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라는 죄로의 모든 챕터: 챕터 391 - 챕터 400
430 챕터
제391화
“...”말문이 막혀 버린 임재욱.생리통이 심한 유시아의 고통을 모르듯이 유시아 또한 지금 임재욱이 느끼고 있는 고통을 모른다.무릎을 위로 올렸을 뿐인데 그게 과연 무엇을 의미하는지 유시아는 모를 것이다.한참 지나서 임재욱은 고개를 들어 유시아를 바라보며 그녀의 팔을 꼭 잡았다.이를 갈면서 그녀의 이름을 뱉어내는데.“유시아...”당장이라도 자기를 잡아먹을 것 같아서 유시아는 두려움에 또다시 발버둥을 치며 벗어나려고 했다.임재욱은 손을 내밀어 그녀를 다시 잡으려고 했으나 유시아가 이기고 만다.단숨에 피팅룸에서 도망쳐 나온 유시아는 의문이 가득한 직원들의 시선을 마주하며 황급히 백화점에서 나왔다.도망이라도 치는 듯이 한숨도 돌리지도 않고 택시에 올랐다.“기사님! 일단 출발해 주세요!”운전기사는 바로 시동을 걸었다.“손님, 어디로 모실까요?”‘어디로 가야 할까?’유시아에게는 답이 없는 물음이었다. 그녀마저도 어디로 가야 하는지 어디로 갈 수 있는지 모르기에.잠시 생각하더니 유시아는 입을 열었다.“그냥 가주세요. 요금은 제대로 지급해 드릴게요.”“네, 손님.”택시는 가다가 멈추고 멈추다가 다시 달렸다.시원한 밤바람이 창문을 타고 들어와 유시아의 머리를 휘날렸다.유시아는 파르르 떨더니 창문을 굳게 닫아 버렸다.그러다가 가방에서 핸드폰 벨 소리가 들려왔는데, 임재욱이었다.발신자 번호를 보고서 유시아는 망설이다가 바로 끊어버렸다.이윽고 그녀는 한참 밖을 내다보면서 생각에 빠지게 되었다.중시 거리라 차는 계속 막히고 있지만 유시아는 차에서 내릴 생각이 없어 보였다.운전기사는 도시 외곽으로 달렸는데, 그곳은 차도 얼마 없고 막힘도 없었다.어느 한 별장 구역을 지나자, 유시아는 갑자기 차를 멈춰 세웠다.“멈춰주세요.”택시비를 내고서 유시아는 차에서 내려 불빛이 아른거리는 별장 구역을 바라보았다.그곳은 반월 별장으로 소현우와 함께 지냈던 집이다.소현우가 없어도 이곳은 유시아에게 피난처와 같은 곳이다.기분이 나쁘거나 괴롭힘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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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92화
조금 전에 인사를 나누었던 경비원이었다.“아가씨를 찾는 분이 계십니다. 임재욱이라고 하는데 들여보내도 되겟습니까?”“...”‘이렇게 빨리 찾아온 거야?’임재욱은 유시아가 갈 곳이 없다는 것을 확신하고 무조건 소현우와 지냈던 별장으로 갔겠다고 단정했다.유시아는 아랫입술을 깨물다가 입을 열었다.“아니요. 제가 나갈게요.”말을 마치고 그녀는 바로 별장 밖으로 향했다.불을 끄고 별장 문을 닫는 순간 그녀는 자기도 모르게 별장 안을 거듭 들여다보았다.조명 하나 없이 어두컴컴하기만 했지만, 무척이나 아쉬웠다.이곳에 연연하고 이곳에 남아 있는 기운에 발목이 잡혔다.그리고 왠지 모르게 이번이 마지막일 것 같다는 좋지 않은 예감도 들었다.한참 지나서 유시아는 문을 별장 대문을 닫고 빠르게 걸어 나왔다.별장 구역 밖에 마이바흐가 유난히 눈에 띄었다.임재욱은 뒷좌석에 앉아 있었는데 유시아가 오는 것을 보고 직접 문을 열어주며 비아냥거렸다.“시아쌤답지 않게 왜 사고 치고 도망가는 거예요?” 유시아는 그의 곁에 앉아서 무덤덤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임재욱은 바로 고개를 돌려 강석호에게 말했다.“출발하세요.”시동이 걸리면서 임재욱은 또다시 조롱하기 시작했다.“여기가 유난히 마음에 드나 봐?”그 말에 유시아는 마침내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았다.하지만 목소리는 여전히 덤덤하기 그지없었다.“그래서요?”임재욱은 한참을 침묵하더니 갑자기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한다.“소현우가 남겨준 아파트 그리고 저 별장까지 나한테로 넘겨. 내가 가져야겠어.”그 말을 듣고서 유시아는 온몸에 소름이 돋아났다. 조금 전 온몸을 습격했던 그 예감 때문에.식스 센스라는 것이 정말로 있는 듯 무서울 정도였다.이번이 마지막일 것 같다는 생각만 들었지 정말로 마지막이 될 줄은 몰랐다.놀라움과 괴로움 속에서 허우적거리다가 겨우 입을 여는데.“어떻게...”“네가 자꾸 도망가잖아.”임재욱은 그녀의 말을 끊어버리고 똑바로 바라보며 한 글자씩 뱉었다.“내가 그동안 너무 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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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93화
피비린내가 느껴지고 나서야 유시아는 천천히 멈추기 시작했다.임재욱은 바로 그녀의 턱을 잡아당겨 두 눈을 부릅뜨고 물었다.“대답하라고!”“맞아요.”유시아는 그를 똑바로 바라보며 대놓고 그에 대한 모든 한을 드러냈다.“미워요. 지금 당장 죽어도 눈 하나 깜빡하지 않을 정도로요. 가능하다면 평생 그쪽 얼굴 보고 싶지 않을 만큼으로 밉고 싫어요.”“그래.”임재욱은 아픈 말만 하는 유시아를 바라보면서 입꼬리를 올렸다.“어차피 넌 평생 날 사랑할 리도 없잖아. 그럼, 평생 날 미워해. 평생토록 날 미워하고 증오해.”유시아의 사랑이든 미움이든 그게 뭐든 받아들일 수 있었다.하지만 유독 자기를 무시하고 홀대하는 그녀의 모습을 가만히 보고만 있을 수 없었다.늦은 밤, 두 사람 모두 어두운 얼굴로 각자 별장으로 들어갔다.임재욱은 쇼핑백 두 개를 들고 들어와서 옷을 갈아입고 있는 유시아에게 말했다.“입어 봐. 사이즈 맞지 않으면 바꾸고.”유시아는 그의 손에서 드레스를 건네받았다.임재욱의 마음을 도통 알 수가 없으나 소현우가 남겨준 집까지 빼앗아 가는 것으로 자기에 대한 불만이 가득하다는 것만은 확인되었다.집까지 모두 넘겨주고 나면 유시아는 정말로 빈털터리가 된다.만약 그의 심기를 건드리게 된다면 그다음은 심씨 가문 차례가 될 것이다.그러한 상황이 펼쳐지게 되면 유시아가 했던 모든 희생이 물거품으로 되어 버린다.유시아는 쇼핑백을 들고서 옷방으로 들어가 문을 닫으려고 했다.그때 임재욱이 문을 가로막아 버리는데.“우리 사이에 그냥 갈아입지 그래?”유시아가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자, 임재욱은 한 걸음 더 다가와 웃는 듯 마는 듯 다시 입을 열었다.“왜? 밀당이라도 하겠다는 거야?”그런 임재욱을 바라보면서 유시아는 피식 웃었다.“제가 어찌 감히... 보기 싶으시다면 보여 드려야죠.”말하면서 그녀는 드레스를 가지고 거울 앞으로 다가가 천천히 하나씩 벗기 시작했다.원피스, 이너, 스타킹... 양파 껍질을 벗기듯이 한층 씩.마지막 한 층이 되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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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94화
남은 거라곤 아무것도 없는 유시아, 그나마 쓸 수 있는 건 머리와 입뿐이다.아픈 말들로 임재욱의 몸에 상처만 낼 수 있다면 얼마든지 할 수 있었다.그런 그녀의 모습에 임재욱은 가볍게 웃기만 했다.고개를 바짝 들고 한 마디도 지지 않으려고 애를 쓰는 모습이 귀엽다면서.고개만 숙이고 하자는 대로 비굴하게 모두 따라왔던 꼭두각시보다는 훨씬 났다.적어도 영혼이 살아 있고 생기가 넘치니 말이다.임재욱은 손을 들어 핏기가 거의 없는 그녀의 입술을 만지작거렸다.“난 그런 말만 골라서 하는 네 입술이 좋아.”유시아는 갑자기 두 손으로 그를 확 밀쳐내는데.“임재욱 씨, 그만해요!”사방이 막힌 기분이 들었다.아무런 내색도 없이 모든 것을 앗아가는 임재욱의 모습에 숨이 막혔다.울고 난리를 피우고 아픈 말들로 공격을 해도 눈 하나 깜빡이지 않으니.유시아는 임재욱을 호되게 째려 보고서 밖으로 걸음을 재촉했다.옷방을 나서려는 그 순간 임재욱은 또다시 뒤에서 그녀를 확 끌어안았다.유시아는 단숨에 푸근하고 넓은 그의 품속으로 들어가게 되었다.그녀를 들어 안고서 임재욱은 두 사람만의 침대로 유시아를 던지고 바로 덮쳐왔다.운명을 받아들인 듯 유시아는 눈을 감았다. 항상 이랬으니.임재욱은 기분이 나빠지기만 하면 이와 같은 방식으로 유시아를 괴롭히고 아프게 했다.시작은 임재욱의 화로 끝은 유시아의 고통으로.주인이 애완견을 대하듯이 기분이 좋을 때는 애지중지 여기고 여기저기 맛있는 것도 먹으러 다니고 이것저것 가득 사주고.그러나 만약 애완견의 애교 정도가 지나치다면 바로 그 자신만의 방식으로 누가 주인이고 누가 스폰서를 받고 있는지 똑똑히 알려 준다.전과 달리 임재욱은 난폭하게 그녀의 옷을 찢어 버리지 않고 아주 부드럽게 얼굴에 뽀뽀부터 했다.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변한 듯 조심스러워하는 그의 모습과 뽀뽀에 유시아는 그만 간지러워 고개를 돌렸다.임재욱은 바로 그녀의 고개를 돌려왔다.“시아야, 너 그거 알아? 5년간의 네 기억을 지우기 위해 내가 얼마나 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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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95화
바램은 결국 바램일 뿐 이뤄지기 힘들다는 걸 임재욱은 똑똑히 알고 있다.왕관의 무게를 견디고 지금 이 자리에 앉아 있지만, 모든 세력을 손에 거머쥐고 있지만, 운명은 어찌할 수 없다는 것을.하고 싶어도 할 수없는 것, 갖고 싶어도 가질 수 없는 것.예를 들면, 유시아가 바로 그러한 사례다.이는 하느님이 임재욱에게 주신 가장 혹독한 벌이다.유시아가 가지고 있는 아파트와 별장에 대해서 임재욱은 포기하지 않았다.다음날 변호사에게 관련 계약서를 작성하게 하였고 강석호더러 유시아의 사인을 받아 오라고 했다.유시아가 사인을 하고 나면 관련 부문으로 가서 남은 절차를 마치면 된다.그럼, 소현우와 함께했던 별장은 완전히 임재욱의 소유물이 되고 그는 별장을 매매하든 뭘 하든 모든 권리를 행사할 수 있다.봄날의 푸근한 햇살을 맞으니 자기도 모르게 마음속까지 따뜻해지는 느낌이 든다.유시아는 창가 옆 소파에 기대어 앉아 있는데, 별다른 선택을 할 수 없다는 것을 자 알고 있지만 계약서를 꼼꼼하게 들여다보았다.한참을 보고 나서야 계약서에 사인을 했다.강석호의 그녀의 손에서 계약서를 건네받고 입을 열었는데.“대표님께서 유시아 씨와 함께 점심을 먹으셨으면 합니다. 저와 함께 가시죠.”“아니요.”유시아는 거절했다.“화실에 가봐야 해서 시간이 급할 것 같아요.”강석호가 난처해하는 것을 보고 유시아는 살짝 한숨을 내쉬었다.“제가 직접 전화할게요. 그만 가보세요.”“네.”강석호는 계약서를 챙겨 들고 떠났다.그가 떠나자마자 유시아는 핸드폰을 들어 임재욱에게 전화를 걸었다.“오늘 토요일이라 아이들이 일찍 올 거예요. 점심에 수업하기로 해서 일찍 가봐야 해요.”말하면서 그녀는 또다시 한숨을 내쉬었다.“빈털터리가 된 저에게 이 정도 자유도 사치인가요?”임재욱은 웃었다.“가. 좋다면 가야지.”멈칫거리다가 임재욱은 곧바로 덧붙였다.“시아야, 나 그렇게 나쁜 놈으로 생각하지 마.”유시아는 그 말을 듣고서 피식 웃음이 새어 나왔다.“그동안 저한테 해주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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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96화
주말에는 평소보다 2, 3배 정도 수업 시간이 길어진다.나이가 어린 친구들로 수업이 구성된 만큼 시간이 흐름에 따라 수업 집중력은 점점 떨어지게 되어 있다.40분 정도 수업하고 유시아는 아이들이 다시 수업에 집중할 수 있게끔 잠시 자유 시간을 준다.근처 슈퍼로 가서 유시아는 아이들에게 나누어 주려고 사탕을 비롯한 여러 주전부리를 사 왔다.화실로 들어서자, 프런트 직원이 아이들과 소파에 쪼그리고 앉아 무엇을 사이에 두고 한바탕 싸우고 있는 모습이었다.“무슨 일이에요?”그들을 향해 다가가면서 유시아가 물었다.“무엇 때문에 싸우는 거예요?”“시아 언니...”프런트 직원은 다소 난감한 얼굴로 그녀를 바라보며 운을 떼기 시작했다.“아이들이 어디서 강아지 한 마리를 주워 왔는데 도로 내보내려고 하지 않아요. 기어이 여기서 키우겠다고 하는데, 몸에 병이 있을지도 모르고 보다시피 엄청 더럽잖아요...”아이들은 순간 반박하기 바빴다.“아니에요! 절대 아무런 병도 없을 거예요...”“강아지는 우리 친구라고 그랬어요.”“저도 이 강아지 엄청 마음에 들어요. 강아지 보면서 그림 그리고 싶다고요...”유시아는 그제야 테이블 위에 납작 엎드려 있는 꼬질꼬질한 웰시 코기를 보게 되었다.한눈에 봐도 유기견이었다. 마르고 작은 것이 두려움에 잔뜩 상기된 모습이었으니.아이들은 강아지에게 음식을 주면서 테이블도 엉망진창으로 만들어 버렸다.유시아는 불쌍한 웰시코기를 보면서 순간 키웠었던 구름이 생각이 났다.임재욱의 손에 불행을 당하게 되었는지 아니면 이 웰시코기처럼 마지못해 유기견이 되어 버렸는지 알 수도 없다.유시아는 한 걸음 앞으로 다가가 손에 들고 있던 주머니를 내려놓고 웰시코기의 머리를 부드럽게 어루만졌다.“여기 남아도 되는데 일단 동물 병원으로 데리고 가야겠어요. 만약 아픈 곳이 있다면 일단 서둘러 치료부터 받아야 하거든요. 심각해지기 전에.”웰시코기를 화실에 남겨도 된다는 말에 아이들은 기뻐서 방방 뛰었다.“와, 너무 좋아요. 우리한테도 친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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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97화
훤칠한 몸매에 숨이 막힐 듯한 아우라를 뽐내며 떡하니 서 있었다.임재욱은 아무런 소리로 내지 않고 한참 동안 그렇게 안쪽 상황을 지켜보았다.그 누구도 그가 언제 왔는지 모른다.깨끗하게 씻은 웰시코기를 안고 있는 유시아는 그를 보자마자 조금 전에 아이들과 했던 대화가 생각나면서 순간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다.“어... 어떻게 여기까지 온 거예요?”“할아버지 칠순 잔치가 코 앞이잖아. 같이 생긴 선물 사러 갈게 해서 왔어.”임재욱은 유시아를 향해 살짝 웃었다.“언제 끝나?”“오늘 토요일이잖아요.”유시아는 아무런 표정도 없이 덧붙였다.“한 시간 정도 더 할 예정이니 아마 7시쯤이면 끝날 수 있을 거예요.”언제까지 잠자코 기다릴 수 있는지 전혀 가늠이 되지 않아 일단은 많은 대로 질러 버렸다.기다리다 지치면 스스로 떠날 것이라고.임재욱이 이곳에 있으면 유시아는 늘 불안함에 떨게 된다.그녀의 말에 임재욱은 고개를 끄덖이고서 웰시코기를 바라보며 또다시 입꼬리를 올렸다.“강아지 꽤 귀엽네...”말하면서 그는 손을 내밀어 머리를 만지려고 했다.순간 유시아는 토실이가 다치기라도 하듯이 거의 무의식적으로 뒤로 한걸음 물러서면서 최대한으로 보호하는 자세를 취했다.그렇게 임재욱의 손은 허공에 어색하게 멈추게 되었다.유시아에게 있어서 자신이 얼마나 보잘것없고 하찮은 존재인지 대충 짐작이 갔는지 임재욱의 입가에 쓴웃음이 새어 나왔다.‘내가 동물 학대라도 한다고 생각하는 걸까? 이렇게까지 날 경계할 정도로?’“일단 수업하고 있어. 내려가서 기다릴게.”말하고서 임재욱은 뒤돌아 내려갔다.임재욱이 완전히 사라지는 것을 확인하고 나서야 유시아는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이윽고 토실이를 토실이 집안에 조심스레 내려놓고 본격적으로 수업에 몰두했다.휴식날이라 부모들은 일찍이 아이들을 데리고 갔다.아직 6시도 채 되지 않았고 밖은 여전히 환했다.계단에 있을 때 임재욱이 화실 유리문 앞에 자기를 등지고 있는 것이 보였다.바삐 도는 바깥 풍경을 바라보면서 넋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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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98화
지금은 자전거가 아니라 스쿠터이고 페달을 밟고 있는 남자는 임재욱이며 뒷좌석에 앉아 있는 유시아다.거의 비슷해 보이지만 떠올렸던 그때 그 시절과는 완전히 다른 화면이다.두 사람 사이에는 넘을 수 없는 산이 있기 때문이다.제법 신이 난 모습인 임재욱은 틈새 유시아에게 뭐라고 말하기까지 했다.다만 바람 소리가 너무 강하고 양쪽에 차가 수없이 지나가서 유시아는 제대로 들리지 않았다.소리 높여 다시 물어보았는데.“뭐라고 그랬어요?”임재욱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실은 조금 전에 유시아에게 기쁘냐고 물었었는데, 정작 물음을 던지고 나서 자신이 하찮아 보였다.그래서 더 이상 질문하지 않고 어느 한 식당 앞에 멈춰 섰다.저녁을 먹고 나서 근처 백화점으로 향해 임태훈의 선물을 고르려고.미대생이라 보는 안목이 자기보다 낫다고 판단하면서 일부러 유시아를 데리고 가려는 것이었다.집사한테서 들은 바에 따르면 임태훈은 요즘 어메랄드에 빠져 있다고 한다.임재욱은 유시아를 데리고 쥬얼리 가게로 들어가 어메랄드 장식품과 공예품을 보기 시작했다.진열대 앞에 선 유시아는 어메랄드 배추와 어메랄드 말을 한 손에 하나씩 들고서 비교하려고 했는데 점차 넋이 나가버렸다. 5년 전 그날이 떠오르면서.그때 그녀는 임재욱의 여자 친구로 댁으로 방문을 했었다.임태훈에게 선물로 드렸던 금실 녹나무 지팡이가 있었는데 해외에 있는 친구를 통해 특별히 공수해 온 것이었다.극히 보기 드문 귀중한 물건으로 임태훈 역시 무척이나 마음에 들어 했었다.임태훈은 자상하고 다정다감한 어른으로서 유시아와 자주 연락도 했었다.아랫사람한테 지시까지 내려 유시아에게 임씨 가문 고택을 소개해 주었고 임청아와 사이좋게 지내라고 거듭 당부도 했었다.5년이 흐르고 다시 임재욱의 여자 친구로서 임태훈 앞에 서게 될 것인데, 그 역시 내심 감탄하리라 생각이 들었다.칠순 잔치에 유시아가 모습을 드러내게 되면 임태훈이 얼마나 언짢아하고 노여워하며 어찌할 바를 몰라 할 것인지 감히 상상조차 되지 않았다.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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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99화
어메랄드 조룡을 임태훈의 선물을 고르고 나서 직원에게 맡겼다.직원은 곧바로 예쁜 포장 상자를 가지고 와서 정성스레 포장하고 끝으로 리본까지 예쁘게 묶었다.임재욱은 지갑에서 카드를 꺼내 들면 입을 여는데.“조금 전에 그 팔찌도 같이 포장해 주세요.”그 말에 유시아는 고개를 들어 그를 한 번 보았으나 더 이상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모든 걸 다 준비하고 나서 두 사람은 함께 그린레이크로 돌아왔다.거실에 들어서자마자 일 층에서 자유로이 움직이고 있던 뭉치가 달려와 주인을 마주했다.유시아는 질척거리는 뭉치를 아주 손쉽게 피해 갔고 바로 위층으로 올라가 샤워하려고 했다.마지막 계단을 딛는 순간 허씨 아주머니와 당부하고 있는 임재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앞으로 함부로 돌아다니지 못하게 신경 써 주세요. 특히 시아가 집에 있을 땐 절대 나오지 못하게 하시고요.”유시아는 멈칫거렸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마지막 계단을 디뎠다.욕실로 들어가 바로 샤워를 하고 타일을 둘러싸고 거울 앞에 앉아 머리를 말리려고 했다.바로 그때 임재욱이 문을 열고 들어와 헤드 드라이기를 빼앗아 가더니 대신 머리를 말려줄 생각이었다.의아하기는 했지만, 유시아는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두었다.눈을 가늘게 뜨고 열심히 머리를 말리는 임재욱의 모습이 서서히 시야로 들어왔다.물기 하나 없이 완전히 말리고 나서야 임재욱은 드라이기 전원을 꺼버렸다.“그 어메랄드 팔찌 마음에 안 들어?”“네.”“완전 마음에 안 들어요.”“하지만...”임재욱은 머뭇거리다가 길쭉한 손가락으로 유시아의 머리카락을 천천히 빗겨주면서 말했다.“근데 전에는 액세서리에 환장했었잖아. 왜 갑자기 싫어진 거야?”유시아가 액세서리를 마다한 적이 없다고 기억하고 있다.남운대에 다닐 때도 유시아는 늘 팔에 팔찌 목에 목걸이 여러 악세서리를 매칭하여 착용하기도 했었다.타지로 여행을 갈 때도 언제나 여러 디자인의 액세서리를 꼭 챙겨오곤 했는데.그때 발에 실버로 된 발찌도 했었고 그 발찌에는 작은 방울이 달려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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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00화
말하다가 점점 격동한 나머지 유시아는 숨도 제대로 쉬어지지 않았다.겨우 마음을 추스르고 한참 지나서 다시 입을 여는데.“지금 또다시 나를 5년 전으로 데리고 가고 있잖아요.”임재욱이 오늘 내내 보였던 부드럽고 자상한 모습과 임태훈의 선물을 고르러 가던 장면에 칠순 잔치를 준비하는 장면까지...모든 것이 5년 전 그 상황과 겹치면서 아프게 했다.그렇게 모든 걸 ‘우연의 일치’로 만들어 놓고 뻔뻔하게 어떻게 하면 잊을 수 있겠냐고 윽박지르고 있다.만약 숨을 수만 있다면 다시는 임재욱을 보지 않아도 된다면 그 기억이 점점 옅어질 수도 있다.하지만 그건 절대 불가능한 일이다.유시아는 임재욱을 바라보면서 갑자기 차갑게 씩 웃다가 일어서서 침실로 향했다.바로 침대에 누워 이불 속으로 자신의 모습을 꼭꼭 숨겨 버렸다.홀로 욕실에 남겨진 임재욱은 한참 지나고 나서야 벽을 붙잡고 정신을 차릴 수가 있었다.무척이나 피곤한 듯 머리를 어루만지면서.한동안 그 자세를 취하고 다시금 깊은 생각에 빠졌다.기나긴 생각 끝에 그는 마침내 몸을 돌려 두 사람만의 침대로 돌아갈 수 있었다.침실 안에는 커튼이 반쯤 가려져 있다.몽롱한 달빛 아래서 임재욱은 유시아의 뒤통수와 부드러운 머릿결을 넋 놓고 바라보았다.망설인 끝에 그는 그녀의 짤록한 허리를 살포시 감싸 안아 품으로 슬며시 끌어당겼다.이윽고 귓가에 천천히 뽀뽀를 하면서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일 다 끝나고 시간 나면 우리 여행갈까? 바쁘면 캠핑 가도 되고. 가서 마음껏 그림도 그리고 네가 가장 좋아하는 토실이도 데리고 가자.”감빵 생활을 했었던 유시아가 팔목에 액세서리를 하는 것은 싫어할 수 있어도 자유를 마다할 리가 없다고 여겼다.하여 그러한 생각을 하면서 계획을 세우게 된 것이다.유시아는 가볍게 대답만 했는데, 그의 의견에 따르겠다는 건지 아닌지 아리송했다.임재욱은 그녀가 승낙했다고 받아들이고서 어깨에 가볍게 뽀뽀를 하면서 또다시 입을 열었다.“그 토실이 말이야, 그렇게 좋으면 집으로 데리고 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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