 오기 전까지는 너희가 아직 살아남을 기회가 남아 있어.”하경범은 이런 상황에서도 협박하기 시작했다.“그러니 함부로 날 건드리지 마. 날 손대는 순간, 너희 셋 다 살아서는 못 나갈 줄 알아.”“그 사람은 올 수 없어.”진서준이 느닷없이 말했다.“무슨 뜻이야?”하경범이 움찔하며 눈꺼풀을 떨었다.“이미 죽었거든. 이해했어?”진서준이 담담하게 대꾸했다.“뭐, 뭐라고?”하경범은 흠칫 떨더니 곧바로 고개를 세차게 저었다.“헛소리하지 마. 그럴 리 없어! 조상규 삼촌은 대종사야. 네놈 따위가 무슨 수로 대종사를 죽일 수 있어?”하경범은 조상규의 무도 실력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예전에 습격당했을 때도 조상규가 나서서 하경범을 구해줬다.당당한 대종사인 조상규가 진서준 같은 애송이에게 당했을 리가 없었다.“못 믿겠으면 직접 전화해 봐. 전화 받는 사람이 있는지 확인해 보지 그래?”진서준이 시큰둥하게 말하자 하경범은 급히 전화를 걸었다.그러나 들려오는 건 통화 연결음뿐이었다.하경범은 이 결과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또다시 전화를 걸었다.하지만 결과는 똑같았다.“젠장, 전화 받아! 전화를 받으란 말이야!”하경범은 이제 완전히 패닉 상태에 빠졌다.“통화가 안 되지?”진서준이 싱긋 웃으며 말했다.“대체 왜 조상규 삼촌이 너 따위한테 당했는데?
“뭐가 두려워?”하경범은 자신만만했다.여긴 하씨 가문이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르벨이었다.하경범은 진서준이 이곳에서 자기를 건드릴 용기가 있을 수 없다고 확신했다.“그럼 따라와 봐.”진서준이 몸을 돌려 밖으로 걸어 나갔다.“경범아, 저 녀석 꽤 강해. 조심하는 게 좋아.”성현도가 목소리를 낮춰 경고했다.“걱정 마. 아무 일도 없을 테니까.”하경범은 가볍게 웃으며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진서준이 도대체 무슨 수작을 부리려는 건지 두고 보자는 심정이었다.차에 올라타자 하경범이 눈을 가늘게 뜨며 말했다.“의외네, 넌 여자들한테도 제법 인기가 많은 모양이구나. 황예은과 도지아만 있는 게 아니라 이번엔 또 새로운 여자가 곁에 있네.”하경범은 옆자리의 허사연을 힐끔 쳐다보며 능글맞게 웃었다.“아가씨, 저 녀석 따라다녀 봤자 아무런 미래도 없어. 나랑 함께하는 게 어때? 내 여자가 되면 평생 호화롭게 살게 해줄게. 명품, 스포츠카, 대저택, 뭐든 원하는 만큼 줄 수 있어.”허사연은 그 말에 쌀쌀하게 웃으며 대꾸했다.“그럼 네 목숨을 원한다면 줄 수 있어?”하경범 같은 부잣집 도령이 얼마나 많은 가정을 파탄 냈을지 모른다.진서준의 얘기를 들은 후, 허사연도 이 쓰레기를 당장 없애버리고 싶었다.“내 목숨을 달라고?”하경범은 어이없다는 듯 멍하니 있다가 곧 박장대소를 터뜨렸다.“날 죽이겠다고? 그래, 해봐. 근데 네 가족이 우리 하씨 가문의 분노를 감당할 수 있을까?”하경범의 목소리엔 살기가 서려 있었다.“거참 쉬지도 않고 조잘대네.”진서준은 쉴 새 없는 하경범의 멘트에 슬슬 짜증 나기 시작했다.“흥, 얼마 안 가 네가 내 앞에 무릎 꿇고 날 다시 보내게 될 거야. 내가 장담하지.”하경범은 눈을 가늘게 뜨며 진서준을 비웃었다.“오히려 네가 나한테 무릎 꿇고 목숨을 구걸하게 될걸?”진서준은 태연하게 받아쳤다.곧이어 진서준은 차를 한 폐기된 공장 앞에 세웠다.차에서 내리자 하경범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 한곳에 걸터앉아 휴대폰
“뭐라고? 불법적인 일이 우리 가게에서 일어난다고? 말도 안 돼.”성현도가 헛웃음을 지으며 말을 이었다.“넌 전신전 소속이잖아. 그런데 네 오빠인 내가 어떻게 법률을 어기는 일을 하겠어?”“그럼 이 사람들은 왜 부른 거야? 집단 폭력도 불법이거든.”성미영은 차가운 시선을 보이며 성현도와 따졌다.“미영아, 이건 내가 싸우려던 게 아니야. 저 녀석이 일부러 시비 걸러 온 거라고.”성현도는 진서준을 손가락질하며 말했다.“이놈이 일부러 우리 찻집에 난입해 행패를 부리고 상철을 두들겨 패서 머리에 혹이 다 나버렸어. 난 단순히 정당방위를 위해 부른 거라고.”성미영이 등장하자 성현도는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솔직히 실력만 놓고 보면 성현도는 성미영보다 한참 부족했다.게다가 성미영은 전신전 소속인지라 저 남녀가 군부 조직인 전신전을 적으로 돌릴 리 없었다.군대를 건드리는 순간, 무조건 좋은 결과는 있을 수 없었다.“진서준, 도대체 무슨 일이야?”성미영이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어라? 너희 둘이 아는 사이야?”성현도가 눈을 휘둥그레 뜨며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을 지었다.방금 내려놨던 마음이 다시 불안해지기 시작했다.“난 사람을 찾으러 왔어. 하씨 가문 하경범이 이 위층에 있다고 들었는데 진짜인지 가짜인지 모르겠어.”진서준이 손가락으로 위를 가리켰다.“그리고 또 하나, 저 위에서 불법적인 일이 벌어지고 있다고도 하더군. 그게 사실인지 아닌지도 모르겠어.”이 말에 성현도의 표정이 단숨에 험악해졌고 즉시 반박에 나섰다.“헛소리 마. 우리 가게는 단순한 찻집이야. 불법적인 일 따윈 없어. 근거없는 소문을 왜 털어놓고 난리야?”“미영아, 저 녀석한테 속지 마. 난 네 사촌 오빠야. 내가 그런 불법적인 짓을 할 사람이겠어?”성미영이 곧바로 진서준에게 물었다.“진서준, 너 증거 있어?”“직접 올라가 보면 다 알게 될 거잖아?”진서준이 가볍게 말했다.“오빠, 위층으로 가자.”성미영이 단호하게 말했다.“그, 그건 좀 곤란해. 위층엔 귀
순간, 장내는 숨소리조차 들릴 정도로 조용해졌다.모든 시선이 진서준에게 쏠렸고 사람들은 할 말을 잃어버렸다.다들 진서준을 그냥 얼굴만 반반한 남자라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진짜 고수였다.성현도의 부하 중 최고 실력자조차 상대가 되지 않았다.성현도의 얼굴은 시퍼렇게 질렸고 상철을 향해서 욕설을 날렸다.“쓰레기 자식, 이런 애송이 하나도 못 이겨?”부하가 지면 망신당하는 건 결국 성현도 자신이었다.이대로 체면을 구긴 채 끝낼 수는 없었다.이대로 넘어가면 앞으로 르벨 재벌 2세들 사이에서 조롱거리가 될 게 뻔했다.“이봐, 네 실력이 괜찮은 건 인정할게.”성현도가 싸늘한 얼굴로 말을 이었다.“근데 너 혼자서 백 명을 상대할 수 있어? 천 명은? 잘 들어. 내 부하는 수도 없이 많아. 너 같은 놈 하나 처리하는 데 전화 한 통이면 충분해.”진서준은 눈썹을 꿈틀거리며 여전히 같은 말을 반복했다.“다시 말하지만 난 그냥 하경범을 찾으러 온 거야. 그 녀석만 넘기면 오늘 일은 없던 걸로 해주지.”“없던 걸로 한다고?”성현도가 그 말에 어이없어 헛웃음이 나왔다.“너 지금 누굴 상대로 협상하려 드는 거야? 난 성씨 가문의 직계야. 날 건드리면 상대해야 할 건 나 하나가 아니라 우리 가문 전체라고.”그때, 밖에서 다급한 발소리가 들려오더니 곧이어 검은색 전투복을 입은 남자들이 우르르 몰려왔다.이 남자들은 전부 성씨 가문의 경호원이었고 실력도 만만하지 않았다.그것도 한둘이 아니라 무려 50명 이상이었다.한순간에 텅 비어 있던 로비가 사람들로 꽉 찼다.“저 자식 끝났네. 이 정도 성씨 가문 인원이라면 아무리 강해도 버틸 수가 없지.”“그러게 말이야. 이런 상황에서 살아남을 수 없잖아.”“왜 쓸데없이 성현도를 건드린 거지? 스스로 무덤을 판 거잖아.”구경꾼들은 이 광경에 각자 다른 감정을 보였다.누군가는 동정을, 누군가는 아쉬움을, 또 누군가는 짙은 흥미를 보였다.“사연아, 넌 좀 쉬어. 이놈들은 내가 처리할게.”진서준이 앞으로 나섰다.
얼마 지나지 않아 키가 거의 2미터에 달하는 거구의 사내가 찻집 안으로 들어왔다.남자는 그냥 서 있기만 해도 엄청난 위압감이 느껴졌다.“상철아, 저놈 다리 하나 부러뜨려서 내던져.”성현도가 진서준을 가리키며 명령했다.“알겠습니다.”상철은 간단하게 대답하고는 진서준에게 성큼성큼 다가갔다.“서준아, 내가 할게.”허사연의 눈에는 불꽃 같은 전투욕이 타올랐다.“조심해. 저 녀석은 횡련 종사야. 그렇게 만만한 상대가 아니야.”진서준이 조용히 귀띔했다.“알았어. 설령 못 이긴다고 해도 어차피 네가 있잖아?”허사연이 장난스럽게 웃었다.진서준이 곁에 있는 한, 허사연은 아무것도 두렵지 않았다.“이봐, 사내자식이 여자 뒤에 숨는 게 말이 돼?”상철이 눈썹을 추켜세우며 불쾌한 표정을 지었다.“이봐, 껑충이. 여자를 얕보지 마. 일단 이기고 나서 말해.”허사연이 상철을 도발했다.“아가씨, 그런 기생오라비 말고 날 따르지 그래? 밤마다 널 천국으로 보내줄 수 있는데?”상철이 음흉하게 웃었다.“죽고 싶어 환장했구나.”얼굴이 싸늘해진 허사연이 주먹을 날렸다.강렬한 펀치가 공기를 가르며 폭발음을 일으켰고 그 위력은 철판도 뚫을 수 있을 정도였다.하지만 상철은 비웃듯 입꼬리를 올렸다.“내가 가만히 서 있어도 넌 날 어쩔 수 없어.”“닥쳐!”허사연이 분노에 차 주먹을 그대로 상철의 얼굴로 내리꽂았다.상철은 일부러 머리를 숙이며 대머리 정수리로 받아냈다.쿵!둔탁한 충돌음이 울려 퍼졌다.주먹이 상철의 머리를 강타했으나 대머리는 꿈쩍도 하지 않았고 오히려 허사연이 몇 걸음 물러섰다.순간 손에 뜨거운 통증이 밀려왔고 뼈가 부서질 것 같았다.손을 확인하자 하얀 피부였던 손등이 새빨갛게 부어올랐다.상철은 자기 머리를 한번 쓸어내리더니 빙그레 웃었다.“아가씨, 이제 내 실력을 알겠지?”그 모습에 허사연의 승부욕이 다시 불타올랐고 콧방귀를 뀌며 다시 달려들었다.이번에는 다리를 높이 들어 올려 상철의 머리를 내려찍었다.‘머리가 단단하다고 자랑하
이렇게 예쁘고 섹시한 여자가 싸움 실력이 이렇게 대단할 줄은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다.완전 여성판 이소룡이었다.“너, 너희들 정말 너무 대담한 거 아니야? 여기가 어디인지 알기나 해? 어디서 대놓고 싸움질이야?”종업원은 순간 놀란 뒤 분노에 찬 얼굴로 진서준와 허사연을 가리켰다.찻집이 문을 연 이후로 이렇게 난동을 부리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고 진서준과 허사연이 첫 사례였다.주변의 구경꾼들도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싸움 좀 하면 뭐해? 여긴 성씨 가문의 구역이야. 성씨 가문에서 한마디만 하면 저 남녀는 오늘 밤중으로 사라지겠지.”“어휴, 저 여자 너무 아까워. 저렇게 예쁜데 왜 죽지 못해서 안달이지?”“여자는 살 수도 있겠지만 남자는 무조건 죽을걸.”사람들은 저마다 수군거리며 이미 진서준과 허사연의 결말을 예상하는 듯했다.“그럼 네 말대로라면 내가 널 때린다 해도 얌전히 맞고 있어야 한다는 거야?”허사연은 눈썹을 꿈틀거리며 종업원에게 다가갔다.“오지 마!”종업원은 겁에 질려 연신 뒷걸음질 쳤다.“어떤 미친놈이 내 구역에서 소란을 피우는 거야?”그 순간, 2층에서 한 사람이 내려왔다.모두가 일제히 시선을 돌려 그 사람을 확인하자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성현도가 오늘 여기 있었네?”누군가 그 청년을 알아보았다.“저 둘 끝장났네. 성현도는 악명 높은 냉혈한이야.”그 청년은 바로 찻집의 사장인 성현도였다.성현도는 르벨 재벌 2세 사이에서 유명한 인물이었다.친구에게는 무조건 의리를 지키지만 적에게는 무자비했다.성현도의 고문 방법은 수도 없이 많았고 게다가 무인으로서 무공 실력도 상당했다.“사장님, 저 남녀가 와서 난동을 부렸어요.”종업원은 성현도를 보자마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사장이 나온 걸 확인한 허사연은 주먹 한 방에 종업원을 기절시켜 버렸다.“뭐야?”성현도의 눈이 가늘어졌고 표정이 험악해졌다.자기 앞에서 대놓고 부하를 때리다니, 이건 너무나도 명백한 도발이었다.“아가씨, 우리 처음 보는 사이 맞지? 우리
그리고 오후 2시가 되자 진서준은 허사연을 데리고 조호가 말한 천국찻집으로 향했다.겉모습만 보면 이 찻집은 진짜 전통찻집 같았고 규모도 꽤 컸다.하지만 막상 안에 들어가 보니 전혀 다른 세상이 펼쳐져 있었다.1층과 2층까지는 정말 평범한 찻집처럼 꾸며져 있었고 누가 봐도 이상한 점을 찾기 어려울 정도였다.하지만 3층으로 올라가려면 회원권이 있어야 하거나 사장이 직접 허락한 사람만 출입할 수 있었다.“손님, 아가씨, 이쪽으로 안내해 드리겠습니다.”진서준과 허사연이 차를 마시러 온 줄 안 종업원이 빠르게 달려와 안내하려 했다.“그럴 필요 없어. 난 하경범을 찾으러 왔거든.”진서준이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네?”종업원이 순간 얼어붙었다.“혹시 하씨 가문의 하 도련님을 말씀하시는 겁니까?”“맞아.”진서준이 고개를 끄덕였다.“손님은 누구신지...”종업원이 신중하게 물었다.진서준은 잠시 생각하다가 말했다.“그냥 복수하러 왔다고 전해.”그놈 아버지라고 하는 건 자기를 모욕하는 것과 같았고 친구라고 하기도 기분이 더러웠다.그 말에 종업원의 얼굴색이 확 변했다.“손님, 여기서 장난치지 마세요.”하경범은 르벨에서 유명한 재벌 2세였다.이 찻집의 사장과도 막역한 사이였고 여기서 일하는 직원이라면 그 사실을 모를 리 없었다.“왜? 못 믿겠어?”진서준이 피식 웃으며 되물었다.“손님, 하 도련님에게 복수하려던 사람은 단 하루도 살아남지 못했습니다.”종업원이 경고하듯 말했다.“그런 농담은 함부로 하는 게 아닙니다.”그 말을 듣자 진서준은 담담하게 말했다.“그럼 이렇게 전해. 그 하경범이 두들겨 맞고 나자빠지게 했던 진서준이 왔으니 당장 기어 나오라고 말이야.”진서준의 뻔뻔한 태도에 종업원은 어이가 없었다.“좋습니다. 손님이 그렇게 죽고 싶다면 제가 기꺼이 도와드리죠.”종업원은 바로 무전기를 꺼내 들었다.“문제 발생했습니다. 난동자가 있습니다.”쿵! 쿵!급한 발소리가 들리더니 곧이어 건장한 남자 스무 명이 들이닥쳤다.전부 검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