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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27화

Author: 류한나
화가 난 여시은은 눈이 빨개졌다.

“너 왜 계속 은서에게 책임을 전가하려고 했는지 알겠다! 네 실수를 감추려는 거였어! 이번 일은 절대 용서할 수 없어! 너 해고야!”

이 말을 들은 유은수는 더욱 비통하게 울며 다시는 그러지 않을 테니 한 번만 기회를 달라고 여재훈에게 애걸복걸하기 시작했다.

진상이 이미 밝혀진 이상 이렇게 소란을 계속 피울 수도 없는 노릇이었기에 여재훈은 유은수를 일단 방으로 데려가라고 한 후 나중에 결정을 내리겠다고 했다.

울며 사과하던 유은수가 떠난 뒤 여재훈은 방 안에 있던 다른 사람들도 내보냈다.

드디어 조용해졌다.

여재훈은 고은서를 바라보며 사과했다.

“고은서 씨, 정말 미안해요. 평소에 집안일을 소홀히 했고 시은이도 도우미들을 관리한 경험이 없어서 이런 일이 벌어졌네요. 하마터면 누명을 쓸 뻔했네요.”

고은서는 여재훈이 아직도 속고 있다는 걸 알았다.

여시은의 수법은 그야말로 대단했다. 처음부터 끝까지 유은수만 나서게 했고 자신은 전혀 관여하지 않은 척하며 오히려 고은서를 변호하는 척했다.

여재훈의 입장에서 자기 딸을 믿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고은서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저는 괜찮아요. 윗물이 맑으면 아랫물도 맑은 법이겠죠. 시은이가 쿠아에게 물려서 고생하겠네요.”

여시은은 고은서 말에 담긴 비꼬는 뜻을 못 들은 듯 빨개진 눈으로 말했다.

“정말 생각도 못 했어, 만나는 도우미들마다 다 이렇게 나쁜 마음을 품고 있을 줄이야! 평소엔 항상 웃으며 잘 대해주고 나를 특별히 챙겨주더니 뒤에서는 이렇게 무서운 짓을 하다니...”

여시은이 여재훈의 소매를 잡으며 서운해했다.

“아빠, 내가 너무 무능한 거 같아요. 도우미에게까지 이렇게 속다니...”

여재훈이 여시은의 어깨를 토닥였다.

“네 탓이 아니야. 강성의 집사님을 여기로 오라고 할게. 그분이 관리하면 이런 일이 없을 거야.”

여시은은 여전히 자책하는 얼굴로 고은서에게 사과했다.

“은서야, 정말 미안해. 오늘은 같이 앉아서 바비큐도 먹으며 오해를 풀려고 했는데 이런 일이 생겨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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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어게인, 비긴   제1028화

    “결국 고은서 씨가 억울함을 당한 건 사실이니 고은서 씨를 만나면 대신 사과의 말도 전해줘.”담담한 표정의 곽승재는 대답 대신 말을 돌렸다.“여 대표님, 판주는 GS 그룹의 하나의 투자은행일 뿐이고 업무도 비교적 단순해 여시은이 배울 게 많지 않습니다. 여 대표님이 여시은 씨를 단련시키고 싶으시다면 더 좋은 곳으로 보내시는 게 좋을 겁니다.”곽승재의 뜻을 알아차린 여재훈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고려해 볼게.”곽승재가 떠난 후에야 여재훈이 엄숙한 표정으로 딸을 바라보았다.“시은아, 솔직히 말해 봐. 오늘 일은 유은수가 네 지시에 따라 일부러 그렇게 한 거지?”도우미 한 명이 꾸지람을 듣고 벌금을 부과했다고 원한을 품고 이런 방법으로 복수할 계획을 세웠다는 게 여재훈에게는 도저히 믿기지 않았다.하지만 아까는 사람들이 많았기에 딸을 공개적으로 의심할 수는 없었다.“아빠, 어떻게 나를 의심할 수 있어요!”여재훈의 말을 들은 여시은은 천추의 한을 품은 듯 눈물을 비 오듯 흘리며 높은 목소리로 말했다.“어떻게 이럴 수 있어요? 은서와 곽 대표님이 나를 안 믿으시는 건 그렇다 쳐도 아빠까지 저를 의심하다니! 그럼 아까 경찰을 부르지 그랬어요? 진상을 조사해서 내가 유은수를 부추겼는지, 유은수가 저를 해치려고 계획한 건지 알아보게요!”여재훈은 딸의 반응에 약간 죄책감을 느꼈다.일이 바빠 딸이 대부분 혼자 집에서 지내다 보니 성격이 오만하긴 했지만 그래도 대체로 사려 깊고 분별력 있는 아이였고 말과 행동을 함에 있어서도 분수를 알았다.그런데 어떻게 이런 식으로 의심할 수 있을까?여재훈은 딸에게 휴지를 건네며 말했다.“아빠가 잘못했어, 화내지 마. 그냥 유은수라는 도우미가 어떻게 고양이를 자극할 수 있는 향을 알고 짧은 시간에 이렇게 계획적으로 일을 꾸민 게 이해가 안 가서 그래.”“그러니까 아빠는 여전히 나를 의심하시는 거네요!”여시은이 휴지를 내팽개쳤다.“유은수가 하면 이상하고 내가 시켰다고 하면 정상이란 말이에요? 아빠, 저는 향에 대

  • 어게인, 비긴   제1029화

    딸의 슬픈 모습에 마음이 아픈 여재훈은 여시은의 눈물을 닦아주며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당연하지.”이 말을 들은 여시은은 여재훈의 품에 매달리며 서럽고 감동적인 눈물을 흘렸다.“아빠, 거짓말하는 거 다 알아요. 전 아무런 능력도 없고 잘하는 것도 하나도 없잖아요.곽 대표님께도 인연을 맺고 싶다고 말했는데 나를 무시하더라고요... 전 실패한 사람인가 봐요, 정말 못난 사람이에요...”여재훈이 딸의 어깨를 토닥이며 다정하게 말했다.“시은아, 넌 충분히 뛰어나. 실패한 사람이 아니야. 정말 승재와 결혼하고 싶다면 내가 직접 말해볼게.”“싫어요, 그러면 승재 씨는 더욱 저를 싫어할 거예요...”여시은이 슬픈 목소리로 거절하자 여재훈도 방법이 없었다.“그럼 네 생각엔 어떻게 하면 좋을 것 같아?”여시은은 눈물범벅이 된 얼굴을 들고 말했다.“아빠, 나도 회사를 차리는 건 어때요?”비록 딸의 요구가 약간 장난 같아 보였지만 더 이상 딸이 슬퍼하는 걸 보고 싶지 않았던 여재훈은 고개를 끄덕였다.“그래.”“아빠, 정말 최고예요...”여시은이 여재훈의 팔을 끌어안았다.“앞으로는 절대 나를 의심하면 안 돼요! 난 아빠의 딸이에요, 아빠가 하나하나 가르쳐줬는데 그렇게 추한 일을 할 리 없잖아요! 내가 직접 유은수를 경찰서에 데려가서 혼내주도록 할게요!”여재훈이 고개를 끄덕였다.그는 한 번도 딸의 교육을 소홀히 한 적이 없었다. 딸은 평소에 벌레 한 마리도 죽이지 못할 정도로 동물을 사랑하는 마음씨 따뜻한 아이였다.그러니 자신이 과민반응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모든 것은 도우미의 계획된 행동이었을 뿐이다....“승재 씨도 전용 기사가 있잖아. 왜 내 차에 타는 거야?”차 안에서 고은서가 꽤 짜증 난 듯한 표정을 지었다.여씨 저택을 나와 차에 막 앉았을 때 곽승재가 무단으로 그녀의 차 문을 열고 올라탄 것이었다.곽승재는 고은서의 질문에는 답하지 않고 되물었다.“지난번에 물에 빠진 일, 대체 어떻게 된 거야?”농장에 있었던 그 날, 현장에

  • 어게인, 비긴   제1030화

    곽승재는 어두운 눈빛으로 고은서를 응시했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고은서가 말을 이었다.“예전 생각이 나더라고. 백유미에게 무슨 일만 생기면 당신은 늘 까닭도 묻지 않고 날 탓했지. 설명할 기회조차 주지 않았어. 설령 내가 설명해도 전혀 믿어주지 않았어. 그냥 내가 악질이고 구제 불능이라고 했었지.”곽승재의 안색이 약간 변하더니 입술도 꽉 깨물었다.“승재 씨, 지금 많이 변했어. 나에 대한 감정이 진심이라는 것도 알아. 하지만 내 마음이 예전으로 돌아갈 순 없어요.”고은서가 곽승재를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이혼한 지 이렇게 오래되었는데도 나를 향해 보였던 혐오, 받지 않았던 전화, 백유미를 감싸던 모습을 떠올리면 여전히 깊은 절망감이 밀려와.”“은서야, 그만 얘기해.”곽승재가 낮고 침울한 목소리로 말했다.“아니, 계속 말할 거야.”고은서가 단호하게 말했다.“곽승재, 당신은 지금 내가 너무 냉정하다고 생각하지? 당신은 나를 위해 많은 것들을 했고 여러 번 다치기도 했지만 나는 늘 과거에만 매달린 채 마음을 열지 않고 오히려 당신을 이용까지 했잖아. 하지만 생각해본 적 있어? 한 여자가 얼마나 많이 절망감을 느꼈기에 한때 그토록 사랑했던 남자의 노력에도 이토록 무감각할 수 있는지?”이 말을 마친 뒤 고은서는 창문을 약간 열어 밖을 바라보았다.“그러니까 다시 한번 진지하게 말할게. 난 더 이상 당신을 사랑하지 않아. 그러니 내게 시간 낭비하지 마. 되돌아가지도 않을 거고 그때 그 감정으로 돌아가는 일도 없을 테니까.”평온한 목소리로 말하는 고은서는 곽승재에게는 눈길조차 주지 않은 채 창밖으로 지나가는 차량만을 바라보았다.창문으로 들어오는 바람에 고은서의 검은 머리카락이 몇 가닥 날리며 은은한 향기가 퍼져나갔다.곽승재는 그 머리카락을 잡고 싶었지만 결국 움직이지 않았다.“차 좀 세워줘.”한참 후, 곽승재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백미러를 통해 뒷좌석 상황을 살핀 운전기사는 고은서가 창밖만 바라보고 있고 곽승재가 그녀의 뒤통수를 응시

  • 어게인, 비긴   제1031화

    박지연은 약간 어리둥절했다.“아무리 곽승재를 좋아한다고 해도 이러는 건 무의미한 행위잖아. 널 괴롭혔다고 곽승재가 여시은을 좋아하게 될 것도 아닌데.”고은서도 여시은의 속셈을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그냥 내가 마음에 안 들어서 날 화풀이 상대로 생각할 수도 있잖아. 약간 다른 사람이 자신의 손아귀에서 괴롭힘당하는 걸 좋아하는 것 같아. 위선적인가 하면 또 진실한 면도 있단 말이지. 이젠 내가 자신의 진면목을 알아차려도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식으로 나온다니까.”“미리 준비해 둔 녹음 필에는 별로 쓸만한 내용이 녹음된 거 없어?”“없어. 내 의도를 알아차렸는지 나를 경계하더라고.”“듣고 나니까 여시은이 너무 소름 끼치게 무서운데.”박지연은 말하면서 손으로 자신의 팔을 어루만졌다.“생긴 건 천진난만해서 세상 물정 모르고 곱게 큰 부잣집 아가씨라고만 알고 있었는데 이런 암흑 적인 면을 가지고 있을 줄이야.”여시은은 처음부터 오냐오냐하게 큰 순진한 여자애의 모습으로 고은서에게 다가갔다.사실 전에 민시후가 여씨 가문과 같은 부잣집에서 자란 아가씨치고는 여시은이 너무 수상할 정도로 천진하다고 말한 적이 있었다.지금 와서 돌이켜보면 아주 지당한 말이었다.민시후의 추측이 틀리지 않았고 여시은 또한 쉬운 사람이 아니었다.“은서야, 전에 절에 가서 보살님한테 빌 때 너 다른 생각한 거 아니야? 간절하게 빌었어야지. 그렇지 않고서야 왜 이런 사람들이 계속 네 주변에 꼬이는 거야?”박지연이 한숨을 내쉬면서 말했다.“아마 내가 필연코 넘어야 할 고비인가 봐. 넘고 나면 내 인생도 조금이나마 편해지려는지.”고은서도 따라 한숨을 내쉬면서 답했다.“너 고은서 맞아? 왜 갑자기 인생의 의미를 다 꿰뚫어 보기라도 노인처럼 이상한 소릴 하는 거야?”박지연이 그녀를 힐끔 보면서 장난삼아 물었다.고은서는 순간 할 말을 잃었다....곽승재는 며칠 동안 라이트문에 나타나지 않았고 고은서한테 연락도 하지 않았다.반면 마재경과 사이가 점점 좋아지는 것 같았는데 심지

  • 어게인, 비긴   제1032화

    “이런 일은 걱정한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야. 여씨 가문이 아니더라도 다른 가문이 나타날 수도 있는 일이잖아. 우린 그냥 자기 일에 몰두하면 돼.”고은서가 송민아를 위안했다.“나도 알고 있어. 그런데 여시은은 왜 강성에 있는 그 큰 회사를 내버려두고 해성에서 회사를 차리려고 하는 거야? 경쟁자가 하나 더 많아졌잖아.”송민아가 고개를 끄덕이면서 자신의 불만을 토로했다.고은서도 눈살을 찌푸렸다.‘설마 나를 노리고 이러는 건가? 그런데 곽승재가 아직 나한테 미련이 남았다는 이유로 이 정도로 일을 크게 만든다고?’“너무 걱정하지 마. 우리 실력도 만만치 않잖아. 무서워할 필요 없어.”송민아가 도리어 고은서를 위안했다.고은서는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서로 몇 마디 더 주고받은 후 송민아는 이만 자신의 자리로 돌아가려고 했다.고은서는 이 기회에 쇼핑백 하나를 꺼내 그녀에게 건네주었다.“이거 네 오빠한테 대신 전해줘. 아줌마가 며칠 전에 세탁소에서 가져왔는데 계속 잊어버리고 미처 가져다주지 못했어.”“우리 오빠 외투가 왜 너한테 있는 거야?”송민아가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물었다.고은서는 이내 그녀의 이마를 콕 찌르면서 답했다.“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거야? 그날 바에서 있었던 일로 경찰서로 갔었잖아. 그런데 나오는 길에 날씨가 하도 추워서 나한테 빌려준 거야.”송민아는 약간 실망한 표정을 지었다.“난 두 사람이 사이에 내가 모르는 무언가가 있는 줄 알았지. 옷은 네가 직접 돌려줘. 요즘 들어 바쁜지 도통 보이지 않는다니까.”“그냥 네가 가지고 있다가 시간 될 때 나 대신 돌려줘.”“고은서, 우리 오빠한테는 기회조차 주지 않으려는 거야?”“맞아.”고은서가 고개를 끄덕였다.“날 좋아하는 건 둘째 치고 나한테 호감이 있다고 해도 거절할 생각이거든. 난 상사만 되고 싶을 뿐 네 형수님이 되고 싶은 생각은 일도 없으니까 쓸데없는 생각은 일찌감치 접는 게 좋을 거야.”“...”송민아는 순간 할 말을 잃었다.외투에 관한 소식

  • 어게인, 비긴   제1033화

    송민준의 말을 들은 고은서는 순간 멈칫했다가 이내 답했다.“딱히 무서운 건 아니에요. 그저 별로 안 친한 사람이랑 함께 걷는 게 어색해서요.”“은서 씨, 우리가 서로 알고 지낸 지 꽤 오래된 것 같은데 아직도 제가 낯설게 느껴지나요?”송민준이 웃으면서 물었다.그는 전에도 비슷한 물음을 제기하면서 고은서를 싫어했던 이유를 자세하게 설명해 준 적이 있었다.비록 항상 온화한 모습만 보이던 그였지만 차마 민시후처럼 편하게 대할 수가 없었다.고은서는 이 상황에서 어색하게 웃으며 사과할 수밖에 없었다.“죄송해요.”다행히 송민준은 별로 개의치 않는 듯했다.“사과할 필요 없어요. 따지고 보면 제 탓이죠. 나중에 민아한테 은서 씨 친구가 될 수 있는 법을 잘 물어보고 배워야겠네요.”고은서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웃어 보이기만 했다.“그보다 요즘 곽 대표님이 전에 농장에서 은서 씨랑 여시은 씨가 물에 빠진 일에 관해 재조사하고 있다던데요.”‘확실히 재조사해 보겠다고는 했지만 그 이후로 연락이 없었는데 송민준은 또 어떻게 안 거지?’그녀의 어리둥절한 표정을 본 송민준이 웃으면서 말을 이어갔다.“저도 현장에 있었잖아요. 그래서 저한테 물어보는 사람이 있어서 알아봤더니 곽 대표님께서 재조사하고 있더군요. 그 일이 있은 지 며칠 되는데 왜 갑자기 재조사하게 된 거죠? 그 후로 무슨 다른 일이 더 있었나요?”고은서는 부인하지 않았다.“여 대표님께서 제가 여시은 씨를 밀었다고 오해하고 계시잖아요. 곽승재는 그저 제가 아무 죄도 없다는 걸 증명해 주고 싶어서 그러는 걸 거예요.”“당시 오해라고 현장에서 이미 다 설명하고 끝난 일이 아닌가요?”송민준한테 여씨 가문에서 있었던 일을 그대로 알려줄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고은서는 자신을 비꼬는 듯한 표정을 지으면서 모호한 답을 내뱉었다.“또 새로운 오해가 생겨서야.”송민준도 눈치 있게 더는 묻지 않았다.끝내 고은서는 송민준의 차에 앉아 회사로 돌아갔다.주차장에서 고은서는 차에서 내리면서 송민준한테 인사하고는

  • 어게인, 비긴   제1034화

    “몰라요. 엄마 아빠가 싸워서 무서워서 오빠랑 언니 찾으러 온 건데 다 집에 없었어요...”곽승연의 목소리가 점점 더 낮아졌다.고은서는 아무 말도 없이 혼자 달아나오는 게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 아냐고 그녀를 꾸짖고 싶었지만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시간은 저녁 아홉 시를 가리키고 있었고 서연정은 아마 곽승연이 사라진 걸 발견하고 미친 듯이 찾고 있을 것이다.고은서가 전화를 걸자마자 서연정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은서야, 승연이가 어디 갔는지 보이지 않아. 혹시 너한테 간 거니?”“어머니, 먼저 진정하세요. 승연이는 제가 데리고 있어요.”고은서가 그녀를 위안했다.서연정은 이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다행이야. 내가 지금 데리러 갈게.”고은서는 전화를 끊고 곽승연 곁에 앉아 물었다.“승연아, 아무것도 가지지 않고 차엔 어떻게 오른 거야?”곽승연은 인형 호주머니에 넣어둔 용돈으로 택시를 타고 온 거라고 사실대로 답했다.고은서는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며 그녀를 교육했다.“다음부턴 무슨 일 있으면 먼저 언니한테 전화해. 이렇게 함부로 뛰쳐나왔다가 나쁜 사람이라도 만나면 어떡하려고 그래.”곽승연은 고개를 끄덕였다.그녀는 혼자 밖에서 오랫동안 앉아있은 탓인지 눈에 띄게 피곤해 보였고 아직 조금 전의 두려움에서 벗어나지 못한 듯했다.고은서는 계속해 비난하는 대신 그녀를 꼭 껴안고 나지막한 목소리로 달래주었다.덕분에 긴장이 풀린 곽승연은 스르르 잠에 들었다.반 시간 후, 밖에서 서연정의 목소리가 들려왔다.고은서는 조용히 일어나 문을 열어주었다.눈가가 빨개진 서연정은 소파에 누워 잠든 곽승연을 향해 다가가더니 그녀가 다친 곳은 없는지 자세히 살펴보았다.곽승연이 괜찮다는 걸 확인한 서연정은 끝내 참지 못하고 눈물을 흘렸다.옆에 있던 고은서는 그녀에게 종이를 건네주었다.“어머니, 승연이는 괜찮으니까 너무 걱정하지 않으셔도 돼요.”서연정은 종이로 눈물을 닦으면서 연시 고맙다고 인사했다.“은서야, 정말 고마워.”고은서는 서연정

  • 어게인, 비긴   제1035화

    서로 다투던 광경이 떠올랐는지 평소엔 온화하고 담담해 보이던 서연정은 저도 모르게 미간을 찌푸리면서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승연이는 우리가 밥 먹을 때부터 정원에서 혼자 놀고 있었는데 아마 애 아빠가 상을 엎는 소리가 하도 커서 놀랐던 것 같아.”서연정은 말하면서 곽승연을 바라보았다.“내가 정신 차리고 승연을 찾으러 갔을 땐 이미 사라진 후였고.”하인들도 곽승연이 어디 갔는지 별로 신경 쓰지 않은 탓에 나중에 CCTV 동영상을 돌려보고서야 그녀가 뒷문으로 달려 나간 걸 발견했다고 한다.그리고 하인들과 함께 밖으로 나가 한참 동안 찾아보았지만 곽승연은 보이지 않았고 고은서가 전화했을 땐 마침 신고하려던 참이었다고 설명을 보탰다.그녀는 서연정이 얼마나 다급해하고 절망스러워했는지 상상이 갔다.“저도 오늘 평소보다 집에 늦게 들어오고 또 마침 도우미 아줌마가 휴가를 내는 바람에 집이 비어 있었거든요. 그렇지 않으면 승연이를 더 빨리 만나서 어머니한테 연락드릴 수 있었을 텐데.”“아니야, 네 잘못은 하나도 없어. 내가 급한 마음에 승연이 해성에서 찾을 수 있는 사람이 너 아니면 승재라는 걸 미처 생각하지 못했어.”서연정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고은서는 피곤해 보이는 서연정을 보며 물었다.“어머니, 곽 회장님과 사이가 그토록 좋지 않은데 왜 이혼하고 승연이를 혼자 데리고 살지 않는 건가요? 아무리 어르신들의 약속을 대신 지켜드리기 위해 이혼하지 않는 거라고 하지만 할머니께선 어머니가 행복하게 사는 게 그 무엇보다 더 중요하다고 하셨어요. 그러니까 어머니가 이혼하신다고 해도 절대 반대하지 않으실 거예요.”자기보다 어른인 데다가 예전엔 시어머니였던 사람을 이혼하라고 달래는 게 그다지 좋은 일은 아니었지만 고은서는 서연정이 이미 벼랑 끝에 맞닿은 결혼생활을 굳이 유지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되었다.그녀의 말을 들은 서연정은 씁쓸한 미소를 지어 보이며 답했다.“지금까지 계속 이렇게 살아왔는데 이혼하든 말든 달라지는 건 없어. 그나마 이혼하지 않으면 GS그룹

Pinakabagong kabanata

  • 어게인, 비긴   제1108화

    지난번 숙모에게 가방을 선물했을 때, 숙모가 엄청나게 기뻐했던 모습이 순간 떠올랐다.그래서 이번엔 삼촌에게도 뭔가를 사서 드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고은서는 노 사장님에게 코담배병을 어디서 샀는지 물어봤다. 그리고 가족에게 드릴 선물로 하나 사고 싶다고 말을 덧붙였다.“이건 친구가 선물한 거라 어디서 샀는지는 나도 잘 모르겠네.”노 사장님은 미안한 듯 말했다.고은서는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괜찮아요, 그냥 예뻐서 한번 여쭤본 거예요. 나중에 백화점 가서 한번 골라볼게요.”“아가씨는 참 효심이 깊구먼.”노 사장님은 칭찬을 몇 마디 건넨 뒤, 주문한 메뉴를 주방으로 가져갔다.“은서 씨 아버님께서 코담배병을 좋아하시나요? 선물하시려고요?”여재훈이 부드럽게 물었다.고은서는 고개를 저었다.“전 아버지가 없어요. 삼촌께 드리려는 거예요.”여재훈은 조금 놀란 표정이었다.그는 고은서를 몇 번밖에 만나지 못했기에 그녀의 가정사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했다. 그래서 그녀에게 아버지가 없다는 사실도 오늘 처음 들었다.“죄송합니다. 그런 줄도 모르고...”여재훈은 곧바로 사과했다.고은서는 별일 아니라는 듯 웃었다.“괜찮아요. 저희 가족끼리도 잘 지내고 있어요.”착각일지도 모르지만, 여재훈은 고은서의 그 미소는 어딘가 익숙하다는 느낌을 받았다.그때 여재훈의 휴대전화 벨 소리가 울렸다.전화번호를 확인한 그는 곧바로 정신을 차리고 전화를 받았다.“시은아, 왜 그래... 주사 맞는 게 당연히 좀 아프지. 하지만 주사를 안 맞으면 어떻게 낫겠어... 알겠으니깐 떼쓰지 말고, 의사 말 잘 들어.”전화를 끊고 나서 여재훈은 고은서에게 간단히 상황을 설명했다.“시은이가 아픈데 주사 맞기 싫다고 하네요.”고은서는 여시은의 이름에 반응이 컸다. 예전에 여시은에게 학대받다 죽은 쿠아가 떠올랐다. 그 기억 때문에 속이 불쾌해지고 분노가 스멀스멀 올라왔다.그녀는 말없이 찻잔을 들어 한 모금 마셨다.여재훈은 고은서의 반감을 눈치채지 못할 리 없었다.그는 조심

  • 어게인, 비긴   제1107화

    여재훈의 말을 들은 고은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고은서는 여시은이 아픈 시기가 참으로 절묘하다고 생각했다. 아마도 밖의 여론이 여시은에게 불리해서 고은서를 만나고 싶지 않았을 뿐일 것이다.요 며칠, 인터넷에서는 여시은과 관련된 뉴스가 아직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다.고은서가 KK한테 도움을 요청한 것 외에도, 아마 곽승재도 뒤에서 힘을 써준 것 같았다.“원래 연회 다음 날에 시은이를 데리고 직접 사과드리려고 했는데, 며칠간 일이 좀 많아서 오늘로 미뤄졌어요.”여재훈은 이어 말했다.“오늘 아침에 갑자기 시은이가 열이 나서, 제가 혼자 찾아오게 됐습니다.”“은서 씨, 지난 일은 전부 시은이의 잘못입니다. 제가 대신 사과드리겠습니다.”여재훈은 미안한 표정으로 말했다.고은서는 담담하게 웃으며 대꾸했다.“재훈 씨의 사과는 저한테 너무 과분해요. 다만 저를 나쁜 사람으로 오해하지 않으셨으면 좋겠어요.”고은서가 지난번 여씨 가문에서 있었던 일을 언급하고 있다는 걸 알아챈 여재훈은 마음이 더욱 불편해져났다.“제가 도우미와 시은이의 말만 믿었네요. 시은이에게는 그 일에 대해 이미 훈계했고, 요 며칠 집에서 반성하고 있습니다.”고은서는 여시은이 그저 여재훈에게 보여주기 위해 반성하는 척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녀는 결코 자기 잘못을 인정하지 않았을 것이다.그러나 여재훈은 여시은을 여전히 굳게 믿고 있었고 그녀의 이중적인 모습에도 크게 실망하지 않은 듯했다.고은서가 더 이상 말을 잇지 않자, 운전 중이던 여재훈도 잠시 침묵을 지켰다.얼마 지나지 않아, 두 사람은 한적한 곳에 있는 개인 요리 식당에 도착했다.그 식당은 규모가 너무 크지는 않았지만 분위기는 엄청 좋았다.정원에는 다양한 희귀한 꽃들과 식물들이 놓여 있었고 작은 인공 폭포와 휴식용 테이블과 의자들도 마련되어 있었다.입구 쪽의 돌 테이블 위에는 하얀색의 통통한 고양이 두 마리가 게으르게 햇볕을 쬐고 있었다.잔잔하게 흘러나오는 음악을 들으니 고은서의 마음이 한결 차분해지는 것을 느꼈다.

  • 어게인, 비긴   제1106화

    송민아가 입을 삐죽이며 말했다.“저번에 네가 너무 진지하게 말하길래, 나 진짜 겁먹었잖아.”고은서가 다시 한번 웃으며 잡담하듯 물었다.“민아야, 너 예전에 말했잖아. 너랑 네 오빠는 엄마가 다르다고. 그럼 네 아빠랑 네 오빠 엄마는 이혼하신 거야?”송민아는 사무실 밖을 슬쩍 확인했다. 그리고 아무도 없는 걸 확인하고 조용히 말했다.“몰래 엄마한테 물어봤는데, 우리 오빠 엄마는 아빠랑 혼인신고도 안 했대. 둘이 약혼까진 했는데, 무슨 이유인진 모르겠지만 오빠 엄마가 아빠랑 결혼하길 거절했대.”고은서는 눈썹을 찌푸렸다.‘설마 송민준의 엄마도 결혼 안 하고 그를 낳은 걸까?’지난번 고은서가 송민준과 함께 바에서 우연히 만났을 때, 그가 그녀를 집까지 데려다주면서 송민준은 어릴 때부터 보호만 받고 자라서 사람에 대한 경계심이 없다고 고은서한테 말한 기억이 있다.그때 그의 말투는 평소의 부드러운 말투가 아니라 약간의 조롱 섞인 느낌이었다. 마치 그의 어린 시절이 순탄치 않았다는 듯이.‘혹시 송민준의 어머니가 결혼도 안 하고 그를 낳아서 상처를 받은 탓일까?’“은서야, 이건 진짜 너한테만 말한 거니까, 절대 우리 오빠한테 묻지 마!”송민아가 신신당부하면서 말했다.“오빠는 이 얘기를 누구한테도 한 적 없어. 분명히 신경 쓰고 있다는 거야. 우리 엄마가 말하는 데 이 사실을 아는 사람은 거의 없더래.”“오빠는 혼자 살긴 해도 우리 엄마한테는 되게 예의 바른 거 있지. 나도 이 비밀 듣기 전까진 우리 둘이 같은 엄마 뱃속에서 태어난 줄 알았어.”고은서는 절대 이 비밀을 다른 사람에게 말하지도, 송민준에게 묻지도 않겠다고 약속했다.“민아야, 혹시 너희 엄마가 네 아빠의 다른 연애 상대에 대해 말한 적 있어?”고은서는 궁금한 것이 있으면 참지 못하고 묻는 성격이었다.혹시라도 송민아의 어머니가 송민준 부모의 관계에 끼어든 거라면 송민아의 어머니가 뭔가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한 것이다.“그냥 어른들 옛날 연애사에 호기심이 생긴 거야. 만약 불쾌했

  • 어게인, 비긴   제1105화

    송민준의 단어 사용은 꽤 신박했다.그는 “어젯밤 그 일은, 네가 의도한 거야?”라고 물었다. “어젯밤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가 아니라.그러니까 송민준의 말뜻은 그가 어젯밤 일이 여시은을 고의로 함정에 빠뜨리려고 한 고은서의 계획이었음을 알고 있다는 건가?하지만 그 테라스는 비교적 한적했고 로마식 기둥이 시야를 가려 일반적으로는 사람들이 잘 알아채기 어려운 장소였다.고은서가 로비에서 넘어졌을 때 여시은은 빈 와인잔을 들고 그녀 앞에 서 있었다. 이 상황을 봤을 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여시은이 고은서를 민 것으로 생각했을 것이다.그런데 어떻게 송민준은 고은서가 여시은을 속이기 위해 고육지계를 쓴 걸 알아챈 걸까?고은서는 아예 직설적으로 물었다.“민준 오빠, 왜 그렇게 물어보는 거야? 설마 어젯밤 내가 넘어졌던 게 자작극이라고 생각한 거야?”그 말을 듣자 송민준은 웃으며 물었다.“은서야, 그런 뜻이 아니야. 난 그냥 그 농장 영상 말이야, 그걸 일부러 어젯밤 그 시점에 터뜨린 건지 궁금해서 물어본 거야.”알고 보니 송민준은 농장 영상을 묻고 있었던 것이다.그날 송민준의 컴퓨터에서 영상을 확인하고 난 후, 송민아가 고은서에게 이 영상을 바로 여재훈에게 전달할 거냐고 물었을 때, 고은서는 송민준을 경계해 일부러 연회 이후에 결정하겠다고 말했었다.하지만 실제로는 연회 그 자리에서 바로 그 영상을 공개해 버렸다.송민준이 의심하는 것도 정상이다.“맞아.” 고은서는 고개를 끄덕였다.“원래는 어젯밤이 지나고 여재훈 씨를 따로 찾아가려고 했는데, 그 상황에서는 여시은이 그런 행동을 할 만한 동기를 증명하려면 그걸 꺼낼 수밖에 없었어.”송민준은 고개를 끄덕였다.“다른 뜻은 없었어. 그냥 궁금해서 물어본 거야. 네 선택이 맞아, 난 항상 널 지지할 거니깐.”그의 표정을 본 고은서는 확신했다. 송민준은 고은서가 아직 그를 경계하고 있다는 걸 눈치챘을 것이다.그의 성격상, 어젯밤 그녀가 계획적으로 움직였다는 것쯤은 쉽게 짐작했을 테니까. 하지만 송민준

  • 어게인, 비긴   제1104화

    박지연은 계속해서 불만을 터뜨렸다.“내가 보기엔 여시은은 태생이 못돼먹었어!”“이번에 그렇게 크게 당했으니 더더욱 널 원망할 거야. 너 조심 좀 해.”박지연이 걱정스럽게 당부했다.고은서는 고개를 끄덕였다.이미 각을 세우기로 마음먹었기에 여시은과 평화롭게 지낼 생각은 애초에 없었다. 앞으로는 여시은을 더 철저히 경계할 것이다.“듣자 하니 곽승재가 내내 널 감싸줬다며? 너한테 점점 마음이 가는 모양이야.”박지연이 코웃음을 쳤다.어젯밤 곽승재가 고은서를 계속 도와줬던 건 사실이었다. 증거를 공개하자고 제안한것도 곽승재의 생각이었고 마지막에 그녀를 집까지 데려다줬다. 곽승재가 고은서에게 큰 도움을 준 셈이었다.하지만 고은서는 곽승재에 대한 이야기를 박지연과 깊이 나누지 않았다.잠시 다른 이야기를 하던 중 박지연이 고은서에게 뜬금없는 소문 하나를 전했다.“우리 과장님한테서 들었는데, 어제 혜린 씨가 다니는 병원에 조 여사님이 찾아가서 난리를 쳤대. 혜린 씨 남자관계가 복잡하다고, 다른 남자랑 팔짱 낀 사진까지 들고 와서 공개하면서 혜린 씨랑 그 자리에서 머리끄덩이 잡고 싸움 났대!”고은서는 지난번 소동 이후 손자를 중시하는 조수연이 한동안은 조용할 거라 생각했었다. 그런데 고작 며칠 만에 또 난리를 친 거였다. 조수연의 전투력은 엄청 대단했다.“아니, 그러다 혜린 씨 혹시라도 애를 지우기라도 하면 어떡하려고 그래?”고은서가 물었다.박지연은 말했다.“조 여사님 말로는 혜린 씨 뱃속 애가 자기 아들 애가 아닐 수도 있다고 의심해서 혜린 씨를 끌고 가서 친자 확인하자고 했대. 그래서 둘이 몸싸움까지 벌어져서 이미지도 최악이라 혜린 씨는 한 달 정직당했어.”“혜린 씨 배속에 애가 온승준 씨 애가 아니라고? 그럼 도대체 왜 그렇게까지 그 집에 들어가려고 애쓰는 거야? 그냥 진짜 애 아빠랑 결혼하면 될걸...”고은서는 도무지 납득이 가지 않았다.“소문엔 그 남자가 유부남에 애까지 있다고 하더라. 자세한 건 나도 몰라. 그냥 과장님이 흘린 얘기야.”

  • 어게인, 비긴   제1103화

    여시은은 여전히 여재훈의 다리를 붙잡고 불쌍한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그럼, 아빠가 생각하시는 해결 방법은 뭐예요?”여재훈은 여시은에게 홍보팀을 통해 자신이 저지른 잘못에 대해 공개 사과하고, 개인적으로 고은서에게 직접 진심으로 사과한 뒤 집에서 2주 동안 자숙하라고 말했다.“제 회사는 아직 개업식도 제대로 안 했는데 공개 사과를 하라뇨? 그럼 모든 사람들이 저를 웃음거리로 볼 거 아니에요!”여시은은 눈이 퉁퉁 부은 채 애원했다.“아빠, 저 은서한테 개인적으로 사과만 하면 안 돼요? 저도 아직 경험이 부족해서 사람들을 이끌기 힘든데, 공개적으로 사과하면 앞으로 누가 저를 믿고 따르겠어요?”“안 된다.” 여재훈은 단호하게 말했다.“이 일은 이미 파장이 커졌고 많은 사람들이 너를 지켜보고 있어. 그러니 모든 사람에게 확실하게 해명해야 한다.”“시은아, 잘못을 저지른 건 무서운 일이 아니야. 진심으로 뉘우치고 성실하게 사과하면 은서 씨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너에게 다시 기회를 줄 거다.”여재훈은 계속해서 말했다.“사람은 자기가 저지른 잘못에 책임질 줄 알아야 한다. 네가 잘못했는데 내가 덮어주면 그건 너를 망치는 거야. 그러니까 이 일은 이렇게 결정된 거다!”여시은은 그 말을 듣자 속으로 분노가 치밀었다.‘고은서를 그저 연못에 좀 빠지게 했을 뿐인데 이게 뭐 그렇게 큰일이라고 이렇게까지 일을 키운단 말인가?’‘공개 사과라니, 이제 예전처럼 모두에게 존경받고 칭찬받던 모습은 끝이라는 거잖아.비록 인터넷의 영상은 지워지더라도 사람들이 나에 대한 나쁜 인상은 지워지지 않을 거란 말이야!’오늘 밤 그렇게 많은 부유층과 정재계 인사들이 있는 자리에서 그녀는 그들에게 최악의 인상을 남겼을 것이다. 해성에서 쌓아온 그녀의 완벽한 이미지가 단번에 무너진 셈이다.예전엔 그녀가 울기만 하면 여재훈은 안쓰러워하며 뭐든지 다 용서해 줬었다.‘지금은 무릎까지 꿇었는데도 아빠는 고은서 때문에 자신의 딸을 벌하려 한다니, 정말 나를 딸로 생각하긴 하는 걸까?’

  • 어게인, 비긴   제1102화

    여시은은 그 말을 듣자 눈이 시뻘게지면서 큰 소리로 외쳤다.“아빠, 제가 한 게 아니라니까요! 고은서가 일부러 저를 함정에 빠뜨린 거예요. 왜 저를 믿지 않으세요!”“시은아!”여재훈이 의자에서 벌떡 일어나며 난생처음으로 이토록 차가운 눈빛으로 딸에게 화를 냈다.“너는 어쩌다 이렇게 뻔뻔하게 거짓말만 하는 사람이 됐니!”“내가 사람을 시켜서 확인해 봤어. 연회장 CCTV 꺼놓은 거, 그거 네가 시킨 거더라.”여재훈은 딸을 억울하게 만들까 걱정돼 CCTV 관련 내용을 직접 조사했다.그런데 정말로 여시은이 꺼놓았던 것이었다.“네가 정말 은서 씨를 해치려는 의도가 없었다면 왜 CCTV를 미리 꺼놓은 거냐?”여재훈은 냉정한 태도로 물었다.여시은은 자신이 고은서의 계략에 걸려든 것을 그제야 깨달았다.고은서는 일부러 도발적인 눈빛으로 여시은을 자극했고 곧바로 테라스로 이끌어냈던 것이다. 모두 여시은한테 엿 먹이려는 행동이었다!여시은은 고은서가 쿠아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격동적으로 행동해 자신을 밀칠 거라 확신했었다.왜냐하면 고은서는 지난번엔 쿠아를 다치게 한 일로도 크게 충격을 받았었기 때문이다.하지만 이번엔 반전이 생겼다.고은서는 오히려 침착하게 반격했고 지난번 농장에서의 ‘물에 빠진 사건’ 증거까지 들고나왔다.일이 이렇게 커져 버린 이상 여시은은 더 이상 변명할 여지가 없다는 걸 알았다.그녀는 결국 울음을 터뜨리며 여재훈을 향해 소리쳤다.“맞아요! 저 고은서가 너무 꼴 보기 싫었어요! 왜 아빠는 맨날 걔만 칭찬하세요? 이러니깐 제가 질투 나서 그런 거 아니에요? 그냥 고은서한테 꼽 주고 싶었어요!”“어차피 이미 벌어진 일이에요. 전 잘못한 거 없어요! 후회도 안 해요!”“너!”여재훈은 손을 번쩍 들어 여시은의 뺨을 때리려 했지만, 그녀의 눈물범벅이 된 얼굴을 보고는 차마 때릴 수가 없었다.“시은아, 아빠가 평소에 너를 어떻게 가르쳤니? 사람은 자기 양심에 떳떳해야 하고 올곧게 살아야 한다고 했잖아! 근데 너는 어떻게 질투심에 눈이

  • 어게인, 비긴   제1101화

    이미숙은 유튜브 영상을 보고 있었는데, 바로 여시은이 고은서 머리끄덩이를 잡아당겨 연못 가까이로 끌어당기는 장면이 재생되고 있었다.그 영상은 누군가가 휴대전화로 촬영해 올린 것 같았고 화질이 너무 좋은 건 아니지만 전반 상황을 알아보는 데에는 충분했다.영상의 끝에는 고은서와 여시은의 얼굴을 비춘 장면도 담겨 있었다.다소 초라해진 고은서는 곽승재의 부축을 받으며 옆에 서 있었다. 여시은은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르고 눈빛엔 분노와 원망으로 가득했다.그 와중에 영상의 제목이 더욱 눈길을 끌었다.[재벌가 아가씨, 두 얼굴의 진실!]“사모님, 저 여자는 어쩜 저리 독하대요. 이렇게 심하게 괴롭히다니. 누가 폭로해 줘서 다행이지! 이제 세상 사람들 다 그 여자 피해서 다니겠어요!”이미숙은 화가 난 듯 말했다.고은서는 이번 일이 오래 퍼지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여시은 뒤에는 여재훈이 있기 때문이다.하지만 이번 일로 여시은이 보기 좋게 망신을 당했고, 여재훈 역시 자신의 딸이 그렇게 순진하지 않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테니, 이번 목적은 어느 정도 달성되었다.고은서는 이미숙의 휴대전화 영상에 대뜸 ‘좋아요'를 눌렀다.한편, 여씨 가문에서.여시은 역시 유튜브 영상을 확인했다. 분노에 찬 그녀는 휴대전화를 바닥에 내던졌다.밖에 서 있는 박미화가 조심스럽게 말을 전했다.“시은 아가씨, 회장님께서 지금 바로 서재로 오시래요. 할 말씀이 있으시답니다.”이번이 박미화가 세 번째로 말을 전하러 온 것이었다.여시은은 곧바로 얼굴에 드리워진 분노와 짜증을 숨기고는 일부러 슬프고 억울한 표정을 지으며 방문을 열었다.박미화는 방안에서 반응이 없자 방문을 열려고 하였다. 때마침 여시은이 문을 열고 나오는 것을 보고 급히 손을 거두며 사과했다.여시은은 박미화의 손을 움켜쥐었다. 조금 전에 분노로 인해 물어뜯은 날카로운 손톱이 그녀의 살을 깊이 파고들었다. 그리고는 여시은은 울먹이는 말투로 물었다.“미화 언니, 아빠가 나한테 화 많이 나신 거야? 나 어떻게 해야

  • 어게인, 비긴   제1100화

    얼마 지나지 않아 운전기사가 차를 라이트문 아파트 앞에 세웠다.고은서와 곽승재는 위층으로 올라갔다. 고은서는 샤워하기 위해 자신의 방으로 직행했고 곽승재는 거실에 남았다.샤워를 마치고 나온 고은서는 의외의 광경을 목격했다. 곽승재가 거실 소파에 앉아 있었고 테이블 위에는 김이 모락모락 나는 차 한 잔이 놓여 있었다.“왜 또 왔어? 할 말 있어?”고은서가 물었다.곽승재는 태연하게 대답했다.“논의할 게 있어서. 그전에 이 콜라 생강차부터 마셔. 아주머니께서 특별히 준비하신 거야.”“사모님, 콜라 생강차는 감기 예방에도 효과적이거든요. 어서 드세요!”이미숙이 차를 가져오며 말했다.고은서는 감기에 걸릴까 봐 걱정하고 있던 참이었다. 그녀는 잔을 들어 올리더니 이상한 듯 물었다.“아줌마, 제가 방금 들어온 걸 보지도 못하셨을 텐데 어떻게 제가 감기 걸릴 줄 아시고 미리 차를 준비하셨어요?”이미숙의 눈가에는 잠시 당황한 기색이 스쳤다.곽승재가 자연스럽게 말을 이었다.“내가 알려줬어. 일단 마셔.”고은서는 고개를 숙여 생강차를 내려다 볼뿐 이미숙의 표정 변화를 주의 깊게 보지 못했다.물론 곽승재의 눈에 비친 기대감도 보지 못했다.생강차의 냄새를 맡아보니 생강 향이 꽤 진했다.고은서는 생강차를 조심스럽게 한 모금 마셨다. 콜라의 단맛과 생강의 톡 쏘는 맛이 어우러져 생각보다 맛이 나쁘지 않았다.“맛이 어때요?”이미숙이 물었다.“좋네요. 그런데 오늘은 생강을 좀 많이 넣으신 것 같네요. 예전에 만드신 것보다 더 매운데요.”이미숙은 잠시 망설이다가 급히 대답했다.“생강 양을 조절하지 못했네요. 주의할게요.”고은서는 더는 따지지 않고 다시 마시려던 참이었는데 곽승재가 말을 건넸다.“맛이 별로면 안 마셔도 돼.”고은서는 그를 흘겨보았다.“누가 맛없다고 했어? 아줌마가 정성스럽게 준비해주신 건데 끝까지 마셔야지.”“사모님, 도련님과 얘기 나누세요. 저는 할 일이 남아서 먼저 가보겠습니다.”이미숙은 두 사람의 언쟁을 피하려는 듯 급히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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