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집 안에서 이리저리 분주하게 움직이는 하연.지원은 코, 자고 있다.하연은 방에 들어왔다가, 나갔다가, 욕실로 들어갔다가, 나왔다가를 반복하다,결국 지원의 어깨를 잡고 흔들며 지원을 꿈나라에서 강제출국시켰다.“언니, 언니! 우리 오늘 목욕탕 갈래요? 아니다, 가자. 가자요. 빨리 빨리. 클렌징폼이랑.. 샴푸랑.. 어디 보자, 또 뭐더라? 수건이랑 드라이기는 거기 있는데.. 혹시 모르니까 일단 챙겨둘까요?”"음냐..""언니!"“..응? 갑자기?”일요일 아침. 창문 사이로 어슴푸레한 햇살이 새어 들어오고, 실내 공기는 아직 잠이 덜 깬 몸이 내뿜는 따뜻한 체온으로 가득했다. 이불 속에 턱을 파묻은 지원은 반쯤 감긴 눈꺼풀 사이로 하연을 바라봤다.분주하게 중얼거리며 다시 집안을 들쑤시고 다니는 하연은 이미 편한 옷차림으로 갈아입은지 오래였다. 밝은 회색 티셔츠에 트레이닝 바지, 머리는 질끈 묶은 채로, 발끝까지 활기가 차 있었다. 양 손에 클렌징폼과 샴푸, 때수건까지 챙긴 하연은, 전투 준비를 마친 병사처럼 당당하게 서서 말했다."목욕 바구니는 또 어디있더라..""왠 목욕탕..?"“이런, 이런.. 우리 언니가 뭘 모르시네. 원래 목욕탕이란 건 말이죠, 갑자기 훅 가는 게 제맛이에요. 때도 밀고, 사우나도 하고, 계란도 까먹고!”피식, 웃으며 잠긴 목소리로 하연을 지적하는 지원.“..솔직히 말해봐. 너 맥반석 계란 먹고 싶어서 그러는 거지?”지원은 이불을 턱 끝까지 끌어올린 채, 반쯤 감긴 눈으로 하연을 의심스럽게 흘겨봤다.에.. 하며 뒤통수를 긁적이는 하연.음.. 어.. 하며 변명을 생각하다가,“에이~ 설마 그러겠어요? 제가 애도 아니고?""너 애 맞거든?""아무튼! 그게 주 목적인 건 아니고.. 언니랑 오랜만에 같이 시간도 보내고, 욕탕에 몸 담근지도 오래라 갑자기 생각나서 가고 싶어서에요, 진짜. 완전 소녀 감성.”"목욕탕이 소녀감성이라..""요즘 소녀감성은 이래요."“흐음..”한숨과 함께 이불을 걷어내며 지원은 천천히
지원이 깔끔한 셔츠와 재킷을 걸친 남편 옆에 조심스레 서 있었고, 그들의 앞 의자엔 중학생쯤 되어 보이는 하연이, 어색한 미소와 함께 앉아 있었다.하연은 무심결에 숨을 들이켰다.이제는 기억도 잘 나지 않는 그 시절의 표정이었다.지원은 옆에서 사진을 힐끔 보더니, 눈을 가늘게 뜨며 웃었다.“저거 기억나? 네 오빠 생일이었나? 우리가 처음 같이 사진 찍었던 날일 거야.”“그렇구나..”하연은 여전히 사진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그 속의 자신은 지금보다 훨씬 작았고, 마치 구겨진 교복처럼 어딘가 몸에 맞지 않는 옷을 입은 듯, 어색하고 불편해 보였다. 반면 지원은 지금보다 훨씬 말랐고, 정돈된 긴 머리 아래에서 억지로 짓는 미소를 얹고 있었다.한동안 그 사진만 바라보던 하연.“..지금에 와서야 할 수 있는 얘기인데, 솔직히 말하면 그땐 언니가 좀 무서웠어요.”“내가? 왜?”지원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예쁘고, 똑똑하고, 완벽해 보여서, 다 가진 사람 같아서, 오빠랑 같이 있어도 언니가 훨씬 더 어른스러워 보여서.나랑 오빠처럼 촌스러운 사람들이랑은 결이 달라보였거든요.”하연의 목소리는 낮고 조심스러웠다.마치 오래된 비밀을 털어놓는 아이처럼.지원은 고개를 천천히 저으며 웃었다.“그런 말, 당사자한테 직접 들으니까 되게 민망하네.”“근데 지금은 아니에요.”미간을 장난스레 찌푸리는 지원.“뭐? 지금은 안 예쁘고, 똑똑하지도 않고, 완벽해 보이지도 않다고?”“아니, 뭐..지금은 그냥.. 귀여운 언니예요. 아침에 찌푸린 얼굴로 입이 찢어져라 하품 내뱉으면서 눈 비비며 나오는.. 그런 사람.”하연이 살짝 웃으며 고개를 숙였다.지원은 머리를 쓸어 넘기며 쓴웃음을 지었다.“좋은 뜻으로 말하는 거 맞지?”“물론이죠.”그 말의 끝에는 지원과 하연의 웃음이 꼬리표처럼 달라붙었다.어느새, 조용했던 밤이 말랑하게 웃는 공기로 채워졌다.하연은 조심스럽게 가족사진을 상자에 다시 넣었다.그러다 바닥을 살피던 손끝이, 작은 봉투 하나를 집어 들었
난장판이 된 하연의 방.옷가지, 이불, 베개들로 이루어진 자그마한 폭풍.그 어지러운 폭풍 한가운데에서, 나른한 향기 폴폴 풍겨대는 것들 사이에 자리잡고 앉아 팔짱을 낀 채 골똘히 생각에 잠겨있는 하연."내가.. 남는 베갯잇을 어디다가 뒀더라.."무릎으로 기어다니며 다시 한 번,방 안 구석구석 서랍 하나까지 뒤져보는 하연."이씨.. 베갯잇에 다리라도 달린거야, 뭐야.야, 이 정도면 눈치껏 나와라, 내가 작정하고 찾아야겠니? 넌 나한테 들키면 죽어, 그니까 빨리 순순히 자수하도록."베겟잇 세탁할 때가 되서 세탁기에 던져놓고,하얀 속베개에, 그 전에 미리 세탁해놓은 새 베갯잇을 씌우려고 하는데 그게 보이지 않았다.하연은 난장판이 된 방 한가운데에서 골똘히 생각에 집중하는데,"..방 안에 없나? 세탁기에 있나? 언니가 나 몰래 세탁기 돌렸나? 내 베갯잇만? 나 골탕먹이려고?!..그건 아니겠지. 그럼 어디있는거야 대체.."고개를 갸웃거리며 어질러진 방 안을 다시 정리하는 하연.팽개친 옷들을 다시 개고, 이불을 집어넣고, 베개들을 깔끔하게 털고 방 안을 정돈한다.태풍 속 같던 방 안이 다시 한 번 평화로운 밀밭처럼 깔끔히 잠잠해졌다."그래, 니가 이기나, 내가 이기나 한 번 해보자. 나한테도 필살기가 있다는 말씀.."하연의 필살기란 바로.."언니! 내꺼 베갯잇 못봤어요?"거실에서 들려오는 지원의 목소리."음.. 글쎄?아, 그거 저번에 빨래 갤 때 너껀 너가 정리한다고 방에 가져가지 않았어?""맞아요! 근데 방에 없어요!""내가 찾으면 너 큰일난다, 아주.""히잉."시무룩한 얼굴로 자기 방에서 나와 지원의 옆, 거실 소파에 털썩 쓰러지는 하연."빨래 갤 때던, 빨래 갠 거 가져갈 때던, 늘 두던 자리에 두라고 했지.""언니는 모르는 저만의 기분 전환 인테리어 방식이라구요.""그걸 다른 말로 하면 아무데나 쑤셔박는다고 하지, 아마?"뾰루퉁, 입술을 내밀며 쳇, 하는 하연."베개 빌려줘?""...""베개 없이 자면 불
장보기가 끝난 후, 둘은 마트 근처 벤치에 앉았다.커다란 장바구니는 발밑에 두었고, 아이스크림 하나씩 들고 나란히 어깨를 맞대고 있는 모습은 꼭 오래된 친구처럼도 보였다."겨울에 아이스크림이라니.""원래 아이스크림은 겨울이 제철인 법이에요."하연은 장바구니를 슬쩍 발끝으로 찼다."왜 가만 있는 장바구니한테 시비 걸어."“발 심심해서요.그나저나 진짜 같이 살면 이런 느낌일까..”“우리 지금 같이 살고 있는데?”“아니, 그냥.. 더 오래. 진짜 가족처럼.”지원은 아이스크림을 한입 베어 물며 고개를 갸웃했다.“지금도 충분히 가족 같은데.”문득 불어오는 바람에 부르르, 떠는 하연.지원은 아이스크림을 입에 물고 하연의 패딩 지퍼를 목끝까지 올려준다."그니까 뭔 아이스크림이야.""원래 아이스크림은 추울 때 먹는 거에요.""..그건 그거고, 우리 가족 맞잖아. 같이 살고, 같이 먹고."“..그렇죠. 근데, 언니가 말하는 가족이 뭔지 저는 잘 모르겠어요.”“사실 나도 잘 몰라.”지원은 웃었다.아이스크림이 살짝 녹아내렸다.하연이 그것을 보고 주머니에서 티슈를 꺼내 주며, 무심히 말했다.“그래도 좋기는 좋아요. 명확한 이름 없이도 둘이 있을 수 있어서.”지원은 조용히 하연을 바라봤다.바람에 머리카락이 흩날렸고, 하연의 귓가는 조금 붉었다.아이처럼, 혹은 어른처럼도 보이는 하연은,그 중간 어디쯤에서 애매하게 서 있는 사람 같았다.*집으로 돌아와, 냉장고에 장 본 물건들을 정리해 넣고, 둘이 함께 소파에 앉아 티비를 보며 시간을 보내다보니 어느새 해가 기울고 있었다.시계를 잠시 쳐다보고는 지원이 하연에게 물었다.“저녁은 뭐 먹고 싶어?”“음.. 언니가 해주는 거라면 아무거나 다 좋아요.”“세상에서 그 말이 제일 무책임한 거야, 알아?아무거나만큼 무서운 대답은 없을걸.”“그러면.. 고등어 샀잖아요. 고등어 구워먹어요.”지원은 한숨을 쉬며 고개를 끄덕였다.“그래, 고등어 구워줄게. 그 대신 너가 설거지 해.”입술을 삐
평화로운 토요일 아침, 일주일 중 유이하게 알람이 울리지 않는 날. 언제나 소란스러운 집안이 조용하다.침대 위엔 곤히 자고있는 지원이 보인다.한줄기 햇빛이 서서히 기울어지다 지원의 감긴 두 눈위에 드러눕는다.움찔거리는 지원의 눈꺼풀.고개를 몇번이고 까딱거리다가 결국,"으으!"이불 속에서 온몸을 비틀며 기지개를 켜는 지원.잠에서 깨어나고도 베개 위에 얼굴을 묻은 채 한참을 뒹굴거리다, 손을 뻗어 침대 위를 더듬거리더니 잡힌 휴대폰을 켜고 시간을 확인한다.10시 37분.멀거니 앉아 창밖을 바라보는 지원.햇빛은 여전히 커튼 사이로 비집고 들어오고, 창문 너머에선 고양이 한 마리가 담벼락 위를 느긋하게 걷고 있었다.가던 걸음을 멈추고 지원쪽을 바라보는 고양이.지원이 손을 흔들자 흥, 하고 고개를 돌리더니 사라진다.지원도 흥, 하고 고개를 돌린다."새침하긴. 지가 고양이야, 뭐야."방 밖은 조용했다.하연이는 아직 자고 있나, 싶었지만, 싱크대 쪽에서 작게 물 흐르는 소리가 들렸다.“..하연아?”잠긴 목소리.지원은 입이 찢어져라, 하품을 하며 반쯤 부은 얼굴로 거실로 나섰다.그러자 어디서 났는지도 모를 머리띠를 이마에 질끈 묶은 하연이, 앞치마를 두르고 식탁 위를 행주로 박박 닦고 있었다.이마에 맺힌 땀을 닦고 휴, 하며 한숨을 내뱉는 하연의 눈에 잠에서 덜 깨보이는 듯한 지원이 보였다.“어? 언니 일어났어요?..상태가 어째.. 아직 제대로 일어나진 않은 것 같긴 한데, 아무튼.”다시 길게 하품을 뱉는 지원.“..너 무슨 행사라도 있어? 우리 집에서 오늘 뭐 하나? 파티? 미드에서 나오는 것처럼?왜 그렇게 아침부터 온 집 안을 때 빼고 광내시는지 물어봐도 되나?”“할 거 없는 주말엔 역시 대청소죠. 옛날에 오빠가 맨날 그랬거든요. 쉬는 날에 집 안 정리라도 좀 하라고.”“..그래, 그랬었지.”다시 하품을 하는 지원을 보고 하연은,“언니 아직 피곤해보이는데 좀 더 자요.”지원은 하연의 말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하연의 약간 타긴 했지만 정성이 가득 담긴 밥상이 거실 식탁 위에 펼쳐졌다.계란프라이, 간장 두른 참치김치볶음, 애호박볶음, 그리고 진한 된장국.“오, 생각보다 비주얼은 나름 괜찮은데?”“‘생각보다’는 좀 빼주시죠. 뭔 생각을 하셨길래 그런 말이 나오시나요..”지원은 젓가락을 들었다.애호박볶음를 한 젓갈 집어먹어보고, 숟가락을 들어 된장국을 한 숟갈 떠먹어봤다.소금기가 살짝 강했지만, 왠지 그런 게 더 좋았다.하연의 어설픈 진심과 노력이 식사에 그대로 담겨 있는 듯해서.“맛있어.”“진짜요?”“응. 진짜 맛있어, 하연아.”그 말을 듣고나서야 하연도 천천히 숟가락을 들었다.그 순간, 둘은 동시에 조용히 웃었다.지원은 아무 말 없었지만, ‘고마워’라는 말이 눈빛에 그대로 담겨 있었다.그저 묵묵히 하연이 차려준 밥상을 맛있게 먹을 뿐.*그날 밤, 둘은 동네 카페에 앉아있었다.지원은 창가 쪽, 하연은 맞은편.아이스 아메리카노와 라떼 사이에 놓인 건, 아마도 정적일테지만 그리 기분 나쁜 느낌은 아니었다.빨대로 라떼를 빙글빙글 돌리다, 얼음을 콕콕 찔러대던 하연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언니는.. 사람들이 오해하는 거, 진짜 싫어요?”눈을 감고 흘러나오는 노래에 맞춰 손끝을 탁자 위에 탁탁 두드리던 지원이 고개를 들어 하연과 눈을 마주쳤다. 의아한 얼굴.“무슨 오해?”“그러니까.. 우리 사이요.우리가 평범한 사이는 아니잖아요.전 새언니와 전 시누이가 단둘이 같이 사는게..조금, 아니, 조금 많이, 이상하잖아요.”지원은 잠시 생각하다, 커피잔을 내려놓으며 말했다.“흠.. 뭐, 남들이 보기엔 이상할법도 하지.그런데 어쩌겠어.우리 둘이라는 새로운 가족 형태가 이렇게 버젓이 세상에 존재하는걸.물론 당연히 오해라면 싫지. 근데 오해가 아니라 착각이라면 좀 다를지도 몰라.”“착각?”“응. 착각은 아무것도 모르면서 자기 말이 맞다고 스스로 믿는 거잖아. 오해는 타인이 하니까 억울하고,그런데 착각은 본인이 지 마음대로 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