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hat ng Kabanata ng 시작은 언제나 무언가의 끝으로부터: Kabanata 1 - Kabanata 10

47 Kabanata

장례식장

고아. 흔히 길거리 나다니는 사람들 중 아무나 골라도 있을, 남들 다 있는 부모, 형제따위 없이 세상에 홀로 남겨진 사람. 그러니 제게 다가오는 사람이 소중하고, 제게서 떠나가는 사람이 한없이 밉다. 고아인 지원이 마찬가지로 고아인 남편에게 옆자리를, 품을 내준 것은 어쩌면 그로 인해 촉발된 자기위로였을지도 모르겠다. 외로웠고, 괴로웠으니까. 외로웠을 것이고, 괴로웠을 것임을 지원은 가슴이 찢어져라 공감했으니까. 처음에는 아무리 밀어내고 냈지만은 남편은 다가왔고, 지원이 남편에게 밉고 나쁜 말들을 뱉어도 남편은 지원의 곁을 떠나지 않았다. 언제나 웃으며 옆을 지켰다. 어느 순간 그게 익숙해진 자신을 깨달았던건, 축복이었을까, 저주였을까. '이 사람이라면 괜찮을지도 몰라.' 그렇게 남편과의 결혼을 받아들인 지원. 세상이 주는 밝은 빛이라는 것은 언제나 수명이 얼마 남지 않은 전구 하나일 뿐이라는걸, 그때의 지원은 몰랐다. 결혼식을 올린지 얼마 되지도 않아 남편은 차에 치여 허무하게도 하늘나라로 떠나버렸고, 홀로 남겨진 지원은 멀거니 남편의 영정 사진만 바라볼 뿐이었다. "훌쩍.. 훌쩍.. 오빠.." 지원의 옆자리에서 하염없이 눈물만 흘리는 아이. 남편의 유일한 피붙이인 남편의 여동생, 하연. 갓 중학생이 되어 살짝 큰 교복을 입은 하연은 장례식 내내 그저 하염없이 흐르는 눈물을 닦지도 못하고 울기만 하였다. 지원과 같은 완벽한 고아. 그것이 하연이었다. '이 아이는 이제 어떻게 되는 걸까.' 지원은 어른이니 혼자라고 해도 어떻게든 버텨내며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다시 혼자가 되는 것에 적응 못할 것 같지도 않았다. 모든 장례식이 끝나고, 납골당 한켠에 남편이 본인만의 공간을 마련한 후, 남편과 하연이 고통스럽게 삶을 이어갈 때에는 아무런 도움도, 말 한 마디도 건네지 않은 처음보는 남편의 친척이란 이들의 쑥덕거림이 지원의 귀에 스며들어왔다. "..그나저나 하연이는 어쩌지?"
last updateHuling Na-update : 2026-0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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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기 I

“언니이이..” 침대에 푹 파묻힌 채, 인어처럼 이불을 몸에 돌돌 말고 누워있는 하연. 애처롭다 못해 구슬퍼보이는 얼굴로 애달프게 거실에서 달그락거리는 지원을 불렀다. "언니..! 살려줘요.. 아이고 나 죽네!" “응? 왜?” 지원은 설거지를 끝내고 시계를 힐끔 올려다봤다. 짧은 시침과 긴 분침이 그 자태도 고고하게, 9시 30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흠.. 우리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의 입시생 고3 하연이, 제트기 타고 날아가도 지각이겠네." 그러나 여전히 침대 속에 파묻힌 하연의 몸뚱이는 움직일 기미조차 없다. 이미 열려있지만 매너있게 하연의 방문을 똑똑 두들기고 들어가는 지원. “하연아, 이런 말하기 나도 새삼스럽기는 한데 너 지금 학교 지각인 거 알지?” “나 아파요.. 온몸이 쑤시고, 열도 나는 것 같고.. 으에취!” 이불을 목끝까지 끌어올리는 하연. 하연의 목소리는 작고 힘이 없었지만, 그나마 그 안에 잔뜩 담긴 것은 순수한 억울함. 지원은 웃으며 천천히 하연이 곁으로 다가갔다. “어쩐지 어제부터 그러더라니..” "어제가 왜요.." "너 어제 얼굴 되게 새빨겠어." 지원이 등교하는 하연을 꼬옥 안아주던 장면이 머릿속에서 리플레이되어 뜨끔, 하는 하연. “..사람이 일관되게 행동해야죠.. 후우.. 에.. 에취! 이거 봐! 콧물!” 이불 안, 하연의 작은 몸에서 신음 소리가 참 길게도 났다. "아이고, 나 죽네.. 나 죽어.. 언니.. 나 죽어요.." 지원은 티슈를 뽑아들고, 한 손은 하연의 뒷목에, 티슈를 든 손은 하연의 코에 가져다댔다. "자, 흥!" "..언니. 나 정말, 정말로 아프긴한데 진짜.. 내 나이가 이제 그 정도는 아니야.." "시끄럽고, 흥!" "흥.." 다량의 설레임과 약간의 자괴감. 이정도 스킨쉽이면 그깟 자괴감쯤이야, 하연은 애써 긍정적으로 생각하려 노력하며 코를 내민 채 가만히 지원의 손길을 느끼기로 했다. "으.." 표정을 한껏 구긴 후, 휴지통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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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기 II

회색빛의 찌뿌둥한 하늘.지들끼리 어깨동무하며 가득 뭉친 구름이 제 몸을 슬슬슬 잘라내는 중이다.주르륵 주르륵 잠시간의 멈춤도 없이 내리는 비.비 덕분에 빨래가 마르지 않았다.베란다에 널어놓은 티셔츠는 여전히 눅눅했고, 수건은 아직 물기를 머금은 채 축 늘어져 있었다.회색빛 구름들이 하늘을 덮었고, 바람은 하늘의 실수처럼 잠깐 스치고 지나갔다."창문을 열자니 비가 오고,닫자니 빨래 때문에 습하고..이를 어찌해야한다는 말인가.."노트 한 장을 찢어 종이 부채를 만든 뒤안타까운 얼굴로 베란다 앞에 앉아 혼자 진지하게 상황극을 하는 하연."하연아.. 물 끓어..""경의 뜻대로 하겠소."혼자 신나게 사극 놀이를 하던 하연이 지원의 말에 일어났다.지원은 가디건을 걸친 채, 식탁에 앉아 있었다.게다가 가디건 위엔 목도리를 둘둘 감고, 머리엔 털방울 달린 비니까지 씌워져있었다.하연이 억지로 우겨대며 자기 옷장을 탈탈 털어 지원에게 몽땅 뒤집어씌운 결과물이었다.손에는 페퍼민트 차 대신어제 지원이 하연에게 건내준 감기약과 해열제."아하, 잠깐만요."지원은 종이부채를 아무렇게나 집어던지고 찻잔에 뜨거운 물을 담고 꿀 한 스푼을 섞는다.“자.. 꿀물 대령입니다요.”하연이 조심스럽게 찻잔을 내려놓았다.달달한 꿀 냄새가 코끝을 간질였다.잔의 표면에 가만히 맺히는 김. 하연은 유리잔을 양손으로 감싸 밀어주며, 지원 앞에 살포시 앉았다.“꿀물 오랜만이네.""언니가 나 어렸을 때 감기 걸리면 맨날 끓여줬잖아요. 언니표 감기용 특제 꿀물.”힘없이 웃는 지원."..그때는 너 진짜 귀엽고 자그마한 아가였는데."생글생글 웃는 하연."저 귀여워요?""..정정. 귀여웠었고 자그마했었던 아가였었지."어이없다는 표정의 하연."뭐야. 그럼 지금은 그게 전부 다 아니란 소리?"지원은 조심스레 뜨거운 꿀물을 후후 불어 마신다.만족스러운 얼굴."몰라."볼을 빵빵하게 부풀리며 지원을 슬며시 째려보는 하연."그 아가가 이제 나보다도 더 커서,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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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해는 느닷없이 I

“언니, 이거 둘 어때요? 뭐가 더 나아요? 별로면 다른 거 가져올까요? 예쁜 것들 더 많아보이기는 했는데!”하연은 양손에 기다란 코트를 두벌 들고 들뜬 눈빛으로 지원 쪽을 바라봤다.하나는 검은색 롱코트, 하나는 짙은 버건디색 하프코트.부쩍 차가워진 공기에 맞춰 외투를 사야 한다며, 둘은 동네 아울렛으로 나들이 겸 외출을 나선 참이었다.평소에도 옷이나 꾸미는 것에는 별로 흥미를 가지지 않고, 무난하기만 하면 최고 아닌가? 하는 성격인 지원은 팔짱을 낀 채 고개를 갸웃거렸다.그래도 나름대로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듯 하연을 중간에 둔 두 코트 사이를 또르르륵 굴러다니는 눈동자.“음.. 검은색이 낫지 않아? 제일 무난하기도 하고.교복 위에도 입을 수 있을 것 같은데.”그래서 안된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 하연.“아, 재미없어! 언니는 왜 맨날 무난한 것만 좋아해요? 가끔씩은 모험을 가줘야지! 그리고 교복 입을 날도 이제 얼마 안남았거든요. 그 후를 생각해야지요!”최선을 다해 나는 지금 최대한의 노력을 하고 있다는 상황을 인지시키려는듯 인상을 찌푸리는 지원.“..난 무난한 게 편하거든. 교복 위에 입는 게 아니더라도 그리고..”지원의 말을 끊으며 버건디 코트를 몸에 가져다대는 하연.“됐고, 버건디는 어때요? 얼굴이 좀 더 화사해 보이지 않아요? 난 이런 계열이 좀 맞는 것 같기는 해요.”"이씨.. 그럴 거면 물어보지를 말던가.""일종의 확인 작업이죠, 뭐."하연은 헤실헤실 웃으며 검정 코트는 원래 있던 자리에 걸어두고, 버건디 코트를 들고 거울 앞에 섰다.확실히 입어보는 것만으로도 인상이 달라져보인다. 뭔가, 주변 분위기마저 화하게 밝혀지는 듯한.하얀 피부에 붉은 빛이 어우러져, 갑자기 저 꼬맹이 하나가 성큼 어른스러워진 느낌.지원은 멍하니 하연의 그런 모습을 바라보다가, 자신도 모르게 중얼거렸다.“..예쁘다, 정말로.”“네? 뭐라고요?”지원은 애써 팔짱을 끼며 부러 두루뭉술하게 대답한다.“아니, 그 코트. 예쁘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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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해는 느닷없이 II

“너가 여긴 웬일이냐. 학교 말고, 교복 안입고 밖에서 보는 건 또 오랜만이네.어.. 이 이쁜 언니는 누구..?”시원은 자연스레 자리에 다가와 앉고서는 두 사람을 번갈아보았다.하연은 익숙한 듯 웃으며 말했다.“우리 오빠.. 아니, 오빠 와이프. 지원 언니. 언니, 이쪽은 내 친구 시원이에요. 내 유일한 친구.”시원의 눈이 휘둥그레졌다.리액션 좋은 건 고딩들 특징인가? 어딜가나 똑같네."반가워요."시원에게 손을 건네는 지원.시원이 두 손으로 악수를 받는다.그러나 둘이 손를 맞잡자 인상이 살짝 찌푸려지는 하연이다.“아..! 아, 맞다. 하연이한테 들었던거 같아요. 그 말대로 겁나 예쁘시네요.근데 진짜 친언니처럼 생겼다. 둘이 완전 잘 어울려요.”“응?”"..손은 좀 떼고 얘기하지?"하연이 직접 힘주어 둘의 손을 어거지로 떼어낸다.그러나 시원은 신경쓰지 않는다는 듯,“그러니까.. 아, 뭐라 해야 되지? 아. 진짜 커플처럼? 어울린다고 해야 되나?얼굴합이 잘 맞는다고 해야 되나? 갑자기 맞는 표현이 생각이 안나네.”테이블에 일순간 찾아온 정적.카페의 백색소음 속에서도 시원의 말은 또렷했다.하연은 순간 커피를 들다 말고, 애매한 자세로 멈춰버렸다.지원은 웃으며 시원에게 말했다.“아니에요, 그냥 가족이에요. 사이 좋은 새언니와 시누이.”“그럼 진짜 친한 새언니에요? 완전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 같아요. 아, 아닌가? 드라마에서는 새언니랑 시누이면 완전 관계 박살나던데. 서로 죽일듯이 미워하고. 근데 언니랑 하연이는 되게 분위기 좋은 것 같아요. 오히려 친자매 바이브. 아닌가? 요즘 트렌드에는 이런데 더 드라마같을 수도? 약간 웹드라마 재질?""그럼요. 가족인데요. 세상 천지에 하나밖에 없는.그나저나 우리 하연이 학교에서는 좀 어때요?친구들은 많아요? 수업시간에 딴짓하지는 않죠?혹시 엎어져 잔다거나 하지는..?"뭔가 학부모 면담같은 느낌.하연의 째려보는 시선을 느끼고선 어쩌라고, 라는 듯이 말을 이어가는 시원."맨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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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만 아는 사이 I

“언니, 오늘 일찍 끝난다 그랬나요?아닌가? 내일이었나?오늘 아니면 내일이었던 것 같은데.언니! 언제에요?! 네?!”하연의 목소리가 요란스럽게 거실을 가로질러 들려왔다.지원은 욕실에서 양치질을 마치고 입가를 손등으로 닦으며 대답했다.“응, 오늘~ 원래 오후 일정들 좀 빡빡했는데, 마지막 거 하나 취소 됐다 했잖아.”“그럼.. 우리 저녁은 집에서 밥 먹어요. 제가 만들게요.”소파에서 뒹굴거리며 리모컨을 누르며 티비를 틱틱, 채널을 바꿔대는 하연의 모습이 눈에 선했다."우리 집 유일한 고3님이 야자는 오늘도 그렇게 스무스하게 빠지시려고?""공부보다 언니가 더 소중한데 어떡해요.소중한 언니 잘못! 내 잘못 아님! 만약 쌤이 언니한테 전화하면 나 아프다 그래줘요~"지원은 거울 속 얼굴을 보며 작게 웃었다.어제 하연이 시원이한테서 ‘커플 같아요’라는 말을 들은 이후, 어쩐지 하연의 말투가 조금 더 다정해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아니, 원래도 다정한 편이긴 했는데.. 그게 꼭 무언가를 굉장히 의식하고 던지는 말처럼 느껴졌다.괜히 튕겨보는 지원.“그래요. 근데요, 저기요, 고3님. 너 수능 얼마 안남은 거 알지요?”"그럼요. 조금만 있으면 드디어 합법적으로 술 마실 수 있는 날!"고개를 절레절레 젓는 지원."..나는 거기까지 생각해서 한 말은 아니었는데.""아무튼! 제가 저녁 준비할테니까 그렇게 아십쇼!갑자기 일이 잡힌다거나, 갑자기 회식 가야 된다거나, 갑자기 갑자기스러운 그런거 없기에요!꼭 빨리 오는 거에요! 만약 회사가 야근시키면 내가 가서 깽판놓을거임!""어떻게?""음.. 회사 문 손잡이들마다 식용유를 발라놓는다던지..?""네, 네~ 손바닥 미끌거리기 전에 퇴근할게요~"집 안에는 아침 특유의 잠잠한 햇살이 노크도 없이 한가득 들어오고 있었다.작은 베란다 창에 걸린 커튼이 바람에 살짝 흔들릴 때마다, 채 미처 다 말리지 못한 지원의 머리칼에도 잔잔한 그림자가 내려앉았다.출근 복장인 정장과 셔츠를 옆에 두고, 지원은
last updateHuling Na-update : 2026-0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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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만 아는 사이 II

하연의 약간 타긴 했지만 정성이 가득 담긴 밥상이 거실 식탁 위에 펼쳐졌다.계란프라이, 간장 두른 참치김치볶음, 애호박볶음, 그리고 진한 된장국.“오, 생각보다 비주얼은 나름 괜찮은데?”“‘생각보다’는 좀 빼주시죠. 뭔 생각을 하셨길래 그런 말이 나오시나요..”지원은 젓가락을 들었다.애호박볶음를 한 젓갈 집어먹어보고, 숟가락을 들어 된장국을 한 숟갈 떠먹어봤다.소금기가 살짝 강했지만, 왠지 그런 게 더 좋았다.하연의 어설픈 진심과 노력이 식사에 그대로 담겨 있는 듯해서.“맛있어.”“진짜요?”“응. 진짜 맛있어, 하연아.”그 말을 듣고나서야 하연도 천천히 숟가락을 들었다.그 순간, 둘은 동시에 조용히 웃었다.지원은 아무 말 없었지만, ‘고마워’라는 말이 눈빛에 그대로 담겨 있었다.그저 묵묵히 하연이 차려준 밥상을 맛있게 먹을 뿐.*그날 밤, 둘은 동네 카페에 앉아있었다.지원은 창가 쪽, 하연은 맞은편.아이스 아메리카노와 라떼 사이에 놓인 건, 아마도 정적일테지만 그리 기분 나쁜 느낌은 아니었다.빨대로 라떼를 빙글빙글 돌리다, 얼음을 콕콕 찔러대던 하연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언니는.. 사람들이 오해하는 거, 진짜 싫어요?”눈을 감고 흘러나오는 노래에 맞춰 손끝을 탁자 위에 탁탁 두드리던 지원이 고개를 들어 하연과 눈을 마주쳤다. 의아한 얼굴.“무슨 오해?”“그러니까.. 우리 사이요.우리가 평범한 사이는 아니잖아요.전 새언니와 전 시누이가 단둘이 같이 사는게..조금, 아니, 조금 많이, 이상하잖아요.”지원은 잠시 생각하다, 커피잔을 내려놓으며 말했다.“흠.. 뭐, 남들이 보기엔 이상할법도 하지.그런데 어쩌겠어.우리 둘이라는 새로운 가족 형태가 이렇게 버젓이 세상에 존재하는걸.물론 당연히 오해라면 싫지. 근데 오해가 아니라 착각이라면 좀 다를지도 몰라.”“착각?”“응. 착각은 아무것도 모르면서 자기 말이 맞다고 스스로 믿는 거잖아. 오해는 타인이 하니까 억울하고,그런데 착각은 본인이 지 마음대로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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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토요일 I

평화로운 토요일 아침, 일주일 중 유이하게 알람이 울리지 않는 날. 언제나 소란스러운 집안이 조용하다.침대 위엔 곤히 자고있는 지원이 보인다.한줄기 햇빛이 서서히 기울어지다 지원의 감긴 두 눈위에 드러눕는다.움찔거리는 지원의 눈꺼풀.고개를 몇번이고 까딱거리다가 결국,"으으!"이불 속에서 온몸을 비틀며 기지개를 켜는 지원.잠에서 깨어나고도 베개 위에 얼굴을 묻은 채 한참을 뒹굴거리다, 손을 뻗어 침대 위를 더듬거리더니 잡힌 휴대폰을 켜고 시간을 확인한다.10시 37분.멀거니 앉아 창밖을 바라보는 지원.햇빛은 여전히 커튼 사이로 비집고 들어오고, 창문 너머에선 고양이 한 마리가 담벼락 위를 느긋하게 걷고 있었다.가던 걸음을 멈추고 지원쪽을 바라보는 고양이.지원이 손을 흔들자 흥, 하고 고개를 돌리더니 사라진다.지원도 흥, 하고 고개를 돌린다."새침하긴. 지가 고양이야, 뭐야."방 밖은 조용했다.하연이는 아직 자고 있나, 싶었지만, 싱크대 쪽에서 작게 물 흐르는 소리가 들렸다.“..하연아?”잠긴 목소리.지원은 입이 찢어져라, 하품을 하며 반쯤 부은 얼굴로 거실로 나섰다.그러자 어디서 났는지도 모를 머리띠를 이마에 질끈 묶은 하연이, 앞치마를 두르고 식탁 위를 행주로 박박 닦고 있었다.이마에 맺힌 땀을 닦고 휴, 하며 한숨을 내뱉는 하연의 눈에 잠에서 덜 깨보이는 듯한 지원이 보였다.“어? 언니 일어났어요?..상태가 어째.. 아직 제대로 일어나진 않은 것 같긴 한데, 아무튼.”다시 길게 하품을 뱉는 지원.“..너 무슨 행사라도 있어? 우리 집에서 오늘 뭐 하나? 파티? 미드에서 나오는 것처럼?왜 그렇게 아침부터 온 집 안을 때 빼고 광내시는지 물어봐도 되나?”“할 거 없는 주말엔 역시 대청소죠. 옛날에 오빠가 맨날 그랬거든요. 쉬는 날에 집 안 정리라도 좀 하라고.”“..그래, 그랬었지.”다시 하품을 하는 지원을 보고 하연은,“언니 아직 피곤해보이는데 좀 더 자요.”지원은 하연의 말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last updateHuling Na-update : 2026-0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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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토요일 II

장보기가 끝난 후, 둘은 마트 근처 벤치에 앉았다.커다란 장바구니는 발밑에 두었고, 아이스크림 하나씩 들고 나란히 어깨를 맞대고 있는 모습은 꼭 오래된 친구처럼도 보였다."겨울에 아이스크림이라니.""원래 아이스크림은 겨울이 제철인 법이에요."하연은 장바구니를 슬쩍 발끝으로 찼다."왜 가만 있는 장바구니한테 시비 걸어."“발 심심해서요.그나저나 진짜 같이 살면 이런 느낌일까..”“우리 지금 같이 살고 있는데?”“아니, 그냥.. 더 오래. 진짜 가족처럼.”지원은 아이스크림을 한입 베어 물며 고개를 갸웃했다.“지금도 충분히 가족 같은데.”문득 불어오는 바람에 부르르, 떠는 하연.지원은 아이스크림을 입에 물고 하연의 패딩 지퍼를 목끝까지 올려준다."그니까 뭔 아이스크림이야.""원래 아이스크림은 추울 때 먹는 거에요.""..그건 그거고, 우리 가족 맞잖아. 같이 살고, 같이 먹고."“..그렇죠. 근데, 언니가 말하는 가족이 뭔지 저는 잘 모르겠어요.”“사실 나도 잘 몰라.”지원은 웃었다.아이스크림이 살짝 녹아내렸다.하연이 그것을 보고 주머니에서 티슈를 꺼내 주며, 무심히 말했다.“그래도 좋기는 좋아요. 명확한 이름 없이도 둘이 있을 수 있어서.”지원은 조용히 하연을 바라봤다.바람에 머리카락이 흩날렸고, 하연의 귓가는 조금 붉었다.아이처럼, 혹은 어른처럼도 보이는 하연은,그 중간 어디쯤에서 애매하게 서 있는 사람 같았다.*집으로 돌아와, 냉장고에 장 본 물건들을 정리해 넣고, 둘이 함께 소파에 앉아 티비를 보며 시간을 보내다보니 어느새 해가 기울고 있었다.시계를 잠시 쳐다보고는 지원이 하연에게 물었다.“저녁은 뭐 먹고 싶어?”“음.. 언니가 해주는 거라면 아무거나 다 좋아요.”“세상에서 그 말이 제일 무책임한 거야, 알아?아무거나만큼 무서운 대답은 없을걸.”“그러면.. 고등어 샀잖아요. 고등어 구워먹어요.”지원은 한숨을 쉬며 고개를 끄덕였다.“그래, 고등어 구워줄게. 그 대신 너가 설거지 해.”입술을 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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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I

난장판이 된 하연의 방.옷가지, 이불, 베개들로 이루어진 자그마한 폭풍.그 어지러운 폭풍 한가운데에서, 나른한 향기 폴폴 풍겨대는 것들 사이에 자리잡고 앉아 팔짱을 낀 채 골똘히 생각에 잠겨있는 하연."내가.. 남는 베갯잇을 어디다가 뒀더라.."무릎으로 기어다니며 다시 한 번,방 안 구석구석 서랍 하나까지 뒤져보는 하연."이씨.. 베갯잇에 다리라도 달린거야, 뭐야.야, 이 정도면 눈치껏 나와라, 내가 작정하고 찾아야겠니? 넌 나한테 들키면 죽어, 그니까 빨리 순순히 자수하도록."베겟잇 세탁할 때가 되서 세탁기에 던져놓고,하얀 속베개에, 그 전에 미리 세탁해놓은 새 베갯잇을 씌우려고 하는데 그게 보이지 않았다.하연은 난장판이 된 방 한가운데에서 골똘히 생각에 집중하는데,"..방 안에 없나? 세탁기에 있나? 언니가 나 몰래 세탁기 돌렸나? 내 베갯잇만? 나 골탕먹이려고?!..그건 아니겠지. 그럼 어디있는거야 대체.."고개를 갸웃거리며 어질러진 방 안을 다시 정리하는 하연.팽개친 옷들을 다시 개고, 이불을 집어넣고, 베개들을 깔끔하게 털고 방 안을 정돈한다.태풍 속 같던 방 안이 다시 한 번 평화로운 밀밭처럼 깔끔히 잠잠해졌다."그래, 니가 이기나, 내가 이기나 한 번 해보자. 나한테도 필살기가 있다는 말씀.."하연의 필살기란 바로.."언니! 내꺼 베갯잇 못봤어요?"거실에서 들려오는 지원의 목소리."음.. 글쎄?아, 그거 저번에 빨래 갤 때 너껀 너가 정리한다고 방에 가져가지 않았어?""맞아요! 근데 방에 없어요!""내가 찾으면 너 큰일난다, 아주.""히잉."시무룩한 얼굴로 자기 방에서 나와 지원의 옆, 거실 소파에 털썩 쓰러지는 하연."빨래 갤 때던, 빨래 갠 거 가져갈 때던, 늘 두던 자리에 두라고 했지.""언니는 모르는 저만의 기분 전환 인테리어 방식이라구요.""그걸 다른 말로 하면 아무데나 쑤셔박는다고 하지, 아마?"뾰루퉁, 입술을 내밀며 쳇, 하는 하연."베개 빌려줘?""...""베개 없이 자면 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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