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은의 목소리는 그날의 화재 이후 많이 망가졌었다.그날 이후로 수은의 음색은 거칠고 허스키해져서, 듣기에 편한 소리와는 거리가 멀어졌다.그런데 지금 들리는 목소리는 예전보다 훨씬 맑아져 있었다.해외에 머무는 동안, 이섭이 수은의 목 상태를 위해 적잖은 정성과 돈을 들였다는 걸 짐작하기는 어렵지 않았다.완전히 예전 같지는 않아도 분명 많이 좋아진 상태였다.“선배, 이 색이 더 예뻐? 아니면 이 디자인이 더 괜찮아?”“아, 어떡하지? 나는 둘 다 좋은데.”“선배가 골라 줘.”하설은 저런 식의 사랑스러운 응석을 흉내 낼 수 없었다.이섭 앞에서 하설은 늘 다정했고, 얌전했고, 알아서 배려할 줄 알았고, 단정했다.그런데 수은이 가진 저 생기만큼은 하설에게 없었다.사랑받지 못했기 때문이었다.이섭의 시선이 머무는 사람은 언제나 수은이었다.이섭의 목소리가 부드럽게 흘렀다.“네가 하는 건 다 괜찮아.”하설은 한 번도 들어 본 적 없는 온기였다.이섭은 하설에게 늘 차갑게만 말했다.사랑하는 사람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을 대하는 태도는 이렇게까지 달랐다....하설은 조용히 눈을 내리깔았다.문득 오래전 일이 떠올랐다.그해, 이섭은 전교 1등, 북강시 전체 수석이라는 이름으로 울서대학교에 합격했다.학교 전체가 들썩일 만큼 큰 화제였다.수많은 후배들이 이섭을 동경했고, 목표로 삼았다.하설도 그중 한 사람이었다.어릴 적 정해진 혼약이 있었다고 해도 하설은 알고 있었다.자신이 이섭과 너무 멀어지면 안 된다는 걸.이섭은 너무 눈부신 사람이었다.그러니 하설도 평범한 자리에 머물 수는 없었다.그때 이섭이 말했다.“하설아, 울서대학교에서 기다릴게.”그 시절 이섭의 목소리에는 지금 수은에게 건네는 것과 비슷한 다정함이 담겨 있었다.그 한마디는 하설이 고등학교 3년을 버티게 만든 힘이었다.하설은 죽어라 공부했다.걸어갈 때도 단어를 외웠고, 밥을 먹을 때도 문제를 떠올렸고, 잠들기 전까지 문제집을 붙잡았다.그렇게 악착같이 버틴 끝에, 하설도
Read Mo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