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남편이자 오빠가 갑작스레 죽고 고아였던 새언니와 시누이는 갈데가 없다 둘이서 살게 되며 벌어지는 로맨틱 GL 코미디 월 화 수 목 금 • 평일 연재
View More고아.
흔히 길거리 나다니는 사람들 중 아무나 골라도 있을, 남들 다 있는 부모, 형제따위 없이 세상에 홀로 남겨진 사람. 그러니 제게 다가오는 사람이 소중하고, 제게서 떠나가는 사람이 한없이 밉다. 고아인 지원이 마찬가지로 고아인 남편에게 옆자리를, 품을 내준 것은 어쩌면 그로 인해 촉발된 자기위로였을지도 모르겠다. 외로웠고, 괴로웠으니까. 외로웠을 것이고, 괴로웠을 것임을 지원은 가슴이 찢어져라 공감했으니까. 처음에는 아무리 밀어내고 냈지만은 남편은 다가왔고, 지원이 남편에게 밉고 나쁜 말들을 뱉어도 남편은 지원의 곁을 떠나지 않았다. 언제나 웃으며 옆을 지켰다. 어느 순간 그게 익숙해진 자신을 깨달았던건, 축복이었을까, 저주였을까. '이 사람이라면 괜찮을지도 몰라.' 그렇게 남편과의 결혼을 받아들인 지원. 세상이 주는 밝은 빛이라는 것은 언제나 수명이 얼마 남지 않은 전구 하나일 뿐이라는걸, 그때의 지원은 몰랐다. 결혼식을 올린지 얼마 되지도 않아 남편은 차에 치여 허무하게도 하늘나라로 떠나버렸고, 홀로 남겨진 지원은 멀거니 남편의 영정 사진만 바라볼 뿐이었다. "훌쩍.. 훌쩍.. 오빠.." 지원의 옆자리에서 하염없이 눈물만 흘리는 아이. 남편의 유일한 피붙이인 남편의 여동생, 하연. 갓 중학생이 되어 살짝 큰 교복을 입은 하연은 장례식 내내 그저 하염없이 흐르는 눈물을 닦지도 못하고 울기만 하였다. 지원과 같은 완벽한 고아. 그것이 하연이었다. '이 아이는 이제 어떻게 되는 걸까.' 지원은 어른이니 혼자라고 해도 어떻게든 버텨내며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다시 혼자가 되는 것에 적응 못할 것 같지도 않았다. 모든 장례식이 끝나고, 납골당 한켠에 남편이 본인만의 공간을 마련한 후, 남편과 하연이 고통스럽게 삶을 이어갈 때에는 아무런 도움도, 말 한 마디도 건네지 않은 처음보는 남편의 친척이란 이들의 쑥덕거림이 지원의 귀에 스며들어왔다. "..그나저나 하연이는 어쩌지?" "난 못 데리고 살아. 애들만 셋인데 우리 먹고 살기도 빠듯하다고." "누구는 안 빠듯해? 차라리 그냥 고아원으로.." 그 옆, 복도 벽에 걸터앉은, 두 눈이 새빨개진 하연은 그 말을 모두 듣고 있다는 걸 모르는 듯이. 아니, 어쩌면 다 알면서도. 그 모양새에 눈을 질끈 감았다가 뜨는 지원. 터덜터덜 모여있는 그들에게로 걸어가 "내가 책임질 거에요." 놀라는 남편의 친척들. 그러나 한편으로는 그 얼굴에서 역겨운, 짐 하나 덜어냈다는 기쁨이 얼핏 보인다. 그게 지원에게는 더할 나위 없는 구역질을 자아내게 했지만, 지원은 이를 악 물고 참아냈다. "그러니까 평소에 그랬던 것처럼 우리한테 간섭하지 말고 살아요. 이제와서 가족행세라도 할 생각 말고." 지원이 하연에게 다가가, 하연의 신발을 신겨주며 "아가씨. 저랑 가요." 지원은 자리를 박차고 납골당을 떠난다. 작고 말랑한 하연의 손을 단단히 잡고. * 그리고 지금. "언니! 하얀색 양말 못봤어요?" "거기 서랍에 있겠지~" "없는데?" 서랍을 구석구석 들쑤시느라 난장판이 된 방. 지원은 앞치마를 입고, 한 손에 뒤집개를 든 채로 하연의 방으로 들어온다. 능숙하게 장롱 속에 손을 집어넣고 양말을 꺼내 건네주는 지원. "이게 양말이 아니면 뭘까~?" "헤헤.." 머쓱하게 웃어보이는 하연. 지원은 그런 하연을 보며 피식, 웃고는 "밥 다 됐으니까 먹으러 와. 일주일 연속 지각하는 고3이 어딨어?" 하연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엉클어버리는 지원. "아, 쫌!" "빨리와!" 지원은 하연의 방을 나간다. 혼자 남은 하연. 엉클어진 머리를 다시 정돈하다가, 지원이 그랬던 것처럼 자기 머리카락을 쓰다듬어본다. "헤.." 얼굴이 새빨갛게 물드는 하연. 고3 하연은 남몰래 연분홍빛 짝사랑을 하는 중이다. 새언니를. * 식사를 끝마친 후, 설거지를 하는 지원과 신발장에서 신발을 신고있는 하연. "언니, 나 갔다올게요!" 부엌에서 들려오는 지원의 목소리. "어, 잘 갔다와~" 하연은 마음에 들지 않는 듯 미간을 찌푸리며, 삐딱하게 짝다리를 짚은 채 발 밑창을 탁탁 턴다. "언니! 나 갔다온다고요!" 그제야 고무장갑을 벗지도 못하고 하연에게 다가가는 지원. 하연은 어리광부리듯 두 팔을 활짝 벌리고 지원은 그런 하연을 꼬옥 안아준다. "어이구.. 가서 선생님 말씀 잘 듣고, 차 조심하고, 사람 조심하고, 친구들이랑 싸우지말고, 또.." "뭔.. 내가 애도 아니고." "애 맞거든." 그때, 하연은 그제야 만족한듯 지원의 품에서 빠져나와 현관문을 연다. "갔다올게요!" 팔짱을 낀채 피식, 웃다가 손을 흔들어주는 지원. 하연은 발개진 얼굴로 마주 손을 흔들다 훽, 가버린다. 지원은 한동안 현관에 우두커니 서서 닫힌 현관문을 바라본다. "참.. 그 울보 꼬마가 언제 저렇게 커서는. 그나저나 얼굴은 왤케 빨갛지? 감기라도 걸렸나? 이따가 감기약이라도 사놔야겠네." 다시 설거지를 하러가는 지원이다. * "여." "하이." 건조한 대화를 나누는 둘. 하연과 그녀의 친구 시원이다. 둘은 한동안 말없이 길을 걷다가, 시원이 장난기 가득한 얼굴로 하연의 겨드랑이를 간지럽힌다. "푸핫! 왜 또 난리야!" 서로를 마주보며 깔깔대며 웃는 둘. "표정 봐, 개웃겨!" 하연은 후다닥 도망가듯 뛰어가고, 시원은 그런 하연을 붙잡아 억지로 팔짱을 낀다. "아, 쫌!" "왜 이래, 우리 사이에~" 넉살좋게 밀어붙이는 시원에게 어쩔 수 없다는 듯 웃어보이는 하연이다. "숙제는 했냐?" "어허, 고3한테 뭔 숙제야. 고3에게 숙제란 있어도 없는 것!" "아니, 진짜라니까? 어제 윤리 때 선생님이 수험생은 숙제 안한다는 게 오히려 더 이상한 생각이라고.. 아.. 너 퍼잤구나." 진지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는 시원. 하연의 어깨에 머리를 기대며 "넌 오늘 죽었다. 내가 바로 꼬댈거야." 어깨를 들썩이는 하연. 하연의 어깨에 얼굴을 부딪힌 시원의 표정이 일그러진다. "아, 뼈 맞았어." "축하해." 그런데도 여전히 하연에게 엉겨붙는 시원이다. 그렇게 장난치며 걷다보니 어느새 도착한 학교. 교실에 들어가자마자 바로 이어폰을 끼고 책상에 엎어지는 하연. "나 잔다. 깨우면 조질거임. 딴 애들이 깨워도 너만 조짐." 시원은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참.. 이런 년이 어떻게 입학할 때부터 시험 볼 때마다 전교에서 손가락 안에 드는지 몰라. 야, 솔직히 말해봐. 너 컨닝.." 시원의 말을 끊으며 중지를 들어올리는 하연. "입 다무시고." 하연의 쿨한 말에 에휴, 한숨만 내뱉는 시원. "잘 자라." "..." "벌써 자냐?" 답 없는 하연의 뒷통수에 시원은 주먹을 쥐었다가 만다. 곧이어 교실로 들어오는 선생님. "자, 자! 다들 왔니?" "네.." 맥빠진 소리로 대답하는 아이들. 선생님은 그 소리들이 마음에 들지 않는 듯 교탁을 탁! 탁! 친다. "자, 왜들 이렇게 힘이 없어! 이제 수능 얼마 안 남은 거 알지? 자는 애들 좀 옆에 애들이 깨워줘라, 좀. 저거, 대놓고 자는 애 누구니, 저거!" 하연을 향하는 선생님의 손가락. 시원은 대신 대답한다. "하연인데요, 오늘 아프대요." 한숨을 내뱉는 선생님. "쟤는 뭐, 맨날.. 아니다. 하연이 아프면 보건실 갔다 오라고 그래. 알았지, 시원아?" 고개를 끄덕이며 눈썹 끝에 붙여 손 붙여 경례를 하는 시원. "넵! 알겠습니다!" "그래, 다들 조금만 더 참자. 수능만 끝나면 너네 하고 싶은 거 다 해도 되니까, 응? 알았지?" "네~" 선생님은 그렇게 교실을 나선다. 잠시들 수근거리다가 이내 다시 자기들 공부하는 것들에 몰두하는 학생들. "나도 내 공부 해야지.." 가방을 뒤적거리는 시원을 톡톡 두드리는 손길. 자고 있는 줄만 알았던 하연이 시원을 향해 엄지 손가락을 들어보인다. "쳐자고있는거 아니었냐? 깼으면, 그럼 니가 대답하든가.." 치켜세운 엄지손가락을 거꾸로 뒤집고는 다시 잠에 드는 하연. "..휴. 됐다. 내가 뭔 말을 하겠니. 걍 마저 주무세요~" 하연은 다시 중지를 들어올리고는 자그맣게 코까지 골면서 잠에 든다. "아오, 진짜. 이걸 그냥.." 시원의 말은 이미 꿈나라에 도달한 하연에게는 들리지 않는 듯 하다. "..잠이나 자라. 어." 하연의 등을 조심히 토닥여주는 시원. * 그릇들을 뒤적거리며 설거지를 하는 하연. 그런 하연의 뒤에서 지원이 살며시 하연에게 다가와 안았다. "언니.. 저 사실.." 지원이 하연의 입술에 입술을 맞춰 하연의 말을 끊는다. "..쉿. 말 하지 않아도 알아. 나도 사실 너를.." * "우와!" 모두가 공부하느라 조용한 교실, 하연이 벌게진 얼굴로 소리치며 일어난다. 시선이 다들 하연에게 쏠린다. 옆 자리에 앉은 시원이 하연을 끌어내리듯 앉히며, "드디어 미쳤냐? 쳐 자다 갑자기 왜 난리야!" 하연은 두근거리는 가슴을 부여잡고, "어, 아니, 그.. 꿈이었나? 휴.. 어.. 그게.." "쪽팔리니까 아가리 닫아.." 그제야 흠흠, 헛기침을 하며 자리에 얌전히 앉는 하연. 시원은 그런 하연을 한심하다는 듯이 바라보며, "개꿈이라도 꾼거야?" "..아니.. 개꿈은커녕 로또라도 사야될 법 한.. 꿈.." "그건 수능 끝나고 사시고, 그렇게 좋은 꿈이면 다시 쳐 자기나하세요. 잠꼬대 그만하고." "..응.." 쿵쿵거리는 심장을 끌어안고 혹시라도 그 꿈을 다시 꿀 수 있을까, 행복한 기대를 품으며 다시 엎드려 잠을 청하는 하연. 시원은 한숨을 푸욱, 내쉰다.그날 밤, 침대에 누워있던 둘. 지원은 책을 읽고 있었고, 하연은 조심스럽게 일어나 침대 옆 자그마한 서랍을 열었다. 그 안에서 하연이 꺼낸 것은 작은 상자 하나. 무릎 위에 올려놓고 살짝 뚜껑을 열자, 하얀 은 장식이 달린 반지 두 개 나란히 들어 있었다.조금 투박하지만 정성스럽게 공방에서 직접 하연의 손으로 만든 반지. 반지 안쪽에는 지원과 하연의 이름이 나란히 새겨져 있었다.“이거.”하연은 조심스럽게 꺼내며 말했다.“알바해서 산 우리 첫 반지에요. 왼쪽엔 언니 이름, 다른 오른쪽엔 내 이름.”지원은 그걸 받아들고 천천히 손끝으로 반지를 만져보았다.“너.. 이런 건 언제 만들었어?”“비밀.”하연이 윙크하며 웃자, 지원은 고개를 숙인 채 소리 없는 웃음을 터뜨렸다.“고마워. 내 옆에 네 이름이 있다는 게.. 이제서야 진짜 실감나네.”그 순간, 작은 집 안에 둘 밖에 없는데도 마치 바깥 세상이 조용히 경청하는 듯했다. 반지 둘, 이름 둘이 그들의 시간이 되었고, 공간이 되었다.*밤은 깊어가고, 조명이 꺼진 방 안엔 아직 새 이불의 향이 은은하게 남아 있었다. 천장이 낮아 조용히 말해도 목소리가 벽에 닿는 듯했고, 창밖에서 불어온 바람은 커튼을 살짝 흔들다 사라졌다.하연이 이불 속에서 작게 말했다.“언니. 내일 이 집에서 처음 맞는 아침에 뭐부터 하고 싶어요?”지원은 한참을 말없이 생각하다가, 부드럽게 속삭였다.“네 얼굴부터 보기.”“그건 매일 하는 거잖아요.”“그래도 좋아. 가장 익숙한 게 가장 소중하니까.”하연은 웃으며 이불 속으로 손을 뻗었다. 지원의 손을 찾아, 그 손가락 사이에 자신의 손가락을 끼우듯 포개었다.“그럼 나는.. 일어나자마자 언니 이름부터 부를래요. 아무 이유 없이, 그냥.”지원은 대답 대신 하연의 손가락을 조심스럽게 감싸며 속삭였다.“그냥이라는 이유가 실은 사랑이라는 걸 알잖아. 우리는 이제 그런 사이니까.”*아침이 왔다.새벽과 아침의 경계는 조용히 무너지고, 햇살은 어느 틈에 방 안 깊숙이
여름이 조금 지나고, 슬슬 뜨겁다고 느껴지기보다는 부드럽고 따듯한 햇살이 계절의 테두리를 서서히 넘어서는 시기였다. 길가의 철쭉은 이미 지고, 나무들은 아마 올해의 마지막으로 풍성하게 잎을 틔운 채 바람에 흔들리고 있었다. 가을의 기운이 느껴지는 오후, 바람이 슬그머니 부드럽고도 조심스럽게 피부를 가늘게 쓰다듬는 날이었다.지원과 하연은 작은 이삿짐 트럭을 따라 조용한 주택가 골목 끝, 도심에서 조금 벗어난 오래된 연립주택 앞에 섰다. 붉은 벽돌로 된 이층 건물. 월세도 아니고, 전세도 아니고, 자가. 오래도록 고민하다 택한 지금의 둘에게 어울리는, 둘만의 집."여기가 이제 우리집 맞죠? 맞는거죠?"하연이 묻자, 지원은 트럭 기사에게 마지막으로 고개를 끄덕이고 고생하셨다며 보내드린 뒤 다시 하연을 바라보며 작게 웃었다.하연의 어깨를 꼬옥 잡고 몸을 기대는 지원.하연 역시 지원에게 기대어섰다."응, 맞아. 우리 둘이 함께 살 집.진짜 우리 집."집은 그렇게 크지 않았다. 현관을 열고 들어서면 바로 주방이 보이고, 그 옆으로는 작고 네모난 거실이, 거실 끝엔 방이 둘 있었다. 오래된 집이라 그런지 벽지는 군데군데 빛이 바랬고, 전등 스위치도 조금 뻑뻑했다. 하지만 이상하게, 그 모든 것이 좋았다. 낡았지만 단단했고, 작지만 따뜻했으며, 사소해보여도 그 무게는 사소하지 않았다. 마치 둘이 생각하는 서로의 마음 같다고, 지원은 떠올렸다."방 하나는 작업실, 하나는 침실로 하면 되겠다. 나중에 리모델링도 한 번 하자.벽지도 새로 바르고.""헬로키티 벽지로?""꿈도 꾸지마.""헤.."*그날 하루 온종일, 두 사람은 쉬지 않고 몸을 움직였다. 포장해온 박스들을 거실에 쌓아놓고 하나씩 뜯으며 물건들을 꺼내 제자리에 두고, 책장을 조립하고, 이불을 널고, 작은 식탁 위에 아직 포장을 뜯지 않은 커피 메이커와 커피포트를 올려두었다.이곳저곳, 고장나거나 작동하지 않는 곳은 없는지 꼼꼼히 찾으며, 지원이 욕실 안에 들어가 있던 동안, 하연은 가만히 창문
가게 앞.가을바람이 느껴지는 밤 공기.가로등 불빛 아래, 지원이 먼저 문을 열고 나와 기다리고 있었다.하연은 손에 들고 있던 작은 파우치를 손끝으로 쥐며 고개를 들었다.“미안해요, 좀 늦었죠?”지원은 하연을 보자마자 자기도 모르게 미소지었다.어느정도 술이 들어갔는지, 무장해제된 얼굴이었다.“아니야. 딱 좋아.”손목을 살짝 잡고 앞장서는 그 손끝이 따뜻했다.하연은 문 앞에서 잠시 숨을 고르고, 지원의 옆에 섰다.지원이 문을 열며 말했다.“이미 다 얘기 했어. 내가 요즘 만나고 있는 사람이라고.”그 말에 하연은 눈을 천천히 감았다가 떴다.작은 숨을 들이쉬고, 가게 안으로 들어섰다.*“안녕하세요. 지원 언니와 함께 살고 있는 하연이에요. 처음 뵙겠습니다.”순간, 테이블 위의 공기가 얼어붙는 듯했다.누군가는 젓가락을 멈췄고, 누군가는 술잔을 손에 든 채 멈칫했다.하지만 그 정적은 오래가지 않았다.“우와.. 진짜 예쁘다.”“그럼.. 둘이 진짜? 와..”"..얼굴합은 맞긴 해.""얼굴합보다는 MBTI가 맞아야지.""그거 유행 지났거든.""관상 궁합 같은 거 보다는 안지났거든."놀람과 당황이 엇갈린 반응들.그러나 그 감정이 하연을 향한 거부로 이어지지는 않았다.사람들은 오히려 조심스럽게, 그러나 따뜻하게 웃고 있었다.하연은 그런 시선에 조금 어색한 듯 웃었다.“제가.. 동생처럼 붙어 있다 보니까, 언니가 피곤할 때도 많았을 거예요. 저 때문에 못간 약속들도 많을 것 같은데.. 죄송합니다.”지원이 그 말을 가볍게 가로챘다.“에이, 아니야. 나, 하연이 없었으면 아마 진작에 병났을걸? 너네들도 알잖아, 그치?”그 말에 모인 사람들 모두 가볍게 웃었다.술잔이 다시 움직이고, 안주가 돌기 시작했다.공기는 다시 풀렸고, 대화는 자연스럽게 흘러갔다.지원은 테이블 밑에서 하연의 손을 가만히 잡았다.그 작은 접촉은 아무도 모르게, 그러나 둘 사이의 어떤 경계를 더 단단하게 만들었다.*가게를 나선 건 자정을 조금 넘긴
금요일 저녁.해가 완전히 저물어버리기 전의 도시.붉은 기운이 하늘에 묻어 있다가 하나둘 네온사인 아래로 그 빛들이 스며들듯 사라져간다.지원은 홀로 사무실에 앉아 마지막 업무상 메일을 확인하고 자료와 함께 협력사에 답장을 보낸 뒤에, 의자 등받이에 등을 기대고 한숨을 쉬었다.기분이 노곤노곤했다.뭔가 이러다 스무스하게 바로 잠에 들 것 같은 느낌.머리부터 발끝까지 쭉 기지개를 켜는 지원."흐음.. 너무 늦지는 않았겠지?"직장인들에게, 아니 그 누구에겐들 하루의 끝은 언제나 고단할 것이다만,지원이 지금, 평소의 퇴근 시간보다도 더 머리가 지끈거리는 건, 그저 단순히 몸이 피곤한 게 아니라, 하루 종일 머릿속을 점령하고 있던 그 이름 때문이었다.하연.집을 나온 뒤부터 회사의 업무시간, 하루종일 내내, 지원의 머릿속에는 자꾸만 하연의 옷깃과 말투, 눈동자, 부드러운 목소리, 사랑이 듬뿍 담긴 지원을 향한 시선 같은 것들이 떠올랐다.마치, 이미 그날 밤을 기다리는 누군가처럼.핸드백에 대충 자기 물건들을 쓸어놓고 자리를 정돈하며 지원은 자리에서 일어섰다.또각또각 소리를 내며 회사를 나섰다.*엘리베이터 안.거울에 비친 자신의 얼굴이 새삼스럽게 유독 낯설었다.볼에 살짝 홍조가 돌아있었고, 입꼬리는 미세하게 올라가 있었다...영락없이 사랑에 빠진 이의 얼굴이었다.내가 원래도 이런 표정이었나..?..아마 이것도 그 애 때문이겠지.지원은 아예 그냥 화장을 다시 할까 고민하다가, 그저 립스틱만 덧발랐다.오늘은, 그냥 지금의 자신으로 충분할 것 같아서.*퇴근길에 들른 약속 장소는 지원의 회사 근처에 있는 단골 술집이었다.간판은 몇 년 전부터 바뀌지 않았고, 간판 아래 화분은 계절마다 주인이 다른 듯하지만, 매번 비슷하게 피어났다가 시들었다.술집 문을 밀고 들어가자 익숙한 목소리들이 반겼다.“오, 드디어 오셨네~”“주인공도 아니면서 이리 늦으면 어떡하냐!”"누가 보면 혼자만 직장인인줄 알겠네.""여기 앉아, 여기!"전 회사 동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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