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성이 노윤슬의 미간에 잡힌 주름을 다정하게 펴주었다.“결혼식을 좀 미루고 나랑 같이 잠깐 다녀올래?”노윤슬이 고개를 저었다.“아니, 됐어. 나에 대한 미련이라도 품고 있어야 조금이라도 더 버티지. 내가 가면 미련도 사라져서 그냥 다 내려놓을지도 몰라.”보름 뒤 노윤슬과 이기성이 해변의 성당에서 결혼식을 올렸다.피아노 선율이 흐르고 노윤슬이 그녀가 직접 디자인한 웨딩드레스를 입고 가장 사랑하는 사람에게로 천천히 걸어갔다.이기성이 그녀의 손가락에 반지를 끼워줄 때 감격에 겨워 눈물을 흘렸다. 오랜 세월 가슴 속에만 품어왔던 짝사랑이 비로소 결실을 맺는 순간이었다.“윤슬아, 나랑 결혼해줘서 고맙고 내 꿈을 이뤄줘서 고마워.”노윤슬이 복받치는 감정에 울면서 이기성의 목을 감싸 안았다.“고마워. 나한테 다시 가정을 선물해줘서.”성당 신부와 지인들 앞에서 두 사람은 평생을 약속했고 뜨거운 입맞춤을 나누었다.같은 시각 고재형의 병실, 심장 모니터가 날카로운 경고음을 쏟아냈다.의료진이 최선을 다했으나 끝내 고재형을 살리지 못했고 모니터 위의 요동치던 선이 이내 곧게 뻗은 직선이 되었다.고명철이 뇌경색으로 일상생활이 불가능해졌다. 고씨 가문의 두 기둥이 한꺼번에 무너지면서 김은혜와 시력을 잃은 고주율만 남게 되었다.고재형의 장례식에 노윤슬과 이기성도 참석했다. 그들은 멀찍이 떨어져 서서 고재형이 땅에 묻히고 비석이 세워지는 걸 지켜보았다.많은 사람이 다녀갔고 고주율이 마지막까지 남아 자리를 지키며 떠나지 않으려 했다.고주율이 허공에 대고 코를 킁킁거렸다.“엄마, 엄마 왔어요?”노윤슬이 그늘에서 걸어 나와 고주율을 품에 안고 비석에 새겨진 사진을 봤다. 고재형의 유언인지, 아니면 가족들의 뜻인지 알 수 없으나 사진 속의 그는 열여덟 살에 머물러 있었다.교정의 큰 나무 아래에 서서 환하게 웃던 기억 속 가장 순수했던 소년의 모습이었다.“윤슬아. 내가 평생 잘해줄게. 절대 배신하지 않아. 만약 내가 약속을 어기면 천벌 받을 거야.”이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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