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전연우는 강씨 집안 누구도 건드리지 않겠다고 분명히 약속했었다.왜 그녀에게 거짓말을 한 걸까?장소월은 얼음장같이 차가운 손가락을 움직여 정말 연락하고 싶지 않았던 사람에게 전화를 걸었다.전화벨이 울린 지 몇 초도 되지 않아 상대방이 전화를 받았다.서철용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무슨 일이에요?”조심스러운 그의 말투였다.장소월은 너무 당황한 나머지 어찌할 바를 몰라 재빨리 전화를 끊었다.전연우와 합심에 나쁜 일을 일삼는 그는... 믿을 수 있는 사람이 아니다.문득 무언가 떠오른 장소월은 빠르게 사진을 확대해 살펴보았다. 장소는 서울 인근 바다 해역이었다.얼마 전 장소월도 비행기 추락 소식을 들었었지만... 그 당사자가 강영수일 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장소월은 이성을 잃은 듯 휴대폰을 들고 곧장 방 밖으로 뛰쳐나갔다.그녀는 강영수의 죽음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전연우는 대체 왜 그를 죽였단 말인가!분명히 그는 모든 것을 다 얻었지 않은가!강영수는 그에게 아무 짓도 하지 않았다.그는 정말 지옥에서 걸어 나온 악마와 다름없다.은경애는 정신없이 계단을 내려오는 장소월을 보고는 소리쳤다.“아가씨, 어디 가세요?”장소월은 그녀의 말을 듣지도 못한 것처럼 전혀 반응하지 않고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천하 일성 나이트 클럽하우스.평소 거의 술에 입을 대지 않았던 전연우는 지금 이 순간 정신을 차릴 수 없을 정도로 술에 흥건히 취해 있었다...룸 안에는 전연우 혼자만 앉아 있었다.전연우는 머릿속이 뒤죽박죽 완전히 엉망이 되어버렸다.그는 지금 사실을 회피하고 외면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지금까지 대체 무슨 짓을 한 거지!그 순간 룸 문이 열리고, 버건디색 드레스를 입은 오랜만에 보는 송시아가 하이힐을 또각거리며 안으로 들어왔다. 그녀의 얼굴이 복잡하게 일그러졌다.“...저 연우 씨가 이렇게 망가진 모습은 처음 보네요.”송시아가 걸어와 전연우의 옆에 앉았다. “술 좀 그만 마셔요! 내가 잘못했던 것 때문에 화난
송시아는 미쳐버렸다.전연우를 향한 그녀의 감정은 급기야 병적인 편집증에 이르렀다.둘은 태어날 때부터 같은 부류의 인간이었다.자신이 갖지 못하면 가차 없이 망가뜨리는 그런 인간 말이다.“...너 혹시 약 탔어?” 전연우는 미간을 찌푸리고 몸을 비틀거렸다. 점점 희미해지는 의식 탓인지 눈앞에 장소월의 얼굴이 보이는 것 같았다.그녀는 그를 향해 웃고 있었다.그의 머릿속에서 장소월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전연우, 너 날 갖고 싶어 했잖아? 어서 와!”전연우는 돌연 몸에서 뜨거운 열기가 솟구치는 것 같았다. 그는 몸을 뒤집어 송시아를 품에 가두고 그녀의 드레스를 거칠게 찢기 시작했다. 그녀가 입은 속옷은 그가 가장 좋아하는 색이었다...송시아는 남자가 주는 쾌감을 즐기며 눈을 감았다. 짓눌린 목구멍에서 야릇한 숨소리가 흘러나왔다.테이블에 놓여 있던 전연우의 휴대폰이 계속 진동하고 있었다. 전연우의 휴대폰 번호를 아는 사람은 한 손으로 꼽을 수 있을 만큼 극히 적다.이토록 연이어 전화할 수 있는 사람은 회사 급한 업무를 처리해야 하는 기성은을 제외하고는 남원 별장밖에 없었다...서울의 밤하늘은 칠흑같이 캄캄했다. 짙은 먹구름은 달빛이 조금도 투과하지 못할 정도로 낮게 깔려 있었다.당장이라도 폭풍우가 쏟아질 것 같았다...남원 별장은 완전히 아수라장이었다.은경애는 아이를 품에 안고 안절부절못하며 현관 앞을 서성거렸다. “평소엔 두 분 다 집에 계시더니 왜 오늘은 한 분도 돌아오지 않는 거지. 아이는 빙의라도 된 것처럼 울기만 하고, 이 일을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장소월이 별장을 떠난 이후로 별이는 줄곧 울음을 멈추지 않았다...별이는 먹은 우유까지 모두 뱉어냈다...자지러지게 우는 아이를 무슨 짓을 해도 달랠 수가 없었다.장소월은 몇 시간 동안 택시를 타고 마침내 그곳에 도착했다...서울 변경에 위치해 있는 바닷가에서 바람이 기승을 부리며 불어왔다. “아가씨, 정말 여기 맞아요?”“이곳은 얼마 전 사람이 죽은 곳이에요. 곧 비도
깊은 밤 VIP 룸 안에선 알코올과 야릇한 기운이 만연하고 있었다.소파에서 남녀가 서로 얽혀 격렬한 애정행각을 벌이고 있을 때 갑자기 누군가 ‘쾅' 하는 소리와 함께 룸 문을 걷어찼다.웨이터가 돌연 나타난 남자를 막아섰다. “손님, 들어가시면 안 됩니다.”송시아는 흥분을 위해 입술에 발랐던 약을 실수로 삼키는 바람에 의식이 희미했다. 그녀가 소리를 듣고 문 쪽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그녀가 침입자를 확인하기도 전에 그가 그녀 위에 엎드려 있던 남자를 들어 올렸다.“너 지금이 어느 땐데 여기서 이 여자랑 뒤엉켜 놀고 있는 거야.” 서철용은 온 힘을 실어 전연우의 얼굴에 주먹을 날렸다. 그러고는 그 충격에 내려앉은 전연우를 다시 일으켜 세웠다. 그 순간 한눈에 전연우가 약에 취해 체온이 뜨겁게 끓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송시아는 서철용이 전연우를 데리고 가려는 것을 보고 급히 옷을 입고 일어서 쫓아갔다. “서철용 씨, 거기 서요. 어디로 데려가는 거예요?”서철용은 전연우를 어깨에 업고 말했다.“...전연우가 깨어나면 다음 날 태양을 볼 수 있을지 없을지나 걱정하는 게 좋을 거예요.”서철용은 그 말을 남기고 단호한 표정으로 자리를 떴다. 그의 말은 결코 협박이 아니었다.감히 전연우를 함정에 빠뜨려?목숨이 몇 개라도 되는 건가?서철용은 조수석에 널브러져 있는 남자를 바라보았다. 인사불성인 상태에서도 조금의 의식은 남아있었다. 전연우가 입은 검은 셔츠는 윗부분이 전부 벌어지고 단추도 몇 개 떨어져 있었다. 그가 목소리가 낮고 거친 목소리로 간신히 말을 뱉어냈다. “병원에 가. 나 약에 당한 것 같아.”서철용은 피식 웃으며 핸들을 꺾었다.“약에 당한 거 너도 알고 있었구나. 너 방금 하마터면 송시아한테 제대로 걸릴 뻔했어. 내가 때마침 가지 않았으면 전연우... 그런 짓을 하고 어떻게 장소월을 볼 수 있겠어?”송시아가 전연우에게 먹인 것은 평범한 마약이 아니었다. 환각을 일으켜 전연우로 하여금 장소월을 보고 있다고 착각하게 만들었다.그 혼
어쩌면... 그 가능성은 희박할지라도 그는 최선을 다해 노력할 것이다.서철용은 절대 그녀를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단 0.1%의 확률일지라도...때마침 기성은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아가씨께서 마지막으로 계셨던 곳은 서울 변경 해역...”갑자기 침묵이 흐르더니 서철용이 핸들을 힘껏 내리쳤다.“젠장, 전연우! 강영수는 건드리지 말라고 경고했잖아. 그렇게 누누이 말했는데도 왜 말을 안 들어!”서철용은 장소월이 강영수의 시신을 찾으러 갔을 거라는 걸 일찌감치 짐작했어야 했다.수색대가 7, 8일 동안 수색했지만 아무것도 찾지 못했다.장소월이 간다고 한들 무엇을 찾을 수 있겠는가?조금 전 천둥 번개가 치던 지점이 바로 변경 해역 쪽이었다.서철용은 장소월이 지금의 몸으로 버틸 수 있을지 도저히 확신할 수 없었다.“소월 씨가 무사하기만을 기도해.”비가 거칠게 쏟아지고 있음에도 차는 계속 달렸다.기성은도 때마침 도착해 가까이 들어오는 차와 마주쳤다. 모두 쏟아지는 비를 맞으며 차에서 내렸다.기성은은 검은색 우산을 들고 전연우에게 다가갔다. 하지만 전연우는 단번에 그를 밀쳐버렸다. 아직 약 기운이 가시지 않은 상태였던 그는 차갑고 매서운 빗줄기를 견디며 울창한 숲속 깊은 곳으로 불안하게 걸음을 옮겼다.“대표님!” 기성은은 그토록 처량하고 만신창이인 전연우의 뒷모습은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전연우는 뭔가 중요한 것을 찾는 듯 빠르게 걸었다.모두들 다른 방향으로 여기저기 흩어져 장소월을 찾아 나섰다.서철용은 전연우의 모든 행동을 눈에 담고 있었다. 오늘처럼 제정신이 아닌 것 같은 상태의 전연우는 정말 처음이었다.그는 전연우 같은 냉혈한은 절대 누군가에게 마음을 줄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밤하늘에서 또다시 번개가 번쩍였다.그 순간 전연우의 눈에 나뭇가지에 걸려 얇게 찢어진 낯익은 옷자락이 들어왔다. 흠뻑 젖은 검은 머리카락이 선홍빛 눈을 가렸다.그는 천을 주워 고개를 숙인 채 손에 꼭 말아 쥐었다. 그 순간 그의 눈동자는 갖은
장소월은 자신이 의식을 잃은 지 얼마나 되었는지는 몰랐지만, 누군가 늘 자신에게 들려주는 목소리는 들을 수 있었다.그녀는 전연우의 목소리라는 걸 알고 있었다. 눈을 뜨지 않아도 매일 따뜻한 물로 몸을 닦아주고, 정성스럽게 머리를 손질하고, 깨끗한 옷으로 갈아입히는 일을 반복하는 전연우의 모습을 상상할 수 있었다.서철용은 문을 열고 들어와 이미 넋이 나간 전연우를 보며 말했다.“...수술의 위험성은 이미 말했어. 일주일 뒤에 깨어나면 수술할 수 있을 거야. 너도 마음의 준비해.”“소월이는 줄곧 괜찮았고 앞으로도 괜찮을 거야.”전연우는 서울 변경 해역에서 돌아온 이후로 사흘 밤낮을 뜬눈으로 버텨왔다. 옷은 여전히 그날과 똑같았고, 머리는 잔뜩 헝클어져 있었으며, 눈은 시뻘겋게 충혈되어 있었다. 평소 결벽증이었던 전연우는 사흘 동안 샤워도 하지 않아 몸에서 냄새가 나기도 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장소월을 위해서라면 온 힘과 온 마음을 다해 그녀를 정성껏 돌보았다.서철용이 말했다.“받아들이기 힘들다는 건 알지만, 수술을 안 하면 정말 죽을 수도 있어.”“왜 진작 말하지 않았어?”“소월 씨가 말하지 말라고 했어. 그리고... 너한테 말한다고 무슨 소용이 있겠어? 소월 씨가 치료를 거부한다면 아무도 어찌하지 못해. 그나마 강영수를 생각해 항암제를 먹겠다고 결심한 거야. 강영수 치료에 도움이 되어주기 위해 하루라도 버티려고... 하지만 이제... 소월 씨를 설득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 죽었어.”“이제 장씨 집안에 남은 사람이라곤 소월 씨 한 명뿐이야.”“살아야 하는 유일한 희망을 앗아간 너를 소월 씨가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을까?”강영수, 강영수!결국엔 또 그놈이다!전연우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서철용의 목덜미를 잡고 문밖으로 나갔다. “뿌리까지 깨끗이 치료해. 만에 하나 잘못되면 병원 전체를 소월이와 함께 묻어버릴 거야.”얼마 전에도 투덕거렸던 탓에 서철용의 얼굴엔 아직도 상처가 남아있었다. 서철용이 무표정하게 그를 바라보았다.“내가
그녀는 오직 그의 독점적인 소유물이 되어야만 한다...그렇게 7일이 흘러가는 동안 전연우는 늘 어정쩡하게 그녀의 옆에 누워 있었다. 그녀를 만질 때에도 항상 그녀가 다칠세라 조심조심 신중을 기했다. 전연우는 단 한 번도 어느 날 장소월이 자신을 떠날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과거에는 힘도 권력도 없어 그녀에게 최고 좋은 선물을 줄 수 없었다.하지만 이제 그는 모든 것을 가졌다. 그녀가 원하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즉시 눈앞까지 가져다줄 수 있다.불 꺼진 어두운 방 안에서 전연우는 눈을 감고 그녀의 목덜미에 얼굴을 파묻었다. “처음부터 마음을 독하게 먹었어야 했어. 너희 둘이 만나지 않았다면... 소월이는 영원히 이 오빠의 것이었을 텐데...”새벽 열두 시, 서철용은 피곤한 몸을 이끌고 사무실로 돌아왔다. 문틈 사이로 새어 나오는 불빛을 본 순간 피곤함이 사라지고 경계심이 피어올랐다.그는 문을 열고 방에 들어가자마자 소파에 잠든 듯 누워 있는 배은란의 모습을 보았다. 그 모습에 처음 가졌던 경계심이 풀렸다.깊이 잠들어 있던 배은란은 얼굴에서 전해져오는 간지러움에 흐릿하게 눈을 떴다. 그 순간 깊고 가는 서철용의 눈과 정면으로 마주했다. 그렇게 두 사람은 한동안 서로를 바라보았다. 이어 서철용이 그녀의 부스스한 머리카락을 쓸어주며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다음엔 휴게실에 가도 돼.”배은란은 순식간에 정신을 차렸다. 순간 그의 얼굴에 생긴 상처에 흠칫 놀랐지만 이내 그의 시선을 피하고는 당황한 듯 머리카락을 정리했다. “시간이 꽤 지났어. 이제 수술할 때가 되지 않았어? 나랑 약속한 거 잊지 마.”서철용이 말했다. “나 지금은 시간 없어.”배은란은 벌컥 화를 내며 손에 들려 있던 베개를 그에게 집어 던졌다. “약속은 지켜야지... 너랑 자주면... 우리 그이 살려준다고 했잖아!”.서철용이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나처럼 변태 양아치 같은 놈의 말을 믿어?”배은란은 순식간에 얼굴이 창백해졌다. 그의 말은 마치 그녀의 얼굴에 세게 내
“미... 미안해. 오늘은 민용 씨 일로 찾아오는 게 아니었어. 오늘 힘들면 다음에 다시 찾아올게.”배은란은 하루 종일 사무실에서 그를 기다렸었다. 더이상 있다간 바보가 될 것 같았다.배은란이 소파에 놓인 가방을 들고 돌아서서 나가려는 순간... 서철용은 돌연 그녀의 손목을 잡고는 번쩍 안아 올렸다.배은란이 몸부림치며 말했다. “내려놔.”서철용은 귀를 닫고 곧장 휴게실로 들어가 그녀를 침대에 던져놓고는 그녀의 몸을 짓누른 뒤 두 손을 잡아 머리 위로 올렸다. “너도 하고 싶은 거지? 왜 항상 내가 나가라고 하면 안 나가는 거야?”서철용은 한 손으로 그녀의 속옷을 찢고, 다른 한 손으로 금속 바지 지퍼를 내려 커다란 물건을 드러내고는 그녀의 다리를 벌렸다.“안 돼... 하지 마.”서철용은 짜증스러움에 그녀의 말을 들은 척도 하지 않은 채 곧바로 거칠게 물건을 밀어 넣었다.30분 사이에 관계는 빠르게 금세 끝이 났다. 서철용은 숨을 헐떡이며 침대에서 흐느끼고 있는 배은란의 몸에서 내려와 종이를 꺼내 흔적을 닦았다. “오늘 밤은 여기서 자. 내일 내가 데려다줄게”배은란은 아직 복부의 팽창 감이 가시지 않았다. 그녀가 몸에 걸쳤던 옷을 끌어 올리며 일어나 앉았다.“필요 없어. 나 오늘 운전했어.”배은란은 다리에 힘이 풀려 간신히 서 있었다.“서민용이 우리 사이에 대해 모를 것 같아?”배은란은 온몸이 얼어붙은 채 멍하니 자리에 서 있다가 고개를 돌려 그를 쳐다보았다.“너... 네가 말한 거야?”서철용은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나 그렇게 한가하지 않아.”“나도 짐작만 한 것뿐이야.” 서철용은 무슨 말을 하고 싶었지만 그냥 삼켜버렸다.“기어이 그런 상태로 돌아가고 싶다고 하면 말리진 않을게.”배은란은 급히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다리 사이가 불쾌하게 끈적끈적했고 하이힐을 신은 발 옆에는 찢어진 속옷이 널브러져 있었다. 그녀는 황급히 그것을 주워 쓰레기통에 던져버렸다.서철용은 조금 전 콘돔을 착용하지 않고 모두 다 넣어버렸다. 그녀
그녀는 이미 결혼한 몸이다!배은란은 절대 지조 없는 여자는 되지 않을 것이다.배은란은 서민용에게서 걸려온 3통의 부재중 전화를 보니 죄책감에 사로잡혔다. 그녀는 서민용에게 너무 미안해 다시 전화를 걸 용기가 나지 않았다.그녀는 한참을 망설이다가 문자를 보냈다.[나 오늘은 바빠서 스튜디오에서 야근해야 해. 내일 들어갈게.]서민용은 곧바로 답장을 보내왔다.[알았어.]그가 더는 묻지 않자 배은란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돌연 다리에 힘이 풀린 그녀는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녀는 복잡한 마음에 침대 옆에 있는 서철용을 쳐다보지도 못했다. 이게 옳은 일이 맞는지 도저히 갈피를 잡을 수가 없었다.하지만 그녀는 정말 방법이 없었다.서민용과 함께 해외로 나갔던 3년 동안, 그녀는 각지 모든 병원에 가보았지만 치료할 방법을 찾지 못했다. 이대로 가다간 결국 오장육부가 서서히 고장 나 죽고 말 것이다.현재 서민용은 약물에만 의존하여 겨우 생명의 끈을 유지하고 있다.배은란은 서철용을 제외하고는 부탁할 사람이 떠오르지 않았다....전연우는 장소월이 입원한 층 전체를 독점했다.이틀 후 의식을 회복한 장소월은 병원 침대에 앉아 종양 전문의들에게 말했다. “수술은 하지 않겠습니다.”“장소월 씨, 걱정 마세요. 저희가 직접 소월 씨의 수술을 집도할 거예요. 소월 씨가 치료에 협조하기만 한다면 높은 확률로 수술에 성공할 수 있어요... 아니면 몸은 정말 되돌릴 수 없을 정도로 망가질 거예요. 다시 한번 생각해 보세요. 아직 젊은 나이잖아요...”장소월의 백옥 같은 얼굴엔 어떠한 감정도 보이지 않았고, 눈동자는 공허하게 텅 비어 있었다. “살고 싶지 않아요.” “수술 안 하겠어요. 아무도 저한테 강요할 수 없어요.”“장소월 씨... 그건...”“됐어요! 다들 나가요!” 전연우가 문을 걷어찼다.사람들은 모두 화들짝 놀랐다.그들이 나간 후, 전연우는 더는 아무도 들여보내지 않고 장소월에게 가까이 다가가 깊은 눈동자로 그녀를 쳐다보았다. “...대
배가 고픈 데다 아기들이 발길질까지 하니 더욱 아팠다. “아가들아, 제발 차지 마. 규영 언니랑 미진 언니가 곧 맛있는 거 가져다줄 거야.” 그녀가 배를 쓰다듬으며 아이들을 달랬다. 규영과 미진은 그녀의 애처로운 눈빛을 견뎌낼 수가 없었다. 게다가 뱃속 두 녀석들이 워낙 시끄럽게 움직이고 있으니 더는 거절하기가 힘들었다. “알았어요, 아가씨. 간단히 드실 걸 가져다드릴게요. 여기 앉아서 절대 움직이지 마세요.” 그들은 걱정되는 마음에 거듭 당부했다. 소현아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요. 여기 이렇게 많은 언니들이 지켜보고 있잖아요. 아무 일 없을 거예요. 절대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을게요.” 규영과 미진은 사람들에게 다시 신신당부한 뒤에야 먹을 것을 가지러 자리를 떴다. 지난번 일 이후로 다른 사람은 믿을 수 없게 되어 소현아의 음식은 반드시 그들이 직접 준비해야 했다.소현아는 혼자 소파에 앉아서 작게 아기들과 이야기했다. “아가들아, 소월 이모가 전연우 그 나쁜 놈한테 괴롭힘을 당하고 있는 건 아닐까? 아니면 내 전화를 왜 안 받은 거지?” “나 소월이가 너무 걱정돼. 근데 너희가 너무 무거워서 몰래 도망갈 수도 없어.” 그녀에게 돌아오는 답은 점점 잦아드는 태동뿐이었다. 소현아는 아기들이 자신을 무시한다는 생각에 못마땅한 듯 입을 삐죽거렸다. 누군가 문을 열었는지 차가운 바람이 스며들었다. 얇은 연노랑 잠옷만 입고 있던 소현아는 추위에 부르르 몸을 떨었다. 곧이어 도우미들의 공손한 인사 소리가 들렸다. “효연 아가씨.” 천효연은 거만한 눈빛으로 그들을 훑어 보고는 곧장 위층으로 향했다. “여기 뒀던 내 꽃병은 어디 갔어?” 계단 모퉁이에 있던 꽃병이 사라진 걸 발견한 천효연이 불쾌한 얼굴로 물었다. 도우미가 조심스럽게 설명했다. “현아 아가씨가 다치실까 봐 잠시 장식품들을 다 치웠습니다.” 소현아? 그 이름을 들은 순간 천효연의 눈동자에 냉기가 스쳤다. “그 바보는 지훈 씨가 방에 가둬놨잖아?” 도우미
엄마와 통화를 마친 뒤, 소현아는 장소월의 번호를 찾아 전화를 걸었다. 전연우 그 나쁜 놈이 소월이를 괴롭히지는 않았을까. 그리고... 혹시 소월이는 강용 소식을 알지 않을까... 소현아는 강지훈이 강용의 행방을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지만, 장소월의 당부를 기억하며 감히 묻지 못했다. 통화음이 두 번 울린 뒤 전화가 연결되었다. 상대가 말하기도 전에 소현아는 흥분해서 조잘거리기 시작했다. “소월아! 드디어 전화 받았네! 있잖아, 강지훈 그 나쁜 놈이 나 계속 방에 가둬놓고 문밖으로 못 나오게 했어. 나 진짜 답답해 미치겠어!” “널 여기 데려와 같이 놀려고 했는데, 강지훈의 말이 전연우 그 나쁜 놈이 너 안 보낸다고 하더라고. 둘 다 진짜 짜증 나! 내가 간신히 휴대폰 구해서 전화한 거야. 소월아, 그 나쁜 놈한테 말하고 이쪽으로 놀러 와줄 수 있어?” 한참을 떠들었을 때, 저쪽에서 낮고 위험한 남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강지훈이 내가 소월이를 나가지 못하게 했다고 말했다고? 언제 나한테 물어봤는데?” 소현아는 깜짝 놀라 입을 다물었다. 몇 초 뒤에야 머뭇거리며 다시 말을 꺼냈다. “전... 전연우 씨? 왜 당신이 전화를 받아요?” 전연우가 차갑게 웃음을 터뜨렸다. “나쁜 놈이 전화를 받아서 많이 실망했나?” 소현아는 겁을 먹고 눈알만 뒤룩뒤룩 굴렸다. “저 그런 말 한 적 없어요. 잘못 들었어요! 소월이는요? 이거 소월이 폰이잖아요. 빨리 소월이한테 돌려줘요!” 전연우가 말했다. “소월이는 전화 안 받아. 다시 전화하지 마.” “소월이한테 나라고 말해줘요. 소월이가 제 전화 안 받을 리 없어요.”소현아는 다급함을 감추지 못했다. “앞으로 다시는 소월이 찾지 마. 바빠서 너랑 소꿉놀이할 시간 없으니까.” “그리고 강지훈한테 전해. 내게 터무니없는 누명 씌우지 말라고.” 전연우는 바로 전화를 끊어버렸다. 소현아가 다시 걸어봤지만, 상대는 받지 않았다. “현아 아가씨, 이제 일어나서 운동할 시간이에요.” 규영과 미
소현아는 얼굴에 아직 완전히 사라지지 않은 이빨 자국을 달고서 원망 어린 눈빛으로 강지훈을 바라보았다. 강지훈은 기분이 좋아졌는지 피식 웃으며 말했다. “그래.” 그 말을 들은 순간 소현아의 눈동자가 반짝반짝 빛나기 시작했다. 그녀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럼 내가 소월이한테 전화해도 돼요?” “그쪽에서 받기만 한다면야.” 소현아는 이제 아침에 있었던 불쾌한 일을 까맣게 잊은 듯했다. “저 밖에 나가서 놀고 싶어요!” 강지훈은 단칼에 거절했다. “안 돼.” 신이 나 붕방거리던 소현아는 김빠진 공처럼 순식간에 축 처져버렸다. “하지만 방에만 계속 있는 건 너무 따분하단 말이에요.” “절대 도망 안 갈게요. 여기 아기들도 있잖아요. 그냥 아래층에서 좀 돌아다니게만 해줘요, 네?” 그녀가 지금 머무는 방은 집에 있던 침실을 완벽하게 똑같이 복원한 곳이었다. 소현아는 이곳을 무척이나 좋아했었다.그러나 무슨 이유에서인지 최근 며칠 동안 줄곧 악몽에 시달렸다. 꿈속에서 그녀는 방안을 끝없이 걷고 또 걸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 방은 갑자기 창고로 변해버렸고, 아무리 깨려고 해도 도저히 깨어날 수가 없었다. 강지훈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소현아는 못마땅한 얼굴로 밥을 한입 삼키며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전연우 그 나쁜 놈도 소월이가 마당에서 그림 그리는 건 허락하던데... 강지훈 씨는 날 침실 밖에도 나가지 못하게 하네. 전연우보다도 더 나빠.” “...” “아래층에서만 놀아. 방을 나서면 규영과 미진이 따라갈 거야.”결국 강지훈이 한발 물러섰다. 소현아의 눈에 다시 별빛이 들어왔다. “음, 당신은 전연우 그 나쁜 놈보다 조금 나아요. 정말 아주 조금.” 아침을 먹고 난 뒤 소현아는 바로 휴대폰을 요구해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통화는 거의 즉시 연결되었다. “현아니? 지금 어디 있는 거야?” 명세진의 목소리는 흥분을 애써 억누르고 있는 듯 조심스러웠다.오랜만에 엄마 목소리를 들으니 소현아는 코끝이 시큰해졌다. “엄마,
강지훈은 한밤중이 되어서야 짙은 피비린내를 풍기며 돌아왔다.옆방에서 샤워를 마친 강지훈은 잠옷을 입고 소현아의 방으로 들어갔다.소현아는 이미 잠들어 있었다. 2.2미터나 되는 퀸사이즈 침대에서 편안하게 팔다리를 쭉 뻗은 채 말이다. 무슨 꿈을 꾸는지 웅얼거리며 입가에 흘린 침을 닦고 있었다.곤히 잠든 그녀의 모습을 본 순간, 강지훈은 장난기가 발동했다. 침대 곁으로 다가간 그는 이불을 끌어다 그녀의 배를 덮어주고는 코를 꼬집었다.“윽...”잠시 후 소현아는 미간을 찌푸리며 불편한 듯 눈을 떴다.“강지훈 씨 너무 싫어요. 숨을 쉴 수가 없잖아요. 빨리 놔줘요.”침대 곁에 있는 사람을 본 소현아는 두 손으로 그의 손목을 잡고 떼어내려 했다.강지훈이 말했다. “말해 봐. 세상에서 누가 제일 좋아? 제대로 말하면 놔줄게.”소현아는 씩씩거리며 눈을 감고 어쩔 수 없이 입으로 숨을 쉬었다. 가슴이 뻐끔뻐끔 부풀어 오르는 모습이 마치 복어 같았다.강지훈은 몸을 기울여 그녀의 입까지 막아버렸다.몇 초 지나지 않아 소현아는 다시 웅얼거리며 발버둥 치기 시작했다.강지훈은 그저 잠시 그녀에게 장난을 치고 싶었을 뿐이지만, 한번 맛을 보니 멈출 수가 없었다.그는 손을 떼어 그녀의 허리에 얹고 반바지를 벗기려 했다.소현아는 필사적으로 바지를 붙잡고 엉덩이를 비틀며 그의 손아귀에서 벗어나려 했다.강지훈의 숨소리가 거칠어졌다.“손 놔. 살살할게.”“저 졸려요. 자고 싶으니까 강지훈 씨도 빨리 자요.”그녀는 강지훈이 또 키스하려 할까 봐 입술을 굳게 다물고 낑낑거리며 그를 밀치고는 죽은 척 눈을 감았다.강지훈이 어떻게 하든 소현아는 아무런 반응도 하지 않았고, 나중에는 정말로 다시 잠이 들어버렸다.곤히 잠든 그녀를 바라보는 강지훈의 이마에 핏대가 섰다.다음 날 아침 다시 눈을 떴을 때, 그녀는 강지훈의 몸에 꼭 안겨있었다. 그녀의 코끝에 그의 단단한 가슴이 닿아 숨을 쉬기조차 힘들었다.어젯밤 일이 떠오른 소현아는 그의 가슴을 힘껏 깨물었다.곧이어
분개하고 있던 천효연의 시야에 문득 옆 방문 앞에 놓인 목욕 가운이 들어왔다.목욕 가운 허리띠에는 검은색 은은한 무늬가 수 놓여 있었는데 누가 봐도 강지훈의 것이었다!강지훈이 그녀를 침대에 버려두고 저 바보 같은 여자를 찾아온 것이다!그 사실을 깨달은 천효연은 그야말로 미칠 지경이었다.강지훈은 바람기가 있긴 했지만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람은 자신이라고 천효연은 당당히 말할 수 있었다. 하여 그녀는 강지훈이 바깥에서 몇 명의 여자를 만나든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하지만 저 바보 같은 여자가 나타난 이후로, 강지훈은 그녀를 안고 있으면서도 정신이 딴 데 가 있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심지어 그 바보를 위해 그녀에게 손찌검까지 했다!설상가상으로 그 바보는 강지훈의 아이까지 가졌다...천효연은 간신히 벽에 몸을 기댄 채 바닥에 놓인 목욕 가운을 쏘아보았다. 동시에 숨을 죽이고 방 안에서의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하지만 한참이 지나도록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도우미가 다가오자 천효연은 아무 일도 없었던 듯 일어서 요염한 자태로 몸을 돌려 자리를 떴다.“아.”소현아는 입을 크게 벌리고 미진이 밥을 먹여주기를 기다렸다.그녀도 남의 손을 빌려 밥을 먹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지만, 오늘 아침 일어났을 때부터 손목이 끊어질 듯이 아파 어쩔 수가 없었다.아침밥은 강지훈이 직접 먹여주었었다. 하지만 무슨 일이 생겼는지 규영과 미진에게 밥을 먹여주라고 지시하고 서둘러 떠났다.“아가씨, 오늘은 어디 불편한 곳 없으신가요?”어제 주인님의 모습은 너무나 무서웠다. 그가 아이를 해치지는 않았을까, 규영과 미진은 걱정이 태산이었다.그들의 마음을 알 리 만무한 소현아는 고개를 흔들었다가 다시 끄덕였다.“손목이 너무 아파요. 어떡하죠?”두 사람은 안도하며 미소를 띤 채 그녀를 달랬다. “이따가 저희가 마사지해 드리면 괜찮아지실 거예요.”소현아는 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점심 식사를 마친 후, 규영과 미진은 의사의 말에 따라 소현아를 데리고 방안을 걸어 다녔다.
강지훈의 움직임은 이전 그 어느 때보다 격렬했다.소현아는 배가 짓눌리는 느낌에 불안해졌다. 또한 콧속으로 불쾌한 향수 냄새가 흘러들어왔다.“윽...”너무나 불편하니 그만해달라고 강지훈에게 말하고 싶었지만, 그가 입을 틀어막고 있어 다급해진 소현아는 그의 입술을 꽉 깨물어 버렸다.순간 입안에 비릿한 피 냄새가 퍼져나갔다.강지훈이 통증에 약간 뒤로 물러섰다.“강지훈 씨 때문에 아기가 눌렸어요. 그리고 당신한테서 이상한 냄새 나요. 토할 것 같아요.”소현아는 찡그린 얼굴로 몸을 일으켜 앉아 퉤퉤 침을 뱉었다.강지훈의 서늘한 표정을 본 소현아는 토끼처럼 재빨리 배를 감싸 안고 구석으로 도망쳤다.험악한 인상에 입가에 피까지 묻히고 음침한 눈빛을 하고 있으니 그야말로 사납기 그지없었다.소현아는 겁을 먹고 몸을 웅크렸다.“의사 선생님이 아기 다칠 수도 있다고 이러면 안 된다고 했잖아요. 다른 사람 찾아가서 같이 자요. 하지만 자고 나서는 깨끗하게 씻고 저 찾아와야 해요. 낯선 냄새가 나면 토할 것 같단 말이에요.”그녀가 코를 찡그리며 말했다.“지금 당신 옷에서 이상한 냄새 나요. 도우미 언니들 몸에서 나는 향수 냄새 같아요. 저도 싫고 아기들도 싫어할 거예요.”강지훈은 그녀의 천진난만한 눈동자를 바라보았다. 마음속의 욕망은 가라앉기는커녕 오히려 더욱 격렬하게 끓어올랐다.눈앞의 이 토끼 같은 여자를 당장이라도 삼켜버리고 싶은 심정이었다.그는 몸에 걸치고 있던 목욕 가운을 벗어 던지고 침대 가장자리에 앉았다.“옷 벗으니까 냄새 안 나지? 이리 와.”소현아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안 갈래요. 당신 때문에 아기가 다칠 수도 있으니까 다른 사람 찾아가세요.”강지훈의 눈빛이 험악하게 변했다. “네가 올래, 아니면 내가 갈까?”소현아는 밖으로 도망쳐 나가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하지만 문까지 도착하기도 전에 강지훈에게 붙잡혀 다시 끌려가고 말았다.그의 무릎에 앉혀진 소현아가 또 울먹거리기 시작하자 강지훈이 소리쳤다.“울지 마!”강지훈도 어
“지훈 씨, 아랫부분으로 도와줄게요...”그녀의 말은 파편처럼 흩어져버렸다. 강지훈은 끝낼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천효연은 더 이상 요염한 표정을 유지할 수 없었다. 너무나 고통스러워 손가락으로 강지훈의 다리를 꽉 움켜쥐어 길게 할퀸 자국까지 남겼다.죽을 것 같이 괴로워하는 그녀의 얼굴을 내려다보면서도 강지훈의 마음속엔 조금의 파동도 일지 않았다.여전히 어딘가 부족한 느낌이 들었다.그는 짜증 섞인 얼굴로 천효연의 입에서 물건을 빼내고 그녀를 잡아 벽에 밀어붙인 다음 다시 아래로 밀어 넣었다.질식하기 직전, 천효연은 삽입을 알아차리고 재빨리 허리를 비틀며 그에게 맞춰 움직였다.“지훈 씨, 정말 대단하네요...”강지훈의 붉게 충혈된 두 눈엔 살기가 가득 차 있었다. 그는 손에 잡히는 대로 천 조각을 그녀의 입에 쑤셔 넣었다.천효연의 목소리는 입안에 갇혀버렸다. 쾌감에 찡그려졌던 미간이 더욱 깊게 찌푸려졌다.왜 소리를 내지 못하게 하는 걸까? 예전에는 분명 신음소리를 내는 걸 좋아했었는데...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천효연은 기진맥진하여 정신을 잃고 말았다. 그제서야 강지훈은 그녀의 몸에서 빠져나왔다. 하지만 흥분은 아직도 가라앉지 않았다.그는 침대에 널브러진 여자를 힐끗 보고는 미간을 찌푸린 채 일어나 욕실에서 간단히 씻은 뒤, 침대 머리맡에 놓인 새 잠옷을 아무렇게나 집어 들고 소현아의 방으로 향했다.소현아는 간신히 울음을 그치고 규영과 미진의 보살핌을 받으며 음식을 먹고 있었다.강지훈이 옆에서 방해하지 않으니 밥상에 차려진 맛있는 음식을 와구와구 먹고 있었다.규영과 미진의 얼굴엔 걱정이 가득했다.“아가씨, 오늘 너무 많이 드셨어요. 의사 선생님께서 조금만 드시라고 하셨잖아요...”소현아는 퉁퉁 부은 눈으로 그들을 가련하게 바라봤다.“이번 한 번만 먹을게요. 강지훈 씨가 먹으라고 했어요. 못 믿겠으면 직접 물어보세요.”확실히 강지훈이 시킨 것이다. 하여 더 이상 말을 하진 않았지만, 걱정스러움은 여전히 가시지 않았다.그때 강지훈
소현아의 울음은 좀처럼 멈출 줄을 몰랐다. 강지훈은 잠시 달래주다가 금세 인내심이 바닥났다.그는 탈옥수를 쫓느라 며칠 동안 뜬눈으로 지새웠음에도 부랴부랴 먼 길을 달려 집에 돌아왔다. 한시라도 빨리 이 여자를 품에 안는 것으로 스트레스를 해소하기 위해서 말이다. 하지만 그녀가 이토록 난동을 부릴 줄이야.“아직도 다 못 울었어?”강지훈은 그녀를 품에 가두고 한 손으로 턱을 쥐어 억지로 고개를 들어 올렸다.소현아의 속눈썹은 눈물에 젖어 엉겨 붙어 있었다. 너무 심하게 울어서인지 딸꾹질이 멈추지 않아 괴로워진 그녀는 힘껏 입술을 깨물었다.딸꾹질을 멈추려는 그녀의 생각을 알아챈 강지훈은 손가락을 움직여 그녀의 입술을 벌리고 안에 집어넣었다.조금씩 훌쩍거리던 소현아가 또다시 울음을 터뜨렸다.“당신 싫어요. 당신은 전연우랑 똑같이 나쁜 놈이에요! 소월이한테 갈 거예요. 소월이는 나 굶기지 않을 거라고요...”“흐엉, 소월이가 해주는 밥 먹고 싶어요. 소월이가 만든 밥이 제일 맛있는데...”한참을 울고 나서도 머릿속엔 여전히 먹을 것뿐이다.강지훈은 욱신거리는 관자놀이를 문지르고는 한 손으로 그녀를 안고, 다른 한 손으로 전화를 걸었다.“요리사한테 다시 음식을 만들어 가져오라고 해!”잠시 후 따뜻한 음식이 방 안으로 들어왔다.향긋한 냄새를 맡자 소현아의 울음소리가 서서히 멈추었다. 그녀는 강지훈의 몸에서 내려와 식탁에 앉아 천천히 먹기 시작했다. 분명 아까 일이 기분을 상하게 한 듯했다.“주인님, 아가씨께선 임신 중이십니다. 의사 선생님께서 임산부는 정서가 불안정하기에 기분을 잘 살펴줘야 한다고 하셨어요.”규영과 미진은 소현아의 붉어진 눈과 코를 보고 용기를 내어 조심스럽게 강지훈에게 말했다.강지훈은 섬뜩한 눈빛으로 그들을 쏘아보고는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복도에서 여자 도우미가 새 목욕 가운을 들고 안방 방향으로 걸어가고 있었다.한 아름다운 여인이 그녀 앞에 나타나 손에 들린 옷을 빼앗았다.“줘. 내가 가져다줄게.”도우미는 당황스
소현아는 접시를 끌어안고 좀처럼 내려놓지 않았다.“오늘 모처럼 입맛이 돈다고요. 규영 씨, 미진 씨, 저 조금만 더 먹으면 안 될까요? 아주 조금만 먹고 강지훈 씨에게는 말 안 할게요.”규영과 미진의 얼굴에는 난감한 기색이 가득했다.그들 역시 소현아를 좋아하는지라 마음껏 먹게 해주고 싶었지만, 그녀가 힘들어하는 모습은 보고 싶지 않았다. 그녀 때문에 주인님에게 혼나는 건 더더욱 싫었다.“아가씨, 배고프시면 제가 과일 좀 가져다드릴까요? 과일은 아기에게 좋을 거예요.”규영이 부드러운 목소리로 그녀와 협상했다.소현아는 고기가 가득 담긴 접시를 눈앞에 두고도 먹을 수 없다는 생각에 눈물까지 왈칵 차올랐다.하지만 배에서 또 이상한 느낌이 들기 시작하자 더는 고집을 부리지 못하고 결국 접시를 내려놓았다.“알겠어요. 그럼 과일 많이 먹을 거예요. 그렇지 않으면 저녁에 배가 고파서 잠이 안 오거든요.”규영과 미진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식기를 치우고 과일을 잘라 가져다주었다. 그러고는 맛있게 먹고 있는 소현아의 모습을 지켜보았다.사실 소현아는 살이 잘 찌는 체질은 아니었다. 많이 먹어도 과도하게 뚱뚱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동글동글 귀여운 편이었다. 식사량을 줄이자 며칠 만에 눈에 띄게 체중이 줄어들기 시작했다.밖에서 돌아온 강지훈은 한눈에 그녀의 얼굴이 핼쑥해졌음을 알아챘다. 살이 빠져 더 커진 눈은 전보다 더욱 청순하고 순진무구해 보였다.“그동안 제대로 못 먹었어?”그가 손을 뻗어 뺨을 꼬집었다. 감촉도 예전만큼 부드럽지 않았고 손에 잡히는 살도 별로 없었다.소현아의 얼굴이 그의 손에 일그러졌다. 그녀는 배고픔에 가련한 눈빛으로 그를 바라봤다.“강지훈 씨, 저 배가 너무 고파요. 아기 낳는 거 너무 힘들어요. 그만두면 안 될까요? 아기 그냥 다시 돌아가게 해줘요!”강지훈은 어이없음에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돌아가? 어디로 돌아가?”소현아는 눈알만 이리저리 굴릴 뿐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그녀 역시 아기가 어디로 돌아갈 수 있는지 알 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