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한 쇼윈도 부부의 은밀한 이중생활

완벽한 쇼윈도 부부의 은밀한 이중생활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7-08
By:  루니Updated just now
Language: Kore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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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의 침대에 상간녀를 밀어 넣은 건 나였다. 그의 몸 위로 다른 여자의 체온이 스며들게 하고, 밤이 지나도록 그 흔적을 남기게 한 것도 나였다. 그런데 그 여자가 돌아왔을 때, 뱃속에 품은 아이는 내 동생의 기록과 맞닿아 있었다. 완벽한 재벌가 며느리 온사율은 남편 권이록의 불륜을 스스로 설계했다. 그의 셔츠에 묻은 립스틱 자국, 호텔방에 어 있던 향, 시트 위에 남은 열기까지 모두 복수를 위한 증거였다. 그러나 문예라의 임신이 드러나면서, 그 불륜은 태강가의 배아 도난이라는 추악한 진실로 뒤집힌다. 사율은 이제 남편과 상간녀, 그리고 시댁 모두를 한 번에 무너뜨릴 완벽한 순간을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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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1

1화. 내가 고른 불륜녀

카메라 플래시가 터질 때마다 남편의 손등에 입을 맞췄다.

완벽한 각도.

완벽한 미소.

완벽한 부부.

태강그룹 창립 오십 주년 기념 생방송.

무대 아래 첫 줄에는 시아버지 권태겸이 앉아 있었다.

박수를 치지 않는 사람은 그 하나였다.

그는 박수 대신 평가를 했다.

그 옆의 한미라는 진주 목걸이를 매만지며 며느리의 미소를 채점하는 눈을 하고 있었다.

방송 시작 전, 대기실에서 시어머니는 내 드레스 어깨선을 손끝으로 바로잡으며 말했었다.

“오늘은 웃어라.”

“태강가 며느리답게.”

“네가 웃는 것도 이 집안 자산이니까.”

나는 웃었다.

자산답게.

전 국민이 보는 화면 속에서 나는 권이록의 아내였고, 그는 대한민국이 사랑하는 국민 남편이었다.

그리고 내 손안의 휴대폰에는, 방금 도착한 사진이 있었다.

호텔 복도 CCTV 캡처.

붉은 드레스의 문예라.

그 옆에 선 남자의 옆얼굴.

셔츠 깃에 번진 옅은 립스틱 자국까지.

[사모님, 사진 마음에 드세요?]

[남편분, 생각보다 다정하시던데요.]

나는 화면을 껐다.

그리고 웃었다.

“웃어요.”

“지금 카메라가 우리를 찍고 있어요.”

낮게 속삭이자 이록이 고개를 기울였다.

마이크가 닿지 않는 거리.

부부만이 허락받은 거리였다.

“사진 봤어?”

“봤어요.”

“구도도 좋고, 시간도 정확하고.”

“조명까지 마음에 들어요.”

“놀라는 얼굴이 아니네.”

“놀랄 이유가 없죠.”

그 여자를 남편에게 보낸 사람이 나였으니까.

문예라.

스물여덟.

돈이 필요한 여자.

내가 석 달을 골라 남편의 동선에 심어둔 미끼였다.

향수는 내가 골랐다.

드레스 색도, 접근하는 요일도, 호텔 복도의 카메라 각도까지도.

그녀가 남편의 팔에 손을 얹을 때 서 있어야 할 위치까지, 나는 도면 위에 그려두었다.

태강가의 완벽한 후계자 권이록이 무너지는 그림을, 나는 처음부터 원하고 있었다.

사회자의 멘트가 끝나고 조명이 꺼졌다.

박수 소리가 잦아드는 무대 뒤, 어둠 속에서 이록이 내 손목을 잡았다.

“당신 셔츠 깃에 낯선 향수가 묻었네요.”

내가 먼저 말했다.

“내가 고른 향수는 아닌데.”

“아니, 정확히는… 내가 그 여자에게 골라준 향수네요.”

“그러니까 더 불쾌하고요.”

“질투하는 척도 안 하는군.”

“질투요?”

“내가 판을 깔았는데 왜 질투를 해요.”

“판을 깐 사람치고는.”

이록의 손끝이 내 손목 안쪽을 눌렀다.

맥이 뛰는 자리였다.

“손끝이 차가운데.”

“무대 조명이 뜨거웠으니까요.”

“조명은 십 분 전에 꺼졌어.”

나는 손을 빼지 않았다.

빼면 지는 것 같아서였다.

그의 엄지가 맥 위에 머무는 동안, 나는 숨의 간격을 일정하게 유지하는 데만 집중했다.

이 남자 앞에서 심박은 자백이었다.

그때 휴대폰이 다시 울렸다.

[아, 하나 더요. 저 혼자만의 밤은 아니었던 것 같아요.]

[검사 결과 나오면 제일 먼저 알려드릴게요. 사모님도 알아야 하잖아요.]

임신.

그 두 글자가 목덜미를 타고 내려갔다.

판이 틀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계약서 어디에도 없는 항목이었다.

나는 문예라에게 유혹을 주문했다.

스캔들을 주문했다.

아이는, 주문서에 없었다.

이록은 내 휴대폰 화면을 내려다봤다.

그리고 놀라지 않았다.

화도 내지 않았다.

그저 낯선 서류를 검토하는 사람처럼, 천천히 눈을 들었다.

“임신.”

“그건 네 계획에 없었지?”

“……”

“권이록 씨, 내 덫에 들어간 기분이 어땠어요?”

대답 대신 그가 내 귓가로 몸을 기울였다.

숨이 닿았다.

“덫인 줄 알고 들어간 사람한테, 그런 걸 묻는 게 아니야.”

그가 먼저 무대 뒤를 빠져나갔다.

무대 스태프들이 그에게 고개를 숙였고, 그는 국민 남편의 얼굴로 돌아가 있었다.

나는 어둠 속에 혼자 남아, 그의 마지막 문장을 두 번 곱씹었다.

덫인 줄 알고 들어갔다는 말은, 고백이 아니라 선전포고였다.

그날 밤 나는 죽은 동생의 휴대폰을 다시 열었다.

온하겸.

일 년 전 교통사고로 죽은 내 하나뿐인 동생.

액정에는 그날의 금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충전 케이블을 꽂을 때마다 나는 같은 자리에서 숨을 골라야 했다.

사진첩은 비어 있었다.

통화 기록도 지워져 있었다.

경찰은 단독 사고라고 했고, 유품은 이 휴대폰 하나가 전부였다.

지워진 것투성이인 휴대폰에서, 단 하나 살아남은 것이 메모장이었다.

마지막 메모에는 세 단어가 남아 있었다.

태강재단병원.

배아 보관실.

S-01.

메모의 저장 시각은 사고 당일 21시 58분.

하겸이 죽기 마흔아홉 분 전이었다.

죽기 마흔아홉 분 전에, 동생은 병원과 보관실과 코드 하나를 적었다.

유언 대신에.

그 여자를 남편에게 보낸 건 나였다.

하지만 그 아이까지, 내 계획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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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너무재밌게읽고있어요~
2026-07-08 14:2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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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화. 내가 고른 불륜녀
카메라 플래시가 터질 때마다 남편의 손등에 입을 맞췄다.완벽한 각도.완벽한 미소.완벽한 부부.태강그룹 창립 오십 주년 기념 생방송.무대 아래 첫 줄에는 시아버지 권태겸이 앉아 있었다.박수를 치지 않는 사람은 그 하나였다.그는 박수 대신 평가를 했다.그 옆의 한미라는 진주 목걸이를 매만지며 며느리의 미소를 채점하는 눈을 하고 있었다.방송 시작 전, 대기실에서 시어머니는 내 드레스 어깨선을 손끝으로 바로잡으며 말했었다.“오늘은 웃어라.”“태강가 며느리답게.”“네가 웃는 것도 이 집안 자산이니까.”나는 웃었다.자산답게.전 국민이 보는 화면 속에서 나는 권이록의 아내였고, 그는 대한민국이 사랑하는 국민 남편이었다.그리고 내 손안의 휴대폰에는, 방금 도착한 사진이 있었다.호텔 복도 CCTV 캡처.붉은 드레스의 문예라.그 옆에 선 남자의 옆얼굴.셔츠 깃에 번진 옅은 립스틱 자국까지.[사모님, 사진 마음에 드세요?][남편분, 생각보다 다정하시던데요.]나는 화면을 껐다.그리고 웃었다.“웃어요.”“지금 카메라가 우리를 찍고 있어요.”낮게 속삭이자 이록이 고개를 기울였다.마이크가 닿지 않는 거리.부부만이 허락받은 거리였다.“사진 봤어?”“봤어요.”“구도도 좋고, 시간도 정확하고.”“조명까지 마음에 들어요.”“놀라는 얼굴이 아니네.”“놀랄 이유가 없죠.”그 여자를 남편에게 보낸 사람이 나였으니까.문예라.스물여덟.돈이 필요한 여자.내가 석 달을 골라 남편의 동선에 심어둔 미끼였다.향수는 내가 골랐다.드레스 색도, 접근하는 요일도, 호텔 복도의 카메라 각도까지도.그녀가 남편의 팔에 손을 얹을 때 서 있어야 할 위치까지, 나는 도면 위에 그려두었다.태강가의 완벽한 후계자 권이록이 무너지는 그림을, 나는 처음부터 원하고 있었다.사회자의 멘트가 끝나고 조명이 꺼졌다.박수 소리가 잦아드는 무대 뒤, 어둠 속에서 이록이 내 손목을 잡았다.“당신 셔츠 깃에 낯선 향수가 묻었네요.”내가 먼저 말했다.“내가 고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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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화. 상간녀의 임신 테스트기
문예라는 예고도 없이 왔다.호텔 라운지, 오후 세 시.통유리 너머로 한강이 내려다보이는 자리였다.그녀는 약속도 없이 내 티타임 한가운데로 걸어 들어와, 내 앞자리에 앉으며 테이블 위에 무언가를 올려놓았다.임신 테스트기였다.“사모님, 괜찮으세요?”두 줄.선명한 두 줄이 나를 올려다보고 있었다.옆 테이블의 찻잔 부딪히는 소리가 유난히 멀게 들렸다.“이런 건 직접 보여드리는 게 예의일 것 같아서요.”예라가 웃었다.예쁘게, 가볍게.그러나 나는 그녀의 얼굴이 아니라 손을 보고 있었다.새로 바른 네일.그 아래로 미세하게 떨리는 손끝.“손 떨리네요, 문예라 씨.”“네?”“임신한 여자 손치고는, 기쁜 사람 손이 아닌데.”그녀의 미소가 반 박자 늦게 돌아왔다.“긴장돼서요.”“사모님 앞이잖아요.”“그날 밤 얘기, 정말 안 궁금하세요?”“사장님은 생각보다 조용하세요.”“그런데 조용한 남자가 더 오래 기억에 남는 거 아세요?”“궁금해요.”“…정말요?”“네.”“시간, 장소, 동선, 그리고 그 방에 누가 먼저 들어갔는지까지 전부요.”예라의 속눈썹이 한 번 흔들렸다.준비한 대본에 없는 질문이었을 것이다.“사모님은 참 재미없네요.”“문예라 씨는 참 부지런하고요.”나는 테이블 위의 테스트기를 눈으로 가리켰다.“그 테스트기, 어디서 받았어요?”“…네?”“브랜드가 시중 제품이 아니에요.”“약국에서 파는 물건은 포장 단위부터 다르죠.”“이건 병원 지급용이에요.”“그리고.”나는 그녀의 손목을 가리켰다.“병원 팔찌, 아직도 차고 있네요.”예라의 손이 반사적으로 소매를 내렸다.늦었다.흰 팔찌에 인쇄된 번호를 나는 이미 외운 뒤였다.TK-0417-S.“남편과 잤다는 말보다, 그 번호가 더 흥미로워요.”“사모님, 질투 안 하세요?”“질투는 내 것을 빼앗겼을 때 하는 거예요.”“제가 안 빼앗았다고요?”“아직은요.”“당신이 들고 온 게 진짜 내 것인지, 확인 전이니까.”예라는 알아듣지 못한 얼굴로 웃었다.그리고 준비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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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화. 아이 못 낳는 며느리
태강가 본가의 만찬은 언제나 재판정 같았다.상석의 권태겸.그 옆의 한미라.은식기가 접시에 닿는 소리조차 허락받아야 할 것 같은 식탁.그리고 오늘은, 문예라가 있었다.VIP 행사 자문이라는 명목으로 시어머니가 직접 부른 자리였다.식탁에 앉기 전, 복도에서 한미라가 나를 붙잡았었다.“오늘 손님이 있다.”“얼굴 관리해라.”“손님이요?”“네가 알 필요 없는 손님.”알 필요 없는 손님은 내 남편의 상간녀였다.시어머니는 그 배치를 즐기고 있었다.며느리와 상간녀를 한 식탁에 앉히고, 누가 먼저 무너지는지 관람하는 것.그것이 이 집안의 만찬이었다.권태겸은 식전 와인을 한 모금 마신 뒤, 오늘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나를 봤다.사람을 보는 눈이 아니었다.재고를 확인하는 눈이었다.“사율아.”한미라가 와인잔을 내려놓으며 입을 열었다.품위 있는 목소리.품위 있는 미소.품위 있는 칼.“여자는 집안에 들어오면 자기 역할이라는 게 있단다.”“태강가 며느리 자리는 얼굴만 예쁘다고 지키는 자리가 아니야.”“네, 어머님.”“빈 그릇이 아무리 고급스러워도, 결국 빈 그릇은 빈 그릇이지.”식탁이 조용해졌다.예라가 고개를 숙였다.웃음을 숨기는 각도였다.“아이도 못 낳는 며느리가, 이 집에서 뭘 더 바라니?”나는 냅킨을 접었다.무릎 위, 클러치 안의 녹음기가 돌아가고 있었다.시어머니의 모욕은 일 분에 하나씩, 정확한 간격으로 녹음되고 있었다.“예라 씨는 몸조심해야죠.”한미라의 시선이 예라의 배로 옮겨갔다.“지금은 저쪽이 더 귀한 몸이니까.”“어머님, 저는 괜찮아요.”예라가 배를 감싸며 이록 쪽으로 몸을 기울였다.“사모님 앞에서 이런 얘기, 불편하지 않으세요?”“아, 죄송해요.”“제가 너무 배려가 없었네요.”“그래도 아이 일은… 숨긴다고 숨겨지는 게 아니잖아요.”그녀는 젓가락을 내려놓고 이록을 향해 고개를 기울였다.“사장님, 물 좀 주실래요?”“요즘 목이 자주 말라서요.”이록은 물병을 예라 앞으로 밀었다.따라주지는 않았다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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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화.  불륜녀를 집 안으로
“문예라 씨가 태강 VIP 행사 총괄로 본가에 상주하게 됐다.”한미라의 통보였다.시어머니는 그것이 나를 향한 형벌이라 믿는 얼굴이었다.식탁 맞은편에서 그녀는 내 표정이 무너지기를 기다리고 있었다.“네, 어머님.”“…그게 다니?”“방 배정은 제가 할게요.”“안주인 일이니까요.”한미라의 눈썹이 미세하게 올라갔다.그녀가 기대한 것은 절규였거나, 최소한 창백해진 얼굴이었다.순순히 방 열쇠를 챙기는 며느리는 각본에 없었다.나는 반대하지 않았다.오히려 별채 게스트룸 중 가장 좋은 방을 내주라고 집사에게 일렀다.집사는 두 번 되물었다.나는 두 번 다 같은 방 번호를 말했다.권태겸의 서재와 가장 가까운 방이었다.이삿짐이라 부르기도 민망한 트렁크 두 개를 끌고, 예라가 본가 현관을 넘었다.그녀는 대리석 홀을 올려다보며 숨을 들이켰다.샹들리에의 빛이 그녀의 눈 안에서 값으로 환산되고 있었다.“사모님, 여기서 뵈니 더 반갑네요.”“집이 정말 크네요.”“사람이… 욕심낼 만해요.”“편하게 지내요.”“어머, 사장님.”마침 계단을 내려오던 이록에게 예라가 다가갔다.그리고 자연스럽게, 아주 자연스럽게 그의 소매 끝을 정리했다.“셔츠가 구겨졌네요.”“제가 봐드릴게요.”“아, 죄송해요.”“습관처럼 손이 가서.”예라가 나를 보며 웃었다.“그날도, 이렇게 구겨졌었거든요.”“문예라 씨.”이록의 목소리는 낮았다.“손 떼.”“어머, 왜요.”“사모님도 다 아시는데.”“내 아내 앞에서 연기하려면, 좀 더 자연스럽게 해.”예라의 손이 허공에서 멈췄다.나는 그 옆을 지나치며 말했다.“그 셔츠, 제가 고른 거예요.”“그 향수도요.”“…사모님이 고른 향수, 사장님한테 잘 어울리더라고요.”“제 몸에 묻었을 때보다도요.”“문예라 씨가 착각하는 게 하나 있네요.”계단 위에서 나는 그녀를 내려다봤다.“남의 집 문턱을 넘었다고, 안주인이 되는 건 아니에요.”“편하게 둘러봐요.”“대신 조심해요.”“태강가 복도에는 거울보다 카메라가 많아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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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화. 남편의 방에서 들린 말
밤 열한 시.별채 복도.벽등이 반쯤 죽어 있는 복도 끝에서, 나는 삼십 분째 같은 자리에 서 있었다.오늘 낮에 달아준 새 벽등은 예라의 방 앞을 비췄고, 복도 끝의 나는 어둠에 남았다.조명의 배치도 전략이었다.문예라의 방문이 열리고 이록이 나왔다.셔츠 단추가 하나 풀려 있었다.나는 복도 끝에서 그를 기다렸다.그가 다가왔을 때, 넥타이를 잡아 당겼다.“가만히 있어요.”코끝을 그의 셔츠 깃에 가까이 가져갔다.향수.내가 예라에게 골라준, 그 향이었다.“셔츠 단추가 풀렸네요.”“그 여자 방 앞에서 나온 사람치고는 너무 태연하고요.”“향수도 묻었고.”“질투해?”“내가 시킨 건 유혹이에요.”“넘어가라고 한 적은 없어요.”“아니라고 하지 마.”이록이 넥타이를 쥔 내 손목을 잡았다.풀지는 않았다.“당신은 증거 볼 때보다, 내 셔츠에 묻은 향수 볼 때 더 차가워져.”“그 방에서 뭐 했어요?”“대답 조심해요.”“거짓말하면 당신 호흡부터 달라지니까.”“그 냄새가 싫으면, 당신이 지워.”“…뭐라고요?”“내 넥타이 잡아당기기 전에 생각해.”“가까워지면, 당신이 먼저 흔들릴 수도 있어.”숨이 닿는 거리였다.복도의 낡은 벽등이 그의 눈에 얕게 반사됐다.나는 손을 놓지 않았다.“내가 그 여자에게 넘어갔다고 믿고 싶어?”“아니면 내가 어디까지 더러워졌는지 확인하고 싶은 거야?”“둘 다 아니에요.”“그럼?”“당신이 어디까지 연기했는지, 확인하는 거예요.”“연기라면?”“끝까지 해요.”“대신 내 허락 없이 진심 섞지 마요.”“허락받고 섞는 진심도 있나.”“태강가에서는요.”“이 집에선 감정도 결재를 받아야 하잖아요.”그가 짧게 웃었다.웃음소리는 없었다.입가만 움직이는 웃음이었다.“결재 서류는 어디로 올리면 되지?”“반려될 거예요.”“미리 말해두는데.”“기안은 자유잖아.”넥타이를 쥔 손에 힘이 빠지려는 순간이었다.그때 이어폰에서 소리가 들어왔다.예라의 방, 화병에 심어둔 도청기였다.방 안에 예라 혼자가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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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화. 비밀 금고의 사망 기록
권태겸이 해외 출장을 떠난 밤이었다.전용기가 이륙했다는 문자를 확인한 시각이 21시 40분.본가의 불이 반쯤 꺼지기까지 한 시간.경비 교대까지 다시 사십 분.나는 그 모든 간격을 손목시계로 재고 있었다.석 달 동안 매일 밤 같은 시간에 잰 간격이었다.오늘 밤만 특별한 것이 아니라, 오늘 밤을 위해 석 달이 있었다.서재의 금고는 침실 안쪽, 부부만 아는 그림 뒤에 있다고 했다.그 정보를 준 것은 이록이었다.“암호는 여섯 자리.”“세 번 틀리면 보안팀 호출이야.”“비켜요.”“암호는 제가 맞출게요.”“근거는.”“하겸의 생일을 거꾸로.”“당신 아버지는 전리품에 날짜를 새기는 사람이니까.”“그걸 어떻게 확신해.”“확신이 아니에요.”“관찰이에요.”“그 사람 만년필, 인수합병 성사 날짜가 각인돼 있었어요.”“넥타이핀에는 회장 취임일이.”“서재 벽시계는 창업일에 맞춰 멈춰 있고요.”“전리품마다 날짜를 새기는 사람이, 제일 큰 전리품에 날짜를 안 새겼을 리 없죠.”“하겸이 전리품이라는 근거는.”“내 동생이 죽은 뒤에도 이 집 서류에 살아 있으니까요.”“죽은 사람을 서류에 살려두는 건, 아직 쓸모가 남았다는 뜻이잖아요.”“이 집 말로는… 자산이고요.”이록은 더 묻지 않았다.서재의 어둠 속, 우리는 금고 앞에 나란히 섰다.어깨가 닿을 듯한 거리.서로의 숨소리가 들리는 거리였다.“공식 부부 침실에 금고라니.”“참 태강답네요.”“침대보다 서류가 많은 집안.”“손.”“…뭐요?”“떨리잖아.”“내가 누를게.”“번호 불러.”“가까이 오지 마요.”“손 떨리는 거, 들키기 싫으니까.”나는 숫자를 눌렀다.0-3-1-1-9-0.잠금장치가 풀리는 소리가 어둠 속에서 유난히 크게 울렸다.내 심장보다 반 박자 빠른 소리였다.금고 안에는 비자금 장부도, 채권도 아닌 서류철 하나가 있었다.태강재단병원 마크.모서리가 손을 많이 탄 서류철이었다.자주 꺼내 본 사람이 있다는 뜻이었다.나는 첫 장을 넘겼다.온하겸.사망 기록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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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화. 태강재단병원 7층
태강재단병원 7층은 엘리베이터 버튼에 층수가 없었다.6에서 8로 건너뛰는 버튼판.전용 카드키로만 열리는 비공개 병동.문예라의 산전 검진이 잡힌 곳이 바로 그곳이었다.나는 간호조무사 병원복을 입고 세탁 카트를 밀었다.도겸이 사흘을 들여 만들어준 임시 출입증이 가슴에 달려 있었다.사진 속의 나는 화장기 없는 얼굴에 안경을 쓰고 있었다.이름은 김수진.세상에서 제일 흔한 이름으로 골랐다.눈에 띄지 않는 것이 오늘의 드레스 코드였다.“삼십 분입니다.”아침에 도겸이 못을 박았었다.“교대 근무표상 세탁 카트가 7층에 머물 수 있는 시간이 삼십 분이에요.”“그 이상은 그 층의 시간표가 사율 씨를 기억합니다.”“충분해요.”“사율 씨.”“하나만 약속하세요.”“이상하다 싶으면 증거보다 몸부터 챙기는 겁니다.”“증거부터 챙길게요.”“몸은 그다음에.”“…그 대답이 제일 무섭습니다.”카드키를 대자 엘리베이터가 잠시 멈칫하더니, 층수 표시 없이 위로 올라갔다.7층 복도는 조용했다.소독약 냄새 아래로, 이상하리만큼 차가운 공기가 깔려 있었다.병동이라기보다 보관소에 가까운 온도였다.복도 끝, 이중문 위의 표지판이 눈에 들어왔다.생식의학센터.관계자 외 출입금지.배아 보관실이 있다면, 저 문 너머일 것이었다.하겸의 마지막 메모에 적혀 있던 세 단어 중 두 번째가, 저 문 뒤에 있었다.“VIP 병동은 냄새부터 다르네요.”검진실 앞, 예라의 목소리가 들렸다.그녀는 담당 코디네이터에게 쉼 없이 재잘거리고 있었다.“사모님도 이런 데서 검사받으셨나요?”“아, 아이 가진 사람만 들어올 수 있는 곳인가 봐요.”나는 카트를 밀고 그 옆을 지나쳤다.고개를 숙인 채, 걸음의 속도를 바꾸지 않고.예라의 손목에서 새 팔찌가 보였다.번호가 바뀌어 있었다.TK-0430-S.끝자리 S는 그대로였다.번호는 바뀌어도 분류는 바뀌지 않는다.그렇다면 S는 환자 번호가 아니라, 환자의 용도였다.복도 끝, 출입 기록실.문이 반 뼘 열려 있었다.안으로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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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화. 당신이 보낸 여자
복구된 영상은 40분 17초였다.호텔 스위트룸.도겸의 사람이 삭제된 서버에서 건져 올린 조각.원본은 지워졌고, 남은 것은 누군가 지우다 만 백업이었다.삭제는 업로드 두 시간 전에 이뤄졌다.지운 사람과 뿌린 사람이 다르다는 뜻이었다.이 영상에는 손이 두 개 있었다.나는 서재에 혼자 앉아 재생 버튼을 눌렀다.침대 끝에 시계가 떨어져 있었다.이록의 시계였다.결혼 일 주년에 내가 채워준 시계.뒷면에 각인이 있는 시계.화면 밖에서 예라의 웃음소리가 들렸고, 이내 그녀가 카메라 정면으로 걸어 들어왔다.렌즈의 위치를 정확히 아는 걸음이었다.—사모님, 보고 계세요?예라가 렌즈를 향해 웃었다.—이 방, 사모님이 예약하셨다면서요.—그런데 문을 닫은 건, 제가 아니었어요.—사장님 시계가 침대 끝에 떨어졌네요.—이런 것도 증거로 쓰실 건가요?—아니면… 질투하실 건가요?영상은 거기서 끊겼다.사 분 십칠 초 중, 이록이 화면에 잡힌 시간은 없었다.시계만 있었다.몸은 없고 물건만 있는 영상.그것이 오히려 이상했다.불륜을 찍으려던 카메라라면 남자를 찍었어야 했다.이 카메라는 남자가 아니라, 나를 찍고 있었다.정확히는, 이 영상을 보게 될 나의 반응을.문이 열렸다.이록이었다.나는 화면을 돌려 그에게 보여주었다.“당신 시계가 왜 침대 끝에 있었죠?”“……”“대답하기 전에 생각해요.”“내가 묻는 건 몸이 아니라 시간이에요.”“그 방에 몇 분 있었는지, 무슨 말을 들었는지, 무엇을 숨겼는지.”“사율아.”“당신이 그 여자에게 넘어갔다면, 나는 당신을 버리면 돼요.”“간단해요.”“그런데 당신이 일부러 들어간 거라면—”나는 일어섰다.“나는 이유를 알아야겠어요.”“당신이 내 덫을 알고도 밟은 이유.”이록은 한참 나를 내려다봤다.그리고 그 말을 했다.“당신이 문예라를 보낸 거, 처음부터 알았어.”심장이 한 박자 건너뛰었다.“…언제부터.”“그 여자가 내 앞에 처음 나타난 날부터.”“향수가 당신 취향이었고, 접근 동선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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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화. 같은 금고 앞의 부부
권태겸의 개인 금고는 서재가 아니라 와인 셀러 뒤에 있었다.이록이 알려준 위치였다.나는 그 정보를 확인하기 위해, 그는 내 목적을 확인하기 위해, 우리는 새벽 두 시의 지하 셀러에 함께 내려갔다.계단은 열여덟 개였다.내려갈수록 공기가 무거워졌다.와인의 숙성 온도.13도.사람의 비밀을 보관하기에도 알맞은 온도였다.“이번엔 침대가 아니라 금고네요.”“우리 부부답다.”“불만이야?”“남들은 부부 침실에서 사랑을 확인한다는데, 우리는 금고 앞에서 거짓말을 확인하네요.”“그래도 확인은 하잖아.”“아무것도 확인 안 하는 부부보다는 낫지.”“그 기준이면 우리, 꽤 건강한 부부네요.”셀러 안쪽, 빈티지가 오래된 와인일수록 안쪽 랙에 꽂혀 있었다.이록은 그중 하나의 랙 앞에 섰다.89년산.권태겸이 회장에 취임한 해였다.역시 날짜였다.이 집안의 모든 자물쇠는 달력으로 만들어져 있었다.와인 랙이 밀리고 강철 문이 드러났다.랙 뒤의 벽은 다른 벽보다 새것이었다.오 년 안에 시공된 벽.이록이 키패드에 손을 올렸다.그 손등에 내 손이 스쳤다.“당신 손, 차갑네요.”“겁나요?”“아니면 들킬까 봐 흥분돼요?”“사율아.”“권이록 씨.”“당신은 내 편이에요, 아니면 내 적의 아들이에요?”“둘 다.”그가 나를 내려다봤다.셀러의 낮은 조명이 그의 눈에 어둡게 고여 있었다.“나는 권태겸의 아들이고, 그 남자를 죽이고 싶은 사람이지.”“나를 믿으라고 말하진 않을게.”“대신 내가 누구를 죽이고 싶어 하는지는 봐.”“……”“금고 열리면, 당신도 못 돌아가.”“열어도 돼?”“……”“사율아, 대답해.”“아내로 물어보는 거야, 공범으로 물어보는 거야?”“오늘은, 공범으로요.”“그럼 가까이 와.”“암호 입력하는 손이 카메라에 잡히면 안 돼.”“그래서 이렇게 붙으라고요?”“무서우면 물러나.”나는 물러나지 않았다.대신 그의 팔 안쪽으로 반 걸음 들어섰다.숨과 숨이 닿았다.그의 손이 키패드 위에서 움직이는 동안, 나는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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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화. 상간녀의 첫 배신
문예라가 권태겸의 집무실에 들어갔다는 보고가 온 것은 사흘 뒤였다.별채 복도에 심어둔 카메라가 그녀의 뒷모습을 찍었다.오후 4시 20분.노크 세 번.손에는 서류 봉투.내가 그녀와 주고받은 계약 문자의 캡처본이 든 봉투였다.예상한 배신이었다.나는 그 캡처본에 일부러 오류를 심어두었다.날짜 두 개를 바꾸고, 계좌번호 한 자리를 틀리게.진짜 계약서는 다른 곳에 있었다.배신은 막는 것이 아니라, 배신할 길을 미리 닦아주는 것이다.닦아준 길로만 걷게 하는 것이다.집무실 도청 파일이 도겸을 거쳐 도착했다.—회장님, 사모님이 절 보낸 거 아시죠?—저, 생각보다 쓸모 있는 여자예요.—돈은 이제 필요 없어요.—아이를 가졌는데 돈만 받고 사라지라니, 너무 손해잖아요.—저도 그 집 며느리, 한번 해보려고요.—이 아이가 태강의 아이면, 저 버리기 쉽지 않으실 텐데요.—몸은 제가 빌려드릴게요.—대신 이름은 주세요.권태겸의 목소리는 온도가 없었다.—문예라 씨는 본인 몸값을 과대평가하는군.—태강에서 아이를 품은 여자가 곧 어머니가 되는 건 아니네.—몸은 빌릴 수 있어.—이름은 허락받아야 하지.—아이는 태강의 것이고, 여자는 그 아이가 태어날 때까지만 쓸모가 있네.—그래도 좋다면, 더 안쪽으로 들어오게.—단, 들어온 문으로 다시 나갈 수 있다고 착각하지는 말고.—저 겁주는 거예요?—아니.—가격을 알려주는 걸세.파일은 거기서 끝났다.나는 두 번 더 재생했다.두 번째엔 예라의 목소리에서 떨림을 찾았고, 세 번째엔 찾아냈다.’가격’이라는 단어 뒤, 반 박자의 침묵.그녀도 들은 것이다.자신이 흥정의 주체가 아니라 매물이라는 것을.이틀 뒤, 예라가 나를 찾아왔다.승자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결국 권태겸에게 갔네요.”“사모님이 절 보냈잖아요.”“처음엔 시키는 대로 하려고 했어요.”“그런데 그 집 안에 들어가 보니까 알겠더라고요.”“왜 사람들이 욕심을 내는지.”“욕심내는 건 자유예요.”“화 안 나세요?”“제가 사모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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