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요.”진아가 고개를 저었다.“아직 어떻게 말해야 할지 모르겠어요.”이혜영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진아가 괜히 겁내는 거겠지. 집안 사람들 놀랄까 봐.’“착한 애, 걱정하지 말거라.”이혜영은 진아의 손등을 부드럽게 두드렸다.“우리 집안이 너희 집안한테 잘못한 거지, 겁낼 필요 없어. 내가 있는데 지하가 너희 집안에 무슨 짓을 하겠어? 걱정하지 마, 너희 집안... 앞으로 점점 나아질 거야.”시어머니의 이 말 한마디에, 진아의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그동안 진아는 지하가 자기 집안에 손을 댈까 정말로 걱정했었다.그래서 직접 이혜영을 찾아온 것이었고, 다행히도 진아의 선택은 맞았다.이혜영은 단단하고 분명한 사람이었다.“어머님...”진아는 조금 멋쩍게 웃었다. 아마도 이렇게 부르는 건, 오늘이 마지막일 것이다.“그럼 저는 가볼게요. 건강하세요.”“그래, 가라.”진아는 돌아서다가, 지하를 한번 바라보았다.“가자.”...지하와 진아는 하루 종일 단 한마디도 제대로 하지 않았다.하지만 어떤 말들은, 결국 마지막 순간에야 겨우 모습을 드러나는 법이다.본가를 벗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아 지하는 방향을 꺾어 차를 길가에 세웠다.이 근처는 사람도 거의 없고 조용했다. 말하기에는 적당했다.진아는 담담히 앉아 있었다.예상한 일이었다.오랫동안, 지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창문을 내린 뒤 담배를 하나 꺼내 물고 불을 붙였다.천천히 숨을 들이마신 뒤, 지하는 손을 창밖으로 내밀어 담배를 털었다.진아는 표정이 살짝 일그러졌지만, 말없이 자기 쪽 창문도 내려 환기했다. 지하가 담배를 다 피울 때까지, 그저 조용히 기다렸다.불씨가 길가에 떨어지고, 진아는 시간을 한 번 확인한 뒤 말했다.“이제 가자. 회사도 가야 하잖아.”지하가 바쁜 사람이라는 걸, 진아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여보...”지하가 마침내 진아를 바라봤다. 몇 번이고 말문을 열려다 닫고, 조용히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나... 정말, 기회가 하나도 없
Read mo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