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뇨기과 김 간호사의 '어머!'한 나날들의 모든 챕터: 챕터 21 - 챕터 30

45 챕터

21

형민과의 분위기는 좀처럼 나아지지 않았다. 민영이 의아한 표정으로 ‘원장님이랑 무슨 일 있었냐’고 물어왔지만 대답을 할 수 없어 성아는 그저 웃어보여야 했다.할 수만 있다면 흐르는 시간의 멱살을 틀어쥐고 코앞에다 묶어두고 싶었지만, 시간은 성아의 편이 아니었다. 그렇게 토요일이 되었고, 마감시간이 되자마자 귀신같이 전화가 왔다.-끝날 때 됐죠?“네.”-전에 그 카페에서 기다리고 있어요. 얼른 끝내고 와요.“……네.”애매한 듯한 성아의 대답에도 용규는 밝은 목소리로 통화를 끝냈다. 테이블 위에는 다 식어버린 커피 한 잔과 그가 아끼는 카메라가 놓여 있었다. 작업하는 모습을 처음부터 끝까지 보여줄 생각이었다. 오늘 작업을 위해 섭외를 해 놓은 장소도 있었다. 전에 건네주었던 사진들을 마음에 들어 했던 것을 고려해 선정한 장소였다. 든든한 지원군도 하나 심어두었으니 가서 그녀의 마음을 홀랑 뺏어오기만 하면 되는 셈이었다.“이거 치워주시고 아메리카노 하나 더 주세요.”직원을 불러 커피를 새로 시켰다. 직원은 노골적으로 별 희한한 놈 다 보겠다는 표정으로 다가왔다. 마시지도 않은 커피를 세 잔째 시키는 용규가 정상적으로 보이기에는 좀 무리이긴 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용규는 즐거운 표정이었다.얼마 지나지 않아 성아가 보였다. 용규는 자세를 바로잡고 멀찌감치 떨어진 커피잔을 바짝 앞으로 당겼다.“오래 기다리셨나요?”“금방 왔어요. 봐요, 커피에 김 오르는 거.”희한한 놈 뭐하려고 그러나, 귀를 기울이고 있던 직원이 소리 없이 헛구역질을 하는 게 슬쩍 곁눈으로 보였으나, 용규는 과감히 무시했다.간단히 목을 축인 두 사람이 일어섰다. 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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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아는 시간이 어떻게 갔는지도 모를 정도로 신나게 놀았다. 그만큼 많이 웃었고. 그동안 알게 모르게 쌓여있던 스트레스가 모두 풀린 듯한 기분이었다. 용규가 전에 내밀었던 아이들 사진이 연출한 것이 아니라 정말 즐거워하는 아이들의 감정을 그대로 담은 것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아이들이 옷을 갈아입으러 건물 안으로 들어가고, 성아는 흠뻑 젖은 채 용규에게 다가갔다.“즐거워 보이네요, 성아씨.”“네. 이렇게 웃어본 거, 정말 오랜만인 거 같아요. 사진은 잘 찍으셨나요?”“그럼요. 아주 만족스러운 작업이었어요.”성아의 얼굴에 배인 웃음만큼이나 용규의 표정도 즐거워 보였다. 이번 작업의 목적이 아이들이 아니라 성아였던 것을 미리 알리지 않은 덕에, 성아는 카메라를 전혀 의식하지 않았다. 덕분에 자연스러운 표정의 그녀를 카메라에 담을 수 있었다. 디지털 카메라가 아닌 탓에 당장 확인을 할 수는 없었지만, 멋진 사진이 나올 거라는 예감이 강하게 드는 샷이 몇 있었다. 작업실로 돌아가 확인해보고 싶어 좀이 쑤셨지만, 눈앞의 성아가 먼저였다. 촉촉이 젖은 채로 눈을 반짝이며 웃는 모습이 너무나 사랑스러웠다. 옷이 젖어 그녀의 풍만한 굴곡이 그대로 드러나는 것도 아주 흡족했다. 일전에 맛보았던 성아의 달콤했던 그 감촉과 향이 떠올랐다. 청바지를 선택하기를 잘했다는 생각을 떠올리며 카메라를 정리해 가방에 넣었다.“사진 보고 싶죠? 작업실로 가요.”“하지만…….”성아는 머뭇거리며 자신의 몸을 내려다보았다. 물방울이 뚝뚝 떨어질 정도로 흠뻑 젖은 몸이라, 그의 카시트가 망가질 터였다.“해 지면 쌀쌀해질 텐데 감기 걸릴 거라고요. 얼른 가요.”용규는 아무 것도 모르는 척하며 성아의 어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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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참 뒤적거리고 들여다보던 성아가 갑자기 뭔가 떠올랐다는 듯이 작게 감탄사를 내뱉었다.“아까 찍은 사진 보여주신댔잖아요.”“이제 생각났어요? 저기 위에 놨어요. 가서 봐요, 마음에 들 거에요.”성아는 기대에 찬 표정으로 용규가 가리킨 곳으로 가 앉았다. 금방 뽑아낸 사진 뭉치가 제법 두툼했다. 하나하나 살펴보는 성아의 표정이 제법 진지했다. 숙제 검사를 받는 아이 심정이 된 용규가 성아의 맞은편 소파에 앉아 그녀의 얼굴을 살폈다.“제 사진이 많네요.”“성아 씨를 찍으러 간 거니까요.”“그랬…… 네? 절요?”사진에서 눈을 떼지 않고 심드렁하게 대답하던 성아가 고개를 번쩍 들었다. 용규는 최대한 순진한 표정을 지으며 웃었다.“성아 씨의 웃는 모습을 찍고 싶었어요. 성아 씨는 탐나는 모델이거든요. 프로 모델이 아니라 카메라를 의식할 수도 있잖아요. 그걸 막기 위해 약간의 장치가 필요했고 말이죠.”성아는 잠시 멍한 표정으로 용규를 보았다. 생각도 하지 못했다. 작업하는 걸 보여 주겠다 해서 따라간 것이고, 그의 작업에 도움이 되리라는 생각에 아이들과 함께 어울렸을 뿐이었다. 아이들이 즐거워하고 자신을 많이 따랐기에 도움이 되었다는 뿌듯함도 살짝 느꼈는데, 목적이 아이들이 아니라 자신이었다니.사진을 다시 들여다보았다. 신나게 웃어대는 자신의 모습이 아주 마음에 들었다. 아이들과 함께 즐거워하는 모습이 순진하면서도 밝아보였다. 실제 자신의 모습과는 거리가 있었지만, 아주 예뻐 보였다.“기분 나쁘다거나 하진 않죠? 먼저 허락을 받을까 생각도 했지만, 그러면 내가 원하는 사진이 안 나올 것 같았어요.”“기분이 나쁘다기보단…… 얼떨떨하네요. 내게도 이런 표정이 나오는군요. 웃을 때 이런 모습이군요.”“원래 사람들은 자기 표정을 잘 몰라요. 거울을 보면 되지 않느냐 하겠지만 거울을 보는 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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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규는 가만히 얼굴을 가져가 성아의 볼에 쪽 하고 입을 맞췄다. 한창 사진에 집중해있던 성아가 놀라 눈을 동그랗게 뜨고는 고개를 돌려 용규를 보았다. 그 표정도 표정이지만, 살짝 벌어진 입술이 그렇게 탐스러울 수 없었다. 용규는 두 손으로 성아의 얼굴을 감싸고 입술을 입에 살짝 물고 빨았다.잠시 잊고 있었던 자신의 입장이 떠오른 성아는 팔에 힘을 주어 용규를 밀어냈다.“이러지…… 말아요, 고용규 씨.”용규는 가슴을 밀어내고 있는 성아의 두 팔을 잡았다. 그리고 끌어당겨 품에 안았다. 벗어나려 바르작거리는 성아의 귓가에 나지막이 속삭였다.“한 번에 많은 걸 달라고 하지 않을게요. 욕심나서 미칠 것 같은데, 지금 당장이라도 성아씨를 가지고 싶은데…… 참을 거예요. 천천히 성아씨의 마음이 내게 올 수 있도록…… 참고 기다릴 거예요. 그러니 입술만, 키스만이라도 허락해줘요.”용규의 달콤한 속삭임에 성아의 마음이 말랑말랑해졌다. 용규에 대한 자신의 생각이 선입견이라는 걸 얼마 전에 알게 되었지만, 마음 깊은 곳에서까지 그 선입견을 버리지 못한 모양이었다. 그저 쉽게 여자를 만나고 쉽게 헤어지는 그런 사람이라고만 생각했지, 이렇게 자신의 욕망을 참아가며 기다리겠다 말하는 사람일 거라는 생각을 못했다. 게다가 자신은 이미 이 남자와 섹스를 한 적이 있었다. 보통 남자들은 한 번 자고 나면 두 번, 세 번은 쉽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데도 말이다.성아의 침묵을 긍정으로 받아들인 용규가 천천히 성아를 품에서 떼어냈다. 양손으로 감싸면 쏙 들어오는 성아의 작은 얼굴 구석구석에 입술도장을 찍었다. 성아의 눈꺼풀이 반쯤 내려오고, 용규는 그녀의 도톰한 입술을 물었다. 말캉하면서도 탄력있는 입술을 핥고 빨고 살짝 깨물었다. 살짝 벌어진 입술 사이로 혀를 집어넣어 그 안에 있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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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간호사가 수술 준비로 분주한 동안 형민은 여자에게 음경 골절에 대해 설명을 해주었다.“음경에 피가 몰리면서 발기가 되는 건 알고 계시죠? 음경에 피가 들어차게 되는 음경해면체가 있고, 그 음경해면체를 둘러싸고 있는 것이 백막이에요. 평소에는 흐물흐물한데, 발기가 되면 막대기처럼 딱딱해지거든요. 음경 골절은 바로 그 백막이 찢어지게 되는 겁니다. 치료시기에 따라 예후가 달라집니다. 바로 응급실로 가는 것이 제일 좋겠지만, 방치하지 않고 이렇게 병원에 오신 건 아주 잘하신 겁니다.”형민의 말에 여자는 팔꿈치로 남자의 허리를 찔렀다. ‘아, 왜!’하며 짜증을 내는 남자에게 거보라며, 자기 말 안 듣고 병원 안 왔으면 큰일날뻔하지 않았냐며 잔소리를 늘어놓았다. 내 몸인데 왜 네가 더 난리냐며 퉁명스럽게 말하는 남자에게 ‘다른 곳은 몰라도 거기’는 자신의 것이나 다름없다며 윽박지르는 여자를 보며 형민은 기분이 씁쓸해졌다.부부란 저런 것이겠지. 그의 시선이 수술준비를 위해 분주히 움직이는 성아에게 절로 가 닿았다. 저 여자가 이 보호자처럼 내 몸을 걱정해주었으면 좋겠는데.수술 준비가 끝이 나고, 형민과 민영이 환자를 데리고 수술실로 들어갔다. 성아는 초조해하는 보호자를 대기실로 안내했다.“잘 되겠죠?”“그럼요. 우리 선생님이 지금은 이렇게 작은 병원에 계시지만, H대학병원에서 유명하셨어요. 임상 경험도 많으시고 수술 경험도 많으시니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성아의 말에 여자의 얼굴에 약간의 안도감이 번졌다. 급한 마음에 가장 가까운 비뇨기과를 찾아온 것이라 큰 기대는 않았는데 정말 다행이라며 성아의 손을 꼭 쥐고 흔들었다. 하지만 초조함을 완전 덜어내지는 못했는지 의자 사이를 서성대기 시작했다.성아는 문득 아이도 있는 부부사이에 남자의 성기능이 저렇게 중요할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남자와의 섹스가 주는 즐거움이 분명 있긴 했다. 하지만 남녀사이에 중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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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법 쌀쌀해진 바람을 맞으며 성아는 민영과 함께 걷고 있었다. 조금 뒤떨어진 곳에 형민도 있었다. 민영의 새신랑인 진우가 식사를 대접하겠다고 해서 가는 길이었다. 취지를 보자면 기분 나쁠 이유가 하나도 없음에도 형민의 기분은 바닥이었다. 앞서 걷고 있는 두 간호사의 대화 내용이 마음에 들지 않기 때문이었다.“그게 뭐야? 그래서, 사귀는 사이 아니라고?”“네.”“왜?”“네?”“왜 안 사귀냐고. 그 정도면 월척급 대물 아니냐고. 그 키에, 그 얼굴에, 잘 나가는 포토그래퍼라며? 그 남자 싫어하는 것도 아니면서 뭐 하러 망설여?”“안 싫어한다고 다 사겨요?”“안 싫어한다고 다 사귀면 안 되지. 하지만 그 남자, 김 선생 좋다고 막 들이대는 중이라며? 따로 마음에 둔 사람이라도 있는 거야?”“그게…….”대답을 망설이는 성아를 보며 민영은 씩 웃었다. 그리고 손을 들어 그녀의 어깨를 찰싹 내리쳤다.“결혼하라는 것도 아닌데 뭐가 그렇게 어려워? 사겨보고 이 놈이 아니다 싶으면 헤어지는 거지, 그렇게 신중하게 굴면 연애 못해. 연애라는 게 말야, 결혼 전에 해야지, 결혼 후에 하면 범죄다? 그러지 말고 지금 부르자. 지난번에 잠깐 봤을 때는 얼굴만 봤지만, 오늘 밥 먹으면서 내가 잘 살펴볼게. 잘 될 놈인지 안 될 놈인지는 겪어봐야 아는 거야.”갑자기 용규를 불러내자며 의욕을 불태우는 민영이었다. 성아는 난처한 표정으로 뒤따라오는 형민을 한 번 돌아보았다. 그의 표정이 좋지 않았기에 영 내키지가 않았던 성아는 조심스럽게 민영을 말려보았다. 하지만 결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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접시들이 하나둘 서빙 되어 나오면서, 테이블에선 대화가 거의 끊어지다시피 했다. 형민과 용규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기에 민영이 성아를 끼워 넣어보려 했지만, 성아는 씁쓸한 표정으로 고개만 살래살래 저었다. 두 사람 갈등의 원인이 성아인지라, 그녀도 끼어들기가 난처했던 것이었다. 어느 한 쪽으로 마음이 기울었다면 모를까, 아직 두 사람 어느 누구에게도 확신을 얻을 수가 없었기에 한 사람의 편을 들기가 애매했다.“박 선생님 기분이 왜 저렇게 안 좋으신 거야?”민영이 두 남자를 힐끗거리며 성아에게 귓속말로 물어왔다. 뭐라 말해야 하나, 성아는 잠시 고민하다 살짝 웃어보였다.“화장실 갈래요?”“그래, 그러자.”두 여자가 파우치를 챙겨들고 화장실로 향하고, 테이블에는 세 남자만이 남아 어색해하고 있었다. 형민과 용규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은 걸 느끼고 있던 진우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민영이가 좀 눈치가 없긴 해요.”“네?”“다른 건 모르겠는데, 누가 누굴 좋아한다는 건 캐치를 잘 못 하더라고요. 대놓고 말해줘야 알아요. 그래서 연애할 때도 힘들었고요.”형민은 변명하듯 말을 늘어놓는 진우를 향해 씁쓸하게 웃었다. 용규도 입맛이 쓰기는 매한가지였다. 세 남자는 약속이나 한 듯 와인 잔을 들어 올렸고, 어색하게 웃었다.화장실 거울 앞에 선 두 여자 사이엔 이미 많은 말들이 오고간 뒤였다.“어머! 진짜 난 몰랐어. 어쩌지? 진작 얘기 좀 해주면 좋았잖아, 김 선생!”“죄송해요. 진우 씨 한 사람만 바라보다 결혼한 강 선생님 앞에서…… 제가 너무 못된 여자가 된 것 같아서 말 못 했어요. 양 손에 떡을 쥐고선 어떤 게 더 맛있나 저울질하고 있는 거잖아요.”민영은 들고 있던 콤팩트를 내려놓고 기운 없는 성아의 어깨를 찰싹 때렸다.“저울질 좀 하면 어때! 아니, 매사 똑 부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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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고용규씨. 요즘은 콘돔 사용 잘 하고 있나요? 임질은 항체가 생기는 질병이 아니어서 언제든 재발할 수 있다는 거 안 잊어버리셨죠?”간간히 형민쪽을 보며 자신만만한 표정을 지어보이던 용규가 미간을 찌푸렸다. 유치한 공격을 일삼아 성아와의 대화를 이어갈만한 화재거리를 던져주기에, 어느 정도는 마음을 놓고 있었다. 하지만 이번 공격은 좀 아팠다. 저도 모르게 어금니를 앙물고 형민을 노려보았다.보자보자하니까 이 의사 선생님이! 지금 이 상황에서 그런 얘기를 꺼내는 건 너무 치사하잖아!하지만 이내 눈을 깔아야했다. 용규 옆에 성아, 그 옆이 형민이라서 그가 형민에게 지어보이는 표정이 성아에게도 너무 잘 보였기 때문이었다. 지금 상황에서 용규는 성아의 눈치를 살필 수밖에 없었다.성아는 속으로 웃음을 삼켰다. 두 남자의 신경전이 아슬아슬해 끼어들지 못하고 지켜만 보고 있었는데, 이제 드러내놓고 질투를 하는 형민의 모습이 귀엽게 느껴졌다. 콘돔, 임질 소리에 움찔하는 용규의 모습도 재미있었다.“선생님이 직접 완치라 하셔서 안심하고 있었는데 말이죠. 그 이후로 특별한 일 없었고, 앞으로도 성아 씨 말고는 별 일 없을 것 같으니 크게 걱정은 안 해도 되겠는데요?”용규는 위축된 모습을 보이지 않으려 애쓰며 성아를 향해 웃었다. 성아가 그에게 성병에 대한 반응을 보였을 때는 처음 성병진단을 받았을 때뿐이었다. 그 이후에 성아가 한 번이라도 불결하다거나 찜찜하다는 반응을 보였다면 이렇게 형민과 신경전을 벌일 일도 없었을 것이었다. 그러니 그 부분에 있어서는 꿀릴 것 없다고 마음을 먹었다.“성아 씨 말고는?”“어머, 이거 고백인가요, 용규씨?”용규의 말에 발끈한 형민의 목소리는 민영의 호들갑스러운 목소리에 묻혔다. 진우와 오랜 시간동안 사귀면서, 속마음을 제대로 표현하지 않는 성격에 힘들었던 민영이었다. 이렇게 노골적으로 마음을 드러내는 용규가 참 멋져보였다. 그에 반해 형민은? 그녀의 시선이 용규에게서 형민으로 옮겨가며 날카로워졌다. 속마음 숨기기에 급급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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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해보니까, 반으로 나누자는 제안이 상당히 근사하게 들리는데. 세 사람 생각은 어때요?”“나누긴 뭘 나눕니까?”“저를 반으로 자르겠다고요? 진짜로?”“근사하긴 뭐가 근사해요!”진우가 던진 질문에 세 사람의 입에서 동시에 비난이 쏟아졌다. 민영도 의외라는 표정으로 남편을 쳐다보고 있었다. 아까는 멀쩡한 소리만 골라서 잘 하더니, 갑자기 왜 이래? 표정에 담긴 속마음이 너무 잘 읽혀서 웃음이 났다. 그래, 내가 이래서 널 사랑한다니까.“아, 성아 씨를 자르겠다는 건 아니고요. 똑 부러지는 성아 씨가 상황이 이렇게 됐는데도 당하기만 하는 걸 보면 아직 누구도 선택하지 못한 걸로 보이는데, 맞나요?”“네. 뭐…….”“그럼 자르는 게 세 사람에게 최선일 것 같은데요? 아, 성아 씨 말고 성아 씨의 시간 말이에요. 월수금 한 쪽, 화목토 한 쪽. 일요일은 쉬고요. 이건 두 사람을 위해서이기도 하지만 성아 씨를 위해서이기도 해요. 동시에 만나다 보면 선택이 쉬워지지 않겠어요?”“오! 우리 오빠 천잰가봐!”민영이 엄지손가락을 척 내민 것과는 별개로 성아의 표정이 미묘해졌다.“대놓고 양다리를 걸치라는 건가요?”“물론 선택은 본인들의 몫이죠. 세 사람 중 한 명이라도 싫다고 하면 불가능한 일이잖아요. 아, 선택지가 두 사람 뿐이라서 안 내키시나요? 그럼 한 사람 더 있어요. 결혼식 날 후배 중 하나가 성아씨를 보고 마음에 든다고, 소개시켜달라고 귀찮게 구는 놈이 있거든요. 그 녀석도 제법 괜찮은 놈이에요. 그 녀석 포함해서 셋으로 나눕시다. 월목, 화토, 수금으로.”해맑은 표정으로 손가락 세 개를 펴 보이며 진우가 웃었다.“말이 됩니까?”“그 무슨!”두 남자가 왈칵 성을 내며 반대를 외쳤다. 그럴 줄 알았다는 표정으로 ‘그럼 대놓고 세 다리 말고 양다리로 하죠’라 결론을 내렸고, 민영과 성아는 마주보며 풋 웃음을 참았다.형민과 용규는 진우의 제안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마음에 들어할 남자가 어디에 있겠는가. 하지만 ‘내여자’라고 부를 수 있는 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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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 장 쯤 두 서너 그룹으로 분류해놓은 형민이 고개를 슬쩍 들고 성아를 살폈다. 차트 하나하나를 들고 인상을 써가며 들여다보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형민의 얼굴에 다시 미소가 걸렸다.급할 거 하나 없는 일이었다. 시선을 피하거나, 마주쳐도 어색해 하는 성아 때문에 꺼내 든 일이었다. 그저 옆에 두고 보고 싶어서 벌인 일인지라, 형민의 속도는 점차 느려졌다. 결국 차트는 내려놓고 성아를 쳐다보기에 푹 빠진 형민이었다.노란 종이에 적혀 있는 병명을 하나하나 확인하는 성아의 입술이 소리 없이 달싹였다. 얼굴에 흐르는 진지함이며, 바쁘게 움직이는 손, 이마 위에 살짝 흘러내린 머리카락까지 어디 하나 예쁘지 않은 구석이 없었다.저 입술은 부드럽고 달콤했었지. 가슴을 긁어내리던 저 손에 온 몸에 전율이 일었었고, 저 단단한 표정은 술에 취하면 부드럽게 풀어졌는데.진료실 문은 닫혀있었고, 성아는 숨소리까지 들릴 정도로 가까이 있었다. 그녀를 만지고 싶은 걸 참아내느라 형민의 손가락이 꼼지락거렸다.성아는 이상한 느낌에 고개를 들어 형민을 보았다. 눈이 마주치자 약간 당황하며 열심히 차트를 뒤적이는 척하는 그의 모습에 피식 웃어버렸다.“선생님?”“얼른 보세요. 저 김 선생님 안 봤습니다.”그의 목소리에 섞인 장난기에 성아는 깔깔 웃었다. 그 웃음소리에 형민도 슬며시 고개를 들어 성아를 마주보았다.“오늘 김 선생님 데이트 상대가 나인 건 알고 있죠?”“네, 뭐…….”“생각해 둔 거 있어요? 먹고 싶은 거라든지, 가고 싶은 데라든지.”“글쎄요? 딱히…….”말을 얼버무리며 성아는 다시 차트를 들여다보았다. 언제 환자가 찾아올지 알 수 없는데, 하염없이 차트 더미만 뒤적이고 있을 수는 없었다. 빨리 해치우고 접수대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도 컸다. 하지만 형민은 그럴 생각이 없는 듯, 자기 앞에 쌓인 종이 한 움큼을 들어 슬그머니 성아 몫의 차트 위에 얹었다. 성아가 인상을 쓰며 형민을 쳐다보았다.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천연덕스런 표정으로 눈을 동그랗게 뜬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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