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게 끝나고 신예린은 무기력하게 안긴 채 욕실로 들어갔다.샤워기가 켜지고 신예린은 알몸으로 주시우에게 기대어 따뜻한 물줄기가 두 사람에게 쏟아지도록 내버려두었다.주시우의 손바닥이 그녀의 몸 위를 어루만졌다.처음에는 신예린도 부끄러운 마음에 주시우가 그녀를 씻겨주는 걸 민망해했다.‘그때 주시우가 뭐라고 했더라.’“내가 못 본 곳이 어디 있다고 그래? 어디가 예민한지 내가 너보다 더 잘 아는데.”그때 신예린은 부끄러워서 얼굴을 베개로 가린 채 그의 말을 듣지 않았다.“숨 막혀.”주시우는 베개를 치우고 곧바로 그녀를 안아 올렸다.“처음엔 낯설지만 하다 보면 익숙해져. 정 부끄러우면 몇 번 더 같이 씻으면 되지.”‘말은 참 잘해.’신예린은 이 말이 이런 뜻으로도 쓰일 줄은 몰랐다.하지만 너무 지쳐서 움직이고 싶지 않았고 땀에 젖은 채로 자고 싶지도 않아 주시우가 욕실로 데려가는 대로 내버려두었다.뜨거운 손바닥에 정신이 돌아온 신예린은 귀에 들리는 숨소리가 거칠어지는 걸 느꼈다. 코끝이 은근슬쩍 그녀의 귓불에 닿았다.둘 다 알몸인 상태라 신예린은 주시우의 하반신에서 느껴지는 변화를 단번에 알아챘다.“당신...”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짓던 신예린이 주시우의 붉게 달아오른 눈과 마주했다.“여보.”주시우가 그녀의 귀를 살짝 깨물며 뜨거운 숨결을 내뱉었다.“며칠 동안 아윤이가 없는 이 시간을 소중히 여겨야지.”신예린이 말하기도 전에 주시우가 그녀를 벽에 밀어붙였다.차가운 타일이 닿을 줄 알았는데 뜻밖에도 주시우가 팔로 받쳐주었고 신예린은 허공에 몸이 붕 뜬 채 다리를 그의 허리에 감자 둘의 몸이 그대로 밀착되었다.가쁜 숨결이 그녀의 목덜미를 스치자 소름이 돋았다.“욕실에 있으니 씻을 필요도 없네.”샤워기의 물보라가 사방으로 튀는 가운데 신예린은 주시우의 어깨를 꼭 붙잡은 채 가쁜 숨을 내쉬었다......침대로 돌아왔을 때 신예린은 눈조차 뜨지 못했다.그녀는 등 뒤에서 주시우가 몸을 뻗어 불을 끄고 감싸 안는 것을 느꼈다.신
신예린이 미처 반응하기도 전에 주시우가 그녀를 단번에 어깨에 둘러메었다.안는 게 아니라 말 그대로 어깨 위로 들어 올렸다.신예린은 배가 어깨에 눌려 오늘 저녁 먹은 걸 토할 뻔했다.“주시우 씨!” 거꾸로 매달린 신예린이 짜증 섞인 목소리로 남자를 툭 때리며 말했다.“좀 더 로맨틱한 방법을 쓸 수는 없어요?”주시우는 긴 다리로 성큼성큼 방으로 향했다. “우리가 곧 하려는 게 바로 로맨틱한 일이야.”방에 들어서자 신예린은 침대에 내려졌고 주시우가 덮쳐오며 그녀에게 키스하려 했다.그녀는 재빨리 손을 들어 입을 막았고 키스에 실패한 주시우는 눈을 가늘게 떴다.신예린의 눈가에 미소가 번졌다. “그 전에 부탁 하나만 들어줘요.”주시우가 말하기도 전에 입술이 먼저 손바닥에 닿았다.뜨거운 온도가 손바닥 피부를 화끈하게 덥히며 남자가 손을 따라 천천히 입을 맞추자 신예린은 몸이 저절로 달아올랐다.주시우가 잠긴 목소리로 말했다.“네가 원하는 거라면 뭐든지 다 들어줄게.”갑자기 그가 손가락 끝을 깨물자 신예린은 저릿한 감각이 손끝에서 온몸으로 퍼져갔다.신예린의 손가락이 흠칫 떨렸지만 그래도 애써 침착함을 유지했다.“아윤이 개학 준비물을 다 있는지 한번 봐줘요.”정중하게 부탁하는 게 이렇듯 사소한 일이라니.그가 바로 허락할 줄 알았던 신예린은 주시우가 난처한 표정을 짓는 걸 보았다.“그건 좀 어려워.”신예린은 진심으로 믿었다. “할 일이 있어요?”주시우의 눈빛이 깊어지며 그녀를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적어도 지금은 시간이 없어.”신예린은 한참 뒤에서야 말뜻을 알아차리고 얼굴이 새빨개졌다. “지금 당장 하라는 게 아니잖아요.”말이 끝나기도 전에 입술을 막았던 손을 치우가 주시우가 입술을 머금었다.“오늘 밤에 너 하는 거 봐서.”신예린은 흥정까지 하는 그의 모습에 뭐라고 따지려던 찰나 주시우의 혀끝이 그 틈을 타 안으로 파고들었다.“읍.”신예린은 마치 숨이 멎은 듯 온몸이 순식간에 달아올랐다.그녀는 주시우의 움직임에 맞춰서 숨
“아윤아, 며칠 동안 할아버지 할머니 댁에서 지낼래?”주혁재는 소지훈처럼 주아윤에게 말할 때면 무의식적으로 말투가 부드러워졌다.음식을 집던 주시우가 손을 멈칫했고 주아윤은 망설이는 듯 아빠와 엄마를 번갈아 보았다.“아윤아, 할아버지가 뒷마당에 연못도 하나 파서 금붕어와 거북이를 키우고 있어. 너도 같이 놀 수 있단다.” 주혁재가 혹하는 말을 던졌다.“거북이요?” 주아윤은 금세 마음이 동했다.“그래, 금붕어들은 색도 다양해서 엄청 예뻐.”주아윤이 신예린을 바라보며 말했다. “엄마, 그래도 돼요?”신예린이 웃으며 말했다. “물론이지.”주아윤이 다시 주시우를 바라보았고 주시우는 평소와 다름없는 표정으로 목을 가다듬었다.“아윤이가 여기 있고 싶으면 그렇게 해.”“앗싸!”주아윤은 신이 나서 외쳤다.신예린이 언뜻 시선을 돌리자 주시우의 눈이 반짝이고 있었다.딸보다 더 기뻐하는 것 같았다.저녁을 먹고 잠시 함께 앉아 있다가 신예린과 주시우는 인사를 하고 떠났다.“아빠, 엄마, 안녕.” 주아윤이 문 앞에 서서 그들에게 손을 흔들었다.“아버지, 아윤이 놀 때 잘 지켜보세요. 물에 빠지지 않게.”주시우의 당부에 주혁재가 가슴을 두드리며 말했다. “알았어.”“...”신예린은 시아버지가 제법 젊게 사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가자.” 주시우가 신예린을 끌고 차에 태웠다.주아윤은 엄마 아빠가 차에 타는 걸 보고 함께 집에 갈지 말지 고민하는 모양이었다.주시우가 누구던가, 한눈에 딸의 생각을 알아차리고는 문을 닫기 무섭게 액셀을 밟으며 멀어졌다.주아윤은 눈이 휘둥그레져서 검은 차가 번개처럼 눈앞에서 사라지는 걸 바라보았다. 생각할 틈조차 없었다.“...”집에 돌아온 신예린은 카펫 위에 다리를 꼬고 앉아 주아윤이 등교할 때 필요한 물건을 점검했다.“가방, 교복, 물컵...” 그녀는 확인하며 중얼거렸다.“갈아입을 옷을 몇 벌 더 준비해야 하지 않을까...”욕실에서 나온 주시우는 아직도 정리 중인 신예린을 보며 고개를 들어
신예린이 떠난 지 얼마 안 되어 한 간호사가 동료에게 물었다.“신 선생님 가셨어? 모레 퇴원하고 싶어 하는 환자 있는데.”“응. 참, 남편이 아이와 함께 데리러 왔더라.”“우와, 소정 씨가 말했던 잘생긴 선생님? 지난번에 밥 먹으러 가느라 못 봤어.”“맞아. 괜찮아, 앞으로 자주 데리러 올 거야. 애 이름이 주아윤인데 너무 사랑스러워. 나한테 사탕 두 개도 줬어. 자, 하나 줄게.”그들은 일을 하면서 수다를 떠느라 간호사 스테이션에 다가온 한 그림자가 대화를 모두 듣고 있다는 걸 눈치채지 못했다.그러고 보니 임정희는 외손녀가 태어난 후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아이 몸속에도 자기 피가 흐르고 있는데 할머니라고 한 번도 부르지 않은 게 말이 되나.‘아이의 마음을 사로잡으면 부모가 따라오지 않을까?’임정희는 결심을 굳히며 입가에 미소를 띠었다....신예린 일행이 주씨 가문 저택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저녁 7시가 넘었다. 집안에 들어서자마자 밥 냄새가 풍겼다.“할아버지, 할머니, 아윤이 왔어요.”신발을 갈아신은 주아윤이 펄쩍펄쩍 뛰어 들어왔다.주혁재가 다가와 몸을 숙여 주아윤을 안더니 웃으며 말했다. “할아버지 착한 손녀가 왔구나.”주아윤이 할아버지 얼굴을 손으로 받쳐 뽀뽀를 건네자 침이 얼굴에 다 묻을 뻔했다.그런데도 주혁재는 주름이 잔뜩 진 얼굴로 웃었다.신예린이 들어와 이 모습을 보고 웃으며 말했다. “아버님.”그리고 주아윤에게 다시 한번 당부했다. “아윤아, 할아버지는 허리가 안 좋아서 조금만 안겨 있다가 내려와.”주혁재는 며칠 전 허리를 삐끗했고 지금은 거의 나았지만 주아윤은 이제 막 태어난 아기가 아니었기에 어느 정도 무게가 나갔다.주아윤은 할아버지 품에서 내려오라는 말을 듣자마자 이렇게 말했다.“제가 할아버지 등 두드려 드릴게요.”내려온 아이는 곧장 주혁재 뒤로 달려가 작은 주먹으로 등을 가볍게 두드렸다.“할아버지, 여기 맞아요? 좀 나아졌어요?”주혁재는 웃느라 입을 다물지 못했다.들고 온 특산품을 도우
“네, 네.”간호사는 손에 든 일을 바쁘게 하는 척 눈길은 자꾸만 주시우와 주아윤 쪽으로 향했다.소정은 주시우가 벌써 35살이라고 했지만 지금 보니 전혀 그렇게 보이지 않았다. 훤칠하고 늘씬한 체형에 입체적인 이목구비와 온몸에서 풍기는 훈훈함으로 봤을 때 전혀 느끼한 아저씨 같지도 않아 어디를 가든 주목을 받았다.간호사는 자신의 남자 친구를 떠올렸다. 사귄 지 3년 동안 5kg이나 넘게 쪄서 밖에 나가 운동도 하며 몸매 관리를 하라고 했지만 그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당당하게 이미 여자 친구가 있는데 왜 꾸며야 하냐고 말해서 그녀의 화만 돋웠다. 마치 그녀는 뚱뚱하고 못생긴 남자 친구를 만나는 게 당연하다는 듯이.몸매 관리조차 스스로 할 수 없는 사람에게 어떻게 출세할 거란 기대를 품겠나.주아윤은 마치 그녀의 시선을 느낀 듯 이따금 커다란 눈으로 계속해서 돌아보는 게 귀여움 그 자체였다.간호사는 탁자 위에 환자 가족이 가져온 오렌지를 집어 주아윤에게 건네며 달래는 어조로 말했다. “아가, 먹을래?”주아윤은 아빠를 쳐다봤다. 그가 웃기만 하고 아무 말도 하지 않자 아이는 앞으로 다가가 오렌지를 받고는 사랑스럽게 말했다. “고마워요. 언니.”간호사는 사실 신예린과 비슷한 나이여서 주아윤이 이모라고 불러야 했지만 자꾸만 언니라고 부르는 말에 정신이 혼란스러워 정정할 틈도 없었다.“얘야, 넌 이름이 뭐니?”“저는 주아윤이에요.”“아윤이는 정말 귀엽구나.”간호사는 주아윤이 작은 손으로 오렌지를 든 채 크고 동그란 눈망울을 반짝이자 말랑한 볼을 만져보고 싶었다.손을 뻗고 싶은 충동을 주체하지 못했지만 아이 아빠 앞에서 그렇게 하는 건 예의에 어긋난다고 생각해 애써 참았다.주아윤이 주머니를 더듬더니 손을 펼쳤다.“언니, 이거 줄게요.”작은 손바닥 안에는 사탕 두 개가 놓여 있었다.간호사는 웃으며 팔을 뻗어 손을 잡았다.“고마워, 아윤아.”“천만에요. 아빠가 좋은 건 나눠야 한다고 하셨어요.”‘아이고, 착하기도 해라.’간호사는
간호사는 입꼬리를 올리며 단호하게 대답했다. “네.”임정희는 그 모습을 보고 당황했다. 그녀는 복도에 머물고 싶지 않았다. 오가는 사람들이 지나갈 때마다 쳐다보고 밤에 잠도 제대로 못 자며 사생활이 전혀 보장되지 않을 테니까.“안, 안 옮길 거예요.”임정희는 연이어 뒤로 물러서며 신예린을 노려본 뒤 마치 신예린이 쫓아올까 두려운 듯 돌아서서 걸어갔다.그녀가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신예린은 차가운 시선을 거두지 않았다.간호사는 그런 신예린을 내내 지켜보았다.신예린이 한숨을 쉬며 말했다. “미안해요. 여러분에게 폐를 끼쳤네요.”간호사는 당연히 뭐라 할 수 없었기에 손을 저으며 말했다. “어휴, 아니에요.”“저는 신경 쓸 것 없어요. 또다시 여러분에게 온갖 잡일을 시키거나 무례한 요구를 한다면 망설이지 말고 바로 경비원을 부르세요.”신예린이 부모에게 이렇게 행동할 줄 몰랐던 간호사는 입술을 달싹이다가 조심스럽게 물었다.“신 선생님 부모님과는 사이가...”“보셨잖아요.”신예린은 어깨를 으쓱하면서도 전혀 자책하는 기색이 없었다.“지금 여러분이 처한 상황이 바로 제가 어릴 때부터 겪어온 상황이에요.”간호사는 잠시 상상해 봤다.그들은 단 며칠 접촉했을 뿐인데도 감당하기 힘든데 신예린은 어릴 때부터 이런 가정에서 자랐으니 얼마나 숨 막혔을까.신예린이 삐뚤어지지 않고 훌륭하게 자란 것만으로 그녀가 얼마나 대단한 내면을 지녔는지 알 수 있었다.“그러니까.”신예린이 손끝으로 데스크를 톡톡 건드리며 눈썹을 치켜올렸다.“예의 차릴 필요 없어요.”간호사는 울고 싶었다.아무리 17호 환자가 신예린과 상관이 없다고 해도 함부로 굴 수는 없었다. 불만 신고가 들어오면 한 달 치 월급이 날아가니까....주시우가 차를 몰고 주아윤과 함께 병원 주차장에 도착했다.주시우가 안전벨트를 푸는 사이 뒷좌석에 앉아 있던 주아윤이 궁금한 듯 물었다. “아빠, 내려요?”그들은 항상 차 안에서 엄마를 기다렸었다.“응.” 주시우는 차에서 내려 뒷좌석 문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