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준은 줄곧 유월영이 가장 이해하지 못했던 사람이었다.그녀는 용의주도한 비서였고, 사회에서 오랜 세월을 사람들을 겪어보면서, 각양각색의 사람들을 많이 겪어봤었다. 그래서 보통 한 끼 식사 시간이면, 그녀는 상대방을 거의 다 꿰뚫어 보고 그 사람에게 맞춰 줄 수 있었다. 연재준과 같이 지낸 지 3년이 지났지만, 그녀는 여전히 그가 무슨 생각하는지 알 수 없었다. 그녀는 자신이 그에게 단지 있으나 마나 한 존재와 같아, 그녀가 떠나도 그는 눈 하나 깜작하지 않을 줄 알았다. 하지만 그녀가 떠나자 그는 오히려 거의 집착하다시피 그에게로 돌아오도록 압박했다. 그녀는 그의 주위에 여자들이 무수히 많아, 그가 원하는 모든 것을 만족시킬 수 있다고 생각했었지만, 그는 그녀에게만 중독되어 있고 그녀만을 원한다고 했다.그녀는 그가 그녀에게 느끼는 감정이 기껏해야, 정복 욕구나 소유욕 그리고 약간의 지기 싫은 마음일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렇다기에 그는 또 그녀를 데리고 불꽃 보러도 가고 그녀에게 새해 인사도 해주었다. 자기라고 부르기도 하고, 다시 한번 시작해 보자고 하기도 했었다...“난 백유진을 좋아하지 않아.”지금 그는 또 그녀에게 백유진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말했다.“...”유월영은 단념하듯 방바닥에 누웠다. 하얀 카펫 위로 갈색 긴 머리가 굽이굽이 늘어뜨려서 마치 뒤죽박죽된 그녀의 마음과 영혼과도 같았다. ‘좋아하지 않는다고?’그는 백유진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했다. 유월영은 본능적으로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녀는 믿지 않았고 믿을 수 없었다. 연재준은 그녀의 턱을 감싸 안아 더는 흔들지 못하게 하였다. 그가 쉰 목소리로 말했다.“내 곁에 그녀가 설 수 있었던 거 다 네가 먼저 날 화나게 했기 때문이야.”“내가 뭘 화나게 했어요?”그녀는 자신이 어떻게 그를 화나게 할 수 있는지 이해가 안 갔다. 그럴 능력도 없고 그럴 자격도 없었다...지금은 마치 그가 그녀를 추앙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유월영은 자신이 그럴 능력이 없다고 생각했다. 하물며
“...”유월영은 입술을 깨물다가 입을 열었다. “재준 씨, 나는 당신이 백유진에 대해 아무 감정이 없다는 걸 믿지 않아요. 그녀를 좋아하는 게 아니라며, 어떻게 지금까지 그녀를 감싸고 있을 수 있어요? ”“우리 엄마, 백유진의 짓 때문에 인공심장으로 연명하고 있어요. 거기다 백유진 때문에 머리도 다쳤어요... 나 너무 겁이 나요. 다음에 집에 가면 엄마가 날 못 알아볼까 봐. 아니 다음에 집에 가면 엄마가 없을까 봐 나 너무 겁이 난다고요!”"나에게서 떨어져요. 지금 재준 씨를 보면, 내가 매번 백유진을 찾아가서 따질 때마다 그녀의 앞을 가로막고 있던 당신이 생각나요. 당신은 그녀를 감싸 돌고, 그녀를 그렇게 편애했어요. 당신은 나를 좋아한다고 말하지만, 누군가를 좋아하는 것은 그런 모습이 아니에요. 정말 그렇지 않다고요. ”연재준은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녀의 눈가에 눈물이 맺히는 걸 발견했다. 정말 억울했다. 그리고 그녀가 그를 이런 눈빛으로 본 건 이번 처음이 아니었다. 지난번 용주사건 때도, 백유진은 유월영이 밧줄을 잡아당겨서 사람들이 다치게 했다는 누명을 씌웠다. 그는 백유진의 편을 들어 그녀를 혼냈었다... 3년 동안, 그는 사실 그녀에게 한 번도 심한 말을 한 적이 없었으며 그때만 그녀에게 입을 다물라고 강하게 말했다. 그날도 유월영은 연재준을 그런 눈으로 바라봤지만 그는 신경 쓰지 않았다. 그때 이후로 그녀는 아무리 고생하고, 힘든 일을 당해도 다시는 그렇게 그를 바라본 적이 없었다. 우는 아이 떡 하나 더 준다고 했던가. 그녀는 우는 방법을 모르는 게 아니다. 그저 그녀가 울지 않는 건 울어도 소용이 없다는 걸 일찍 알았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오늘 그녀가 또 그런 눈으로 자신을 쳐다보자, 연재준은 목이 막혀왔다. 그는 그녀의 허리를 안으며 말했다.“거짓말한 게 아니야, 난 감싸주지 않았어.”“그동안 백유진은 교통사고로 병원에 입원해 있어서 다른 일에 신경 쓸 겨를도 없었고, 당신 아버지가 감옥에서 싸우셨다는 것을 알 길
유월영은 입술을 깨물었다. “서씨 가문이 현우 씨에게 무언가를 약속했나요?”신현우는 암묵적으로 동의했다.상인은 끊임없는 교환 속에서 이익을 창출한다. 서씨 가족이 신현우의 마음을 충분히 움직일 수 있는 조건을 제공했으니 신현우가 자연스럽게 합의를 권유하는 행렬에 가입하게 되었다.신현우도 충분히 인간미가 넘쳤다. 그는 상사의 신분으로 유월영에게 합의를 강요하지 않았을뿐더러 그녀에게 혜택까지 마련했다.그 혜택은 5%의 급여 인상뿐만 아니라 유월영이 최근에 회사 내에서 보인 형편없는 업무 내용 때문에 해고되지 않을 것을 간접적으로 보장하는 사항도 포함되어 있었다.유월영은 크게 숨을 내쉬었고 서씨 가족의 행동에 가슴이 뭉클했다. 서씨 가족은 서정희를 구하기 위해 사각지대가 없는 모든 면에서 때로는 강경한 태도로, 때로는 회유하는 태도로 유월영을 전면적으로 침투시켰다. 세상 그 어느 부모라도 다 이렇게 전력을 다할 것이다.“현우 씨, 제가 다시 생각해 볼게요.”전화를 끊고 유월영은 면을 다 먹었다.그러고는 방으로 돌아가는 길에 로비를 지나가면서 객실 서비스에 환자가 먹을 수 있는 담담한 음식을 보내달라고 주문했다.엘리베이터에 들어가자마자 유월영에게 또 전화가 걸려 왔다. 이번에는 신연우였다.반 달 전, 신연우는 유월영에게 자기가 한 달 동안 비밀 실험을 진행할 것이라고 알렸다. 그래서 유월영이 메시지를 보내면 자기가 받을 수 있지만 늦게 답장할 수 있어 긴급한 일이 발생하면 주저하지 말고 신현우에게 직접 도움을 청하라고 신신당부했었다.그래서 이번에 유월영한테 문제가 생긴 것은 신연우가 미처 알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이 시각에 전화를 걸어온 것을 보면 아마도 알게 된 것 같았다.유월영은 엘리베이터에서 나와 복도를 걸으며 전화를 받았다. “네, 연우 씨.”그녀가 예상한 대로 신연우는 방금 서울에서 일어난 일을 알게 된 것 같았고 처음으로 건넨 말은 유월영에 대한 사과였다.“월영 씨, 미안해요.”유월영은 이 사과가 약간 우스꽝스러웠다.
전화를 끊고 유월영은 그대로 벽에 기대어 있었다.예전에 레온 정원에서 온천을 즐기던 중, 유월영은 서정희한테서 현시우가 국내 한 회사를 인수해 우회 상장이라는 경로를 통해 그 동안 해외에서의 산업을 국내로 이전할 것이라고 말한 것을 들은 적 있었다.당시에는 이 사안을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았지만 방금 신연우의 얘기를 듣고 보니...설마 현시우가 진짜 외국에서 돌아오려고 하는 건가?유월영은 뒤통수를 벽에 기댄 채 고개를 살짝 들어 작년 섣달 그믐날을 떠올렸다.연재준의 마음에 쭉 두고 있었던 지난해 섣달 그믐날에 그녀도 현시우를 만났다.신연우는 최근 몇 년 동안 가끔 국내로 돌아오곤 했으며 유월영과도 여러 번 만난 적 있었다.유월영의 눈빛은 추억 속에 잠겼고 너무 감성에 젖어 있었던 나머지 문 앞에 있는 연재준의 존재를 눈치채지 못했다.연재준은 유월영이 뭔가를 사무치게 그리워하는 표정을 보며 이 순간 그녀가 도대체 어떤 추억 속에 빠졌는지 알고 싶었다.잠시 후, 유월영의 휴대폰이 다시 울렸다. 이번에는 이승연이었다.유월영은 전화를 받았다. “승연 언니.”이승연이 말문을 열었다.“서씨 가족이 방금 나에게 연락했어. 너랑 점심 식사를 같이 하자고 그러더라.”유월영은 담담하게 거절했다. “난 그 사람들과 함께 식사할 수 없어.” 그렇다고 해서 유월영이 서씨 가족을 만나는 것을 거절하는 것은 아니었다. “오후 3시로 약속을 잡자.”유월영이 만남에 동의하자 이승연은 되려 약간 놀랐다. “너, 생각이 바뀌었구나?”유월영은 눈을 내리꽂으며 말했다. “승연 언니, 합의서를 나 대신 준비해 줄 수 있어? 금액은 30억 원으로 적어놔. 그들이 이 금액에 동의하면 내가 그들과 합의할게.”이승연은 그 말에 살짝 의아해했다. 어젯밤 유월영은 분명히 합의하는 데 강한 반대의 의지를 보여줬는데 어떻게 갑자기 마음을 고쳐 먹은 걸까?하지만 유월영이 합의하는 데 동의하고 이 사안에 마침표를 찍는 것도 좋은 일이다. 이승연은 알았다고 말하고 전화를 끊었다
호텔 방 안에서 연재준은 전화를 걸어 사람을 시켜 바꿔 입을 옷을 준비하라고 지시했다.연재준의 이 병은 갑자기 발작한 것이 아니었다.일찌감치 봉현진에서 살짝 불편함을 느꼈고 유월영 때문에 밤새도록 서울에 와 피곤한 데다 설상가상으로 폭설까지 맞자 결국 열이 나고 말았다.연재준은 전신 거울을 보며 셔츠를 입었고 긴 손가락으로 셔츠 단추를 하나씩 끼워 넣었다. 입체적인 얼굴은 차가운 기운이 감돌았고 유월영 앞에서 보였던 그 무례한 모습은 감쪽같이 사라졌다.그렇다. 연재준이 어젯밤 유월영의 방에서 밤을 보낼 수 있었던 건 그 무례함과 뻔뻔함 때문이었다. 사실 유월영은 연재준을 완전히 용서하지 않았다.과거에 있었던 그 일들 때문에 유월영은 연재준이 무척이나 거북했다. 그들의 화해도 한 장의 종이처럼 가냘팠고 힘이 없었다. 새해 첫날에 겨우 쌓은 호감은 백유진 덕분에 깔끔하게 파괴되었고 유월영은 지금 다시 연재준에게 높은 가슴의 담벼락을 세웠다.정말 인과응보가 따로 없다.연재준은 짜증을 내며 외투를 입고 방을 나와 엘리베이터를 눌렀다.그리고 마침 위층에서 내려오는 이혁재를 만났다.이혁재는 휴대폰을 내려놓고 약간 놀란 듯이 말했다. “재준아, 너 신주시로 돌아갔지 않았어?”연재준은 그 말에 미간을 찌푸리며 대답했다.“어제 왔어.”이혁재는 친구의 썩 좋지 않은 인상을 살펴보며 물었다.“너 정말 병들었어? 병원에 가봤어?”연재준은 포커페이스를 유지한 채 대답했다.“이젠 다 나았어.”이혁재는 뭔가를 생각하는 듯한 표정으로 그를 자세히 살펴보았다.연재준은 미동도 하지 않는 소나무처럼 우뚝 서서 우아한 자태를 뽐냈다.이혁재는 그제야 눈앞의 상황을 대충 파악하고 눈썹을 치켜올리며 말했다.“아... 그렇구나, 넌 일부러 아픈 척 핑계를 대고 유 비서와 화해하려고 온 거구나? 참 잘했네, 재준아. 넌 이제 하다 하다 불쌍한 컨셉까지 잡고 달려드는구나.”그는 연재준을 20년 넘게 알고 지냈지만 연재준이 이 정도로 비참한 수단까지 이용하는 것을 본 적
유월영은 자리를 바꾸기 귀찮아서 그냥 점심때 이승연과 식사한 식당에서 서씨 가족과 만났다. 다만 실내 식당에서 실외의 양산 아래로 이동한 것뿐이었다.새해 연휴가 끝나고 모두가 정상적인 업무 진행 상태로 돌아왔다. 조금 적막해진 거리를 보며 유월영은 갑자기 새해 밤에 연재준과 손을 잡고 북적이는 거리를 걸으며 연극을 보기 위해 연극관에 갔던 일을 떠올리며 정신을 놓고 있었다.마침내 맞은편의 의자가 누군가에게 밀려내자 유월영은 다시 정신을 차렸고 무의식중에 시선을 맞은편에 돌렸다.하늘에서 눈이 사뿐히 내리고 있었고 자리에 앉은 사람은 연재준이었다.어젯밤과 이른 아침의 병에 찌든 창백한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고 깔끔하고 비싼 정장으로 갈아입고 있었다. 옷깃부터 소매까지 세부적으로 정교했고 잘 다리미질 되어있는 상태를 보니 언제나 높은 곳에서 위풍당당하게 내려다보던 평소의 연재준이었다.유월영은 잠시 멈칫하다가 연재준에게 질문했다. “재준 씨가 굳이 아픈 몸을 끌고 나를 위해 참전했나요? 그 진심은 고맙지만 난 이 변호사만 있으면 충분해요. 이 변호사는 방금 공증 사무소에 서류를 가지러 가서 곧 돌아올 것이에요. 별다른 일이 없다면 신주시로 돌아가세요. 연말에 회사가 얼마나 바삐 돌아가나요.”예전에 연재준과 함께 있을 때 매년 연말은 연재준에게 가장 바쁜 시기였다. 그렇게 바쁜 시기에 이따위 보잘것없는 일에 시간을 낭비할 여유가 없었다.“하정은은 업무에서 큰 실수를 저지른 적이 없었으니 부디 해고하지 마세요. 언젠가는 당신에게 꼭 도움이 될 거예요.”연재준은 유월영이 주동적으로 말문을 떼자 살짝 입꼬리를 치켜올렸다. “병든 내 몸 상태를 걱정해? 아니면 회사를 걱정해? 아니면 내가 너무 빡세게 일할 걸 걱정해?”유월영은 커피를 들며 유유하게 말했다. “난 다만 나 때문에 하정은에게 피해가 가는 게 괴로울 뿐이에요.”연재준은 담담하게 말을 이었다.“딴 사람을 신경 쓰는 건 이렇게 잘 하면서 왜 자신을 신경 쓰지 않는 거야? 분명히 합의하고
한 손으로 사인하고 한 손으로 수표를 건넨 다음 공증까지 받았으니 이 일은 여기서 완벽하게 마무리되었다. 서씨 가족이 떠난 후, 윤영훈은 순식간에 유월영 쪽 사람으로 전환하여 실실 웃으며 제안했다. “우리 근사한 곳을 찾아 제대로 축하 파티를 열죠. 오늘 밤은 내가 살게요. 그냥 플로팅 라이프로 가죠.”유월영과 이승연은 모두 정중하게 사양했다. 이렇게 세 명이 함께 놀러 간다니? 아무리 봐도 이상하고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었다.“아, 사람이 너무 적어서 그래요?” 윤영훈이 휴대폰을 꺼내 들었다. “별거 아니에요. 내가 몇 명 더 부를게요!”상황을 잘 모르는 사람이 그의 이런 태도를 보면 윤영훈이란 사람은 유월영이 서씨 가족에 파견한 잠입 요원인 줄 알겠다. 어마어마하게 큰 금액의 합의금을 지급하고도 이렇게 즐거워하며 축하 파티를 준비하려는 사람이 있을 수 있을까?하지만 윤영훈이 이 정도로 준비를 철저하게 하자 유월영과 이승연도 따라갈 수밖에 없었다. 그냥 윤영훈과 그의 친구들 식사 자리에 잠깐 참석하는 걸로만 생각하기로 했다.윤영훈이 부른 사람은 30대쯤 되는 성숙하고 세련된 남자였다. 유월영은 그 남자를 몰랐지만 이승연은 그를 보자마자 멈칫하며 온몸이 굳어졌다.윤영훈이 자연스럽게 그 남자를 소개했다. “이분은 오성민이라고 해요. 내 친구예요. 처음에는 이 친구에게 서정희 사건을 맡길 생각이었는데 이젠 그럴 필요가 없으니 함께 식사나 하며 그동안 쌓였던 좋지 않았던 걸 풀어보죠.”오성민은 잘생긴 외모를 갖췄지만 관상을 보면 속이 아주 깊어 쉽게 파악할 수 없는 사람임이 틀림없었다. 오성민은 유월영, 이승연과 차례로 악수했다.오성민이 이승연의 손을 잡을 때 조용히 몇 초 동안 더 잡고 놓지 않았고 이승연이 살짝 움직이자 그제야 웃으며 손을 놨다.그들은 둥근 테이블을 중심으로 주위에 앉았고 윤영훈은 다리를 꼬고 느긋하게 말했다. “오 변호사는 서남 지역에서 유명한 형사 변호사예요. 이 변호사는 내 친구를 알고 있었나요?”이승연은 담담한
식사가 거의 끝날 무렵, 유월영의 집에서 가정부가 전화를 걸어와 유월영은 방 밖으로 나가 전화를 받았다.가정부는 유현석이 최근 술에 빠져 매일 술에 절어있어 이영화가 도무지 그를 설득할 수 없다고 했다. 이대로라면 유현석의 몸 상태가 악화할 수도 있을 것 같아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유월영에게 묻는 것이었다.유월영이 봉현진에서 떠나는 그날부터 유현석의 상태가 조금 이상하다는 것을 눈치챘는데 술에 빠지는 정도까지 발전할 줄이야.유월영은 미간을 찌푸리며 고민에 빠졌다. 이영화가 유현석을 챙기느라 그녀의 몸이 다시 불편해질까 봐 불안했다.“내일 아버지가 깨어나면 나한테 전화해요. 내가 아버지와 얘기해 볼게요.”가정부는 알았다고 대답했다.유월영이 전화를 끊고 방으로 돌아가 보니 전화하는 짧은 순간에 방에 이승연과 하정은만 남아 있었고 나머지 세 남자는 모두 사라졌다.“남자들은 다 어디에 갔어?”이승연이 간단명료하게 대답했다. “한 사람은 담배 피우러, 한 사람은 전화 받으러, 한 사람은 화장실에 갔어.”유월영은 자기 자리로 돌아가 두 빈자리를 넘어 하정은에게 눈길을 돌리며 물었다.“넌 방금 신주시에서 돌아왔어?”하정은은 능수능란하게 대답했다. “그래, 난 먼저 유진 씨를 스워시로 가는 비행기에 모셔다드리고 여기 서울로 왔어.”백유진을 스워시로 보내다니? 유월영은 살짝 충격을 받았다. 하정은이 그녀에게 속삭였다. “유진 씨는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것 같아.”“...” 유월영은 국을 한 그릇 떠서 천천히 마시며 생각에 빠졌다. 연재준이 서슴없이 백유진을 국외로 보내리라고는 전혀 상상하지 못했다.‘이것도 연재준이 나에게 부리는 응석인가? 백유진을 보내고 나면 연재준이 더 이상 백유진한테 아무런 신경도 쓰지 않을 거잖아? 그렇게 먼 나라로 주저 없이 보내는 걸 보면 그냥 날 화나게 하기 위해 백유진을 찾았던 것인가? 연재준이 정말 백유진을 좋아했던 적이 없는 건가?’유월영의 기분은 좋지도 않고 나쁘지도 않았다. 단지 그렇게 오랫동안 신경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