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ICIAR SESIÓN“…스승님.”테오도르는 검은 종이를 바라봤다.미래를 바꾸지 마라.그리고.흑막은 반드시 태어나야 한다.조금 전까지만 해도 선명했던 붉은 글씨가 서서히 흐려지고 있었다.마치.처음부터 아무것도 적혀 있지 않았던 것처럼.테오도르는 즉시 책상 위에 놓인 종이와 펜을 집었다.사각.사각.기억이 사라지기 전에 그대로 옮겨 적었다.문장.글씨의 모양.등장한 순서.그리고.종이를 만졌을 때 느껴졌던 이상한 냉기까지.모두.“전하.”문밖에서 수행원의 목소리가 들렸다.“괜찮으십니까?”테오도르는 검을 내려다봤다.“…괜찮다.”“방금 소리가.”“아무것도 아니다.”그는 천천히 창문을 닫았다.철컥.하지만.아무것도 아닐 리 없었다.누군가 자신의 방에 들어왔다.아니.더 정확히 말하면.누군가 자신에게 메시지를 전달했다.황태자가 묵는 방에.누구에게도 들키지 않고.‘북부 내부 사람인가.’아니면.‘처음부터 나를 따라온 건가.’테오도르의 눈빛이 차갑게 가라앉았다.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상대는.엘라가 미래를 바꾸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테오도르는 검은 종이를 천천히 접었다.‘스승님께.’말해야 한다.당장.그렇게 생각한 순간.손이 멈췄다.엘라라면 어떻게 할까.분명.위험하다고 말려도 뛰어들 것이다.상대가 누구인지 확인하겠다며.그리고 지금.단테를 지키려는 데 누구보다 진심이었다.‘아니.’그래서 더더욱.조심해야 한다.테오도르는 천천히 의자에 앉았다.“내일.”그가 낮게 중얼거렸다.“확인부터 한다.”누가.어떻게.이 종이를 넣었는지.그 전에.괜한 불안만 만들어서는 안 됐다.⸻같은 밤.엘라는 잠들지 못하고 있었다.“…”천장을 바라봤다.한 번.옆으로 돌아누웠다.두 번.다시 반대편.세 번.“…아.”결국.벌떡.일어났다.“잠 안 와.”오늘 있었던 일들이 자꾸 머릿속을 맴돌았다.중간 평가.테오도르의 질문.단테의 대답.그리고.신탁.북부대공 단테 아르젠트로 인해 제국은
“…맞는 것 같은데.”단테는 심각했다.아주 심각했다.전쟁을 앞두고 작전 회의를 할 때보다.마수 수백 마리가 성벽으로 몰려왔을 때보다.어쩌면.황제에게 반역 혐의를 받았을 때보다도.지금이 더 심각했다.‘좋아한다.’테오도르가 던진 단어 하나가 머릿속에서 사라지지 않았다.엘라를?자신이?단테는 미간을 좁혔다.‘말이 안 된다.’처음 만났을 때부터 귀찮았다.허락도 없이 북부에 찾아왔고.자신을 교육하겠다고 선언했고.밥을 먹으라고 쫓아다니고.기사들의 이름을 외우게 하고.차를 마시게 하고.문제를 내면서.“하나, 둘, 넷, 다섯.”따위의 말도 안 되는 숫자를 셌다.그리고.시도 때도 없이 가까이 왔다.뺨을 만지고.이마를 찌르고.손을 잡고.자신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면서.잘생겼다고 했다.“…”단테는 생각을 멈췄다.이상했다.싫었던 기억을 떠올리려고 했는데.왜.전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지.“전하?”“…”바로 앞에서 목소리가 들렸다.단테가 고개를 들었다.엘라였다.“…왜.”“그건 제가 물어볼 말인데요.”엘라가 고개를 갸웃했다.“아까부터 왜 그렇게 쳐다보세요?”“…내가?”“네.”“…”단테는 즉시 시선을 돌렸다.엘라의 눈이 가늘어졌다.“수상한데.”“아니다.”“뭔가 숨기고 있죠?”“없다.”“전하.”엘라가 검지를 세웠다.“문제.”단테의 표정이 굳었다.“지금 무슨 생각했어요?”“…”“5초.”“…”“하나.”단테는 그녀를 바라봤다.“둘.”“…”엘라의 입꼬리가 올라갔다.“넷.”그리고.단테가 말했다.“너.”“…”엘라가 멈췄다.“…네?”“네 생각.”“…”“했다.”엘라의 입이 조금 벌어졌다.단테도 말하고 나서야 깨달았다.‘왜.’‘그걸 솔직하게 말했지.’두 사람 사이에 침묵이 내려앉았다.엘라가 천천히 눈을 깜빡였다.“…제 생각을.”“…”“왜요?”단테는 대답하지 않았다.대답할 수 없었다.자신도 그 이유를 알아내는 중이었으니까.그 순간.짝짝짝.박수 소리가
“스승님은 어디 계십니까?”황태자의 질문에 기사가 훈련장 쪽을 가리켰다.“대공 전하와 함께 계십니다.”“…함께?”“예.”황태자의 시선이 천천히 훈련장 쪽으로 향했다.“요즘은 거의 매일 함께 계십니다.”“…그래요?”입가에는 여전히 부드러운 미소가 걸려 있었다.하지만.오랫동안 황태자를 보좌해 온 수행원은 알았다.저 미소.굉장히 재미있는 걸 발견했을 때 나오는 표정이었다.“가시겠습니까?”“그래야죠.”황태자가 걸음을 옮겼다.“우리 스승님께서.”그의 푸른 눈이 장난스럽게 휘었다.“북부에서는 또 무슨 사고를 치고 계신지 궁금하니까.”⸻“다음.”단테가 편지를 펼쳤다.엘라는 그의 옆에서 쿠키를 우물거렸다.벌써 열두 통째였다.처음에는 편지를 잡는 것조차 어색해하던 단테였지만.이제는 제법 익숙해졌다.“뭐라고 쓰여 있어요?”“…잠깐.”“왜요?”단테가 편지를 조금 멀리했다.“글씨가.”“…”“…너무 자유롭군.”엘라가 고개를 빼꼼 내밀었다.“어디 봐요.”“…”“아.”다섯 살짜리 아이의 편지였다.종이에는 글자보다 그림이 많았다.커다란 사람 하나.그 옆에 작은 사람 셋.그리고 정체를 알 수 없는 동그라미.엘라는 진지하게 그림을 살폈다.“이게 전하인가 봐요.”“…왜.”“제일 크잖아요.”“…”“그리고 이게 검.”단테가 그림을 내려다봤다.“…막대기 같은데.”“검이에요.”“어떻게 알지.”“옆에 칼이라고 써 있잖아요.”“…”단테가 침묵했다.정말이었다.엘라가 웃음을 터뜨렸다.“전하.”“…왜.”“아이들 그림은 처음 보세요?”“…그런 것 같다.”“그럼 이것도 교육이네요.”“…뭐가.”“아이 그림 이해하기.”“…필요한가.”“당연하죠.”엘라는 쿠키를 하나 더 집었다.“나중에 전하한테 아이가 생기면—”우뚝.단테의 손이 멈췄다.엘라도 멈췄다.“…”“…”왜인지.방금 한 말이 이상하게 들렸다.엘라는 황급히 말을 덧붙였다.“아니.”“…”“언젠가 결혼하시면요.”“…”더 이상해
다음 날.단테는 평소보다 조금 일찍 훈련장에 나와 있었다.정확히는.아무도 없는 훈련장 한가운데 서서 검을 휘두르고 있었다.쉬익―!차가운 검기가 새벽 공기를 갈랐다.한 번.두 번.세 번.평소와 다르지 않은 훈련이었다.그런데.단테의 시선이 자꾸만 훈련장 입구로 향했다.“…”아무도 없었다.다시 검을 휘둘렀다.쉬익―!“…”그리고 또.입구.없다.단테의 미간이 아주 조금 좁아졌다.‘아직인가.’해가 완전히 뜨려면 조금 더 남았다.평소라면 엘라도 아직 오지 않을 시간이었다.그런데.이상하게 신경이 쓰였다.어제 자신이 한 말 때문일까.내일은 늦지 마.기다리게 되니까.그 말을 떠올리는 순간.단테는 검을 멈췄다.“…”왜 그런 말을 했을까.굳이.말하지 않아도 됐는데.엘라가 늦든 말든 자신과는 상관없는 일이었다.원래대로라면.그랬다.“전하.”뒤에서 목소리가 들렸다.단테가 곧바로 고개를 돌렸다.휴고였다.“…왜.”휴고는 단테의 시선을 따라 훈련장 입구를 슬쩍 바라봤다.그리고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말했다.“아직 공녀님은 안 오셨습니다.”“…”단테가 천천히 휴고를 바라봤다.“묻지 않았다.”“예.”“…”“그런데.”휴고가 안경을 한 번 고쳐 썼다.“벌써 네 번째 보셔서요.”“…뭘.”“입구를.”“…”단테의 표정이 굳었다.휴고는 침착했다.아주 오랫동안 단테를 보좌해 온 집사였다.그 정도 눈치는 있었다.“제가 잘못 본 것이라면 죄송합니다.”“…”단테는 아무 말 없이 다시 검을 들었다.휴고는 고개를 숙였다.그러나.입꼬리는 아주 조금 올라가 있었다.그 순간.“좋은 아침입니다!”익숙한 목소리가 훈련장을 가득 채웠다.탁.단테가 검을 멈췄다.휴고가 아주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멀리서 엘라가 달려오고 있었다.오늘은 늦지 않았다.오히려 평소보다 조금 빨랐다.은빛 머리카락이 아침 햇살에 반짝였다.엘라는 단테를 발견하자 더 크게 손을 흔들었다.“전하!”“…”단테는 자신도 모르게
다음 날 아침.엘라는 평소보다 조금 늦게 훈련장으로 향했다.정확히는.일부러 늦게 갔다.‘오늘은 내가 먼저 안 찾는다.’아주 중요한 결심이었다.전날 밤.딸기 타르트를 먹으며 혼자 한참 고민한 끝에 내린 결론.단테 아르젠트는 위험했다.검이 위험한 게 아니라.요즘 자꾸.자신의 심장에 좋지 않았다.그러니까.조금 거리를 둬야 했다.아주 조금.“공녀님!”훈련장 입구에서 로웬이 손을 흔들었다.“오늘 늦으셨네요!”“네.”엘라는 최대한 태연하게 웃었다.“가끔은 늦을 수도 있죠.”“전하께서 찾으셨는데요.”엘라의 걸음이 멈췄다.“…뭐라고요?”“아침부터요.”하인츠가 슬쩍 끼어들었다.“세 번쯤.”“…세 번?”브랜이 고개를 끄덕였다.“처음에는 ‘엘라는?’이라고 하셨고.”“두 번째는 ‘아직인가.’”“세 번째는.”로웬이 웃음을 참으며 말했다.“‘왜 안 오지.’”“….”엘라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기사 셋이 동시에 그녀의 얼굴을 살폈다.“공녀님.”“….”“왜 웃으세요?”“…안 웃었는데요.”“웃으셨는데.”엘라는 빠르게 표정을 정리했다.“착각입니다.”“전하도 맨날 그렇게 말하시는데.”“….”요즘 북부 기사들이 너무 빨리 배웠다.안 좋은 것만.그때였다.“…엘라.”익숙한 낮은 목소리.엘라의 어깨가 아주 미세하게 움찔했다.고개를 돌리자.단테가 훈련장 중앙에 서 있었다.검은 제복.검은 머리.차가운 얼굴.그리고.여전히 잘생겼다.‘…아.’거리 두기 실패.보자마자 실패했다.엘라는 속으로 한숨을 삼키며 다가갔다.“좋은 아침입니다.”“…늦었군.”“네.”“왜.”“늦잠이요.”“….”단테의 눈이 가늘어졌다.“거짓말.”“…왜요?”“네가 늦잠을 자면.”그가 아주 태연하게 말했다.“더 늦는다.”“….”엘라가 멈칫했다.“그걸 어떻게 아세요?”“….”이번에는 단테가 잠시 말을 멈췄다.엘라의 눈빛이 서서히 변했다.“전하.”“…왜.”“제 생활 패턴도 알고 계세요?”“관찰.”
“거기 서.”“싫습니다!”“엘라.”“못 잡으면 제 겁니다!”하얀 눈밭 위로 두 사람이 정신없이 달려갔다.정확히 말하면.엘라가 도망가고.단테가 쫓아가는 중이었다.“하아.”엘라는 뒤를 힐끗 돌아봤다.그리고 곧바로 얼굴을 굳혔다.‘왜 안 지쳐?’자신도 체력에는 꽤 자신이 있었다.어릴 때부터 아버지에게 산으로 들로 끌려 다니며 죽도록 굴렀으니까.그런데 단테는 달랐다.분명 아까 자신과 한참 대련했다.호흡도 거칠어졌고.땀까지 흘렸다.그런데 지금은.“…빨라!”거리가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다.“엘라.”등 뒤에서 낮은 목소리가 들렸다.“네!”“마지막 경고다.”“싫다고요!”“수첩을 내놔.”엘라는 품 안에 수첩을 더 깊숙이 넣었다.“이건 교육 자료예요!”“내 귀가 빨개진다는 내용이.”“…”“무슨 교육 자료지.”“…심리 관찰?”“삭제해.”“싫어요.”“엘라.”“싫습니다!”엘라는 있는 힘껏 속도를 높였다.그 순간.푹.발이 눈 속 깊숙이 빠졌다.“…어?”몸이 앞으로 기울었다.‘망했다.’눈밭에 얼굴부터 처박힐 것을 각오한 순간.탁.누군가 허리를 낚아챘다.“…!”엘라의 몸이 그대로 멈췄다.그리고.익숙한 체온이 등에 닿았다.단테였다.한 팔이 엘라의 허리를 단단히 감싸고 있었다.“…”“…”엘라는 눈을 깜빡였다.‘잠깐.’‘이 자세는.’허리에 둘러진 팔.바로 뒤에서 느껴지는 단테의 숨결.무엇보다.너무 가깝다.“…전하.”“왜.”“이거.”엘라가 자신의 허리를 내려다봤다.“…”“스킨십인데요?”단테의 팔이 순간 굳었다.“…넘어질 뻔했으니까.”“그렇긴 한데.”엘라가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바로 옆에 단테의 얼굴이 있었다.가까웠다.지나치게.엘라의 눈이 가늘어졌다.“…전하.”“왜.”“귀.”“…”“또 빨개졌어요.”단테의 표정이 굳었다.“…수첩.”“안 줘요.”“지금.”엘라는 씨익 웃었다.“그럼 문제 하나 맞히세요.”“…뭐?”“맞히면.”그녀가 수첩을 살짝 꺼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