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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l Chapters of 망각이 낳은 형벌: Chapter 11 - Chapter 20

40 Chapters

10화

삐리릭. 쾅- 은하의 집 현관문이 닫히자, 세상이 갑자기 조용해졌다. 긴장하지 않으려 애쓰는 은하와 달리 평이해 보이는 이안의 얼굴. 은은한 조명 아래, 두 사람 사이의 공기만이 미묘하게 흔들렸다. 은하는 먼저 신발을 벗으며 말했다. "차...마실래요?" 이안은 대답 대신 그녀를 바라보며 잠시 침묵 하더니 이내 입을 열어 말했다. "은하씨." 이안의 꿀처럼 달콤한 목소리가 그녀의 귓속에 훅 스며들었다. "네?" 이안의 손이 아주 천천히 그녀의 팔을 잡았다. 차가운 손끝이 그녀의 피부에 닿는 순간.그의 눈동자가 탐욕으로 번들거렸지만, 이안은 애써 자신의 그 욕망을 억누르며 말을 이었다. "저는 차 말고 차가운 커피 한 잔 주실래요?" "앗..커피요? 드릴게요." 은하는 황급히 그의 얼굴에서 시선을 돌린 후 주방으로 향했다. 하지만 주방 찬장을 아무리 찾아봐도 원두가 보이지 않았다. '이은하. 카페 사장이라는게 집에 원두가 없다는 게 말이 되냐.' 은하는 이안을 바라보며 금방이라도 울 것같은 얼굴을 했다. 은하의 표정에 이안은 왜그러냐는듯이 고개를 갸웃 거리며 그녀를 바라봤다. "저...원두가 없어서 커피는 어려울 것 같아요." 이안은 그녀의 서툰 모습이 마냥 귀엽게만 느껴졌다. 그는 이 감정이 인간을 향한 악마로서의 단순한 호기심인지, 사랑인지 아직 확신을 내릴 수가 없었다. "저 그러면 차가운 거 아무거나 주세요." 이안이 입꼬리를 길게 늘어트리며 말하자, 은하는 그의 말과 표정에 속수무책으로 마음이 흔들렸다. 은하가 냉장고에서 맥주를 꺼내며 물었다. "혹시 맥주 좋아하세요? 저희 시원한 맥주 한잔 할까요?" 잠시 맥주를 물끄러미 내려다보던 이안이 느리게 숨을 삼켰다. 그러다 제게 건네진 맥주를 받아 들었고, 그렇게 둘은 맥주를 마시기 시작했다. 맥주에 대한 정보가 없던 이안은 단순한 음료수라고 생각하고 한껏- 들이키며 마셨고 이내 맥주 한캔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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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화

로엘은 느긋하게 하늘을 올려다보며 담배를 한 모금 깊게 빨아 들이고 내뱉었다. "마왕이 담배도 펴?" 소연의 말에 그는 피식- 웃어 보인 뒤 담배를 한 모금을 더 깊게 흡인했다. "인간들 사이에서 좋다고 소문 났길래." 로엘의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소연은 일순 눈을 가늘게 떠보였다. "피지마. 몸에 안좋아." 그는 이내 어이가 없다는 듯, 피식 웃으며 담배불을 지져 꺼버렸다. 로엘은 아스라이 흩어지는 연기를 바라보며 마치 자기의 기억 상실과 비슷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이후 로엘은 소연을 느른한 시선으로 바라보며 말했다. "걱정은." 그의 시선에 소연의 작은 얼굴 위로 붉은 홍조가 일었다. 로엘은 그 모습이 귀엽다는 듯 피식- 웃으며 자신의 큰 손으로 소연의 붉은 볼을 쓸어냈다. 그런 로엘을 빤히 직시하던 소연이 뜨거워진 속을 달래며 느리게 호흡을 내뱉었다. "후.." 로엘이 무어라 말하려던 찰나 소연이 말을 이었다. "로엘. 나랑 영화보러 갈래?" 로엘은 미간을 살짝 찌푸린 채 말했다. "영화가 뭐지?" "보면 알아." 어이가 없다는 듯 로엘은 테라스 난간에 몸을 비스듬히 기대어 몸을 젖혔다. 이내 소연이 로엘의 팔을 잡아 끌었다. "빨리 가자. 상영 시간 얼마 안남았어." 로엘은 소연의 재촉으로 얼결에 그녀를 따라서게 된다. *** 영화관에 도착했다. 소연은 표를 뽑고, 매점에 가서 팝콘과 음료를 샀다. 영화 상영 시간까지 앞으로 5분. 소연은 로엘과 영화 볼 생각에 마음이 한껏 부풀었다. 이후 로엘에게 시선을 고정한 채 말했다. "로엘. 들어가자." 영화관으로 진입하고 자리를 찾아 앉으니 한 벽면을 꽉 매운 스크린 하나가 떡하니 있었다. 로엘은 스크린을 보며 한 번 놀라고 스크린에 나오는 인간들에 또 한 번 놀랐다. "소연. 인간들이 왜 저기있지?" 약간의 궁금증이 묻어나는 음성이 그의 성대를 긁으며 나지막이 흘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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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화

찰칵. 플래시가 번쩍였다. 은하는 카메라를 내려 확인하며 말했다. "우리 둘다 잘 나왔네요." 은하는 카메라를 가슴에 꼭 끌어안으며 작게 덧붙였다. "나중에...이 사진 보며 오늘을 추억하겠죠?" 그 말에 이안의 시선이 그녀에게 향했다. 이안은 천천히 손을 뻗어 그녀의 머리카락을 가볍게 쓸어 넘겼다. "그럼요. 우리 한 장 더 찍을까요?" "네. 좋아요." 찰칵. 카메라의 셔터음이 나지막히 울려 퍼진다. "이안 씨, 저 놀이공원 되게 오랜만에 와봐요. 이안 씨는요?" 이안은 잠시 멈칫했다. 마계에 사는 악마가 놀이공원을 와 봤을 리는 전무했다. "어... 저 사실 놀이공원 처음 와봐요." 그의 대답에 은하는 놀란 토끼눈을 하며 그에게 물었다. "네? 처음 와보다니... 의외인데요?" "하하." 이안은 뻘쭘히 웃음만 흘린채 어색하게 서있었다. 그의 모습에 은하는 활짝 웃으며 말했다. "그럼 오늘은 제가 가이드 해드릴게요." 그녀는 그의 손을 잡고 달렸고, 이안은 그녀의 모습을 자신의 짙은 두 눈에 담았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어느새 따뜻한 해가 저물고 차가운 달이 올라와 어두운 밤이 되었다. 그렇게 은하 가이드의 마지막 코스는 관람차였다. 천천히 올라가는 원형 궤도. 유리창 너머로 놀이공원의 불빛이 펼쳐졌다. 은하는 창가에 기대어 앉아 말했다. "이안 씨 오늘 재밌었어요?" 그는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솔직하게 말하면 살짝 정신 없었어요." 이안의 말에 은하의 입술이 크게 부풀어 올랐다. 그렇게 댓발 나온 입술 새로 투정이 새어 나와버렸다. "치." 이안은 그녀의 투정이 못내 귀엽다는 듯 낮게 웃음을 흘렸다. 그리고는 은하의 희고 고운 손을 잡아 천천히 끌어 올렸다. 그의 손길을 따라 올라간 그녀의 손끝이 그의 볼에 닿았다. "장난이에요. 덕분에 오늘 너무 재밌었어요." "치..뭐예..." 쿵-! 은하가 말을 잇는 순간 갑작스러운 충격과함께 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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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화

은하는 두 손을 꼭 모은 채 조용히 입을 열었다."...그래서."잠시 말을 고르던 그녀가 이안을 바라봤다.동시에 이안이 그녀의 시선을 맞대며 물었다."그래서?"은하는 미세하게 입꼬리를 끌어올리며 최대한 조심스럽게 물었다."인간세상에는 어쩌다 오게 된 거예요?"이안은 잠시 숨을 고른 뒤, 입을 열어 설명하기 시작했다."저희 마계에는 로엘이라는 마왕이 있어요. 저는 로엘의 부하이자 가장 친한 친구죠.""하지만 로엘은 한 인간을 고의로 살려 망각의 형벌을 받고 있습니다."은하는 눈썹을 살짝 찌푸리며 되물었다."...망각?"이안은 잠시 회상에 잠긴듯 붉은 두 눈을 허공에 둔 채 말을 이었다."마족은 인간의 심장을 취해야 살아갈 수 있는 종족입니다. 하지만 로엘은 인간의 심장 섭취를 반대하고 대신 자신의 마력으로 만든 결정을 섭취하게 하여 생명유지를 시켰습니다." 그는 잠시 말을 멈춘 후 낮게 한숨을 쉬며 말했다."후... 하지만 하위 마족들은 결정만으로는 생명유지만 할뿐 능력 사용이 어렵기 때문에 로엘과 전 인간 세상에 심장을 가지러 오게 된거죠.""그리고 악마가 힘을 사용해 그 심장을 취할 수 있음에도... 고의로 살려버린다면.""그 순간 망각의 형벌이 시작됩니다.""기억을... 천천히 그리고 가장 잔인한 방식으로 잃은 겁니다.""...어떤 기억을요?"은하의 질문에 이안의 시선이 바닥으로 떨어졌다."그 인간과 관련된 기억부터. 모든걸 잊기 시작하죠." "형벌을 멈출 수 있는 방법은 없는 거예요?""망각의 형벌을 늦추거나 멈추게 할 수 있는 방법은 고의로 살렸던 인간을 다시 취하는 방법 뿐이라서..."그의 말을 듣고 있던 은하의 머릿속이 복잡했다. 마치 영화나 소설 속에 나올 법한 이야기 였기 때문이다."...취한다고요? 그럼.. 살렸던 인간이 누구인지는 찾았어요?""네.. 찾는건 아주 쉬웠어요. 우리는 악마니까."그 말을 내뱉는 순간, 이안의 붉은 눈동자가 잠시 깊게 가라앉았다."그 인간은 한소연이라는 인간 여자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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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화

그날 밤. 소연은 이유없이 깊은 잠에 빠졌다. 꿈인지, 환상인지 구분할 수 없는 공간. 발밑에는 물처럼 잔잔한 빛이 흐르고 있었고, 땅도 경계도 존재하지 않았다. 그곳은 아무것도 없으면서 모든 것이 기록된 장소처럼 느껴졌다. 소연은 천천히 주변을 둘러보았다. "...여긴 어디지?" 순간 빛을 지닌 바람이 소연의 몸을 중심으로 불더니 빛이 흩어지며 하나의 형체를 이루었다. 이 형체는 빛과 바람이 섞여 겹쳐진채 눈부시지만 따뜻한 존재를 내뿜고 있었다. 따뜻하지만 슬픈 기운이었다. "인간." 소연의 귓가에 차분하면서도 따뜻한 여성의 목소리가 들렸다. "...누구세요?" "나는 기록의 잔향." "한때, 쉐리라 불렸던 존재의 남은 빛" 소연은 '쉐리'라는 이름이 입 안에서 맴돌았다. 어디선가 들어본 듯한, 그러나 떠오르지 않는 이름. "근데 왜..." 순간 빛이 미세하게 흔들리며 파동이 일어났다. "세계는 균형 위에 존재한다." "마왕 로엘은 그 균형을 어기고 너를 살렸다." 말을 들은 소연의 가슴이 세게 조이기 시작했다. "윽..." "그 대가로 그는 망각의 형벌을 받고 있다." 쉐리이 말이 떨어지자 어둠 속에서 장면들이 스쳤다. 심장을 움켜쥐는 로엘. 기억을 잃어가는 눈빛. 점점 사라지는 존재감. 소연의 숨이 점점 가빠졌다. "하..하아...." 숨을 제대로 쉬기도 어려운 상황 속에 소연은 쉐리에게 물었다. "하..쉐리...하아....제가 어떻게하면 그를 구할 수 있나요?" "구하는 것은 가능하다. 그러나 균형은 반드시 대가를 요구한다." "네가 그의 형벌을 함께 짊어질 것인가." "아니면." 빛이 한 번 더 크게 흔들렸다. "그의 망각이 완성 되도록 지켜볼 것인가." 동시에 소연의 발밑의 빛이 갈라졌다. 한쪽은 따뜻한 노란빛. 다른 한쪽은 서서히 스러지는 어둠. "그를 붙잡으면 너의 육신은 무너질 것이다." "그를 놓으면 그는 기록되지 못한 채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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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화

"무슨 생각하는데." 소연은 그의 갑작스러운 움직임에 당황한 듯 뺨을 붉혔다. "읏..뭐야 갑자기." "......." 둘 사이에는 잔잔하던 호수에 돌맹이가 던져진 것처럼, 짙은 파동이 일렁였다. "한소연. 나 제대로 봐." 애써 소연이 파르르 떨리는 눈으로 그를 바라보자, 로엘이 고개를 숙여 그녀의 목덜미에 코끝을 문질 거렸다. "그만 생각해. 나만 봐." 소연은 그의 말에 입을 벙긋거리려던 순간,로엘은 노골적으로 자신의 성기를 그녀의 음부에 부벼대고 있었다. "으읏..! 갑자기 뭐야.." 로엘은 순간. 소연의 신음에 이성이 뚝. 끊어졌고, 그녀의 옷을 찢듯이 벗겨버린 뒤, 그녀의 다리를 벌려 곧장 고개를 숙였다. 그렇게 그녀의 음부를 핥으며 그의 입술과 음부가 내는 츕츕 소리가 집안 전체를 울려댔다. "로엘..잠깐..만...흣!" 로엘은 제 혓바닥에 달라붙은 그녀의 점막과 애액을 정신없이 빨고 핥느라 소연의 목소리는 그에게 무용지물이었다. 질구에 쑤셔 넣었던 긴 혀를 빼내자, 그녀의 뜨거운 애액이 줄줄 흘러내렸다. "하...하아.." 진작에 이성을 잃은 로엘은 정신없이 제 성기를 움켜쥐고서 녹진해진 그녀의 질구에 거칠게 쑤셔 넣어버렸다. "하윽!... 갑자기 그렇게 한 번에..." 한껏 벌어지는 감각에 소연이 놀라 뒤로 살짝 빼려고 하자, 두 손으로 단단히 그녀의 허리를 움켜쥐고는 그는 다시 한 번 크게 허리를 박아댔다. 퍼억- 살갗과 살갗이 맞부딪히는 소리가 밖까지 울리는듯 했다. 안쪽 가장 깊은 자궁구까지 들어간 귀두가 질벽을 부드럽게 문질렀다. 동시에 질벽이 물결치듯이 요동치며 그의 것을 깊게 삼켰다. 그녀가 성기를 오물거리며 단단하게 조여물자, 그는 참지 못하고 그녀의 자궁구에 하얀 정액을 흩뿌렸다. "읏...한소연." "네가 돌아 버릴 거 같이 너무 좋다. 어떡하지." 그가 파정하자 기다렸다는 듯이 형벌의 형태가 또 한 번 변화 했다. 그녀의 몸에서 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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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화

소연의 집 거실 탁자 위에는 편의점에서 사온 과자와 맥주, 그리고 탄산음료들이 어지럽게 놓여 있었다."아니 잠깐."은하가 팔짱을 끼고 로엘을 위아래로 훑으며 물었다."마왕이... 파자마 파티 하는 거 맞아요 지금?"은하의 말에 소연이 웃음을 참지 못하고 입을 가렸다.로엘은 무표정한 얼굴로 은하를 내려다봤다."파자마인가 뭔가 그쪽이 먼저 하자고 한 거 아닌가."로엘의 말에 소연이 결국 웃음을 터트려버렸다."푸핫."동시에 이안이 소파에 몸을 느른히 기대며 웃었다."우리 마왕님. 파자마 파티 진짜 모르는 거야?"로엘의 붉은 눈이 일순 좁아졌다."이안. 설명해."로엘이 이안에게 거들먹거리는 행동에 은하는 눈을 가늘게 떠보이며 그를 노려봤다.로엘과 은하 중간에서 눈치보던 이안이 맥주 캔을 따며 말했다."인간들이 밤에 잠 안자고 떠드는 의식 같은 거야."이안의 목소리가 들리자 은하는 언제 그랬냐는 듯 금세 기분이 풀렸다. 그리고 이안을향해 피식 웃으며 입을 열었다."의식이 아니라 그냥 파티하고 노는 거거든요~"동시에 이안과 은하는 시선을 맞대며 서로를 향해 미소 지었다.옆에서 은하와 이안을 바라보던 소연이 물었다."둘이 뭐해?"이안은 조금 쑥스러운 듯 머리를 긁적이며 대답했다."연애."그의 말 한마디에 소연은 닭살이라는듯 고개를 저었고 로엘은 그런 소연의 모습을 시선을 고정한채 귀엽다는듯 바라봤다.그리고 이어 은하가 맥주 캔을 들어 올리며 말했다."다들 맥주 들어요~ 짠- 하면 맥주 캔 부딪히는 거에요 로엘, 이안 알겠죠?"로엘과 이안이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맥주 캔을 들어 올렸고, 소연도 미소를 지으며 캔을 들어 그들과 부딪칠 준비를 했다.동시에 은하는 그들의 모습이 귀여운듯 작게 웃으며 말했다."세상에서 제일 이상한 모임의 사랑과 우정을 위하여."이안과 로엘은 피식 웃었고, 소연은 이 순간이 마냥 행복한 듯 해맑게 웃으며 캔을 부딪혔다.네 개의 캔이 맞부딪히자 맑은 금속음이 거실에 울려 퍼졌다.그렇게 네 명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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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화

옛 어른들은 언제나 나쁜 일은 몰아서 온다고 했다. 아마도 그날이 오늘인 모양이다. "소연씨." 마치 눈 위에 모래주머니라도 올려둔 것처럼, 소연은 눈꺼풀이 무겁게 내려앉아 눈을 뜨는 것조차 버거웠다. "...이안님? 은하언니?..." 이안과 은하는 말없이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둘의 눈빛에는 숨길 수 없는 안쓰러움이 담겨 있었고, 자신의 곁에 당연히 있을 거라 생각했던 로엘은 보이지 않았다. "로엘은..." 이안은 불안해하는 소연을 한동안 바라본 뒤, 잠시 침음 끝에 입을 열었다. "...라멘트 장로를 찾아갔습니다." "라멘트 장로요? 그게 누구죠?" "라멘트 장로는... 오래전에 인간을 사랑했다는 이유로 마계에서 모든 것을 잃은 분입니다." "그리고 로엘에게 형벌을 늦출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신 분이기도 하고요." "아, 그럼 왜 갑자기 로엘은 장로님을 찾아간거죠?" 이안은 잠시 말을 멈춘 채 허공을 바라보았다. 깊은 고민 끝에 마음을 정리한 듯, 곧 소연에게 말을 건넸다. "음... 소연 씨. 혹시 로엘과 관계를 맺기 시작한 뒤로 몸 상태가 눈에 띄게 나빠지진 않았나요? 실신하는 횟수도 늘었을 테고요." 이안의 말을 들은 소연은 잠시 당황한 듯 말을 잃었다. 그러다 이내 시선을 내리깔고, 천천히 과거를 더듬기 시작했다. 그러고 보니 출근해 일을 하다가도 이유 없이 기운이빠져 중간중간 쏟아지는 졸음을 참기 힘들었고, 퇴근 후 집에 도착하면 씻을 틈도 없이 쓰러지듯 잠들곤 했다. 특히- 로엘과 잠자리를 가진 날이면 거의 예외 없이 의식을 잃었다. 그때마다 단순히 피곤해서라고, 몸이 약해진 탓이라고 넘겨왔지만 지금 와서 생각해 보니 그 모든 변화는 하나의 지점으로 이어지고 있었다. 소연의 얼굴에서 서서히 핏기가 가셨다. "그럼...저는 결국 죽는 건가요?" 이안은 그녀의 질문에 잠시 말을 잇지 못한 채 마른세수를 했다. 이안의 옆에 있던 은하는 소연에게 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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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화

"마왕님께서 또 무슨 일로 오셨는가." 장로의 늙고 힘없는 목소리가 로엘의 귓가에 울렸다. 이내 장로에게 시선을 고정한 채 그가 입을 열어 말했다. "장로. 한소연이 쓰러졌다." 로엘의 말에 장로의 흔들리는 시선이 허공에 머물렀다. 이내 장로의 눈빛이 짧은 상념을 거둬낸듯 올곧은 시선으로 로엘을 바라보며 답했다. "당연한 것 아니겠나." "마왕. 인간의 육신으로는 신이 내린 망각의 형벌을 감당하지 못한다는 것을 정말 몰랐는가?" 로엘의 얼굴 위로 짙은 당혹감이 스쳤다. 그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던 장로의 담담한 음성이 이어졌다. "그래도 한낱 인간 치고는 꽤 오래 버텨냈군. 일개 악마도 아닌 마왕을 상대로 말이지." 순간. 장로가 특유의 담담함을 지워내며 로엘을 단호하게 바라봤다. "로엘, 그 인간이 정말 평범한 인간이 맞는가?" 이내 장로의 붉은 두 눈이 깊게 번쩍였다. 장로의 말에 잠잠하던 로엘의 두 눈동자 위로 점화된 분노가 탁, 튀어 올랐다. "그게 무슨 말이지?" "장로, 말장난 하지말고 똑바로 말하는 게 좋을거다." 로엘의 버거운 감정을 고스란히 담은 음성이었다. 멋대로 쌓여가는 이 상황과 현실을 감당할 여력과 인내가 이내 바닥을 내보였다. 장로의 붉은 눈동자에 순간 단단함이 실렸다. 일순 번뜩이는 장로의 눈빛에서 로엘은 살면서 처음 느껴보는 위압감을 느꼈다. 장로의 살기가 온몸을 휘감은채 그를 짖눌렀기 때문이다. 로엘은 순간 압도적인 장로의 힘에 잠시 말을 잃었다. 장로는 그런 로엘을 직시하며 로엘에게 다시 한 번 질문을 던졌다. "마왕이여, 정말 모르겠는가? 그녀가 누구인지?!" 장로는 이내 답답한듯 한숨을 얕게 내쉬며 말을 이었다. "창세의 신 쉐리, 쉐리의 환생이 한소연이라는 것을." 장로의 말에 기가 찬 듯 로엘이 미간을 좁히며 장로를 바라보았다. "무슨 말도 안되는...." 그때. 로엘 머릿 속에 스쳐가는 장면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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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화

신계와 마계 그리고 인간 세계, 그 어느 곳에도 속하지 않은 경계. 로엘은 마왕의 힘으로 그 틈을 갈라 미지의 세계에 도착했다. 어둠이 천천히 갈라지며, 찢어진 공간 너머로 빛도 어둠도 아닌 세계가 모습을 드러냈다. 로엘은 망설임 없이 그 안으로 걸음을 옮겼다. 발을 내딛는 순간- 세상이 바뀌었다. 소리도, 바람도, 심지어 마력의 흐름조차 느껴지지 않았다. 완전히 비어 있는 공간. 아무 것도 존재하지 않는 듯한 곳이었지만, 오히려 모든 것이 잠들어 있는 것 같은 기묘한 감각이 스며들었다. 로엘은 천천히 주변을 둘러보며 나즈막히 중얼거렸다. "...여기가 미지의 세계인가." 로엘이 한 걸음 앞으로 내딛었다. 그 순간. 바닥도 없던 공간에 희미한 빛이 퍼지며 길이 형성되기 시작했다. 마치- 그의 존재를 인식한 것처럼. 로엘의 붉은 눈동자가 깊게 가라앉았다. "...길을 따라오라는 건가." 얼마나 걸었을까. 시간의 흐름조차 느껴지지 않는 그곳에서- 마침내. 하나의 구조물이 모습을 드러냈다. 거대한 신전. 빛과 바람으로 이루어진 듯한 형체. 그러나 동시에 형체를 규정할 수 없는 존재. 창세의 신전. 그 앞에 서는 순간- 보이지 않는 벽이 로엘의 앞을 가로막았다. 공기가 굳어붙은 듯 움직이지 않았다. 이후 로엘의 손끝에서 검은 마력이 일렁였다. 그리고 그대로 신전의 보이지 않는 벽을 향해 밀어붙였다. 콰득- 균열이 생겼다. 보이지 않던 결계가 무너질 듯 요동쳤고, 검은 마력이 그 틈을 파고들며 공간을 억지로 벌려냈다. 결국 결계는 끝내 버티지 못하고 갈라졌다. 로엘은 굳은 표정을 유지한 채 신전 안으로 걸음을 옮겼다. 신전 내부는 외부보다 더 고요함을 유지했다. 빛이 존재하는 것 같았지만, 그 빛조차 소리를 내지 않고 고요함을 유지했다. 그리고 그 중심 공간 한가운데에- 무언가 떠 있었다. 창세의 조각. 형태를 규정할 수 없는 빛. 파편처럼 보이면서도, 하나의 완전한 세계처럼 느껴지는 존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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