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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0화

Author: 진헤이
며칠 외박할 줄 알았던 강이한은 저녁 열 시가 되어 술 냄새를 풍기며 돌아왔다.

욕실에서 씻고 나온 유영은 나갔을 때랑 똑같은 옷을 입고 있는 강이한을 보자 눈빛이 싸늘하게 식었다.

그녀는 더 이상 그에게 시선을 주지 않고 조용히 밖으로 향했다.

술 냄새 때문에라도 도저히 그와 한방을 쓰고 싶지 않았다.

“거기 서!”

문고리를 잡는데 남자의 싸늘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전생에 저런 목소리를 들으면 마음이 아프고 눈물이 나왔었는데 지금의 유영은 아무 생각도 들지 않았다.

강이한은 그녀의 그런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무슨 말만 하려고 하면 이혼부터 꺼내는 그녀가 낯설기만 했다.

예전의 유영은 삐져 있다가도 강이한이 버럭 화를 내면 다가와서 그의 화를 먼저 달래주었다.

“더 할 얘기 있어?”

고개를 돌린 유영이 싸늘하게 물었다.

남자는 그녀의 뒷모습을 뚫어지게 바라보며 차갑게 물었다.

“정말 나한테 할 말 없어?”

유영은 고개를 저었다.

“없어.”

등 뒤에서 남자가 씩씩거리며 다가오는 소리가 들렸다. 유영은 재빨리 몸을 피했지만 때는 이미 늦었다. 성큼성큼 앞으로 다가온 강이한이 팔을 뻗어 그녀를 꽉 끌어안았다.

익숙한 그의 향기와 술 냄새가 뒤섞여 코를 자극하자 유영은 주저하지 않고 손을 번쩍 들어 그의 귀뺨을 쳤다.

“더러우니까 저리 꺼져.”

순간 방 안에 정적이 찾아왔다.

남자는 실망과 분노가 뒤섞인 일그러진 표정으로 그녀를 노려보았다.

유영은 힘껏 그를 밀쳤지만, 남자의 힘을 당해낼 수는 없었다.

시선이 마주친 순간 그녀의 눈에 혐오의 감정이 스치고 지나갔다. 전생에 한지음이 찾아와서 임신했다고 말하던 순간이 떠올랐다.

매번 그와 마주할 때면 그때 의기양양하게 지껄이던 한지음의 목소리가 귓가에 맴돌았다.

“내가 잘해줬잖아.”

남자가 먼저 침묵을 깼다.

“어떤 걸 말하는 거야?”

“꼭 그렇게 해야 했어?”

남자가 재차 그녀를 다그쳤다.

지금 강이한은 납치 사건의 범인이 유영이라고 확신하고 있었다.

10년을 함께한 아내가 한지음의 다리를 부러뜨리고 두 눈을 멀게 한 악랄한 여자라고 믿고 있었다.

불과 며칠 전까지 믿는다고 하던 남자는 조작된 증거를 한 번도 의심하지 않았다.

유영은 싸늘한 목소리로 되물었다.

“내가 당신 같은 인간을 위해 그런 짓까지 했다고 생각해? 자신감이 너무 지나친 거 아닌가?”

남자의 얼굴이 얼음장처럼 차갑게 굳었다.

그는 거친 손으로 그녀의 턱을 꽉 잡고 으르렁거렸다.

“그럼, 그 돈 빼돌려서 어디다 썼는지 한번 설명이라도 해보든가!”

유영의 개인 카드로 빠져나간 2억 원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유영은 두 눈을 질끈 감았다. 그녀 본인조차 그 카드가 지금 어디에 있는지 모르는데 뭘 더 해명한단 말인가!

“이유영, 당신 이런 사람 아니었잖아.”

그럼 내가 어떤 사람이어야 하는데?

아니라고 해도 안 믿어줄 거면서 왜 그렇게 슬픈 눈을 하고 있는 거야?

한지음이 처참한 꼴로 돌아왔다고 해서 다짜고짜 나를 의심하는 거야?

할 수만 있다면 이렇게 울부짖고 싶었지만, 유영은 여전히 차분한 목소리로 그에게 말했다.

“그럼, 당신이 바라는 나는 비서랑 남편이 바람이 났다고 모두가 말하는데도 가만히 있어야 한다는 말이야?”

남자의 눈동자에 비친 실망감이 점점 진해졌다. 그는 아마도 그녀가 잘못을 해놓고도 전혀 반성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유영의 마음도 싸늘하게 식어갔다.

전생에는 그가 자신을 버릴까 봐 두렵고 절망스러웠지만 지금은 그냥 웃음만 나왔다. 방구 뀐 놈이 성낸다고 지금 자신이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알고 말하는 걸까?

“이제 이거 좀 놔줄래?”

유영이 싸늘하게 입을 열었다.

강이한은 천천히 손을 놓고 뒤돌아섰다.

“내 앞에서 꺼져.”

유영은 미련 없이 뒤돌아서 방을 나갔다.

예전에 그는 한 번도 이런 식으로 그녀에게 말 하지 않았고 과거의 유영도 그에게 차가운 뒷모습을 보인 적 없었다.

홀로 침실에 남은 강이한은 짜증스럽게 그녀의 화장대를 발로 걷어찼다.

그가 직접 골라준 화장대가 다리 하나가 부러져 바닥에 쓰러졌다.

그날 밤, 두 사람은 누구도 제대로 잠에 들지 못했다. 그들은 어두운 밤 각자의 생각을 가지고 괴로움에 치를 떨었다.

다음 날 아침, 유영이 아래층으로 내려가자, 장숙이 남자의 식사를 챙기고 있었다.

유영은 조용히 다가가서 식탁에 마주 앉았다.

아마 강이한이 술 마시고 돌아와서 숙취에 시달린 것도 오늘이 처음일 것이다.

매번 술자리를 마치고 돌아오면 그녀는 미리 숙취해소제를 준비해 놓고 기다렸고 뜨거운 물수건으로 그의 몸을 닦아주고는 했다. 다음 날 아침 잠에서 깨면 숙취는 말끔히 사라져 있었다.

하지만 오늘은 달랐다. 유영은 아무것도 그를 위해 챙겨주지 않았다.

“우리 아이 가지자.”

남자가 갑자기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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