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혁수는 피를 뒤집어쓴 채로 호수 위에 서 있었는데 표정이 잔뜩 일그러진 것이 마치 지옥에서 올라온 악마 같았다.진서준이 차갑게 말했다.“당신과 난 아무런 원한도 없을 텐데.”“그래. 그런데 내가 너 같은 천재를 죽이는 걸 좋아해서 말이야.”유혁수는 눈알이 벌게진 채로 미친 듯이 웃었다.“진서준, 오늘 넌 반드시 죽어야 해!”미친놈.정신이 나간 듯한 유혁수를 본 사람들의 머릿속에 미친놈 세 글자가 떠올랐다.아무런 원한도 없으면서 진서준을 죽이려 하는 이유는 그의 변태적인 취향 때문이었다.“누가 살고 누가 죽을지는 아무도 몰라.”진서준은 무덤덤한 눈빛으로 유혁수를 바라보았다.그에게 있어 유혁수는 이미 죽은 자와 다름없었다.비록 진서준은 체내의 영기를 꽤 많이 소모했지만 만월호의 영기가 워낙 왕성한 탓에 이런 자연적인 영기를 이용하여 유혁수를 죽일 수 있었다.진서준이 천문검을 거두어들이자 유혁수의 눈동자에 의아함이 스쳐 지나갔다.“투항하려는 건가? 투항한다고 해도 난 널 가만두지 않을 거야!”진서준이 덤덤히 말했다.“당신을 죽이는 데 검까지 필요 없어.”진서준의 비아냥에 유혁수는 냉소했다. 그는 두 다리를 힘껏 굴렀고, 그 순간 폭탄이 터진 듯 발아래 호숫물이 사방으로 튀었다.기세등등한 유혁수를 본 진서준은 두 손을 서서히 들었다.다음 순간, 호수 전체가 눈에 보이는 속도로 끓어오르기 시작했고 흰 안개가 진서준의 앞에 모였다.“농간을 부리는군!”유혁수가 차갑게 말했다.눈 깜짝할 사이, 유혁수가 진서준의 앞에 섰다.그는 가까이 다가가서 크게 소리를 지르며 두 주먹을 휘둘렀다.아무도 유혁수가 주먹을 몇 번 휘둘렀는지 보지 못했다. 강건한 기운들로 뭉친 매의 머리와 늑대의 머리가 진서준 앞의 흰 안개를 강타했다.공기가 찢어발겨지는 것 같았다. 무시무시한 장면에 현장에 있던 사람들은 숨을 멈췄다.“이건 환기권이야!”무인들은 유혁수의 환기권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환기권은 유혁수가 20여 년간 열심히 연구하여 만든 권법인데,
호숫가에 서 있던 사람들은 수면이 잠잠해졌을 때야 정신을 차렸다.누군가는 유혁수가 떨어진 곳을 바라보면서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이제 끝난 거 아닐까요?”“대성 종사와 술법 천사가 번갈아 싸웠는데도 진서준 씨 상대가 되지 못했네요.”“진서준 씨 정말 대단하네요. 혼자서 둘을 상대했는데도 털끝조차 다치지 않았어요!”진서준의 신과 같은 모습을 바라보는 손승호의 눈동자에는 불만과 증오가 가득했다.“내 복수는 정말 가망이 없는 걸까?”대성 종사마저 진서준을 죽이지 못했으니 누가 그를 죽일 수 있겠는가?감옥에서 3년을 보낸 폐인에게 이런 큰 변화가 있다니, 설마 감옥에서 대단한 사람이라도 만난 걸까?달갑지 않아 하는 손승호와 달리 공규석은 두려움이 더 컸다.현장에 있는 사람들은 유혁수와 공규석이 함께 온 걸 모두 보았다.유혁수가 진서준을 공격한 건 분명 공규석과 관련이 있을 것이다.“도망가지 못하게 해!”하규천은 공규석이 도망가려고 하자 곧바로 자신이 데려온 무인들더러 공규석을 막게 했다.“뭐 하는 거예요? 이거 놔요!”두 무인에게 붙잡힌 공규석은 겁에 질려서 두 다리를 덜덜 떨었다.“도망칠 수 있을 것 같아? 혈운의 종사를 데려와서 진서준을 기습하다니, 오늘 넌 끝장이야!”하규천은 차가운 눈길로 공규석을 바라보았다. 마치 죽은 사람을 보듯 말이다.공규석이 낙담에 빠졌을 때 고요하던 호수에 갑자기 폭발이 일었다.“어떻게 된 거죠? 설마 유혁수 씨가 죽지 않은 걸까요?”“그럴 리가요. 조금 전 그가 떨어졌던 곳이 전부 빨간색으로 물들었는데 죽지 않았을 리가 있겠어요?”호수 위 진서준은 폭발한 곳을 바라보며 눈빛이 차가워졌다.“죽지 않은 건가?”유혁수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의 가슴 쪽 상처에서 끊임없이 피가 흘렀다.그의 얼굴은 수척했고, 음산한 눈동자에는 핏발이 섰다.이때 유혁수는 거의 정신이 나간 상태였다.혈운의 대성 종사이자 종사 킬러이며 환기권을 창조한 그는, 사람들이 쳐다보는 가운데 자신이 패배했다는 걸 인정할 수가 없
진서준은 그 말을 듣고 덤덤히 웃었다.그의 머릿속에는 처방전이 셀 수 없이 많았다.그중 일부는 아무런 부정적인 영향 없이 단기간에 실력을 향상할 수 있었다.유혁수가 먹은 단약은 진서준에게 있어 가장 낮은 수준의 약이었다.진서준이 유혁수를 막을 생각이 없어 보이자 권해철은 조금 허무했다.“넌 죽었어!”폭원단을 먹은 유혁수는 상반신을 살짝 구부정하게 하고 야수처럼 으르렁거렸는데 그 모습이 마치 맹수 같았다. 그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살기는 사람을 불안케 했다.동시에 유혁수는 눈에 보이는 속도로 빠르게 늙어갔다. 검은 머리카락이 끊임없이 빠지면서 백발이 되었다.그러나 그의 기세는 예전보다 훨씬 더 강했다.예전의 유혁수는 그와 같은 경지에 있는 사람 중에서도 그와 대적할 사람이 많지 않았다.지금은 아마 일반적인 선천 대종사도 그를 제압하기 어려울 것이다.절망에 빠졌던 공규석은 그 광경을 보자 곧바로 폭소를 터뜨렸다.“유혁수 종사님은 죽지 않았어. 이거 놔. 진서준 저 자식이 죽으면 당신들이 다음 차례가 될 수도 있어.”하규천의 안색이 흐려졌다.호숫가에 있던 사람들은 호수 위 유혁수가 조금 전과 완전히 다르다는 걸 똑똑히 느꼈다.진서준에게 여력이 얼마나 있는지 아무도 알지 못했다.“우선 놔줘.”하규천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풀려난 공규석은 냉소했다.“진서준, 넌 오늘 틀림없이 죽을 거야!”짐승 같은 유혁수의 모습에도 진서준은 평온했다. 유혁수의 무시무시한 기세에 전혀 놀라지 않은 듯했다.“후!”유혁수는 소리를 지르더니 수면을 밟으며 활시위를 떠난 화살과 같이 빠르게 움직였다.그가 지나간 곳에는 20미터 높이의 물기둥이 솟구쳤다.진서준은 유혁수를 바라보며 고개를 저었다.“그딴 약으로 날 죽이려 하다니, 날 너무 얕본 거 아니야?”유혁수가 다가오자 진서준은 천천히 오른손을 들었다.다음 순간, 진서준에게서 무지막지한 기세가 느껴졌다. 이때 권해철에게 진서준은 신처럼 보였다.진서준의 손바닥이 파랗게 변했고 자주색의 번개 빛이
진서준이 그렇게 말하자 하규천은 부하에게 공규석을 끌고 가라고 했다.애원하는 공규석을 안타깝게 여기는 사람은 없었다.승자만이 정의라는 말이 있듯이 말이다.만약 조금 전 유혁수가 습격에 성공했더라면 상황은 또 달랐을 것이다.“내가 걱정시켰네요.”진서준은 허사연에게로 다가가서 그녀의 보드라운 손을 잡았다.“서준 씨가 무사해서 다행이에요.”허사연은 애틋한 눈빛으로 진서준을 바라보았다.황보식은 허성태의 곁으로 걸어가더니 웃으며 농담을 던졌다.“성태 씨, 성태 씨 딸 출세했네요.”허성태 또한 웃으며 말했다.“우리 사연이가 복이 많죠.”상황을 지켜보던 다른 이들도 진서준과 허사연을 칭찬했다.주위에 사람이 많다는 걸 깨달은 허사연은 순간 얼굴이 빨개졌다. 그녀는 손을 거두어들일 생각이었지만 진서준은 그녀의 손을 꽉 잡고 놓아주지 않았다.“얼른 놔요. 보는 사람도 많은데!”허사연이 쑥스러운 듯 말했다.“왜 쑥스러워해요? 사연 씨는 내 여자 친구잖아요. 여자 친구 손 좀 잡는 게 뭐 어때서요?”진서준은 사람들의 시선에도 아랑곳하지 않았다.그러나 그와 반대로 허사연은 쑥스러움이 많은 성격이었다. 그래서 진서준은 그녀의 손을 잡고 공원 바깥쪽으로 향했다.진서준과 허사연이 손을 잡고 떠나자 다른 가문의 가주들은 허성태에게 축하 인사를 건넸다.“축하드립니다, 허성태 씨. 정말 훌륭한 사위를 얻으셨네요!”“휴, 제 딸이 조금 더 일찍 진서준 씨를 알았으면 좋았을 텐데요.”“앞으로 허씨 집안은 틀림없이 승승장구할 겁니다. 어쩌면 서울 최고의 가문이 될지도 몰라요!”누군가는 허성태를 부러워했고 누군가는 그를 질투했다.그러나 아무리 질투가 심해도 감히 허씨 일가 사업에 손을 댈 수는 없었다. 그저 최대한 허씨 일가와 협력하여 진서준 앞에서 좋은 얘기라도 몇 마디 해주기를 바랄 뿐이었다.그러면 앞으로 그들의 가문에 골치 아픈 일이 생길 때 진서준에게 도움을 청할 수 있을지도 모르니 말이다.이때 만월호는 아직도 기관에서 통제 중이라 누구도 함부로
“눈 똑바로 뜨고 봐요!”나지혜의 무례한 말투에 진서준과 허사연의 안색이 순식간에 어두워졌다.“사람이 참 무례하군요. 가정 교육을 어떻게 받은 거죠? 제가 그쪽 부모님 대신 예의가 뭔지 가르쳐줄까요?”나지혜는 팔짱을 두른 채로 같잖다는 듯이 진서준을 바라보았다.“날 가르치겠다고요? 당신이 무슨 자격으로요? 경고하는데 내 남자 친구는 아주 대단한 사람이에요!”옆에 있던 황성윤은 탐욕스러운 눈빛으로 허사연을 훑어보았다.황성윤은 고등학교 때 가족들에 의해 해외로 보내졌고 귀국한 횟수는 손에 꼽을 정도로 적었다.올해 해외에서 졸업하고 돌아온 지 한 달도 되지 않았기에, 아직 허사연을 알지 못했다.진서준은 눈썹을 살짝 치켜올려다.“당장 꺼져요. 지금은 기분이 좋으니까 그냥 봐주는 거예요.”“자기야, 저 사람 나한테 막 소리 질러. 심지어 나한테 꺼지라고 했어!”나지혜는 황성윤의 손을 잡더니 그의 팔에 자신의 가슴을 가져다 댔다.팔뚝에서 느껴지는 부드러움에 정신을 차린 황성윤은 오만한 얼굴로 진서준을 바라보았다.“이 자식, 지금 당장 내 여자 친구에게 사과해. 그렇지 않으면 오늘 여기서 벗어나지 못할 줄 알아!”진서준은 기가 막혀서 헛웃음을 쳤다.“여기서 벗어나지 못할 거라고?”“내 남자 친구가 전화 한 통 하면 경호원 몇십 명을 불러올 수 있거든요!”나지혜가 의기양양하게 말했다.지난번에 누군가 나지혜를 희롱했을 때, 황성윤은 전화 한 통으로 20여 명의 경호원을 불러왔다. 나지혜를 희롱한 그 남자는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리면서 나지혜에게 사죄했다.진서준은 두 사람에게 시간을 낭비하고 싶지 않았다. 오늘은 모처럼 쉬는 날이었기에 허사연과 데이트할 생각이었다.두 사람은 놀이공원에 갔다가 저녁쯤 금영사에 가볼 생각이었다.허사연은 금영사에 아주 신통한 나무가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 그 나무에 대고 소원을 빌면 원하는 바를 이룰 수 있다고 한다.“두 가지 선택지를 주겠어요. 하나는 지금 당장 꺼지든가, 아니면 나한테 맞고 꺼지든가 해요.
황성윤은 난생처음 이렇게 비참하게 맞았다.그의 할아버지나 아버지도 그를 이렇게 때린 적이 없었다.피투성이가 된 황성윤은 바닥에서 일어났다. 그는 경호원에게 전화를 걸면서 흉악한 표정으로 진서준을 노려봤다.전화가 통하자 황성윤은 다짜고짜 소리를 질렀다.“5분 내로 만월호 입구로 와. 5분 내로 못 오면 다들 잘릴 줄 알아!”전화를 끊은 뒤 나지혜는 진서준에게 맞아 빨개진 얼굴을 부여잡고 소리를 질렀다.“자기야, 저 자식 얼굴이 퉁퉁 부을 정도로 때려줘!”문가에 서 있던 공무원이 상황을 지켜보다가 서둘러 그들에게 경고했다.“원한이 있으면 다른 곳에 가서 해결해요. 여기서 싸우지 말고!”만약 이들이 만월호 공원에 있는 사람들의 심기를 건드리게 된다면, 그저 문지기인 그들은 그 책임을 질 수 없었다.“내가 여기서 싸우겠다면 당신이 뭘 어쩔 수 있는데? 난 황정식 손자야!”황성윤이 거만한 얼굴로 말했다.황씨 집안은 정계 쪽에도 인맥이 있었고 황정식은 꽤 영향력이 있는 인물이었다.황정식 손자라는 말에 공무원의 미간이 좁혀졌다.“황정식 어르신은 지금 공원에 계십니다.”할아버지가 만월호 공원에 있다는 말에 황성윤의 눈동자가 반짝였다.“지금 당장 우리 할아버지를 불러줘!”공무원들은 서로 시선을 주고받았고 그중 한 명이 빠르게 만월호 공원 안으로 들어갔다.할아버지가 공원에 있다는 생각에 황성윤은 더욱더 자신만만해졌다.그는 경멸에 찬 눈빛으로 진서준을 바라보았다.“이 자식, 넌 오늘 죽었어. 우리 할아버지가 네가 날 때렸다는 걸 알게 된다면 넌 물고기 밥이 될 거야! 그리고 네 옆에 있는 여자는...”황성윤은 허사연을 바라보면서 눈을 반짝였다.“네가 죽으면 내가 대신 돌봐줄게.”말이 끝나기 무섭게 황성윤의 발밑에서 갑자기 한기가 솟아올랐다.그의 앞에 서 있던 진서준이 갑자기 무섭게 변했다. 죽음의 기운이 황성윤을 감쌌고 보이지 않는 손이 그의 목을 졸랐다.“죽으려고!”진서준의 목소리는 차가웠다. 그는 황성윤이라는 청년에게 살의가 생겼
옆에 있던 황은비가 말했다.“할아버지, 제가 가볼게요. 성윤이는 귀국한 지 얼마 안돼서 아직 정신 못 차렸을 거예요.”“그래, 네가 가보거라.”황정식은 고개를 끄덕였다.입구로 가던 길에 황은비가 물었다.“제 사촌 동생이랑 시비가 붙은 사람은 누구죠?”“모르겠습니다. 막 공원에서 나온 것 같았어요.”‘공원에서 나왔다고?’황은비는 움찔했다. 그녀의 손바닥에서 땀이 나기 시작했다.조금 전 만월호를 떠난 사람은 진서준과 허사연 두 사람뿐이었다.“여자 한 명이랑 남자 한 명인가요?”“네.”“망했네!”황은비는 하이힐을 신은 채로 미친 듯이 입구를 향해 뛰어갔다.그녀가 공원 입구에 도착했을 때는 경호원들이 진서준을 에워싸고 있었다.“멈춰!”분노에 찬 황은비는 사력을 다해 소리를 질렀다.그녀의 목소리에 경호원과 황성윤 모두 당황했다.사촌 누나인 황은비를 본 황성윤은 마치 구세주를 본 것처럼 헐레벌떡 그녀에게 달려갔다.“누나, 이 자식이 내 뺨을 때렸어!”진서준과 허사연은 황은비를 보자 흥미롭다는 듯 미소를 지었다.황은비는 몇 번 심호흡하며 마음속의 분노와 두려움을 내리눌렀다.나지혜도 황은비에게 달려가서 호소했다.“언니, 제 얼굴 좀 보세요. 저 빌어먹을 놈에게 뺨을 맞아서 얼굴이 부었어요!”나지혜가 진서준을 욕하자 황은비는 고개를 돌려 그녀를 매섭게 노려보았다.“넌 뭐야?”“저... 전 성윤 씨 여자 친구예요.”나지혜가 억울한 표정으로 말했다.“그래. 저 사람이 네 뺨을 때렸다고?”“네, 네!”나지혜는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황은비는 미소를 지어 보였다.“얼굴 좀 가까이 대봐.”나지혜는 고민 없이 황은비 쪽으로 얼굴을 가져다 댔다.짝 소리와 함께 나지혜의 뺨 위로 붉은 손바닥 자국이 하나 더 생겼다.원래도 빨갛게 부었던 얼굴이 더욱 심하게 부었다.황은비는 뺨 한 대에서 그치지 않고 넋이 나간 나지혜의 얼굴을 사정없이 때렸다.짝짝짝...나지혜가 바닥에 쓰러져서 일어나지 못할 때가 돼서야 멈췄다.“누나... 왜
황성윤은 누나가 왜 진서준에게 존칭을 쓰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비록 황성윤은 황은비와 오래 알고 지낸 건 아니지만, 황은비가 매우 도도한 여자라는 건 알았다.황성윤의 아버지뻘 되는 사람 앞에서도 황은비는 자신을 너무 낮추지 않았다.그러나 황성윤은 현재 분노에 사로잡혀 아무런 생각도 할 수 없었다.“누나, 나이 먹더니 멍청해지기라도 한 거야? 기껏해야 누나 또래인 것 같은데 왜 그렇게 깍듯이 대해?”황성윤은 노발대발했다.황성윤이 눈치 없이 고함을 지르자 황은비는 속으로 한숨을 쉬었다.‘넌 죽었어.’진서준이 덤덤히 말했다.“할아버지라면 그를 다룰 수 있나요?”“네, 지금 할아버지께 연락드릴게요.”황은비는 곧바로 휴대전화를 꺼내 황정식에게 연락했다.황은비는 황정식이 전화를 받자마자 말했다.“할아버지, 지금 바로 공원으로 오셔야겠어요.”“왜? 네가 해결할 수 없는 일이냐?”황정식이 물었다.황은비는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할아버지, 할아버지 손자가 진서준 씨의 심기를 건드렸어요.”황정식은 침묵했다. 무려 3분이 지난 뒤에야 황정식은 정신을 차렸다.“그 자식 죽고 싶어 환장했다니? 은비야, 걔 잘 감시하고 있어. 내가 지금 당장 가마.”말을 마친 뒤 황정식은 전화를 끊고 부랴부랴 사람들을 데리고 공원 입구로 달려갔다.황은비는 험악한 표정의 황성윤을 바라보면서 평온하게 말했다.“이 일은 그냥 이렇게 끝날 수도 있었는데 너 스스로 무덤을 판 거야.”“내가 내 무덤을 팠다고?”황성윤은 크게 웃었다.“누나, 누나 지금 자기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알고 있어?”황씨 일가에서 황성윤은 황은비보다도 더 많이 사랑을 받았다. 황성윤이 황씨 일가의 장손이었기 때문이다.그래서 황성윤이 오만방자한 성격이 된 것이다.“할아버지께서 곧 오실 거야.”황은비는 차갑게 한 마디 던진 뒤 더는 그를 쳐다보지 않았다.“할아버지가 오시면 제대로 설명해야 할 거야. 왜 다른 사람의 편을 들면서 날 때렸는지 말이야!”황성윤은 팔짱을 끼면서 냉소했다.
성미영이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매년 혼자서만 집에 가다 보니 성미영에게 이성 친구가 있을 리 만무했다.성미영도 이제 3년만 지나면 서른이었기에 집에서는 성미영의 결혼 문제가 가장 뜨거운 감자였다.그런데 오늘 갑자기 이성 친구가 생겼다는 소식이 들리자 가족들이 당연히 남자친구라고 착각한 것이다.그래서 기어코 성미영에게 진서준을 집으로 데려오라고 난리였다.“그냥 사실대로 말하면 되잖아?”진서준이 태연하게 말했다.무슨 대단한 일이라도 난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이런 사소한 일이었다.“그게 통했으면 내가 지금 너한테 전화했겠어?”성미영이 짜증 난 목소리로 말했다.“그럼 뭘 어쩌라는 거야? 설마 내가 직접 가서 해명하라는 건 아니겠지?”진서준이 눈썹을 꿈틀거리며 되물었다.“꼭 와야 해. 안 그러면 부모님이 날 가만히 안 둘 거라고.”성미영이 명령조로 말했다.“이봐, 지금 부탁하는 입장인데 말투가 그게 뭐야? 장난해?”진서준이 한마디 귀띔했다.“야, 진서준. 너 적당히 해. 지금 무슨 상황인지 이해가 안 돼?”성미영이 당장이라도 터질 것처럼 소리쳤다.“오후에 내가 너 안 도와줬어? 지금은 네가 나 도울 차례라고. 아니야?”진서준은 그 말에 피식 웃었다.“정정하자면 너 없어도 난 하경범을 충분히 잡아 올 수 있었어. 오히려 너 배려해서 너희 성씨 가문 구역에서 난리 안 친 거라고.”“헛소리 작작 해!”성미영이 분노에 이를 갈았다.진서준의 말이 사실 틀린 말은 아닌데 왜 이렇게 재수 없게 들리는 건지 이해할 수 없었다.“그럼 끊는다?”진서준이 전화를 끊으려 했다.“끊지 마. 내가 지금 데리러 갈 거야. 오늘 밤에 확실히 설명하고 가. 안 그러면 부모님이 나 귀찮게 해 미칠 것 같다고.”성미영이 다급하게 말했다.“그럼 부탁해야지. 부탁할 땐 부탁하는 태도가 있는 법이거든.”진서준이 태연하게 말했다.사실 일부러 성미영을 약 올리는 건 아니었다.그냥 이 여자가 맨날 윗사람처럼 굴었고 매번 자기가 대단한 존재라도 되는 양, 가르
차 안.도지아는 직접 복수를 마친 뒤, 속이 어느 때보다 한결 더 시원했다.하지만 곧 걱정이 가득한 얼굴로 진서준에게 물었다.“나중에 하경범이 복수하면 어떻게 하지?”“그럼 그냥 지옥에 보내버리면 돼. 너무 걱정되면 지금이라도 돌아가서 죽여버릴까?”진서준이 태연하게 말했다.어차피 그런 쓰레기는 살아 있을 가치도 없었다.진서준이 하경범을 바로 죽이지 않은 이유는 단 하나, 바로 금단 현상이 올라올 때의 고통을 직접 맛보게 해주고 싶었기 때문이었다.죽여버리는 것보다 살아서 끔찍한 경험을 하게 하는 게 더 잔인한 법이었다.“아니야, 죽이는 게 오히려 그 녀석에게 자비를 베푸는 일이야.”도지아가 고개를 저었다.그 한마디로 도지아가 하경범을 얼마나 증오하는지 알 수 있었다.하경범은 도지아의 미래를 망가뜨렸고 행복했던 가족을 박살 내버렸다.이제 도지아는 과거로 돌아갈 수도 없었다.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도지아는 막막하기만 했다.호텔로 돌아오자 진서준이 물었다.“여기서 계속 있을 순 없잖아. 앞으로 어디로 갈 생각이야?”도지아는 잠시 고민하더니 대답했다.“예은에게 가볼까 해. 걔 집 넓잖아.”“그것도 괜찮네. 황예은은 돈이 넘치니까 황예은한테 붙어 있으면 먹고사는 걱정은 없겠네.”진서준이 장난스럽게 말했다.한편, 성현도가 빠르게 정보를 통제한 덕분에 하경범이 진서준에게 끌려갔다는 사실은 외부에 알려지지 않았다.하씨 가문 쪽에서도 하경범이 강제로 마약을 먹었다는 사실을 전혀 몰랐다.집으로 돌아간 하경범은 곧장 본인이 키운 삼생파의 두목 이시언에게 연락했다.“하 도련님, 무슨 일입니까?”전화를 받은 이시언은 조금 의아해했다.하경범이 직접 연락해 오는 경우는 드물었는데 마지막으로 연락했을 때도 사람을 납치하라고 시켰을 때였다.“당장 나한테 와.”하경범의 목소리가 얼음처럼 차가웠다.“네, 바로 가겠습니다.”이시언은 하경범의 상태가 심상치 않음을 느끼고 즉시 출발했다.30분 후, 이시언은 부하들을 데리고 하경범의 저택에 도착
“그럼 이제 나랑은 상관없는 일이잖아. 왜 굳이 날 물고 자빠지는 건데?”하경범은 슬슬 짜증 나기 시작했다.“너 아니었으면 우리 가족이 납치당할 일도 없었겠지. 그럼 내 동생도 마약과 접촉할 일도 없었을 거잖아. 네 더러운 욕망만 아니었어도 우리 가족이 이렇게 풍비박산 날 일이 있었겠어?”도지아의 분노는 점점 극에 달했다.“내가 겪은 이 모든 고통은 전부 다 네 탐욕과 욕망 때문이야. 오늘 넌 반드시 그 대가를 치러야 해.”하경범의 얼굴이 순식간에 창백해졌다.이제야 도지아가 진짜 죽을 각오로 덤비고 있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내가 방금 조상규 삼촌에게 연락했어. 곧 도착할 거야. 삼촌이 오기 전까지는 너희가 아직 살아남을 기회가 남아 있어.”하경범은 이런 상황에서도 협박하기 시작했다.“그러니 함부로 날 건드리지 마. 날 손대는 순간, 너희 셋 다 살아서는 못 나갈 줄 알아.”“그 사람은 올 수 없어.”진서준이 느닷없이 말했다.“무슨 뜻이야?”하경범이 움찔하며 눈꺼풀을 떨었다.“이미 죽었거든. 이해했어?”진서준이 담담하게 대꾸했다.“뭐, 뭐라고?”하경범은 흠칫 떨더니 곧바로 고개를 세차게 저었다.“헛소리하지 마. 그럴 리 없어! 조상규 삼촌은 대종사야. 네놈 따위가 무슨 수로 대종사를 죽일 수 있어?”하경범은 조상규의 무도 실력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예전에 습격당했을 때도 조상규가 나서서 하경범을 구해줬다.당당한 대종사인 조상규가 진서준 같은 애송이에게 당했을 리가 없었다.“못 믿겠으면 직접 전화해 봐. 전화 받는 사람이 있는지 확인해 보지 그래?”진서준이 시큰둥하게 말하자 하경범은 급히 전화를 걸었다.그러나 들려오는 건 통화 연결음뿐이었다.하경범은 이 결과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또다시 전화를 걸었다.하지만 결과는 똑같았다.“젠장, 전화 받아! 전화를 받으란 말이야!”하경범은 이제 완전히 패닉 상태에 빠졌다.“통화가 안 되지?”진서준이 싱긋 웃으며 말했다.“대체 왜 조상규 삼촌이 너 따위한테 당했는데?
“뭐가 두려워?”하경범은 자신만만했다.여긴 하씨 가문이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르벨이었다.하경범은 진서준이 이곳에서 자기를 건드릴 용기가 있을 수 없다고 확신했다.“그럼 따라와 봐.”진서준이 몸을 돌려 밖으로 걸어 나갔다.“경범아, 저 녀석 꽤 강해. 조심하는 게 좋아.”성현도가 목소리를 낮춰 경고했다.“걱정 마. 아무 일도 없을 테니까.”하경범은 가볍게 웃으며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진서준이 도대체 무슨 수작을 부리려는 건지 두고 보자는 심정이었다.차에 올라타자 하경범이 눈을 가늘게 뜨며 말했다.“의외네, 넌 여자들한테도 제법 인기가 많은 모양이구나. 황예은과 도지아만 있는 게 아니라 이번엔 또 새로운 여자가 곁에 있네.”하경범은 옆자리의 허사연을 힐끔 쳐다보며 능글맞게 웃었다.“아가씨, 저 녀석 따라다녀 봤자 아무런 미래도 없어. 나랑 함께하는 게 어때? 내 여자가 되면 평생 호화롭게 살게 해줄게. 명품, 스포츠카, 대저택, 뭐든 원하는 만큼 줄 수 있어.”허사연은 그 말에 쌀쌀하게 웃으며 대꾸했다.“그럼 네 목숨을 원한다면 줄 수 있어?”하경범 같은 부잣집 도령이 얼마나 많은 가정을 파탄 냈을지 모른다.진서준의 얘기를 들은 후, 허사연도 이 쓰레기를 당장 없애버리고 싶었다.“내 목숨을 달라고?”하경범은 어이없다는 듯 멍하니 있다가 곧 박장대소를 터뜨렸다.“날 죽이겠다고? 그래, 해봐. 근데 네 가족이 우리 하씨 가문의 분노를 감당할 수 있을까?”하경범의 목소리엔 살기가 서려 있었다.“거참 쉬지도 않고 조잘대네.”진서준은 쉴 새 없는 하경범의 멘트에 슬슬 짜증 나기 시작했다.“흥, 얼마 안 가 네가 내 앞에 무릎 꿇고 날 다시 보내게 될 거야. 내가 장담하지.”하경범은 눈을 가늘게 뜨며 진서준을 비웃었다.“오히려 네가 나한테 무릎 꿇고 목숨을 구걸하게 될걸?”진서준은 태연하게 받아쳤다.곧이어 진서준은 차를 한 폐기된 공장 앞에 세웠다.차에서 내리자 하경범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 한곳에 걸터앉아 휴대폰
“뭐라고? 불법적인 일이 우리 가게에서 일어난다고? 말도 안 돼.”성현도가 헛웃음을 지으며 말을 이었다.“넌 전신전 소속이잖아. 그런데 네 오빠인 내가 어떻게 법률을 어기는 일을 하겠어?”“그럼 이 사람들은 왜 부른 거야? 집단 폭력도 불법이거든.”성미영은 차가운 시선을 보이며 성현도와 따졌다.“미영아, 이건 내가 싸우려던 게 아니야. 저 녀석이 일부러 시비 걸러 온 거라고.”성현도는 진서준을 손가락질하며 말했다.“이놈이 일부러 우리 찻집에 난입해 행패를 부리고 상철을 두들겨 패서 머리에 혹이 다 나버렸어. 난 단순히 정당방위를 위해 부른 거라고.”성미영이 등장하자 성현도는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솔직히 실력만 놓고 보면 성현도는 성미영보다 한참 부족했다.게다가 성미영은 전신전 소속인지라 저 남녀가 군부 조직인 전신전을 적으로 돌릴 리 없었다.군대를 건드리는 순간, 무조건 좋은 결과는 있을 수 없었다.“진서준, 도대체 무슨 일이야?”성미영이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어라? 너희 둘이 아는 사이야?”성현도가 눈을 휘둥그레 뜨며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을 지었다.방금 내려놨던 마음이 다시 불안해지기 시작했다.“난 사람을 찾으러 왔어. 하씨 가문 하경범이 이 위층에 있다고 들었는데 진짜인지 가짜인지 모르겠어.”진서준이 손가락으로 위를 가리켰다.“그리고 또 하나, 저 위에서 불법적인 일이 벌어지고 있다고도 하더군. 그게 사실인지 아닌지도 모르겠어.”이 말에 성현도의 표정이 단숨에 험악해졌고 즉시 반박에 나섰다.“헛소리 마. 우리 가게는 단순한 찻집이야. 불법적인 일 따윈 없어. 근거없는 소문을 왜 털어놓고 난리야?”“미영아, 저 녀석한테 속지 마. 난 네 사촌 오빠야. 내가 그런 불법적인 짓을 할 사람이겠어?”성미영이 곧바로 진서준에게 물었다.“진서준, 너 증거 있어?”“직접 올라가 보면 다 알게 될 거잖아?”진서준이 가볍게 말했다.“오빠, 위층으로 가자.”성미영이 단호하게 말했다.“그, 그건 좀 곤란해. 위층엔 귀
순간, 장내는 숨소리조차 들릴 정도로 조용해졌다.모든 시선이 진서준에게 쏠렸고 사람들은 할 말을 잃어버렸다.다들 진서준을 그냥 얼굴만 반반한 남자라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진짜 고수였다.성현도의 부하 중 최고 실력자조차 상대가 되지 않았다.성현도의 얼굴은 시퍼렇게 질렸고 상철을 향해서 욕설을 날렸다.“쓰레기 자식, 이런 애송이 하나도 못 이겨?”부하가 지면 망신당하는 건 결국 성현도 자신이었다.이대로 체면을 구긴 채 끝낼 수는 없었다.이대로 넘어가면 앞으로 르벨 재벌 2세들 사이에서 조롱거리가 될 게 뻔했다.“이봐, 네 실력이 괜찮은 건 인정할게.”성현도가 싸늘한 얼굴로 말을 이었다.“근데 너 혼자서 백 명을 상대할 수 있어? 천 명은? 잘 들어. 내 부하는 수도 없이 많아. 너 같은 놈 하나 처리하는 데 전화 한 통이면 충분해.”진서준은 눈썹을 꿈틀거리며 여전히 같은 말을 반복했다.“다시 말하지만 난 그냥 하경범을 찾으러 온 거야. 그 녀석만 넘기면 오늘 일은 없던 걸로 해주지.”“없던 걸로 한다고?”성현도가 그 말에 어이없어 헛웃음이 나왔다.“너 지금 누굴 상대로 협상하려 드는 거야? 난 성씨 가문의 직계야. 날 건드리면 상대해야 할 건 나 하나가 아니라 우리 가문 전체라고.”그때, 밖에서 다급한 발소리가 들려오더니 곧이어 검은색 전투복을 입은 남자들이 우르르 몰려왔다.이 남자들은 전부 성씨 가문의 경호원이었고 실력도 만만하지 않았다.그것도 한둘이 아니라 무려 50명 이상이었다.한순간에 텅 비어 있던 로비가 사람들로 꽉 찼다.“저 자식 끝났네. 이 정도 성씨 가문 인원이라면 아무리 강해도 버틸 수가 없지.”“그러게 말이야. 이런 상황에서 살아남을 수 없잖아.”“왜 쓸데없이 성현도를 건드린 거지? 스스로 무덤을 판 거잖아.”구경꾼들은 이 광경에 각자 다른 감정을 보였다.누군가는 동정을, 누군가는 아쉬움을, 또 누군가는 짙은 흥미를 보였다.“사연아, 넌 좀 쉬어. 이놈들은 내가 처리할게.”진서준이 앞으로 나섰다.
얼마 지나지 않아 키가 거의 2미터에 달하는 거구의 사내가 찻집 안으로 들어왔다.남자는 그냥 서 있기만 해도 엄청난 위압감이 느껴졌다.“상철아, 저놈 다리 하나 부러뜨려서 내던져.”성현도가 진서준을 가리키며 명령했다.“알겠습니다.”상철은 간단하게 대답하고는 진서준에게 성큼성큼 다가갔다.“서준아, 내가 할게.”허사연의 눈에는 불꽃 같은 전투욕이 타올랐다.“조심해. 저 녀석은 횡련 종사야. 그렇게 만만한 상대가 아니야.”진서준이 조용히 귀띔했다.“알았어. 설령 못 이긴다고 해도 어차피 네가 있잖아?”허사연이 장난스럽게 웃었다.진서준이 곁에 있는 한, 허사연은 아무것도 두렵지 않았다.“이봐, 사내자식이 여자 뒤에 숨는 게 말이 돼?”상철이 눈썹을 추켜세우며 불쾌한 표정을 지었다.“이봐, 껑충이. 여자를 얕보지 마. 일단 이기고 나서 말해.”허사연이 상철을 도발했다.“아가씨, 그런 기생오라비 말고 날 따르지 그래? 밤마다 널 천국으로 보내줄 수 있는데?”상철이 음흉하게 웃었다.“죽고 싶어 환장했구나.”얼굴이 싸늘해진 허사연이 주먹을 날렸다.강렬한 펀치가 공기를 가르며 폭발음을 일으켰고 그 위력은 철판도 뚫을 수 있을 정도였다.하지만 상철은 비웃듯 입꼬리를 올렸다.“내가 가만히 서 있어도 넌 날 어쩔 수 없어.”“닥쳐!”허사연이 분노에 차 주먹을 그대로 상철의 얼굴로 내리꽂았다.상철은 일부러 머리를 숙이며 대머리 정수리로 받아냈다.쿵!둔탁한 충돌음이 울려 퍼졌다.주먹이 상철의 머리를 강타했으나 대머리는 꿈쩍도 하지 않았고 오히려 허사연이 몇 걸음 물러섰다.순간 손에 뜨거운 통증이 밀려왔고 뼈가 부서질 것 같았다.손을 확인하자 하얀 피부였던 손등이 새빨갛게 부어올랐다.상철은 자기 머리를 한번 쓸어내리더니 빙그레 웃었다.“아가씨, 이제 내 실력을 알겠지?”그 모습에 허사연의 승부욕이 다시 불타올랐고 콧방귀를 뀌며 다시 달려들었다.이번에는 다리를 높이 들어 올려 상철의 머리를 내려찍었다.‘머리가 단단하다고 자랑하
이렇게 예쁘고 섹시한 여자가 싸움 실력이 이렇게 대단할 줄은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다.완전 여성판 이소룡이었다.“너, 너희들 정말 너무 대담한 거 아니야? 여기가 어디인지 알기나 해? 어디서 대놓고 싸움질이야?”종업원은 순간 놀란 뒤 분노에 찬 얼굴로 진서준와 허사연을 가리켰다.찻집이 문을 연 이후로 이렇게 난동을 부리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고 진서준과 허사연이 첫 사례였다.주변의 구경꾼들도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싸움 좀 하면 뭐해? 여긴 성씨 가문의 구역이야. 성씨 가문에서 한마디만 하면 저 남녀는 오늘 밤중으로 사라지겠지.”“어휴, 저 여자 너무 아까워. 저렇게 예쁜데 왜 죽지 못해서 안달이지?”“여자는 살 수도 있겠지만 남자는 무조건 죽을걸.”사람들은 저마다 수군거리며 이미 진서준과 허사연의 결말을 예상하는 듯했다.“그럼 네 말대로라면 내가 널 때린다 해도 얌전히 맞고 있어야 한다는 거야?”허사연은 눈썹을 꿈틀거리며 종업원에게 다가갔다.“오지 마!”종업원은 겁에 질려 연신 뒷걸음질 쳤다.“어떤 미친놈이 내 구역에서 소란을 피우는 거야?”그 순간, 2층에서 한 사람이 내려왔다.모두가 일제히 시선을 돌려 그 사람을 확인하자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성현도가 오늘 여기 있었네?”누군가 그 청년을 알아보았다.“저 둘 끝장났네. 성현도는 악명 높은 냉혈한이야.”그 청년은 바로 찻집의 사장인 성현도였다.성현도는 르벨 재벌 2세 사이에서 유명한 인물이었다.친구에게는 무조건 의리를 지키지만 적에게는 무자비했다.성현도의 고문 방법은 수도 없이 많았고 게다가 무인으로서 무공 실력도 상당했다.“사장님, 저 남녀가 와서 난동을 부렸어요.”종업원은 성현도를 보자마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사장이 나온 걸 확인한 허사연은 주먹 한 방에 종업원을 기절시켜 버렸다.“뭐야?”성현도의 눈이 가늘어졌고 표정이 험악해졌다.자기 앞에서 대놓고 부하를 때리다니, 이건 너무나도 명백한 도발이었다.“아가씨, 우리 처음 보는 사이 맞지? 우리
그리고 오후 2시가 되자 진서준은 허사연을 데리고 조호가 말한 천국찻집으로 향했다.겉모습만 보면 이 찻집은 진짜 전통찻집 같았고 규모도 꽤 컸다.하지만 막상 안에 들어가 보니 전혀 다른 세상이 펼쳐져 있었다.1층과 2층까지는 정말 평범한 찻집처럼 꾸며져 있었고 누가 봐도 이상한 점을 찾기 어려울 정도였다.하지만 3층으로 올라가려면 회원권이 있어야 하거나 사장이 직접 허락한 사람만 출입할 수 있었다.“손님, 아가씨, 이쪽으로 안내해 드리겠습니다.”진서준과 허사연이 차를 마시러 온 줄 안 종업원이 빠르게 달려와 안내하려 했다.“그럴 필요 없어. 난 하경범을 찾으러 왔거든.”진서준이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네?”종업원이 순간 얼어붙었다.“혹시 하씨 가문의 하 도련님을 말씀하시는 겁니까?”“맞아.”진서준이 고개를 끄덕였다.“손님은 누구신지...”종업원이 신중하게 물었다.진서준은 잠시 생각하다가 말했다.“그냥 복수하러 왔다고 전해.”그놈 아버지라고 하는 건 자기를 모욕하는 것과 같았고 친구라고 하기도 기분이 더러웠다.그 말에 종업원의 얼굴색이 확 변했다.“손님, 여기서 장난치지 마세요.”하경범은 르벨에서 유명한 재벌 2세였다.이 찻집의 사장과도 막역한 사이였고 여기서 일하는 직원이라면 그 사실을 모를 리 없었다.“왜? 못 믿겠어?”진서준이 피식 웃으며 되물었다.“손님, 하 도련님에게 복수하려던 사람은 단 하루도 살아남지 못했습니다.”종업원이 경고하듯 말했다.“그런 농담은 함부로 하는 게 아닙니다.”그 말을 듣자 진서준은 담담하게 말했다.“그럼 이렇게 전해. 그 하경범이 두들겨 맞고 나자빠지게 했던 진서준이 왔으니 당장 기어 나오라고 말이야.”진서준의 뻔뻔한 태도에 종업원은 어이가 없었다.“좋습니다. 손님이 그렇게 죽고 싶다면 제가 기꺼이 도와드리죠.”종업원은 바로 무전기를 꺼내 들었다.“문제 발생했습니다. 난동자가 있습니다.”쿵! 쿵!급한 발소리가 들리더니 곧이어 건장한 남자 스무 명이 들이닥쳤다.전부 검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