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 connecter이틀째,하연은 방에 틀어박혀 밖으로는 거의 나오지 않았고,신발장에 출근용의 불편하고 딱딱한 구두를 벗어 넣으며 지원은 다시 한 번 집의 요새 특히 낯선 조용한 공기 속에 들어섰다.하연의 방문 앞에 선 지원.손을 뻗어 문을 두드려볼까, 조심스롭게 하연이 이름을 불러볼까, 하다가 만다.집은 여전히 깨끗했다. 거실 테이블 위에 올려진 컵받침은 그대로였고,부엌에 놓인 컵도 그대로였다. 물 한 모금 따른 흔적 없이.얼마 전까지만 해도 북적거리던 집은, 마치 혼자 산지 오래된 곳처럼 고요하고 동시에 고독했다.대신 식탁 위엔도시락과 하연의 필체로 쓴 쪽지 한 장이 조용히 놓여 있었다.[언니, 아침엔 이거라도 챙겨 먹고 가요. 하연 드림.]그러나 그걸 봤으면서도 잠시 고민하다가 결국 못 본 척, 출근했던 지원.쪽지 옆에 가지런히 놓인 도시락.지원은 조심스레 통을 열었다.그 작은 도시락 안에서 나는 다 식어버린 김밥의 참기름 냄새가,지원의 숨을 갑자기 죄어왔다.“이 애는.. 이러니까 더 밉지도 않고 미워하지도 못하지. 탓하지도 못하고.”혼잣말을 내뱉으며 지원은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뚜껑을 열기도 전에, 김밥보다 먼저 울컥 올라오는 감정이그녀의 목을 타고 울음을 밀어올렸다.지원은 조용히, 흐르는 눈물을 닦으며 꾸역꾸역 김밥을 입에 밀어넣었다.이토록 사소한 도시락 하나로도,하연은 자신을 감히 미워하지 못하게 만들었다.그 덕분에 지원은 하연에게 핑계나 탓을 하지도 못했다.하연의 그 모든 행동들, 지원을 향해 다가오는 그 순수한 걸음들이 지원같은 개미들에겐 지진과 같은 울림일지도 모른 채로.그게 더 잔인하단 걸, 왜 몰라. 대체, 왜. 너는.정말로 멀어지고 싶었으면, 이런 식으로 따뜻하게 굴지 말았어야지.금기를 넘고 싶지 않다면, 그 관계로 영원히 서로를 응원하며 사는 것에 만족했다면,넘었더라도 후회는 남기고 싶지 않았다면 그랬어야지.나까제 흔들지는 말았어야지.하지만 돌이켜보면 하연은 변함없이 항상 그랬다.순수하게 들
"뭐가?""음.. 모르겠어요. 그냥 전체적인 느낌이?"“..너가 봤을 때도 그래 보여?”“응. 분명히 우리는 이렇게 나란히, 같이 앉아있는데 뭔가 자꾸, 언니가 나보다 멀리 있는 기분. 바라보는 건 같은데.. 같은 거리를 걷고 있다는 느낌이 안 들어요. 목적지가 다른 마라톤을 가는데, 그냥 중간에 겹쳐지는 길이 와서 같이 가는 느낌..?”한참이나 말없이 앉아 있었다. 국이 식는 것도, 새하얀 김이 눈앞에서 허공으로 사라지는 것도 의식하지 못한 채.하연은 계속 말을 이어나갔다.“언니도 알고 있는지는 모르겠는데, 나, 사실 요즘 좀 무서워요.”지원이 고개를 들었다.“언니가 내 손 잡아줬을 때, 그게 너무 기뻐서.. 그 다음이 더 욕심나기 시작했거든요.”지원은 젓가락을 조용히 내려놓았다. 식탁에 부딪히는 쇠젓가락의 소리가, 괜히 크게 울렸다.“그건.. 네 잘못 아니야.”“그러니까요. 그래서 더 무서워요. 언니가 나한테 물러서게 되면, 그건 내가 잘못한 것도 아닌데.. 내가 가진 소중한 것들 다 잃게 될 것 같아서. 결국 난 내 잘못이 하나도 없어도 전부 다 내 잘못이라고 생각할 것 같아서.”하연의 말은 조용했지만, 그 울림은 깊었다.지원은 손끝으로 식탁을 천천히 문질렀다. 반투명한 나무결을 따라 흐르듯. 머릿속이 복잡했다. 무언가를 설명하고 싶었지만, 설명이 될 것 같지 않았다.하연은 지금, 하연과 지연, 둘의 사랑의 속도를 묻고 있었다. 그녀는 그 속도를 맞추고 싶어 하면서도, 어쩌면 자신이 이미 너무 앞서가거나, 뒤에 처져서 버려졌을까 봐 두려워하고 있었다.지원은 천천히 숨을 내쉬며 말했다.“..미안. 미안해. 내가 겁이 많은 사람이라서 그래.”“뭐가 그렇게 겁나는데요?”지원은 잠시 말을 고르다가, 입을 열었다.“지금 이 감정이, 이 관계가.. 내가 너를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커져버릴까 봐.이미 남들이 봤을 땐 충분히 이상한 우리 관계가, 더 이상해질까 봐. 그리고 애꿎은, 잘못한 거 하나 없는 너가 다칠까봐.”하연은 그
본래가 그렇다.아이러니하게도 누군가를 향한 사랑이 깊어질수록, 당사자의 몸과 마음은 손짓 하나, 생각 하나, 그 사소한 것들에 더 조심스러워진다.이게 지원이 그간 하연을 향한 복잡한 마음의 정의였다.창 밖에서는 이틀째 비가 내리고 있었다.기상 예보에 따르면 아직 채 장마가 시작되기도 전이어야 하는데, 이 도시는 이미 오래된 이불처럼 눅눅하게 젖어 있었다. 콘크리트 벽을 타고 흐르는 빗물은 이름 모를 누군가의 숨결처럼 느릿했고, 창문마다 떨어지는 물방울 소리는 홀로 삭이려고 마음 속에 간직하려던 기억을 더듬듯 끈질기게 귓가를 두드렸다. "..뭔 비가 이렇게 오냐."지원은 회색빛 거리 위를 걸었다. 하연이 부득불 들고가라며 손에 쥐어준 헬로키티 우산을 들고는 있었지만 어깨와 소매는 이미 축축했고, 발끝으로 스며드는 빗물에 신경이 쓰이기보다, 머릿속이 더 무거웠다.그렇게 편의점 앞을 지나칠 때, 문 옆에 쌓여 있는 음료 박스들 사이에서, 익숙한 초록색 캔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하연이 좋아하는 탄산음료. 평소였다면 망설이지 않고 가게에 들어가 하연의 것 하나, 지원의 것 하나를 집어 들었을 테지만, 오늘, 지원은 가볍게 시선을 떼고 그대로 걸음을 옮겼다.이미 충분하게 행복한데, 분명히 행복한 상태인데, 왜 자꾸 마음은 무거워지는 걸까.지원에게, 그 질문은 언제나 매일같이 반복되었고, 대답은 여전히 없었다.하지 않은 건지, 하지 못한 건지.어차피 지원은 몰랐거나 몰랐어야만 했고...딱히 특별할 것도 없다는 얘기다.*띠띠띠띠.번호키를 누르고 현관문을 열었을 때, 하연은 거실 바닥에 길게 누운 채 책을 들고 있었다. 얼굴 위로 떨어진 머리카락을 손끝으로 쓸어 넘기며 고개를 들던 그 모습은, 여전히 순하고 맑고 환했다.아직 책 속에서 헤어나오지 못한듯 멍하니 눈을 돌려 현관을 바라보다가,지원임을 알고 하연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어! 언니 일찍 왔네요? 뭔 일이래?”지원은 고개를 끄덕이며 젖은 우산을 접었다. 신발장 옆에 기대어 두었
[지원저녁엔 뭐 먹고 싶어? 약속 없으면 집에서 먹자.언니가 퇴근하고 집 가는 길에 사가지고 갈게.]그 문장은 아무렇지 않은 척 위장한 마음이었다.어느샌가부터 이런 문자 하나도, 하연에게 보내기엔 지원은 큰 용기를 내야 했다.하지만 손끝은 솔직하게, 조금 떨렸다.답장은 금세 왔다.[하연아무거나요.언니가 나랑 먹고 싶은 거!]그 말 한 줄에,지원은 가슴이 덜컥 내려앉는 느낌을 받았다.이 아이는 정말,이젠 나를 선택할 준비가 되어 있는 건 아닐까.아니, 어쩌면.. 처음부터, 였을지도 모른다.지금은 죽은 남편에게 자기 동생이라며 소개받았을 때에유난히 귀를 붉히던 중학생 아이가 보내는 시그널이,이제야 도달한 것일지도.. 모른다.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그런데.. 나는 준비됐나?"홀로 작게 중얼거리는 지원.*그날 저녁.지원은 퇴근길에 시장에 들렀다.매일 구매하는 일상적인 고등어나 두부 대신,하연이 좋아하는 닭강정과 딸기, 샤인머스캣,그리고 작고 귀여운 와인 한 병까지.별 것도 아닌데도,계산대에 진열된 것들을 바라보며지원은 괜히 낯간지러워 고개를 숙였다.'뭔 기념일도 아닌데.. 왜 이러지, 나는.'하지만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하연이 반쯤 벌어진 현관에서 웃으며 뛰어나오는 순간,그 모든 고민은 흐려졌다.“언니, 왜 이렇게 많이 사 왔어요! 나 부르지.. 안 무거웠어요?”“무겁긴 뭐가 무겁다고. 그리고.. 그냥.. 가끔은 이런 것도 좋잖아?”지원은 물끄러미 하연을 바라보며 말했다.하연은 와인 병을 조심스럽게 받아들었다.라벨을 바라보다가, 조용히 웃으며 말했다.“영화에서 보니까 주인공들은 이럴 땐, 키스하면서 어서오라고 말해주던데.”순간, 지원의 심장이 멈췄다.말은 농담처럼 들렸지만, 하연의 표정은 전혀 웃고 있지 않았다.마치 그 말이,진짜 바람 같기도 하고, 아니길 바라는 도전 같기도 해서.지원은 입을 열었다.“..너 이제 영화랑 미드 금지야.""아, 왜요!"하연의 코를 꼬집는 지원.
아직은 새벽에 더 가까운 아침,햇살은 조용히 부엌 창문을 타고 살금살금 들이쳤다.유리창 너머로는 아직 일어나지 못하고 잠들어있는 세상이 느긋하게 숨을 들이마시며 동시에 내쉬고 있었고,지원과 하연의 집 부엌은 그 조용한 새벽의 한가운데에 놓인 듯, 평온하고 따뜻했다.하연은 식탁에 자연스레 기대어앉은 채 조용히 그릇에 담긴 계란을 젓가락으로 부드럽게 풀고 있었다.노른자는 단정하게 깨져 흰자 속에 번졌고, 하연은 조심스레 젓가락을 돌렸다.소금과 약간의 후추로 간을 마친 계란물이 고르게 섞이자 불을 켜 후라이팬을 달궜고, 그 위에 기름을 두르자‘치이익’ 하는 소리와 함께 집 안의 고요가 조금 흔들렸다.후라이팬 위에서 지글지글 익어가는 계란. 하연은 능숙하게 계란을 뒤집어가며 계란말이를 만드는 중이다.그러다 하연도 모르게 손목에 살짝 계란을 튀기던 기름이 닿았고, 하연은 작게 숨을 들이쉬며 소리를 냈다.“아야..! 쓰읍..”그 소리는 벽을 타고, 문틈을 비집고,아직 잠에서 채 벗어나지 못한 방 안의 지원의 귀에 가 닿았다."음..? 하연아..?"하연의 작은 비명에 무의식적으로 곧장 침대를 박차고 일어나는 지원.바로 부엌을 향해 달려오는 발소리가 들렸다.지원은 부스스한 얼굴로, 눈을 비비며 거실로 뛰쳐나왔다.“왜? 또 뭐 튀었어? 다쳤어? 아니면 바퀴벌레라도 나왔어? 바퀴벌레는 너가 잡아야 돼, 나 못잡는 거 알잖.. 뭐해?”잠긴 목소리로 낮게 내뱉어진 말들은 어떻게 들으면 무심한 듯도 들렸지만, 사실 지원의 목소리에는 그 덤덤한 말들을 뚫을듯 묘하게 날카로운 걱정이 드러나있었다.하연은 고개를 돌려 지원을 바라봤다.헝클어진 머리, 하얀 파자마, 약간 부은 눈가.훨씬 일찍 일어난 하연보다도 더 피곤해 보이는 얼굴이었다.“응.. 근데 별건 아니에요. 그냥 기름이 살짝 튀어서. 괜찮아요. 언니 졸리면 더 자요. 제가 다 되면 부를게요.”하연은 태연한 척 미소를 지으며 손을 내렸다.싱크대에 차가운 물을 틀고 손목을 식혔다.그러나
지원은 대답하지 않았다.그저 숨이 가빠져오는 것만 같았다.평소보다 조금 더 자주, 더 깊게 들이쉬며 자신을 진정시키려 애썼다.하지만 하연은 한 걸음 더 지원에게 다가왔다.하연의 이마가 지원의 어깨에 스칠 듯 가까워졌다.“나, 요즘 언니한테 피를 나눈 가족처럼 다정한 척하는 것도, 마냥 나이 차이나는 철부지 동생이자, 죽은 남편 때문에 어쩔수 없이 떠맡은 불쌍한 남편의 여동생인 척하는 것도 점점 못 하겠어요.머리로도, 가슴으로도 하기 싫어요.”그 말은 갈비뼈처럼 단단했고, 동시에 심장처럼 약했다.지원은 입술을 꾹 다물었지만, 결국 낮게 아랫 입술을 꽉, 물었다.“..그럼 뭐가 되려고. 뭘 어쩌려고. 못 하면, 어떻게 되는 건데.”그것은 거절도, 수락도 아닌마치 어디에도 기댈 수 없는 마음의 무게를 담은 질문이었다.하연은 아주 작게, 그러나 분명히 웃었다.그 미소는 순수하고, 위태롭고, 정직했다.“..나를 언니가, 언니가 나를, 우리, 서로에게 서로를 사랑하는 사람이 되면 안 돼요? 어른 대 어른으로.”공기 한 겹이 내려앉는 소리마저 들리는 듯한 정적.지원은 그 말 앞에서, 제대로 숨조차 쉬지 못했다.눈 한 번 깜빡이지도 못했다.하연의 그 한 마디는살갗 위를 스쳐지나가는 바람처럼 가볍게 들렸지만,막상 지원의 가슴에 닿는 감정은 셀 수조차 없이 너무 무거워,도망치고 싶은 충동과 붙잡고 싶은 마음이 동시에 일렁였다. 무엇이 무엇의 그림자인지도 짐작할 수 없었다.그 순간.지원은 깨달았다.이제, 끝의 경계는 눈에 보일 정도로 너무 가까워졌다.슬금슬금 다가오는 경계를 막거나, 피하거나, 아니면..온몸으로 부딪혀야 할 때가 다가오고 있음을 홀로 짐작했다.*그날 저녁.지원은 혼자 방 안에 앉아 있었다.의자에 등을 기대고 앉아, 읽던 책을 펼쳐놓고 있었지만, 책 페이지는 움직이지도 않고 그대로였다.글자들은 의미를 잃었고, 페이지는 그저 종이에 불과했다.하루 종일 지원의 머릿속에서 되풀이되던 하연의 말.‘사랑하는 사람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