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충 캐리어의 짐을 정리해두고 숙소를 나섰을 때, 해는 아직 중천이었다.둘은 작은 골목을 지나 마을 앞 바닷가로 향했다. 모래사장은 비어 있었다.제법 넓은 백사장 위엔 갈매기 몇 마리만 어슬렁거렸고, 해안가엔 물이 조금씩 빠지며 작은 물길을 만들어내고 있었다.하연은 헐레벌떡 운동화의 끈을 풀더니, 운동화도 양말도 벗어던지고 그대로 달려가 맨발로 파도에 발끝을 담갔다.“으아! 차가워!”몸을 움찔이며 껑충 뛰어오르듯 물러나는 모습에, 지원은 웃음을 터뜨렸다.“바보, 5월 바다가 따뜻할 줄 알았어?”“아니, 그냥.. 드라마에서 많이 나왔잖아요. 막, 뛰어다니면서 나 잡아 봐라, 이런 거나 물 끼얹으면서 꺄악! 하는 거.”"걔네는 차가운 거 참았나보지, 뭐.""..드라마는 역시 드라마로 봐야 하나. 어른이 되는 과정이란 이렇게 씁쓸한 것인가..""뭐래."하연이 어깨를 으쓱이며 바다 쪽으로 눈을 돌렸다.수평선 가까이에 작은 고깃배 하나가 떠 있었고, 그 위로는 부서지듯 잔물결이 일었다.지원은 말없이 하연을 바라보았다.한참을. 조용히.하연이 키득대며 지원의 곁에 섰다.그리고, 조심스럽게 물었다.언제부턴가 생긴 자그마한 의문을.“..하연아.”“응? 왜요?”“너.. 혹시, 나 때문에 뭐, 망설이는 거 있어?고민이라던가.. 그런 거.언제부터인진 모르겠는데 너가 나 쳐다볼 때, 예전이랑은 조금 달라진 것 같아서. 맨날 뭐 말하려는 것처럼 입 열다가 다시 닫고.”하연은 잠시동안 지원에게로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 그저 앞만 바라봤다.그렇게 무언가를 한참 생각하는 듯 하더니,바다를 바라보는 채로, 발끝으로 모래를 파다가, 조용히 고개를 저었다.“아니, 나는 오히려.. 언니가 나랑 있어서 망설이는 게 걱정이었어요. 이직 일도 그렇고. 내가 없었으면 고민도 안하고 갔을텐데...오빠 죽고나서, 남겨진 짐덩이처럼 내가 괜히 자유로워진 언니 발목을 잡고있는 건 아닌가, 하고. 언니도 남들처럼 데이트도 하고, 헌팅도 당하고, 뭐, 그런 거 있잖
Última atualização : 2026-04-27 Ler mai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