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씨 가문? 무슨 말인지 전혀 모르겠는데?”진서준은 눈썹을 꿈틀거리며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그제야 진서준은 자기가 여전갈에게 낚인 거란 걸깨달았다.이 검은 옷 무리는 여전갈과 한패가 아니라 단지 이 소녀를 납치하는 게 목적인 사람이었다.진서준은 밧줄에 묶인 소녀를 유심히 살폈다.소녀는 스무 살 안팎에 몸매는 풍만했고 갸름한 달걀형 얼굴에 또랑또랑한 큰 눈이 인상 깊었다.딱 인터넷에서 말하는 동안 글래머 그 자체였다.이상한 건 이런 절망적인 상황인데도 소녀의 얼굴에 두려움 하나 없었고 오히려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진서준을 보고 있었다.“이봐, 네 눈엔 내가 3살짜리 애로 보여? 안씨 가문 사람도 아닌데 이 별장에 쳐들어와서 내 부하들을 모조리 쳐 죽였다고?”두목이 싸늘한 목소리로 말했다.“난 여전갈을 쫓아 들어왔을 뿐이야. 아까 있었던 일은 완전한 오해야.”진서준은 어깨를 으쓱였다.이쯤 되니 여전갈한테 제대로 엿 먹었다는 걸 확신할 수 있었다.물론 여전갈 본인도 우연히 여기 들어왔을 수도 있지만 어쨌든 지금 중요한 건 여전갈이 완전히 사라졌다는 사실이었다.다시 찾으려면 그냥 스스로 기어 나올 때까지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오해는 개뿔, 헛소리 작작 해.”두목은 얼굴이 새까매지며 말을 이었다.“여전갈이고 나발이고 묻는 말에나 대답해. 우리가 제안한 조건을 너희 안씨 가문이 수락하는 거야, 마는 거야?”안씨 가문이란 말에 진서준은 순간 멈칫했다.안씨 가문은 아홉 후손 가문 중 하나였고 지금껏 한 번도 접촉해 본 적 없는 가문이었다.“난 진짜 안씨 가문 사람 아니야. 너희가 안씨 가문 기다리는 거면 난 이만 가볼게. 방해해서 미안해.”말을 마친 진서준은 등을 돌려 별장을 떠나려 했다.황예은이 혼자 별장에 있는데 여기서 시간을 낭비하면 혹시 여전갈이 다시 쳐들어올 수도 있을 것이다.“거기 서, 내가 가도 된다고 했어?”두목은 갑자기 진서준 발밑 바닥을 향해 총을 쐈다.“안씨 가문 사람이든 아니든 내 부하들을 저렇게 죽이고
“진서준 씨, 모범수로 조기 석방되었습니다.”높은 담장 밖엔 잡초가 무성하고 쓸쓸한 바람이 불었다.진서준은 오랜만에 신선한 공기를 마시며 먼 곳을 바라봤다. 두 눈엔 기대로 가득 차 있었다.“감옥에 있는 3년 동안 엄마랑 서라는 잘 있나 모르겠네.”감옥에 갇힌 3년 동안 엄마와 여동생은 단 한 번도 그를 면회하러 오지 않았다. 이에 진서준은 걱정이 스치기 마련이다.집으로 돌아가는 길, 진서준은 헝겊을 가득 꿰맨 가방에서 편지 한 통 꺼냈다.편지봉투를 열자 안에는 쪽지와 ‘천기각’이라고 새겨진 옥패 한 개가 들어 있었다.수정처럼 맑고 투명한 옥패는 유난히 아름다웠다. 아마 가장 좋은 화씨 옥으로 조각한 듯싶다.진서준은 옥패를 허리춤에 차고 쪽지를 펼쳐보았는데 단 두 문장만 적혀 있었다.「서준아, 넌 앞으로 천기각의 주인이고 이 옥패가 바로 그 증표야.」「내년 3월 꽃 필 무렵에 옥패를 가지고 신농산에 가면 모든 걸 알게 될 거다.」이건 진서준이 출소 전에 감방 동기 구창욱 어르신께 받은 편지이다.구창욱 어르신은 종일 신경질적이어서 감방에 아무도 그와 얘기 나누려는 자가 없다. 오직 진서준만 별일 없을 때 어르신을 찾아와 얘기를 나눈다.어르신은 매일 자신이 천기각 주인이라고 허풍을 치셨다. 천문학과 지리학을 꿰뚫고 의술도 뛰어나다고 하셨다.진서준은 애초에 어르신이 자신을 속이는 줄로만 알았는데 나중에 어르신을 따라 무술을 연마하고 온갖 기이한 것들을 배우면서 조금씩 어르신에 대한 생각이 바뀌었다.3년 동안 진서준은 많은 재능을 습득했다.이젠 그의 두 손으로 사람을 구할 수도 있고 죽일 수도 있다!감옥에 들어온 이유는 바야흐로 3년 전으로 돌아가야 한다.3년 전 진서준은 여자 친구 유지수와 함께 갓 졸업하고 같은 회사에 들어갔다.어느 한 비즈니스 미팅에서 이지성이라는 바이어가 유지수를 탐내면서 그녀와 하룻밤을 같이 보내자고 제안했다.진서준은 한창 젊고 패기가 넘쳐 술병을 번쩍 들더니 이지성의 얼굴에 가차 없이 내리쳤다.결국...
유지수가 이지성에게 시집갔다고?본인은 그녈 위해 감방에서 그 고생을 했는데 정작 유지수는 원수 놈에게 시집갔단 말인가?진서준의 두 손에 뼈가 으스러지는 소리가 났고 눈가에 살의가 굳었다.조희선은 손으로 가볍게 얼굴의 흉터를 어루만지며 한숨을 내쉬었다.돈을 모으기 위해 그녀는 유지수를 찾아가 도움을 청했지만 그녀는 집에 돈이 없다는 핑계로 일전 한 푼 내놓지 않았고 심지어 조희선에게 고액 연봉의 일을 소개해 주겠다고 했다.그 당시 조희선은 그녀에게 엄청 고마워하기까지 했다!하지만 정작 유지수가 소개한 직장에 와 보니 그녀를 기다리는 건 배불뚝이가 된 몇몇 중년 남성들이었다.조희선은 일이 점점 더 이상하게 흘러가는 걸 눈치채고 재빨리 도망치려 했지만 상대가 그녀를 끝까지 놓아주지 않았다.절망의 끝자락에 다다른 조희선은 깨진 유리 조각으로 제 얼굴을 그었다.그녀의 얼굴에 난 험상궂은 긴 흉터에 놈들은 분노가 차올라 그녀의 양쪽 다리를 부러뜨리고 길바닥에 내던졌다.진서라가 퇴근하고 마침 그 길을 지나며 발견했으니 망정이지 조희선은 일찌감치 죽었을 것이다!“이런 짐승만도 못한 것들. 내가 조만간 아작을 내고 말겠어. 죽지 못해 사는 고통이 뭔지 보여줄게!”진서준은 이마에 핏줄이 튀어 오르고 주먹으로 양철 벽에 구멍을 냈다.조희선은 연신 머리를 내저으며 아들의 손을 꼭 잡고 의미심장하게 말했다.“서준아, 이제 막 나왔는데 또 싸워서 들어가면 어떡해! 일자리 구해서 열심히 일해. 더는 사고 치지 말고.”진서준은 손등에 핏줄이 튀어 오르고 온몸의 뼈마디가 으스러질 것처럼 울화가 치밀었다.“그래도 이건 도저히 못 참겠어요!”이때 거친 목소리가 집 밖에서 들려왔다.“할망구, 돈 갚아야지!”순간 조희선의 수척해진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다. 극도로 겁에 질린 표정이었다.진서준이 미간을 구기고 나가려 하자 조희선이 재빨리 그를 잡아당겼다.“서준아, 너 여기서 꼼짝 마. 엄마가 알아서 할게.”조희선의 애원하는 눈빛에 진서준은 걸음을 멈췄다.그녀는
진서준은 엄마를 보더니 몸에 스친 살의가 일찌감치 사라졌다.“엄마, 내가 감방에서 아주 대단한 사람을 만났는데 그분이 내게 무술과 의술을 가르쳐줬어요. 엄마 얼굴에 난 상처랑 부러진 다리까지 전부 치료해 드릴게요.”가슴이 움찔거렸던 그녀는 한숨을 내쉬며 말을 이었다.“네가 이런 마음을 지닌 건 고맙지만 엄마는 네가 참 걱정이구나! 절대 두 번 다시 사고 치지 말아. 일자리 찾아서 이씨 일가에 진 빚을 다 갚고 우리 열심히 살아보자꾸나.”진서준이 엄마를 다독이며 대답했다.“네, 엄마 말 들을게요. 지금 바로 나가서 일자리 찾아볼게요.”“그래, 일찍 돌아오너라. 이따가 서라한테 전화해서 퇴근하고 올 때 너 먹일 영양제 좀 사 오라고 해야겠어.”조희선은 마음속에 어렴풋이 희망이 생겨났다.집을 나선 진서준은 깊은 눈동자 속에 서늘한 한기가 스쳤다.‘지난날의 피맺힌 원한을 오늘 반드시 백 배로 갚게 해 줄 거야!’...“아빠, 조금만 버텨요. 병원 거의 다 왔어요! 언니, 좀 더 빨리 몰아!”창백한 얼굴에 겨우 숨을 몰아쉬는 아빠를 보며 허윤진이 눈물을 주르륵 흘렸다.“울지 마, 윤진아. 아빠 괜찮아.”허성태가 간신히 미소를 지어 보였다.콰당!전력 질주하던 마이바흐가 갑자기 급정거했고 뒤에 앉은 허성태 부녀가 화들짝 놀랐다.허윤진은 불만 가득한 표정으로 쏘아붙였다.“언니, 왜 갑자기 급정거해?”운전하던 허사연이 안전벨트를 풀고 허둥지둥 차 문을 열었다.“나 사람 쳤어!”“뭐?”허 씨네 세 부녀가 함께 차에서 내렸다.진서준은 안 그래도 화가 나 있었는데 차에 부딪히기까지 하니 울화가 머리끝까지 치솟았다.“운전 어떻게 하는 거야? 똑바로 못 해?!”그는 버럭 고함을 질렀다.“죄송합니다, 사장님. 제가 병원 모시고 가서 검사시켜 드릴까요?”허사연이 미안한 표정으로 말했다.그녀의 진심 어린 태도에 진서준은 분노가 많이 가라앉았다.한편 뒤에 서 있는 허윤진은 팔짱을 끼고 거만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언니, 이딴 사람에게 왜
두 자매가 아무리 의술을 몰라도 아빠의 혈색으로 보아 확실히 병세를 진정시켜 주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바로 눈앞의 이 미쳐 날뛴 소년이 구해주었다!허성태가 비스듬히 눈을 떴다. 가슴에 꽉 막혔던 그 기운도 말끔히 사라졌다.“아빠, 괜찮으세요?”허윤진이 감격에 겨워하며 물었다.“괜찮아. 아까보다 몸이 훨씬 개운해진 것 같구나.”허성태는 옅은 미소를 지었다.꼼꼼한 허사연은 아빠 몸에 꽂은 은침을 아직 빼내지 않았다는 걸 바로 발견했다.그녀가 막 빼내려 할 때 진서준이 재빨리 입을 열었다.“움직이지 말아요! 지금 잠시 아버님 병세를 진정시켜 드렸을 뿐이에요. 침은 아직 빼면 안 돼요.”일곱 개의 은침은 북두칠성 모양으로 허성태의 몸에 꽂혀 있었다.이것은 청하13침 중의 일곱 번째 침, 이름하여 연명침이다!허성태가 두 딸의 부축을 받으며 자리에서 일어나 감격에 겨운 눈길로 진서준을 쳐다봤다.“살려줘서 고맙네 젊은이!”진서준이 담담하게 말했다.“따님께서 제 부탁을 들어줘서 아버님을 구해드린 겁니다.”허사연과 허윤진은 진서준이 방금 말한 그 일이 떠올라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다.두 사람 중 한 명만 진서준과 결혼하면 그녀들도 받아들일 수 있겠는데 뜻밖에도 둘 다 시집가게 생겼으니 차오르는 수치심은 어쩔 수가 없었다.“그래? 무슨 부탁인지 말해줄 수 있겠나?”허성태가 의아한 듯 물었다.그는 방금 혼미 상태에 빠져있어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전혀 몰랐다.“아버님을 구해드리면 제게 20억을 주겠다고 했습니다.”진서준이 말했다.이건 허윤진이 방금 꺼낸 얘기이다.두 자매가 동시에 그와 결혼하는 건 단지 오만한 허윤진을 처벌하기 위한 진서준의 장난일 뿐이다.설사 결혼한다고 해도 허사연처럼 온화하고 착한 언니와 결혼하겠지.진서준이 두 자매가 동시에 그와 결혼해야 한다는 일을 언급하지 않자 그제야 허사연 자매도 본인들이 놀림을 당했다는 걸 알아챘다.안도의 한숨을 돌린 것도 잠시, 허윤진은 또다시 울화가 치밀었다.‘우리 두 자매가 설마
“그 파렴치한 년과 결혼을 안 했으니 망정이지!”진서준이 싸늘한 눈길로 말을 내뱉었다.“안 그러면 당신들 같은 집구석에 걸려들었을 거잖아. 생각만 해도 끔찍해! 꿈에 나올까 봐 두렵네.”유건우는 바닥에서 일어났는데 입이 삐뚤어 바보 꼴이 되었다.“감히 날 때려? 매형에게 이를 거야. 너 또 감방에 처넣을 거라고!”그는 화가 나서 두 눈이 벌게졌다.진서준의 눈 밑에 차가운 한기가 감돌았다.“어디 한번 해보시던가! 내가 이미 나왔으니 이지성과의 원한은 반드시 결판을 낼 거야!”말을 마친 진서준은 몸을 홱 돌리고 계단을 내려갔다.이제 막 오션 호텔로 출발하려 할 때 주머니 속의 옛날 폰이 갑자기 울렸다.전화를 받자 허사연의 초조한 목소리가 들려왔다.“진서준 씨, 얼른 병원으로 와보셔야 할 것 같아요. 아빠가 위급해요!”“또 위독해지셨어요?”진서준이 미간을 살짝 구겼다.그는 청하13침 중의 전 일곱 침으로 허성태의 병세를 안정시켰고 은침을 뽑지 않아 생명에 지장이 없을 것이다.지금 위급하다는 건 누군가가 허성태의 은침을 건드렸다는 뜻이다.“지금 어느 병원이죠?”진서준이 물었다.“서울 병원에 있어요. 얼른 와보세요, 얼른요!”전화를 끊은 후 허사연은 병실로 돌아가 낯빛이 창백한 아빠를 바라보며 가슴이 찢어질 것만 같았다.허윤진의 예쁘장한 얼굴도 사색이 되었고 두 눈에 두려움으로 휩싸였다.허성태가 이렇게 된 건 오롯이 허윤진이 설쳐댔기 때문이다.병원에 도착한 후 허사연은 화장실에 다녀왔다.그녀가 화장실로 간 틈을 타 허윤진이 아빠의 몸에 꽂은 은침을 보더니 또다시 진서준의 당부와 그 거만한 자태가 떠올라 기분이 내키지 않았다.그녀는 몰래 은침 한 개를 뺐는데 아빠의 상태가 급격히 저하됐다.허윤진은 땅을 치며 후회했지만 병원 의사들도 이 상황을 보더니 전부 속수무책이었다.허사연 자매가 착잡해하고 있을 때 진서준이 병실로 들어왔다.“서준 씨!”허사연이 재빨리 앞으로 마중 가며 진서준의 손을 덥석 잡았다.차가운 섬섬옥수에 따
부영권은 못 믿겠다는 표정으로 진서준을 바라봤다.허윤진의 말대로라면 바로 눈앞의 이 스무 살 남짓한 청년이 허성태에게 청하13침을 놓은 건데 문제는 진서준의 나이가 너무 어리다. 청하13침은 체내에 충분한 내력이 없으면 아예 끌어올릴 수 없고 치료는 더 말할 것도 없다!부영권은 문득 귀신을 쳐다보듯 두 눈을 크게 떴다.그는 앞으로 다가가 진서준의 허리춤에 찬 옥패를 잡고 황급히 물었다.“이 옥패는 어디서 났죠?”부영권의 행동에 장내에 있던 뭇사람들은 화들짝 놀랐다.진서준은 ‘천기각’석 자가 새겨진 옥패를 보더니 담담하게 말했다.“구창욱 어르신께서 주셨습니다.”“구창욱 어르신이요? 아니 어떻게... 창욱 어르신을 만나다니, 게다가 이 옥패도 드렸다고요?”부영권은 감격에 겨워 목소리까지 떨렸다.진서준은 눈썹을 살짝 치키며 물었다.“어르신을 아세요?”“당연하죠. 알다마다요. 이 청하13침을 바로 창욱 어르신께 배운 겁니다!”부영권은 황급히 손에 쥔 옥패를 내려놓고 뒤로 몇 걸음 물러서더니 진서준에게 심심한 경례를 올렸다.“천기각 주인님께 인사 올립니다!”천기각 주인이라니? 대체 무슨 뜻이지?부영권 신의가 왜 한참 어린 청년에게 이토록 예를 갖추며 경례를 하는 거지?모두가 이 광경에 경악을 금치 못했고 바닥에 무릎 꿇고 있던 허윤진도 입이 쩍 벌어져 사과 두 알이라도 통째로 입에 들어갈 것 같았다.진서준은 얼른 부영권을 부축했다.“일어나세요, 어르신. 저는 천기각 주인 같은 거 아닙니다.”“아니요. 구창욱 어르신께서 이 옥패까지 전해준 걸 보면 진서준 씨가 바로 차기 천기각 주인입니다!”부영권이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그는 말하면서 그제야 마음속의 의혹이 다 풀렸다. 이 젊은이가 어떻게 청하13침을 알고 있는지 드디어 이해됐다.“서준 씨, 제발 우리 아빠 살려주세요!”허윤진이 말했다.“서준 씨, 제발 부탁드릴게요. 살려만 주신다면 평생 서준 씨의 노예로 살겠습니다!”허사연도 애원했다.진서준은 허사연을 바라보며 담담하게 말
허사연은 재빨리 다가와 아빠가 깨신 걸 보더니 마음이 훨씬 놓였다.“아빠, 좀 어때요?”그녀가 물었다.“많이 좋아졌어.”허성태는 가볍게 웃으며 답했다.그는 부영권을 보더니 그가 구해준 줄 알고 두 손을 맞잡으며 감사의 뜻을 표했다.“신의님, 구해주신 은혜 평생 잊지 않겠습니다.”부영권은 연신 고개를 내저었다.“제가 아니라 우리 천기각 주인님께서 구해주셨어요!”허사연은 난감한 표정으로 아빠에게 해명했다.“아빠, 서준 씨가 구해드렸어요.”“진서준 씨가?”허성태는 의자에 앉아있는 진서준을 바라보며 감격과 흥분에 겨운 표정을 지었다.오늘 그는 진서준에게 두 번이나 구원받았다. 이보다 더 큰 은혜가 있을까?“살려줘서 고맙네. 자네는 앞으로 우리 가문의 귀빈이야!”진서준이 허씨 일가의 귀빈으로 거듭나자 병실 안에 있는 의사들은 복잡미묘한 기분이 들었다.허씨 일가는 서울시를 휘어잡는 존재이다!그런 가문의 귀빈으로 된다는 것은 앞으로 평생 부귀영화를 누린다는 뜻이다!게다가 진서준은 나이가 젊고 허성태의 두 딸도 아직 미혼이다.어쩌면 허씨 일가의 따님과 좋은 인연을 맺을 수도 있다.“다들 이만 물러가거라. 어르신 편히 쉬게 해드려.”부영권이 병실의 의사들에게 손을 흔들었다.그들은 감히 더는 머무르지 못하고 뿔뿔이 흩어졌다.인파로 붐볐던 병실이 한순간 텅 비어버렸다.“서준 씨, 저도 이만 물러가겠습니다. 무슨 일 있으면 바로 저한테 연락 주세요.”부영권은 개인 번호를 그에게 남겨주었다.강남 명수 부영권의 개인 전화번호를 얻을 수 있는 사람은 10명을 초과하지 않는다.허씨 일가라 해도 부영권 조수의 번호만 갖고 있다.허성태는 부영권이 진서준에게 이토록 깍듯이 대하자 놀랍기도 하고 이해되지도 않았다.번호를 받은 후 진서준도 몸이 거의 회복한 것 같아 자리를 떠나려 했다.“저도 이만 가볼게요. 약재를 다 구하시거든 다시 연락 주세요.”진서준이 말했다.“잠깐만요, 서준 씨!”허사연이 재빨리 그를 불러세웠다.진서준은 눈썹을 살
“안씨 가문? 무슨 말인지 전혀 모르겠는데?”진서준은 눈썹을 꿈틀거리며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그제야 진서준은 자기가 여전갈에게 낚인 거란 걸깨달았다.이 검은 옷 무리는 여전갈과 한패가 아니라 단지 이 소녀를 납치하는 게 목적인 사람이었다.진서준은 밧줄에 묶인 소녀를 유심히 살폈다.소녀는 스무 살 안팎에 몸매는 풍만했고 갸름한 달걀형 얼굴에 또랑또랑한 큰 눈이 인상 깊었다.딱 인터넷에서 말하는 동안 글래머 그 자체였다.이상한 건 이런 절망적인 상황인데도 소녀의 얼굴에 두려움 하나 없었고 오히려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진서준을 보고 있었다.“이봐, 네 눈엔 내가 3살짜리 애로 보여? 안씨 가문 사람도 아닌데 이 별장에 쳐들어와서 내 부하들을 모조리 쳐 죽였다고?”두목이 싸늘한 목소리로 말했다.“난 여전갈을 쫓아 들어왔을 뿐이야. 아까 있었던 일은 완전한 오해야.”진서준은 어깨를 으쓱였다.이쯤 되니 여전갈한테 제대로 엿 먹었다는 걸 확신할 수 있었다.물론 여전갈 본인도 우연히 여기 들어왔을 수도 있지만 어쨌든 지금 중요한 건 여전갈이 완전히 사라졌다는 사실이었다.다시 찾으려면 그냥 스스로 기어 나올 때까지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오해는 개뿔, 헛소리 작작 해.”두목은 얼굴이 새까매지며 말을 이었다.“여전갈이고 나발이고 묻는 말에나 대답해. 우리가 제안한 조건을 너희 안씨 가문이 수락하는 거야, 마는 거야?”안씨 가문이란 말에 진서준은 순간 멈칫했다.안씨 가문은 아홉 후손 가문 중 하나였고 지금껏 한 번도 접촉해 본 적 없는 가문이었다.“난 진짜 안씨 가문 사람 아니야. 너희가 안씨 가문 기다리는 거면 난 이만 가볼게. 방해해서 미안해.”말을 마친 진서준은 등을 돌려 별장을 떠나려 했다.황예은이 혼자 별장에 있는데 여기서 시간을 낭비하면 혹시 여전갈이 다시 쳐들어올 수도 있을 것이다.“거기 서, 내가 가도 된다고 했어?”두목은 갑자기 진서준 발밑 바닥을 향해 총을 쐈다.“안씨 가문 사람이든 아니든 내 부하들을 저렇게 죽이고
남전갈의 몸에 근육이 우뚝 솟아올랐다.바위처럼 울퉁불퉁한 근육에 핏줄이 벌겋게 튀어나와 온몸에 지렁이들이 기어다니는 듯한 느낌이었다.이 순간, 남전갈은 본인의 신체 능력을 한계까지 끌어올렸다.진서준은 기세등등한 남전갈을 보며 눈빛 하나 변하지 않았다.“내 동생을 죽이겠으면 일단 날 먼저 넘어봐.”남전갈은 이를 악물고 진서준을 노려봤다.“비켜.”진서준이 먼저 주먹을 내밀어 남전갈의 가슴팍에 한 방 먹였다.퍽!무시무시한 내력이 남전갈의 단단한 근육을 뚫고 심장을 그대로 박살 냈다.남전갈은 피를 확 토하며 불만과 분노가 가득한 눈빛으로 진서준을 바라봤다.죽는 순간까지도 남전갈은 자기와 진서준의 실력 차이가 이렇게 클 줄 몰랐다.단 한 방도 못 버티고 이런 결말을 맞이하게 되었다.“오빠!”여전갈이 뒤돌아 그 모습을 본 순간, 동공이 심하게 흔들렸다.“어서 도망쳐, 날 신경 쓰지 마.”남전갈은 동생에게 외치며 마지막 의지를 짜내 진서준에게 달려들었다.남전갈은 진서준을 안고 자기 단전을 폭파해 함께 죽으려 했다.“참 끈질기네, 바퀴벌레야?”진서준은 눈썹을 꿈틀거리며 이번엔 정통으로 남전갈의 머리에 한 방 더 내리꽂았다.그러자 남전갈의 머리가 수박처럼 터져버렸고 시뻘건 피가 사방으로 튀었다.남전갈을 정리한 진서준은 곧장 여전갈을 쫓았다.여전갈은 뒤에서 쫓아오는 기척에 당황한 나머지, 옆에 있는 저택 안으로 무작정 뛰어들었다.진서준도 주저하지 않고 그대로 따라 들어갔다.하지만 들어가 보니 여전갈은 이미 어디론가 사라지고 없었다.그 순간, 분주한 발소리가 들려왔다.고개를 돌리니 검은 옷을 입은 자들이 우르르 몰려오고 있었다.전원 장검을 들고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진서준에게 검을 휘두르려고 했다.“설마 이놈들도 여전갈 패거리인가?”진서준은 여전갈과 연결된 인물이 있다는 소문을 들어본 적 없었다.더 생각할 틈도 없이 진서준은 그 무리 속으로 몸을 던졌다.비명과 함께 검은 옷 무리가 순식간에 전부 쓰러져 숨을 거뒀다.상대가
순식간에 방 안 유리 기물들이 산산조각 났다.이게 바로 기세만으로도 일반인의 숨통이 막힐 정도인 대종사의 무시무시한 실력이었다.진서준은 황예은 곁에 앉아 그 압박감을 딴 곳으로 흘려보냈다.두 사람이 멀쩡한 모습을 보자 여전갈의 눈빛이 순간 흔들렸다.“보통 사람이 아닌 줄 알았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네. 하지만 오늘은 신선이 와도 널 살릴 순 없어.”그 말을 끝내자마자 여전갈이 바닥을 박차고 화살처럼 진서준을 향해 날아들었다.여전갈이 디뎠던 바닥은 그대로 산산조각 났고 강풍을 가르며 날아드는 주먹엔 살기가 가득했다.이 주먹을 정통으로 맞으면 뼈도 못 추릴 것 같았다.하지만 진서준의 표정어네는 전혀 변화가 없었다.여전갈이 코앞까지 다가온 순간, 진서준이 먼저 손을 뻗었다.짝!명쾌한 소리와 함께 여전갈의 뺨이 그대로 뒤틀리며 공중을 날아갔다.공중에서 여전갈의 이가 사방으로 튀었고 입에서 피가 분수처럼 뿜어졌다.그대로 바닥에 처박힌 여전갈의 한쪽 얼굴은 순식간에 돼지처럼 부었다.“개자식이 감히 우리 여동생 얼굴을 때려?”남전갈은 분노로 눈이 벌겋게 물들었다.“기분 나빠? 그럼 너도 한 대 맞고 가.”진서준이 태연하게 도발했다.“넌 시체도 온전치 못할 거야.”남전갈이 분노로 이성을 잃은 채 진서준에게 달려들었다.남전갈의 실력은 맨눈으로 봐도 여전갈보다 한 수 위였다.달려오던 중, 남전갈은 갑자기 소매에서 암기를 날렸다.독이 발린 암기는 종사급 이하 무인이 맞는 즉시 사망할 수준이었다.대종사라도 핏속에 독이 들어가면 30초 안에 식물인간, 3분 안엔 뇌사할 것이다.하지만 진서준은 몸을 살짝 틀며 쉽게 피했다.그 순간, 남전갈은 이미 코앞까지 다가와 있었다.“죽어!”공격을 시도하는 남전갈의 손에 타이타늄 단검이 있었는데 이 단검은 철도 자를 수 있고 횡련 대종사의 몸도 그대로 뚫을 정도의 강력한 무기였다.하지만 기세등등한 남전갈을 보며 진서준은 단 두 손가락만 내밀었다.그리고 남전갈의 경악이 가득한 시선 속에서 그 두
진서준의 말이 끝나자 정원 속에서 그림자 두 개가 유령처럼 소리 없이 모습을 드러냈다.남자와 여자를 바라보며 진서준은 심각한 표정으로 황예은에게 말했다.“너, 막 도착했을 텐데 저쪽에서 이렇게 빨리 널 찾았다고? 네 주변 사람들을 한 번 다시 털어보는 게 좋겠는데?”하지만 황예은은 담담하게 대답했다.“이젠 나도 익숙해졌어.”황예은 주위에는 확실히 배신자가 꽤 많았다.암살 시도가 있을 때마다 황예은도 내부 조사를 다시 하지만 그 어떤 조치를 해도 배신자는 계속 나왔다.이건 배신자들이 충성심이 없어서가 아니라 황예은을 죽이고 싶은 놈들이 수단이 너무 많았기 때문이다.돈으로 유혹하거나 가족으로 인질 삼는 건 가장 기본적인 수단이었다.세상 누구든 약점은 하나쯤 있다.그걸 쥐고 흔들면 충성 따윈 아무런 의미도 없는 법이다.“너희 둘은 어디서 굴러왔어?”진서준은 살짝 눈을 가늘게 뜨고 두 사람을 바라봤다.남자는 키가 2미터에 몸은 바위처럼 단단해 보였고 서 있기만 해도 산처럼 거대한 위압감이 뿜어졌다.여자는 전투복 차림에 늠름한 분위기를 풍겼고 눈빛은 칼날처럼 날카로웠다.두 사람은 딱 봐도 범상치 않은 실력자였다.“이봐, 우린 저 여자 잡으러 온 거야. 너랑은 상관없으니까 5초 이내에 당장 이 별장에서 나가. 안 나가면 결과는 너 스스로 책임져.”중년 남자가 싸늘하게 경고했다.“역시 널 잡으러 온 거였구나.”진서준은 고개를 끄덕이며 확신했다.처음엔 하경범이 보낸 놈들인 줄 알았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니 마약에 뇌까지 녹아버린 하경범에게 이런 지략이 있을 리 없었다.“난 말이지, 협박이 세상에서 가장 안 무서운 일이야.”진서준은 중년 남자의 말을 받아쳤다.“너 그 선택으로 평생 후회하게 될 거야.”중년 남자가 냉랭하게 말했다.“그래? 난 오히려 너희 정체가 궁금한데?”진서준은 여전히 태연하게 말을 이었다.“정체를 숨기는 거 보니 이름이 좀 알려진 킬러겠지?”두 사람의 원기는 깊게 숨겨져 있어 진서준도 실력을 가늠하기 어려웠다
두 사람이 안전하다는 걸 확인한 후, 진서준은 비로소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그때, 문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진서준은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문으로 향했다.문을 열자 절세미인이 눈앞에 나타났다.다만 그 얼굴은 다소 차가웠고 묘한 압박감을 풍겼다.“네가 여기 웬일이야?”진서준은 황예은을 보고 살짝 놀란 기색을 띠었다.“지아를 보러 왔어.”황예은은 진서준을 밀어내고 거침없이 방 안으로 들어섰다.“오기 전에 연락 안 했어? 도지아랑 사연은 쇼핑하러 나갔어. 조금 있으면 돌아올 거야.”진서준은 복도를 힐끗 쳐다보고는 따로 따라온 사람이 없다는 걸 확인하고 문을 닫았다.황예은은 소파에 앉아 방을 한 바퀴 훑었다.“너희 여기서 묵고 있는 거야?”“나랑 사연은 여기서 자고 도지아는 옆방에서 자.”진서준이 설명했다.“돈 낭비가 심하네.”황예은이 냉정하게 말했다.르벨은 관광 도시라 해마다 수많은 여행객이 몰려들었고 자연스럽게 숙박비도 다른 지역보다 훨씬 비쌌다.진서준이 묵고 있는 스위트룸도 하룻밤에 100만 원이었고 보통 사람이라면 부담스러울 금액이었다.하지만 진서준에게는 그저 푼돈에 불과했다.“그렇다고 길거리에서 잘 수도 없잖아?”진서준이 농담조로 말했다.“난 여기 집이 있어. 너희 나랑 우리 집에 가자.”황예은이 담담하게 말했다.“쯧쯧... 네가 돈 낭비를 논할 자격이 없는 것 같은데?”진서준은 비꼬듯 입꼬리를 씰룩거렸다.자주 오지도 않는 르벨에 별장 한 채를 사놓는 거야말로 진정한 돈 낭비였다.“뭐라고?”황예은이 눈썹을 꿈틀거리며 되물었다.“아무것도 아냐. 사연이랑 지아 돌아오면 같이 가자.”진서준이 제안했다.“그럴 필요 없어. 아까 지아한테 전화해 둬서 넌 짐만 챙기면 돼.”이미 다 계획해 뒀다는 걸 깨달은 진서준은 어깨를 으쓱하고 짐을 챙기기 시작했다.그리고 황예은과 함께 차를 타고 그녀의 별장으로 향했다.별장은 산과 호수를 끼고 풍경도 아름다운 한적한 외곽에 있었다.“이 별장 살 때 얼마나 들었어?”진서
두 킬러의 반응에 하경범은 순간 얼어붙었다.“용존님. 제발 한 번만 살려주십시오. 다시는 르벨에 발을 들이지 않겠습니다.”두 사람은 그대로 무릎을 꿇고 방아 찧듯 진서준을 향해 머리를 조아렸다.누구도 죽고 싶지는 않았다.특히 칼끝에서 살아가는 킬러들에게 죽음은 더욱 두려운 것이었다.“살아 있는 인간보다 죽은 인간이 더 믿을 만하지.”냉정한 표정으로 말하는 진서준은 킬러들에게 자비를 베풀 생각이 없어 보였다.조사도 하지 않고 덥석 의뢰를 받다니, 죽어도 전혀 억울하지 않았다.진서준의 살기가 느껴지자 두 킬러는 서로 눈빛을 주고받았다.그러고는 동시에 몸을 돌려 도망치기 시작했다.“도망칠 수 있을 것 같아?”진서준의 손끝이 미세하게 떨리더니 다음 순간, 참선검이 공중으로 날아올랐다.슈욱!검날이 두 사람의 목덜미를 스치고 지나가자 핏줄이 터지며 선혈이 뿜어졌다.흑의방 골드 킬러 두 명이 현장에서 되살릴 가능성이 전혀 없이 즉사했다.“아악!”킬러들이 하경범의 바로 옆에서 죽어버렸고 튀어나온 피가 그의 얼굴을 적시자 하경범은 창백한 얼굴로 비명을 질렀다.“다음은 네 차례야.”진서준이 덤덤하게 하경범을 바라보며 죽음을 선고했다.“네가 날 건드릴 수 있을 것 같아? 난 하씨 가문 장남이야. 우리 하씨 가문이 네놈이 날 죽였다는 걸 알면 넌 무조건 갈기갈기 찢겨 죽을 거야.”하경범은 목소리를 높이며 필사적으로 하씨 가문의 이름을 내세웠다.“그래? 그럼 하씨 가문이 얼마나 대단한지 한번 보도록 하지.”진서준이 담담하게 대답했다.“이시언, 얼른 네 부하들을 시켜 저 녀석 제지해. 오지 못하게 막아!”하경범이 다급하게 소리쳤고 비틀거리며 몸을 일으키던 그 순간, 응답 대신 날카로운 단검이 하경범의 복부를 꿰뚫었다.흰 칼날이 몸에 들어갔다가 붉게 물들어 다시 밖으로 나왔다.“크악! 이시언. 너 씨X 미쳤어?”하경범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이시언을 노려봤다.“감히 날 배신해? 네 누나 다시는 보고 싶지 않은 거야?”“그 더러운 주둥
유일하게 변하지 않은 건 노인의 주름진 늙은 얼굴뿐이었다.“축골공?”진서준이 미묘한 표정을 지었다.이건 횡련 무인만이 감당할 수 있는 고급 기법이었다.자기 뼈를 압축해 몸의 내구도를 극한까지 끌어올리는 기술이었다.축골공을 완벽하게 연마한 자는 만 명 중 한 명 나올까 말까 한 절정 고수였다.그리고 지금 이 노인은 이미 그 경지를 초월한 수준이었다.“뭐야? 축골공도 알아? 정말 제법이네.”노인은 진서준의 말에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오늘 내 손에 죽게 되는 걸 영광으로 여겨.”노인은 거인처럼 커다란 거구를 움직여 천천히 걸어오기 시작했는데 발을 내디딜 때마다 바닥이 진동했다.식당 전체가 흔들리기 시작하며 언제 무너져도 전혀 이상하지 않은 상태가 됐다.“네놈을 박살 내 주마.”노인이 주먹을 들어 올려 진서준의 어깨를 향해 내리꽂았다.그 의도가 너무 뻔했는데 진서준의 사지를 부러뜨린 뒤, 천천히 고통스럽게 죽이겠다는 속셈이었다.하지만 진서준은 전혀 당황하지 않고 체내 혈기를 끌어올려 주먹을 내질렀다.펑!그 주먹이 정확히 노인의 가슴을 강타했다.곧이어 묵직한 충격음과 함께 기세등등하게 달려오던 노인이 그대로 멈춰 섰다.“주명남, 멍하니 뭐 하는 거야?”다른 흑의방 킬러가 눈살을 찌푸리며 물었다.그 질문이 떨어지기 무섭게 주명남의 거대한 몸뚱이가 그대로 바닥에 쓰러졌다.주명남의 입에서 피가 쏟아졌고 눈동자는 초점을 잃었다.방금 한 방으로 주명남의 심장이 터져버린 것이다.“뭐야?”나머지 킬러 두 명이 이 광경에 동공이 급격히 흔들렸다.‘주먹 한 방으로 주명남을 죽였다고? 이 녀석 대체 무슨 짓을 한 거지?’“흑의방 킬러도 뭐 별거 아니군.”진서준이 무심하게 중얼거렸다.아까까지 절망에 빠졌던 이시언의 눈빛에 다시금 희망이 떠올랐다.진서준이라면 진짜 기적을 만들어낼 수도 있을 것 같았다.“둘 다 함께 덤벼 저놈 당장 해치워.”하경범이 두려움에 뒷걸음질 치며 남은 두 킬러에게 다급히 명령했다.“이봐, 네 재능과 실력은
“흑의방 골드 킬러라고요?”이시언의 눈에 두려움이 스쳤다.이시언은 최근 몇 년 하경범을 따라다니면서 많은 걸 봐왔다.흑의방에는 실력자들이 넘쳐나고 천재들이 끝없이 나온다.흑의방에 갓 입문한 브론즈 킬러조차도 백 명을 상대로 싸울 수 있었고 실버 킬러는 천 명을 상대하더라도 목표의 목을 정확히 따낼 수 있었다.그리고 골드 살수라면 아무 흔적도 남기지 않고 목표를 완벽하게 제거할 수 있었다.그런 존재가 무려 셋이나 한꺼번에 왔다.이시언은 진서준의 실력을 제대로 몰랐다.하지만 설령 강하다고 해도 혼자서 흑의방의 골드 킬러 셋을 상대한다는 건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다.아무리 생각해도 이시언 누나의 복수가 물 건너간 것 같았다.진서준도 흑의방에 관해 들어본 적이 있었다.국안부에서 작성한 천의방, 지의방, 인의방에 비해 흑의방에 오른 자들의 전투력은 한 수 위였다.흑의방 킬러는 말 그대로 시체 더미와 피바다 속에서 살아남은 인물인지라 온몸에서 감출 수 없는 살기가 번뜩였다.“하 도련님, 죽이고 싶은 놈이 이 녀석입니까?”체구가 작은 노인이 앞으로 나서며 아무런 표정 변화도 없이 진서준을 바라봤다.“아니야, 너희가 할 일은 저놈 사지를 부러뜨리는 것뿐이야. 저놈 숨통은 내가 직접 끊어놓을 거야.”하경범의 눈에는 살기가 가득했는데 진서준에 대한 증오가 얼마나 깊은지 한눈에 알 수 있을 정도였다.“사지만 부러뜨리라고요? 우린 사람 죽이는 킬러라서 그런 건 좀 까다로운데요?”노인이 어깨를 으쓱이며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돈을 더 줄 테니까 해 봐.”하경범이 싸늘하게 말했다.이 노인이 무슨 속셈인지 하경범이 모를 리가 없었다.흑의방의 킬러는 죄다 돈밖에 모르는 인간이었다.“좋아요, 그럼 간단하죠.”노인이 입꼬리를 올리며 웃었다.“청년, 그냥 가만히 서 있어. 내 손은 엄청 빠르니까 넌 아프다는 감각조차 못 느낄 거야.”다음 순간, 노인의 몸이 흔들리더니 총알처럼 진서준을 향해 날아들었다.순간 방 안에 공기를 가르는 날카로운 충격음이 울
“진서준 씨 말이 맞습니다. 하경범은 확실히 가족에게 알리지 않았어요.”이시언이 고개를 끄덕였다.“하씨 가문의 가주 후보 경쟁은 극도로 치열합니다. 만약 하경범이 마약을 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자기 의지가 아니었다 해도 후보 자격을 잃게 될 겁니다. 그래서 하경범은 집안의 힘을 빌릴 수 없고 대신 제 힘을 이용해 당신들을 치려는 거죠.”조호는 그 말에 눈살을 찌푸렸다.“이시언, 근데 넌 왜 이런 걸 우리한테 말하는 거지? 넌 하경범이 키워준 사람이잖아?”보통은 주인을 도와야 할 텐데 이시언이란 녀석은 설마 타고난 배신자란 말인가?“그럼 넌 하경범이 왜 날 키웠는지 알고 있어?”이시언이 되물었다.“그거야 모르지.”조호가 고개를 저었다.삼생파가 급성장한 건 비 온 뒤 솟아나는 죽순과도 같아 조호는 사실 이시언이 어떤 인물인지도 잘 몰랐다.부하들에게 철저히 조사하라고 시켰지만 이시언의 과거에 대한 정보는 나오지 않았다.이건 조호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내 누나는 하경범 애인이야.”이시언은 감정 없는 목소리로 말했다.“뭐라고? 그럼 넌 하경범의 처남이잖아?”조호는 깜짝 놀랐다.“개소리 집어쳐.”이시언의 눈빛이 매섭게 변했고 두 주먹을 꽉 쥐었다.“내 누나는 그 개자식에게 강제로 당한 거야. 순종하지 않으면 우리 가족을 몰살시킨다고 협박했어. 난 예전부터 그 개자식을 죽이고 싶었어.”조호는 입을 딱 벌렸다.이건 심지어 진서준도 예상치 못한 전개였다.이시언과 하경범 사이에 이런 사연이 있었을 줄은 아무도 몰랐다.“그럼 네가 오늘 우리를 부른 게 진짜 협력하기 위해서야?”조호는 믿기지 않는다는 듯 되물으며 진서준을 존경이 가득한 눈빛으로 바라봤다.역시나 진서준은 모든 걸 꿰뚫어 보고 있었다.“하경범은 내게 진서준 씨를 조사하라고만 했지 공격하라는 지시는 내리지 않았어. 아마도 다른 강자를 불러 올 생각일 거야.”이시언이 솔직히 말했다.“내가 하경범을 잘 아는데, 그놈은 기회만 잡으면 전력을 다해 덤벼들 거야. 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