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ZER LOGIN창세의 균형을 이루던 두 존재 빛과 기록의 여신 쉐리와 어둠과 망각의 왕 로엘. 서로를 사랑했지만 닿는 순간 세계가 붕괴되는 금기의 관계였던 그들은 결국 사랑을 선택했고 그 대가로 형벌을 받는다. 로엘은 기억을 잃는 저주를 짊어지게 되고 쉐리는 인간 한소연으로 환생한다. 기억은 사라졌지만 감정만이 남은 채 두 사람은 다시 서로에게 끌리게 된다. 하지만 소연의 몸은 점점 무너져가고 그녀를 살릴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창세의힘이 담긴 조각을 얻는 것. 그 과정에서 드러나는 잔혹한 진실 누군가는 반드시 사려져야 한다. 사랑을 지키기 위해 기억을 버릴 것인가 아니면 사랑을 포기하고 존재를 지킬 것인가 결국 로엘은 모든 것을 짊어지고 기록될 수 없는 존재로 세계에서 사라지기로 결심하고 소연은 모든 기억을 잃은 채 남겨진다.
Ver mais"소연씨. 수고 했어요."
"네. 팀장님. 이만 퇴근하겠습니다. 내일 뵐게요." 한소연은 평소와 다름없이 출근을 했다. 그리고 근무를 마친 뒤, 익숙한 하루처럼 퇴근길에 올랐다. 지하철에 올라 자리에 앉은 그녀는 의자 등받이에 느른히 몸을 기대며 잠시 눈을 감고 휴식을 취했다. 두 눈을 감자 의식이 천천히 가라앉았고, 아득한 어둠 속에 이질적인 한 장면이 그녀의 머릿속에 파고 들었다. 한순간에 무너진 것처럼 거리에 사람들이 쓰러져 있었고, 그 한 가운데 한 남자가 서 있었다. 주변과는 완전히 다른 존재. 검은색 슈트에 검은 날개. 그리고 짙은 흑발, 핏기하나 없는 흰 피부, 붉게 빛나는 눈동자까지. 그의 모습은 누가 보아도 인간이라 보기 어려웠다. 이질적이고, 섬뜩할 정도로 선명했다. 그는 이 도시의 일부가 아니었다. 이 지구상에 존재하는 생명체가 아닌 것 같았다. '...뭐,뭐야, 이거.' 그녀의 깊은 두 눈동자가 좌우로 흔들렸다. 꿈이라고 하기엔 너무 현실감이 넘쳐 흘렀고, 도망쳐야 한다는 걸 본능 적으로 느꼈지만 발이 움직이지 않았다. 그 남자에게 시선을 걷을 수가 없었다. '요즘 너무 피곤해서 그런가...' '이상한 꿈을 꾸네.' 순간. 그와 눈이 마주쳤고, 동시에 소연의 심장이 쿵, 하고 강하게 뛰며 조여들고 있었다. 이어 이유 없는 불안. 강한 심장 통증에 숨이 점점 가빠져왔다. "하아...하.." '윽...꿈 치고는 너무 생생하잖아...!' 꿈이라고 믿는 그녀의 속마음이- 그에게 닿기라도 한 것처럼. 남자의 시선이 천천히 그녀에게 고정됐다. 이어 붉은 눈동자가, 정확히 소연을 꿰뚫어 보고 있었다. 순간 압도적인 긴장감에 그녀의 몸이 떨려왔다. 그리고 그 남자의 낮고 차분한 음성이 그녀의 귓가에 나즈막히 울려 퍼졌다. "망각을 견디는 인간인가?" "살아라." . . .안녕하세요, 태이해 작가입니다! 드디어 완결 후기로 인사드리네요. 『망각이 낳은 형벌』의 시작, 다들 궁금하지 않으셨나요? 사실 SNS에서 본 '노로바이러스와 굴'에 관한 일화가 계기였습니다. 고생할 걸 알면서도 다시 굴을 먹고 마는 인간의 굴레를 보고 "망각이 낳은 형벌"이라 표현한 베스트 댓글을 본 순간, '이거다!' 싶었죠. 단순히 웃어넘길 수 있는 일화였지만, '망각'이라는 키워드가 우리 삶과 사랑에서 얼마나 잔인하고도 아름다운 형벌이 될 수 있는지 진지하게 풀어보고 싶었습니다. 그렇게 시작된 세계관이 지금에 이르렀네요. ㅎㅎ 집필하면서 저의 사심(?)이 듬뿍 담긴 최애 커플은 사실 이안과 은하였습니다. 메인 커플보다도 이안이 더 돋보였으면 해서 마음껏(?) 고생시키고 희생시켰던 기억이 나네요. 이안을 너무 고생시킨 것 같아 집필하며 마음이 아픈 적도 많았지만, 서브 커플만이 줄 수 있는 그 애절한 여운을 꼭 완성하고 싶었습니다. 우리 이안... 은하와 잘 지내고 있겠죠?😄😄 완결의 아쉬움을 뒤로하고, 저는 벌써 차기작을 구상 중입니다. 이번 작품이 조금 무거운 '형벌'이었다면, 다음 이야기는 조금 더 [집착 광공/치명적인/구원 서사/회귀] 분위기로 구상 중입니다. 이번 작품과는 또 다른 매력으로 찾아뵐 테니, 잊지 말고 기다려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작가 태이해 드림🫶🏻
과거의 비극과 희생을 건너온 네 명에게 신이 준 마지막 선물은 평범하기에 더욱 찬란한 '내일'이었다. 기적 같은 재회 이후, 소연과 은하에게는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동시에 축복이 찾아왔다. 같은 해, 같은 달에 임신 소식을 알린 두 사람은 같은 날 같은 병원에서 아이의 울음소리를 들었다. 이안과 로엘, 한때 마계를 호령하던 전사와 왕은 이제 기저귀 가방을 메고 분유 온도를 맞추는 초보 아빠가 되었다. 네 사람은 소연과 로엘의 펜션 근처에 보금자리를 합치고 '공동 육아'라는 거대한 모험을 시작했다. 소연과 로엘의 아이는 아빠를 꼭 빼닮은 검은 머리칼에 날카로운 눈매를 가진 로운이었고, 은하와 이안의 아이는 엄마의 금발과 아빠의 다정하고도 강인한 기질을 이어받은 이슬이었다. 수천 년을 살아온 로엘과 이안에게 육아는 그 어떤 마법이나 전투보다 고된 일이었다. 하지만 아이가 처음으로 "아빠"라고 부르며 고사리 같은 손으로 손가락을 쥐었을 때, 두 남자는 생전 처음 느껴보는 감정에 휩싸였다. "이것이 자식의 사랑이라는 것인가..." 로엘은 곤히 잠든 로운의 이마를 짚으며 나직이 읊조렸다. 자신의 목숨보다 소중한 존재가 생긴다는 것, 그 대가 없는 사랑이 주는 평온함은 마왕의 권능보다 훨씬 강력했다. 이안 역시 이슬이를 품에 안고 달래며, 자신이 지켜야 할 세상이 이제는 이 작은 아이의 웃음 속에 있음을 깨달았다. 소연과 은하 또한 서로의 아이를 교차해서 돌보며, 피보다 진한 우정으로 맺어진 진정한 가족이 되어갔다. 로운이와 이슬이는 태어난 순간부터 펜션의 푸른 잔디받을 함께 뛰놀며 소꿉친구로 자랐다. 점잖고 배려심 깊은 로운이는 활발하고 호기심 많은 이슬이의 뒤를 졸졸 따르며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었다. "운아, 로운! 빨리 와, 저기 나비 봐!" "슬아, 천천히 가. 넘어진다니까." 아이들의 웃음소리는 펜션'잔향'의 가장 아름다운 배경음악이 되었다. 네 어른은 테라스에 앉아 그 모습을 지켜보며 종종 옛날이야기를 나누었
서울 도심의 활기찬 꽃집 '은하계'에는 달콤한 꽃향기가 감돌았다. 플로리스트 은하는 꽃다발을 다듬으며 곁에서 묵묵히 화분을 올겨주는 이안을 향해 미소 지었다. 이번 생의 이안은 그녀의 곁을 지키는 가장 든든한 조력자이자, 눈빛만으로도 마음이 통하는 연인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이안은 배달을 가려다 말고 길 저편으로 시선을 빼앗겼다. 군중 속에서 자그마한 체구의 아이 하나가 뛰어가는 모습이 보였다. 대여섯 살 남짓 되었을까. 흩날니는 머리칼과 그 특유의 야무진 발걸음, 무엇보다 찰나에 스친 그 눈매가 이안의 심장을 거세게 두드렸다. "소연...?" 이안은 홀린 듯 그 아이를 따라 몇 걸음 내디뎠다. 하지만 아이는 신기루처럼 골목 사이로 자취를 감췄다. 뒤따라온 은하가 의아한 표정으로 그의 소매를 붙잡았다. "이안, 왜 그래요? 아는 사람이라도 봤어요?" 이안은 멈춰 서서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수천 년의 세월을 기억하는 그에게 그 아이의 실루엣은 우연이라 치부하기엔 너무나 선명했다. 그러나 이안은 이내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은하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아니야. 그냥 누군가와 닮은 것 같아서. 가자, 은하야." 이안은 자연스럽게 은하를 이끌었지만, 그의 마음속엔 이미 확신에 가까운 예감이 피어오르고 있었다. 한편, 인파를 빠져나온 아이는 무언가 소중한 보물을 찾으러 가는 모험가처럼 설레는 표정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아이의 목적지는 인적이 드문 숲 근처의 공터였다. 그곳에는 한 남자가 등을 돌린 채 허공을 응시하며 서 있었다. 수백 년의 그리움을 고독하게 견뎌온 로엘의 뒷모습이었다. 아이는 멈춰서서 그의 뒷모습을 두 눈에담았다. 그리고 세상을 다 아는 듯한 깊은 눈동자로 입을 열었다. "로엘." 익숙한 목소리에 로엘의 어깨가 눈에 띄게 떨렸다. 그가 천천히 뒤를 돌았을 때, 아이는 환하게 웃으며 그를 향해 두 팔을 벌렸다. "오랜만이야. 나의 이번 생도 함께해 줄래?" *** 그로부터 1
기적처럼 재회한 로엘과 소연에게 허락된 시간은 역설적이게도 '유한함'이었다. 로엘은 불멸에 가까운 존재였으나, 소연은 창세의 조각으로 생명을 유지하는 가냘픈 인간에 불과했다. 하지만 그들은 슬퍼하지 않았다. 오히려 끝이 있기에 매 순간을 마지막처럼 사랑할 수 있었다. 두 사람은 은하의 몫까지 최선을 다해 살아갔다. 소연이 아침을 준비하고, 로엘이 정원의 꽃을 가꾸는 평범한 일상이 수십 번의 계절을 지나 수십 년의 세월로 쌓였다. 로엘은 늙어가는 주름 하나하나를 보석처럼 아꼈고, 소연은 변치 않는 모습의 로엘을 보며 자신이 떠난 뒤 홀로 남을 그를 위해 매일 밤 기도했다. 마침내 소연의 생체 시계가 느려지기 시작한 어느 노을진 오후였다. 침대에 누운 소연의 머리칼은 어느덧 백설처럼 하얗게 변해 있었다. 로엘은 젊은 날 그 모습 그대로 소연의 곁을 지키며 그녀의 마른 손을 꼭 쥐었다. "로엘, 울지 마..." 소연의 목소리는 바람에 흩어지는 낙엽처럼 가냘팠다. 로엘은 끓어오르는 슬픔을 억누르며 그녀의 이마에 입을 맞췄다. "안 울어. 너를 만난 것이 내게 주어진 가장 큰 축복이었으니까." 소연은 희미하게 미소 지으며 로엘의 품으로 깊숙이 파고들었다. 그녀의 숨소리가 점차 잦아들고, 마침내 평온한 정적이 방 안을 채웠다. 로엘은 소연의 심장 소리가 멈춘 뒤에도 오랫동안 그녀를 놓아주지 않았다. 그것은 이별이 아니라, 잠시 뒤에 다시 만날 것을 약속하는 긴 입맞춤과 같았다. 소연이 떠난 후, 로엘은 다시 '기록될 수 없는 존재'가 되어 세계의 틈새로 숨어들었다. 그는 서두르지 않으며 쉐리가 남긴 빛과 라멘트가 짜놓은 인과의 그물망이 그녀를 다시 자신에게 데려다줄 것임을 믿었기 때문이다. 다시 수십 년, 혹은 수백 년의 시간이 흘렀을까. 세상은 몰라보게 변했고, 마계와 인간계의 경계는 이제 전설 속의 이야기로 남았다. 어느 화창한 봄날, 로엘은 소연과의 마지막을 보냈던 그 숲의 공터에 서 있었다. 예전의 집은 흔적도 없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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