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시작은 언제나 무언가의 끝으로부터: Chapter 1 - Chapter 3

3 Chapters

장례식장

고아.흔히 길거리 나다니는 사람들 중 아무나 골라도 있을, 남들 다 있는 부모, 형제따위 없이 세상에 홀로 남겨진 사람.그러니 제게 다가오는 사람이 소중하고,제게서 떠나가는 사람이 한없이 밉다.고아인 지원이 마찬가지로 고아인 남편에게 옆자리를, 품을 내준 것은 어쩌면 그로 인해 촉발된 자기위로였을지도 모르겠다.외로웠고, 괴로웠으니까.외로웠을 것이고, 괴로웠을 것임을 지원은 가슴이 찢어져라 공감했으니까.처음에는 아무리 밀어내고 냈지만은 남편은 다가왔고,지원이 남편에게 밉고 나쁜 말들을 뱉어도남편은 지원의 곁을 떠나지 않았다.언제나 웃으며 옆을 지켰다.어느 순간 그게 익숙해진 자신을 깨달았던건, 축복이었을까, 저주였을까.'이 사람이라면 괜찮을지도 몰라.'그렇게 남편과의 결혼을 받아들인 지원.세상이 주는 밝은 빛이라는 것은 언제나 수명이 얼마 남지 않은 전구 하나일 뿐이라는걸, 그때의 지원은 몰랐다.결혼식을 올린지 얼마 되지도 않아 남편은 차에 치여 허무하게도 하늘나라로 떠나버렸고,홀로 남겨진 지원은 멀거니 남편의 영정 사진만 바라볼 뿐이었다."훌쩍.. 훌쩍..오빠.."지원의 옆자리에서 하염없이 눈물만 흘리는 아이.남편의 유일한 피붙이인 남편의 여동생, 하연.갓 중학생이 되어 살짝 큰 교복을 입은 하연은 장례식 내내 그저 하염없이 흐르는 눈물을 닦지도 못하고 울기만 하였다.지원과 같은 완벽한 고아.그것이 하연이었다.'이 아이는 이제 어떻게 되는 걸까.'지원은 어른이니 혼자라고 해도 어떻게든 버텨내며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다시 혼자가 되는 것에 적응 못할 것 같지도 않았다.모든 장례식이 끝나고,납골당 한켠에 남편이 본인만의 공간을 마련한 후,남편과 하연이 고통스럽게 삶을 이어갈 때에는아무런 도움도, 말 한 마디도 건네지 않은 처음보는 남편의 친척이란 이들의 쑥덕거림이 지원의 귀에 스며들어왔다."..그나저나 하연이는 어쩌지?""난 못 데리고 살아. 애들만 셋인데 우리 먹고 살기도 빠듯하다고.""누구는 안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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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기

“언니이이..”침대에 푹 파묻힌 채, 인어처럼 이불을 몸에 돌돌 말고 누워있는 하연. 애처롭다 못해 구슬퍼보이는 얼굴로 애달프게 거실에서 달그락거리는 지원을 불렀다."언니..! 살려줘요.. 아이고 나 죽네!"“응? 왜?”지원은 설거지를 끝내고 시계를 힐끔 올려다봤다.짧은 시침과 긴 분침이 그 자태도 고고하게, 9시 30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흠.. 우리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의 입시생 고3 하연이, 제트기 타고 날아가도 지각이겠네."그러나 여전히 침대 속에 파묻힌 하연의 몸뚱이는 움직일 기미조차 없다.이미 열려있지만 매너있게 하연의 방문을 똑똑 두들기고 들어가는 지원.“하연아, 이런 말하기 나도 새삼스럽기는 한데 너 지금 학교 지각인 거 알지?”“나 아파요.. 온몸이 쑤시고, 열도 나는 것 같고..으에취!”이불을 목끝까지 끌어올리는 하연.하연의 목소리는 작고 힘이 없었지만, 그나마 그 안에 잔뜩 담긴 것은 순수한 억울함.지원은 웃으며 천천히 하연이 곁으로 다가갔다.“어쩐지 어제부터 그러더라니..”"어제가 왜요..""너 어제 얼굴 되게 새빨겠어."지원이 등교하는 하연을 꼬옥 안아주던 장면이 머릿속에서 리플레이되어 뜨끔, 하는 하연.“..사람이 일관되게 행동해야죠.. 후우..에.. 에취! 이거 봐! 콧물!”이불 안, 하연의 작은 몸에서 신음 소리가 참 길게도 났다."아이고, 나 죽네.. 나 죽어.. 언니.. 나 죽어요.."지원은 티슈를 뽑아들고,한 손은 하연의 뒷목에,티슈를 든 손은 하연의 코에 가져다댔다."자, 흥!""..언니. 나 정말, 정말로 아프긴한데 진짜.. 내 나이가 이제 그 정도는 아니야..""시끄럽고, 흥!""흥.."다량의 설레임과 약간의 자괴감.이정도 스킨쉽이면 그깟 자괴감쯤이야, 하연은 애써 긍정적으로 생각하려 노력하며 코를 내민 채 가만히 지원의 손길을 느끼기로 했다."으.."표정을 한껏 구긴 후, 휴지통에 축축한 티슈를 버리는 지원.하연은 충격받은 얼굴로"언니.. 내가 더러워..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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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기 II

회색빛의 찌뿌둥한 하늘.지들끼리 어깨동무하며 가득 뭉친 구름이 제 몸을 슬슬슬 잘라내는 중이다.주르륵 주르륵 잠시간의 멈춤도 없이 내리는 비.비 덕분에 빨래가 마르지 않았다.베란다에 널어놓은 티셔츠는 여전히 눅눅했고, 수건은 아직 물기를 머금은 채 축 늘어져 있었다.회색빛 구름들이 하늘을 덮었고, 바람은 하늘의 실수처럼 잠깐 스치고 지나갔다."창문을 열자니 비가 오고,닫자니 빨래 때문에 습하고..이를 어찌해야한다는 말인가.."노트 한 장을 찢어 종이 부채를 만든 뒤안타까운 얼굴로 베란다 앞에 앉아 혼자 진지하게 상황극을 하는 하연."하연아.. 물 끓어..""경의 뜻대로 하겠소."혼자 신나게 사극 놀이를 하던 하연이 지원의 말에 일어났다.지원은 가디건을 걸친 채, 식탁에 앉아 있었다.게다가 가디건 위엔 목도리를 둘둘 감고, 머리엔 털방울 달린 비니까지 씌워져있었다.하연이 억지로 우겨대며 자기 옷장을 탈탈 털어 지원에게 몽땅 뒤집어씌운 결과물이었다.손에는 페퍼민트 차 대신어제 지원이 하연에게 건내준 감기약과 해열제."아하, 잠깐만요."지원은 종이부채를 아무렇게나 집어던지고 찻잔에 뜨거운 물을 담고 꿀 한 스푼을 섞는다.“자.. 꿀물 대령입니다요.”하연이 조심스럽게 찻잔을 내려놓았다.달달한 꿀 냄새가 코끝을 간질였다.잔의 표면에 가만히 맺히는 김. 하연은 유리잔을 양손으로 감싸 밀어주며, 지원 앞에 살포시 앉았다.“꿀물 오랜만이네.""언니가 나 어렸을 때 감기 걸리면 맨날 끓여줬잖아요. 언니표 감기용 특제 꿀물.”힘없이 웃는 지원."..그때는 너 진짜 귀엽고 자그마한 아가였는데."생글생글 웃는 하연."저 귀여워요?""..정정. 귀여웠었고 자그마했었던 아가였었지."어이없다는 표정의 하연."뭐야. 그럼 지금은 그게 전부 다 아니란 소리?"지원은 조심스레 뜨거운 꿀물을 후후 불어 마신다.만족스러운 얼굴."몰라."볼을 빵빵하게 부풀리며 지원을 슬며시 째려보는 하연."그 아가가 이제 나보다도 더 커서,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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