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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l Chapters of 사랑의 덫에 빠진 운명: Chapter 1461 - Chapter 14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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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61화

지하는 잠깐 얼어붙은 듯 어머니를 멍하니 바라봤다.이혜영은 화도 나고, 답답하기도 했다.“그만 고집 좀 부려. 놓아줘. 진아, 난 그 아이 정말 좋아해.”“그 애가 뭘 잘못했다고 너한테 이렇게 오락가락하는 대접을 받아야 해? 진아도 부모님께는 귀한 딸이야!”사실 진아 집안이 부씨 가문에 비하면 조금 부족한 건 사실이었지만, 진아 같은 집안과 진아 같은 사람에게... 훌륭하고 진심으로 사랑할 사람을 못 만날 이유가 있을까?“너 말이다.”이혜영은 답답함에 이를 악물었다.“넌 정말 답이 없어. 과거에만 갇혀서 나오지도 못하고, 놓지도 못하고... 그래, 좋다. 난 더 이상 안 말릴게.”마음을 단단히 먹은 듯, 이혜영은 단호하게 말했다.“진아는 놓아주고, 오설아랑 같이 살아.”“어머니?!”지하는 충격에 숨이 턱 막혔다.이 말은... 차라리 ‘진아와 이혼해라’라는 말보다 더 충격적이었다.“흥.”이혜영이 냉소를 흘렸다.“너무 좋아하지 마. 둘이서 사귀는 건 네 마음대로 해. 하지만 오설아가 부씨 가문으로 들어오는 건 절대 안 돼.”“너희 둘, 그냥 나 몰래 알아서 만나. 난 오설아 인정도 안 하고, 결혼식도 안 해줄 거야. 너희끼리 식 올려도 난 안 갈 거야.”이어 단호하게 못을 박았다.“그리고 우리 부씨 집안 사람들, 네 아버지부터 형들까지 단 한 사람도 안 갈 거야.”“어머니...”지하는 억울함에 속이 꽉 막혔다.‘어떻게 말해야 믿으실까... 난 정말 그런 마음 없는데...’그때, 밖에서 발소리가 들려왔다.진아가 내려온 것이다.이혜영은 지하를 한 번 흘겨보고는, 지하가 잡기도 전에 먼저 응접실을 나갔다.“새아가.”“어머님.”잠깐 쉬고 내려온 진아의 얼굴은 한결 좋아져 있었다.“이리 와.”이혜영은 부드럽게 웃으며 진아의 팔짱을 끼고 다이닝룸으로 향했다.“속 좀 안 좋다며? 아주머니께 죽을 부탁했어. 한 그릇 먹어.”“네, 좋아요.”진아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지하 쪽은 단 한 번도 보지 않았다.식탁 위엔 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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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62화

“아직요.”진아가 고개를 저었다.“아직 어떻게 말해야 할지 모르겠어요.”이혜영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진아가 괜히 겁내는 거겠지. 집안 사람들 놀랄까 봐.’“착한 애, 걱정하지 말거라.”이혜영은 진아의 손등을 부드럽게 두드렸다.“우리 집안이 너희 집안한테 잘못한 거지, 겁낼 필요 없어. 내가 있는데 지하가 너희 집안에 무슨 짓을 하겠어? 걱정하지 마, 너희 집안... 앞으로 점점 나아질 거야.”시어머니의 이 말 한마디에, 진아의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그동안 진아는 지하가 자기 집안에 손을 댈까 정말로 걱정했었다.그래서 직접 이혜영을 찾아온 것이었고, 다행히도 진아의 선택은 맞았다.이혜영은 단단하고 분명한 사람이었다.“어머님...”진아는 조금 멋쩍게 웃었다. 아마도 이렇게 부르는 건, 오늘이 마지막일 것이다.“그럼 저는 가볼게요. 건강하세요.”“그래, 가라.”진아는 돌아서다가, 지하를 한번 바라보았다.“가자.”...지하와 진아는 하루 종일 단 한마디도 제대로 하지 않았다.하지만 어떤 말들은, 결국 마지막 순간에야 겨우 모습을 드러나는 법이다.본가를 벗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아 지하는 방향을 꺾어 차를 길가에 세웠다.이 근처는 사람도 거의 없고 조용했다. 말하기에는 적당했다.진아는 담담히 앉아 있었다.예상한 일이었다.오랫동안, 지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창문을 내린 뒤 담배를 하나 꺼내 물고 불을 붙였다.천천히 숨을 들이마신 뒤, 지하는 손을 창밖으로 내밀어 담배를 털었다.진아는 표정이 살짝 일그러졌지만, 말없이 자기 쪽 창문도 내려 환기했다. 지하가 담배를 다 피울 때까지, 그저 조용히 기다렸다.불씨가 길가에 떨어지고, 진아는 시간을 한 번 확인한 뒤 말했다.“이제 가자. 회사도 가야 하잖아.”지하가 바쁜 사람이라는 걸, 진아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여보...”지하가 마침내 진아를 바라봤다. 몇 번이고 말문을 열려다 닫고, 조용히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나... 정말, 기회가 하나도 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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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63화

지하는 놀란 건지, 슬픈 건지 알 수 없는 표정으로 물었다.“당신, 나랑 있는 게 그렇게 불행했어?”“불행한 건 아니야.”진아는 고개를 저었다.“몇몇 때를 빼면... 사실 즐거운 순간도 참 많았어.”지하가 그녀에게 잘해주었던 건 사실이었다.“근데... 그래도 끝내는, 좀 억울하더라.”진아가 조용히 숨을 내쉬었다.‘난, 당신의 첫 번째가 아니었으니까.’ 한참의 침묵 끝에, 지하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알겠어.”둘은 아무 말 없이 달리는 차에 몸을 맡겼다. 지하는 진아를 친정에 데려다주고는 이번엔 따라 내리지 않았다.진아는 대문 앞에 서서, 멀어져가는 지하의 차를 끝까지 바라보았다.‘우리... 이제 진짜 끝인가 보다.’...D시, 로즈 지역.전날 밤, 드물게도 시연은 열이 나지 않아 잠을 좀 편히 잤다.아침, 시연을 깨운 건 유건이었다.“시연, 일어나. 이젠 일어나야지.”시연은 눈꺼풀만 살짝 들었다가 다시 감아버렸다.유건은 괜히 마음이 아팠다.그동안 시연은 제대로 먹지도 자지도 못했고, 하루하루가 고통이었다.유건도 사실 이렇게 깨우기 싫었다.하지만 이미 의사와 간호사가 아래층에서 한 시간 넘게 기다리고 있었다.레오는 ‘시연이 깰 때까지 계속 기다리게 하면 된다’라고 말했지만, 유건은 알고 있었다.시연은 의사이고, 이 일을 알게 되면 분명히 싫어할 것이다. 오랜 갈등 끝에 결국 깨울 수밖에 없었다.유건은 시연의 따뜻한 볼을 살며시 쓰다듬었다.“오늘 검사하는 날이야. 의사 쪽 다 와 있어.”역시나 그 한마디에 시연이 바로 눈을 떴다.“아... 내가 정신이 없었네요. 중요한 날인데...”며칠 동안 손가락으로 날짜를 세며 기다리던 검사였다.그런데 막상 당일이 되니, 마치 머릿속이 비어버린 듯 착각해 버렸다.시연은 곧 정신이 돌아왔고, 유건을 올려다보는 눈이 흔들렸다.불안과 무력감이 엉켜 있었다.유건은 말없이 시연의 손을 잡았다.이제 와서 위로의 말은 필요 없었다.해야 할 건, 마지막까지 함께 있어 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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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64화

“응, 그래요.”시연이 웃으면서 대답했다.부명주는 입술을 모으며 환하게 웃었다.“정말 다행이다. 이렇게 오래 버티고 버틴 끝에... 드디어 좋은 소식이네. 오늘 저녁은 우리 식구 다 같이 제대로 밥 한번 먹자.”그렇게 말하던 부명주는 케빈 이야기를 꺼냈다.“케빈도 불러. 며칠째 누나 못 본다고 나한테 붙어서 얼마나 징징대는지, 내가 미쳐 죽겠다니까.”...저녁이 되자, 정말 케빈이 나타났다.“누나!”아직 사람도 안 보이는데, 목소리가 먼저 날아들었다.그리고 소년이 달려 들어왔다.그 기세를 보고, 유건은 본능적으로 조이가 자기한테 돌진하던 순간들이 떠올랐다.‘‘조카는 삼촌을 닮는다’라는 말... 세계 어디든 똑같구나.’“케빈.”유건이 부르자, 케빈은 멈춰 서서 고개를 돌렸다.케빈과 유건은 정식으로 얼굴을 마주한 적이 거의 없었다.케빈이 물었다.“나 알아. 형... 내 매형이지?”대답을 기다리지도 않고, 케빈은 갑자기 인상을 찌푸렸다.“아, 아니지. 전 매형이지! 형은 이제 내 매형 아니잖아!”유건이 말문이 막혔다. 케빈은 이어서 물었다.“형, 왜 내 매형 그만둔 거야? 우리 누나 마음에 안 들어서?”그리고 곧바로 스스로 답했다.“아, 그건 말도 안 되지! 우리 누나는 완벽하거든! 형 진짜 보는 눈 없다!”유건은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있었다. 케빈은 미간을 찌푸리며 다시 물었다.“근데 왜 여기 있는데? 왜 우리 누나랑 같이 있어? 형 혹시 후회하는 거야?”입이 쉬지 않고 터져 나오는 탄환 같았다.누가 끼어들 틈조차 없었다.“우리 엄마가 세상에는 아무리 해봤자 소용없는 게 있다고 했어. 그게 바로 후회래!”케빈은 시연을 향해 멀끔한 얼굴로 말했다.“누나, 형 무서워하지 마요. 그리고 형한테 절대 넘어가지도 마요! 아빠랑 내가 누나 편이에요!”“케빈!”부명주는 웃다 울다 하는 표정으로 아들을 잡아끌었다.“네가 뭘 안다고 그래? 누나랑 매형, 지금 얼마나 잘 지내는지 안 보여?”“잘 지내요?”케빈이 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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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65화

기환의 겉 상처는 심하지 않았다.기환이 계속 의식이 없었던 이유는 고장민이 기환에게 약을 과하게 사용했기 때문이었다.의사가 상태를 다시 확인하고, 링거를 연결했다.“진정제 계열 약물이 너무 많이 들어갔어요. 게다가 외상 부위를 오래 방치해서 염증과 열이 함께 올라, 의식이 돌아오지 않은 겁니다. 지금은 다 처치했으니까... 깨는 데 시간이 조금 걸릴 겁니다. 너무 조급해하지 마세요.”의사의 설명이 끝나자마자, 민환은 주먹을 꽉 쥐고 벽을 세게 쳤다.“젠장!”‘고장민 일가...!’레오와 민환이 제때 기환을 찾아내지 못했더라면, 이건 그냥 사람 죽이려는 거였다.숨은 붙어 있다고 해도 깨어난 뒤 기환은 삶이 망가졌을 것이다.혈육인 유건에게 그 따위로 굴더니, 아무 원한도 없는 기환에게까지 이런 짓을... 인간이라 보기조차 어려웠다.“기환이를 잘 챙겨줘.”유건이 민환의 어깨를 두드렸다.다른 얘기는 기환이 깨어난 뒤에야 할 수 있었다.“네... 알겠습니다.”민환이 고개를 끄덕였다.“이번 일은... 정말 레오 회장님 덕분입니다.”그 말에 유건은 잠시 말이 없었다.유건은 레오에게도, 시연에게도... 이생에서 다 갚지 못할 만큼 빚을 지고 있었다....본채를 나설 때, 밖에는 눈이 내리고 있었다.별채로 돌아오자, 가사도우미가 말했다.“아가씨는 위에 안 계세요. 응접실에서 눈 보고 계시더라고요.”응접실은 벽면 하나가 통유리라, 정원이 훤히 내려다보였다.시연은 라운지 의자에 기대앉아 있었고, 무릎에 포근한 담요를 덮고 있었다.작게 흔들리는 의자 옆에는 난로가 하나 놓여, 따뜻한 증기를 내고 있었다.앞에서는 차가 은근히 끓고 있었고, 철망 위에는 귤과 밤이 구워지고 있었다.시연은 창밖을 멍하니 바라보며 생각에 잠겨 있었다.유건이 천천히 걸어가 물었다.“무슨 생각해?”시연이 고개를 들어 유건을 보고, 부드럽게 웃었다.“눈이 오더라고요. 조이는 눈을 정말 좋아했어요. 애들은 추운 줄도 모르잖아요. 눈만 오면 무조건 나가서 놀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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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66화

이번에는 시연이 던진 눈 뭉치가 전부 유건의 머리칼에 박혔다.그대로 하얀 눈투성이가 되어, 마치 백발노인 같아졌다.“이 꼬맹이 진짜...!”유건은 머리 위의 눈을 털어내며, 고개를 흔들었다.“무슨 무공이야? 도망가지 마! 이번엔 진짜다, 진짜!”이번엔 정말 큰 눈덩이를 두 손으로 꽉 감싸 쥐었다.“안 돼요!”시연은 질겁한 목소리로 비명을 질렀다.웃음이 섞인 한숨이 튀어나왔다.“제발요, 고 대표님, 안 돼요, 안 돼요...”시연은 두 손을 모아 빌듯이 쥐고, 눈을 동그랗게 깜빡였다.그 순간, 시연의 모습에 유건은 순식간에 마음이 풀렸다.시연이 이런 표정을 지으면... 장난이라도 세게 칠 수가 없었다. 게다가 지금의 시연은 몸도 완전히 회복한 게 아니었다.“됐어.”유건은 눈썹을 올렸지만, 이미 표정은 녹아 있었다.“이번만 그냥 넘어간다.”“와...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해요.”시연은 작은 동물처럼 손을 비비며 입 앞에 가져가 따뜻한 숨을 불어넣었다.그 모습을 본 유건은 마음이 또 한 번 철렁 내려앉았다.눈덩이를 휙 떨어뜨리고, 시연의 손을 바로 잡았다.“춥지? 그러니까 말 잘 듣고 거기 가만히 서 있지, 뭐 하러 까불어?”“네... 추워요.”그때, 시연의 눈이 반짝하더니 갑자기 손을 번쩍 들어 올려...순식간에 시연의 손이 유건의 옷깃으로 들어갔다.한순간, 유건은 온몸이 싸늘해지며 머리끝까지 전기가 확 올랐다.눈이 번쩍 뜨였다.“하하하하...”시연은 고개를 뒤로 젖히며 폭소했다.숨이 꼴깍꼴깍 찰 정도로 크게 웃었다.“따뜻해지려면 여기만 한 곳도 없네요.”시연의 웃는 얼굴을 보는 순간, 유건은 화라는 감정이 완전히 사라졌다.애초에 화 자체가 나지 않았다.시연이니까.다른 사람이면 몰라도, 시연이면... 뭐든 그냥 좋다.유건은 어이없다는 듯 숨을 길게 내쉬었다.“왜 그래요?”시연은 입을 쭉 내밀었다.유건이 화난 줄 알고 걱정스럽게 물었다.“난... 손 녹이려고 한 건데, 그렇게 싫었어요?”말하며 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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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67화

“나도... 어떻게 말해야 할지 모르겠어요.”시연은 미간을 잔뜩 찌푸렸다.말로 설명하기 힘든, 알 수 없는 느낌이 그녀의 표정을 감싸고 있었다.“레오를 찾아야 해요. 고승하... 뭔가 이상해요! 고승하를 찾아서, 잡아두고요. 절대 도망 못 가게 해야 해요!”“그래.”유건은 더 묻지도 않고, 곧장 레오에게 향했다.레오는 말만 듣고 눈썹을 치켜올렸다.“시연이가 그랬다고?”“예.”두 남자가 서로 눈을 마주쳤다.이유는 몰라도 두 사람 모두 시연의 촉을 절대적으로 믿고 있었다.유건이 말했다.“시연이가... 만약 고승하가 D시에 있으면 잡아두고, 못 나가게 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어떻게든 불러와야 한다고 했고요.” “알았어.”레오가 고개를 끄덕였다.“그 정도면 쉬운 일이야.”레오에게 있어 두 선택 모두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그날 저녁 바로 소식이 들어왔다.승하는 D시에 없었다.메터지강에서 유건과 시연을 풀어준 뒤 곧바로 사라졌다는 보고였다.승하는 G시에 있었다.승하를 데려오기 위해서는 약간의 수고가 필요했고, 시간이 조금 걸릴 일이었다....다음 날 새벽.기환이 깨어났다.민환은 밤새 침대 옆을 지키며 단 한 순간도 자리를 떠나지 않았다.기환이 눈을 뜨는 걸 본 순간, 민환은 거의 울다시피 했다.“기환아! 드디어 깼구나!”기환은 막 눈을 뜬 터라 머리가 멍하고, 입을 여는 것조차 힘들어 보였다.그런데 그의 첫 마디는...“고승하... 고승하야!”“뭐?”말이 너무 앞뒤 없이 튀어나와서 민환은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형...”기환은 힘겹게 숨을 몰아쉬며 말했다.“유건 형님은요? 형님... 형님은 괜찮아요?”그제야 기환은 주변을 둘러보았다.마치 갑자기 현실로 돌아온 것처럼 눈동자가 흔들렸다.“형... 여긴 어디야?”질문이 한꺼번에 터져 나와, 민환은 무엇부터 대답할지조차 몰랐다.“천천히 해. 여긴 로즈 지역, 레오 회장님 댁이야.”민환은 잠시 머뭇거리다가 말을 덧붙였다.“시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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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68화

이 일 역시 시연의 의견이었다.마치 하늘이 쥐고 있는 시나리오를 시연이 가장 먼저 읽은 듯했다.이 사실을 알고 있는 민환은 혀를 차며 감탄했다.“형님, 형수님 진짜 대단합니다. 어떻게 그렇게까지 맞출 수 있으세요?”유건은 살짝 눈썹을 올리고, 미묘하게 의기양양한 표정을 지었다.“믿어도 돼.”민환은 웃으며 동생 쪽을 보았다.“너 깨기 전에 형수님이 이미 고승하 찾으라고 사람 보내셨어.”이제 남은 건, 승하가 스스로 걸려들어 자백하고 죗값을 치르는 것.그러면 유건의 결백은 완전히 밝혀질 것이다.하지만 유건은 점점 미간을 좁혔다.‘고승하는 어떤 마음으로 그 짓을 한 거지?’‘고장민은... 그 사실을 알고 있었을까?’...유건은 별채로 돌아왔다.시연은 창가에 앉아 있었고, 테이블 위에는 조그만 진저브레드 집 세트가 놓여 있었다.문이 열리는 소리에 시연이 고개를 들었다.“왔어요? 이거, 아까 케빈이 가져다줬어요. 지금 막 뜯었는데... 아직 못 만들었어요. 잘됐네요, 같이 해요.”“그래.”유건은 웃음과 함께 시연 맞은편에 앉았다.두 사람이 함께 상자 안의 물건을 전부 꺼내놓자, 유건이 말했다. “진저브레드 집... 나도 되게 오랜만이야. 예전에 유학했을 때 친구들이 하는 거 구경만 했지, 제대로 만들어 본 적은 없거든.”“그랬어요?”시연은 유건이 손을 움직이는 걸 보며 아예 손도 안 뻗고 얌전히 앉아 있었다.유건이 오자마자 손이 자동으로 멈춰버린 듯했다.“나랑 조이는 매년 만들었어요.”그 시절, 시연과 조이는 P시에 살고 있었다.그곳의 문화에 자연스레 스며들어 따라 했던 것뿐인데, 추억은 선명했다.유건은 손이 멈췄다.시연의 표정만 봉도 딸을 생각한다는 걸 단숨에 알 수 있었다. 유건 또한 그랬다.“지금쯤 조이는 뭐 하고 있을까요? G시는 이런 거 잘 안 하잖아요. 혹시나 조이가 하고 싶다고 칭얼대고 있을 수도 있고...”시연은 혼잣말하듯 작게 중얼거렸다.“조이가 원하면... 진아는 무조건 해줄 거예요. 아니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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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69화

짧은 고요 속에서 둘 중 누구도 먼저 입을 열지 않았다.말하지 않아도 아는 이야기.하지만 입 밖으로 꺼내고 싶지 않은 이야기였다.승하가 잡히고 나면 유건은 G시로 돌아가야 한다.그리고 G시로 돌아가면, 지금처럼 함께 숨 쉬며 앉아 있는 이 시간은 당연한 것이 아닐 것이다.유건은 아무 말도 없이 시연을 바라보았다.눈길이 시연에게서 떨어질 줄 몰랐다.어쩌면 너무나 다정해서 더 아픈... 그야말로 사랑꾼의 눈빛이었다.“맞다.”시연이 먼저 숨을 고르듯 말을 꺼내며, 핸드폰을 집어 들었다.지금 쓰는 새 핸드폰은 유건의 안전을 위해 레오가 따로 마련해준 것이라 유심칩은 들어 있지 않았다.그래도 사진을 찍는 기능 정도는 있었고 그건 시연에게 충분했다.그녀는 카메라를 켜서 완성된 진저브레드 집을 향해 들이대며 말했다.“사진 찍어둘게요. G시에 가서 조이한테 보여주려고요. 엄마가 올해도 조이한테 진저브레드 집 만들어줬다고요.”“오?”유건은 눈웃음을 지으며 시연을 바라봤다.“그게 엄마가 만든 거야?”“왜요?”시연이 눈을 동그랗게 뜨며 째려봤다.“아빠가 제 공을 가로채려고요?”“내가 감히?”유건은 곧장 두 손을 들며 항복하듯 웃었다.창밖의 하늘은 서서히 어둑해져 갔다.유건이 곧 물었다.“저녁은 뭐 먹고 싶어?”지난 며칠 동안은 집안에 가사도우미가 있어도 거의 유건이 직접 요리를 했다.시연은 이미 알았다. 유건이 해주는 음식이 더 맛있다는 걸.시연은 이미 마음을 정해 두었는지 기다렸다는 듯 말했다.“샤부샤부요. 반은 매운맛, 반은 버섯 국물로요. 둘 다 맛있잖아요.”“알았어.”유건은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같이 할래, 아니면 잠깐 더 쉬고 있을래?”“같이요, 같이!”시연은 핸드폰을 내려놓고 잔뜩 들뜬 얼굴로 따라나섰다.“그러니까요, 저도 유건 씨한테 요리 좀 배워야 하잖아요.”“그래.”유건은 피식 웃었다.말로는 배우겠다 해놓고, 결국 뒤에서 귀엽게 방해만 하는 게 시연이었다....그 이후로 두 사람은 승하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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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70화

딸이 언젠가 부명주와 레오를 부모로 인정할지... 그건 사실 전혀 중요하지 않았다.부명주가 걱정하는 건, 언제나 딸의 미래였다.이 기간 동안 부명주는 똑똑히 보았다.시연과 유건... 너무나 잘 어울리는 한 쌍.둘의 감정은 깊었고, 서로를 알아보는 속도는 놀라울 만큼 빨랐다.둘은 말도 필요 없었다. 눈빛 하나, 손끝의 작은 움직임 하나로도 상대가 무엇을 느끼고, 무엇을 하려는지 단번에 알 수 있었다.그런 호흡, 그런 감정을 부명주도 잘 알고 있었다. 왜냐하면 부명주 역시 그런 사랑을 가진 사람이었기에.그리고 레오 또한 유건을 매우 만족스럽게 보고 있었다.하지만 문제는 따로 있었다. G시에 노은범이라는 젊은 남자가 있다는 것.은범 역시 훌륭한 청년이었다.부명주는 천천히 숨을 내쉬며 물었다.“시연아, 너... 앞으로 어떻게 할 생각이야?”순간 시연은 손끝이 멈췄다.그리고 거의 바로 이해한 듯 고개를 들었다.“앞으로요?”시연은 고개를 살짝 기울여 부드럽게 웃었다.“딱히요. 돌아가면... 원래 살던 대로 살겠죠.”부명주는 말없이 한숨을 쉬었다.시연의 뜻을 너무나 잘 이해했다....밤이 되어, 부명주는 레오와 함께 앉아 딸 이야기를 꺼냈다.“하... 결국 우리 때문에 시연이가 이렇게 된 거야.”부명주의 목소리는 낮고, 깊고, 후회로 젖어 있었다.레오는 미간을 찌푸리고 고개를 끄덕였다.그렇다.부모 때문에 딸이 생명의 위협까지 받게 되었다.그 과정에서 지동성은 죽었고, 노은범은 큰 부상을 입었다.시연에게는 평생 지워지지 않을 상처이며, 은범은 이제 시연에게 ‘책임’이라는 이름으로 남게 될 사람이었다.그러나 레오는 부명주 말대로 착한 사람이 아니었다.레오가 낮고 단단하게 말했다.“근데 왜 꼭 노은범이어야 해? 내가 보기엔... 시연이 좋아하는 건 고 대표야.”“나도 알아.”부명주는 바로 동의했다.“나도 그렇게 느껴. 근데, 시연이는 당신이 아니야. 시연이는 절대 은범이를 버리진 않을 거야.”“하지만...”“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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