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방공 산업 회장의 외동딸, 이다정. 그녀의 일상은 늘 보호받고, 통제받고, 관리된다. 그리고 어느 날, 그녀의 앞에 한 남자가 앉는다. 말수 적고, 감정 없는 얼굴. 개인 운전 기사 김다온. 위협이 가까워질수록, 차 안의 공기는 숨 막히게 좁아지고 서로를 바라보는 눈은 더 깊어진다. 지켜야 하는 남자와 지켜지기만 하던 여자. 그들이 넘지 말아야 할 선은 언제나, 운전석과 뒷좌석 사이에 있었다. “기사님, 오늘은 저를… 어디까지 데려다줄 수 있어요?”
View More결혼식 날 아침.이다정은 화가 나 있었다.“안 돼요.”정유리가 단호하게 말했다.“왜.”“신부가 결혼식 시작 삼십 분 전에 신랑 보러 내려가는 게 어디 있어.”“보고 오면 되잖아.”“안 돼.”“내 결혼식인데.”“그래서 더 안 돼.”이다정은 드레스 차림으로 소파에 앉아 팔짱을 꼈다.황예은은 옆에서 웃느라 정신이 없었다.“그냥 좀 참아.”“뭘.”“삼십 분.”“왜 참아야 하는데.”정유리가 이마를 짚었다.“진짜 둘이 똑같아.”이다정의 눈이 가늘어졌다.“다온 씨도 이래?”“아까부터 네 상태 세 번 물었어.”황예은이 손가락을 하나씩 접었다.“밥 먹었냐.”둘.“긴장하냐.”셋.“힐 높은 거 신었는데 넘어질 가능성 없냐.”이다정의 표정이 풀렸다.“진짜?”정유리가 한숨을 쉬었다.“그걸 좋아하네.”“귀엽
비가 왔다.많이 오는 비는 아니었다.창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일정할 정도로 잔잔한 봄비였다.이다정은 대표실 창가에 서서 밖을 내려다봤다.퇴근 시간은 이미 지났다.오늘 마지막 회의도 끝났다.남은 일정도 없다.문제는 김다온이었다.연락이 없다.평소라면 늦어도 한 시간 전에는 일정이 끝났는지 확인했을 사람이다. 아무리 바빠도 저녁 약속이 있으면 먼저 연락했다.그런데 오늘은 오후 네 시 이후로 메시지 하나가 전부였다.[저녁에 뵙겠습니다.]끝.시간도 없었다.장소도 없었다.이다정이 휴대폰을 내려다봤다.“뭐 하자는 거야.”반지를 샀다는 건 거의 확실하다.본인은 끝까지 아니라고 했지만 의미 없었다.숨길 거면 더 잘 숨겼어야 한다.아버지가 메시지까지 보냈고.새집도 계약했고.결혼할 생각이라고 이미 말했다.남은 건 하나뿐이다.청혼.문제는 언제냐는 건데.이다정은 며칠째 신경 쓰지 않는 척하고 있었다.별로 성공적이지 않았다.대표실 문이 열렸다.“아직 계셨어?”황예은이었다.이다정이 돌아봤다.“왜.”“왜긴.”예은이 벽시계를 가리켰다.“여덟 시 반인데.”“알아.”“오늘 약속 있다며.”이다정의 눈이 가늘어졌다.“그걸 어떻게 알아.”황예은의 입이 멈췄다.
다음 날 저녁 일곱 시.김다온은 본가 현관 앞에 서 있었다.혼자였다.정확히는 혼자 오라는 연락을 받았다.이다정에게는 말하지 않았다.말하면 분명 따라올 테니까.그리고 이상하게도 오늘만큼은 혼자 가는 게 맞다고 생각했다.현관문이 열렸다.오래 본 비서가 김다온을 확인하고 고개를 숙였다.“기다리고 계십니다.”“예.”김다온은 안으로 들어갔다.이 집에 처음 왔을 때와는 느낌이 달랐다.그때는 경호 동선을 먼저 봤다.출입구.계단.사각.창문.지금도 습관처럼 눈은 움직였다.그런데 오늘은 그게 먼저 들어오지 않았다.거실.식탁.가족사진.이다정이 어릴 때 찍힌 사진 하나.그게 먼저 보였다.비서가 서재 문 앞에서 멈췄다.“들어가시면 됩니다.”김다온이 문을 열었다.이태준은 소파에 앉아 있었다.테이블 위에는 차 두 잔.그리고 서류 하나.김다온의 시선이 아주 잠깐 그 서류로 향했다.이태준이 말했다.“앉게.”김다온은 맞은편에 앉았다.침묵이 먼저 흘렀다.이태준이 차를 한 모금 마셨다.“집 샀다며.”김다온의 눈이 아주 미세하게 움직였다.빠르다.역시.“예.”“공동 명의.”“예.”“내 딸이 먼저
토요일 오전 열 시.이다정은 차에서 내리자마자 건물을 올려다봤다.“여기예요?”“첫 번째입니다.”김다온이 답했다.첫 번째.그 말이 마음에 걸렸다.이다정이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몇 개 봤어요?”“오늘은 세 곳입니다.”“아니.”한 박자.“나한테 보여주기 전에.”김다온이 잠깐 멈췄다.그 침묵이 수상했다.“몇 개 봤냐고요.”“…열두 곳 정도.”이다정의 눈이 커졌다.“열두 개?”“예.”“혼자?”“예.”“언제?”“시간 날 때마다.”“시간이 있었어요?”김다온은 대답하지 않았다.좋아.없었네.없는데 만들었네.이다정은 팔짱을 꼈다.“김 총괄님.”“네.”“나 몰래 집 열두 개 보러 다닌 거예요?”“몰래는 아닙니다.”“나한테 말 안 했잖아요.”“결정한 게 없으니까요.”틀린 말은 아니다.그런데 묘하게 얄밉다.“그리고.”이다정이 건물을 다시 올려다봤다.
“예은아, 왜?”“또 뭐 말하려고?”이다정은 서류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말했다.황예은은 문을 닫자마자 천천히 입꼬리를 올렸다.딸깍.“이다정.”예은이 팔짱을 끼며 말했다.“기사 뭐야.”그 말에 이다정의 펜 끝이 잠깐 멈췄다.“아침에 봤는데.”예은은 일부러 천천히 말을 끌었다.“너무 잘생겼는데?”이다정은 고개도 들지 않았다.“그거 말하려고 들어왔어?”“지금 회사야.”그러자 예은이 어깨를 으쓱했다.“회사 이전에—”그녀는 아무렇지 않게 다가와 이다정 책상 모서리에 엉덩이를 걸쳤다.“우리 초등학교 때부터
똑똑.“올라오시면 됩니다.”문 너머로 들린 비서의 목소리는 차분했다.김다온은 짧게 숨을 고르고 대답했다.“네, 비서님. 알겠습니다.”문을 열자, 넓은 회장실이 한눈에 들어왔다.유리창 너머로 내려다보이는 도심과 그 앞에 서 있는 한 남자.이다정의 아버지, 이회장이었다.그는 등을 보인 채 서 있었다.마치 김다온이 들어오는 걸 이미 알고 있었다는 듯이.“문 닫게.”김다온은 아무 말 없이 문을 닫았다.찰칵—이회장은 그제야 몸을 돌렸다.손에는 태블릿 하나가 들려 있었다.“출근 첫날은 어땠나.”“무사히 마쳤습니다
다음 날 아침.이다정은 낯선 소리에 눈을 떴다.저택 앞마당에서 엔진이 조용히 걸리는 소리였다.낮게, 그러나 단정하게 이어지는 진동.익숙한 소리가 아니었다.이다정은 잠시 눈을 깜빡였다.아직 완전히 깨어나지 않은 머릿속에 어젯밤의 장면이 천천히 떠올랐다.빗속, 차 안 그리고— 그 남자.이다정은 이불을 밀어내고 일어나 창가로 걸어갔다.커튼을 조금 젖히자 아침 햇빛이 방 안으로 부드럽게 흘러들었다.그 아래, 저택 앞마당에 검은 세단 한 대가 서 있었다.그리고 그 옆에 어제의 남자.김다온이었다.오늘의 그는 어제와 달
보고서는 얇았다.이상할 정도로.이다정의 아버지, 이회장은서류를 넘기다 말고 손을 멈췄다.종이 몇 장.운전 경력 몇 줄.그리고—길게 비어 있는 공백.“이게 전부인가.”낮은 목소리였다.하지만 회의실 안 공기가 동시에 조여들었다.“네, 회장님.”비서실장이 조심스럽게 말했다.“주민등록, 병역, 면허 기록까지는 정상입니다.하지만 그 이상은… 추적이 어렵습니다.”이회장은 서류 맨 위를 다시 보았다.김다온.스물아홉.최근 1년, 무직.“대리기사로 등록된 건 언제지.”“3개월 전입니다.”짧은 침묵이 흘렀다.
review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