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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덫에 빠진 운명의 모든 챕터: 챕터 1451 - 챕터 1460

1476 챕터

제1451화

지하의 몸이 순간 굳었다. 눈동자 깊은 곳이 산산이 부서졌다.돌아오는 길에 이미 예상은 했지만, 막상 직접 들으니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아프고 숨이 막혔다.지하는 천천히 일어났다. 그리고 몇 걸음 다가와 진아 앞에 쭈그려 앉았다.“그때 상황이... 설아가 넘어졌어. 배가 너무 아파서 꼼짝도 못 했다고.”“응.”진아는 지하가 잡은 손을 뿌리치지 않았지만, 표정 하나 변하지 않았다.“알아. 아까도 말했잖아. 오설아 돌봐줘야 한다고. 문제없어.”진아가 이렇게 담담할수록, 지하는 점점 더 두려워졌다.“이해한다면... 그럼...”“안 돼.”진아의 속눈썹이 살짝 떨리더니 고개를 저었다. 목소리는 차분했지만 단호했다.“당신의 입장에서 이해는 해. 하지만 이해한다고 해서 받아들이거나 지지할 수 있는 건 아니야.”지하는 진아를 올려다봤지만, 말이 나오진 않았다.약속을 어긴 건 분명히 그였다.무슨 말로도 행동의 상처를 메울 수 없다는 걸 너무 잘 알고 있었다.‘어떻게 해야 하지...’불안이 지하의 가슴을 뒤덮었다. 지하는 결국 두 팔을 벌려 진아를 껴안았다.“진아... 제발, 한 번만 더 기회를 줘.”진아는 한참 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가 고개를 숙여 지하를 바라봤다. 그리고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내가 준 기회... 부족했어?”사실 진아는 결혼 전부터 이미 알고 있었다.그리고 그때부터 지금까지 수없이 많은 기회를 줬다.진아는 손을 들어 지하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손끝이 부드럽게 머리칼을 훑었다.“왜 이렇게까지 해야 해? 아직도 모르겠어? 당신은 오설아를 놓지 못했어. 앞으로도 절대 못 놓을 거야.”“우리 이렇게 헤어지면, 당신도 이제 당당하게 오설아랑 있을 수 있잖아. 좋은 일이지. 사랑하는 사람끼리 함께하는 건, 결국 잘 된 거야.”“여보.”지하는 고개를 들고 깊게 그녀를 바라봤다.“그럼 넌? 넌 나한테, 미련 하나도 없어?”진아가 잠시 멈칫했다. 그리고 진지하게 생각한 뒤 말했다.“하나도 없다고는 못 하지.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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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52화

태권이 현관 쪽으로 다가가 보니, 진아가 정말 가져갈 수 있는 건 전부 챙겨놓고 있었다.옷, 책, 조이의 장난감 박스까지.이건 누가 봐도... 다시 돌아올 생각이 없는 사람이었다.하지만 진아는 아무렇지 않게 웃었다.“오빠, 애들 짐이 얼마나 많은데. 조이 장난감만 해도 박스 하나야.”“그래?”태권은 피식 웃으며 어깨를 으쓱했다.의심하는 기색은 전혀 없었다.그때 태권의 시선이 지하에게로 옮겨갔다.“매제, 진아가 또 고집 피웠지? 고생 많았어.”“아닙니다.”지하는 애써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입가만 움직일 뿐, 표정은 굳어 있었다.“에휴...”태권은 한숨을 쉬며 고개를 저었다.“시연이는 우리 가족이나 다름없잖아. 요즘 상황이 좀 그러니까, 매제가 이해 좀 해줘. 고 대표랑 시연이만 돌아오면, 매제랑 진아도 다시 잘 지내게 될 거야.”“네...”지하는 힘겹게 고개를 끄덕였다.‘이 짐을 내가 대신 들면, 그 순간 다 들킬 거야.’‘진아 집에서도 우리 사이가 틀어진 걸 알게 될 테고...’‘그러면 진짜 끝이야.’지하는 속으로 이를 꽉 물었다.‘그건 내가 원하는 게 아니잖아.’“매제?”태권이 지하를 바라봤다.“뭐 해? 멀뚱히 서 있지 말고 짐 좀 옮겨.”지하는 잠시 멍해졌다.말할 수도, 멈출 수도 없었다.결국 그는 조용히 허리를 굽혀, 캐리어 손잡이를 잡았다.그리고... 직접 진아를 문밖으로 내보냈다.그렇게 세 사람은 함께 진아 부모님 댁으로 향했다.차 안에서 진아는 지하를 흘끗 쳐다봤다.의아한 눈빛이었지만, 태권이 옆에 있어 뭐라고 할 수도 없었다.집에 도착하자, 진아의 어머니 채숙희는 현관에서 기다리고 있었다.딸이 조이까지 데리고 온다는 말을 듣고, 일찌감치 준비를 마친 상태였다.문이 열리자 지하는 잠든 조이를 안고 있었다.채숙희는 반가운 얼굴로 다가와 조용히 물었다.“자나?”“네, 장모님.”“얼른 줘, 내가 안을게.”채숙희는 함박웃음을 지으며 조이를 품에 안았다.그 눈빛에는 애틋함이 가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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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53화

어둠 속에서 진아가 갑자기 눈을 떴다.본능적으로 몸이 움직였다.지하의 팔을 뿌리치며 낮게 속삭였다.“당신 뭐 하는 거야? 나에 대한 기본적인 존중도 없어?”진아가 지하를 하룻밤 머물게 한 건,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하지만 그건 단지 상황 때문이었지... 마음 때문이 아니었다.그런데 부지하는 진아가 한 말을 잊은 걸까?아니면 자신이 저지른 일들을 그냥 없던 일로 만들고 싶은 걸까?“여보.”지하는 오히려 팔에 더 힘을 줬다.목소리가 떨렸다.“잠깐만... 잠깐만 이렇게 안고 있을게.”그 말에 진아의 가슴이 서늘해졌다.지하는 알고 있었다.오늘 이렇게 머물 수 있었던 건 장모 덕분이라는 걸.그리고 오늘 밤이 지나면, 진아가 떠날 수도 있다는 걸.‘그래서 이러는 거야? 마지막인 줄 알아서?’진아는 속으로 중얼거렸다.지하의 팔이 조금 더 단단히 조여 왔다.“여보, 나 너랑 헤어지기 싫어. 정말 싫어.”진아는 조용히 숨을 내쉬었다.“당신은 두 사람 다 가질 수 없어. 한쪽은 반드시 놓아줘야 해.”지하의 몸이 순간 굳었다.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그저 진아를 껴안은 채, 한참을 움직이지 않았다.밤은 그렇게 흘러갔다.두 사람 사이엔 말 한마디 없이 차가운 공기만이 남았다. ...이른 아침, 지하가 먼저 일어났다.그가 몸을 일으킬 때, 진아는 이미 깨어 있었다.하지만 눈을 감은 채 아무 움직임도 보이지 않았다.지하는 소리 나지 않게 옷을 입고, 조심스레 진아 쪽으로 걸어갔다.침대 옆에 앉아, 진아의 손을 살짝 잡았다.“나 회사 다녀올게. 진아야, 네 기분 안 좋은 거 알아. 다 내 잘못이야.”지하는 손을 들어 진아의 머리카락을 부드럽게 쓸어냈다.“그냥 한동안 엄마 집에서 푹 쉬어. 마음도 좀 정리하고... 시간 되면 내가 올게.”그는 몸을 숙여 진아의 이마에 입을 맞췄다.“여보, 난 포기 안 해. 우리... 끝나지 않을 거야.”그 말과 함께 지하는 천천히 일어섰다.발걸음이 문 앞에서 잠시 멈췄다가 조용히 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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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54화

이혜영은 말하면서 손을 들어 지하의 어깨를 세차게 내리쳤다.“지금 뭐 하는 거야? 멍하니 서서 뭐 해! 진아한테 사과 안 해? 내가 뭐라고 했어? 진아 실망시키지 말라고 했잖아!”지하는 꼼짝도 하지 않았다. 그저 그 자리에 서서 어머니의 손길을 묵묵히 견뎠다.‘맞을 만하지... 다 내가 만든 일이니까.’지하는 천천히 고개를 들어 진아를 바라봤다.“진아, 우리 일... 우리끼리 해결하자. 응?”“해결?”진아는 씁쓸하게 웃었다.“어떻게? 이미 말했잖아. 당신이 끝까지 동의 안 해서 내가 어머님께 말씀드린 거야. 난 믿어. 어머님은 현명하신 분이니까, 나를 억지로 붙잡지 않으실 거야.”“진아.”지하의 목소리가 굳게 잠겼다.“나도 어른이야. 결혼은 부모님 뜻대로 하는 게 아니잖아. 이건 우리 둘의 문제야.”진아는 미묘하게 웃었다.“그럼 당신 말은... 법원에서 보자는 거야?”지하는 잠시 말을 잃었다.그 사이 진아가 천천히 말을 이었다.“그건 별로 좋을 것 같지 않아. 난 괜찮은데, 당신은 아니잖아.”그녀의 시선이 잠시 지하의 얼굴을 스쳤다.‘부씨 집안의 막내아들... 이 일이 알려지면 기사 제목은 뻔하지.’진아는 자세를 바로 하고, 조용히 말했다.“부지하 씨. 그리고 어머님...”목소리는 차분했지만 단단했다.“저는 일이 커지는 걸 원하지 않아요. 이혼 얘기가 밖으로 새어나가면, 그건 부지하 씨의 불륜으로 알려질 거예요. 그럼 결국 부지하 씨 이름에 먹칠이 되겠죠.”“진아...”지하가 다가서려 했지만, 그 순간...“아이고, 이놈아!”이혜영이 갑자기 관자놀이를 눌렀다.“너 정말... 나 죽이려고 작정했니?!”말이 끝나기도 전에, 이혜영의 몸이 휘청거렸다.“어머니!”“어머님!”지하가 달려가 이혜영을 붙잡았다.“진아, 빨리! 전화해!”“알았어!”진아가 허겁지겁 전화기를 들었다....잠시 뒤, 방 안에서는 의사가 진료를 보고 있었다.거실에는 조용한 긴장감만 남았다.지하와 진아는 마주 앉아 아무 말도 하지 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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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55화

진아는 대답하고 싶지 않았다.아니, 대답할 수 없었다.지금 이 상황에서 무슨 말을 한들 시어머니의 마음을 더 아프게 할 뿐이었다.자신의 성급함이 어른을 병나게 만든 꼴이었다.진아도 어머니가 있고, 그녀 역시 오래전부터 몸이 약했다.그래서 진아는 이혜영의 숨소리 하나에도 즉각적으로 반응했다. ‘지금은 아니야. 오늘은 그만하자.’진아는 한숨을 삼키고, 지하의 팔을 가볍게 잡았다.“일어나. 어머님 앞에서 이게 뭐야.”“아... 응.”지하는 얼른 몸을 일으켰다.물론, 이걸로 모든 게 끝났다고 생각하진 않았다.하지만 적어도, 아직 완전히 무너진 건 아니었다.‘그래, 아직은 기회가 있어.’진아는 침대 옆 탁자 위의 약 상자를 집어 들었다.의사가 조금 전 두고 간 약이었다.“물 좀 떠 와. 어머님 약 드셔야 해.”“응, 알겠어.”지하는 고개를 끄덕이며 방을 나갔다.이혜영은 진아의 손을 꼭 잡았다.“오늘은 그냥 여기서 자. 오랜만에 같이 얘기도 좀 하자. 우리 새아가가 옆에 있어야 마음이 놓여. 그리고, 지하 말이야... 내가 좀 혼 좀 내야겠어.”“네, 어머님.”진아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숙였다.‘다 내가 초래한 일이잖아. 지금 거절할 자격도 없지.’그녀는 그렇게 생각하며 조용히 대답했다....그날 밤, 부태철이 퇴근해 들어왔다.방문을 열자, 침대에 기댄 아내의 얼굴이 창백했다.“당신 왜 그래? 어디 아파?”놀란 부태철의 목소리가 방 안에 울렸다.“병원 가야 하는 거 아니야?”“괜찮아, 괜찮아.”이혜영이 손사래를 쳤다.“별일 아니야. 그냥... 막내 때문에 속이 좀 상해서 그래.”“지하 때문에?”부태철이 눈살을 찌푸렸다.이혜영은 한숨을 쉬며, 남편에게 오늘 있었던 일을 쭉 이야기했다.진아가 찾아온 이유와 지하가 어떻게 반응했는지를.그리고 자신이 흥분해서 결국 쓰러진 일까지.부태철은 다 듣고는 피식 웃었다.“그럼 당신... 아픈 척한 거네. 결국 지하 편들려고?”“그렇지, 뭐.”이혜영은 살짝 머쓱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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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56화

“그게 왜 민망해?”이혜영이 대답하기도 전에, 지하가 먼저 다가왔다.그는 진아가 앉아 있는 소파 팔걸이에 걸터앉더니, 자연스럽게 진아의 어깨에 팔을 두르고 머리카락을 가볍게 쓸어내렸다.“차 마시는 건 그냥 즐기면 되는 거야. 알고 마시면 무슨 재미가 있겠어?”“그러네.”진아는 짧게 대답했고, 이혜영은 그런 두 사람을 보며 미소를 지었다.‘봐라, 저 모양 저 꼴.’‘아침부터 새아가 안 보이니까 그새 불안해서 뛰어 내려왔네.’“일찍 일어났네?”이혜영이 물었지만, 지하는 대꾸하지 않았다.그저 진아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좀 더 자도 되잖아. 여긴 집이랑 똑같아. 어머니도 그렇게 깐깐한 분 아니시고.”“충분히 잤어.”진아는 살짝 눈을 치켜뜨며 그를 노려봤다.“지하 씨 회사 가야 하잖아. 우리 방해하지 말고 얼른 가. 나랑 어머님은 한가한 사람들이니까.”“알겠어, 알겠어.”지하가 웃으며 손을 들었다.이혜영도 따라 말했다.“그래, 너는 회사 가서 네 일 해. 새아가는 오늘 나랑 얘기 좀 하자.”“그럼 다녀올게요.”지하는 고개를 숙여 진아의 이마에 가볍게 입을 맞췄다.“가능하면 일찍 올게.”“응.”진아는 짧게 대답했다....지하가 나가자, 응접실은 잠시 조용해졌다.이혜영은 찻잔을 내려놓으며 진아를 흘끗 바라봤다.진아는 고개를 숙이고 찻잔을 양손으로 감쌌다. 입가에 억지 미소가 걸렸지만, 눈빛은 차분했다.‘어머님 어제 아픈 건... 아무래도 연기였겠지.’그건 분명했다.‘부지하를 위해서, 그리고 나를 붙잡기 위해서.’그렇다고 해서 뭐라고 할 수도 없었다.진아는 어릴 때부터 체면과 관계의 무게를 너무 잘 배워왔다.‘지금 그걸 드러내면... 결국 나만 불편해져.’첫째, 이혜영은 언제나 진아를 존중해줬다.결혼 전부터, 늘 ‘우리 새아가’라 부르며 챙겨줬다.둘째, 진아의 집은 부씨 가문에게 너무 많은 도움을 받았다.그 빚을 생각하면, 함부로 등을 돌릴 수 없었다.그리고 마지막으로 이 집안이 부지하의 편을 들면, 결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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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57화

지하는 잠시 핸드폰을 내려놓고, 깊게 숨을 내쉬었다.설아의 상황을 떠올렸다.그녀가 보낸 말은 사실이었다.몇 년 전, 설아는 윤빈을 선택하면서 지하를 떠났다.그 일로 가족과 친구 모두에게 등을 돌렸고, 설아의 이름 앞에는 늘 ‘배신자’라는 말이 따라붙었다.그리고 이제, 아이 문제까지...그건 누구에게도 쉽게 털어놓을 수 없는 일이었다.‘설아답다. 모든 걸 혼자 감당하려고 해.’지하는 한참 동안 망설였다.하지만 결국 손가락이 천천히 움직였다.[내일 몇 시야?]답장은 금세 돌아왔다.[오전 열 시, 강울대병원.]지하는 핸드폰을 내려다봤다.지난번 설아를 데려다줬던 병원이 바로 그곳이었다.[알겠어.]짧은 대답이었다.가겠다고는 말하지 않았지만, 설아는 이미 알았다.‘지하는 결국 나를 그냥 두지 못하겠지.’...지하는 조심스레 방문을 열었다.혹시라도 진아를 깨울까, 숨소리까지 죽이며 안으로 들어갔다.그런데, 불빛 아래 앉아 있는 진아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지하는 순간 멈칫했다.“내가 깨운 거야?”“아니.”진아는 고개를 저었다.“목이 좀 말라서. 물 좀 마시려던 참이야.”이불을 젖히려는 진아의 손을 지하가 막았다.“그냥 누워 있어. 내가 가져올게.”지하는 부엌에서 물을 떠 와 침대 곁에 앉았다.“자, 마셔.”진아는 잔을 받아 조용히 한 모금 삼켰다.그런데 지하의 시선이 오래 머물렀다.“진아, 요즘 너무 말랐어. 이번 기회에 어머니한테 말씀드려서, 예전에 말한 한의사 다시 불러볼까?”‘걱정해 주는 척하면서, 결국 또 통제하려는 거잖아.’진아는 속으로 그렇게 생각했지만, 표정은 변하지 않았다.“지금은 늦었어. 내일 얘기하자.”그 말에 지하는 안도한 듯 미소 지었다.“그래, 내일 어머니께 말씀드릴게.”...그날 밤, G시에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늦은 시간까지 하얀 눈발이 쏟아졌고, 도시는 순식간에 새하얗게 잠겼다.다음 날 아침,지하는 회의가 있어 평소보다 일찍 일어났다.진아는 여전히 이불 속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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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58화

지하는 ‘보호자’라는 이름표를 목에 걸고, 수술실 앞 대기 의자에 앉아 있었다.시계를 보니, 들어간 지 벌써 40분이 넘었다.수술실 불빛은 여전히 꺼지지 않았다.괜히 손끝이 차가워지고, 숨이 불규칙해졌다.‘괜찮겠지. 그냥 간단한 시술이라 했잖아.’그렇게 자신을 달래보지만, 왠지 모르게 가슴이 답답했다.지하는 핸드폰을 꺼냈다.잠시 망설이다가, 결국 진아의 이름을 눌렀다.“지하?”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지하는 반사적으로 고개를 들었다.그 순간, 눈이 크게 흔들렸다.피가 얼굴에서 한순간에 빠져나가는 느낌이었다.“어머니? 진아? 어떻게... 여길...”하얀 눈이 쏟아지는 날이었다.집에서 따뜻한 차라도 마시고 있을 줄 알았는데, 눈앞의 두 사람은 현실이었다.이혜영의 표정이 단번에 굳었다.몇십 년을 키운 아들이다.이 상황이 어떤 건지, 굳이 설명을 듣지 않아도 알았다.“난 진아랑 병원 일 보러 왔다. 근데 너는? 이 시간에 여긴 왜 있는 거야?”“저... 그게...”지하는 입이 떨어지지 않았고, 말을 꺼내려 해도 목구멍이 막혔다.그는 무의식적으로 진아를 봤다.그 눈빛엔 공포가 비쳤다.‘끝났구나. 이번엔 정말 끝이야.’진아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이미 두려움도, 실망도 지나간 얼굴이었다.‘그래... 결국 이렇게 드러나는 거구나.’그때, 수술실 문이 스르르 열렸다.“오설아 씨 보호자분!”간호사가 고개를 내밀며 말했다.“이쪽으로 와서 부축 좀 해주세요.”지하의 뒤쪽 문에서 하얀 담요를 덮은 설아가 휠체어에 앉아 나왔다.“여보...?”진아의 한마디에 지하는 그 자리에서 얼어붙었다.손끝이 차갑게 굳었다.그는 아이처럼 멈춰 서 있었다.‘지금... 무슨 말을 해야 하지?’순간, 진아는 그 얼굴을 보고 이상하게도 연민이 스쳤다. ‘그래, 결국 이렇게 될 줄 알았어.’진아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가야지. 오설아 기다리잖아.”“여보, 나... 그게...”지하는 두 손을 꽉 쥐었다.한 발 내디디려는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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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59화

진아는 자신이 갑자기 토하게 될 줄은 몰랐다.몸이 예민해진 건지, 아니면 마음이 무너진 건지... 그건 아직 말할 수 없었다.화장실 안은 변기의 물 흐르는 소리만 들렸다.밖에서는 이혜영의 걱정스러운 목소리가 계속 들려왔다.“이걸 어쩌면 좋아...”여자 화장실 문 앞엔 지하가 서성였다.발끝이 바닥을 쓸며 왔다 갔다 했다.‘지금 안 들어가면 불안하지만, 들어간다고 해도 미친놈 취급 받을 거야.’ 지하는 머리를 쥐어뜯고 있었다.이건 아무리 봐도 최악의 상황이었다.병원, 아내, 그리고... 설아.“지하야.”귀에 익은 목소리에 고개를 들었다.복도 끝에서 설아가 천천히 다가오고 있었다.수술을 마친 지 얼마 되지 않아 얼굴은 창백했고, 한 손으로 복부를 감싸고 있었다.걸음 하나하나가 힘겨워 보였다.“미안해.”설아가 작게 말했다.“또 민폐만 끼쳤네.”지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지금 무슨 말을 해야 하지?’‘이건 설아 탓도, 진아 탓도 아니야. 다 내 잘못이지.’지하는 고개를 숙였다.‘하필 왜 오늘... 왜 여기서...’‘그리고, 왜 진아랑 어머니까지...’“지하.”설아가 숨을 고르며 그를 바라봤다.“지금은 아내한테 신경 써. 난 괜찮아. 그냥 택시 타고 갈게.” 그녀는 허리를 살짝 숙이며 돌아섰다.오늘따라 더 작아 보였다.수술 직후라 그런지, 뒷모습이 흔들리듯 위태로웠다.지하는 한참을 바라보다가 결국 입을 열었다.“설아!”그녀가 멈춰 섰다.“응?”“내가 차 불러줄게.”지하는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며 말했다.“택시 오면 내가 거기까지 데려다줄게. 집 도착하면 꼭 연락해.”그는 덧붙였다.“미안해. 오늘은... 직접 못 데려다줘.”설아는 잠시 그를 바라봤다.눈빛이 복잡했다.“지하, 그런 말 하지 마. 나는... 이렇게라도 있어 주는 게 고마워.”지하는 억지로 미소를 지었다.“가자.”그는 짧게 말하며 설아의 팔을 가볍게 잡았다.설아의 체온이 희미하게 전해졌다.너무 가벼워서 손만 대도 부서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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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60화

진아는 지하를 향해 짧게 웃었지만, 대답은 하지 않았다.그 웃음엔 어떤 감정도 없었다.“어디 갔다 왔어?”이혜영의 목소리가 차갑게 떨어졌다.지하는 급히 고개를 들었다.“설아가 혼자라서요. 차 불러주고, 태워 보냈어요. 그게 다예요.”말은 진아를 향해 있었다.지하의 눈빛엔 변명보단 ‘오해하지 말라’는 간절함이 담겨 있었다.“허.”이혜영은 냉소를 터뜨렸다.“차에만 태워줬다고? 왜 집까지는 안 데려다줬어? 수술하고 그렇게 힘든 애를 혼자 보냈다고? 네 성격에 그럴 리 없잖아. 옆에 붙어 있어 줘야지.”“어머니!”지하는 목소리를 높였다.“그런 말씀 좀 하지 마세요. 진아가 듣잖아요.”이혜영은 코웃음을 쳤다.“듣든 말든, 다 알고 있을 텐데 뭘... 지금 네가 진아 눈앞에서 하는 그 변명이 더 구차해.”공기 중에 서늘한 기운이 돌았다.진아는 말이 없었지만, 그 자리를 피하지도 않았다. 그저 한 발짝 뒤에서 조용히 숨을 내쉴 뿐이었다.‘이런 장면도 이제 익숙해졌네.’그 생각 때문에 더 씁쓸해졌다.이혜영은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하며 입술을 굳게 다물었다.“됐어. 여기서 말 길게 하지 말자. 집에 가서 얘기해.”그 말이 떨어지자, 세 사람은 각자 다른 속도로 걸음을 옮겼다....본가.진아는 집에 들어서자마자 방으로 들어갔다.막 토한 탓에 몸이 불편했고, 씻어야 했다.문이 닫히자 물 흐르는 소리와 함께 그녀의 존재가 사라졌다.주방에선 국 끓는 냄새가 났다.이혜영은 가사도우미에게 지시했다.“새아가 속이 안 좋다니까, 미음 끓여. 너무 짜게 하지 말고.”그리고 돌아서며 말했다.“지하, 넌 이리 와.”응접실.지하는 계단 쪽을 힐끔거렸다.“어머니, 진아 상태 좀 보고 오면 안 될까요?”“보긴 뭘 봐?”이혜영은 그를 향해 시선을 날카롭게 던졌다.“보면 뭐가 달라져?”그녀는 소파에 앉아 손가락으로 테이블을 두드렸다.“앉을 필요 없어. 서서 들어.”지하는 그대로 섰다.“너희, 이혼해.”순간, 시간이 멎은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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