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다섯 수인 남편과 생존 계약: Chapter 21 - Chapter 30

30 Chapters

제21화

나시원 또한 고개를 끄덕였다. 보랏빛 눈동자에 서려 있던 거리감이 확연히 옅어졌다. 나시원은 그녀를 점점 더 이해하기 어려워졌다. 앞으로 얻게 될 수정들까지 미리 계획해 두었다니?‘설마 정말로 변한 건가?'윤이산은 수정을 손에 꼭 말아쥐었다. 붉은색 눈동자 속엔 여전히 복잡한 감정이 실려 있었다. 여전히 한여월의 진심을 파악할 순 없었지만 실질적인 혜택을 입은 첫 번째 사람이 자신이라는 사실만은 분명했다.윤이산은 목울대를 크게 한 번 울렁이며 입을 열었다.“돌파하고 나면 높은 등급 맹수를 만났을 때 내가 가장 먼저 앞장설게. 뒤로 숨는 일은 없을 거야.”수인 남편 중 아무도 반대하지 않자 한여월은 그들이 자신의 말을 수긍했음을 알고 화제를 돌렸다.“다들 다쳤는데 지금 바로 길을 떠날 수 있겠어?”한여월은 남편들의 상처를 훑었다. 마음이 급했다. 맹수와의 싸움으로 시간을 너무 많이 허비했다. 해가 지기 전에 휴식처에 도착하지 못하면 큰일이었다.강진우가 답했다.“지혈초를 붙여둔 지 꽤 돼서 피는 멎었어. 널 업고 가는 데는 문제 없을 거야!”강진우는 피가 멎어 있는 상처를 그녀에게 확인시켜 주었다. 물론 진심으로 그녀를 업고 싶은 건 아니었다. 그저 빨리 목적지에 도착해 피를 받고 계약을 해제하고 싶을 뿐이었다. 나머지 남편들도 고개를 끄덕이며 괜찮다는 뜻을 전했다.모두의 동의를 확인한 한여월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즉시 말했다.“그럼 지금 바로 출발해. 해가 지기 전에 쉴 만한 동굴을 찾아야 해!”그렇게 한여월 일행은 짐을 챙기기 시작했다. 윤이산은 바로 움직이지 않고 한여월을 슬쩍 보더니 죽은 거악망에게 다가가 껍질 한 조각을 베어내 가죽 주머니에 챙겨 넣었다.강진우가 사자 형태로 변했다. 검은 털이 햇살을 받아 매끄럽게 빛나고 있었다. 그는 한여월이 올라타기 편하도록 몸을 낮게 엎드려 등줄기의 곡선을 조절해 평평하게 만들고는 얌전히 그녀를 기다렸다. 한여월은 조심스레 그의 등에 올라타 털을 꽉 말아쥐었다.“출발해.”강진우는
Read more

제22화

그 입맞춤은 다급하고도 거칠었다. 완전히 이성을 잃은 듯 무섭게 활활 타올랐다. 입술 사이로는 은은한 약초 냄새가 맴돌기도 했다.깊은 잠에 빠져 있던 한여월은 순간적으로 밀려든 답답함에 번쩍 눈을 떴다. 코 안 가득 생소한 숨결이 들이닥쳤고 눈을 뜨자마자 붉은색 눈동자와 정면으로 마주쳤다.윤이산의 눈이었다. 평소의 차가움은 온데간데없고 지금 그 눈 속에는 한여월을 집어삼킬 듯한 광기만이 소용돌이치고 있었다.한여월의 머릿속이 새하얘졌다. 그 순간 수치심과 분노가 치밀어 올라 온 힘을 다해 윤이산의 뺨을 후려쳤다.찰싹!날카로운 소리가 동굴 안에 울려 퍼졌다. 윤이산의 고개가 옆으로 홱 돌아갔고 뺨 위로 선명한 붉은 자국이 번졌다. 그와 동시에 입술을 짓누르던 힘도 맥없이 풀려버렸다.그 틈을 타 뒤로 물러난 한여월은 거칠게 숨을 몰아쉬었다. 막 욕설을 내뱉으려 했을 때, 광기가 조금씩 걷히고 대신 처량함이 가득 묻어 있는 윤이산의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윤이산은 식은땀을 흘리며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미, 미안해. 아무래도 발정기인 것 같아. 암컷이 필요했나봐.”그제야 한여월은 윤이산의 뺨에 홍조가 돌아 있다는 것을 알아챘다. 몇 리 길을 단숨에 달려오기라도한 것처럼 호흡이 거칠었고 눈동자의 초점은 흐릿했으며 손가락 끝마저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단순히 희롱하려던 게 아니라 정말 발정기로 인해 이성을 잃었던 모양이다.수인 세계에서 암컷이 존귀한 대접을 받는 이유는 숫자가 적고 번식력이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수컷을 진정시키는 안정 능력을 가졌기 때문이다. 이 능력은 수인 밴드의 형태로 암컷의 손목에 나타난다.암컷의 수인 밴드는 수컷과 달리 등급 색상이 없으며 오직 검은색 고리 선으로 되어 있다. 고리가 굵을수록 안정 능력이 강하다는 뜻이다. 하지만 그녀의 손목에 있는 수인 밴드는 바느질용 실만큼이나 가늘어 거의 보이지도 않을 정도였다. 안정 능력이 무시해도 좋을 만큼 약하다는 의미였다.대개 암컷은 수컷과의 신체 접촉을 통해 안정을
Read more

제23화

은회색의 어깨까지 내려오는 긴 머리카락은 땀에 젖어 조각처럼 깊고 뚜렷한 이목구비 옆에 몇 가닥씩 달라붙어 있었고, 오똑한 콧날 아래 얇은 입술은 열기 때문에 옅은 분홍빛을 띠고 있었다.무엇보다 매혹적인 것은 그 붉은색 눈동자였다. 이성을 잃고 번뜩였던 광기는 사라지고, 이제는 애써 억누르고 있는 뜨거움만이 은은하게 타오르고 있었다. 분명 경계해야 할 눈빛임에도 묘하게 가슴을 뛰고 빨려들 것만 같았다.한여월의 심장이 순간 덜컥 내려앉았다. 그녀는 얼른 마음속의 이상한 기분을 억눌렀다. 악당이라는 신분과 방금 전의 무례함을 잊고 순수하게 이 몸매와 얼굴만 본다면... 사실 그녀로서도 딱히 손해는 아니지 않을까?한여월은 심호흡을 한 번 하고, 최대한 평온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만약... 다른 짓 안 하고 그냥 나를 안고 잠만 잔다면, 그것만으로도 안정이 될까?”윤이산은 아예 기대조차 하지 않았었다. 한여월이 자신을 발로 차고 때리며 쫓아낼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이 뜻밖의 말을 듣는 순간 그의 눈이 눈부시게 반짝였다. 그가 세차게 고개를끄덕이며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응! 네 곁에 가까이 있기만 하면 돼. 그것만으로도 체내의 폭주 인자를 잠재울 수 있어!”하지만 한여월은 여전히 안심이 되지 않았다. 인간 형태의 접촉은 아무리 생각해도 너무나 불편했다. 혹시라도 그가 다시 이성을 잃으면 어찌한단 말인가. 한여월은 잠시 생각하더니 말했다.“그럼... 수인 형태로 변해서 나를 안고 자.”한여월은 딱히 뱀을 무서워하지 않았다. 이곳에 오기 전에도 뱀을 애완동물로 키운 적이 있었으니까. 윤이산은 잠시 멍해졌다가 곧바로 고개를 끄덕였다.“알았어.”암컷에게 가까이 다가가 안정을 얻는 것이 목적이기 때문에 그 형태가 무엇인지는 크게 중요하지 않았다.곧이어 그의 골격에서 가벼운 골절음이 들려왔고, 건장한 사내의 몸이 길게 늘어나더니 이내 은백색 거대한 뱀으로 변했다. 뱀의 몸통은 성인 남성의 허리만큼 굵었고, 모닥불 잔불 아래 비늘이 차갑고
Read more

제24화

한여월은 동굴 입구에서 들려오는 새들의 지저귐에 잠에서 깼다. 눈을 떴을 때 동굴 안은 이미 꽤 밝아져 있었고, 입구로 들이친 햇살이 바닥 위로 잘게 부서진 빛줄기를 던지고 있었다.한여월은 무의식적으로 곁을 더듬었지만, 손끝에는 살짝 서늘한 수피 가죽만 닿았다. 윤이산은 이미 자리에 없었다. 오직 허리춤에 남은 희미한 냉기만이 어젯밤의 일이 꿈이 아니었음을 일깨워줄 뿐이었다.한여월은 몸을 일으켜 앉으려다 다리를 움직이는 순간 인상을 찌푸렸다. 다리가 뻐근하고 저릿했다. 분명 어젯밤 윤이산의 뱀 꼬리에 너무 꽉 감겨 있었던 탓에 압박이 심했던 모양이다.한여월이 다리를 주무르고 있을 때, 갑자기 목덜미에서 온기가 느껴졌다. 목에 걸고 있던 목걸이가 미세하게 뜨거워지더니, 그 안에서 무언가 요동치는 듯한 감각이 전해졌다. 한여월은 멍해졌다가 곧장 의식을 집중해 공간 안으로 들어갔다.지난번 이 의식 공간에 들어갔을 때는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짙은 안개가 가득해 겨우 5평 남짓한 범위만 감지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안개가 완전히 걷혀 공간의 전체 모습이 선명하게 드러났다.눈앞에 펼쳐진 것은 더 이상 좁은 구석탱이가 아니라, 약 10평 정도 되는 검은 토지였다. 은은한 윤기가 도는 것으로 보아 흙은 꽤 비옥해 보였다. 한여월은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이 정도 땅이면 충분히 식물을 심을 수 있을 것이다. 이제 곧 채소 자급자족이 가능해진다는 뜻이다!한여월을 더 놀라게 한 것은 공간 한구석에 숨겨진 작은 샘물이었다. 비록 아직은 몇 방울 되지 않는 적은 양의 물이었지만, 벅차오르는 심장을 진정시키기 힘들었다.‘설마 이게 소설에서나 보던 영천인가?'소설 속 영천은 온갖 병을 고치고 신기한 식물들을 쑥쑥 키워내지 않던가. 이 공간 속 샘물은 대체 어떤 효과가 있을지 궁금해졌다.한여월의 심장이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그녀가 의식으로 샘물을 떠내어 손끝에 대는 순간, 따스한 기운이 손가락을 타고 온몸으로 퍼져 나갔다. 다리의 저림과 근육통마저
Read more

제25화

지유혁은 그녀의 설명에 그저 덤덤하게 고개를 끄덕였다.한여월은 의아한 마음에 물었다. “혹시 다른 일이라도 있어?”지유혁은 잠시 망설이는 듯하더니 이내 입을 뗐다. “윤이산 발정기야. 너 어젯밤에...”말은 끝까지 잇지 않았지만 한여월은 그가 무엇을 묻고 싶은지 충분히 알아들었다.아침에 남편들은 윤이산이 한여월의 자리에서 나오는 것을 보았다. 그가 발정기라는 건 한눈에 봐도 알 수 있었으나 몸에서는 폭주 인자로 인한 폭력적인 기운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분명 암컷에게 안정을 얻었다는 증거였다.하지만 지유혁이 동굴에 들어와 관찰한 결과, 한여월의 몸 어디에도 윤이산의 수인 마크는 나타나지 않았다. 두 사람이 결합하지 않고 다른 방법을 썼다는 뜻이다.한여월의 수인 마크 등급은 높지 않다. 이치대로라면 결합 없이는 윤이산을 진정시킬 수 없었을 텐데 대체 어떤 방법으로 해결한 걸까?방법이야 어찌 됐든 한여월이 윤이산을 도와주었다는 사실은 나중에 자신들이 발정기를 맞았을 때도 그녀가 도와줄지 모른다는 기대감을 품게 했다.물론 지유혁은 곧바로 속으로 웃음을 지었다. 저 사악한 암컷이 목적도 없이 그들을 도와줄 리가 없다. 분명 무언가 꿍꿍이가 있을 터였다.한여월은 무심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윤이산 일은 알아. 어젯밤에 내가 안정시켜 줬거든. 오늘 상태는 어때? 이동할 수 있어?”사실 그녀가 가장 신경 쓰는 부분은 그것이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여정에 차질이 생겨서는 안 됐다.지유혁이 대답하려던 찰나, 나머지 남편들도 하나둘 동굴 안으로 들어왔다. 윤이산의 뺨에는 여전히 홍조가 남아 있었으나 눈빛만은 맑은 상태였다.윤이산은 동굴 밖에서 한여월의 말을 들은 모양인지 즉시 말을 가로챘다. “이동할 수 있어. 하지만 계속 안정이 필요하니까 오늘은 내가 널 태우고 갈게.”한여월은 안정을 위해 신체 접촉이 필요하다는 걸 알고 있었다. 어차피 누구의 등에 타든 이동만 할 수 있다면 상관없었기에 고개를 끄덕여 동의했다.남편들이 짐을 챙겨 출발하려는데
Read more

제26화

나시원에게 수혈을 마친 한여월은 손가락 끝에서 여전히 피가 배어 나오는 것을 보고 즉시 서기현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어차피 이미 상처가 난 김에 지금 한 번 더 주는 것이 나중에 다시 살을 긋는 수고를 더는 길이었다. 그녀는 손가락을 든 채 그대로 서기현에게 다가갔다.제자리에 서 있던 서기현의 눈동자에는 조금 전 한여월이 나시원에게 피를 주던 모습을 지켜볼 때의 복잡한 감정이 남아 있었다. 그런데 그녀가 피가 흐르는 손가락을 치켜들고 자신에게 직진해 오는 것이 아닌가.손가락 사이로 혈액이 뚝뚝 떨어지는 가운데 그녀가 다소 급한 어조로 말했다.“빨리 좀 숙여봐. 너한테도 피 줄게.”서기현의 안색이 순식간에 변했다. 거부감이 아니라 경악이었다. 그는 그녀가 어제 했던 말이 그저 상황을 모면하려 던진 빈말인 줄 알았는데 그의 예상이 틀린 것이다.“정말로 나랑 계약을 해제하려고 피를 주겠다는 거야?”서기현이 미간을 찌푸린 채 깊고 서늘한 눈빛으로 그녀를 내려다보며 물었다. 한여월은 그 눈 속에 담긴 감정을 읽어낼 수도 없었고 읽고 싶지도 않았다. 그저 빨리 길을 떠나고 싶을 뿐이었다.한여월은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하지. 그러니까 좀 숙여봐.”서기현은 미간을 찌푸린 채 천천히 몸을 낮췄다.한여월이 즉시 그의 가슴팍 위로 피 한 방울을 떨어뜨리자, 그곳의 수인 마크가 곧바로 한층 연해졌다. 그 순간, 서기현은 고개를 숙이더니 한여월의 손목을 덥석 잡았다. 엄지손가락으로 피가 흐르는 그녀의 손가락 끝을 문지르더니 고개를 더 숙여 부드럽게 핥았다.손가락 끝을 감싸는 뜨거운 촉감과 함께 밀려온 서기현 특유의 맑고 깨끗한 체취에 한여월은 그대로 얼어붙었다. 늘 청초하고 서늘했던 서기현의 얼굴이 코앞에 다가와 있었다. 밑으로 내리깐 긴 속눈썹 아래로 정성스럽게 상처를 핥아내는 모습은 그녀의 머릿속을 순식간에 백지로 만들었다.“너!”한여월은 정신이 번쩍 들어 얼굴이 홍당무가 된 채 손가락을 힘껏 빼냈다. 손가락 끝에는 여전히 서기현 입술의 온기가 남아 있
Read more

제27화

눈부시게 찬란한 미소가 한여월의 얼굴에 떠올랐다. 그 순간 윤이산의 마음속 어색함은 눈 녹듯 사라졌고 그 자리엔 몽글몽글한 설렘만이 남았다.윤이산의 목소리는 약간 잠겨 있었다.“응. 네 거야. 발에 맞는지 신어 봐봐.”한여월이 발을 밀어 넣자 가죽이 발목을 기분 좋게 감싸안았다. 가죽은 부드럽게 밀착되었고 크기도 딱 맞았다. 이전에 신었던 수피 가죽 장화보다 훨씬 편안했고 걸을 때 살이 쓸리는 느낌도 전혀 없었다. 그녀가 일어나서 두어 걸음 걸어보더니 윤이산을 향해 더 활짝 웃어 보였다.“정말 딱 맞아! 고마워, 윤이산!”그것이 안정에 대한 보답이든 의도적인 아부든, 신발을 만드는 데 윤이산이 정성을 쏟았다는 것만은 분명했다. 정말로 신발이 마음에 쏙 들었던 한여월의 얼굴에는 미소가 가득했다. 이 찬란한 미소를 보고 넋을 잃은 것은 윤이산뿐만이 아니었다.강진우는 웃을 때 초승달처럼 휘어지는 한여월의 눈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손에 든 수피 가죽 주머니를 바닥에 떨어뜨릴 뻔했다. ‘고맙다고 했다고? 게다가 윤이산이 준 신발을 받아줬어?'옆에 서 있던 서기현은 미간을 살짝 찌푸린 채 그녀의 신발을 응시했다. 나시원은 무표정하게 시선을 거두었으나 손가락으로는 무의식적으로 가슴팍의 수인 마크를 만지작거렸다. 조금 전 수혈해 줄 때 발그레해졌던 그녀의 얼굴이 떠오르자 마음속의 묘한 기분은 배가 되었다.몇 초 후, 수컷들은 제정신을 차리고 신중한 표정으로 돌아왔다. 그들은 한여월의 태도가 윤이산에게 눈에 띄게 부드러워진 것을 알아챘다. 그녀는 정말 이 신발이 마음에 든 것일까, 아니면 또 다른 꿍꿍이가 있는 것일까?윤이산은 다른 이들의 시선을 아랑곳하지 않고 가죽 주머니에서 지혈초 한 줌을 꺼냈다. 바위 위에 놓고 짓이겨 즙을 낸 뒤 깨끗한 가죽 끈을 챙겨 한여월 앞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여전히 피가 배어 나오는 그녀의 손가락을 조심스럽게 맞잡았다.한여월은 멍한 얼굴로 정성스레 약초를 상처에 발라주는 그의 모습을 지켜보다가 어제 했던 약속이 떠올라 말했다
Read more

제28화

이런 식으로도 변할 수도 있었단 말인가?한여월은 뱀 꼬리를 흔들며 나아가는 윤이산을 바라보았다. 속도는 다른 수인 남편들의 수인 형태와 비교해도 뒤처지지 않았고 오히려 뱀 꼬리가 땅을 훑는 가벼운 소리만 들릴 뿐 훨씬 안정적이었다. 그녀의 시선이 윤이산의 팔뚝에 머물다 멈췄다.어제까지만 해도 노랑 등급 언저리에 머물던 수인 밴드가 지금은 완벽한 초록으로 변해 은은한 광택을 내뿜고 있었다. 초록 등급 수정을 흡수해 성공적으로 돌파한 것이 분명했다. 한여월은 발정기 탓에 여전히 옅은 홍조가 감도는 윤이산의 뺨을 보며 한 가지 추측을 했다. 발정기가 아닌데도 갑자기 발정이 난 것은 아무래도 급격한 등급 돌파와 관련이 있을 것이다.수인 세계의 수컷들은 돌파할 때 체내 에너지 파동이 격렬해져 이성을 잃기 쉽다. 게다가 그는 본래 발정기가 가까워진 상태였으니 두 가지 요인이 겹쳐 통제 불능 상태가 되었을 가능성이 컸다.윤이산은 여전히 발정기였기에 한여월을 안고 이동하면서 온 신경을 그녀에게 쏟고 있었다. 품 안의 암컷은 무슨 생각을 하는지 긴 속눈썹을 나비 날개처럼 파르르 떨며 그의 가슴팍에 얌전히 기대어 있었다. 그 모습이 더없이 사랑스러워 보였다. 그는 자신도 모르게 꼬리를 흔드는 폭을 줄이며 팔에 힘을 더 주어 그녀를 더욱 안정감 있게 감싸안았다.그때, 꼬리 끝이 툭 튀어나온 돌덩이에 걸려 윤이산의 발걸음이 휘청였다. 품 안의 한여월은 본능적으로 손을 뻗어 그의 목을 꽉 끌어안았고 뜨거운 숨결이 순식간에 그의 목덜미를 스쳤다.“미안. 바닥에 돌이 많아서 못 봤어.”윤이산의 목소리가 살짝 잠겼다. 그는 널브러진 돌 더미들을 훑어보며 말했다.“돌이 너무 많아. 떨어질지도 모르니까 그냥 내 목을 계속 잡고 있어.”한여월이 바닥을 내려다보니 정말 크고 작은 돌멩이들이 깔려 있었다. 조금 전 흔들림에 깜짝 놀랐던 그녀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의 목을 부드럽게 감싸안았다. 그녀 손끝의 말랑말랑한 촉감이 목덜미 피부에서 강렬하게 느껴졌다.뒤따라오던 다른 수인 남편
Read more

제29화

한여월은 그의 목소리에 생각에서 깨어나 고개를 들었다가 그의 깊은 눈동자와 정면으로 마주쳤다. 지금은 한여름 열기가 한창이라 정오의 태양이 지면을 뜨겁게 달구고 있었다. 춥다는 말과는 거리가 먼 날씨였다.윤이산은 냉혈 수인이었기에 그에게 안겨 있는 것은 천연 얼음주머니를 품고 있는 것과 같았다. 이 무더운 날씨에 아주 제격이었다.한여월은 고개를 저으며 공간에 관한 생각은 잠시 접어두고 물었다.“아니, 안 추워. 휴식지까지 얼마나 더 가야 해?”윤이산은 앞쪽의 숲을 한 번 내려다보았다. 뱀 꼬리를 부드럽게 흔들며 돌덩이들을 피해 나가는 그의 목소리는 아까보다 한결 더 부드러워져 있었다.“앞에 있는 상수리나무 숲을 지나면 작은 시냇가가 나올 거야. 시냇가 근처에 햇빛을 피할 만한 커다란 바위들이 몇 개 있으니까 거기서 쉬자. 금방 도착할 거야.”한여월은 고개를 끄덕였다. 쉴 때 공간 속의 영천 수를 다시 시험해 보고 정확히 어떤 효능이 있는지 확인할 생각이었다. 베인 손가락은 처치를 받긴 했지만 아직 완전히 낫지는 않았다. 만약 영천에 정말 치유 효과가 있다면 앞으로 이 수인 세계에서 살아남는 데 큰 도움이 될 터였다.하지만 영천에 물이 고작 몇 방울뿐이라는 사실이 떠오르자 그녀는 다시금 공간을 업그레이드할 방법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시선은 자신도 모르게 다시 윤이산의 입술로 향했고 마음속에 품었던 황당한 추측이 다시 고개를 들었다.‘정말 키스 한 번에 공간이 업그레이드 되는 걸까?'어제 입을 맞춘 뒤 공간의 모습이 변한 것은 사실이었지만 만약 단순한 우연이라면? 한참 멍하니 생각에 잠겨 있을 때 윤이산은 갑자기 고개를 숙여 그녀를 바라보았다. 한여월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아 얼른 시선을 피했다.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너무 위험해.' 윤이산은 심장까지 얼어붙게 할 만큼 잔인한 악당이라는 사실을 잊을 뻔했다.지금 이 악당들이 겉으로는 고분고분해 보일지 몰라도 그것은 어디까지나 파트너 수인 마크의 제약 때문이었다. 계약 해제가 되는 순간
Read more

제30화

한여월은 고개를 들어 윤이산을 바라보았다. 그녀의 시선은 그의 팔뚝 위 선명한 초록색 수인 밴드에 머물렀다. 초록 등급 수인의 실력은 결코 약하지 않다. 일반적인 초록 등급 맹수 정도는 충분히 상대할 수 있으니 그와 함께 물에 들어가는 건 이론적으로 매우 안전할 터였다.하지만 어제 거악망이 기습했을 때, 나시원이 순간적으로 멈춰 섰던 장면이 자꾸만 머릿속을 맴돌았다. 본래 수중 생활에 능한 인어족인 그가 왜 그렇게 늦게 반응했을까? 그 망설임 가득했던 찰나는 마치 맹수의 손을 빌려 그녀의 목숨을 끊으려 했던 고의처럼 느껴졌다.한여월의 안색이 순식간에 창백해졌다. 그녀는 본능적으로 시냇가로 고개를 돌렸다. 나시원은 이미 나무통에서 나와 얕은 물가에 조용히 몸을 담그고 있었다. 가끔 꼬리지느러미로 수면을 툭툭 치는 모습이 겉보기엔 유유자적해 보였지만 그녀는 그저 불안하게만 보였다.그러다 문득 기슭에 놓인 빈 나무통을 발견하자 한여월의 눈이 반짝였다. 물속이 위험하다면 나무통을 가져와 뭍에서 씻으면 되지 않겠는가. 그녀는 마음을 가다듬고 윤이산에게 말했다.“물에 들어갈 필요 없어. 그냥 나무통으로 씻을게.”윤이산은 그녀의 시선을 따라 빈 나무통을 보더니 곧장 그녀를 이해했다. 어제의 일이 트라우마로 남은 모양이었다. 윤이산은 망설임 없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나무통을 들고 시냇가로 향했다. 통을 깨끗이 헹궈 맑은 물을 가득 채운 그는 나무 그늘 아래 시원한 곳으로 통을 옮겨 놓았다. 통 가장자리에 그녀의 살결이 상하지 않게 부드러운 수피 가죽까지 덧대어 주는 세심함을 보였다.그 정성스러운 손길에 한여월의 마음이 조금 말랑해졌다. 그녀는 서둘러 제안했다.“고마워. 이렇게 하자. 앞으로 다섯 번 내가 씻을 물을 떠다 주면 피를 한 번 줄게. 어때?”당연히 기뻐할 줄 알았던 윤이산은 오히려 눈을 가늘게 뜨며 미간을 찌푸렸다. 기쁜 기색은커녕 묘하게 침울한 기운까지 감돌았다.‘대체 왜 저런 표정이지? 다섯 번이 너무 많나?'한여월은 급히 설명을 덧붙였다.
Read more
PREV
123
SCAN CODE TO READ ON APP
DMCA.com Protection Stat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