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자식, 내 말 들었어?”서정훈은 목청을 높이며 화가 난 얼굴로 말했다.“됐어요, 여보. 화내지 말아요. 의사 선생님이 화내면 안 된다고 했잖아요.”심해윤은 곧바로 서정훈을 말리며 그를 소파에 앉혔다.차분함을 되찾은 서정훈은 곧바로 한숨을 쉬었다.“해윤아, 나한테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것 같다.”그동안 서정훈은 가끔 심장이 빠르게 뛰고, 또 가끔은 심장이 아주 느리게 뛰는 걸 느꼈다. 두려움이 들 정도로 아주 느렸다.의사도 서정훈에게 솔직히 얘기했다. 적합한 심장을 찾지 못한다면 1년밖에 살지 못할 거라고 말이다.“얼른 퉤퉤퉤 해요. 그런 말 함부로 하는 거 아니에요!”심해윤은 당황한 얼굴로 말했다.“현욱이 저 자식 때문에 마음이 놓이지 않아. 항상 사고만 치고 말이야!”서정훈은 어쩔 수 없다는 듯 말했다.“내가 살아있을 때는 저 성질머리를 좀 죽일 수 있었지만 내가 죽으면 저 녀석 아주 제멋대로 날뛸 거야! 그러다가 되돌이킬 수 없는 잘못을 저지를까 봐 걱정이야!”서정훈은 서현욱을 엄하게 가르쳤다. 하지만 두 사람 모두 일 때문에 가르침이 조금 부족했다.심해윤은 절망한 서정훈의 모습을 보고 오후에 반재윤에게서 전화가 온 사실을 얘기했다.“여보, 좋은 소식 알려줄게요. 당신 병 치료할 수 있대요!”서정훈은 웃었다.“장난치지 마. 내가 살 수 있을지 없을지는 내가 가장 잘 알아!”예전에 부영권이 그를 진료해 준 적이 있는데 부영권의 의술로는 치료할 수 없어서 약만 처방해서 그의 수명을 반년 정도 늘려줬다.부영권도 그를 살리지 못하는데 서울시의 다른 의사는 말할 것도 없었다.“거짓말 아니에요. 반재윤 씨가 직접 전화했다니까요. 신의를 한 명 만났는데 부영권 씨보다 의술이 훨씬 뛰어나대요!”심해윤이 서둘러 설명했다.의술이 부영권보다 더 뛰어나다는 말에 서정훈은 흠칫했다.“설마 반 처장님이 경성에 아는 의사가 있는 걸까?”서정훈은 서울시 부시장이었지만 서울시에서만 조금 지위가 있을 뿐이다.남주성에는 그와 같은 부시장이
옆에 있던 심해윤도 공윤석의 말을 듣고 서정훈 대신 승낙했다.“감사드려요. 내일 제가 부시장님 데리고 병원으로 갈게요. 그 전문가를 서울 병원으로 모셔주시면 돼요!”“별말씀을요. 저도 우리 서울 시민을 위해서 그러는 거죠. 우리 서울시에 부시장님이 없어서는 안 되니까요!”공윤석이 아부했다.평소 누군가 아부했다면 서정훈은 그 사람을 싫어했을 것이다.그러나 공윤석은 그를 위해 전문가까지 모셔 왔기에 서정훈은 그를 싫어할 정도는 아니었다.“그러면 두 분 쉬는 거 방해하지 않겠습니다. 내일 병원에서 뵐게요!”전화를 끊은 뒤 심해윤은 흥분한 듯 말했다.“여보, 당신 나을 수 있을 거예요!”서정훈은 그렇게 기뻐 보이지 않았다.“우리 다른 지방 의사를 만나봤잖아. 다들 치료 못 한다고 했어.”“공윤석 씨 말 못 들었어요? 해외에서 이제 막 돌아온 전문가라잖아요!”심해윤이 말했다.“이렇게 말하는 건 좀 그렇지만, 해외 전문가들이라면 국내 전문가들보다 의학 방면으로 조금 더 조예가 깊지 않을까요? 내일 출근하지 말아요. 부하에게 전화해서 얘기해 두고 우리는 내일 병원에 가 봐요!”“그래. 이번에는 당신 말 들을게!”서정훈은 웃으며 말했다.죽고 싶은 사람은 없었다. 서정훈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살아서 서울 시민들의 행복을 도모하고 싶었다.다른 한편, 공윤석은 전화를 끊은 뒤 안도했다.아들 공수철이 경찰에게 잡혀간 뒤 그는 곧바로 전라도로 가서 이제 막 해외에서 돌아온 자신의 대학 동기를 찾았다.대학 동기가 아니었다면 공윤석은 그를 모시지 못했을 것이다.“부시장님 병만 치료하게 된다면 수철이도 나도 괜찮을 거야. 어쩌면 반재윤 그 자식을 밀어낼 수 있을지도 몰라!”공윤석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마치 이미 승리를 거머쥔 것처럼 말이다....강성철은 십여 분 뒤에야 서현욱이 보낸 메시지를 받았다.자신이 죽여야 할 사람을 확인한 순간 강성철은 멍해졌다.“진서준 씨를 죽이라고? 이거 미친놈 아냐?”강성철은 한참을 고민했지만 진서준이 어쩌다가
진서준은 당시 이 정장을 입고 유지수와 결혼하기를 꿈꿨었다.“새로 한 벌 사야겠다. 이건 버려야겠어.”진서준은 정장을 꺼내 그것을 밖에 있는 청소차 안에 버렸다.아침을 먹은 뒤 얼마 지나지 않아 진서준은 정장을 새로 사기 위해 외출하려 했다. 그런데 집에서 나오자마자 반재윤에게서 전화가 왔다.“진서준 씨, 일어나셨어요?”반재윤이 조금 초조한 어조로 말했다.“네, 무슨 일이세요, 반 처장님?”진서준은 평온하게 물었다.“부시장님이 서울 병원으로 가셨어요. 공윤석이 전라도에서 전문가를 모셔 온 모양이에요.”그 말을 들은 진서준은 반재윤이 왜 이렇게 급하게 전화했는지 깨달았다.공윤석이 데려온 사람이 서정훈을 치료한다면 앞으로 공윤석은 서정훈의 눈에 들게 될 것이다.그리고 공수철도 아무런 처벌을 받지 않을 수 있었다. 그렇게 되면 공윤석이 반재윤과 진서준에게 복수하려고 할 수 있었다.지금 진서준과 반재윤은 같은 편이라고 할 수 있었다.“알겠어요. 지금 당장 가볼게요.”진서준은 지체할 수 없어 곧바로 차를 타고 서울 병원으로 갔다.서정훈 부부는 진작 병원에 도착했다. 원장 우성환은 적극적으로 두 사람을 대접했고 곧 서정훈을 위해 고급 병실을 마련했다.잠시 뒤, 공윤석과 그가 데려온 해외파 전문가가 병원에 도착했다.“심해윤 씨, 이분은 전라도 병원에서 모셔 온 해외파 전문가 최문혁 씨입니다. 예전에 해외에 있을 때도 심장 쪽 전문이었는데 의술이 아주 뛰어나요. 해외에서도 많은 사람을 구하셨어요.”공윤석이 심해윤에게 최문혁을 소개했다.심해윤은 그의 말에 깜짝 놀라서 서둘러 웃는 얼굴로 최문혁과 악수를 나누었다.“우선 부시장님을 전면적으로 검진해서 어떤 상황인지부터 알아봐야겠습니다.”최문혁이 말했다.“검진은 조금 전에 끝났습니다. 곧 결과가 나올 거예요.”우성환이 서둘러 말했다.“네, 그러면 조금 더 기다려보죠.”우성환은 곧바로 최문혁과 심해윤 등 사람들을 데리고 회의실로 향했다. 그리고 간호사에게 차를 가져오라고 한 뒤 결과가 나
자세히 생각해 보니 정말 진서준의 말대로였다.해외 의학 기술은 발전한 지 겨우 2, 300년 정도였다.그러나 대한민국은 아주 오래전부터 발전해 왔다.대한민국이 한동안 전란으로 혼란스러워서 엄청난 의학 서적들을 잃지만 않았어도 해외파들이 이 정도로 따라잡지는 못했을 것이다.“진서준 씨, 부영권 선생님이 진서준 씨를 그렇게 칭찬하시던 이유가 있었어요. 그걸 전 오늘에야 깨달았습니다!”반재윤이 존경하는 얼굴로 말했다.“일단 차부터 주차해 두고 올게요!”진서준은 주차해 놓은 뒤 곧바로 반재윤을 찾아갔다.두 사람은 곧 엘리베이터를 타고 심해윤 일행이 있는 층에 도착했다.진서준은 회의실 앞에 도착한 뒤 곧바로 문을 열고 들어갔다.회의실 안에서 수술을 어떻게 진행해야 할지 토론하고 있던 최문혁 등 사람들은 갑자기 조용해졌다.“누구죠? 누가 들어오라고 했죠?”최문혁이 불쾌한 얼굴로 말했다.심해윤은 반재윤을 알고 있었기에 곧바로 설명했다.“이분은 식약처 처장님이에요.”공윤석은 이곳으로 오기 전에 최문혁에게 자신과 반재윤 사이에 아주 큰 갈등이 있다고, 만약 최문혁이 서정훈의 병을 치료한다면 공윤석은 더 높은 자리로 올라갈 수 있다고 했다.그래서 반재윤의 신분을 알게 된 최문혁은 태도가 좋지 않았다.“저희는 지금 어떻게 수술을 진행해야 할지 논의 중이었습니다. 그러니 조용히 해주시죠!”반재윤은 상대방이 기를 꺾으려고 일부러 그런다는 걸 알았다. 그러나 어쩔 수가 없었기에 진서준과 함께 자리를 찾아서 앉았다.심해윤은 반재윤의 옆에 앉아 있는 진서준을 보더니 미간을 살짝 구기며 그에게로 걸어갔다.“반 처장님, 이분은 누구죠?”“이분이 바로 어제 제가 소개했던 진 선생님입니다. 우리 서울시의 명의시죠!”반재윤은 곧바로 작은 목소리로 소개했다.눈앞의 청년이 신의라는 것을 알게 되자 심해윤은 당장 몸을 돌려 자리를 뜨고 싶었다.진서준은 그의 아들보다도 어려 보였는데 어떻게 신의라 불린단 말인가?심해윤의 눈빛을 본 진서준은 옅은 미소를 지었다.
공윤석도 의대 출신이었기에 그의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였다. 최문혁의 말은 틀리지 않았다.공윤석은 최문혁의 말을 심해윤에게 전했고 그녀에게 결정을 맡겼다.50%의 성공률이었기에 심해윤은 결정을 내리기 힘들었다.“남편이랑 상의해 볼게요.”심해윤은 곧바로 병실로 돌아와서 병상 위 서정훈에게 얘기했다.“그쪽에서 의논한 결과 수술을 하면 성공률이 50%래요.”서정훈은 그 말을 듣더니 덤덤히 웃었다.“적어도 50%의 희망이 있는 거네. 실패한다고 해도 위험은 없겠어.”평온한 발전을 추구하던 서정훈이 지금 이 순간만큼은 도박을 걸었다.그는 자신의 목숨을 걸었다.“알겠어요. 지금 바로 얘기할게요.”심해윤은 다른 사람에게 추태를 들키지 않기 위해 눈가에 맺힌 눈물을 닦았다. 그녀는 서정훈과 결혼한 지 30년이 되었다. 두 사람 사이의 감정은 사랑 따위가 아니라 그 모든 걸 초월한 가족 간의 정이었다.심해윤은 회의실로 돌아와서 최문혁에게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최 선생님, 부탁드릴게요!”“네, 저희도 최선을 다하겠습니다!”이때 진서준이 갑자기 말했다.“제가 옆에서 수술 참관해도 괜찮죠?”조금 전 진서준이 갑자기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왔을 때 최문혁은 불쾌해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수술을 참관하겠다고 하자 최문혁은 곧바로 거절했다.“안 됩니다!”“왜 안 되죠? 제가 뭐 기술을 배우겠다는 것도 아니고, 방해가 되지도 않을 텐데요.”진서준은 덤덤히 웃으며 말했다.“수술실도 엄청나게 커서 저 한 명 더 들어간다고 해도 넉넉할 겁니다.”진서준이 수술실에 따라 들어가겠다고 한 건 최문혁 등이 서정훈의 병을 치료하지 못할까 걱정돼서였다.서정훈은 심장에 문제가 있었기에 혹시라도 무슨 문제가 생긴다면 한 시도 지체해서는 안 됐다.반재윤도 말을 보탰다.“진 선생님이 참관하게 하시죠. 진 선생님은 한의학 전공이라 절대 기술을 몰래 배울 일은 없습니다.”진서준이 한의학 전공이라고 하자 최문혁 등 사람들은 코웃음을 쳤다. 그들은 진서준을 더 얕잡아봤다.
심장은 가장 중요한 기관이자 가장 약한 기관이었다. 조금이라도 문제가 생긴다면 심장이 견디지 못할 수 있었다.서정훈의 심장은 원래도 문제가 있었기에 빠르게 수술을 진행하지 않는다면 서정훈이 수술대 위에서 숨을 거둘 수도 있었다.서정훈의 상황이 심각해진 건 진서준이 예상한 일이었다.하지만 최문혁 등 사람들은 당황했다. 수술이 이제 막 시작되었는데 벌써 견디지 못한다면, 반쯤 진행되었을 때 서정훈은 틀림없이 죽을 터였다.“얼른 응급조치를 취해. 일단 환자 상태부터 안정시켜야 해!”최문혁은 전문가였기에 곧바로 침착함을 되찾고 부하에게 응급조치를 하라고 명령했다.“그렇게 해봤자 못 구해요. 그냥 시간 낭비일 뿐이죠.”옆에 있던 진서준이 갑자기 말했다.현재 서정훈의 상태를 보면 더는 미룰 수 없었다. 응급조치를 할 겨를조차 없었다.유일한 방법은 일반적인 방법이 아니라 특별한 방법으로 최선을 다해 심장을 치료하는 것이었다.“입 닥쳐요. 환자에게 문제가 생긴다면 다 당신 탓이에요!”최문혁은 문득 자신이 환자를 구하지 못해도 모든 책임을 진서준에게 돌리면 그만이라는 생각이 떠올랐다.무려 부시장인 서정훈이 죽게 된다면, 이렇게 큰 의료 사고를 최문혁은 감당할 수 없었다.하지만 다행히도 대신 책임을 져 줄 사람이 있었다.그런 생각이 들자 최문혁은 부담감이 줄어들어 응급조치를 취하는 속도로 늦어졌다.진서준은 그 모든 걸 지켜보면서 속으로 냉소했다.최문혁처럼 인품에 문제가 있는 사람은 의사가 될 자격이 없었다.그러나 진서준은 대놓고 얘기하지 않고 최문혁이 어떻게 하는지 지켜봤다.약 10분간 응급조치를 취했지만 약간의 기복이 있던 심전도가 완전히 직선이 되었다.다들 서정훈이 죽을 거라고 생각했다..“나가죠. 환자는 가망이 없어요.”최문혁은 한숨을 쉬면서 제일 처음 수술실을 떠났다.다른 조수들도 최문혁을 뒤따랐다. 아무도 진서준을 신경 쓰지 않았다.진서준은 최문혁 팀이 전부 나가고 나서야 은침과 메스를 들고 서정훈의 옆에 섰다.다른 사람은 서
우성환과 반재윤은 심해윤이 화를 내자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우성환은 곧바로 앞으로 나서면서 심해윤에게 말했다.“심해윤 씨, 화를 푸세요. 진 선생님 인품은 제가 장담합니다. 진 선생님은 절대 그런 짓을 할 분이 아닙니다.”최문혁 조수는 그 말을 듣고 냉소했다.“그 말은 제가 거짓말했다는 건가요? 여기 있는 사람들 모두 구경하던 그 사람이 우리의 수술을 방해했다는 걸 증언할 수 있어요. 그 사람이 자꾸만 끼어들지만 않았어도 우리는 이미 환자를 치료했을 겁니다.”수술하러 들어간 사람들은 전부 최문혁의 사람이었기에 당연히 그의 편을 들었다.다들 진서준이 문제라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반재윤 씨, 뭐 더 할 말 있어요?”심해윤은 반재윤을 향해 화를 내며 소리를 질렀다.“20대 청년을 데려와서 신의라고 하다니, 내가 바보 같아 보였나요? 오늘 제 남편의 죽음은 안에 있는 그 사람뿐만 아니라 당신도 책임져야 해요!”옆에 이던 공윤석은 그 말을 듣자 무척 기뻤다. 동시에 그는 자기 친구 최문혁을 향해 엄지를 치켜들었다.공윤석은 심해윤이 혹시라도 잘못을 따질까 봐 걱정했었는데 이제 심해윤의 이목은 전부 반재윤에로 향했다.반재윤은 할 말이 없었다. 그는 수술실 안에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 알지 못했다.“그 사람은요? 당장 나오라고 해요!”최문혁은 곧바로 사람을 데리고 수술실 안으로 들어갔다.수술실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최문혁 등 사람들은 깜짝 놀랐다.그들은 진서준이 은침을 들고 서정훈의 몸을 찌르는 걸 보았다.“이 자식, 뭐 하는 거야? 어떻게 죽은 사람에게 그런 짓을 할 수 있어?”최문혁은 정신을 차린 뒤 화를 내며 고함을 지르더니 곧바로 부하에게 진서준을 끌어내라고 했다.그런데 진서준에게 가까워지자마자 다들 진서준의 영기에 부딪혀 날아갔다.밖에 있던 심해윤 등 사람들은 수술실에서 소리가 들리자 서둘러 안으로 들어갔다.“뭐 하는 거예요?”심해윤이 화가 난 목소리로 따져 물었다.“심해윤 씨, 저 사람이 지금 은침으로 죽은 부시장님의 몸
진서준의 가뿐한 두 마디에 현장에 있던 사람들은 고개를 들지 못했고 반박할 용기조차 없었다.특히 최문혁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반평생 의사 노릇을 해왔지만 심장에 문제가 있는 데다 심장이 이미 박동을 멈춘 환자를 살려내는 것은 처음 봤기 때문이다.제일 놀라운 것은, 사람을 살린 것이 20대 초반의 청년이다.그가 직접 목격하지 않았다면 아예 믿을 수 없었을 것이다.심해윤은 쥐구멍에라도 들어가고 싶었다. 방금까지 진서준을 잡아가라고 떠들었는데 결국 서정훈을 살린 사람이 진서준이었으니까!“진 신의님, 서 부시장님은 괜찮으신가요?”가장 먼저 정신을 차린 반재윤이 들뜬 표정으로 물었다.이 30분 동안 반재윤은 자신의 인생이 롤러코스터를 탄 것처럼 느껴졌다. 조금 전의 최저점에서 지금 최고점에 도달했으니까!“괜찮습니다. 의외의 사고가 발생하지 않는 한 사오십 년은 더 살 수 있습니다.”진서준이 덤덤하게 말했다.서정훈의 나이가 곧 50세인데, 사오십 년 더 산다면 100세까지 산다는 것이다.“심 처장님, 제가 진 선생님의 의술과 인품을 믿으라고 했잖아요.”반재윤의 말에 심해윤이 겸연쩍은 표정을 짓고 진서준에게 다가갔다.“죄송합니다, 진 선생님. 아까는 너무 조급해서 그랬습니다. 저의 무례한 행동을 용서해 주십시오.”부시장의 부인인 심해윤이 진서준이라는 청년에게 직접 사과하는 모습에 현장에 있던 사람들은 모두 놀랐다.진서준도 심해윤이 사람들 앞에서 사과할 만큼 패기가 있을 줄은 몰랐다.“사과는 받아들이겠습니다. 하지만 아까 제가 사람을 구할 때 누군가가 저를 모함하는 소리를 들었습니다.”진서준은 차가운 눈빛으로 방금 그에게 책임을 떠넘긴 최문혁의 조수를 바라보았다.진서준의 매서운 눈빛을 마주한 조수는 놀라서 덜덜 떨었다.“그게... 최 선생님이 그렇게 말하라고 시켰습니다.”조수는 거짓말할 엄두도 내지 못하고 최문혁을 불고 말았다.“너 헛소리하지 마! 나는 그렇게 시킨 적이 없어.”최문혁이 난처한 나머지 얼굴이 벌게지며 화를 벌컥 냈다.
“뭐라고? 불법적인 일이 우리 가게에서 일어난다고? 말도 안 돼.”성현도가 헛웃음을 지으며 말을 이었다.“넌 전신전 소속이잖아. 그런데 네 오빠인 내가 어떻게 법률을 어기는 일을 하겠어?”“그럼 이 사람들은 왜 부른 거야? 집단 폭력도 불법이거든.”성미영은 차가운 시선을 보이며 성현도와 따졌다.“미영아, 이건 내가 싸우려던 게 아니야. 저 녀석이 일부러 시비 걸러 온 거라고.”성현도는 진서준을 손가락질하며 말했다.“이놈이 일부러 우리 찻집에 난입해 행패를 부리고 상철을 두들겨 패서 머리에 혹이 다 나버렸어. 난 단순히 정당방위를 위해 부른 거라고.”성미영이 등장하자 성현도는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솔직히 실력만 놓고 보면 성현도는 성미영보다 한참 부족했다.게다가 성미영은 전신전 소속인지라 저 남녀가 군부 조직인 전신전을 적으로 돌릴 리 없었다.군대를 건드리는 순간, 무조건 좋은 결과는 있을 수 없었다.“진서준, 도대체 무슨 일이야?”성미영이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어라? 너희 둘이 아는 사이야?”성현도가 눈을 휘둥그레 뜨며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을 지었다.방금 내려놨던 마음이 다시 불안해지기 시작했다.“난 사람을 찾으러 왔어. 하씨 가문 하경범이 이 위층에 있다고 들었는데 진짜인지 가짜인지 모르겠어.”진서준이 손가락으로 위를 가리켰다.“그리고 또 하나, 저 위에서 불법적인 일이 벌어지고 있다고도 하더군. 그게 사실인지 아닌지도 모르겠어.”이 말에 성현도의 표정이 단숨에 험악해졌고 즉시 반박에 나섰다.“헛소리 마. 우리 가게는 단순한 찻집이야. 불법적인 일 따윈 없어. 근거없는 소문을 왜 털어놓고 난리야?”“미영아, 저 녀석한테 속지 마. 난 네 사촌 오빠야. 내가 그런 불법적인 짓을 할 사람이겠어?”성미영이 곧바로 진서준에게 물었다.“진서준, 너 증거 있어?”“직접 올라가 보면 다 알게 될 거잖아?”진서준이 가볍게 말했다.“오빠, 위층으로 가자.”성미영이 단호하게 말했다.“그, 그건 좀 곤란해. 위층엔 귀
순간, 장내는 숨소리조차 들릴 정도로 조용해졌다.모든 시선이 진서준에게 쏠렸고 사람들은 할 말을 잃어버렸다.다들 진서준을 그냥 얼굴만 반반한 남자라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진짜 고수였다.성현도의 부하 중 최고 실력자조차 상대가 되지 않았다.성현도의 얼굴은 시퍼렇게 질렸고 상철을 향해서 욕설을 날렸다.“쓰레기 자식, 이런 애송이 하나도 못 이겨?”부하가 지면 망신당하는 건 결국 성현도 자신이었다.이대로 체면을 구긴 채 끝낼 수는 없었다.이대로 넘어가면 앞으로 르벨 재벌 2세들 사이에서 조롱거리가 될 게 뻔했다.“이봐, 네 실력이 괜찮은 건 인정할게.”성현도가 싸늘한 얼굴로 말을 이었다.“근데 너 혼자서 백 명을 상대할 수 있어? 천 명은? 잘 들어. 내 부하는 수도 없이 많아. 너 같은 놈 하나 처리하는 데 전화 한 통이면 충분해.”진서준은 눈썹을 꿈틀거리며 여전히 같은 말을 반복했다.“다시 말하지만 난 그냥 하경범을 찾으러 온 거야. 그 녀석만 넘기면 오늘 일은 없던 걸로 해주지.”“없던 걸로 한다고?”성현도가 그 말에 어이없어 헛웃음이 나왔다.“너 지금 누굴 상대로 협상하려 드는 거야? 난 성씨 가문의 직계야. 날 건드리면 상대해야 할 건 나 하나가 아니라 우리 가문 전체라고.”그때, 밖에서 다급한 발소리가 들려오더니 곧이어 검은색 전투복을 입은 남자들이 우르르 몰려왔다.이 남자들은 전부 성씨 가문의 경호원이었고 실력도 만만하지 않았다.그것도 한둘이 아니라 무려 50명 이상이었다.한순간에 텅 비어 있던 로비가 사람들로 꽉 찼다.“저 자식 끝났네. 이 정도 성씨 가문 인원이라면 아무리 강해도 버틸 수가 없지.”“그러게 말이야. 이런 상황에서 살아남을 수 없잖아.”“왜 쓸데없이 성현도를 건드린 거지? 스스로 무덤을 판 거잖아.”구경꾼들은 이 광경에 각자 다른 감정을 보였다.누군가는 동정을, 누군가는 아쉬움을, 또 누군가는 짙은 흥미를 보였다.“사연아, 넌 좀 쉬어. 이놈들은 내가 처리할게.”진서준이 앞으로 나섰다.
얼마 지나지 않아 키가 거의 2미터에 달하는 거구의 사내가 찻집 안으로 들어왔다.남자는 그냥 서 있기만 해도 엄청난 위압감이 느껴졌다.“상철아, 저놈 다리 하나 부러뜨려서 내던져.”성현도가 진서준을 가리키며 명령했다.“알겠습니다.”상철은 간단하게 대답하고는 진서준에게 성큼성큼 다가갔다.“서준아, 내가 할게.”허사연의 눈에는 불꽃 같은 전투욕이 타올랐다.“조심해. 저 녀석은 횡련 종사야. 그렇게 만만한 상대가 아니야.”진서준이 조용히 귀띔했다.“알았어. 설령 못 이긴다고 해도 어차피 네가 있잖아?”허사연이 장난스럽게 웃었다.진서준이 곁에 있는 한, 허사연은 아무것도 두렵지 않았다.“이봐, 사내자식이 여자 뒤에 숨는 게 말이 돼?”상철이 눈썹을 추켜세우며 불쾌한 표정을 지었다.“이봐, 껑충이. 여자를 얕보지 마. 일단 이기고 나서 말해.”허사연이 상철을 도발했다.“아가씨, 그런 기생오라비 말고 날 따르지 그래? 밤마다 널 천국으로 보내줄 수 있는데?”상철이 음흉하게 웃었다.“죽고 싶어 환장했구나.”얼굴이 싸늘해진 허사연이 주먹을 날렸다.강렬한 펀치가 공기를 가르며 폭발음을 일으켰고 그 위력은 철판도 뚫을 수 있을 정도였다.하지만 상철은 비웃듯 입꼬리를 올렸다.“내가 가만히 서 있어도 넌 날 어쩔 수 없어.”“닥쳐!”허사연이 분노에 차 주먹을 그대로 상철의 얼굴로 내리꽂았다.상철은 일부러 머리를 숙이며 대머리 정수리로 받아냈다.쿵!둔탁한 충돌음이 울려 퍼졌다.주먹이 상철의 머리를 강타했으나 대머리는 꿈쩍도 하지 않았고 오히려 허사연이 몇 걸음 물러섰다.순간 손에 뜨거운 통증이 밀려왔고 뼈가 부서질 것 같았다.손을 확인하자 하얀 피부였던 손등이 새빨갛게 부어올랐다.상철은 자기 머리를 한번 쓸어내리더니 빙그레 웃었다.“아가씨, 이제 내 실력을 알겠지?”그 모습에 허사연의 승부욕이 다시 불타올랐고 콧방귀를 뀌며 다시 달려들었다.이번에는 다리를 높이 들어 올려 상철의 머리를 내려찍었다.‘머리가 단단하다고 자랑하
이렇게 예쁘고 섹시한 여자가 싸움 실력이 이렇게 대단할 줄은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다.완전 여성판 이소룡이었다.“너, 너희들 정말 너무 대담한 거 아니야? 여기가 어디인지 알기나 해? 어디서 대놓고 싸움질이야?”종업원은 순간 놀란 뒤 분노에 찬 얼굴로 진서준와 허사연을 가리켰다.찻집이 문을 연 이후로 이렇게 난동을 부리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고 진서준과 허사연이 첫 사례였다.주변의 구경꾼들도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싸움 좀 하면 뭐해? 여긴 성씨 가문의 구역이야. 성씨 가문에서 한마디만 하면 저 남녀는 오늘 밤중으로 사라지겠지.”“어휴, 저 여자 너무 아까워. 저렇게 예쁜데 왜 죽지 못해서 안달이지?”“여자는 살 수도 있겠지만 남자는 무조건 죽을걸.”사람들은 저마다 수군거리며 이미 진서준과 허사연의 결말을 예상하는 듯했다.“그럼 네 말대로라면 내가 널 때린다 해도 얌전히 맞고 있어야 한다는 거야?”허사연은 눈썹을 꿈틀거리며 종업원에게 다가갔다.“오지 마!”종업원은 겁에 질려 연신 뒷걸음질 쳤다.“어떤 미친놈이 내 구역에서 소란을 피우는 거야?”그 순간, 2층에서 한 사람이 내려왔다.모두가 일제히 시선을 돌려 그 사람을 확인하자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성현도가 오늘 여기 있었네?”누군가 그 청년을 알아보았다.“저 둘 끝장났네. 성현도는 악명 높은 냉혈한이야.”그 청년은 바로 찻집의 사장인 성현도였다.성현도는 르벨 재벌 2세 사이에서 유명한 인물이었다.친구에게는 무조건 의리를 지키지만 적에게는 무자비했다.성현도의 고문 방법은 수도 없이 많았고 게다가 무인으로서 무공 실력도 상당했다.“사장님, 저 남녀가 와서 난동을 부렸어요.”종업원은 성현도를 보자마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사장이 나온 걸 확인한 허사연은 주먹 한 방에 종업원을 기절시켜 버렸다.“뭐야?”성현도의 눈이 가늘어졌고 표정이 험악해졌다.자기 앞에서 대놓고 부하를 때리다니, 이건 너무나도 명백한 도발이었다.“아가씨, 우리 처음 보는 사이 맞지? 우리
그리고 오후 2시가 되자 진서준은 허사연을 데리고 조호가 말한 천국찻집으로 향했다.겉모습만 보면 이 찻집은 진짜 전통찻집 같았고 규모도 꽤 컸다.하지만 막상 안에 들어가 보니 전혀 다른 세상이 펼쳐져 있었다.1층과 2층까지는 정말 평범한 찻집처럼 꾸며져 있었고 누가 봐도 이상한 점을 찾기 어려울 정도였다.하지만 3층으로 올라가려면 회원권이 있어야 하거나 사장이 직접 허락한 사람만 출입할 수 있었다.“손님, 아가씨, 이쪽으로 안내해 드리겠습니다.”진서준과 허사연이 차를 마시러 온 줄 안 종업원이 빠르게 달려와 안내하려 했다.“그럴 필요 없어. 난 하경범을 찾으러 왔거든.”진서준이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네?”종업원이 순간 얼어붙었다.“혹시 하씨 가문의 하 도련님을 말씀하시는 겁니까?”“맞아.”진서준이 고개를 끄덕였다.“손님은 누구신지...”종업원이 신중하게 물었다.진서준은 잠시 생각하다가 말했다.“그냥 복수하러 왔다고 전해.”그놈 아버지라고 하는 건 자기를 모욕하는 것과 같았고 친구라고 하기도 기분이 더러웠다.그 말에 종업원의 얼굴색이 확 변했다.“손님, 여기서 장난치지 마세요.”하경범은 르벨에서 유명한 재벌 2세였다.이 찻집의 사장과도 막역한 사이였고 여기서 일하는 직원이라면 그 사실을 모를 리 없었다.“왜? 못 믿겠어?”진서준이 피식 웃으며 되물었다.“손님, 하 도련님에게 복수하려던 사람은 단 하루도 살아남지 못했습니다.”종업원이 경고하듯 말했다.“그런 농담은 함부로 하는 게 아닙니다.”그 말을 듣자 진서준은 담담하게 말했다.“그럼 이렇게 전해. 그 하경범이 두들겨 맞고 나자빠지게 했던 진서준이 왔으니 당장 기어 나오라고 말이야.”진서준의 뻔뻔한 태도에 종업원은 어이가 없었다.“좋습니다. 손님이 그렇게 죽고 싶다면 제가 기꺼이 도와드리죠.”종업원은 바로 무전기를 꺼내 들었다.“문제 발생했습니다. 난동자가 있습니다.”쿵! 쿵!급한 발소리가 들리더니 곧이어 건장한 남자 스무 명이 들이닥쳤다.전부 검은
진서준과 허사연은 차를 타고 조호의 회사로 향했다.이 회사는 그냥 겉치레일 뿐, 진짜 돈이 들어오는 곳은 유흥업소들이었다.유흥업소를 얕잡아보면 안 된다.운 좋게 돈 많은 도련님들이라도 걸리면 하룻밤에 수억 원이 순식간에 손에 들어오게 될 것이다.“진서준 씨!”진서준이 들어서자 조호는 황급히 자리에서 일어나 공손한 태도를 보였다.조호는 진서준 옆에 있는 허사연을 힐끗 쳐다본 뒤 고개를 숙이고 감히 더 볼 엄두도 내지 못했다.“잡담은 그만하고 하경범을 잡아가는 제일 좋은 타이밍만 말해.”진서준이 직설적으로 물었다.이 말에 조호는 속으로 크게 놀랐다.“매일 오후마다 하경범은 천국찻집이라는 곳에 갑니다.”조호는 재빨리 대답했다.“보통은 경호원 몇 명만 데리고 가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얼씨구? 저런 인간이 매일 차나 마시러 간다고?”진서준은 의외라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그게... 진서준 씨, 사실 그곳은 이름만 찻집이지 실제로는...”조호는 옆에 여성이 있다는 걸 의식해서 말을 흐렸지만 진서준은 그 뜻을 단번에 알아챘다.“알겠어.”진서준이 고개를 끄덕였다.차를 마시는 곳이 아니라 그냥 인기 많은 인터넷 셀럽이 가득한 고급 유흥업소일 것이다.“진서준 씨, 듣자 하니 그 찻집의 주인은 성씨 가문의 사람이라고 합니다. 진짜로 움직이실 거라면 하경범이 이동 중일 때를 노리는 게 좋을 겁니다.”조호가 조심스럽게 조언했다.“응? 성씨 가문이 이런 사업도 해?”진서준은 흥미롭다는 듯 눈썹을 꿈틀거렸다.진서준은 오영수에게서 성미영에 대한 정보를 들은 적이 있었다.정의로운 성격의 성미영이 자기 가문에서 이런 유흥업소를 운영하고 있다는 걸 알게 되면 절대 가만히 있지 않을 터였다.“네, 듣기로는 성씨 가문의 한 직계 후손이 운영한다고 합니다. 여자에 미쳐 있는 놈이라 르벨의 돈 많은 도련님들과 꽤 친분이 깊다고 하더군요.”조호는 본인이 아는 정보를 전부 쏟아냈다.“좋아, 대충 알겠어.”진서준이 고개를 끄덕였다.조호의 회사를 나온
진서준이 허사연의 캐리어를 들어주며 옆방으로 걸어갔다.그 뒷모습을 보며 도지아는 부러움이 가득한 눈빛을 보냈다.인간은 원래 모여서 사는 걸 선호하는 동물이다.사회를 벗어나서 혼자 살아가는 건 생각보다 훨씬 힘든 일이었다.가족도 친구도 없이 너무 오래 지내다 보면 결국 감정 없는 시체나 다름없는 존재가 되어버린다.그렇게 되면 사람과 짐승의 차이가 없어질 것이다.“어제 전화할 때 그랬었지? 이번에 너 자기 출신을 찾으러 온 거라고.”호텔 방으로 돌아온 후, 허사연이 호기심 가득한 얼굴로 물었다.“너 원래 경성 진씨 가문 사람이잖아?”“나도 그렇게 알고 있었어. 그런데 할아버지가 예전에 말해주셨어. 사실 우리 아버지는 어릴 때 길에서 주워 온 아이였다고.”진서준은 허사연에게 숨길 생각이 없었다.허사연은 진서준이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었다.허사연이라면 이 비밀을 절대 밖으로 흘리지 않으리란 확신이 있었다.“뭐라고? 아버님이 주워 온 아이라고?”허사연이 깜짝 놀랐다.“그래. 하지만 이 사실을 아는 건 나뿐이야. 가족 중에서도 할아버지가 나한테만 알려주셨지.”진서준이 고개를 끄덕였다.“얼마 전, 오영수가 내 등에 있는 용을 보고는 내가 용맥의 일족이라고 했어. 그래서 오영수를 따라 여기 와서 오영수 셋째 삼촌에게 내 출신에 관해 알아보려 했던 거야.”“네 등에 용이 있다고? 난 한 번도 본 적 없는데?”허사연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그동안 둘이 알몸으로 함께한 시간도 적지 않은데 허사연은 한 번도 본 기억이 없었다.“내가 체내 혈기를 모을 때만 그 용이 나타나거든.”진서준이 설명을 이어갔다.“그런데 오영수 삼촌이 아직 돌아오질 않아서 일단은 여기서 며칠 기다려야 해.”“아니, 그럼 오씨 가문에서 널 안 재워줬어?”허사연이 의아해했다.명문대가인 오씨 가문에 빈방이 없을 리가 없었다.“그날 오영수를 찾아갔는데 마침 오영수 할아버지가 위중했어. 그리고 그 집안엔 그 어르신을 그냥 보내고 싶어 하는 사람이 있었지.”진서준이 담담하게
“진짜 예쁜 새색시 숨겨놓고 있었네?”허사연이 의미심장한 표정을 지었다.누구라도 자기 남자 방에 예쁘고 몸매가 완벽한 여자 하나가 같이 있는 걸 보면 의심 안 할 수가 없었다.게다가 지금은 아침이었다.설마 이 여자가 아침에 막 찾아온 건 아니겠지?“사연아, 오해야. 내가 제대로 설명할게.”진서준은 머리가 띵해졌고 뇌가 지진이라도 난 것 같았다.“아가씨, 오해하지 마세요. 어제 저랑 진서준이 같은 방에서 잔 건 맞지만 진짜 아무 일도 없었어요. 저 밤새 한숨도 못 잤다니까요?”도지아가 황급히 해명에 나섰다.“네? 밤새 안 자고도 아무 일 없었다고요?”허사연이 눈썹을 꿈틀거리며 되물었다.“설마 밤새 불태우느라 못 잔 건 아니겠죠?”허사연의 농담과 진담이 뒤섞인 말에 진서준은 헛웃음만 나왔다.“사연아, 이쪽은 도지아야. 우리 진짜 그냥 친구야. 일단 들어와. 천천히 설명할게.”허사연이 방에 들어오자 진서준은 서로에게 소개했다.그러고는 이 방에서 일어난 상황을 설명했다.“도지아는 황예은이 소개해 준 환자야. 다리 치료를 부탁받았거든. 종아리를 봐봐. 이틀 전에 내가 직접 발라준 연고가 있어.”허사연이 내려다보자 확실히 연고가 발라져 있었다.“그리고 도지아가 밤새 안 잔 건 원기를 수련하느라 그랬던 거야. 너도 예전에 수련한다고 며칠씩 안 잔 적 있잖아?”허사연은 오해가 풀리자 그제야 빙그레 웃었다.“내가 뭐 어쨌다고 그렇게 호들갑이야?”“혹시라도 오해할까 봐 그러는 거잖아.”진서준이 빠르게 대답했다.“뭐야? 내가 그렇게 의심 많고 질투 많은 여자로 보여?”허사연이 눈을 가늘게 떴다.“아, 아니지. 우리 사연은 누구보다 속이 넓은 부드러운 여자지.”진서준이 급히 정정했다.“됐어, 너 겁먹은 거 너무 귀엽다.”허사연이 피식 웃었다.“넌 여기 좀 쉬고 있어. 내가 방 하나 잡고 올게.”진서준은 더 머뭇거릴 틈도 없이 벌떡 일어나 나가 버렸다.진서준의 뒷모습을 보며 허사연은 그제야 웃음을 터뜨렸다.“도지아 씨, 진서준이
“내가 가면 안 돼?”사실 진서준은 거절하려 했었다.르벨은 안개가 짙게 깔린 늪지대 같은 곳이라 진서준조차도 어디에 함정이 있을지 가늠하기 어려웠다.그러니 허사연이 온다면 다칠 가능성이 컸다.하지만 거절하면 허사연이 상처받을 게 뻔했다.“당연히 되지. 지금 위치 보낼게.”진서준은 단호하게 말하며 위치를 보냈다.자기 여자를 지킬 자신도 없으면서 강자들을 상대한다는 건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자기야, 잘 자.”허사연이 애정 가득한 목소리로 말했다.“너도 일찍 자.”진서준이 다정하게 답했다.전화를 끊고 나니 진서준의 졸음이 싹 가셨다.진서준은 창가로 다가가 이 화려한 도시를 내려다봤다.“오씨 가문, 안씨 가문, 하씨 가문... 너희가 무슨 꿍꿍이를 꾸미든 난 전부 박살 낼 거야. 이번엔 반드시 나와 아버지의 정체를 밝혀내고 말겠어.”진서준의 눈빛이 날카롭게 빛났다.그렇게 별다른 사건 없이 밤이 지나갔다.다음 날 아침.진서준이 막 눈을 뜨자마자 도지아의 흥분한 외침이 들려왔다.“진서준, 됐어. 나 생겼어!”도지아는 눈 밑이 시커멓게 변해 있었는데 밤새 잠을 자지 않은 게 분명했다.진서준이 눈썹을 꿈틀거리며 물었다.“너 아직 처녀 아니었어? 대체 어떻게 임신한 거야?”“미친놈아, 임신은 개뿔, 무슨 헛소리야?”도지아는 얼굴이 빨개지며 진서준을 노려봤다.“그럼 왜 아침부터 난리야?”진서준이 되물었다.보통 사람이라면 이렇게 아침부터 흥분해 날뛰지 않을 것이다.“어제 네가 준 수련법 기억나지? 나 벌써 원기를 형성할 수 있게 됐어.”자기가 대단하다고 여긴 도지아는 자랑스럽게 선언했다.고작 하룻밤 만에 원기를 형성한 건 확실히 대단한 일이었다.“뭐? 그렇게 빠르다고? 너 타고난 천재 맞네?”진서준이 다소 의아한 표정을 보였다.보통 무인은 원기를 익히는 데만 최소 1년이 걸리는데 그것도 매일 꾸준히 수련할 경우에만 발생하는 일이었다.심지어 재능 있는 자들도 한두 달은 족히 걸린다.그런데 도지아는 단 하룻밤에 이 어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