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하언니, 갑자기 나가서 많이 걱정했지?" "인사해. 내 남자친구.. 로엘이야." 소연은 은하가 로엘을 처음 보는 사람으로 알고 있을 것이라 생각하며, 애써 덤덤하게 그를 소개했다. 은하의 시선이 로엘게 머물렀다. 1년만에 마주한 그는 예전보다 조금 더 인간적인 온기를품고 있는 듯했다. 은하는 목구멍까지 차오르는 그의 이름을 삼켰다. '로엘, 다시 돌아왔구나. 어떻게 된 거야?' 묻고 싶은 말은 산더미 같았지만, 은하는 입술을 짓씹으며 가면을 썼다. 자신이 기억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이 위태로운 평화가 다시 깨질지도 모른다는 두려움과 기억을 품고 자신을 돌봤다는 것을 소연이 알기라도 한다면 슬퍼할 것이라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아, 그랬구나. 소연이 네가 그렇게 찾던 소중한 사람이 이분이었어?" 은하는 입가에 옅은 미소를 띄었다. 그러나 눈동자에 새겨진 슬픈 눈빛만은 차마 숨기지 못한채 슬픔으로 젖어있었다. "축하해, 소연아. 정말 잘됐다." 은하의 진심 어린, 그래서 더 서글픈 축하에 소연은 안도의 미소를 지었고, 로엘은 무언가 위화감을 느낀 듯 은하를 가만히 바라봤다. 하지만 은하는 서둘러 시선을 피하며 작별 인사를 건넸다. 그들의 행복 속에 자신이 끼어들자리는 없다는 것을, 그리고 이 비밀은 영원히 자신의 심장에 묻어야 한다는 것을 그녀는 잘 알고 있었다. 두 사람과 헤어져 돌아오는 길, 은하의 발걸음은 납처럼 무거웠다. 이안과 함께했던 기억, 이안의 소멸을 지켜보며 오열하던 기억들이 환청처럼 귓가를 맴돌았다. 모든 것을 기억하는 자의 고독이 은하를 짓눌렀다. "이안... 나 잘한 거 맞죠?" 은하는 허공에 대고 나직이 읊조렸다. 복잡하 마음을 정리하려 애쓰며 그녀는 큰 대로변의 횡단보도 앞에 멈춰 섰다. 신호등의 빨간 불빛이 은하의 창백한 얼굴을 붉게 물들였다. 밤공기는 차가웠고, 도시의 소음은 평소와 똑같았다. 은하는 멍하니 반대편 건물의 네온사인을 바라보며 초록색 신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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