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는 잠시 핸드폰을 내려놓고, 깊게 숨을 내쉬었다.설아의 상황을 떠올렸다.그녀가 보낸 말은 사실이었다.몇 년 전, 설아는 윤빈을 선택하면서 지하를 떠났다.그 일로 가족과 친구 모두에게 등을 돌렸고, 설아의 이름 앞에는 늘 ‘배신자’라는 말이 따라붙었다.그리고 이제, 아이 문제까지...그건 누구에게도 쉽게 털어놓을 수 없는 일이었다.‘설아답다. 모든 걸 혼자 감당하려고 해.’지하는 한참 동안 망설였다.하지만 결국 손가락이 천천히 움직였다.[내일 몇 시야?]답장은 금세 돌아왔다.[오전 열 시, 강울대병원.]지하는 핸드폰을 내려다봤다.지난번 설아를 데려다줬던 병원이 바로 그곳이었다.[알겠어.]짧은 대답이었다.가겠다고는 말하지 않았지만, 설아는 이미 알았다.‘지하는 결국 나를 그냥 두지 못하겠지.’...지하는 조심스레 방문을 열었다.혹시라도 진아를 깨울까, 숨소리까지 죽이며 안으로 들어갔다.그런데, 불빛 아래 앉아 있는 진아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지하는 순간 멈칫했다.“내가 깨운 거야?”“아니.”진아는 고개를 저었다.“목이 좀 말라서. 물 좀 마시려던 참이야.”이불을 젖히려는 진아의 손을 지하가 막았다.“그냥 누워 있어. 내가 가져올게.”지하는 부엌에서 물을 떠 와 침대 곁에 앉았다.“자, 마셔.”진아는 잔을 받아 조용히 한 모금 삼켰다.그런데 지하의 시선이 오래 머물렀다.“진아, 요즘 너무 말랐어. 이번 기회에 어머니한테 말씀드려서, 예전에 말한 한의사 다시 불러볼까?”‘걱정해 주는 척하면서, 결국 또 통제하려는 거잖아.’진아는 속으로 그렇게 생각했지만, 표정은 변하지 않았다.“지금은 늦었어. 내일 얘기하자.”그 말에 지하는 안도한 듯 미소 지었다.“그래, 내일 어머니께 말씀드릴게.”...그날 밤, G시에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늦은 시간까지 하얀 눈발이 쏟아졌고, 도시는 순식간에 새하얗게 잠겼다.다음 날 아침,지하는 회의가 있어 평소보다 일찍 일어났다.진아는 여전히 이불 속에 있었다
더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