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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l Chapters of 터닝포인트: Chapter 1 - Chapter 10

100 Chapters

제1화

“읍.”방문이 열리더니 두 사람이 비틀거리며 안으로 들어왔다.두 사람은 취기 가득한 얼굴로 현관에서 키스를 나누었고 거친 숨소리와 야릇한 분위기가 방 안을 가득 채웠다.“아.”남자에게 안기게 된 신예린은 깜짝 놀라 소리를 질렀다.작고 여린 신예린이 건장한 남자에게 안겨 있는 모습은 사람들의 음심을 자극했다.그들은 곧장 침대로 향했다. 신예린은 침대 위로 옮겨졌고 거대한 몸이 그녀를 깔아뭉갰다.남자의 눈꼬리가 빨갰다. 지금 이 순간, 평소 절제미가 느껴졌던 그의 눈동자에서 불꽃이 튀는 것만 같았다.이성의 끈을 놓은 모습이었다.신예린은 손가락이 하얘질 정도로 침대 시트를 힘주어 꽉 쥐었다. 그녀의 눈동자가 아주 잠깐 빛났다.흔들리는 불빛 아래, 그들의 가쁜 숨소리가 방안에 울려 퍼졌다....“예린아.”“예린아!”신예린은 화들짝 놀라며 잠에서 깼다. 그녀의 이마에 식은땀이 맺혀 있었다.또다시 그 꿈을 꾸게 되었다. 벌써 한 달이나 지났는데도 매일 밤 그 장면이 꿈에 나왔다.그날은 여도준의 생일날이었다. 신예린은 들뜬 마음으로 여도준을 찾아갔는데 여도준은 그녀뿐만 아니라 같은 과의 다른 친구들도 불렀고 그중에는 예쁘기로 소문난 강효은도 있었다. 두 사람은 바짝 붙어 앉아서 아무렇지도 않게 스킨십을 했다.적지 않은 사람들이 신예린의 눈치를 살폈다. 그녀의 반응이 궁금한 것처럼 말이다.신예린과 여도준은 같은 과지만 반이 달랐고 과 동기들은 신예린이 여도준을 2년 가까이 좋아했다는 걸 다들 알고 있었다. 심지어 여도준 본인도 그 사실을 알고 있었는데 단 한 번도 그녀를 거절한 적이 없었다.그러나 오늘 친구들의 반응을 살펴보니 이미 다들 강효은의 존재를 알고 있는 듯했다. 오직 신예린만 바보처럼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그동안 여도준은 강효은과 썸을 타면서 어장 관리를 했다.호기심 가득한 친구들의 시선에 상처를 받은 신예린은 웃음거리가 되어버린 자신의 짝사랑을 이젠 끝내겠다고 마음먹었다.그날 기분이 좋지 않았던 신예린은 술을 많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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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화

원나잇을 한 상대가 자기 학교 교수라면 어떻게 해야 할까?신예린은 하늘이 무너진다는 것이 어떤 기분인지 절실히 느꼈다.흥분한 송지유는 고개를 숙이는 순간 신예린이 좌절한 얼굴로 책상에 엎드려 있는 모습을 보았다.“예린아, 왜 그래? 왜 똥 씹은 표정이야?”만약 없던 일로 할 수만 있다면 똥도 기꺼이 먹을 수 있었다.“지유야.”신예린은 참담한 심정으로 말했다.“나 망했어. 진짜 휴학하고 싶다.”“왜 그래?”송지유는 어리둥절한 표정이었다.이때 단상 위에서 감미로운 목소리가 들려왔다.“조용.”교수의 목소리와 그날 밤 그 남자의 목소리가 겹쳤다. 어쩌면 그가 아닐지도 모른다고 희망을 품었던 신예린은 그 순간 또 한 번 하늘이 무너지는 기분을 느꼈다.정말로 그 남자였다. 비록 그날 밤에는 지금보다 목소리가 훨씬 낮고 허스키했지만 신예린은 교수가 바로 그 남자라는 것을 확신할 수 있었다.교수가 조용히 하라고 하자 교실 안이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얼마나 조용한지 바늘이 바닥에 떨어지는 소리까지 들릴 듯했다.남자의 감미로운 목소리가 마이크를 통해 교실 곳곳에 울려 퍼졌다.“자기소개부터 할게요. 저는 주시우라고 해요. 오늘부터 여러분들에게 해부학을 가르칠 겁니다.”“우와.”“우와.”주시우가 말을 마치자마자 곳곳에서 탄성이 터졌다.‘안 돼!’그 순간 오직 신예린만이 절망했다.특히 그녀의 곁에 앉은 송지유는 매우 흥분했고 신예린은 그녀의 비명에 귀청이 떨어질 것만 같았다.단상 위에 선 주시우는 멈추라는 듯이 손을 들었고 그 순간 학생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이 다들 입을 다물었다.“자기소개는 여기까지 하고 오늘은 우선 해부학이란 어떤 것인지에 관해 얘기해 볼 거예요.”PPT를 켠 주시우는 그 자리에 꼿꼿이 서 있었다. 그에게서는 타고난 여유로움과 고귀함이 느껴졌다.“해부학은 인체의 형태와 구조를 연구하는 학문이에요. 육안이나 현미경, 영상학 등을 통해 인체의 장기나 조직의 형태, 위치, 주변 관계, 발달 규칙을 밝히죠...”차분한 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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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화

주시우는 창문 앞에 앉아 있었다. 그는 조각상 같은 외모의 소유자였고 그의 눈동자에는 다정함과 냉정함이 공존해서 매우 매력적이었다. 그리고 콧대 중간 부분이 살짝 튀어나왔는데 그 점 때문에 오히려 더 분위기 있어 보였다. 심지어 이 순간 창밖의 햇빛마저 그를 편애하는 것만 같았다.신예린은 그를 본 순간 헛숨을 들이켰다.‘너무 잘생겼잖아!’그러나 그녀는 이내 그의 외모에 감탄할 때가 아니라는 점을 떠올렸다. 신예린은 불안한 마음을 안고 긴장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교수님.”신예린은 마치 잘못을 저지른 아이처럼 시선을 내려뜨렸다. 그러나 사실은 켕기는 게 많아서 감히 그를 바라보지 못하는 것이었다.신예린은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지만 반대로 주시우는 매우 여유로워 보였다. 그는 진짜 교수님처럼 자신의 맞은편에 있는 의자를 가리켰다.“앉아요.”신예린은 감히 앉을 수가 없어 어색하게 웃으며 말했다.“괜찮습니다. 저는 서 있으면 돼요.”주시우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는 신예린보다 머리 하나쯤 더 컸고 신예린은 고개를 들어 그를 바라봐야 했다.“얘기해 봐요. 수업 시간에 왜 집중을 못 했죠?”주시우는 평온한 어조로 물었다. 진짜 그녀가 수업 시간에 집중을 못 한 이유가 궁금한 것처럼 말이다.신예린은 감히 솔직히 말할 수 없었기에 한참을 우물쭈물하다가 긴장한 얼굴로 말했다.“어, 어제 잠을 잘 자지 못했거든요.”곧이어 그녀는 정중하게 사과했다.“죄송합니다. 앞으로 다시는 그러지 않겠습니다.”주시우가 그녀의 말을 믿을지는 알 수 없었다. 그는 곧장 커피머신 앞으로 걸어가더니 아주 느긋하게 커피를 만들기 시작했다. 여유로움이 흘러넘치는 움직임이었다. 그는 늘씬한 손가락으로 우아하게 커피를 만들었고, 뜨거운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를 때는 눈이 즐겁다는 생각이 들었다.“난 해외에서 온 지 얼마 되지 않아서 국내의 수업 방식에 익숙하지 않아요. 만약 내 수업이 지루했다면 솔직하게 얘기해도 괜찮아요.”이렇게 잘생기고 겸손한 교수님과 원나잇을 하다니, 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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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화

신예린은 교실로 돌아가던 길에 여도준과 그의 친구들을 마주쳤다. 여도준은 친구들보다 머리 하나는 더 컸고 얼굴도 잘생겨서 유독 눈에 띄었다.그들은 신예린의 앞으로 걸어갔는데 그녀의 존재를 눈치채지 못했다.“야, 도준아. 너 쫓아다니던 그 껌딱지 말이야. 개강한 이후로 널 찾아온 적이 없지 않아?”“네가 연애한다는 말을 듣고 충격받아서 그러는 거 아니야?”“오늘 주시우 교수님 수업 때도 넋을 놓고 있더라. 너랑 강효은이 마침 걔 앞에 앉아 있었는데 그 모습을 보는 게 괴로웠나 봐. 하하하.”신예린은 그제야 그들이 본인 얘기를 하고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신예린과 여도준은 의대에서 10위 안에 들 정도로 공부를 잘했다. 신예린은 여도준을 좋아해서 자주 그와 함께 공부를 했었는데 그의 친구들이 자신을 그의 껌딱지로 생각할 줄은 몰랐다.신예린은 헛웃음이 나왔다.여도준 친구들의 태도를 보니 평소 여도준이 그녀를 어떻게 생각했는지 알 것만 같았다.그러나 매번 신예린이 함께 공부하자고 할 때 여도준은 한 번도 거절한 적이 없었고 함께 문제를 의논할 때도 유쾌한 시간을 보냈었다. 그래서 신예린은 자신에게 희망이 있을 거라고 착각했다.여도준이 말했다.“앞으로 효은이 앞에서 예린이 얘기 꺼내지 마. 효은이가 언짢아할 수도 있으니 말이야.”“그래, 알겠어.”여도준의 친구가 말했다.“지금 네 여자친구는 강효은이지.”“너는 참 운이 좋다. 강효은처럼 예쁜 여자친구가 있고 신예린처럼 공부 잘하는 애가 널 짝사랑하잖아. 둘과 다 사귀는 건 어때?”“꺼져. 무슨 헛소리야? 신예린은 그냥 친구야.”“너는 걔를 친구라고 생각하겠지만 걔는 네 여자친구가 되고 싶어 하잖아.”“너희는 신예린이 아직도 여도준을 좋아할 거라고 생각해? 도준이가 효은이랑 헤어질 때까지 기다리려고 할까?”“헤어지지 않을 수도 있지.”“도준이가 효은이랑 헤어지지 않는다면 평생 도준이만 기다린다고 결혼을 안 할지도 몰라. 하하하하.”“너 드라마 너무 많이 봤다.”“우리 내기할래? 신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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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화

신예린은 한순간의 잘못된 선택으로 인해 대가를 치러야 했다. 그렇게 그녀는 며칠 동안 영혼을 빼앗긴 사람처럼 넋을 놓고 다녔다.그녀는 아직 대학을 졸업하지도 못했다. 아이를 낳는다는 것은 절대 불가능한 일이지만, 감히 부모님에게 얘기할 수도 없었다. 그러나 수술하려면 가족들의 동의가 필요했고 수술을 끝마친 뒤에는 몸조리도 해야 했다. 만약 다른 친구들에게 임신 사실을 들킨다면 학업을 포기해야 할 수도 있었다.신예린은 살면서 처음으로 엄청난 두려움과 불안감을 느꼈다. 심지어 송지유 또한 이상함을 눈치채고 걱정스럽게 물었다.“예린아, 무슨 일 있어?”신예린은 며칠 동안 안색이 창백하고 혼이 빠져나간 사람 같았다.신예린은 힘없이 고개를 저었다.“아니. 괜찮아.”그렇게 말하는 얼굴이 전혀 괜찮아 보이지 않았다.“무슨 일 있으면 나한테 얘기해. 내가 도와줄게.”송지유는 신예린이 걱정돼서 한참을 망설이다가 입을 열었다.“여도준 일 때문에 그래?”지금 신예린에게 여도준은 신경 쓸 가치가 없는 사람이었다.송지유도 아직 학생이었기에 만약 그녀에게 임신 사실을 얘기한다면 문제가 해결되기는커녕 송지유까지 넋을 놓고 다닐지도 몰랐다.그래서 신예린은 억지로 미소를 지어냈다.“난 정말 괜찮아. 걱정하지 마.”송지유는 신예린이 얘기하려고 하지 않자 더는 강요할 수 없어 화제를 돌리려고 했다.“잠시 뒤 마지막 수업은 주 교수님 해부학 수업이야. 우리 일찍 가서 좋은 자리에 앉자.”그런데 신예린은 그 말을 듣자마자 괴로운 표정을 지었다.“나 수업 보러 가지 않으면 안 돼?”“안 돼. 주 교수님 엄격한 분인 거 너도 알잖아. 거의 수업 때마다 출석 체크를 하는걸. 나는 굳이 그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지만 말이야. 그리고 다른 수업은 모르겠지만 주 교수님 수업에 빠지려는 사람은 한 명도 없을걸.”신예린은 빠지고 싶었다.그러나 감히 그럴 수가 없었다. 그녀는 지난 2년 동안 단 한 번도 결석한 적이 없는 데다가 주시우도 이젠 그녀의 존재를 알고 있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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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화

옆에 서 있던 신예린은 입술을 깨물다가 신경무를 불렀다.“아빠.”신경무는 그녀를 힐끗 본 뒤 집 안을 쭉 둘러보았다.“민호는? 안 왔어?”신예린이 모른다고 대답하려는데 임정희가 먼저 선수를 쳤다.“아까 연락해 봤는데 친구랑 농구를 했대요. 방금 친구랑 헤어져서 지금 집으로 오고 있대요.”신경무는 혀를 찼다.“공부는 제대로 하지도 않고 매일 농구만 하네. 정말 철이 없어. 앞으로 뭐가 되려고 그러는 건지 몰라.”“민호 겨우 고1이에요. 앞으로 뭐든 될 수 있어요. 당신은 민호 아빠면서 왜 그런 말을 해요?”세 사람은 음식을 다 차려놓고 식탁 앞에 멀뚱히 앉아 있었다. 신민호가 돌아오기 전까지 그들은 젓가락을 들지 않았다.이런 상황이 익숙한 신예린은 눈앞에 놓인 음식들을 보면서 멍을 때렸다.“민호 왜 아직도 안 온대요? 설마 무슨 일 있는 건 아니겠죠?”임정희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다 큰 애가 무슨 일이 있겠어.”그러고는 걱정스럽게 말했다.“당신이 연락해 봐.”신예린은 문득 고3 때 생활비가 떨어져 어쩔 수 없이 기숙사를 떠나 주말에 생활비를 받으러 부모님을 찾아왔던 때를 떠올렸다. 그날 집으로 돌아오던 길에 소낙비가 쏟아졌고 신예린은 빗줄기가 약해질 때까지 오랫동안 처마 밑에서 비를 피했다. 온몸이 흠뻑 젖은 채로 현관문을 열었을 때, 그녀의 부모님과 동생은 식탁 앞에 앉아 밥을 먹고 있었고 물에 빠진 생쥐 꼴이 된 그녀를 보고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비가 세게 내리길래 내일 올 줄 알았는데.”그날 한 시간 늦게 집으로 돌아온 신예린은 가족들이 먹다 남긴 반찬을 먹어야 했다.그러나 신민호는 달랐다. 부모님은 신민호가 십 분만 늦어도 걱정하며 연락을 했고 밥도 신민호가 도착해야 먹을 수 있었다.임정희가 신민호에게 연락하려던 때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려왔다.임정희는 곧바로 자리에서 일어나며 문가 쪽으로 걸어갔다.“민호 왔니?”신민호는 올해 16살로 아직 풋풋해 보였고 앞머리가 이마를 덮고 있었으며 반항심이 많아 보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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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화

손을 뻗어 검사 결과지를 건네받은 주시우는 신예린이 임신했다는 사실을 확인했을 때 눈빛이 살짝 달라졌다.신예린은 조심스럽게 그의 반응을 관찰했다. 그가 말없이 검사 결과지를 빤히 바라보자 신예린은 조금 당황해서 서둘러 말했다.“교수님, 교수님 아이 맞아요. 저, 저 교수님하고만 잤어요.”말을 마친 뒤 신예린은 저도 모르게 얼굴이 빨개졌다.주시우의 시선이 검사 결과지에서 그녀의 얼굴로 옮겨졌다.신예린이 그토록 긴장했던 이유를 이제 알 것 같았다.신예린은 아무것도 경험해 보지 못한 21살 대학생이었으니 임신했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는 매우 두렵고 불안했을 것이다. 그리고 다른 방법이 있었더라면 그를 찾아오지도 않았을 것이다.주시우는 단 한 번의 실수로 어린 여학생의 미래를 망친 자신을 속으로 욕했다. 그는 결과지를 테이블 위에 내려놓으면서 부드러운 목소리로 물었다.“너는 어떻게 하고 싶어?”그의 태연한 모습에 신예린은 조금 당황했다. 그의 의도를 알 수 없었다.신예린은 고개를 저으면서 망연한 표정으로 말했다.“모르겠어요. 저, 저는 조금 무서워요.”주시우는 끊임없이 떨리는 신예린의 손을 보자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무서운 건 당연해. 다른 사람들도 너 같은 나이에 이런 일을 겪었다면 다들 무서워했을 거야.”신예린은 고개를 숙인 채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주시우는 본인의 생각을 얘기하기 시작했다.“넌 겨우 21살이고 아직 대학교를 졸업하지 못했어. 지금 네게 가장 중요한 건 학업이야. 그러니 지금으로서는 아이를 지우는 게 최선이야.”예상했던 대답이었지만 신예린은 저도 모르게 심장이 쿵 내려앉아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부모님에게 얘기하지 못하겠어요. 그런데 수술하려면 가족들 사인이 필요하다고 하더라고요.”주시우는 신예린의 속눈썹이 파르르 떨리는 걸 보았다.“우선 사과부터 할게. 그날 내가 술을 마셔서 잠깐 자제력을 잃은 탓에...”주시우는 그 얘기를 꺼내기가 힘들었다.“연상인 내가 자제를 해야 했어.”신예린은 얼굴을 살짝 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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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화

주시우는 신예린이 이렇게 빨리 결정을 내릴 줄은 몰랐다.“결정한 거야?”“네.”신예린은 결연한 목소리로 말했다.“결정했어요. 대신 한 가지 부탁이 있어요.”“얘기해.”“저 결혼한다는 거, 저희 부모님에게는 당분간 비밀로 하고 싶어요.”주시우는 잠시 침묵했다.“그건 예의에 어긋나는 일이야. 결혼은 인생에서 아주 중요한 일이야. 비록 나는 한동안 해외에서 지냈지만 우리나라에서 결혼하려면 먼저 양가 부모님을 뵙고 동의를 얻어야 한다는 건 알고 있어. 그리고 언제 결혼할지, 예물은 어떻게 할지도 부모님과 다 상의해야 해. 그게 일반적이야.”신예린은 입술을 꽉 깨물었다.“전 그러고 싶지 않아요. 만약 제가 임신했다는 걸 아시면 저희 부모님께서는 무조건 아이를 지우라고 하실 거예요.”신경무는 체면을 매우 중요시하는 사람이었다. 만약 그들이 진실을 알게 된다면 그녀는 온갖 비난을 견뎌야 할 것이다.주시우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신예린은 주시우가 마음을 바꿀까 봐 무서워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다른 건 다 필요 없어요. 전 그냥 당장 결혼하고 싶어요.”신예린은 결국 울먹거리며 말했다.“교수님, 제게 필요한 건 집이에요.”신예린의 목소리가 수화기 너머 주시우의 귓가에 울려 퍼졌다.신예린이 홀로 외롭게 어둠 속에서 간절한 눈빛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모습이 주시우의 머릿속에 떠올랐다.잠시 침묵이 흘렀고 신예린은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그의 대답을 기다렸다.잠시 뒤, 주시우가 드디어 입을 열었다.“일단 내 카톡 추가하고 네 기본적인 개인정보들 나한테 보내줘. 일단은 시간부터 정한 뒤에 다시 얘기하자.”주시우가 동의하자 신예린은 기쁘게 웃어 보였다.“네.”“저녁이라서 밖은 좀 추울 테니까 집으로 돌아가.”주시우는 그녀가 밖에 있다는 것도 알아맞혔다.신예린은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네.”“일찍 쉬고 좋은 꿈 꿔.”그녀의 착각일까? 전화 너머에서 들려오는 주시우의 목소리는 놀라울 정도로 다정했다.그 뒤로 신예린은 그날 그에게 전화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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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화

구청에서 나왔을 때 신예린은 그제야 현실 감각을 되찾았다.‘이렇게 결혼을 해버리다니.’게다가 상대는 교수님이었다.고개를 돌려 주시우를 보니 혼인관계증명서를 들고 사진을 찍고 있었다.물론 주시우가 사진을 찍고 그 사진을 SNS에 올리지는 않을 것이다. 신예린이 그렇게 생각한 이유는 그의 SNS를 몰래 염탐했을 때 게시물이 하나도 없었기 때문이다.주시우는 그녀의 시선을 느끼고 설명했다.“부모님께 말씀드리려고.”신예린은 멈칫했다.“그러면 아저씨, 아주머님을 뵈어야...”주시우는 눈썹을 살짝 치켜올렸다.신예린은 그 순간 얼굴을 붉히면서 말을 바꿨다.“아버님, 어머님을 뵈러 가야 하는 거 아닌가요?”너무 어색해서 소름이 돋을 것만 같았다.“급해할 것 없어.”주시우는 서류를 챙기며 말했다.“지금 두 분은 해외에서 휴가를 보내고 계셔. 당분간은 귀국하시지 않을 거야.”“혹시 두 분께서 저를 마음에 들어 하지 않으시면...”신예린이 걱정했다.주시우는 매우 훌륭한 사람이지만 그녀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래서 주시우의 부모님이 자신을 마음에 들어 하지 않을 수도 있었다.“걱정하지 마. 네가 귀엽다고 하셨어.”“네?”신예린은 고개를 들어 주시우를 바라보면서 눈을 빛냈다.주시우가 설명했다.“네 사진을 보셨거든. 귀여운 아이니까 나더러 잘 챙겨주래.”신예린은 순간 얼굴을 붉혔다.주시우는 빨개진 신예린의 귀 끝을 바라보며 입꼬리를 당겼다.“오늘 약속 없으면 나랑 어디 좀 갈래?”“어디로요?”“가면 알게 될 거야.”주시우와 함께 집을 보러 가게 된 신예린은 조금 당황했다.부동산 중개인이 앞에서 걸으며 소개했다.“이 집은 남서향이고 베란다에서 노을을 볼 수 있어요. 가장 편리한 점은 인테리어가 다 되어 있어서 바로 입주 가능하다는 점이에요. 가구는 두 분이 원하시는 걸로 구매해서 놓으시면 돼요. 저랑 같이 방을 구경해 보실까요?”신예린은 주시우의 뒤를 따르고 있었는데 주시우가 갑자기 걸음을 멈춰서 하마터면 그와 부딪칠 뻔했다.“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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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화

“어?”신예린은 빠르게 머리를 굴렸다.“내, 내가 얘기 안 했었나? 내 동생이 농구하다가 다쳤거든. 그래서 병원에 데려다줬어.”“너희 엄마 계시잖아.”“엄, 엄마는 점심을 준비하셔야 하잖아.”“너희 가족들은 네 남동생을 진짜 아낀다. 너 대학교 다니면서 한 번도 결석한 적 없잖아. 그런데 동생이 다쳤다는 이유로 수업도 보지 못하고 동생을 돌봐주러 가야 하다니.”송지유가 툴툴거렸다.신예린은 너무 켕겨서 마음이 불편했다.만약 임정희가 신예린이 신민호를 저주했다는 걸 알게 된다면 아마 칼을 들고 학교까지 찾아올지도 몰랐다.“참, 어제 교수님도 휴가 내셨다던데.”송지유는 그 순간 손을 움찔 떨었다.“사실 어제 교수님 수업 있으셨거든. 그런데 다른 교수님께서 대신 수업을 하셨대. 그 교수님이 주 교수님에게 뭐 하러 가냐고 물으니까 주 교수님이 인생에서 아주 중요한 일을 처리하러 간다고 하셨대.”“그래?”신예린은 웃으며 말했다.“인생에서 아주 중요한 일이 뭘까?”신예린이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그, 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송지유는 턱을 만지작거렸다.“내 생각엔 결혼하러 가신 거야.”콜록콜록.신예린은 갑자기 사레가 들렸고 송지유는 신예린의 모습을 보고 크게 웃었다.“뭘 그렇게 당황해하는 거야? 농담이야.”전혀 재밌지 않은 농담이었다. 신예린은 식은땀이 흐를 것만 같았다.그녀는 조심스럽게 물었다.“만약 주 교수님께서 정말 결혼하셨다면?”“말도 안 돼. 다른 교수님 말을 들어 보니 입사하실 때까지만 해도 미혼이었다고 하던데?”어쩌면 어제 결혼한 걸 수도 있지 않은가?“만약에 교수님이 정말로 결혼하셨다면?”“나는 상관없어. 나는 그래도 이성적인 편이라서 말이야. 그냥 잘생기고 똑똑한 교수님을 보니까 부러운 거지. 하지만 다른 애들은 어떨지 모르겠어.”송지유는 눈을 가늘게 떴다.“예전에 들은 소문인데 우리 학교에서 이미 결혼한 교수님을 좋아한 학생이 있었대. 그런데 그 학생이 교수님의 아내를 납치해서 교수님과 이혼하라고 협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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