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dos os capítulos de 시작은 언제나 무언가의 끝으로부터: Capítulo 11 - Capítulo 20

47 Capítulos

사진 II

지원이 깔끔한 셔츠와 재킷을 걸친 남편 옆에 조심스레 서 있었고, 그들의 앞 의자엔 중학생쯤 되어 보이는 하연이, 어색한 미소와 함께 앉아 있었다.하연은 무심결에 숨을 들이켰다.이제는 기억도 잘 나지 않는 그 시절의 표정이었다.지원은 옆에서 사진을 힐끔 보더니, 눈을 가늘게 뜨며 웃었다.“저거 기억나? 네 오빠 생일이었나? 우리가 처음 같이 사진 찍었던 날일 거야.”“그렇구나..”하연은 여전히 사진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그 속의 자신은 지금보다 훨씬 작았고, 마치 구겨진 교복처럼 어딘가 몸에 맞지 않는 옷을 입은 듯, 어색하고 불편해 보였다. 반면 지원은 지금보다 훨씬 말랐고, 정돈된 긴 머리 아래에서 억지로 짓는 미소를 얹고 있었다.한동안 그 사진만 바라보던 하연.“..지금에 와서야 할 수 있는 얘기인데, 솔직히 말하면 그땐 언니가 좀 무서웠어요.”“내가? 왜?”지원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예쁘고, 똑똑하고, 완벽해 보여서, 다 가진 사람 같아서, 오빠랑 같이 있어도 언니가 훨씬 더 어른스러워 보여서.나랑 오빠처럼 촌스러운 사람들이랑은 결이 달라보였거든요.”하연의 목소리는 낮고 조심스러웠다.마치 오래된 비밀을 털어놓는 아이처럼.지원은 고개를 천천히 저으며 웃었다.“그런 말, 당사자한테 직접 들으니까 되게 민망하네.”“근데 지금은 아니에요.”미간을 장난스레 찌푸리는 지원.“뭐? 지금은 안 예쁘고, 똑똑하지도 않고, 완벽해 보이지도 않다고?”“아니, 뭐..지금은 그냥.. 귀여운 언니예요. 아침에 찌푸린 얼굴로 입이 찢어져라 하품 내뱉으면서 눈 비비며 나오는.. 그런 사람.”하연이 살짝 웃으며 고개를 숙였다.지원은 머리를 쓸어 넘기며 쓴웃음을 지었다.“좋은 뜻으로 말하는 거 맞지?”“물론이죠.”그 말의 끝에는 지원과 하연의 웃음이 꼬리표처럼 달라붙었다.어느새, 조용했던 밤이 말랑하게 웃는 공기로 채워졌다.하연은 조심스럽게 가족사진을 상자에 다시 넣었다.그러다 바닥을 살피던 손끝이, 작은 봉투 하나를 집어 들었
last updateÚltima atualização : 2026-04-09
Ler mais

목욕탕 가는 날 I

집 안에서 이리저리 분주하게 움직이는 하연.지원은 코, 자고 있다.하연은 방에 들어왔다가, 나갔다가, 욕실로 들어갔다가, 나왔다가를 반복하다,결국 지원의 어깨를 잡고 흔들며 지원을 꿈나라에서 강제출국시켰다.“언니, 언니! 우리 오늘 목욕탕 갈래요? 아니다, 가자. 가자요. 빨리 빨리. 클렌징폼이랑.. 샴푸랑.. 어디 보자, 또 뭐더라? 수건이랑 드라이기는 거기 있는데.. 혹시 모르니까 일단 챙겨둘까요?”"음냐..""언니!"“..응? 갑자기?”일요일 아침. 창문 사이로 어슴푸레한 햇살이 새어 들어오고, 실내 공기는 아직 잠이 덜 깬 몸이 내뿜는 따뜻한 체온으로 가득했다. 이불 속에 턱을 파묻은 지원은 반쯤 감긴 눈꺼풀 사이로 하연을 바라봤다.분주하게 중얼거리며 다시 집안을 들쑤시고 다니는 하연은 이미 편한 옷차림으로 갈아입은지 오래였다. 밝은 회색 티셔츠에 트레이닝 바지, 머리는 질끈 묶은 채로, 발끝까지 활기가 차 있었다. 양 손에 클렌징폼과 샴푸, 때수건까지 챙긴 하연은, 전투 준비를 마친 병사처럼 당당하게 서서 말했다."목욕 바구니는 또 어디있더라..""왠 목욕탕..?"“이런, 이런.. 우리 언니가 뭘 모르시네. 원래 목욕탕이란 건 말이죠, 갑자기 훅 가는 게 제맛이에요. 때도 밀고, 사우나도 하고, 계란도 까먹고!”피식, 웃으며 잠긴 목소리로 하연을 지적하는 지원.“..솔직히 말해봐. 너 맥반석 계란 먹고 싶어서 그러는 거지?”지원은 이불을 턱 끝까지 끌어올린 채, 반쯤 감긴 눈으로 하연을 의심스럽게 흘겨봤다.에.. 하며 뒤통수를 긁적이는 하연.음.. 어.. 하며 변명을 생각하다가,“에이~ 설마 그러겠어요? 제가 애도 아니고?""너 애 맞거든?""아무튼! 그게 주 목적인 건 아니고.. 언니랑 오랜만에 같이 시간도 보내고, 욕탕에 몸 담근지도 오래라 갑자기 생각나서 가고 싶어서에요, 진짜. 완전 소녀 감성.”"목욕탕이 소녀감성이라..""요즘 소녀감성은 이래요."“흐음..”한숨과 함께 이불을 걷어내며 지원은 천천히
last updateÚltima atualização : 2026-04-10
Ler mais

목욕탕 가는 날 II

“언니.”“응?”“저랑 이런 데 같이 오는 거.. 혹시 싫진 않죠?”지원은 고개를 살짝 돌렸다.수증기에 살짝 젖은 하연의 눈동자가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웃고 있는 얼굴이었지만, 눈빛엔 어딘가 알 수 없는 망설임이 묻어나오고 있었다.“너무 들이대서 내가 부담스러웠으면, 이렇게까지는 같이 안 있었겠지. 안 그래요, 아가씨?”하연은 아무 말 없이 웃었다.입꼬리만 살짝 올라간, 그 특유의 표정.안심한 듯 보이지만, 어딘가 조금 쓸쓸해 보였다.하연은 탕에 머리 끝까지 담갔고,지원은 그런 하연을 바라봤다.*목욕을 마친 뒤, 둘은 노란색 수건으로 머리를 동그랗게 만 채 휴게실로 나왔다.몸은 후끈하고, 그 위로 에어컨에서 불어오는 찬 바람이 살짝 닿을 때의 느낌은 말로 다 하기 어려운 청량함이었다.바닥에 주저앉아 숨을 깊게 들이마시고, 내쉬는 지원.하연이 바리바리 양손에 한가득 무언가를 들고 지원에게 다가왔다.“언니, 이거 안 먹으면 목욕탕 온 거 아니에요. 인정?”하연은 종이봉투에서 구운 계란을 꺼내고, 그 옆에 식혜 두 병을 나란히 놓았다.노란 껍질의 계란, 미지근한 식혜.이 공간의 오래된 전통처럼 느껴지는 장면.“내가 알기로 예전부터 우리 둘 중 한 명은 꼭 껍질 잘 못 까고 깨뜨렸었는데..”“오늘은 안 그럴 거예요.”그러나,툭,“아.”계란의 껍질이 가운데서 갈라졌다.속이 조금 터져 나온 노른자가 손에 묻었다.“또 실패네..”하연이 살짝 풀이 죽은 얼굴로 계란을 바라봤고, 지원은 웃으며 깔끔하게 껍데기를 벗겨낸 자기 계란 하나를 건넸다.“자, 이건 네 거.""언니는요?""나는 네 거 먹으면 되지.”아니라고, 언니가 예쁜 거 먹으라며 좌우로 흔드는 손과 달리 하연의 입은 솔직했다.지원이 아, 하고 힘껏 벌린 하연의 입에 계란을 넣어줬다.하연은 오물오물, 빵빵한 볼살이 이리저리 씰룩였다.그 모습에 자기도 모르게 미소를 짓는 지원.꿀꺽, 계란을 삼키는 하연.그러다 불쑥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같이 사니
last updateÚltima atualização : 2026-04-11
Ler mais

깜짝 선물 I

월요일 밤,아파트 복도를 비추는 형광등은 싸늘하게 깜빡이고 있었다. 하루 종일 사무실 형광등 아래에서 다양한 각종 업무들과 서류들에게 시달렸던 지원에게는, 이 어슴푸레 빛나는 조명 역시 그다지 달갑게 다가오지 않았다. 특히 유난히 집요하게 지원을 물어대는 일과들에 일상에서 끄집어내려진, 오늘처럼 밤 11시까지 회사에 쳐박혀 커페를 물처럼 마셔대며 모니터 앞에서 시달리다 야근까지 하고 들어오는 길에는 더더욱.구두 걸음 걸음마다 피곤함의 자국을 찍어대며 현관 앞에 선 지원은 무거운 어깨를 한 번 으쓱이며, 한숨을 후, 내뱉고 익숙한 번호키를 눌렀다. 띠리릭, 소리와 함께 문이 열리고, 지원은 무의식적으로 중얼거렸다.“하연아, 언니 다녀왔..”그러나 말은 채 끝나지 않았다.현관 안이 어두웠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집 안 전체의 불이 꺼져 있었다. 집 안에서 들려오는 낯익은 온기와 냄새는 그대로였지만, 평소와 다른 이 정적이 지원을 멈칫하게 했다.“..하연아?”“네에!”거실 쪽에서 반가운 듯 들려오는 하연의 목소리는 경쾌했다. 하지만 그 목소리와는 다르게 집 안의 분위기는 묘하게 조용했다. 현관 센서등이 켜져, 희미한 불빛이 지원의 얼굴을 비췄다. 어둠에 익숙해진 눈으로 안쪽을 바라보며, 지원은 다시 물었다.“왜 불 꺼놨어? 혹시 전기 나갔어?”“아니에요! 전기는 잘 통하는데! 그냥.. 잠깐만요. 언니, 거기서부터 눈 감고 들어와 보세요.”“엥? 또 무슨 이상하고 생뚱맞은 짓을 하셨는지요, 우리 아가씨? 언니 오늘 피곤해서 죽을뻔 했는데?”지원은 피곤에 쩔은 목소리로 장난스레 투덜거렸지만, 그 속엔 숨길 수 없는, 어이없는 웃음이 섞여 있었다. 하연은 평소에도 장난기가 가득하다 못해 넘칠 정도기는 하지만, 별난 장난을 잘 치는 편은 아니었기에, 지원에겐 오히려 더욱 이상하게 느껴졌다.지원은 구두를 벗고 실내용 슬리퍼로 갈아 신은 뒤, 천천히 걸었다. 뒷꿈치에 남은 구두에 눌린 자국이 걸을 때마다 따끔했지만, 더 궁금한 건 거실에서 기다리
last updateÚltima atualização : 2026-04-12
Ler mais

깜짝 선물 II

글씨 하나하나에 하연의 성격이 묻어 있었다. 다듬어지지 않았고, 문장도 어설펐지만, 그 안엔 다정함과 조심스러움이 또렷하게 스며 있었다.[언니 오늘도 수고했어요.내일도 수고할 언니를 위해, 오늘 저녁은 제가 준비할게요.언니에 대해 내가 아는 만큼, 아직 모르는 것도 많다고 생각해요.그래도 언니니까, 우리니까,언니가 좋아하는 것도, 싫어하는 것도 천천히 알게 될 거고 잊지 않을 거예요.그러니까 너무 혼자 애쓰지 말아요.나도 조금만 있으면 어른이니까요.언젠가 언니가 나한테도 기댈 수 있는 날이 오면 좋겠어요.]종이를 덮은 지원의 손이 아주 잠깐 떨렸다. 눈썹이 살짝 찌푸려졌고, 입술이 움직이다 멈췄다. 지원은 고개를 들어 하연을 바라봤다.“.. 뭐야. 이런 걸 왜 이렇게 진지하게 써.”목소리는 낮고, 약간 웃고 있었지만, 어딘가 물기어린 채 가라앉는 울림이 있었다.“그냥.. 이런 거라도 해주고 싶었어요. 언니 고생하니까.”하연은 말없이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촛불빛에 그녀의 눈망울이 작게 흔들렸다.지원은 괜히 장난을 치듯 물었다.“이게 요즘 감성이야? 완전, 나 중학생 때 유행하던 감성같은데?”하연은 웃었다.“아뇨, 언니를 위한.. 저만의 감성이라서요.”그 말에 지원은 피식 웃으며 고개를 푹 숙였다.짧지만 깊은 웃음이었다.뭔가가 마음속에 스며들어 자리를 잡는 느낌.하연의 진심은 그렇게, 아주 조용하고 서툰 방식으로 지원의 마음 안에 성공적으로 안착했다.“고마워.”지원의 말은 낮고, 또렷했다.하연은 쑥스럽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장난스럽게 말했다.조심스레 포크로 케잌을 잘라 먹어보는 지원."음~""맛있어요?""최고야.""나 잘했죠?""응. 진짜로 응."“음.. 그 대신, 설거지는 언니가 해줘요. 저는 내일 아침 일찍 학교에 가야해서 이제 바로 자야됨. 한국 사상 최고의 벼슬이라는 고3이기에..”“이럴 때만 수험생이지? 아주 이럴 때만 수험생이야. 에휴, 5분짜리 감동이었네. 내 감동 돌려내!”“설거지하면서 생
last updateÚltima atualização : 2026-04-13
Ler mais

아무 말도 없던 I

금요일 저녁, 하루 종일 사무실에 갇혀 있었던 지원은 밤공기보다 더 무겁고 녹진한 피로를 이끌고 현관문을 열었다. 그러나 문턱을 넘자마자 반겨야 할 풍경은 어디에도 없었다. 현관 센서등이 깜빡이며 켜지는 순간, 적막이 또렷하게 느껴졌다.“하연아.”낮은 목소리가 허공에 부딪혔다.평소라면 지원의 물음에 당연시 따라오던 답은, 아니, 지원이 묻기도 전에 먼저 다가오던 말이 없었다."..하연아?"현관등 아래 가지런히 벗어놓은 운동화 한 켤레, 가지런히 접혀 있는 우산, 그리고 아직 꺼지지 않은 거실등. TV에선 일기예보의 파란 화면이 멈춘 채 소리 없이 잔잔히 흔들리고 있었다. 평소라면 “언니!” 하고 밝은 목소리로 달려와 품에 안길 아이였다. 그 특유의 환한 얼굴이, 오늘은 어디로 갔는지, 쥐구멍에라도 숨어 있는 것 같았다."아직 안왔나? 뭔놈의 학교가 이 시간까지 야자를 시켜. 수능 얼마나 남았다고. 컨디션 관리 이런 거 몰라?"구두를 벗고 실내용 슬리퍼를 신는 지원."여기 있나?"조심스레 닫힌 하연의 방 문을 열었다.하연은 이어폰을 끼고 책상 앞에 앉아 있었다. 등을 곧게 펴고, 모니터를 마주한 채 말없이 있었다. 노트북 화면은 하얀 여백만 가득했고, 마우스 커서가 느릿하게 깜빡이고 있었다. 손끝은 마우스 위를 톡톡, 천천히, 조심스럽게 두드리고 있었다. 바람도 들지 않는 방 안에서, 단 하나 움직이는 것은 그 새하얗고 섬세한, 예쁜 손가락뿐이었다.지원은 하연의 어깨를 콕콕, 찔렀다.“아.. 언니 왔어요?”그제야 고개를 돌리는 하연은 평소처럼 웃었다. 눈꼬리를 부드럽게 접으며.하지만, 그 웃음엔 왠지 모르게 힘이 빠져 있었다.지원에게도 느껴질 정도로 명확했다.하연은 그에 대해 말을 해야되나.. 하다 하연이도 이런 문제는 극복할 줄 알아야지, 하며 애써 모르는 척 넘겼다.“응. 근데 오늘따라 왜 이렇게 조용해? 학교에서 무슨 일 있었어? 아니면 공부하다가 좀 피곤했어?”“아뇨, 그냥.. 좀 졸렸어요. 언니 말대로 피곤했나봐요.”
last updateÚltima atualização : 2026-04-14
Ler mais

아무 말도 없던 II

잠깐의 침묵.하연은 눈을 아래로 내리깔았다. 책상 위의 먼지 한 알조차 바라보듯 말없이, 천천히.“..요즘 들어서 가끔 그런 생각이 들기는 해요.”하연의 목소리는 작았고, 어딘가 떨림이 묻어 있었다.“내가 당장 어른인 척은 하지만, 진짜 괜찮은 사람은 아닌 것 같은데..무슨 일을 잘할 수 있을까, 내가 뭘 좋아하는지도 잘 모르겠고....암튼, 복잡하고 미묘하네요.사춘기인가 봐요, 헤헤.아니, 애초에 이런 걱정이 없어져야 어른이 되는 건가?”그 말엔 명확한 결론이 없었다.지원조차도 감히 그 이야기의 끝은 이거야, 라고 말을 꺼낼 수는 없었다.이 아이의 삶이고, 이 아이가 걸어가야할 길이자, 이 아이가 내려야할 결정이니까.어쩌면 그게 이 밤의 진짜 풍경이었는지도 모른다.지원은 조용히, 하연 곁에 앉았다. 말 한마디 없이.“그래서.. 노트에 적어요. 그냥, 아무 말이라도.머릿속이 너무 복잡하면, 글자로라도 꺼내보면 나아질 것 같아서요.한 줄로 정리될 감정이면, 글자로 해부되서 바람에 날려 날아갈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조용한 방 안에, 두 사람의 숨소리만 가만가만 흘렀다.밖에서는 봄비가 내리고 있었다. 유리창을 스치는 빗방울 소리가 아주 부드럽게, 배경음처럼 이어졌다. 지원도 하연의 나이 때에 겪었던, 끝을 모르고 늘어만 가던 세상의 모든 질문들이 그렇게 비에 씻겨 내려갔듯이.“그 문장 말이야.”지원이 말했다.“네?”“‘나는 괜찮은 어른이 될 수 있을까?’라는 거.”하연은 대답하지 못했다.지원은 고개를 돌려, 하연의 옆모습을 조용히 바라보았다.“이미 괜찮은 사람이니까, 그런 고민을 하는 거겠지.”하연의 눈이 천천히 깜빡였다.“진짜 못된 사람은, 자기가 어떤 사람인지 고민조차 안 해.그냥 남 탓, 세상 탓하면서 대충 살지.아, 내가 이렇게 된 건 부모가 금수저가 아니라서 그런 거야.아, 내가 이렇게 사는 건 세상이 나를 억까해서야.아, 내가 이렇게 허송세월하며 시간만 축내는 건 절대 내 잘못이 아니야, 등
last updateÚltima atualização : 2026-04-15
Ler mais

프리지어 I

평생 이렇게 살 것 같던, 각자 눈코뜰새없이 바쁘던 평일들을 견디며 보내고, 일요일 오전.세상 평화로운 햇살은 미지근하게 투명한 창문 사이로 스며들어오고, 아파트 벽에 부딪혀 반사된 빛은 따뜻한 빛으로 거실 바닥을 부드러운 손길로 어루만졌다. 그런 느긋한 오전, 하연의 방에서는 아주 희미하고 일정한 숨소리가 새어 나왔다."흐응.."이리저리 이불 속에서 뒤척이는 소리.그에 더해 코를 고는 건지, 숨을 고르는 건지 모를 조용한 소리는, 오히려 방 안의 적막을 더 도드라지게 했다."..언니."지원은 이불 속에 몸을 반쯤 파묻은 채, 머리맡 베개를 들어 귀에 가져다 댔다. 주말 아침은 역시 늦잠이 국룰이라 생각하며 살아온 지원이기에, 지원의 눈꺼풀은 아직도 무거웠고, 공기 중엔 전날 밤 하연과 마주앉아 끓여먹은 라면 국물 냄새가 아직도 아주 미세하게 떠돌았다. 창문을 활짝 열고 환기나 시킬까 하다 행여 괜히 몸 움직여 지금, 완벽하게, 진하게 다가온 졸음이 달아날까, 그렇게 되면 엄청 귀찮을 것 같아서 관두었고, 그보다도 지금 그녀의 신경을 건드리는 건 바로 옆방, 하연의 낌새였다.“언니, 저 오늘 하루만 집중 좀 할게요!”잠결에 들려온 하연의 외침은 기이하게 또렷했고, 그 말끝의 다짐이 어딘가 평소와는 달랐다.쾅! 문을 닫는 소리가 이어서 들려왔다."으응..?응..알았어.."지원은 눈을 반쯤 뜬 채 중얼거렸다. 평소의 하연이라면 주말 아침부터 일찍 일어나 대청소부터 하고 이불도 털고, 바싹 구운 토스트 입에 물고서는 토스트 냄새 풍기며 온 집 안을 쏘다니는 하연일텐데, 오늘은 아예 방문까지도 쾅 닫은 채 책상 앞에만 앉아 있다. 그것도, 아무 말 없이.“..드디어 진정한 고3이 된 건가.. 대체 뭔데 저렇게 진지해.. 근데 너무 졸리..다..”얼굴의 반은 이불에 파묻히고, 나머지 반은 햇빛에 노출된 채 다시 눈이 감겨버린 지원은, 막 다시 꿈속으로 빠져들 찰나, 그 작고 이상한 낌새 하나에 눈을 떴다.조용하다. 너무 조용하다."..
last updateÚltima atualização : 2026-04-16
Ler mais

프리지어 II

그런데 한 시간쯤 흘렀을까.지원은 하연도 모르게 어느새 슬그머니 외출 준비를 마쳤다. 트레이닝복에 후줄근한 반묶음 머리, 대충 바른 립밤. 그런 모습에, 하연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자기 방, 노트북에 열중하며 앉아 있었으니까.에코백 안엔 지갑과 핸드폰, 그리고 작년 생일에 친구에게 받았던 스타벅스 상품권이 들어 있었다. 별 거 아닌 것처럼 보이지만, 그 모든 조각들이 마치 퍼즐처럼 하나하나 맞춰져 가는 기분이 들었다."이 언니가 응원 정도는 할 수 있는 거니까. 암, 그렇고 말고."먼저 간 곳은 동네 작은 문구점.벽 한쪽에 가득 매달린 엽서들과 손편지 카드들 사이에서, 지원은 몇 분이고 서성였다. ‘할 수 있어’, ‘화이팅’, ‘네 꿈을 응원해’ 같은 흔한 말들. 하지만 그녀가 고른 건 그 모든 응원 중에서도 아주 조심스러운 문장 하나.‘단지 너라서 괜찮은 거야. 그냥 너라서!’하연에게 해주고 싶었던 말이었다.다음으로 간 곳은 마트. 과자들이 즐비한 코너에서, 하연이 시험 때마다 손에서 놓지 않았던 브랜드 초콜릿을 두 개 집어 들었다. 작고, 네모난, 쌉싸름한 맛이 특징인 초콜릿으로.“우리 아가씨가 이거 좋아하니까..”지원은 혼잣말처럼 중얼이며, 두 개를 손에 꼭 쥐었다.마지막으로는, 동네 골목 끝에 있는 작은 꽃집. 유리문을 열자, 부드러운 흙냄새와 꽃들의 향이 섞여 코끝을 간질였다."어서오세요~""네..""어떤 용도로 사용하시려는지 여쭤봐도 될까요? 집에서 키우시려는지, 아니면 선물하시려구요?"점원의 질문에 지원은 고개를 끄덕였다."음.. 선물은 맞긴 한데, 받는 사람이 너무 부담스럽지는 않는, 그런 꽃 없을까요?"그 말에, 점원은 살짝 미소 지으며 고개를 갸웃하다가, 유리 화병 속에서 노란 프리지어 한 송이를 꺼냈다. 향이 진하지 않고, 작고 소박한 그 꽃. 하지만 햇살을 머금은 것처럼 생기 넘치는 노란색."프리지어인데요, 꽃말 중의 하나가 새 출발을 응원합니다에요. 어떤 일을 하던, 어떤 일을 겪었던, 언제든 새롭
last updateÚltima atualização : 2026-04-17
Ler mais

봄날은 바람을 타고 I

토요일 아침.희미한 햇살이 커튼 사이로 스며들며 방 안에 부드러운 금빛을 제멋대로 흩뿌리고 있었다. 창문 틈새로 들어오는 봄바람은 아직 마음 속에서 겨울을 오롯이 보내지는 못했다는듯 아직까지는 살짝 싸늘하기는 했지만, 오히려 그렇기에 닿는 온도가 묘하게 기분 좋은 감촉이었다. 이불 속에서 꿈틀거리던 하연은 평소보다 훨씬 빨리 눈을 떴다. 아직 맞춰놓은 알람이 울리기도 전이었다.눈꺼풀 사이로 들어오는 빛이 너무 따사로워서, 눈을 찌푸리며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기지개를 켜며 커튼을 젖히자, 바깥 풍경이 한눈에 들어왔다.이제 드디어 봄이었다.진짜 완연한 봄.나무의 가지,가지마다 어리고 여린 연두빛 이파리가 자라나며 올라오고 있었고, 바람에 꽃잎들이 분홍빛 눈처럼 소복소복 날리고 있었다. 그 모습은 마치 먼지처럼, 그러나 반짝이는 겨울의 눈송이처럼도 보였다. 하연의 눈에는 세상이 한층 맑고 투명해진 듯했다."헤헤.."무슨 이유 때문인지는 알 수 없지만, 하연은 괜히 웃음이 났다. 하지만 어쩌면 그 이유는, 이미 마음속에선 다 알고 있었는지도 모른다.봄이란 자고로 설렘의 계절인 법이니까.*거실로 나와보니, 부엌에서 익숙한 바스락거림이 들렸다. 거기에 더해지는 고소한 냄새까지.지원이 단정히 앞치마를 입고 조용히 김밥을 말고 있었다. 머리는 아무렇게나 묶여 있었고, 앞치마 위로 살짝 흘러내리는 머리카락이 잔잔하게 흔들렸다. 햇살 속에 비치는 지원의 옆모습은 이상하리만치 고요하고 따뜻했다.“언니?”지원이 돌아봤다. 그녀의 눈매는 피곤해 보이면서도 묘하게 부드러웠다. 그러나 입을 쩍, 벌리고 하품을 하는 모습으로 보아 지원도 일어난 지 그렇게 오래 지나지는 않은 것 같았다.“응? 우리 아가씨, 왜 이렇게 일찍 일어났어?”“왠 김밥..? 이게 다 뭐예요?”“소풍 가자며. 네가 지난주부터 그렇게 노래를 불렀잖아.”하연은 순간 걸음을 멈췄다.내가 그랬었나? 음.. 아!기억났다. 지원의 말대로였다. 지난주, 한 주 내내 하연은 지원의 귀에 못이
last updateÚltima atualização : 2026-04-18
Ler mais
ANTERIOR
12345
ESCANEIE O CÓDIGO PARA LER NO APP
DMCA.com Protection Stat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