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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화 그럼 제가 회사를 그만두면 되겠네요

심지안은 분노가 머리끝까지 치솟아 올랐다. 며칠간 숨조차 편히 쉬지 못하며 참고 억눌렀던 감정이 폭발해버리는 순간이었다. 그녀는 해외에서 몸이 망가질 정도로 일에 심신을 다 바쳤다. 하지만 그 결과 남자친구에게 배신을 당한 것도 모자라 이젠 밥도 먹지 못하는 신세가 되었다. 어찌 분노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녀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대충 옷을 걸친 다음 택시를 타고 심씨 가문 계열사 난진 그룹으로 향했다.

그녀가 회사에 도착했을 때 마침 회의를 마친 사람들이 회의실에서 걸어 나오고 있었다. 심연아는 심전웅의 등 뒤에서 일에 대한 궁금증을 이야기하고 있었고 심전웅은 자애로운 얼굴로 대답해주고 있었다. 그야말로 보기 좋은 다정한 부녀의 모습이었다.

심전웅은 지난 20년이 넘는 시간 동안 그토록 온화하고 부드러운 태도를 심지안에게는 단 한 번도 보여준 적이 없다.

그녀는 주먹을 꽉 말아쥐었다. 서러움에 또다시 눈물이 차올라 눈시울이 붉어졌지만 애써 표정을 감추었다.

심연아가 앞에 서 있는 심지안을 발견하고는 잠시 멈칫하더니 이내 환히 웃으며 말했다.

“지안아, 드디어 돌아왔구나. 요즘 어디에 갔었던 거야?”

심지안은 가식적인 그녀의 표정을 힐끗 보고는 가소롭다는 듯 시선을 돌리고 단도직입적으로 심전웅에게 물었다.

“왜 3개월 동안 저한테 월급을 주지 않은 거예요?”

심지안의 질문에 심전웅의 얼굴이 아까와는 완전히 다른 사람처럼 180도 바뀌었다. 그는 심지안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고 말했다.

“이유를 묻기 전에 네가 어떻게 행동했는지부터 생각해.”

심지안이 화가 난 얼굴로 말했다.

“제가 다 얘기했잖아요. 오늘 계약을 체결하지 못한 건 제 탓이 아니라고요. 이 계약을 성사시키기 위해 전 어제 관련된 모든 자료를 읽고 숙지했어요. 업무적으론 절대 착오가 없었어요. 상대방이 절 존중하지 않아 일이 틀어진 거예요.”

그녀는 어제 링거를 맞으면서도 늦은 밤까지 자료를 읽었다. 일에 있어선 항상 누구보다도 진지한 태도로 임하는 그녀였으니 말이다.

“네가 무슨 낯으로 어젯밤 일을 말해? 밤에 집에도 들어오지 않고 어디에서 누구와 굴렀어? 여자로서 수치심도 없어?”

심전웅의 말에 회사 직원들도 이상한 눈빛으로 심지안을 쳐다보고 있었다.

심지안은 당황스러움에 창백해진 얼굴로 말했다.

“병원에 갔었어요.”

하지만 아무도 그녀를 믿지 않았다. 심연아는 올라가는 입꼬리를 애써 감추고는 심지안의 팔을 잡아당기며 말했다.

“지안아, 걱정하지 마. 아빠는 홧김에 그러셨을 뿐 진심은 아닐 거야. 너 얼마 필요해? 내가 줄게.”

“됐어.”

심지안은 팔을 휘둘러 그녀를 뿌리치며 차갑게 말했다.

“나한테 손대지 마. 더러우니까!”

심연아는 분명 똑바로 설 수 있었음에도 몸이 한쪽으로 기울어지더니 사람들 앞에서 바닥에 쓰러져버렸다.

그 모습을 본 직원들이 얼른 달려나가 그녀를 부축했다.

심전웅이 심지안을 향해 눈을 부라렸다.

“좋은 마음으로 널 도우려던 연아를 밀쳐? 너 왜 그렇게 못됐어!”

“맞아요. 지안 씨, 강 도련님이 연아 아가씨를 좋아한다는 이유로 이러면 안 되죠. 어찌 됐든 연아 아가씨는 지안 씨의 언니잖아요.”

“감정이라는 건 강요할 수 없는 거예요.”

“사람을 해할 생각을 하는 것보단 먼저 자신을 더 나은 사람으로 만드는 게 더 좋지 않아요?”

“어쩔 수 없어요. 질투는 사람의 눈을 멀게 만드니까요.”

예전 친절했던 동료들까지도 심전웅처럼 그녀에게 손가락질해대기 시작했다. 그녀가 마치 천하가 공노할 큰 죄를 저지르기라도 한 듯 말이다.

심지안이 사람들을 쭉 훑어보고는 말했다.

“그래서요? 당신들한테 날 질책할 자격이라도 있어요?”

사람들은 입을 삐죽거리며 비난을 멈추고는 흩어져 자신의 자리로 돌아갔다.

이어 그녀가 고개를 돌려 심전웅에게 말했다.

“작년 보너스와 밀린 월급은 언제 주실 거예요?”

“넌 우리가 힘들게 준비했던 프로젝트를 망쳤어. 네 월급은 모두 우 대표의 병원비에 썼으니까 기대도 하지 마. 지금 너한테 남은 유일한 길은 우 대표를 찾아가 사과하고 용서를 받은 다음 계약을 체결하는 거야.”

“제가 사과를 하지 못하겠다면요?”

“기회는 이미 줬는데 잡지 않겠다니 무슨 말이 더 필요하겠어.”

심전웅이 무정한 얼굴로 말했다.

“그런데 돈 때문에 우리 심씨 가문의 체면을 떨어뜨리는 행동은 하지 마. 그러면 부녀 관계를 끊어버릴지도 모르니까.”

심지안은 목구멍에 돌멩이라도 걸린 듯 단 한마디도 할 수 없었다.

아버지로서 밤새 집에 들어오지 않은 딸에게 걱정의 말 한마디는 하지 못할망정 집안 망신을 시키지 말라고 다그치기만 한다. 심전웅에게 있어 그녀의 존재는 사업상 이용할 도구일 뿐, 그것을 제외하고는 그저 쓸모없는 짐 덩어리에 불과했다.

이대로 가다간 아등바등 회사에 붙어있는다고 해도 바보같이 얻는 것도 없이 무상으로 일해주는 허무한 결과만 초래할 뿐이다.

심지안이 잠시 침묵하고는 말했다.

“제가 발목을 잡을까 봐 그토록 걱정하신다면 제가 회사를 그만두면 다 해결되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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