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깐의 침묵.하연은 눈을 아래로 내리깔았다. 책상 위의 먼지 한 알조차 바라보듯 말없이, 천천히.“..요즘 들어서 가끔 그런 생각이 들기는 해요.”하연의 목소리는 작았고, 어딘가 떨림이 묻어 있었다.“내가 당장 어른인 척은 하지만, 진짜 괜찮은 사람은 아닌 것 같은데..무슨 일을 잘할 수 있을까, 내가 뭘 좋아하는지도 잘 모르겠고....암튼, 복잡하고 미묘하네요.사춘기인가 봐요, 헤헤.아니, 애초에 이런 걱정이 없어져야 어른이 되는 건가?”그 말엔 명확한 결론이 없었다.지원조차도 감히 그 이야기의 끝은 이거야, 라고 말을 꺼낼 수는 없었다.이 아이의 삶이고, 이 아이가 걸어가야할 길이자, 이 아이가 내려야할 결정이니까.어쩌면 그게 이 밤의 진짜 풍경이었는지도 모른다.지원은 조용히, 하연 곁에 앉았다. 말 한마디 없이.“그래서.. 노트에 적어요. 그냥, 아무 말이라도.머릿속이 너무 복잡하면, 글자로라도 꺼내보면 나아질 것 같아서요.한 줄로 정리될 감정이면, 글자로 해부되서 바람에 날려 날아갈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조용한 방 안에, 두 사람의 숨소리만 가만가만 흘렀다.밖에서는 봄비가 내리고 있었다. 유리창을 스치는 빗방울 소리가 아주 부드럽게, 배경음처럼 이어졌다. 지원도 하연의 나이 때에 겪었던, 끝을 모르고 늘어만 가던 세상의 모든 질문들이 그렇게 비에 씻겨 내려갔듯이.“그 문장 말이야.”지원이 말했다.“네?”“‘나는 괜찮은 어른이 될 수 있을까?’라는 거.”하연은 대답하지 못했다.지원은 고개를 돌려, 하연의 옆모습을 조용히 바라보았다.“이미 괜찮은 사람이니까, 그런 고민을 하는 거겠지.”하연의 눈이 천천히 깜빡였다.“진짜 못된 사람은, 자기가 어떤 사람인지 고민조차 안 해.그냥 남 탓, 세상 탓하면서 대충 살지.아, 내가 이렇게 된 건 부모가 금수저가 아니라서 그런 거야.아, 내가 이렇게 사는 건 세상이 나를 억까해서야.아, 내가 이렇게 허송세월하며 시간만 축내는 건 절대 내 잘못이 아니야, 등
Última atualização : 2026-04-15 Ler mai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