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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6 Bab

제1021화

쓸데없는 여시은의 질문에 고은서는 대답하고 싶지 않았지만 최대한 참고 물었다.“여시은, 불만이라도 있어?”“아니.”여시은이 웃음을 터뜨렸다.“그냥 떠본 거야, 난 꽤 만족해!”고은서는 속으로 생각했다.‘여시은, 매일 이렇게 연기하는 거, 안 힘들어?’“잠시 후 향기 지속력 좀 보자, 문제없으면 이걸로 결정하면 될 것 같아!”여시은은 기분 좋게 말했다.수정할 필요가 없다는 건 이 일이 일단락될 수 있다는 뜻이었지만 고은서는 경계를 늦추지 않았다.여시은이 일부러 그녀에게 직접 향수를 조제하게 했다면 분명 무슨 일이 있었을 것이기에 반드시 경계해야 했다.“은서야, 어차피 시간도 많으니까 같이 고기를 구워 먹을래?”여시은이 초대했다.쿠아는 도우미가 실내로 데려간 상태였다. 고은서는 앉아 있기엔 조금 지루했지만 그렇다고 여시은의 제안을 받아들일 생각이 없었기에 배가 고프지 않다는 이유로 여시은에게 가까이 가지 않았다.앞에는 구운 고기의 맛을 확실히 살려주는 숯불 바비큐 그릇이 놓여 있었다.만약 여시은이 화상을 입거나 넘어지기라도 한다면 해명하기 어려울 것 같아 그냥 조용히 앉아 있는 게 상책이었다.고은서가 신경을 곤두세우는 게 사실 오버하는 것은 아니었다.지난번 농장에서 물에 빠진 일로 트라우마가 남았기 때문이었다.그날 조금 전까지 천진난만하게 이야기하던 여시은이 어느새 그녀를 끌고 연못에 빠뜨렸다.머릿속에 복잡한 생각으로 가득 차 있을 때 점잖은 남자의 모습이 다가왔다.여재훈이었다.고은서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예의 바르게 ‘여재훈 씨’라고 불렀다.그녀를 발견한 약간 놀란 듯했다.“은서 씨가 놀러 왔네요?”“은서가 맞춤형 향수를 가져다주러 왔어요.”고은서가 대답하기 전에 여시은이 여재훈 곁으로 다가가며 애교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아빠, 왜 이제야 오셨어요. 아까부터 기다렸는데.”여재훈이 여시은의 발을 내려다보며 걱정스럽게 물었다.“발가락은 좀 괜찮아졌니?”여시은이 어린아이처럼 투정을 부렸다.“아직도 아파요. 예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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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22화

“아악!”갑자기 여시은이 고통스러운 비명을 질렀다.고개를 든 고은서는 쿠아가 여시은을 할퀸 뒤 심하게 손목을 물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여시은이 쿠아를 떼어내자 쿠아는 등을 둥글게 말며 공격 자세를 취했다. 마치 무언가에 자극을 받아 공포에 질린 채 방어적인 모습이었다.도우미들은 혹시라도 여시은이 다칠까 봐 걱정되어 쿠아를 잡으려 했다. 하지만 온몸으로 화를 내고 있는 쿠아는 이를 드러내 으르렁거리며 누구도 가까이 오지 못하게 했다!“시은아!”여재훈이 급히 여시은에게 달려갔다.한편 쿠아는 그 틈에 빠르게 실내로 도망쳐 들어갔다.여재훈은 고양이를 쫓을 겨를도 없이 여시은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피도 나네! 빨리 의사를 불러!”여시은이 간신히 말을 이었다.“아빠, 괜찮아요. 의사 부를 필요 없어요. 약만 바르면 금방 나을 거예요.”“그게 무슨 소리야! 고양이에게 물렸으면 광견병 백신을 맞아야 해!”여재훈은 여시은의 말을 듣지 않은 채 도우미에게 의사를 집으로 부르라고 했다.이 상황을 지켜보던 고은서는 왠지 우연이 아니라는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여시은은 왜 일부러 쿠아에게 물린 것일까?10분 만에 의료 가방을 들고 도착한 의사는 이내 여시은의 손목에 난 상처를 처리했다.여시은이 쿠아가 예방접종을 모두 마쳤다고 말했지만 여재훈은 의사에게 광견병 백신을 놓으라고 했다.주사를 맞고 상처 처리가 끝난 후 의사는 여시은에게 이상 반응이 없는지 관찰하기 위해 집에 있다가 정해진 시간에 나머지 주사를 놓기로 했다.모든 것이 정리된 후 여재훈이 도우미에게 물었다.“고양이가 왜 갑자기 사람을 물었어?”도우미가 두려운 듯이 대답했다.“쿠아는 평소에 온순해서 사람을 물지 않아요.여시은 씨가 평소에 계속 안고 다닐 때까지 아무 일도 없었는데 고은서 씨가 온 이후로 실내에 있다가 나오더니 갑자기 사람을 물었어요. 왜 그런지는 모르겠어요.”의사가 적절한 타이밍에 말을 꺼냈다.“어린 고양이는 자극을 받으면 그렇게 될 수 있어요. 소리, 물건, 혹은 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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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23화

여시은이 이렇게 말할수록, 주변 사람들에게는 그녀가 억울함을 참고 사태를 무마하려는 것처럼 느껴졌다.고은서도 오늘 이 일을 제대로 해결하지 않으면 자신이 누명을 쓸 수도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여재훈 씨, 부탁드려도 될까요?”고은서는 차분하게 여재훈에게 물었다.“그럴 필요 없어!”차가운 남성의 목소리와 함께, 키가 크고 잘생긴 곽승재의 모습이 보였다.고은서는 약간 놀랐다.‘곽승재에게 오지 말라고 했는데 왜 온 거지?’곽승재는 방에 들어오자마자 고은서를 바라봤다. 고은서는 꼿꼿이 서 있었고 표정은 담담했지만 곽승재를 보는 눈에는 약간의 놀라움이 비쳤다.곽승재는 고은서와 말을 나누지 않은 채 방 안의 다른 사람들을 둘러보았다.소파에 앉아 있는 여시은은 손등과 손목에 상처가 나 있었으며 눈가가 약간 붉어진 것만 봐도 조금 전 무슨 일을 겪은 것을 알 수 있었다.여시은 옆에 앉아 있는 여재훈은 얼굴에 걱정이 가득했다.의사와 도우미들은 조심스러운 표정이었다.“승재야, 여긴 어쩐 일이야?”여재훈이 놀란 얼굴로 묻자 곽승재는 고은서에 대해 언급하지 않고 예의를 지키며 말했다.“아버지의 부탁으로 아저씨를 만나러 왔어요. 그러다가 마침 고은서가 자신의 결백을 증명하려는 말을 들었습니다. 여 대표님, 고은서는 다른 사람을 해칠 행동을 하지 않아요.”곽승재의 말을 들은 고은서는 묘한 감정에 사로잡혔다.예전에는 곽승재가 백유미를 위해 성급하게 그녀를 비난했지만 이제는 그녀의 편을 들어주고 있었다.여재훈이 고개를 끄덕였다.“나도 오해라고 생각해. 아마도 고양이가 먹이를 지키려고 문 것일 거야.”“쿠아는 먹이를 지키지 않아요. 제가 먹이를 입 앞에서 가져가도 소리조차 안 내요.”유은수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유은수, 그게 무슨 말이야!”여시은이 화를 내며 말했다.“쿠아가 먹이를 지킨 게 아니라면 은서가 나를 해치려 했다는 거야? 그럴 사람이 아니잖아!”유은수는 ‘사람은 겉만 보고 알 수 없다’는 어조로 중얼거리며 더 이상 말하지 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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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24화

미간을 살짝 찌푸린 여재훈은 도우미를 바라보며 물었다.“이 향수가 정말 고은서 씨가 가져온 거야? 다른 것으로 가져온 건 아니야?”도우미는 확신에 찬 목소리로 대답했다.“분명히 이거예요.”고은서도 말을 이었다.“여재훈 씨, 향수에 무슨 문제라도 있나요?”여재훈은 별다른 설명 없이 향수를 고은서에게 건넸다.“고은서 씨가 직접 맡아보시오.”향수를 받아 냄새를 맡은 고은서는 향수 안에 복잡한 시트러스 향이 추가되어 있는 것을 발견했다.“제 기억이 맞다면 시트러스 계열 향은 고양이에게 큰 자극을 줍니다. 가벼운 스트레스 반응에서부터 심하면 중독 증상을 일으킬 수도 있죠.”여재훈이 고은서를 바라보며 말했다.“역시 고은서 씨였군요!”유은수가 자신감 가득한 얼굴로 말했다.“고은서 씨, 우리 시은 씨가 은서 씨를 얼마나 믿었는데 어떻게 이럴 수가 있어요? 평소에도 은서 씨를 친한 친구라고 그랬는데 왜 이런 짓을 한 거예요?”“사실도 제대로 확인하지 않고 벌써 결론을 내리는 것은 아닌 것 같은데요?”곽승재가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뭘 더 확인할 게 있어요? 이렇게 명백한데!”유은수가 비웃듯 말했다.“고은서 씨, 작전을 잘 세웠네요. 여시은이 고양이를 좋아하는 걸 알고 일부러 향수에 독성을 넣어 고양이를 자극하게 한 거죠!”“유은수,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여시은이 엄숙하게 말했다.“나는 은서를 믿어. 은서는 책임감 있는 사람이야. 절대 나를 해치지 않아. 분명 뭔가 오해가 있는 거야!”고은서가 여시은을 바라보았다.하얗게 질린 얼굴, 초조한 표정, 확신에 찬 목소리...분명 ‘피해자’임에도 불구하고 이렇게나 당당하게 고은서의 혐의를 벗겨주고 있었다.누구라도 ‘착하다’고 감탄할 정도였다.“시은 씨, 무슨 오해가 있다는 거예요?”유은수가 마음 아픈 듯 말했다.“시은 씨는 남을 너무 믿어서 탈이에요. 고양이에게 할퀸 사람은 본인이잖아요!”“향수에 고양이를 자극하는 성분이 있다고 해서 고은서와 관련이 있다는 증거가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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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25화

여재훈의 질문에 따라 여시은은 며칠 전 고은서와 식사 중 곽승재와 마재경을 만난 일을 설명했다.“그때 제가 실수로 탕을 엎질러 마재경 씨와 은서를 데였어요.”여시은은 자책하는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이 일 때문에 곽 대표는 제가 고의로 한 거라고 의심하셨고 은서도 저를 오해해서 더 이상 친구로 대해주지 않으려 해요. 지난번 농장에서 은서가 아직도 이 일로 화가 나 있더라고요. 그래서 물고기에게 밥을 주다가 먼저 가버렸어요. 따라가서 설명하려 했지만 은서가 듣기 싫어해서...”여시은은 말을 이어가지 않고 오히려 여재훈을 바라보며 말했다.“아빠, 내가 시작한 일이에요. 그래서 은서를 탓할 수 없어요. 전혜라 아줌마에게도 설명했어요. 다 끝난 일이었는데 유은수가 그날 엿듣고 아빠에게 함부로 말하다니...”여시은이 유은수를 노려보며 화를 냈다.“앞으로 함부로 말하지 마! 그리고 아빠와 상관없는 일을 전하지도 마!”고개를 숙인 유은수는 더 이상 말하지 못했다.하지만 여재훈의 얼굴은 잔뜩 상기되어 있었다.“말도 안 돼! 이런 일을 왜 나에게 숨겼어? 왜 그때 사실대로 말하지 않은 거야?”여시은은 아버지에게 애교를 부리며 말했다.“별일도 아니잖아요. 내가 너무 성가시게 구는 바람에 은서가 화를 낸 거예요. 은서도 절 밀 의도는 없었어요. 다리 위에 서 있어서 일이 커진 거죠.”여재훈은 여시은의 애교에도 기분이 상한 듯 고은서와 곽승재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고은서 씨, 곽 대표님. 시은은 평소에 덜렁대고 다른 사람의 감정을 잘 살피지 못하는 면이 있지만 고의로 누군가를 해치려는 아이는 아닙니다. 고은서 씨가 시은에게 화낸 건 이해해요. 그리고 일부러 시은을 밀었을 리 없다는 것도 믿어요. 시은이 말한 대로 그날 일은 넘어가겠지만 향수 문제에 대해서는 고은서 씨가 정확히 설명해주길 바랍니다.”고은서는 여시은이 향수를 이용해 그녀를 모함할 거라고 예상했지만 지난번 물에 빠진 일까지 다시 꺼낼 줄은 몰랐다.고의가 아니지만 여시은을 연못에 빠뜨리고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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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26화

여재훈이 고개를 끄덕였다.“기억해요. 은서 씨가 각종 향 조합하는 데 독특한 견해를 가지고 있어서 인상 깊었어요.”고은서가 말을 이었다.“그럼 저희가 시트러스 향을 추가하는 것에 대해 논의한 것도 기억하시죠? 하지만 조제해보니 시은의 요구사항과 맞지 않을 것 같아서 사용하지 않았고요.”여재훈은 실제로 고은서와 향 조합 등에 대해 논의한 바 있었다.시트러스뿐만 아니라 다른 향들의 조합도 시도해본 적이 있었다.“적합하지 않다는 걸 알면서 제가 왜 계속 사용했겠어요?”고은서는 또 자신이 조제한 향수가 에센셜 오일을 임시로 혼합한 것이 아니라 증류와 침전 등 일련의 공정을 거쳤다고 설명했다.“방금 도우미가 가져온 이 병에는 시트러스 계열 오일이 나중에 추가된 게 분명해요. 양도 너무 많아 향이 강렬하게 나는데 정상적인 조향사라면 이런 초보적인 실수를 절대 하지 않아요.”“완성된 향수에 일부러 넣었을 수도 있잖아요. 어차피 아무도 모르는데.”유은수가 의심을 제기하자 고은서가 웃음을 지었다.“그럴 가능성도 없진 않죠. 하지만 시은에게 시향하기 전에 먼저 시향지에 뿌려서 맡아본 후에 시은이가 손목에 뿌렸죠.”고은서는 가방에서 시향지를 꺼내며 말을 이었다.“여재훈 씨, 차이가 나는지 확인해 보시겠어요? 시향지는 제가 여씨 저택에 도착한 후에 사용했고 주위에 사람들이 다 있었어요. 게다가 여시은의 지문도 남아있죠. 이건 제가 조작할 수 없어요. 믿기지 않으시면 경찰에 연락해 검증해보시죠.”고은서에게서 시향지를 받은 여재훈이 가볍게 냄새를 맡았다. 확실히 시트러스 계열의 향기는 없었다.“이게 대체 어떻게 된 거야?”여재훈이 여시은을 바라보았다.“이 향에는 자극성분이 없는데 쿠아가 왜 너를 물었어? 향수병의 향기는 또 왜 다른 거야?”여시은은 충격을 받은 듯 눈을 동그랗게 떴다.“아빠, 저도 모르겠어요. 대체 누가 이런 짓을 한 거야? 쿠아가 나를 물게 했을 뿐만 아니라 은서에게 책임을 전가하려고 하다니!”여시은이 화난 목소리로 현장의 도우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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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27화

화가 난 여시은은 눈이 빨개졌다.“너 왜 계속 은서에게 책임을 전가하려고 했는지 알겠다! 네 실수를 감추려는 거였어! 이번 일은 절대 용서할 수 없어! 너 해고야!”이 말을 들은 유은수는 더욱 비통하게 울며 다시는 그러지 않을 테니 한 번만 기회를 달라고 여재훈에게 애걸복걸하기 시작했다.진상이 이미 밝혀진 이상 이렇게 소란을 계속 피울 수도 없는 노릇이었기에 여재훈은 유은수를 일단 방으로 데려가라고 한 후 나중에 결정을 내리겠다고 했다.울며 사과하던 유은수가 떠난 뒤 여재훈은 방 안에 있던 다른 사람들도 내보냈다.드디어 조용해졌다.여재훈은 고은서를 바라보며 사과했다.“고은서 씨, 정말 미안해요. 평소에 집안일을 소홀히 했고 시은이도 도우미들을 관리한 경험이 없어서 이런 일이 벌어졌네요. 하마터면 누명을 쓸 뻔했네요.”고은서는 여재훈이 아직도 속고 있다는 걸 알았다.여시은의 수법은 그야말로 대단했다. 처음부터 끝까지 유은수만 나서게 했고 자신은 전혀 관여하지 않은 척하며 오히려 고은서를 변호하는 척했다.여재훈의 입장에서 자기 딸을 믿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고은서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저는 괜찮아요. 윗물이 맑으면 아랫물도 맑은 법이겠죠. 시은이가 쿠아에게 물려서 고생하겠네요.”여시은은 고은서 말에 담긴 비꼬는 뜻을 못 들은 듯 빨개진 눈으로 말했다.“정말 생각도 못 했어, 만나는 도우미들마다 다 이렇게 나쁜 마음을 품고 있을 줄이야! 평소엔 항상 웃으며 잘 대해주고 나를 특별히 챙겨주더니 뒤에서는 이렇게 무서운 짓을 하다니...”여시은이 여재훈의 소매를 잡으며 서운해했다.“아빠, 내가 너무 무능한 거 같아요. 도우미에게까지 이렇게 속다니...”여재훈이 여시은의 어깨를 토닥였다.“네 탓이 아니야. 강성의 집사님을 여기로 오라고 할게. 그분이 관리하면 이런 일이 없을 거야.”여시은은 여전히 자책하는 얼굴로 고은서에게 사과했다.“은서야, 정말 미안해. 오늘은 같이 앉아서 바비큐도 먹으며 오해를 풀려고 했는데 이런 일이 생겨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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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28화

“결국 고은서 씨가 억울함을 당한 건 사실이니 고은서 씨를 만나면 대신 사과의 말도 전해줘.”담담한 표정의 곽승재는 대답 대신 말을 돌렸다.“여 대표님, 판주는 GS 그룹의 하나의 투자은행일 뿐이고 업무도 비교적 단순해 여시은이 배울 게 많지 않습니다. 여 대표님이 여시은 씨를 단련시키고 싶으시다면 더 좋은 곳으로 보내시는 게 좋을 겁니다.”곽승재의 뜻을 알아차린 여재훈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고려해 볼게.”곽승재가 떠난 후에야 여재훈이 엄숙한 표정으로 딸을 바라보았다.“시은아, 솔직히 말해 봐. 오늘 일은 유은수가 네 지시에 따라 일부러 그렇게 한 거지?”도우미 한 명이 꾸지람을 듣고 벌금을 부과했다고 원한을 품고 이런 방법으로 복수할 계획을 세웠다는 게 여재훈에게는 도저히 믿기지 않았다.하지만 아까는 사람들이 많았기에 딸을 공개적으로 의심할 수는 없었다.“아빠, 어떻게 나를 의심할 수 있어요!”여재훈의 말을 들은 여시은은 천추의 한을 품은 듯 눈물을 비 오듯 흘리며 높은 목소리로 말했다.“어떻게 이럴 수 있어요? 은서와 곽 대표님이 나를 안 믿으시는 건 그렇다 쳐도 아빠까지 저를 의심하다니! 그럼 아까 경찰을 부르지 그랬어요? 진상을 조사해서 내가 유은수를 부추겼는지, 유은수가 저를 해치려고 계획한 건지 알아보게요!”여재훈은 딸의 반응에 약간 죄책감을 느꼈다.일이 바빠 딸이 대부분 혼자 집에서 지내다 보니 성격이 오만하긴 했지만 그래도 대체로 사려 깊고 분별력 있는 아이였고 말과 행동을 함에 있어서도 분수를 알았다.그런데 어떻게 이런 식으로 의심할 수 있을까?여재훈은 딸에게 휴지를 건네며 말했다.“아빠가 잘못했어, 화내지 마. 그냥 유은수라는 도우미가 어떻게 고양이를 자극할 수 있는 향을 알고 짧은 시간에 이렇게 계획적으로 일을 꾸민 게 이해가 안 가서 그래.”“그러니까 아빠는 여전히 나를 의심하시는 거네요!”여시은이 휴지를 내팽개쳤다.“유은수가 하면 이상하고 내가 시켰다고 하면 정상이란 말이에요? 아빠, 저는 향에 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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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29화

딸의 슬픈 모습에 마음이 아픈 여재훈은 여시은의 눈물을 닦아주며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당연하지.”이 말을 들은 여시은은 여재훈의 품에 매달리며 서럽고 감동적인 눈물을 흘렸다.“아빠, 거짓말하는 거 다 알아요. 전 아무런 능력도 없고 잘하는 것도 하나도 없잖아요.곽 대표님께도 인연을 맺고 싶다고 말했는데 나를 무시하더라고요... 전 실패한 사람인가 봐요, 정말 못난 사람이에요...”여재훈이 딸의 어깨를 토닥이며 다정하게 말했다.“시은아, 넌 충분히 뛰어나. 실패한 사람이 아니야. 정말 승재와 결혼하고 싶다면 내가 직접 말해볼게.”“싫어요, 그러면 승재 씨는 더욱 저를 싫어할 거예요...”여시은이 슬픈 목소리로 거절하자 여재훈도 방법이 없었다.“그럼 네 생각엔 어떻게 하면 좋을 것 같아?”여시은은 눈물범벅이 된 얼굴을 들고 말했다.“아빠, 나도 회사를 차리는 건 어때요?”비록 딸의 요구가 약간 장난 같아 보였지만 더 이상 딸이 슬퍼하는 걸 보고 싶지 않았던 여재훈은 고개를 끄덕였다.“그래.”“아빠, 정말 최고예요...”여시은이 여재훈의 팔을 끌어안았다.“앞으로는 절대 나를 의심하면 안 돼요! 난 아빠의 딸이에요, 아빠가 하나하나 가르쳐줬는데 그렇게 추한 일을 할 리 없잖아요! 내가 직접 유은수를 경찰서에 데려가서 혼내주도록 할게요!”여재훈이 고개를 끄덕였다.그는 한 번도 딸의 교육을 소홀히 한 적이 없었다. 딸은 평소에 벌레 한 마리도 죽이지 못할 정도로 동물을 사랑하는 마음씨 따뜻한 아이였다.그러니 자신이 과민반응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모든 것은 도우미의 계획된 행동이었을 뿐이다....“승재 씨도 전용 기사가 있잖아. 왜 내 차에 타는 거야?”차 안에서 고은서가 꽤 짜증 난 듯한 표정을 지었다.여씨 저택을 나와 차에 막 앉았을 때 곽승재가 무단으로 그녀의 차 문을 열고 올라탄 것이었다.곽승재는 고은서의 질문에는 답하지 않고 되물었다.“지난번에 물에 빠진 일, 대체 어떻게 된 거야?”농장에 있었던 그 날, 현장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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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30화

곽승재는 어두운 눈빛으로 고은서를 응시했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고은서가 말을 이었다.“예전 생각이 나더라고. 백유미에게 무슨 일만 생기면 당신은 늘 까닭도 묻지 않고 날 탓했지. 설명할 기회조차 주지 않았어. 설령 내가 설명해도 전혀 믿어주지 않았어. 그냥 내가 악질이고 구제 불능이라고 했었지.”곽승재의 안색이 약간 변하더니 입술도 꽉 깨물었다.“승재 씨, 지금 많이 변했어. 나에 대한 감정이 진심이라는 것도 알아. 하지만 내 마음이 예전으로 돌아갈 순 없어요.”고은서가 곽승재를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이혼한 지 이렇게 오래되었는데도 나를 향해 보였던 혐오, 받지 않았던 전화, 백유미를 감싸던 모습을 떠올리면 여전히 깊은 절망감이 밀려와.”“은서야, 그만 얘기해.”곽승재가 낮고 침울한 목소리로 말했다.“아니, 계속 말할 거야.”고은서가 단호하게 말했다.“곽승재, 당신은 지금 내가 너무 냉정하다고 생각하지? 당신은 나를 위해 많은 것들을 했고 여러 번 다치기도 했지만 나는 늘 과거에만 매달린 채 마음을 열지 않고 오히려 당신을 이용까지 했잖아. 하지만 생각해본 적 있어? 한 여자가 얼마나 많이 절망감을 느꼈기에 한때 그토록 사랑했던 남자의 노력에도 이토록 무감각할 수 있는지?”이 말을 마친 뒤 고은서는 창문을 약간 열어 밖을 바라보았다.“그러니까 다시 한번 진지하게 말할게. 난 더 이상 당신을 사랑하지 않아. 그러니 내게 시간 낭비하지 마. 되돌아가지도 않을 거고 그때 그 감정으로 돌아가는 일도 없을 테니까.”평온한 목소리로 말하는 고은서는 곽승재에게는 눈길조차 주지 않은 채 창밖으로 지나가는 차량만을 바라보았다.창문으로 들어오는 바람에 고은서의 검은 머리카락이 몇 가닥 날리며 은은한 향기가 퍼져나갔다.곽승재는 그 머리카락을 잡고 싶었지만 결국 움직이지 않았다.“차 좀 세워줘.”한참 후, 곽승재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백미러를 통해 뒷좌석 상황을 살핀 운전기사는 고은서가 창밖만 바라보고 있고 곽승재가 그녀의 뒤통수를 응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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