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사람의 눈이 마주쳤다.소은지는 엔데스 명우를 향한 한기와 증오를 내비칠 뿐, 아무 감정도 담지 않았다. 하지만 그 눈빛에 엔데스 명우는 또 이성을 잃을 것만 같았다.“...”소은지는 입술을 달싹이며 무언가 말하려고 했다. 하지만 엔데스 명우를 마주한 소은지는 너무 화가 났지만 무슨 말부터 꺼내야할지 몰랐다.과연 무슨 말부터 해야 할까.엔데스 명우는 말이 통하는 사람이 아니다. 소은지에게 있어 엔데스 명우는 이수연의 남편과 다를 바가 없었다.유일한 차이점이라면 신분의 차이일 뿐이다.만약 엔데스 명우가 일반인 신분이었다면 이렇게 잘난 체하지도 못했을 것이다.“화가 난 거야?”화만 났을까.“이렇게 해서 네가 얻는 게 뭔데?”모르는 사람을 도와줘서 엔데스 명우가 얻는 것이 과연 무엇일까.엔데스 명우는 미소를 지으며 얘기했다.“나는 뭘 얻으려고 이러는 게 아니야.”엔데스 명우가 원하는 건 소은지뿐이다.엔데스 명우는 그 본심을 다 얘기하지 않았다. 하지만 소은지도 알 수 있었다.“우리 사이는 불가능해.”“...”그 말에 엔데스 명우의 표정이 약간 굳었다.불가능하다니.그렇다면 엔데스 명우는 그 불가능을 깨버려서라도 소은지를 데려올 생각이었다.엔데스 명우는 소은지와 함께하기로 결심을 내렸으니까 말이다.“더 도와주지 마. 응?”그 메일을 보는 순간 소은지는 이수연을 위해 항소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엔데스 명우가 계속 방해하는 한, 항소해도 소용없을 것이라는 걸, 소은지는 알고 있었다.“일주일 안에 이혼하고 내 곁으로 와.”“...”표정이 굳어있던 소은지는 엔데스 명우의 강압적인 말투를 듣고 차가운 기운을 내뿜었다.그리고 싸늘한 표정으로 엔데스 명우를 보면서 두 주먹을 꾹 쥐고 참고 있었다.그런 소은지를 보면서 엔데스 명우는 환하게 웃었다.“난 네가 나를 죽도록 증오하면서 아무것도 못 하는 그 모습이 너무 좋아.”엔데스 명우는 바로 이 도발적인 두 눈 때문에 마음이 흔들렸다.엔데스 명우를 이런 눈으로 바라볼
그 번호는 무엇인가. 소은지에게 그것은 소은지를 하늘에서 바닥으로 내동댕이쳐 지옥으로 떨어뜨린 낙인 같은 표식이었다. 소은지는 스스로 맞서 떨쳐낼 힘이 없었다. 그래서 엔데스 명우의 곁에 머무는 동안 끝도 없이 이어지는 지옥 같은 고통을 겪어야 했다.그런데 지금, 엔데스 명우가 예전에 소은지를 부르던 그 번호를 다시 귀로 듣는 순간, 엔데스 명우의 세상은 완전히 흐트러졌다. 겁 따위는 전혀 없어 보이는 소은지의 눈매를 마주하자, 엔데스 명우의 손에 들어갔던 힘은 조금씩 풀렸고 더 이상 억지로 밀어붙일 용기 또한 솟아나지 않았다.자유를 얻은 순간 소은지는 눈을 뜨고 조용히 엔데스 명우를 바라보았다. 다만 그 고요한 침묵 자체가 엔데스 명우의 영혼을 후벼 파고 날카롭게 박혔다....끝내 엔데스 명우는 떠났다. 홧김에 문을 차고 나간 것인지, 아니면 지금 벌어진 모든 일을 끝내 맞서 감당할 수 없다고 인정한 것인지 모르겠지만, 아마 소은지를 다시 마주한 뒤 가장 큰 충격을 받은 순간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엔데스 명우는 등을 돌리고 떠났다.돌아가는 차 안. 엔데스 명우는 차창 밖의 풍경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한때 소은지에게 덧씌웠던 그 번호가 두 사람의 앞길에 가로놓여 있는 것만 같았다. 그 번호의 뒤에서는 너무 많은 일이 일어났다. 셀 수 없을 만큼 많아서 숨이 막힐 정도였고 무력감을 느낄 정도였다.“도련님.”“말해.”“소식이 왔습니다. 우리가 이겼습니다.”엔데스 명우는 아무 대답이 없었다.이겼다는 결말은 엔데스 명우에게 전혀 뜻밖이 아니었다. 엔데스 명우가 손을 댄 일은 단 한 번도 실패로 끝나지 않았으니까. 파리에서 벌어졌던 권력 다툼은 예외에 가까운 변수였고, 지금 맞붙은 상대는 오직 소은지라는 사람뿐이었다. 엔데스 명우가 그런 상대에게 져 줄 리가 없었다. 다만 승전보에도 엔데스 명우의 가슴은 조금도 설레지 않았다. 애초부터 당사자를 아는 사이도 아니었기에 이번 일은 엔데스 명우에게 중요한 사안이 아니었다.“소은지
소은지가 이수연을 안고 얘기했다.“괜찮아요. 앞으로 수연 씨 인생에는 중요한 사람이 더 많이 생길 거예요.”“소은지 씨가 그 중 한 명인 것 같아요.”이수연에게 있어 소은지는 아주 중요한 사람이었다.소은지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그리고 이수연의 머리카락을 정리해 주었다.“얼른 먹어요.”“네.”이수연이 고개를 끄덕이고 소은지의 품에서 벗어나 맛있는 음식을 즐기고 있었다. 마치 맛있는 음식이 이수연의 상처를 치유해 주는 것 같았다.이수연이 바라는 건 많은 게 아니었다. 그저 자기를 사랑해 주는 남자와 함께 평온한 삶을 사는 것이었다.하지만 지금의 남편은 그런 간단한 요구도 들어주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이수연은 실망했다.이수연은 밭을 정리해야 한다고 먼저 돌아갔다. 남편이 없어도 이수연은 열심히 살아가고 있었다....결과는 기다리는 시간은 아주 초조하고 허무했다.자꾸만 마음이 불안해지니까 말이다.오전에 엔데스 명우가 왔다.소은지는 엔데스 명우를 공기 취급하며 무시했다. 그런 소은지를 보면서 엔데스 명우는 화가 났다.엔데스 명우가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얘기했어?”소은지는 무슨 소리인지 어리둥절해하다가 그게 엔데스 현우와의 이혼 얘기라는 걸 깨달았다.“너랑 상관없는 일이잖아.”그 말은 엔데스 명우가 소은지 앞에 나타난 뒤부터 수없이 반복했던 말이다.하지만 엔데스 명우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은지 곁을 떠날 생각이 없어 보였다. 오히려 더욱 미친 듯이 파고들었다.“소은지!”“당신이랑 상관없는 일이잖아. 내 말이 틀려?”엔데스 명우의 무거운 말투를 들은 소은지는 두렵지 않다는 눈으로 엔데스 명우를 쳐다보았다.그런 눈빛이 엔데스 명우를 더 돌게 만들었다.“우리가 무슨 사이인데? 응?”엔데스 명우는 그 질문에 아무 대답도 하지 못했다.“...”하지만 그 질문에 엔데스 명우는 소은지와 엔데스 현우의 관계를 떠올렸다.아무리 계약 때문에 진행한 혼인이라고 하지만 지금 두 사람은 합법적인 부부였다.그 생각에 엔데스
이수연이 그 말을 꺼내는 순간, 소은지의 가슴이 또 한 번 저릿하게 아려 왔다.어떤 나날을 겪어 왔기에, 이런 고통조차 일상의 일부처럼 굳어 버렸을까.“아프지 않다고 해도, 지금은 엄연히 다친 몸이에요.”“어차피 저도 밥은 먹어야 해요. 그냥 제가 얻어먹으러 온 걸로 생각해 주세요.”소은지는 몰랐다. 이수연 집에는 먹을 것이 거의 없고 생활비도 바닥이라는 사실을.남편은 돈만 생기면 도박판부터 찾았고, 식비로 쓸 예산은 늘 적었다.이수연은 언제부터 고기를 못 먹었는지조차 기억이, 흐릿했다.지금 이 집에서 먹는 한 끼야말로 제대로 된 식사였다.“들어와요.”소은지는 그런 이수연의 말을 들으면서 거절할 수가 없었다.“그래도 제가 할게요.”잠깐 망설였다. 다친 사람을 부엌에 세우는 일은 끝내 신경이 쓰였다.“정말 괜찮아요. 제가 할 수 있어요. 믿어 주세요.”“네...”사람을 쉽게 믿지 않는 편이지만, 이상하게 이수연에게만은 고개가 끄덕여졌다.결국 소은지는 이수연을 믿기로 했다.이수연은 조용히 소매를 걷고 부엌 안쪽으로 들어갔다.손등의 퍼런 자국들이 불빛에 선명하게 드러났다. 소은지는 결국 참지 못하고 얘기했다.“그래도 제가 할게요.”“이쪽 동네 스타일의 아침 식사를 준비해 드릴게요. 꼭 맛보게 해 드리고 싶었어요.”이수연이 끝내 고집을 꺾지 않자, 소은지는 결국 물러설 수밖에 없었다. 소은지는 벽난로 옆 소파에 앉아 부엌에서 분주히 움직이는 이수연을 바라보기로 했다.소은지는 문득 생각했다.이수연은 성실하고 단단한 사람이었다. 소은지가 만약 남자였다면 주저 없이 이수연과 결혼하려고 했을 것이다.아침으로는 따끈한 우유와 얇게 구운 빵이 올랐다. 소은지는 원래 빵을 좋아하지는 않았지만 이수연이 만든 건 처음 보는 빵이었다.이수연은 고기를 좋아하기에 고기도 구웠다. 그렇게 빵 위에 고기를 놓고, 또 너무 느끼할까 봐 채소도 올린 뒤 돌돌 감아서 김밥처럼 만들었다.담백한 맛을 좋아하는 소은지도 어느새 두 개째를 집어 들었다.이수
요 며칠, 엔데스 신우는 숨 돌릴 틈도 없이 바빴다.집에서 이유영과 함께하는 시간이라곤 아침에 식탁에 마주 앉아 식사하는 시간뿐, 나머지 시간에는 온통 밖에서 스케줄을 처리하고 있었다.이유영은 그래도 괜찮았다. 이유영은 본인만의 해야 할 일과 루틴이 분명했고, 혼자 있는 시간도 제법 심심하지 않았다.말끔히 차려입은 엔데스 신우가 계단을 내려왔다.“며칠 나가 있어야 해. 그동안 얌전히 지내고 있어.”“어디 가는데요?”“로세 쪽.”꽤 먼 곳이었다.“며칠이요?”“사흘.”사흘. 요즘 들어 엔데스 신우가 사흘, 나흘씩 집을 비우는 일이 잦았다. 이유영은 심심했지만 어차피 별로 할 일이 없었다.파리는 엔데스 신우가 지금의 자리에 오른 뒤로 조금 잔잔해지긴 했지만 엔데스 신우는 자세한 것을 이유영에게 알려주지 않았다.지금의 이유영은 완벽한 세계에서 살아가는 기분이 들었다.한때 강이한이 남긴 고통이 너무 컸기에 지금은 엔데스 신우가 이유영을 단단하게 지켜주고 있었다.“아까 은지한테서 전화가 왔어요.”“뭐래?”“어젯밤 한밤중에, 한 사람은 기어이 눌러앉겠다고 하고, 한 사람은 문을 따고 들어왔대요.”이유영의 말에 엔데스 신우의 머릿속에 불꽃이 튀는 신경전이 떠올랐다.엔데스 신우는 들고 있던 우유 잔을 그대로 내려놓고 이유영을 보면서 물었다.“둘 다 갔어?”“네. 둘 다요.”“현우 쪽은 모르게 해뒀다며?”엔데스 현우는 요즘 이유영에게 여러 번 연락을 넣었다.하지만 이유영은 단 한 번도 대답하지 않았다.엔데스 현우가 소은지를 위해 이곳의 많은 것을 내려놓았다 해도, 용서는 다른 일이었다.“엔데스 명우가 틀어막은 정보가 그렇게 쉽게 새겠어? 예전에 설선비도 끝내 발각되지 않았잖아.”“그럼 정보는 엔데스 명우가 엔데스 현우한테 흘렸다는 뜻이에요? 대체 무슨 속셈인 거죠?”엔데스 신우의 목소리가 낮게 가라앉았다.“소은지는 법적으로는 아직 현우의 아내야.”아내.그 단어가 허공을 한 번 울렸다.이유영의 눈썹이 가볍게 흔들렸다.소은
오늘 밤 찾아갔기에 다행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소은지가 엔데스 현우를 집에 그대로 뒀을지도 몰랐다.그 생각에 엔데스 명우는 또 화가 치밀었다.“네!”강혁이 조심스레 고개를 끄덕였다.엔데스 명우는 말을 잇다 말고 입술을 꾹 다물었다. 초조함과 짜증이 한꺼번에 들끓었다.소은지와 엔데스 현우 사이의 일이 쉽게 풀릴 리 없다는 걸 알고 있었다. 만나지 않고는 끝낼 수 없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하지만 소은지 입술에 남은 그 자국을 보는 순간 이성을 잃고 말았다.더 빨리 소은지를 데려와야 한다.그렇게 결심을 내리자 눈빛에 서늘한 기운이 번졌다. 무조건 꼭 소은지를 데려오겠다는 눈빛이었다....그날 밤, 잠을 이룬 사람은 거의 없었다.소은지는 특히 머리가 깨질 듯이 아팠다.다음 날 이른 시간, 이유영에게서 전화가 걸려 왔다. 이유영은 전날 밤 벌어진 일을 듣고 나서 놀라서 숨을 들이켰다.“두 사람 진짜 다 미친 거 아니야?”“유영아, 아무래도 이사해야 할 것 같아.”“어디로 가려고?”사람들 발이 닿지 않는 곳?처음 이곳에 왔을 때만 해도, 소은지를 아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엔데스 현우도, 엔데스 명우도 소은지의 위치를 알지 못했다.그런데 결국은 찾아냈다.그렇다면 장소를 옮긴다 한들 끝까지 따라붙을 가능성이 컸다. 두 사람이 소은지를 놓아 주지 않는 한, 도망칠 곳은 없다.“그러게... 대체 어디로 가야 하지?”“상대하지 마. 그게 답이야.”이유영의 결론은 단호했다.저런 부류는 반응을 보일수록 더 기고만장해진다. 그러니 무시가 최선이다.“상대하지 않았지. 그런데 결국 엮여버렸어.”이수연 문제만 떠올리면 소은지는 편두통이 일었다.어제 통통한 아주머니가 전해 준 이야기 덕분에, 단순한 이혼이 끝이 아니라는 걸 더 또렷이 알게 됐다.그래도 끝내지 않으면, 이수연은 도망칠 수가 없다. 완전히 끊어 내야 다른 곳으로 옮길 수 있다.이수연의 남편은 돈이 많은 것도 아니니 이수연을 찾기 쉽지 않을 것이다.이유영은 소은지의 말을 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