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특명! 흑막을 훈련시켜라》: Chapter 1 - Chapter 10

23 Chapters

이번 특명은 흑막입니다

“싫습니다.”엘라 에스텔은 단호하게 말했다.너무 단호해서 황제의 집무실 안에 있던 대신 셋이 동시에 숨을 삼켰다.황제는 천천히 눈을 들었다.“아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는데.”“폐하께서 저를 부르셨잖아요.”“그래서?”“좋은 일일 리가 없죠.”“…….”정곡이었다.황제는 손에 들고 있던 문서를 슬며시 내려놓았다.엘라는 소파에 깊숙이 몸을 묻은 채 팔짱을 꼈다. 황제 앞에서 다리를 꼬고 앉는 귀족 영애는 제국을 전부 뒤져도 그녀밖에 없을 것이다.하지만 그 누구도 엘라의 자세를 지적하지 못했다.엘라 에스텔.에스텔 공작가의 둘째이자, 황실이 해결하지 못하는 모든 문제를 처리하는 특명 담당자.그리고 제국 역사상 가장 악명 높았던 황자 셋을 사람으로 만들어 낸 장본인.그녀가 손을 댄 뒤로 황태자는 더 이상 대신들에게 잉크병을 던지지 않았고, 제2황자는 술에 취해 기사단 숙소 지붕을 뜯지 않았으며, 제3황자는 황궁 연회장 한가운데 소환진을 그리지 않게 되었다.기적이었다.황궁 사람들은 그렇게 말했다.황자들은 절대 동의하지 않았지만.“이번엔 정말 별일 아닐 수도 있지 않으냐.”황제가 태연하게 말했다.엘라는 눈을 가늘게 떴다.“지난번에도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그랬나?”“그래 놓고 제3황자를 마탑에서 끌고 나오라고 하셨죠.”“덕분에 잘 해결되지 않았느냐.”“마탑의 서쪽 벽이 무너졌습니다.”“벽은 다시 세우면 된다.”“제 머리카락도 탔고요.”“다시 자랐지.”엘라가 입을 다물었다.반박할 말이 없어서가 아니었다.황제에게 할 말이 너무 많아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몰랐기 때문이다.고민 끝에 엘라는 가장 중요한 결론만 입에 담았다.“아무튼 싫습니다.”“이번에도 아직 설명하지 않았다.”“설명 안 하셔도 됩니다.”엘라는 소파에서 몸을 일으켰다.“저는 오늘부터 휴가입니다.”“누가 허락했지?”“제가요.”“짐은?”“이미 쌌습니다.”“어디로 갈 생각이지?”“남부요.”엘라의 얼굴에 오랜만에 생기가 돌았다.따뜻한 햇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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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특명은 흑막입니다

북부에 도착한 것은 사흘 뒤였다. 마차 문이 열리자마자 차가운 바람이 얼굴을 후려쳤다. 휘이이잉— “…춥다.” 엘라는 담요를 머리끝까지 끌어올렸다. 남부의 햇살을 꿈꾸던 사람이 눈 덮인 북부에 와 있었다. 인생이 참 뜻대로 되지 않았다. “공녀님.” 마차 옆에서 집사가 고개를 숙였다. “북부대공성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엘라는 고개만 까딱였다. “대공은?” “…훈련 중이십니다.” “눈 오는데?” “…예.” “폭설인데?” “…예.” 엘라는 잠시 집사를 바라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운동 좋아하는 사람이네.’ 왠지 말이 통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 대공성 안은 생각보다 훨씬 조용했다. 복도에는 기사들이 줄지어 서 있었지만 아무도 말을 하지 않았다. 웃는 사람도 없었다. 숨소리조차 죽인 채 긴장하고 있었다. 엘라는 작게 중얼거렸다. “장례식이야?” 앞서 걷던 집사가 움찔했다. “죄송합니다?” “아니, 분위기가.” “…원래 그렇습니다.” “대공 때문에?” “…예.” “성격이 많이 더럽나 보네.” “…” 집사는 끝내 대답하지 못했다. 그 침묵이 곧 대답이었다. 엘라는 속으로 피식 웃었다. ‘황자 셋보다 심할까.’ 그 정도면 오히려 흥미가 생겼다. 황궁에서도 다들 황자들은 절대 못 고친다고 했다. 결과는? 지금은 황태자가 먼저 아침 인사를 하는 수준이었다. ‘사람은 안 바뀌는 게 아니라.’ ‘바뀔 기회가 없었을 뿐.’ 그게 엘라의 신조였다. ──────── 쾅! 멀리서 검이 부딪히는 소리가 들렸다. “훈련장이군.” 집사가 조용히 문을 열었다. 순간. 차가운 공기가 한꺼번에 밀려왔다. 새하얀 설원. 끝없이 펼쳐진 눈밭. 그리고. 그 한가운데. 한 남자가 검을 휘두르고 있었다. 쉬익— 콰앙! 눈이 폭발하듯 흩날렸다. 검 한 번. 두 번. 세 번째 검이 허공을 가르자 수십 미터 떨어진 바위가 반으로 갈라졌다. “…” 엘라는 아무 말도 하지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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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은 오늘부터입니다

“…돌아가.”첫 만남에서 나온 첫마디였다.단테 아르젠트는 황명서를 대충 훑어본 뒤 그대로 엘라에게 돌려주었다.“오늘 안으로 황도로 돌아가.”“…싫습니다.”“난 교육을 받을 생각이 없다.”“전 받을 생각이 있는데요.”“…”“…”훈련장에 다시 정적이 흘렀다.북부 기사들은 숨도 제대로 쉬지 못했다.‘대공님이 화내신다.’‘끝났다.’‘공녀님은 오늘이 마지막이겠군.’하지만.정작 엘라는 아무렇지도 않았다.“거절합니다.”“황명을 거부하는 건가.”“아뇨.”엘라가 웃었다.“전하는 거부하셔도 됩니다.”“…?”“어차피 교육은 제가 하는 거니까요.”단테의 눈썹이 미세하게 꿈틀거렸다.살면서 이렇게까지 말이 안 통하는 사람은 처음이었다.“…미친 여자인가.”“아까도 그 말씀 하셨습니다.”“…”“같은 대사는 감점입니다.”“…감점?”“네.”엘라는 품속에서 작은 수첩 하나를 꺼냈다.겉표지에는 귀여운 글씨로 적혀 있었다.『흑막 갱생 일지』단테의 미간이 더욱 깊게 찌푸려졌다.“…그건 또 뭐지.”“교육 기록이요.”엘라는 아무렇지 않게 첫 장을 펼쳤다.오늘 날짜 아래에는 이미 한 줄이 적혀 있었다.> 첫인상 : 엄청 잘생김.단테의 시선이 그 문장을 읽었다.“…”“…”“…지워.”“싫어요.”“왜.”“사실이니까.”엘라는 태연하게 다음 줄을 적었다.> 성격 : 최악.> 개선 가능성 : 있음.> 웃는 모습 보고 싶음.단테는 태어나 처음으로 사람을 어떻게 상대해야 할지 몰랐다.“…집사.”“예, 전하!”“저 사람을 내보내.”집사가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죄송합니다만…”“…”“황명이라…”“…”“제가 막을 수가 없습니다.”단테는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좋다.”그는 검을 검집에 넣으며 몸을 돌렸다.“마음대로 해.”“네.”“하지만.”차가운 은빛 눈동자가 엘라를 향했다.“난 협조하지 않는다.”엘라는 빙긋 웃었다.“괜찮아요.”“…?”“원래 말 안 듣는 사람만 교육해 봤거든요.”“…”“말 잘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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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은 오늘부터입니다

똑똑.노크 소리가 울렸다.“…”대답은 없었다.엘라는 잠시 문을 바라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들어오라는 뜻이네.”끼익.문이 열렸다.“…”“…”커다란 집무실 안에는 종이를 넘기는 소리만 조용히 울리고 있었다.창가에는 눈이 내리고 있었고, 벽 한쪽에는 북부 전역을 그린 지도가 걸려 있었다.그리고.책상 앞.단테 아르젠트는 수북이 쌓인 서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엘라는 한참 동안 그 모습을 바라봤다.‘생각보다 더 바쁘네.’훈련이 끝나면 쉬는 줄 알았다.그런데 아니었다.전쟁 보고.식량 배분.마수 토벌.국경 순찰.기사단 인사.결재해야 할 서류가 산더미였다.그는 잠시도 쉬지 않고 서류를 넘기고 있었다.“…무슨 일이지.”고개도 들지 않은 채 단테가 말했다.“교육하러 왔어요.”“…돌아가.”“싫어요.”“…”“황명입니다.”“…”“거부하실 수는 있지만 전 계속 올 거예요.”단테는 천천히 펜을 내려놓았다.은빛 눈동자가 엘라를 향했다.“포기라는 건 모르나.”엘라는 활짝 웃었다.“잘 알아요.”“…”“그래서 안 하는 거예요.”“…”“포기하면 제가 편해지긴 하는데.”그녀는 어깨를 으쓱했다.“그럼 전하는 계속 불행하잖아요.”순간.집무실 안이 조용해졌다.단테의 시선이 아주 잠깐 흔들렸다.그는 아무 말 없이 다시 서류를 집어 들었다.엘라는 그의 맞은편 의자를 끌어당겼다.드르륵.“…”“…”“앉을게요.”“허락한 적 없다.”“안 말리셨잖아요.”털썩.엘라는 자연스럽게 자리에 앉았다.잠시 후.품속에서 작은 수첩 하나를 꺼냈다.표지에는 금박으로 적혀 있었다.『흑막 갱생 일지』사각.사각.펜촉이 종이를 스쳤다.단테는 결국 시선을 들었다.“…뭘 쓰는 거지.”엘라는 수첩을 살짝 돌려 보여 주었다.────────관찰 기록✔ 엄청 잘생김✔ 성격 까칠함✔ 책임감 매우 강함✔ 잠을 거의 안 잠□ 웃음 없음□ 친구 없음□ 사람 안 믿음□ 혼자 해결하려 함────────“…”“…”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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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 교육은 식사입니다

이른 아침.북부대공성의 주방은 전쟁터였다.“공녀님! 안 됩니다!”“왜요?”“그걸 직접 드시면…!”“아니요.”엘라는 앞치마를 단단히 묶으며 웃었다.“제가 먹는 게 아니라.”“…?”“대공 전하가 드실 거예요.”순간.주방 전체가 얼어붙었다.요리장이 들고 있던 국자가 바닥으로 떨어졌다.“대공께서… 식당에 오신다고요?”“아뇨.”“그럼?”“제가 데려올 건데요.”“…”“…”“…”아무도 말을 잇지 못했다.북부에서 가장 어려운 일은 마수 토벌도, 폭설 속 순찰도 아니었다.단테 아르젠트를 식당으로 데려오는 것.그것이 모두가 인정하는 가장 어려운 일이었다.엘라는 고개를 갸웃했다.“평소엔 어떻게 식사하세요?”요리장이 조심스럽게 대답했다.“…집무실로 가져다드립니다.”“같이 안 먹어요?”“…예.”“기사들도?”“…예.”“혼자?”“…예.”엘라는 한숨을 쉬었다.“역시.”예상은 했지만 심각했다.식사란 단순히 배를 채우는 시간이 아니었다.사람과 사람이 마주 앉아 하루를 나누는 시간이었다.그런데 단테는 늘 혼자였다.‘혼자 먹고.’‘혼자 일하고.’‘혼자 버티고.’엘라는 머리를 긁적였다.“이건 안 되겠네.”그녀는 곧바로 메뉴판을 집어 들었다.“전하가 좋아하는 음식은요?”주방은 다시 조용해졌다.“…”“…”“…”“설마.”엘라가 눈을 크게 떴다.“그것도 몰라요?”요리장이 민망한 표정으로 고개를 숙였다.“…전하께서는.”“…”“늘.”“…”“아무거나.”“…”“드십니다.”엘라는 잠시 멍하니 서 있었다.그러다 천천히 웃었다.“좋아요.”“…?”“그럼 오늘부터 찾아보죠.”그녀는 손뼉을 짝 쳤다.“첫 번째 교육.”“좋아하는 음식 만들기!”────────같은 시각.단테는 여느 때처럼 집무실에서 서류를 보고 있었다.똑.문이 두드려졌다.“…들어와.”문이 열리자 하인이 쟁반을 들고 들어왔다.단테는 시선도 주지 않은 채 펜을 움직였다.“놓고 가.”“…예.”잠시 뒤.발소리가 사라지지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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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 교육은 식사입니다

“…이제 다른 방법을 써야겠군.” 엘라가 싱긋 웃었다. 단테는 그 미소를 보며 묘한 불안감을 느꼈다. “…무슨 방법이지.” 엘라는 품속에서 작은 종이 한 장을 꺼냈다. 그리고 책상 위에 탁 내려놓았다. 『오늘의 교육』 1. 함께 식사하기 2. 대화하기 3. 서로를 알아가기 단테는 한 줄만 읽고 종이를 밀어냈다. “안 한다.” “예상했습니다.” “…” “그래서 준비했죠.” 엘라는 다시 수첩을 펼쳤다. 사각. 사각. 무언가를 적더니 단테를 향해 손가락을 들어 보였다. “교육 규칙.” “…” “문제를 맞히면 오늘은 그냥 넘어갑니다.” “…” “틀리면 벌칙.” 단테가 피식 비웃었다. “유치하군.” “참여하신다는 뜻인가요?” “…아니다.” “좋아요.” 엘라는 손뼉을 짝 쳤다. “첫 번째 문제.” 그녀는 잠시 뜸을 들였다. “북부에서 가장 중요한 사람은?” “…” “…” 단테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엘라는 천천히 숫자를 세기 시작했다. “하나.” “둘.” “…” “넷.” “…” “다섯.” 단테가 눈썹을 찌푸렸다. “…셋은.” 엘라가 태연하게 대답했다. “북부가 추워서 얼었어요.” “…” “…” “…그게 말이 되나.” “안 되죠.” “그럼.” “그래도 벌칙입니다.” 단테는 어이가 없다는 듯 그녀를 바라봤다. “…억지 아닌가.” “교육은 원래 억지예요.” 엘라는 의자에서 일어나 그의 앞으로 다가갔다. 단테는 움직이지 않았다. ‘설마.’ ‘뭘 하려는 거지.’ 북부 기사들이 창문 너머로 슬금슬금 고개를 내밀었다. 집사 휴고도 복도 끝에서 숨을 죽였다. ‘공녀님.’ ‘설마 진짜…’ 엘라는 단테 앞에 멈춰 섰다. 그리고. 툭. 검지손가락으로 그의 이마를 아주 가볍게 건드렸다. “…” “…” “…” “벌칙 끝.” 단테는 그대로 굳었다. “…끝인가.” “네.” “…” “…” “…이게.” “벌칙입니다.” 단테는 천천히 자신의 이마를 만졌다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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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이 먹는 밥

“…가시죠.”엘라가 먼저 문을 열었다.단테는 잠시 그녀의 등을 바라봤다.이상한 여자였다.분명 자신은 식사를 거절했다.그런데 어느새 같이 식당으로 가고 있었다.‘왜 따라가는 거지.’스스로도 이해되지 않았다.하지만.약속은 약속이었다.‘한 번뿐이다.’그는 그렇게 자신을 납득시키며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북부대공성 식당.점심시간이 되자 기사들과 사용인들이 하나둘 자리에 앉기 시작했다.언제나처럼 조용했다.숟가락이 그릇에 닿는 작은 소리만 울렸다.그때였다.끼익.식당 문이 열렸다.“…”“…”“…”가장 먼저 들어온 사람은 엘라였다.그리고.그 뒤를 따라.단테가 모습을 드러냈다.쨍그랑!누군가 포크를 떨어뜨렸다.달그락.컵 하나가 기울었다.기사 하나가 먹던 빵을 그대로 삼키다 사레가 들렸다.“콜록!”식당 전체가 순식간에 얼어붙었다.“…”“…”“…”단테는 익숙하다는 듯 주변을 한 번 둘러봤다.“계속 먹어.”낮고 담담한 목소리.평소라면 그 말이 떨어지는 순간 모두가 다시 식사를 시작했다.하지만 오늘은 달랐다.아무도 움직이지 않았다.모두의 시선은 단테와 엘라에게 향해 있었다.정확히는.‘왜 공녀님이 살아 계시지?’라는 얼굴이었다.엘라는 그 시선을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우와.”식당 안을 둘러보며 감탄했다.“생각보다 엄청 넓네요.”단테는 대답하지 않았다.엘라는 자연스럽게 그의 옆 의자를 끌어당겼다.드르륵.“…”“…”“…”기사들이 동시에 눈을 크게 떴다.‘옆…?’‘바로 옆이라고…?’‘공녀님 진짜 무서운 분이네.’엘라는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 자리에 앉았다.그리고 단테를 올려다봤다.“앉으세요.”“…”“…명령인가.”“권유입니다.”잠시 침묵.결국 단테는 말없이 자리에 앉았다.그 순간.식당 안의 공기가 다시 굳었다.‘앉았다.’‘진짜 같이 앉았다.’‘꿈인가…?’집사 휴고조차 믿기지 않는 표정이었다.평소라면 단테는 식당에 오지 않았다.늘 집무실에서 혼자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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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이 먹는 밥

식당 안은 이상하리만큼 조용했다.수십 명이 같은 공간에 있었지만.숟가락 부딪히는 소리 하나 들리지 않았다.엘라는 한 사람 한 사람의 얼굴을 바라봤다.기사들.사용인들.하녀들.모두 단테의 눈치를 보고 있었다.‘이렇게는 안 돼.’식사는 즐거워야 했다.밥을 먹는 시간이 긴장의 시간이 되어서는 안 된다.엘라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공녀님?”휴고가 놀란 얼굴로 바라봤다.엘라는 두 손을 짝 하고 맞부딪쳤다.짝!“좋아요!”“…?”“오늘부터.”그녀가 활짝 웃었다.“북부 식당에는 새로운 규칙이 생깁니다.”기사들이 서로를 바라봤다.‘규칙?’‘또 무슨 일을 하시려는 거지?’엘라는 손가락 하나를 들어 올렸다.“식사는.”둘.“맛있게.”셋.“즐겁게.”그리고 마지막.“다 같이!”“…”“…”“…”정적.누군가 조심스럽게 물었다.“…다 같이요?”“네.”“말하면서요?”“네.”“…웃으면서도?”“당연하죠.”기사들의 표정은 세상이 끝난 것 같았다.그 모습을 본 엘라는 피식 웃었다.“그럼 분위기도 풀 겸.”품속에서 작은 카드 한 장을 꺼냈다.“퀴즈!”단테가 미간을 찌푸렸다.“…또 시작이군.”엘라는 싱긋 웃었다.“전하도 참가입니다.”“안 한다.”“안 하는 사람도 참가입니다.”“…그게 무슨 말이지.”“제 규칙이요.”기사 몇 명이 웃음을 참느라 입술을 깨물었다.‘대공님이 당하고 계셔.’‘이걸 웃으면 안 되는데.’엘라는 첫 번째 카드를 뒤집었다.“문제!”그녀가 막내 기사를 가리켰다.“이름이 뭐죠?”“…에?”“이름.”“…로, 로웬입니다.”“좋아요.”엘라는 곧바로 단테를 바라봤다.“전하.”“…”“저 기사 이름 아세요?”식당 안이 조용해졌다.단테는 로웬을 바라봤다.젊은 기사.분명 자주 봤다.하지만.“…”“…”“…모른다.”엘라는 고개를 끄덕였다.“정답.”“…?”단테가 그녀를 바라봤다.“그게 정답이라고?”“네.”“왜.”“모른다는 걸 아는 것도 중요하거든요.”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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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무섭지 않지?

새벽.북부의 하루는 해가 뜨기 전부터 시작됐다.휘이이잉—매서운 바람이 설원을 가르며 지나갔다.훈련장에는 검이 허공을 베는 소리만 규칙적으로 울려 퍼졌다.쉬익!쾅!검기가 눈을 갈라냈다.기사들은 멀찍이 떨어져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역시 대공 전하십니다.”“새벽부터 벌써 천 번은 넘게 휘두르신 것 같은데.”“저 정도는 몸풀기라던데.”“…난 몸풀이가 아니라 몸이 부서질 것 같아.”기사들이 작게 한숨을 쉬는 순간.저 멀리서 낯익은 목소리가 들려왔다.“좋은 아침입니다!”모두의 고개가 동시에 돌아갔다.은빛 머리카락을 하나로 묶은 엘라가 커다란 바구니를 양손에 들고 씩씩하게 걸어오고 있었다.“공녀님이다.”“…오늘도 오셨네.”“…대공 전하도 참 고생이시다.”엘라는 기사들에게 손을 흔들며 활짝 웃었다.“좋은 아침이에요!”“…좋은 아침입니다.”기사들도 어느새 자연스럽게 인사를 받아 주었다.며칠 전까지만 해도 상상하지 못했던 풍경이었다.엘라는 훈련장 한가운데 선 단테 앞으로 성큼성큼 걸어갔다.단테는 마지막 검을 휘두른 뒤 검집에 검을 넣었다.“…또 왔군.”“당연하죠.”엘라는 들고 있던 바구니를 번쩍 들어 보였다.“오늘은 아침 도시락입니다.”“…”“…안 먹는다.”“예상했습니다.”엘라는 전혀 실망하지 않았다.오히려 기다렸다는 듯 품속에서 작은 수첩을 꺼냈다.단테가 미간을 좁혔다.“…또 그건가.”“네.”엘라는 수첩을 펼쳐 새로운 페이지를 보여 주었다.────────흑막 갱생 일지□ 아침 먹기□ 점심 먹기□ 저녁 먹기□ 간식 먹기────────“…”“…간식?”단테가 처음으로 체크리스트를 유심히 바라봤다.엘라는 고개를 끄덕였다.“중요하죠.”“왜.”“사람은 간식을 먹으면 성격이 좋아지거든요.”“…처음 듣는다.”“오늘 처음 만든 말이에요.”“…”“…”“…그걸 왜 당당하게 말하지.”엘라는 어깨를 으쓱했다.“근거는 아직 없지만.”“…”“언젠가는 생길 거예요.”훈련장을 지켜보던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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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무섭지 않지?

“…왜.”낮고 조용한 목소리였다.“…날.”단테는 잠시 말을 멈췄다.“…무서워하지 않지?”휘이잉—차가운 바람이 두 사람 사이를 스쳐 지나갔다.훈련장에 있던 기사들도 자연스럽게 시선을 피했다.아무도 끼어들지 않았다.엘라는 한동안 단테를 바라봤다.장난스럽게 넘길 수도 있었다.“잘생겨서요.”라고 대답하면 분위기는 금방 풀렸을 것이다.하지만.그의 눈을 보자 그럴 수 없었다.그 질문은 농담이 아니었다.진심이었다.엘라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전하.”“…”“하나 물어봐도 돼요?”단테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사람들이 전하를 무서워하는 게 좋으세요?”잠시 침묵.“…”“…”“…모르겠다.”예상 밖의 대답이었다.“생각해 본 적이 없으세요?”“…없다.”단테는 시선을 멀리 두었다.설원 끝에서 기사들이 훈련을 준비하고 있었다.그들은 자신을 발견하자 자세를 바로잡았다.누군가는 긴장했고.누군가는 굳었다.그 모습이 너무 익숙했다.“언제부턴가.”단테가 낮게 말했다.“다들 저랬다.”“…”“전쟁이 끝난 뒤부터.”엘라는 조용히 그의 말을 들었다.“가까이 오지 않는다.”“…”“눈도 잘 마주치지 않는다.”“…”“필요한 말만 하고.”“…”“끝나면 돌아간다.”그는 담담하게 말했지만.엘라는 그 담담함이 오히려 더 외롭게 느껴졌다.“그래서.”단테가 조용히 웃었다.웃음이라기보다 자조에 가까웠다.“원래 그런 줄 알았다.”엘라는 말없이 그의 얼굴을 바라봤다.그리고 아주 자연스럽게.한 걸음 앞으로 다가갔다.단테는 피하지 않았다.“…전하.”“…”“하나 알려 드릴까요?”“…뭐지.”엘라는 손가락을 들어 그의 가슴을 가볍게 톡 가리켰다.“사람은.”“…”“무서운 사람을 좋아하진 않아요.”“…”“하지만.”그녀는 씨익 웃었다.“믿을 수 있는 사람은 좋아해요.”“…”“전하는 아직.”“…”“믿는 법도.”“…”“믿게 하는 법도.”“…”“둘 다 서툰 거예요.”단테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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