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비뇨기과 김 간호사의 '어머!'한 나날들: Chapter 11 - Chapter 17

17 Chapters

11

병원을 나와 성훈의 피부과로 향하는 형민의 기분도 바닥이었다. ‘나 삐졌으니 와서 좀 달래주지?’ 광선을 마구잡이로 쏘았고, ‘와서 말 걸어주지 않으면 계속 심술부릴 거다’ 신호를 수시로 날렸음에도 성아는 내내 모르쇠로 일관했다. 물론 평소와 비교하자면 별 다를 게 없는 태도였으나, 어제 그런 일이 있었으니 상황이 바뀌는 게 맞았다. 적어도 형민은 그렇게 생각했다. 고백을 했고, 거절을 당했지만 성아의 태도를 보아 그녀도 마음이 없지는 않았다. 다만 진도가 너무 빨라 브레이크를 걸었을 뿐, 자기 자신에 대한 거부는 아닌 걸로 보였다. 그럼에도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한 성아의 태도가 서운했다.점심시간도 다가오고 해서, 성아에게 다시 한 번 이야기를 해보려 했다. 같이 밥 먹는 걸 꺼려한다는 건 알고 있지만, 어제 그 일도 있고 해서 쉽게 거절하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점심시간에 맞춘 듯이 찾아온 용규 때문에 그마저도 틀어져 버렸으니 형민의 기분이야 말해 무엇 하겠는가.병원 근처 설렁탕집을 찾은 성아의 맞은편에 용규가 싱글거리는 얼굴로 앉아있었다. 따라오지 말라고 얘기를 해도 들은 척 하지 않고 식당 안까지 쫓아와서, 주인아주머니에게 넉살 좋게 인사까지 한 용규였다. 애인이냐는 아주머니의 질문에 성아는 도리질을 쳤으나 용규는 한 술 더 떠서 ‘아줌마 눈썰미 죽이십니다. 앞으로 자주자주 올테니 양 많이 주셔야 합니다’라며 주문까지 마친 상태였다. 간호사 아가씨가 예뻐서 며느리감으로 욕심냈다는 말에 대경실색을 하며, 이제 임자가 생겼으니 절대절대 눈독 들이지 말라는 능글맞은 소리도 잊지 않았다.“도대체 왜 이러세요?”“글쎄요, 내가 왜 이럴까요?”“이러지 마세요. 저는 고용규씨한테 관심 없어요.”“관심이 없어요? 흐음, 이거 좀 실망인데요? 이 정도면 나름 괜찮은 남자라고 자부하고 있었는데 말이죠. 그리고 처음 만났을 때는 관심이 좀 있지 않았나?”용규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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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전 아직 그쪽이 별로거든요? 경쟁이 될까요?”“아직 나에 대해 아는 게 없잖아요. 그러니 별로일 수밖에. 나에 대해 하나하나 알아갈수록 내 매력에서 벗어날 수 없을 걸요?”어찌 보면 재수 없어 보일 수도 있는 발언이었으나, 남자의 표정을 보니 반은 농담이었다. 어이가 없는 한편 재미있었다. 저 넘치는 자신감이 어디서 나오는지도 궁금했고.“죄송하지만 하나하나 알아가고 싶은 마음이 안 드네요. 저 먼저 일어날게요. 점심시간이 끝나가거든요.”성아는 지갑을 들고 카페를 나왔다. 따라오지 않을까 싶어 뒤통수가 간질간질했지만 참았다. 재미있고 궁금한 남자였지만 자신의 진짜 모습을 보인 남자였다. 그가 어떻게 나올까 궁금해서 튕긴 것도 있었지만 가까이하고 싶지 않은 마음이 더 컸다. 이렇게 뻣뻣하게 굴었으니, 저 남자도 이 정도에서 포기해 주었으면 하고 바랬다. 하지만 그건 성아 혼자의 바램이었다.“앞으로 알고 싶어질 겁니다, 나란 남자에 대해서! 내가 장담해요!”용규는 멀어지는 성아의 뒤통수에 대고 외쳤다. 성아의 발걸음이 조금 느려지는가 싶더니 어깨가 살짝 들썩이는 걸로 보아 웃고 있는 것 같았다. 그래, 그렇게 조금씩 방어벽이 무너지는 거야. 자신감이 생긴 용규는 손나팔을 만들어 다시 외쳤다.“커피 잘 마셨어요, 성아씨! 내일은 진료 받으러 갈 거니까 내일 봐요!”그녀의 뒷모습이 차츰 멀어지더니 코너를 돌면서 보이지 않게 되었다. 잠시 몸을 일으켜 그녀를 배웅한 용규는 다시 의자에 앉았다. 맞은편에 그녀가 마시던 커피잔이 보였다.“날 사랑하게 만들겠다고요, 성아씨.”그의 입가에 자신만만한 미소가 번졌다. **** 오후 진료를 보면서도 형민은 내내 저기압이었다. 지은 죄가 있는지라, 뭐라 말도 못하고 성아는 조용히 해야 할 일만 했다. 진료실 안에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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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복도가 잠시 소란스러운가 싶더니 종소리가 요란하게 문이 벌컥 열렸다. 놀라 고개를 든 성아의 시선에 20대 후반쯤 되었을 법한 여자가 화난 표정으로 무언가를 잡아당기는 모습이 들어왔다.“자, 잘못 했어 자기야!”“당장 안 들어와? 너 오늘로 그만 살고 싶지? 바람을 피려면 티 안 나게 펴야 할 거 아냐!”“딱 한번이었어. 바람 아니라고!”“이게, 그래도 입은 살았지?”성아는 이 재미있는 상황을 좀 더 자세히 보기 위해 몸을 살짝 일으켰다. 문 밖에서 들어오지 않으려 안간힘을 쓰는 남자가 보였다. 여자는 남자의 멱살을 움켜잡고 그를 안으로 들이려 하고 있었고.“어떻게 오셨나요?”내원 목적이 눈에 훤히 보였지만, 의례적으로 물었더니 여자가 힐끔 성아를 보았다.“잠깐만요, 이 놈 좀 수습하고요!”여자는 괴성과 함께 무지막지한 힘으로 남자를 끌어다 병원 바닥에 패대기쳤다. 여자는 꿈틀거리는 남자를 내버려둔 채로 씩씩대며 접수대로 왔다.“저 놈 성병 검사 좀 해주세요, 간호사 언니.”성아는 생긋 웃으며 인적사항을 적는 쪽지를 내밀었다. 여자는 남자에게 이것저것 물어보며 쪽지를 작성해 돌려주었다.“진짜 딱 한번이었다고! 자기밖에 없는 거 알잖아!”남자가 애타는 표정으로 여자의 팔을 잡았다. 여자는 팔을 잡은 손을 힐끔 보더니 냉정하게 탁 쳐냈다. 그리고 다시 잡으려는 손을 밀어냈다.“딱 한번? 그 소리도 세 번째 듣는 거거든? 모르지, 내가 아는 것만 세 번이고 내가 모르는 건 몇 번인지!”보아하니 남자가 아랫도리 간수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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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며시 주먹을 움켜쥐는데 남자가 돌아보았다. 때릴 마음은 없었으나, 찔리는 구석이 있는지라 성아는 흠칫했다.“왜, 왜 그러세요?”“세현이가 뭐라던가요?”“궁금하시긴 한가봐요?”“결혼 안 하겠대요?”성아는 고개를 돌려 대기실 의자에서 바닥을 노려보는 여자를 쳐다보았다.“글쎄요, 뭐라 했을까요?”“이 병원, 좀 이상한 병원이에요.”남자의 말에 성아는 여자에게서 눈을 떼고 남자를 쳐다보았다. 무슨 소리야? 우리 병원만큼 좋은 병원이 또 어디 있다고? ‘이루어지리’ 비뇨기과에 자부심을 가지고 있는 성아의 신경을 긁어대는 남자를 향해 눈을 부라렸다.“의사가 진료만 보고 병만 고치면 되는데 말이에요. 간호사님도 주사만 잘 놓으면 되는 거잖아요. 의사 선생님은 이상한 소리나 하시고 간호사 선생님은 세현이한테 잘해주시고…….”“이상한 소리요?”말에 돋힌 가시를 읽었는지 남자가 성아를 돌아보았다.“형이 있었다면…… 아마 형이 해주었을만한? 뭐 그런 거요. 세현이는 뭐랬냐구요.”“직접 들으세요.”뾰족하게 대답하고는 남자를 화장실로 밀어 넣고 나니, 성아는 형민이 했다는 말이 궁금해졌다. 형이 있었다면 그 형이 해주었을만한 말이라. 평소 성병 환자에게 발휘되던 형민의 오지랖이 제대로 펼쳐진 모양이었다. 듣는 환자에겐 달갑지 않은 설교였겠으나, 하나하나 옳은 소리만 담겨있는 구구절절한 잔소리였을 테지. 성아의 얼굴에 배죽이 미소가 새어나왔다.잠시후, 형민은 두 사람을 진료실로 불렀다.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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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흐뭇한 얼굴로 병원을 나서는 모자를 바라보던 형민이 갑자기 고개를 돌리더니 성아의 얼굴을 뚫어져라 쳐다보기 시작했다. 성아는 흠칫하며 뒤로 살짝 물러났다.“왜, 왜 그러세요?”“아까 하던 얘기, 마저 해야죠.”“무슨 얘기요?”“왜 웃었는지에 대한 심층적인 설명이 필요해요.”“안 웃었다니까요.”발뺌을 하는 성아의 얼굴에 슬며시 웃음이 번졌다. 의외로 집요한 구석도 있었네, 박 선생님.성아의 웃는 얼굴에 형민은 더 애가 달았다. 분명 자기는 그런 부류의 남자와는 다르다고 얘기했건만, 분명 웃을 만한 내용이 아니었는데도 그녀가 웃고 있으니 불안해졌다.“지금도 웃고 있잖아요.”“아니에요.”“그런 얼굴로는 아니라고 해도 믿을 수가 없잖아요.”형민이 다시 손을 뻗었으나, 야속하게도 문이 열리는 종소리가 들려왔다. 왜 자꾸 방해자가 나타나는지! 짜증이 일은 형민이 고개를 홱 돌려 쳐다보니 용규가 웃으며 들어서고 있었다.“성아 씨, 저 왔어요. 의사선생님도 나와 계시네요? 음, 분위기가 이상한데…….”용규의 표정이 살짝 굳어지자 경쟁자가 있으면 불타오른다는 용규의 말이 떠오른 성아가 활짝 웃었다.“어서 오세요, 고용규 씨.”“성은 빼고 불러달라니까요. 어제 보고 또 보는 건데 왜 이렇게 오랜만인거 같죠?”용규가 친근한 척 성아의 이름을 부르며 다가오자 형민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이 자식은 뭔데 김 선생님 이름을 함부로 불러?“그런가요? 저는 너무 자주 보는 것 같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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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용규가 나가고 나서도 한참 사진을 만지작거리던 성아는 씁쓸하게 웃었다. 평소에는 잘 인식하지도 않았던 ‘결혼’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하게 되는 날이라 여기면서 다이어리를 펼쳐 사진을 끼워 넣었다.고용규, 그 남자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해야 할 것 같았다. 사생활이 어떠한지는 단정할 수 없었으나, 자신의 직업에 대한 열정과 자부심은 높은 남자 같았다. 클럽에서 놀기 좋아하고, 여자 만나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라는 선입견은 그를 한없이 가벼워보이게 했지만, 어쩌면 그는 자신의 인생에 한해서는 진지한 사람일지도 모를 일이었다. **** 성아는 접수대에서 형민이 부르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오줌발이 약하고 회음부에 통증이 있어서 내원한 환자의 전립선액 검사를 위해 자리를 비켜주는 중이었다. 아무래도 항문에 손가락을 넣고 전립선을 마사지해서 전립선액을 채취하는지라, 형민은 매번 성아에게 자리를 비워줄 것을 요청했다. 그녀도 보기 좋은 광경은 아닌지라 크게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끝나면 어련히 알아서 부르겠거니 하고 있었다.그런데 갑자기 진료실 안에서 큰 비명소리가 났다. 그리고 들리는 우당탕탕 소리. 성아는 깜짝 놀라 진료실 문을 벌컥 열었다. 형민은 의자와 함께 바닥에 넘어져 있었고, 비닐장갑을 끼지 않은 손으로 얼굴을 감싸고 있었다. 환자는 쓰러진 형민과 멀찍이 떨어진 곳에서 벌개진 얼굴로 바지춤을 추스르고 있었다.“선생님! 왜 그러세요? 괜찮으세요?”성아는 얼른 형민에게 달려가 그를 부축했다. 형민은 괜찮다며 손을 내저었다.“선생님 코피!”얼굴에서 손을 떼자 형민의 코에서 피가 주르륵 흘러내렸다. 성아는 얼른 손을 뻗어 티슈를 뽑아 형민의 코앞에 대 주고는, 원망 섞인 눈빛으로 환자를 쏘아보았다.“아, 씨발! 의사가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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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규의 시선이 성아를 따라 진료실을 향했다. 끝나고 좀 보자 했더니 의사 선생 있는 곳을 쳐다보다니, 그새 두 사람에게 무슨 일이 생겼나 싶어 살짝 불안해졌다.“왜요? 오늘은 안돼요? 약속이라도 있는 거예요?”“오늘은 안 될 것 같아요. 대신 내일 토요일이라 일찍 끝나거든요? 내일은 안 될까요?”“오늘은 왜 안 되는데요?”“여기까지 왔는데 미안해요. 내일 봐요.”용규는 입맛을 다셨다. 물론 내일 보자는 말은 반가웠다. 무작정 전화가 오기만을 기다리던 걸 생각하면 많이 발전한 거였다. 일부러 여기까지 온 보람도 있었다. 하지만 의사 선생을 신경 쓰는 듯한 성아의 태도가 아무래도 마음에 걸렸다.“의사선생님, 무슨 일 있습니까?”“아, 환자분이랑 문제가 조금 있어서요. 내일 한 시 반쯤 끝나거든요? 끝나기 전에 전화할게요.”자신을 얼른 보내려하는 성아의 태도가 약간 서운했지만 용규는 순순히 발길을 돌렸다. 어찌 됐던 병원에 온 소기의 목적은 달성을 했으니 더 있을 이유가 없었다. 게다가 의사 선생의 잘난 얼굴을 보게 된다면 더 불안해질 것 같았다.곤혹스런 표정으로 앉아있는 환자를 보자, 성아는 다시 화가 났지만 내색하지 않으려 애썼다. 형민이 그런 성아를 보며 빙긋 웃었다.“검사 결과는 일주일 후에 다시 오시면 알려드리겠습니다. 규칙적으로 운동하시고 평소에 따뜻한 물로 좌욕하시구요. 주기적으로 사정하는 것도 도움 됩니다. 술 담배 줄이시고요, 커피나 탄산음료도 당분간은 줄이시는 게 좋습니다. 오래 앉아있거나 자전거, 오토바이를 타는 것은 증상을 악화시킬 수 있습니다.”“정말 감사하고…… 죄송합니다.”조금은 딱딱한 말투로 환자에게 주의사항을 알려준 형민은 환자를 성아에게 넘겼다. 남자는 형민에게 몇 번씩 고개를 숙여 인사하고는 진료실을 나왔다.“항생제랑 소염진통제 나갈 거예요.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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